노동법상의 여성의 지위Ⅰ. 서론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특히 1960년대초 정부에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제활동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급격히 늘어났으며, 이제 여성은 단순한 가정의 파수꾼이 아닌,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 속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노동 집단으로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은 경제 활동속에서 많은 남녀 불평등을 겪고 있으며, 이는 여성 개인적으로는 자아 실현을 가로 막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있다.노동법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 나가기 위해 제정된 법규이다. 그리고 여성또한 우리나라의 국민의 한사람으로 노동법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노동법이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였는데, 이는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 차이 및 여성이 가사와 자녀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모성으로서의 남성에 대해 가지는 차이점이 그 노동법에는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에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법상에 여성의 권익 보장을 위한 많은 조항을 만들었다. 이는 여성의 권익을 실제적으로 보장하는 조항도 있으며, 또한 실효를 나타낼 수 없는 명목상의 조항도 있으며, 권익 보장을 내세우며, 오히려 여성의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조항도 있다. 노동법상의 여성의 지위를 살펴보는 데 있어 노동법상에서 여성의 권익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가 하는것이 노동법상의 여성의 지위가 높은가 낮은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는 남녀차별의 고용관행은 강제력을 갖는 법제도를 통해 고쳐야 하지만, 법에서 규정한 추상적인 '기회균등'만으로는 차별관행이 완전히 고쳐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차별관행으로 뒤떨어져 있는 여성의 기초여건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현재 우리 나라에는 여성의 고용과 관련하여,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여성발전기본법,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다. 법체계만으로 보았을 때는 선진국수준이나 아직 사회 현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기능은 단순히 위법에 대한 재제나 사회의 반영은 아니므로, 적극적으로 보다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계도해 나가는 것도 법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라 할 것이고, 이러한 일련의 법제들은 향후 우리 나라 여성들의 완전한 고용평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먼저 노동법상에서 여성에 법조항을 살펴보고, 여성의 권익을 보장해주는 노동법상의 측면과, 노동법상의 여성관련 법규가 아직은 여성의 권익을 보장하기에 미흡한 측면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노동법이 보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도록 하겠다.Ⅱ. 본론1. 노동법 상의 여성관련 법규가. 근로기준법1) 제정목적 : 이 법은 헌법에 의하여 군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2) 근로기준법의 기본원칙 (법 제3∼제9조)① 근로자의 기본생활의 보장 : 근로조건의 기준을 확보하는 것이다.② 자유의사에 의한 근로조건의 결정 : 사용자와 근로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결정③ 균등대우: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한다.(근로조건이란 근로계약관계에 있어서 근로자에 대한 일체의 대우)(차별대우란 특정의 또는 일정한 집단의 근로자를 다른 근로자와 구별 취급)④ 강제근로의 금지 : 근로자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근로의 금지⑤ 폭행금지 : 사고발생 기타 여하한 이유로도 폭행, 구타할 수 없다.⑥ 중간착취의 금지 :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이으로서 이득을 얻지 못한다.⑦ 공민권행사의 보장3) 근로기준법상 여성과 관련되는 규정.(1) 사용금지 직종 : 여자와 만 18세미만이 자는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 에 사용하지 못한다. 금지직종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63조). 갱내에서 근로시키지 못한다(70조).
【 여 성 운 동 】< 한국의 사회운동 >< 한국의 사회운동 >< 한국의 사회운동 >◈ 들어가며20세기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학생, 흑인, 여성 등 사회 주변집단의 세력화이다. 특히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여성의 등장은 19세기말부터 비롯된 여성운동에 힘입은 바 크다. 여성운동이 이념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근대사회로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늘날 여성운동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을 불문하고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새로운 사회운동' 영역으로의 여성운동은, 페미니즘(Feminism)적 측면에서 다른 사회운동 영역과 구별되면서 강조되는 점이 있다. 즉, 여성운동은 에 의한 새로운 사회준거의 형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가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갖도록 하여 가 현실 속에서 실현되도록 주도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성운동은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근본적 변혁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인격,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문화양식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페미니즘은 공.사의 패러다임이 여성을 주변적인 존재로 규정해온 것에 도전하기 위해 여성을 의 주체로 만드는 힘갖추기(Empowerment)를 강조한다.여기서는 오늘날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여성운동이 한국사회에선 어떠한 형태로 발달해왔으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의 여성운동1. 여성운동이란?『여성운동』이란, 여성의 권리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으로,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권익을 위한 운동의 전개는 불가결의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여성운동은 인류역사가 남성주의적 역사로 발전해온 것을 문제제기하고 역사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페미니즘에 기초한 사회행동실천의 시민운동이다. 특히 사회발전의< 한국의 사회운동 >위기나 생태적 위기에 직면하여 기존의 사회구조,개된 여성운동 역시 진정한 인간화 문제를 위한 실천과 활동에는 별다른 인식이 없었고, 여성의 현안문제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전개되었다.⑶ 1950년대부터 전개된 여성운동은 서로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즉 민간주도형 여성단체는 여성문제를 여성의 인간화와 인권, 그리고 정치적으로 여권신장의 시각에서 다루려했는데(예: 여성문제연구회) 반해, 관변 여성단체는 여성문제를 주로 모권보호와 가정생활 향상에 운동의 초점을 맞추려하였다. 50년대 이후 70년대까지 한국사회에서 분단된 국가건설의 담론이 중심적인 운동의 과제로 이어지면서 여성운동은 여성문제를 가부장적 성차별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었다.⑷ 1960년대와 70년대의 여성운동은 대체로 제도권 내 여성운동이 주종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인간화에 초점을 맞추되 기존의 정치권력 집단의 이해와는 상충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성을 지닌 여성운동이었다. 그러나 1975년 유엔의 '세계여성의 해' 행사와 'Decade for Women'의 선포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여성학이 도입되면서 여성문제의 특수성에 눈뜨기 시작하였고 여성학연구와 여성의 의식화 교육이 본격화되었다. 서구의 제 2기 여성운동의 물결이 한국 여성운동에 새로운 활력과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여기에서 덧붙칠 것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 기획의 일환으로 1960-70년대에 일어난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조직된 "새마을부녀회"의 활동이다. 관변단체 활동으로 간주되어 그동안 평가를 받아오지 못했지만, 이 운동에 참여했던 새마을부녀지도자들은 이 운동이 여성에게 배제되었던 사회적 권리를 인식하고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여성운동의 초기역사를 이어 온 YWCA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어오면서 교육계몽운동, 가부장적 가족법 개정과 소비자로서의 여성역할을 강화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여하튼 이러한 여성들의 공적영역에의 참여 경험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여성의식의 형성과 여성운동의 불씨를 간직하게 해주는 것이다. 70년성문제는 남녀 성차별과 사회변혁의 문제의 양 축 안에서 정의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사회운 동의 일부로 포함되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여성운동이 80년대 중반에는 민중운동의 일부로 급진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지면서 형성되었다가 80년대 후반 및 90년대 초 중반에는 시민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③ 80년대 이후 등장한 다양한 운동그룹의 형성은 서구 페미니즘의 영향이 한국 여성운동의 담론 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새롭게 형성되는 페미니즘 논의들은 문화활동을 중심으로 전문화, 분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페미니즘 논의들은 80년대 이후 배출된 여성학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들의 노력에 의해 법개정,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더불어 페미니즘의 대중화 현상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④ 여성문화사업의 활성화는 페미니즘의 담론의 증가를 반영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지역 문화적 특 수성에 기반한 것이어서 그 외의 지역에서는 축소된 영향으로 나타났다. 또한 법개정운동과 정 치세력화의 담론도 수도권 중심으로 이루어져 한국여성운동에 영향을 미친 서구의 페미니즘 논의가 수도권 중심의 담론으로 귀결되고 있고 실제 각 지역에서 페미니즘이 대중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여성운동의 확산을 위해서는 지역여성현실과 지역여성운동에 기반한 여 성조직의 재발견과 운동의 성과에 관한 분석이 다양한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이 어지고 있는 것이다.5. 한국 여성운동에 있어서의 사회.문화적 특수성⑴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지난 30-40년 동안 자본주의적 경제와 민주주의적인 정치제도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한국 여성들의 지위도 향상되었고 성평등적인 법조항도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인 입법의 효과적이고도 완전한 시행이 여성의 행동을 제한하고 사회참여를 제약하는 전통적인 사회문화적 규범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급속한 경제성장은 가족구조를 상당히 변화시켰고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약화시켰으며 여성의 고용을 확대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여한 폭력이라기 보다는 한국여성에 대한 일본 남성의 폭력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동안 여성에 대한 강간이라든가 폭력에 관한 이슈는 여성단체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성성(sexuality)에 대한 최초의 공개토론(학술적으로나 다른 식으로)이 이루어졌으며, 전문 여성단체(여성의 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족되면서 인간 중심적인 성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한국성폭력상담소, 2000: 229). 그러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이르러 성폭력운동은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남성 중심적인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일상적인 여성억압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성(sexuality)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해석하게 되면서 가능해졌으며, 여성운동의 성격변화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운동과 이론이 접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위의 세가지 주제를 선정하게 된 것은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로 특징 지워지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속성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주는 여성 이슈이면서도 서구여성들도 공유하는 여성 고유의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초부터 여성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 독자적인 여성운동의 영역을 재확인하게 되면서 여성운동의 주체도 주부, 사무직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게 되었으며, 그 영역도 환경, 교육, 성문제 등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이 시점에 와서야 한국의 여성운동은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과 관점이 서구(구미) 여성운동에 접근하게 되었으며 여성 이슈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세계적/국제적인 연대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6. 한국의 진보적 여성운동과 여성민우회1990년대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한국 국가의 문민화 과정에서 80년대를 지배하였던 민중운동과 이를 지탱하던 삼민이념은 쇠퇴하고 시민운동이 새로운 운동의 주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진보적 전민련 가입을 결정하였으나 이로 인해 많은 단체들이 탈퇴하였다. 더욱이 1980년대 말의 동구권의 몰락은 한국의 마르크시즘과 민중이념이 가지고 있던 정당성의 기반을 약화시켜감에 따라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내용과 의미 또한 문제제기를 받게 되었다. 이에 여성운동 내용의 전환을 수반할 수 밖에 없었다.3) 민우회의 창립한국여성민우회는 1987년 9월 21일, 여성대중을 대변하는 조직에서 대중이 조직의 중심이 되는 대중조직을 세워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민우회의 궁극적인 조직 목표는 자주적 민주사회의 건설, 민족 자립경제의 수립, 진정한 남녀평등의 실현으로 정하였다.1989년에 이르러 조직대상을 한정함으로써, 민우회 운동의 중심인 생활자치센터와 사무직여성 노동센터의 골격이 갖추어졌다. 88년에서 89년에 이르는 시기 여성문제, 교육문제에 관심이 있는 진취적인 주부중심의 소모임 활동을 구성하여 주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함께가는 생활소비자협동조합을 창립하게 되었다. 사무직여성을 위한 활동은 창립 초기에 노조탄압저지, 결혼퇴직제 반대, 여성생존권투쟁에 대한 지원활동과 교육, 선전사업이 주를 이루었다.⑵ 1990-1992 : 진보적 여성운동의 의미틀 전환1) 1990-1992 : 진보적 여성운동의 의미틀 전환민주주의와 민주적 권리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 정치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여성의제 또한 공적인 영역과 정책영역에서 부각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단체연합의 회원조직들은 여성이슈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만이 남게되었다. 그리고 여성운동 단체들 내부에서는 여성운동의 전문화를 도모하기 시작하였다.이 시기의 진보적 여성운동의 의미틀은 여권의미틀이라 명명할 수 있다. 여연이 구성해 가는 여권의미틀은 불완전한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평등한 시민권이 사실은 여성배제와 차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 의미틀의 핵심은 평생평등노동과 모성보호, 인권침해로서의 성폭력,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이라는 내용으다.
다른 목소리로《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 여성의 목소리의 침묵1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며 겉으로 이타적인 모습을 보임2 여성이 스스로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유 :-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해악을 입을까봐,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거나 이해 하지 못할까봐,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처한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기 때문3 여성의 침묵의 결과 :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제한하면서 남성의 목소리가 우세한 기존 문화와 여성들과 분리된 삶의 방식을 지속시키게 한다.4 로 대 웨이드 판결 : 임신 중절이 합법화 됨-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이 합법적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입각해 말 할수 있게 됨.- 가정의 천사 의 도덕관{ 시인 패트모어에 의해 불멸화된 19세기의 여성적 덕성에 대한 초상으로,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행위하고 말하는 여성적 도덕관.을 공개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됨.인간관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이타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고, 인간관계에서 져야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부 도덕임을 깨달음.2. 여성의 목소리의 침묵에 관한 분석1 인간의 삶에 대해 남성들은 여성들을 제외시켜 왔지만, 여성들 또한 자기 자신들을 제 외 시켜 왔다.2 남성들에게 일어나는 분리 의 과정은 여성들에게는 내적인 분열로 귀결되는 단절 의 과정이었음. 사랑이나 인간관계라는 미명 아래 합리화된 이러한 심리적 과정들은 도 덕이라는 미명아래 합리화되었던 폭력이나 권리침해와 다름없는 것임3. 분리적 사고에 관한 저항- 관계적 목소리1 관계적 목소리 : 이러한 합리화에 저항하기 시작한 다른 목소리로서, 연결, 특히 여성과 의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율이나 자유라는 미명으로 합리화되어 온 심리적 분리가 더 이상 인간 발달의 불가피한 귀결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되어야 하는 인간의 숙제임을 주장2 콜럼버스에 대한 재평가 : 분리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자유에 대해 의혹을 제기 하는 것과 상관이 기 위해 양성간의 불평등을 근절시키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양성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사회 과학 분야에서 다시금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녀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적용된다고 여겨졌던 과학에 편견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고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남성의 눈을 통해 삶을 보는데 길들여 졌는지 깨닫고 과학을 다원적 관점과 판단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을 해야한다.남성적인 삶을 기본으로 받아들이면서 여성들의 삶을 남성적 삶의 방식에 끼워 맞춰 여 성은 삶의 순환에서도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파악했다.1)아동 초기에 여아과 남아는 인간 관계의 문제를 다르게 경험한다.- 여아: 여성성이 관계를 통해 규정된다.- 남아: 남성성이 독립이나 개인화를 통해 규정된다.*프로이트: 성심리학적인 발달 이론을 전개하면서 모순이 발생하자 양성간의 발달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성의 발달이 남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발달 할 수 없고 여성들의 초자아도 생래적 결여(거세에 대한 불안감의 결여)로 인해 불완전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성들의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여성들이 인간관계에서 남성과 는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였다.쳐도로우 :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신체적으로 다른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화와 인간관계를 달리 경험하는데서 오며 이것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약한 자아 경계선을 가졌다거나 정신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심리 이론에 내포된 남성적 편견에 대항해서 글을 썼다.프로이트와 같은 심리학자들은 여성이 남성과 달리 사회적 상호 작용과 사적 관계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을 때 아동기와 청년기의 발달 기준을 독립성의 증대에 두고 있는 이 상 여성들이 독립성이 적다는 것은 그들이 발달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2)중기 아동들의 놀이를 살펴보면 양성간에 차이가 난다. (사회적 경험의 차이)- 여아: 차례를 기다리는 놀이를 주로 하고 경쟁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며 분쟁을 해소 하기 위해 규칙을 만들기보다는 차이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에이미(11세 여아) 와 제이크(11세 남아)의 권리와 책임 연구 에서 콜버그는 연구 대상자들이 도덕 규범이 충돌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살핌으로써 청년기의 도덕성 발달을 측정할 수 있는 일련의 가상적 상황 시리즈들을 만들었다. 하인즈 라는 남성 자기 아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약은 너무 비싸서 하인즈는 살 수 없다. 라고 했을 때 하인즈가 그 약을 훔쳐야 할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제이크는 하인즈가 약을 훔쳐야 한다고 했고 여기서 재산의 가치와 생명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법이 존중되어야 하며 그것의 기능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잘못될 수 있고 변경될 수 도 있다고 인정했다. 제이크는 도덕적 딜레마를 하나의 방정식으로 규정하고 해결하고자 하지만 논리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아동기와 청년기의 분기점의 이 남아는 발달 심리학이론에서 잘 설명된다. 피아제는 이시기에 아동기 지력이 정점에 이른다고 보았는데, 점차 형식적 사고에 능해지고 사고 자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킨다. 제이크는 콜버그가 도덕적 성숙과 동일시하는 원칙주의적인 정의관에로의 이행 과정에 있다.반면 에이미는 논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미비해서 발달이 저해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딜레마를 인간활동에 적용되는 추상적인 수학문제로 보지 않고 시간의 흐름이 개입된 인간 관계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 아내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인간 관계 속에서 고려한 에이미는 하인즈가 아내를 사랑하건 안 하건 약을 훔쳐서도 안되고 아내를 죽도록 해도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도덕적 논리만으로 이 딜레마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그 해결책의 내적 구조 문제를 밝히는 데 실패하며, 콜버그의 관점을 완전히 빗나가서 이 문제를 스스로 달리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제이크는 여 도덕을 공격성을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보지 않고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대안적인 도덕관이 존재할 가능성을 암시한다.로버트 매이는 여성들의 관점에 의하면 삶은 인간 관계들의 그물 조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런 삶에서 허상에 불과하며 위험을 내포하는 것은 친밀한 인간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자율성의 실현으로 본다. 그리고 밀러는 더욱 창조적이고 협동적인 삶의 방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평등 외에도 사람들이 보살핌으로 연결된 상황과 불평등한 압제의 상황을 구분할 수 있는 심리학의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 한다.제이크가 우정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자신의 개인적 신념에 어긋날 것을 우려하는 것과 같이, 에이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친구에게 줄 고통에 대해 우려한다. 이러한 것을 토대로 청년기의 남성과 여성의 발달을 예측해 볼 수 있는데, 청년기의 남성의 비밀은 공정성의 논리가 적용될 수 없는 지속적인 애착의 관계와 관련 있는 반면, 청년기 여성의 비밀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원하며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들이 듣지 않을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대학생 연구 의 참가자인 클레어 대학 3학년과 그 후 그녀가 27세 일 때 다시 면접에 응하도록 했다. 이 연구에서 클레어는 인간 관계가 독립의 전제로부터 도출되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근본적인 것이라고 인식한다.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그물 구조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존속되어야 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도덕은 자신이 더 큰 무엇인가에 속한다는 생각과 자기 충족적인 존재라는 생각 사이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갈등 이라고 하며 그러한 갈등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도덕적 인품이 형성된다고 본다. 이 갈등은 그녀의 도덕적 딜레마(양립할 수 없는 책임 충돌)들은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었고, 인관 관계의 중요성을 인정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다.클레어는 하인즈 딜레마를 권리간의 충돌 때문 슬픔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상실을 경험했다는 것은 이 위기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반증하며, 인간 관계에 도사린 위험을 드러내 보여 준다. 임신 중절은 타아나 자아에게 어떤 악영향도 미치지 않고 행위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딜레마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임신 중절의 딜레마는 인간 관계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책임과 보살핌의 문제들을 극적으로 심화시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통시적으로) 여성의 삶을 관찰하는 이 연구에서는 변화를 불러오는 위기의 역할이 묘사되고, 한 사람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때 절망의 가능성과 성장의 가능성이 공존한다는 점이 강조된다.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베티와 사라이다. 그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들의 관심이 생존으로부터 선함으로 전환되고, 다시 선함으로부터 진실로 전환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위기를 통해서 반복의 악순환이 끊어 질 수 있으며, 잃어버렸던 성장의 기회로 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검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선행하는 단계가 바로 도덕적 허무주의의 단계이다.베티는 16세 때 두 번째 임신 중절을 받기 위해 임신 중절 의료원에 간 소녀이다. 그녀는 첫 면접에서 두 번째 임신도 첫 임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면접이 진행됨에 따라 베티는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대해 왔는가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한다. 베티는 자신이 임신한 것이 어쩌면 자기 잘못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필요에만 관심이 있었고, 자신을 착취하고 위협하며 아무 보살핌도 없이 홀로 내버린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음해 후속 면접에서 베티는 관계와 보살핌의 언어가 이제 그녀의 삶 전체에 대한 묘사로 사용되고 이기심으로부터 책임감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생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선함에 대한 관심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Ⅰ. 서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는, 헌법 제 11조 제 1항으로, 우리나라의 헌법은 모든 사람에게 법 앞의 평등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평등한가? 아직까지도 사회에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는 불평등이 잔존하고 있다. 오늘은 그러한 불평등 중 여성의 권익 향상과 여성운동 등으로 현대 사회의 큰 이슈화 되고 있는 양성평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현대 사회에서 양성평등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대부분 동의를 한다. 그리고 그 평등함을 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보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성이 받는 불평등은 여전히 문제시 되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양성평등을 외쳐야 하지만 무엇이 양성 평등인지 그 본질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양성평등을 인정은 하지만 잔존한 가부장적 의식으로 인해 사회적, 제도적 개선에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이제껏 양성평등을 논하는데 있어서는 단지 양성평등을 위해서 어떤 법적 조항이 필요한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었을 뿐 이때 양성평등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에 나는 이 보고서를 전개해 나감에 있어, 먼저 평등은 무엇이고, 양성평등의 본질은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진정한 양성 평등을 위한 남녀의 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가하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남녀 불평등은 어떠한 점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겠다.Ⅱ. 본론1. 양성 평등을 바라보는 시각이제껏 남녀불평등을 불식하고, 양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견해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견해를 살펴보면, 대부분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능력을 지녔다. 이에 차별을 해서는 안 되이에 관한 논의를 상대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한다.이에 길리건의 남녀관계에 관한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의 저서 「다른 목소리로」에서는 우리가 간과해 왔던 남녀 관계에 대해 우리의 의식을 전환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위에서 언급하였던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사람들은 양성평등을 이야기 할 때 남성과 여성이 차이가 있다는 입장자체가 하나의 양 성평등에 반하는 입장으로 간주하고, 그 차이를 무시하려는 입장을 보인다. 심리학회에서는 그들의 심리학 이론들이 여성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점들을 발견했다. 이제까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렇게 인간의 특징에 대한 연구는 여성을 배재하고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남성의 심리적 특징을 알면 곧 여성의 심리도 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과는 분명히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남성과 여성을 판단할 때 그 다른 목소리를 존중하고,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불가피한 특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면 남녀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며 겉으로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성이 스스로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해악을 입을까봐,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할까봐,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처한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의 침묵의 결과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제한하면서 남성의 목소리가 우세한 기존 문화와 여성들과 분리된 삶의 방식을 지속시키게 한다.이러한 여성의 목소리의 침묵으로 인해 인간의 삶에 대해 남성들은 여성들을 제외시켜왔지만, 여성들 또한 자기 자신들을 제외시켜왔던 것이다. 남성들에게 일어나는 '분리'의 과정은 여성들에게는 내적인 분열로 귀결되는 '단절'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여성들과으로써 유지된 침묵위에서 인간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이나 인간관계라는 미명 아래 자연스러운 것, 조화로운 것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과정들은 도덕이라는 미명 아래 합리화되었던 폭력이나 권리침해와 다름없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대안으로 이러한 분리적 사고에 저항하기 위한 다른 목소리로서 관계적 목소리를 가져야한다고 할 수 있겠다. 관계적 목소리란 연결, 특히 여성과의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율이나 자유라는 미명으로 합리화되어 온 심리적 분리가 더 이상 인간 발달의 불가피한 귀결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되어야 하는 인간의 숙제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자의 입장에서 남성이 여성의 불리한 상황을 구제하기 위한 베풂의 차원이 아니라 이제 동등한 수준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2. 양성 평등이란 무엇인가?우리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평등'의 개념은 모두가 똑 같은 것을 행해야 하고,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어떠한 것에 대한 균등한 기회를 보장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양성평등에도 적용이 되어 , 그동안 양성평등에서의 평등의 개념을 가장 협소한 의미인 기회평등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자유로운 경쟁의 형식적 절차와 과정만을 강조할 뿐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불평등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기회의 평등이 달성된 이후에 발생하는 차이는 개인적 능력의 차이에 의한 것이므로 능력의 차이에 의한 사회적 분배의 차는 정당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양성평등을 기회평등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제 그 바탕위에 실질적 평등의 측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회에서 자유경쟁을 시키는 과정에서 모두 같은 기회의 평등을 보장 받지만 사회적 약자의 경우 그 능력으로 인해 거의 분배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개인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을 절대적 기준에 의해서 평등하게 대우하면 평등원칙은 불평등을 초래하 다원화된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농경사회에서 요구되는 육체적인 힘의 논리보다는 창조적이며 유연한 사고를 소유한 인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이 사회가 여성적 사고와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여성의 역할이 현대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시대적인 상황이며 무한 경쟁시대에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또한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여성이 없는 혹은 남성이 없는 세상이란 존재할 수도 없듯이 남성과 여성의 상호 인정과 존중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는 사회이다. 한 가정 내에서 부부가 상호존중하고 인정을 할 때 그 가정이 화목하듯이 사회 조직 내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상호 존중하고 인정을 할 때 사회적 조화가 잘 이루어져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남성과 여성 사이를 가르고 있는 벽을 허무는 작업은 여성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보다 넓은 삶의 장을 열어 보이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4. 우리나라 남녀 불평등의 현실가. 가부장적 한국 문화에 기인한 남녀차별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유교의 영향 아래 부자중심, 즉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문 화속에서 살아왔다. 남성의 여성 지배는 가정뿐 아니라 사회에서 거의 모든 면에 있어 이루어졌다. 중요한 결정은 남성이 도맡았으며 남성의 일에 여성참여를 배제하며 사회적으로 남성은 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는 현모양처 상을 만들어 순정적인 여성상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여성이 가부장적 지배형태에서 오는 여성에 대한 강제와 억압을 회피하거나 그것에 순종함으로써 생존하고자 하는 의도와 연결된다. 이렇게 유교적 가부장제는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녀칠세부동석, 부부유별, 부창부수, 삼종지도 또는 칠거지악 등 특유의 유교적 문화를 형성시킴으로써 여성의 지위가 위축사회 내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가부장제의 뿌리와 가치의식이 잔존하고 있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고 평등한 위치에 서기에는 미흡한 실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나. 남녀 차별의 실제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남녀 불평등적인 의식이나 관행이 잔존해 있다. 이성적으로는 남녀평등을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들을 배재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별은 쉽게 눈에 띄는 것에서부터 교묘하게 은폐된 것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이러한 남녀불평등 현상은 가정과 사회의 어느 곳에서나 남성이 여성보다 더 우수하거나 중요하다는 편견이 지배적이며 또한 남성위주의 결정이나 정책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증명해 보일 수 있다.1) 문화적 측면에서의 남녀 불평등가) 남아 선호사상우리사회에 만연한 남성 중심의 사상은 자녀의 출생에서의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아를 출생한 집에서는 마치 경사가 난 듯 반응 하는데 비해 여야를 출생한 집에서는 산모를 마치 죄인 시 취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남아선호사상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성비의 수치에도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성비 불균형 은 사회문제시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나) 성장과정에서 남녀의 차별 대우여성에게는 남성에 비해 교육기회가 적게 부여되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의 경 우 딸보다 아들에게 우선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해 왔다. 그리고 결혼과정에 있어서 당연시되고 있는 '딸 가진 부모가 죄인' 이라는 풍조 또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열등한 지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2) 법적 정치적 측면에서의 남녀 불평등가) 호주승계제도일본과, 호주, 스위스에서는 호주제가 인간평등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 에서 호주 제도를 폐지하였으나 우리나라는 그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주장하며, 호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호주제 폐지가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나) 상속제도법개정에도 불구하고 상속과 같은 경우에는 사회 관념상 유언에 의해다.
Ⅰ.{한국 사회의 인식서론우리는 일상에서 노동문제가 어떻고, 우리나라의 노동계는 이런 것이 문제다 라는 말을 쉽게 접하게 되고, 이야기한다. 그럼 노동문제, 특히 우리나라의 노동문제는 무엇인가? 지금부터 이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노동자계급이 당면하고 있는 노동현실에 대한 역사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며, 이에 먼저 8.15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는 40여 년 간 한국의 노동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가를 살펴보고, 아울러 오늘날 한국 사회의 노동문제를 밝히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Ⅱ.본론1.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전개1)해방직후 민족 통일 국가 수립을 위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어떠했 는가?(1).노동자 계급 투쟁의 흐름은 어떠하였나?해방직후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노동자 자주관리운동과 생활권 쟁취투쟁을 두 개의 중심 축으로 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되다가, 전국적 노동자 조직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건설을 계기로 목적 의식적, 변혁 지향적인 조직적 노동운동으로 전환된다.(2).전평이란 무엇인가?전평(조선조동조합전국평의회)은 1945년 11월 창설된 것으로 당시 유일한 전국적 노동자 대중 조직이었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전위조직인 조선공산당의 지도 하에 당시 한국사회의 당면한 변혁 과제인 반제반봉건 민주변혁과제를 수행할 진보적 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족통일전선 정권의 수립을 목표로 한 혁명적 노동운동노선으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결합하려 하였다.(3).노동자 계급 투쟁의 내용은 어떠하였나?1.공장 자주 관리운동- 해방으로 인한 일본자본의 퇴각에 의해 기업경영의 주체로서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 즉 공장을 자력에 의해 접수관리 하려는 운동이었다. 이는 곧 노동자 계급이 생산수단의 주체가 되려는 운동이었으나 미군정에 의한 부정{ 미군정에 의한 부정: 미군정은 일본인 재산을 접수하고, 관리인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의 자력에 의한 생산시설 접수 관리운동을 부정했다.과 전평의 소극적 태도로 좌절자신의 전위조직과 대중조직을 함께 파괴당한 노동자계급은 본질적으로 억압적 국가장치로서 노동조합이라 볼 수 없는 반동적 노동조합인 어용 대한노총체제에 강제적으로 편입 당하게 된다.(4).노동자 계급투쟁의 좌절요인은 무엇인가?혁명적 노동운동노선에 서서 민족 통일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전평의 운동노선은 한국을 미국의 신 식민지로 재편하려는 미군정의 통치노선과 근본적으로 대립되었다. 이에 미군정은 전평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한 미군정의 정책으로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의 부정, 총파업의 파괴, 전평의 불법화, 노동자계급의 전위조직의 불법화 및 폭력적 파괴 등이 있다.2)1950년대 예속자본주의의 성립과 노자관계의 재편성은 어떠하였는가?(1).1950년대 노동계의 전반적 흐름은 어떠하였나?자신의 독자적 대중조직과 전위조직을 파괴당한 노동자계급은 체제 내에 강제로 통합되고 1950년대의 예속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신 식민지적 노자관계에 재편성된다.(2).예속자본주의{ 미국에 예속된 자본주의를 말한다.는 어떻게 성립되었나?1성립- 미군정에 의한 남한에서의 단독정부수립은 곧 예속분단국가의 성립을 의미하며, 귀속재산의 불하, 농지개혁, 미국 원조 등이 계기가 된 경제적 토대 재편성으로 예속적 경제구조가 정착되게된다.21950년대 예속자본주의의 생산관계 성격 및 생산력의 형태는?50년대 남한에 성립한 예속자본주의는 경제적 재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예속되어 있었지만 국내에서 독점적 지배 관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생산력의 예속성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3).노자관계의 재편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는가?자신의 전위조직과 대중조직을 함께 파괴당한 노동자 계급은 본질적으로 억압적 국가장치로서 노동조합이라 볼 수 없는 반동적 노동조합인 어용 대한노총체제에 강제적으로 편입된다. 1953년 제정된 노동법은 일정 범위 내에서 노동조건의 개선과 노동운동의 합법성을 보장하는 것이었지만 어용 대한노총체제의 년대는 특권에 기초한 소수의 예속독점자본이 거대한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 축적은 완만히 진전되고 상업자본의 성장은 매우 지지부지 하였다. 노동자에 있어서 노동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핵심적 노동자층의 비중은 극히 낮고 주변적 노동자층과 완전 실업자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50년대의 노동자 계급의 상태는 실질임금의 정체 혹은 하락 속에서 악화되어 갔다. 방대한 규모의 실업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처지에 있었던 현역노동자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절대적으로 궁핍화되어 있었고 실업노동자의 상태는 더욱 비참하였다. 한편 이승만 독재정권은 노동자계급에게 정치적 무권리상태와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국가장치의 일부인 어용 대한노총을 통해 노동자 대중을 통제해 나갔다. 이러한 상태에서 노동자 계급에게는 자신의 계급이익을 대변할 전위조직으로서 노동자 정당도 없었고 대중조직으로서 자주적인 전국 수준 혹은 산업 별 수준의 노동조합도 없었다. 이러한 예속자본주의하의 모순의 심화는 4.19를 초래하였으며 4.19시기에 노동운동은 수많은 노동조합이 새로이 결성되고, 기존 어용 노조가 민주노조로 개편되며, 노조조합원수가 늘어나고, 노동쟁의 건수가 증가하는 등 활발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시기에 교원, 은행원, 신문기자 등 정신노동자의 노동조합운동이 새로이 대두되었다.3)60~70년대의 예속독점자본주의의 확립과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은 어떠하였는가?(1).예속독점자본주의의 확립은 어떠하였는가?4.19시기에 노동운동은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이하지만 그것은 곧 5.16에 의해 부정된다. 5.16에 의해 성립한 예속 군사파시즘은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해 자신을 더욱 강화하면서 노동3권을 크게 제한하고{ 1963 노동법 개정경제개발계획을 실시하여 자본수입과 상품수출을 통한 고도 축적을 주도한다. 자본수입에 의한 생산의 집적이 급속한 진전을 통해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에 걸쳐 예속독점자본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70년대 후반에는 예속동, 높은 노동강도, 높은 산업재해, 높은 고용불안정성 , 파시즘적 노동통제, 병영적 노동통제, 어용 노조의 지배, 정치적 무권리상태로 요약되는 한국 예속독점 자본주의의 노동현실에 대한 기층노동자들의 주체적 대응이었다. 70년대 민주노동운동은 전태일사건 으로 시작되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으나 1980년 5.17에 의해 좌절된다.4)80년대의 예속심화=독점강화 와 계급적 노동운동의 대두는 어떠하였는가?(1) 예속강화=독점강화 와 노자관계의 성격은 어떠한가?80년 5.17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다. 군사파시즘은 이른바 노동계 정화조치를 통해 70년대 민주노조 활동가들과 선진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해고, 구속하고 다수의 민주노조를 폭력으로 해체하였다. 12월 개정된 헌법은 노동운동을 최대한 고립화. 불법화시키고 노동조합의 일상활동을 최대한 억제시킴으로써 노동통제가 강화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예속독점 자본주의가 독립된 후 강화되어가며 70년대 말~80년대 초 노자관계의 위기, 정치적 위기, 공황기의 축적위기가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심화를 통해 해소되면서 예속적 독점적 축적체제가 강화된다. 이러한 70년대 중반이후의 예속적 독점체제는 자본의 생산과정 및 재생산과정 혹은 잉여가치의 생산 및 실현과정의 핵심적 계기가 제국주의에 의해 장악되어있어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에 기초하고 있는 매우 불안정한 축적체제로 예속심화=독점강화 로 정식화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임금, 장시간노동, 높은 노동강도, 높은 산업재해, 높은 고용 불안정성, 병영적 노동통제, 파시즘적 노동통제,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무권리상태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노동현실은 80년대의 예속적 독점적 축적과정에서도 여전히 지속된다.(2).계급적 노동운동의 발전은 어떠한가?80년대에 들어와 한국사회의 변혁을 지향하는 민족민주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립된 민족적 민중적 이데올로기가 노동자 대중을 점차 파악해감에 따라 노동자 대중에게 있어 예속파시즘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가 주입시켜온 지배이데올.1987년 노동자 대 투쟁은 무엇이며, 그로 인해 노자관계는 어떻게 변하였는가?1노동자 대 투쟁과 그 의의- 1987년 7월~9월 노동자 대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사상 최대 규모의, 거의 전 산업에 걸친 전국적인 대중적 파업투쟁이었다. 그것은 예속독점자본주의 하 예속독점적 축적과정에서 첨예화 되어온 노자간의 계급모순의 일대 폭발이었다. 이는 노동자 대중의 계급의식의 형성 변혁주체로서의 자기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파시즘적 노동통제체제와 개별자본의 병영적 노동통제체제에 큰 타격을 줌으로써 기존의 파시즘적 노자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2노자관계의 변화- 노동자 대 투쟁을 계기로 해서 노동자 대 투쟁 이후의 노자관계의 성격은 상당 정도 변화한다. 즉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의 완화, 국가수준의 파시즘적 노동 통제 체제의 완화, 개별자본 수준의 병영적 노동통제체제의 완화, 국가 및 자본에 의한 조합주의적 혹은 개량주의적인 이데올로기적 노동통제의 일정한 시도 등이 1987년 노동자 대 투쟁 이후 나타난 노자관계의 주요한 변화이다.5).한국 노동의 현 단계는 어떠한가?1987년 노동자 대 투쟁 이후 한국 노동운동은 사상, 정치노선의 대립 속에서도 민주노조의 전국적 조직중심인 전국 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할 수 있는 조직수준과 대중적 정치투쟁의 전개를 전망할 수 있는 투쟁수준에 도달해왔다. 그런데 대중투쟁의 기반이 크게 확대되고 노동운동의 대중적 역량이 크게 증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계급의 역량을 결집하여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권력의 전면적 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노동자 계급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며 노동자계급을 정치 세력화 할 수 있는 정치조직의 부재가 한국노동운동의 결정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조직이 결성되고 그것이 광범한 대중 조직을 지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대중적 정치투쟁의 본격적 전개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확고한 대중적 기반을 갖는 정치조직을 통해 자주, 민주, 통일의 과제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