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산벌 에서의 방언의 사용효과-영화를 보았으나 머리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어떠한 참고자료도 없었다. 오로지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곤, 미덥지 않은 머리에 들어있는 짤막한 지식뿐. 그나마도 시험 치기 이전의 내용만 간신히 들춰 낼 수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보고서라는 이름 하에 쓰여진 밑의 내용은 모두 배운 내용뿐이다. 어떠한 새로운 내용도 나오지 않으며, 어떠한 책의 인용부분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두고 시작하려 한다.영화 황산벌 에서의 방언의 사용효과를 우선 그 방언의 분류부터 한 다음 정리 하고자 했다.시대적인 분류의 방언지금 가서 확 뒈져 부르라 이 대사는 신라의 한 장수가 화랑인 자기 아들에게 한 얘기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 말을 했다 라는 것은 그 사람이 잘 못 한 것이 있어 뉘우치라는 말이 되지만 영화 속의 뒈져 부르라 는 틀리다. 황산벌에서 백제와 신라가 몇 번의 전투에서 계속 밀리자 신라의 장수는 자기 아들을 희생하여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자 한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은 무슨 이유가 되었든 안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영화 속의 시대에서는 명예로운 것으로 받아드려지며 이름을 남기기 위한 수단임을 암시해준다. 즉, 시대적인 차이로 방언이 생김을 알 수 있으며, 영화의 배경이 현재가 아닌 과거라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지역적인 분류의 방언영화 황산벌에서 만약 모두 표준어로 이야기 했었다면 관객은 거기서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을 모두 외운 후 계백은 백제 사람. 김춘추는 신라 사람. 얼굴과 지역을 맞추기 했을지도 모른다. 아... 머라꼬예? 신라가 백제를 칠라꼬 한다꼬예? 어~~메.. 징허네. 씨방. 머라고 했냐이? 방금 대사는 모두 이름 없는 단역배우의 대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느 진영 사람인지 어느 지방 사람의 말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즉, 각 지방의 방언을 사용하게 하므로서 지역적인 구분을 알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개인적인 분류의 방언개백(계백)아. 짐이 니를 부른 이유는 그저.. 니가 거시기 해부러야 겄다.낼랑 여 시집와가꼬 냄은 기라고는 악 밖에 없으예. 호랑이는 가죽뗌세 디지고 사람은 이름 뗌세 죽는깁니다.이 말은 누가 했는지 굳이 얘기 하지 않아도 대략 짐작이 가는 대사이다. 위에 말은 백제의 의자왕이 계백 장군에게 전쟁에 나가 줄 것을 권유하는 말이고 밑에 말은 계백 장군의 처가 신세 한탄을 하며 한 말이다.이렇듯. 언어에는 각각 개인이 쓰이는 말에 따라 각기 다르며, 우리는 이것을 방언이라 부른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러한 개인적인 방언을 사용하게 하므로서, 각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어주고 짧은 시간 출연 하였지만 그 사람의 분위기를 읽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금기어, 완곡어의 사용이씨불놈이. 뭘 째려보냐? 눈까리 확 뽑아서 당나귀 거시기를 확 박아버릴라.니네 엄니랑 그 짓 할 놈아.영화 황산벌 에서는 많은 금기어가 등장한다. 반면에 높은 계급을 가진 캐릭터 일수록 이 것을 피하고 대신 완곡어법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조금이나마 보인다.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이 거시기가 머시기 해가지고 거기시 됐잖여. 이 거시기야. 처럼 거의 모든 완곡어가 거시기, 머시기로 되었다.영화의 아주 일부분인 이 짧은 대사로도 우리는 충분히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 약간 억지웃음을 자아낸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금기어에 대한 완곡어법으로 흥미유발을 이끌어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관객의 분포도영화든 소설이든 음악이든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전달 하는 과정에서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지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계층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초등학생에게 방언의 이해 교재를 읽어 줘 봤자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영화 황산벌 에서는 방언을 사용하므로 해서 관객의 수용도를 높이고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늘렸다 할 수 있다. 나당연합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는 내용을 표준어로 KBS 9시 뉴스와 별반 다르지 않는 말투로 했다면 이미 몇 명은 흥미를 잃어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편안하게 들리는 방언보다 더 딱딱하고 어렵게 들렸을 것이다. 고로 방언의 사용은 관객의 분포도를 넓혀주었다.
처음사회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전에 우선 언어와 사회 간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나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보통 언어와 사회간에는 3가지 또는 4가지의 견해로 관계짓는데,그 중 첫 번째는 사회구조가 언어구조와 행위에 영향을 끼치거나 결정적 동기화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는 연령계층에 따라 구사하는 언어가 차이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성인들이 구사하는 언어와 표현방법에 있어서 다르고, 성별에 따라서 남녀간에 즐겨 사용하는 어법이 서로 다르며,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도 지역에 띠라 사용하는 어법이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화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화자의 지역적, 사회적 또는 인종적 차이와, 더 나아가 성에 따라 이질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 말하는 방법이나 어휘의 선택, 대화의 규칙 같은 것이 사회적 필요에 의해 나타나고, 권위는 성취와 거부에 대한 기능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언어활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는 첫 번째와 정반대의 개념을 나타낸다. 언어구조와 언어행위는 사회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거나 사회구조를 결정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사피어 워프의 가설 즉 언어 상대성의 가설 과 번스타인의 주장 및 언어의 성적 차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이다.세 번째는 언어와 사회와의 관계가 일방적인 영향관계가 아니라, 상호 영향관계라는 것이다. 즉 언어와 사회는 그 행위에 있어서 상호작용 상태에 있고, 물질적 생활조건은 이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디트마의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 견해이다.네 번째 관계는 언어구조와 사회구조 간에는 전혀 무관하고 상호 독립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견해는 촘스키는 탈사회적 접근방법이 논리적으로 볼 때 우선적이므로, 어떤 다른 종류의 언어학에도 탈사회적 접근방법이 가장 근본적이라고 보았다.이와 같이 언어와 사회와의 관계는 학자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다양한 양상을 조사하고 연구함으로써 상호관계의 연구가 사회언어학의 한자의 특수성은 우리 민족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우리 선조들은 문자기록의 시급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득이 한자와 함께 한문을 빌어다 쓰게 되었다. 이 때부터 입으로는 국어를 말하면서, 글을 쓸 때에는 한문을 쓰는 언어의 이중 생활이 시작되었다.문자언어인 한문과 음성언어인 국어의 이중체제는 필연적으로 한문의 요서가 국어 속에 대량으로 침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침투가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짐으로써, 중국어가 지니고 있는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말들을 비롯해 나중에는 산, 강과 같은 일반 자연대상을 가리키는 낱말들까지도 국어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오늘날 한자어가 국어어휘의 태반을 차지하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이런 배경속에서, 우리 국어는 20세기에 들어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최대의 위기에 부딪쳤다. 1910년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 나라에서 일어가 국어로서 강요되고, 국어가 조선어 로 전략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1910년대에는 조선어 를 초, 중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가능했고, 1930년대까지는 언론이나 문학활동도 가능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에는 조선어 가 학교 교육에서 폐지되었고, 그 뒤 곧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일도 일체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우리 국어를 완전히 말살하려는 정책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우리 국어의 최대 수난기였다.이러한 언어침식의 과정을 좀더 체계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일제에 의한 식민화 과정에서 행정체계가 일어, 즉 지배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첫단계의 두 언어병용(국어와 일어)이 나타나게 되며, 마찬가지로 법률적 행위와 공문서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두 언어병용의 구조와 경제적, 정치적 구조 사이의 관계는 숙고해야 할 중요성이 있다. 언어는 하나의 상부고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언어의 계급적 성격이 드러나는-혹은 드러나지 않는-것은 언어가 이데올로기의 특권적 전달수단이라는 측면에서이다. 그러나, 복수 언어병용의 경우, 특히 이러한 복수의 언어병용이 침략의 산물일 때에는 문제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인 지배언어를 사용하는 데 반해, 대다수 민중의 압도적 부분이 피지배언어를 쓴다면, 이런 사실이 그 나라에서 계급투쟁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높은 직책, 예컨대 지위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배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언어가 특정한 계급의 이해, 즉 매판 부르주아지들에게 분배되는 이익에 봉사할 뿐 아니라 동시에 식민주의에 기여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이러한 언어적 차원에서의 식민주의는 이중의 팽창을 지니는 언어적 배제의 영역을 형성한다. 즉, 권력의 영역으로부터 한 언어(피지배언어)를 배제하고, 아울러 동일한 영역에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지배언어를 습득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언어가 여전히 하나의 상부구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독점적 언어 혹은 배제적 영역에서 발전하는 언어의 지위 자체는 상부구조적인 것이다. 일정한 세력관계들(비단 식민지적 상황만은 아니다)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언어적 지위, 즉 피지배언어와 지배언어 사이의 대립을 포함하는 두 언어병용과 독립적인 한 언어에 의해 다른 언어들이 받는 억압이 바로 우리가 언어적 상부구조 라고 부르는 것이다.이러하듯. 일제강점기때에 우리 언어에 미친영향은 지배언어가 피지배언어를 강제로 누르고, 강제로 쓰이게 함으로써 그 언어 자체를 소멸 내지는 변화 시켰으며, 그 영향은(예컨대, 한자의 과다 사용)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이다.2. 방송, 대중매체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먼저, 대중사회의 출현은 사회의 동질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속성은 대중매체의 송신내용의 동질성에 크게 의존한다. 즉 같거나 비슷한 내용이 이질적인 다수의 수신자에게 계속해서 보내지는 결과, 시일이 경과하면 수신자의 수용태도에서도 동질화, 획일화의 경향을 띠게 된다. 이와 같이 획일화된 교양이나 그와 관련된 취미, 기호 등은 또 다시 동질화된 비개성적인 송신내용을 요구하게 되고, 그리하여 상호 강화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국어의 존대법의 혼란과 문란으로갖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치체제는 독재체제이든 합법적이든, 대중을 위한 체제가 되려할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은 여론을 회유하고, 여론을 만들어내려고 애쓴다. 정치적 지도자가 되려면, 다수의 청중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상징을 사용하여 대중을 설득함으로써 대중운동 단계로 몰아넣는 대중동원이 가능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비합리적인 성격을 띤 정치적 행동도 일으키게 만든다. 따라서 대중조작에 의해 이성에 호소한 설득보다는 감정에 따른 일체화가 이루어지며, 합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동조에 의한 지배가 실질적으로 행해진다. 대중조직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가증해짐으로써, 정치에 있어 자율적인 주체자가 되어야 할 공중이 단순한 수동적인 객체로 화해 버린다. 방송언어의 경우, 근거없이 특정한 지역감정의 유발을 조장하는 무분별한 사투리의 구사 등을 들 수 있다.여섯째, 세계체제론적 측면에서 볼 때, 각 국가는 국내적으로나 국제관계에서나 힘의 정도에 따라 서열화 된 질서를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여러 차별적 관계가 만들어진다. 사회의 중심영역으로부터 주변영역으로 정보가 거의 일방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 정신의 유통구조는 바로 힘의 구조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가 영어라는 단일언어를 발전시킨 것도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이며 현상이다.이러한 문화지배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이용되는 가장 좋은 기업이 대중매체 산업이다. 광범위한 침투를 위해서 지배세력 또는 침투세력은 대중매체를 장악하여야 한다. 이것은 대체로 방송을 상업방송으로 제도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일단 방송의 상업화가 이루어지면, 어디에서나 국제체제의 중심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화내용들을 방송하도록 경제적 압력을 받게 된다. 주변지역의 방송국, 영화사, 인쇄매체 산업들이 국내 매체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의 미디어 문화내용을 제작한다 하더라도, 흔히 그것은 중심부 미디어 문화내용의 모방으로 나타나기 일쑤다. 이들의 모방 미디어 내용은 직·간접으로 외래의 문화내용과 꼭 같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경우, tric Language)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새롭게 비롯된 말이다. 전자말은 기존의 글말 입말과는 매우 다른 제2의 구술성을 가진, 전자매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제3의 언어이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통신 언어'란 전자말의 하위 갈래로서 '컴퓨터를 이용한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를 말한다. 이러한 PC통신에서 쓰이는 언어는 국어의 표준어와는 확실히 구분 되는 것으로, PC통신이 언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나 알 수 있다. 이런 PC통신 언어의 특징은,3-1약어약어의 사용은 통신 언어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일상 언어에도 좀더 간편하게 쓰고자 하는 의도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전대협(전국 대학생 협의회),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 국제 통화 기금), IOC(International Olympic Comittee : 국제 올림픽 위원회)' 등이 그 예이다. 통신 언어에서는 이런 약어 사용이 확대되어 쓰이고 있으며, 단어의 첫 글자가 아닌 글자를 취하여 약어를 만들기도 한다. '정모(정기 모임), 즐통(즐거운 통신, 즐거운 통신 되세요), 통친(통신 친구), 통장(통신 장애), 당스(당연한 스토리), 눈팅(눈으로 하는 채팅 : 통신에서 말없이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만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는 것), 졸팅(졸면서 하는 채팅), 취팅(술마신 뒤 하는 채팅), 몰팅(몰래하는 채팅), 방장(방의 장 : 대화방을 처음 만든 사람), 비방(비밀 대화방), 비게(비공개 게시판), 강퇴(강제 퇴장), 영퀴(영화 퀴즈), 비번(비밀 번호), 설녀(서울 여자), 남친/여친(남자 친구/여자 친구)' 등이 통신 언어로 쓰인다. 또 컴퓨터 통신에서는 한 단어도 한두 음절만 택하여 약어처럼 쓰기도 한다. 즉 '핸드폰'은 '핸디, 핸펀, 폰'으로 '컴퓨터'는 '컴'으로 '잠깐만'은 '잠만'으로 사용된다.이렇게 컴퓨터 통신에서 약어가 사용되는 이유는 통신 언어가 구어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대규(1996 : 88∼91)에다.
-왜 알고 있는 어휘도 활용하지 못 할까?-답을 쓰기 전에 질문에 대한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우선, 알고 있는 어휘라는 말은1. 몇 번 봐서 눈에 익었다.2.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우연히 그 단어를 접했을 때 머리속에서 직접적으로 연상할 수 있으며 활용까지 할 수 있다.(직접적으로 연상할 수 있다.--> apple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떠 사과 라는 한국어의 사고를 거친 다음 를 연상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 사고를 빼고 apple--> 를 바로 연상할 수 있는 걸 말한다)3. 머리 속으로는 연상할 수 있으나 활용하지 못한다.이렇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그럼, 활용하다라는 말은그것이 지닌 능력이나 기능을 잘 살려 씀. 잘 변통하여 씀.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며 어휘 분야에서 활용은 즉, 그 능력이안 기능을 쓰는 방법에는1. 작문에서의 활용2. 일상 회화에서의 활용3. 학생의 경우 그 단어를 들어서 무엇을 나타내는지 해석하여 문제를 풀 수 있는 활용으로 나눌 수 있다.여기서 질문에 해당하는 아는 어휘 라는 말은 익히 들어서 머리 속으로는 연상할 수 있으나 활용하지 못하는 어휘를 말한다. 다시 그들의 어휘는,우선 작문에서 우리는 왜 활용하지 못할까?[영어 실력의 향상의 지름길. 작문!! 그렇게 생각하고 작문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거의 포기하듯 해버렸다. 나름대로 많은 어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깡통을 통조림 할 수 있다라는 말부터 쓸 줄 모르는데!]이렇듯, 이제껏 어휘 학습을 할 떠 CAN=깡통이라는 말 만 익혔으니 될 리가 없다.한영사전을 뒤져봐도 통조림 하다 라는 말은 새소리에 불과 하다.어휘의 의미는 학습했으나 용법은 몰랐다 라는 말이다.작문에서는 회화에서는 달리 사전을 보고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작문에서 어휘의 활용이 되지 않는 이유는 어휘의 용법을 몰라서 생기며 사전보는 방법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이다.회화에서의 어휘활용은 왜 안 될까?[긴장되는 영어회화 시험 시간이다. 외국인의 높은 콧대만 보면 정말이지 아무생각도 나질 않는다. 나는 분명 나는 어제 밥을 먹었었는데, 그 밥맛이 정말 어처구니 없더라. 라는 말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다. 밥맛이 어쩌구 저쩌구 라는 어휘는 도저히 배운 기억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억지로 한국어휘를 영어로 끼워 맞추려니 어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다. 영어어휘는 영어어휘로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야 하나 우리의 어휘 학습상태로는 영어어휘를 다시 한국어로, 한국어 어휘를 영어 어휘로 바꾸어 머리 속에서 복잡한 연산을 하게 된다. 안그래도 어려운 영어.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로 어설픈 영한 사전, 콕콕 찝어주는 단어모음집 그런 거 백날 외워 봤자 헛수고다. 양질의 영영 사전(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며 그 용례를 많이 가지고 있는 큰 사전)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한동안의 침묵 끝에 교수한테 문법에 맞게 얘기했다. 그러나 외국인교수 전혀 알아 듣지 못한 듯. 인상만 쓰고 있다.]뭐가 잘 못 된 것일까?표현이 잘못 되었다는 얘기이다. 어휘를 익히되, 그 발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의미 한두개만 외워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PICTURE를 픽투레 라고 읽었다. 외국인이 들으면 당연히 못 알아 들을 만 하다. 일본인이 McDonald를 마쿠토나르도 라고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므로 어휘를 익힐떠 그 표현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우리는 왜 알고 있는 어휘도 시험에 나오면 써먹지 못 하고 틀리는 것일까?[어휘형성의 이해 시험시간이다. 시험시간이다. 시험문제는 다음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여 무슨 상황인지 맞추는 것이다. 어려운 단어 하나도 없다. 전부 중학교 1학년 수준이다. 누구 놀리나? 그런데 틀렸다. 어이가 없다.]그게 전화하는 상황인지 직접 불러내서 돈 빌리려는 건지. 그 쉬운 단어도 알면서 써먹지 못 했다. 왜 그럴까? 문법(양식)을 고려할 줄 모르고 그냥 짜 맞추기 바뻣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 당하는 것인가?-나의 인생을 말한다-·개요1.서론인생을 말하기 위한 전제 - 인간의 인생을 말하기 전 우리의 존재의 문제.2.본론 -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1나는 단지 비커 속에 담긴 뇌가 아닐까?2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3꿈꾸는 삶과 비커 속의 뇌 비판3.결론우리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1.서론-인생을 말하기 위한 전제나의 인생을 말하기 전 나는 아주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 문제란 과연 나의 인생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나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인생이 있다는 것은 곧 내가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을 말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만약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증명할 수 없다면 내 인생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인가? 또 나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다른 무엇인가에 의하여 존재 당하는 것이라면 내 인생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2,본론 -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의미 데카르트에 의해 주어졌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통해 내게 인간이 존재하는 것인가를 의심하는 내 생각의 행위가 바로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 비록 나의 존재가 일부러 나를 속이는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것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내가 속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확실한 어떤 것을 밝혀 줄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속이는 자가 속일 수 있는 어떠한 대상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설령 우리가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무엇인지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말해 주는 바가 없다. 즉 생각하는 주체는 생각과 독립해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은 존재하는 자가 떠올려야 생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우리의 존재에 대한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의 견해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1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지금 나는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나는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고 꿈속에서 내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위와 같은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내가 그런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어떻게 나는 내가 한국 어딘가에 자고 있으면서 내가 일본에서 깨어 있는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꿈의 경험과 생시의 경험을 결정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만약 이 모든 것이 꿈이라면 내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2나는 단지 비커 속에 담겨 있는 뇌가 아닐까?존재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생각은 나는 기껏해야 화학 물질이 든 비커 안에서 떠있는 뇌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떤 과학자가 나의 두뇌 곳곳에 전선을 연결하여 감각 경험을 하게 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그 과하자는 경험하는 기계를 창조했을 뿐이다. 만약 현실이 이렇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나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 될 수 있는가? 지금 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과학자가 내 두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여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경험은 사실은 이런 과학자가 나의 몸에서 분리해낸 두뇌를 자극한 결과이다. 이 경험 기계를 가지고 그 과학자는 내가 실제 생활에서 경험 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내게 일으킬 수 있다. 내 두뇌신경의 복잡한 자극을 통해 그 과학자는 내가 실제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내게 일으킬 수 있다. 내 두뇌 신경의 복잡한 자극을 통해 그 과학자는 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밥을 먹고 책을 읽는 등등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착각을 내게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억지처럼 여겨지겠지만 사실은 그다지 억지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가상현실을 통해 경험에 관한 컴퓨터의 시뮬레이션을 실험하는 단계에 있다.이와 같은 이야기는 철학자들이 사고 실험이라 부르는 것의 한 예이다. 이것은 우리의 개념과 일상적 가정의 어떤 특성들을 명료히 하기 위해 구상된 상상적 상황이다. 과학 실험과 마찬가지로 사고 실험을 통해서 철학자들은 복잡한 세부사항을 제거함으로써 그리고 진행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탐구하려는 개념에 대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사고 실험은 우리가 우리 경험의 원인에 대해 통속적으로 행하는 가정들 중 어떤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 실험이 현실의 참된 면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과 나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고 어느 과학자의 실험실 한구석에 있는 비커 속의 뇌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줄 수 있는 단서가 과연 있는가? 만약 현실이 비커 속의 뇌라면 나의 인생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당하는 것인가?3꿈꾸는 삶과 비커 속의 뇌 비판위의 논의들은 우리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며 세계에 관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들조차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회의론자의 견해이다. 이 모든 논의가 정말로 신뢰할 만할 인가? 만일 회의론자들의 논리가 정말로 신뢰할 만한지 문제삼고자 한다면 이런 생각자체가 그들의 입장을 무너뜨릴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세계에 관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들조차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논리적 논증들을 사용한다면 이것은 자신들의 논리적 논증들 자체도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제부터 앞서 논의했던 상황을 차근차근 비판해 보도록 하자.a.꿈꾸는 삶에 대한 비판만약 나의 인생 자체가 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즉 내가 언제나 꿈을 꾸고 있다면 나의 꿈이라는 개념조차 가지 못할 것이다. 즉 나는 깨어 있음의 개념이 없을 것이므로 꿈과 대조되는 어떠한 것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진본 화폐가 존재할 때만 이에 대조되는 것으로 위조 화폐라는 개념에 대해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꿈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이것을 생시와 대비시킬 수 있을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회의론자의 입장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의론자가 내세우는 것은 우리가 늘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아니라, 어느 정해진 순간에 우리가 실제로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신을 가지고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몽중몽이 가능할 수도 있다.그러나 꿈을 꿀 때와 평상시의 경험은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상 우리 경험의 성질을 검토함으로써 꿈과 생시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꿈은 생시에는 불가능한 많은 사건들을 포함한다. 또한 꿈은 보통 생시의 경험만큼이나 생생하지 못하다. 그리고 꿈은 몽롱하며 연속적이지 못하고 대략적이고 괴상하다. 게다가 회의적 논증은 꿈과 생시를 구분하는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면 중에 깨어있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이런 잘못 깨어남의 경우도 꿈꾸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이것이 생시인지 아닌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하는 물음의 의미가 있게 되는 때는 주로 그 사람이 실제로 깨어난 이후이다.
민주주의와 국가발전의 관계(1)들어가며..1)리포트의 대강목표:1.국가발전의 기초가 되는 이념과 민주주의의 관계 파악. - 민주주의의 이념은 국가 발전 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2.국가의 발전 정도 (국가의 경제력 발전) 와 민주주의 정착 정도와의 관계 파악.- 국가 발전의 정도는 민주주의 정착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서론과제 해결을 위한 개념 정리1.국가 발전의 토대 미리 알기.2.민주주의의 간단한 개념 알기.▶본론1.민주주의 이념과 국가 발전의 기초가 되는 이념의 연관성.→민주주의 이념이 가지고 있는 국가 발전의 기초 이념.2.민주주의 확산이 가지는 의미 분석.→민주주의 확산 이유를 국가 발전에서 찾아본다.3.국가 발전 (국가 경제력) 이 민주주의 정착에 미친 영향 파악.→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한 국가 발전의 정도. (한국의 예를 들어 설명)▶결론1.국가 발전과 민주주의 이념 관계를 결론짓고 나아가 국가 발전을 위해 올바른 이념적 자세를 제시한다.2.국가 발전 정도가 민주주의 정착 정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파악한다.(2)서론과제 해결을 위한 개념의 정리1)국가 발전의 토대 미리 알기 - 국가 발전의 이념적 기초.1.국가 정체성a.한 개인이 국가라는 집단에 속하여 있다는 소속감과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신념의 정도.b.국가 체제가 존속하는데 필요한 기본적 요소 - 국민적 단합과 결속의 밑거름.c.국가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 집단과 개인간의 감정적 유대가 결속된 심리 상태.d.국민의 일원으로서의 유대감, 연대 의식, 애국심의 기초.2.민주적인 정치a.자유와 평등b.책임 - 자유와 평등을 누리기 위한 전제 조건c.한나라의 발전은 그 나라의 자연 자원이나 국민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희망, 봉사 (즉 민주적인 정치)에 달려 있다.3.국민들의 창의성 창출a.국민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부여하여 창의성을 창출하는데 달려 있다. - 평등 관련2)민주주의 간단한 개념 알기.1.민주주의의 어원a.Demos(민중) + Kratos(권력, 지배) - 민중의 인격 존중전체주의는 개인보다 사회 전체를 존중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가장 존중하는 것은 강대 한 국가이며, 개인은 국가를 강대하게 하는 수단으로 본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희생으로 국가를 발전시켜나가는 전체주의 이념이 국가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주의의 이념은 결국 독재자나 소수의 이익과 특권을 위해 그 본질이 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구소련의 붕괴의 원인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구소련은 당, 간부의 특권으로 말미암아 일반인의 창의성과 성취 욕구 상실, 생산성과 효율성의 하락을 초래하게 되었고 결국 시민들의 저항에 무너지고 말았다. (기타의 구소련 붕괴 원인: 관료화나 중앙 집권화로 인한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의 증대. 1당 정치의 강압에 따른 공산당과 국민간의 괴리, 경제 성장의 둔화) 이러한 전체주의에 비해 민주주의는 개인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깊은 존경을 그 근본으로 하고 있다.b.자유민주주의가 표방하는 자유의 개념은, 국민 각자가 보람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자신의 욕구에 따라 그 삶은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유 재산의 보장 등등이 바로 이러한 자유의 목록들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사회 - 국가 - 일수록 개인과 집단은 더욱 풍요하고 다양한 삶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마련이며 그것은 곧 국가의 발전을 의미한다. 반면에 자유가 제한된 사회 - 국가 - 일수록 다양한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사회 - 국가 - 는 획일적으로 규격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c.평등민주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 이는 성이나 인종, 출신과 종교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회의 균등이 국가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일까? 국가 구성원들 개인의 능력 발휘의 기회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국가 구을 줄 수 있는 이상적 이념인 민주주의로 전환하기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알고 결국 민주주의의 확산의 이유가 국가 발전에 있음을 확인해 보겠다.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소련의 마르크스 - 레닌 - 스탈린주의 체제는 다른 여러 세계에 서구와 미국의 민주적 자본주의와 대조적인 강력한 대안을 제공했다. 또한 소련은 민주주의 체제들을 소련 스타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로 대체하기 위한 강력한 국제 운동 (코민테른, 죽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어 왔다. 몇몇의 경우에서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1979년 아프가니스탄) 소련은 공산 체제가 전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제로 군대를 파견했다. 다른 경우들에 있어 (앙골라, 쿠바, 니카라과, 베트남) 그들은 국내외의 위협으로부터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경제 및 군사 원조를 보냈다. 그들은 특히 동구와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카리브 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1985년 이후의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소련의 국제적 역할을 바꾸었다. 첫 째, 국내적으로 파멸에 가까운 경제 실패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적 실패를, 새 국가 발전 전략에 대한 사활적 모색의 필요성 등을 공개적으로 고백함으로써 소련은 고무적인 귀감으로서의 공산주의를 그 기초부터 허물어 내렸다. 둘째,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긴급히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이와 유사한 모색을 막을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이 나라들은 이제 소련의 개입이라는 두려움 없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민주주의의 확산은 동구에서 시작됐다. 폴란드는 1989년에 공산주의 지배를 종식시켰는데, 50년 만에 최초의 의회 선거가 실시되어 솔리다리티 운동(당)의 레흐 바웬사(Lech Walesa)에게 권력을 안겨주었다. 폴란드 노동(공산)당은 공식적 권력 독점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회 민주당으로 개명하고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do Zhivkov) 정권이 전복되고, 새로이 비공산주의 정권이 탄생했다. 소련의 동구 위성 국가들 가운데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경우인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은 1989년 공산 체제에 반대하는 저항으로 동요하기 시작하여 결국은 장기 독재자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의 전복과 망명으로 귀결되었다. 상징적 의미로 공산주의 동 베를린과 민주주의 서 베들린을 가르고 있던 장벽의 철거가 전세계에 방영됐다.민주주의는 또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확산되어 좌익의 소련식 독재들과 우익 군사 독재들을 민주 체제로 대체했다. 예를 들면, 칠레에서는 군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Augu-sto Pinochet)가 반대 정당들을 허용했으며, 1988년 자신이 다시금 8년 임기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를 두고 실시된 자유 선거에서 패배했다. 놀랍게도 피노체트는 결과에 승복했으며, 1990년 diekdw 지도자 아조카르(Patricio Aylwin Azocar)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카라과에서는 공산주의 대통령 오르테가 (Daniel Ortega Saavedra)가 1990년 대통령 자유 선거를 허용했으며, 야당 후보 챠모로(Violeta Barrios de Chamorro)가 오르테가를 패배시키는 중요한 역전극이 펼쳐졌다. 오르테가가 이끄는 산디니스타는 결과에 승복했으며, 산디니스타 정권을 타도하고자 노력해 왔던 콘트라(Contra)' 반군들은 해체되고 민주주의가 니카라과에 돌아왔다. 파라과이에서는 1989년 장기 군사 독재자 스트로에스네르(Alfredo Stroess--ner)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고 자유 의회 선거가 실시되어 민주 연합에 권력이 이양되었다. 우루과이에서는 1989년 20년 만에 자유 선거가 실시되어 군사 독재가 민주 체제로 교체 되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귄위주의 체제들은 또한 민주 개혁 운동에 의해 약화되거나 전복되었다. 복수 정당이 참여한 자유 선거가, 많은 경우에는 사상 최초로, 베닌(1991), 케이프 베르데 (1991발전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근대화 이론은 산업화와 경제 발전이 민주주의의 발달과 성숙에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도위취(K.W. Deutsch), 러너 (D. Lerner), 립셋 (S.M. Lipset), 커트라이트(P. Cutright)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화 이론가들은 사회경제발전 즉 근대화가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낙관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바 있다. 이 패러다임은 80년대 이후의 한국 민주화가 결국은 60년대 말부터 가속화된 산업화의 결과이며, 특히 이에 따른 시민사회의 양적 증대와 지적 성숙화에 힘입어 민주화 투쟁이 지속되고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한편 근대화론에 비판적 수정을 가하고 있는 오도넬 (G. O'Donnell) 등에 의하면 후진된 종속사회에 경제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지는 경우 오히려 민주화에 역행되는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 (bureaucratic - authoritarianism) 가 등장하기 쉽다고 한다. 오도넬은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 근대화론의 낙관적 예측과는 달리 - 민주화에 역행하는 정권이 들어섰던 남미의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사회경제적 차원의 변화와 정권의 속성사이에 선택적 친화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모델은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고 어떤 경우에 민주화가 지체 되는가 하는 이유를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논지에 따르면 종속적 경제 구조하에서는 산업화의 지속적 심화를 위해 민주적 참여와 민중주의적 요구를 절제하거나 차단시킬 수 있는 정치체제가 필요하며, 이 때문에 군부를 필두로 하는 권위주의 정권의 출현과 그 지속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다.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론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왜 비민주적 정권이 등장 또는 일시적으로는 증가하는가 하는데 대하여 한때 강력한 설명력을 지닌 이론으로 평가되었다. 이와 비슷한 논지는 한국에서도 - 특히 3~5공화국 시기에 - 근대화와 경제 발전이 궤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오랫동안 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