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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항장 인천과 차이나타운 평가A+최고예요
    【조사자료】Ⅰ。개항과 인천1. 개항장 인천국가간에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항구나 공항을 여는 것을 개항이라고 한다. 개항된 나라 전체에 외국인이 들어가 무역을 하면 큰 혼란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일정한 장소를 정하여 자유롭게 왕래를 하며 무역을 하도록 허용하는 지역을 개항장이라고 한다.개항장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신라가 당과 무역을 하는데 이용한 당항성, 영산강 포구, 청해진과 백제가 설치한 인천의 능허대 들이 대표적인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활발한 해상무역이 이루어진 예성강의 벽란도와 자연도(영종도)를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일본에게 무역을 하도록 허락한 부산포, 제포, 염포가 있다.근대의 개항장을 일본의 요구로 1880년에 문을 연 원산항과 부산항, 1883년에 개항된 인천항이 있다. 특히 인천은 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진 항구로, 개항이 되자마자 일본, 미국, 독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배들이 모여들었다.개항장에 모여든 외국 상인들은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쌀과 금, 은, 콩 따위를 싼 값에 사 가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일본 및 양 여러 나라의 제품을 비싸게 들여와 우리 나라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하였다.< 개항전의 제물포항 모습> < 홍예문 앞에서 바라본 거리 모습 >2. 개항될 무렵 우리 나라의 사정개화파가 등장하여 개화 분위기가 무르익게 된다. 서양 여러 나라와 무역을 하여 국가가 부강해지고 나아가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여 국가 발전을 꾀하자고 주장하는 개화파 학자들의 세력이 커졌다.군함을 이끌고 개항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의 침입을 굳건히 막아 온 대원군이 물러갔다. 대원군이 펼쳤던 쇄국 정책도 후퇴를 하게 된다.1874년 대만을 침공한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조선을 넘보고자 하였다.일본의 조선 진출은 조선의 개항을 희망하는 여러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는다. 일본에 머물던 미국 공사 빙함은 조선으로 떠나는 일본 부사에게 미국이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켰던 방법이 쓰여 있는 [페리 일본 원정기]ㆍ고과정)가 있고 중국과 국교 정상화 이후 화교 자치회 화교 상회들이 서서히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100여 년 전에 정착한 화교 2세, 3세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3) 공동 조계공동 조계는 미, 영, 청, 독, 일 등 5개국이 1884년 10월 3일 인천 제물포 조계장정협정에 따라 생겨나게 되었다. 공동 조계는 청국과 일본 조계의 외각 주변인 송월, 송학, 북성, 관동에 이르는 14만여 평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여 여러 나라들이 공동으로 거주할 수 있게 설정한 지역이다.4) 신동공사이 공동 조계에는 행정권이 독립된 자치의회격인 '신동공사'를 조직 공동 조계 내의 모든 문제를 최종 협의 결정하면서 산하에 집행기관인 조계자치구청을 두고 세금을 거두어 공동 조계 내의 모든 도로, 가로수, 가로등과 같은 공동 조계 시설환경 개선에 투자하는 등 자치적으로 독립과 행정, 사법권을 행사하였다.신동공사는 조계장정의 규정에 따라 미, 영, 독, 청, 일 등 5개국의 합의로 1889년 3월 23일 발족하였다. 초대 의장에는 프랑스의 '플랑시'가 임명되었으며 의원 조직은 각 구 영사관과 거주지의 유지 3인 그리고 의원 9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3. 공동 조계내의 영사관1) 영국 영사관영국은 1884년 3월 옛날 제물포 포대가 설치되었던 해안가 바위 언덕 현 올림포스 호텔 자리에 영사관을 열고 초대 영사에 '헬링톤'이 부임하였다. 시초에는 가건물을 이용했으나 1887년 빨간 벽돌양옥 단층을 새로 지어 사용했다. 이 건물은 해방 후까지 옛 건물이 보존되어 왔으나 6.25 폭격으로 그 자취마저 사라지고 말았다.2) 러시아 공관러시아는 각국 조계에서 사장 늦게 1902년 10월 31일 영사관을 개설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인천에 거류민이 없었기 때문에 영사관을 두지 않았으나 신동공사가 발족되면서 조계지내 여러 가지 이해 관계를 고려하여 서울에서 부영사가 내려와 인천 내동에 있는 성누가병원의 건물을 빌려 문을 열었다. 그 후 선린동 해군경비 부대자리에 청사를 신축하였으도 했다. (동인천역 뒷편 현 자유시장) 이 곳을 송림동, 화수동, 창영동, 화평동, 율목동, 송현동으로 둘러 싸인 옛 한인 촌의 중심이자 배가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자연 발생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해방 후에는 상가가 더욱 번창하였고 6.25에도 인천 상가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면서 1960년대 후반에는 이 배다리 수로를 복개하고 현대식 상가를 세워 자유시장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배다리 시장으로 불려져 온 자유시장은 인천 시민의 애정이 담긴 역사의 뿌리가 깊은 시장으로 인천 시민이 가꾸고 키워온 생활터전이 되었다.5) 행정구역구한말 인천 부는 산하에 10개 면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매봉산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제물포 지역은 인천부 다소면(多所面)에 속했다. 원래 다소면은 현 중구, 동구, 남구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었으나 제물포지역은 다소 면의 선창리, 고잔리, 송림리에 장천리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선창리 : 현 중구(중앙, 신포, 내동, 신흥, 인현, 율목동)고잔리 : 송월, 만석, 화수, 화평동송림리 : 송림, 송현, 창영, 금곡동1903년 8월 광무 7년 인천 제물포 지역만 관리하는 부내면이 새로 생겨 율목동에 부내면 사무소가 개설되었다. 또한, 개항 당시부터 외국인들의 영사관을 설치하고 외국인들만 모여 살던 조계지역이 따로 있어 그들의 자치구가 운영되기도 했다.1895년 고종32년 갑오개혁으로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개항장인 제물포는 인천부가 되고 제물포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부천군이 되기도 했다.그 후 1914년 인천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부천군이 되자 인천부는 개항장인 현 중구와 동구 지역으로 축소되었고, 그 후 시세가 커지고 발전하게 되자 인천부는 계속 주변 지역을 편입시켜 다음과 같이 시세를 확장하게 되었다.1914. 9. 1 부천군 영종면에 속했던 월미도 편입1936. 10. 1 부천군 다주면, 문학면 편입1940. 4. 1 문학 남동 서곶 지역 편입1943. 1. 1 작약도 인천 편입6) 개항과 감리서인천이 개항된 것은 훈련을 실시하는 등 개화기 인천지역 청소년들에게 신학문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넓히고, 애국심을 불어넣는 등, 민족 교육에도 힘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그러나 해방 후 많은 공립 초등학교가 생기면서 사립 영화학교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고, 1970년에는 이르러 마침내 개교 78년 만에 애석하게도 우리 나라 초등교육의 효시인 영화초등학교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 후 샛별학교로 부활하여 현재 영화초등학교로 계승되고 있다.4) 하와이 이민 개척과 내리교회개화기 제물포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이민 사업의 개척지이기도 하다. 1902년에 시작되었던 하와이 이민은 내리교회의 조원시(G. H Jones) 목사에 의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하와이 설탕회사에서는 사탕 옥수수밭에서 일할 노무자가 필요하여, 한국 정부에 이민 노무자 고용을 정식으로 요청해 옴에 따라 이민 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검토되었다. 이민 사업을 전담할 수 있는 기관인 '수민원'이 설립되어, 이 수민원을 통해 이민 모집을 실제로 맡아서 할 수 있는 회사를 물색하여 동아개발사를 지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이민 모집을 데슬러(D. W. Deshler) 라는 미국 사람에게 의뢰하였는데 이민 모집이 의외로 잘 진척이 되지 않자 여러 가지 고심 끝에, '레슬러'는 결국 조원시 목사에게 이민 모집의 협조를 요청하게 되었고, 조원시 목사는 내리교회 교인들에게 이민을 권유하여 하와이 이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5) 최초의 이민우리 나라 최초의 하와이 이민은 주로 내리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102명(희망자 121명중 신체검사 합격자만 이민 허용)이 1902년 12월 22일 미국상선 게릭호(S. S. Gaelic) 편으로, 제물포항을 출발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하였다고 하다.6) 신민회 조직1차 이민의 대다수가 내리교회 교인 등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선교사 '홍승하'를 비롯한 전도사들이 같이 동행했다고 한다. 1수 있으며, 중국어와 한국어가 적당히 뒤섞인 학생들의 재잘거림 속에 신선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1930년대의 청조계지 내의 청국 공공학교로서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인천 유일의 화교학교이다.중구청 관광개발과 별관 (구 일본 제1은행)“중앙청 건물과 닮은 후기 르네상스 양식이 그대로”▪ 소재지 : 인천시 중구 중앙동1가 9▪ 건축연대 : 1897년처음에 목조 2층 건물로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업무를 시작하다가 지금 현재 모습인 1897년 석조 사옥으로 새로 지어졌다. 해방 후 조달청 인천지점, 인천지방법원 등기소 등으로 바뀌면서 중축 개변되면서 외관이 조금씩 변형되었지만 기본 골격은 그래도 유지 하고 있다. 건물 안에 보관 창고로 사용되었던 금고는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지만, 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언뜻 보기에는 옛 중앙청 건물과 닮은 구성이 있는 중앙에 돔을 설치한 후기 르네상스양식이다. 이곳에 가면 중구의 관광자원 책자와 함께 중구의 상징을 볼 수 있다“ 위대한 교육자~ 공자를 기리며... ”공자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상을 미래에 건 고대 중국의 위대한 교육자이며, ''仁''의 학설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의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고,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공자의 명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 될 만 한 사람이 있다.- 그 좋은 점을 골라서 따르고 좋지 못한 점은 고치도록 한다.- 삼군이라도 대장을 빼앗을 수 있으나 보통 사람으로부터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이 없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군자는 말만으로 사람을 높이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말까지 버리는 일이 없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한마디 말로써 평생토록 행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용서''라는 말이다.중구청사 (구 일본 영사관)“시대의 흐름에 따른 구식 목조건물의 흔적”▪ 소재지 : 인천시 중구 다.
    사회과학| 2007.05.08| 22페이지| 1,500원| 조회(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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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경제전망
    서 론등소평의 지휘 아래 중국의 경제개혁이 시작된 지 이미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의 결과를 종합하면 중국의 경제개혁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큰 경제적 혼란이나 후퇴 없이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으며,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순조롭게 이행하였다. 특히 이러한 성과는 경제개혁에 실패하여 커다란 경제적 후퇴와 혼란을 겪어 온 동유럽 및 구소련 국가들의 경우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동시에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문제점들이 배태되어 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은 향후 중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부정적 전망의 근거로 종종 제시되기도 한다.최근 수년간 중국의 경제계에서는 중국 경제의 장기 성장전망, 즉 중국 경제가 언제까지 고속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지속성장 가능성의 문제가 핫 이슈가 되어 왔으며, 이는 또한 최근의 세계적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고속성장세를 줄기차게 유지하고 있는 중국 경제를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향후 중국 경제가 어떠한 체제로 변해 갈 것인가 하는 경제체제 전망이 하나의 이슈가 되어 가고 있다.이 글에서는 먼저 중국 경제의 개혁역사를 간략하게 살펴 본 후, 중국 경제의 현황과 WTO 가입에 따른 영향을 살펴보고, 아울러 이를 통해 향후 중국 경제의 전망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미래상을 간략하게 가늠해 보고자 한다.본 론경제개혁의 역사와 현 상황중국의 경제개혁이 오늘날의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대단히 의외의 성과였다. 중국의 경제개혁을 선두에 서서 설계하고 지휘한 등소평 조차도 이러한 의외의 성공에 감탄을 표시한 바 있다. 그러면 중국의 경제개혁은 어떻게 해서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몇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중국의 개혁 방식의 우수성에서 그 해답을 찾기업의 발전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농촌개혁으로 인한 농민 소득의 증대 및 저축의 증대 그리고 농촌 시장의 발전은 농촌 기업의 생성을 위해 기본적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아울러 국유기업이 중공업 분야에 편중되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를 충분히 공급해 주지 못하는 상황은 농촌 기업들이 비교적 적은 규모의 자금을 동원하여 소비재 생산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으며, 많은 수익이 보장되었다. 농촌 기업의 발전을 목도한 중앙 정부는 나중에는 앞장서서 농촌 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기도 하였다.농촌 기업 발전의 경제개혁에 대한 영향은 어떤 것일까? 농촌 기업은 정부의 경제계획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제주체 였으므로, 농촌 기업의 발전과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증대는 자연히 시장의 발전과 확대라는 결과로 귀착되었다. 아울러 경제의 공급능력 증대를 통하여 시장경쟁의 격화를 가져 왔으며, 이는 시장화가 지연되고 있는 국유경제에 대해서도 큰 도전과 충격을 제기하였다. 이런 연유로 해서 사전에 그 발전이 전혀 예상되지 못하였던 농촌기업은 1990년대 중반까지 경제 개혁과 성장의 엔진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기업개혁농촌개혁에 비해 도시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농촌개혁의 성공에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의 지도부는 경제개혁을 도시지역으로 전면 확산시키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는 자원배분제도의 시장화 개혁과 최종적으로 시장경제로의 전면적 이행이라는 성공을 가져 왔을 뿐, 도시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국유기업의 개혁에는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여 국유기업은 현재까지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개방정책농촌개혁과 함께 중국 경제개혁의 성공에 일조한 것은 바로 경제 개방정책이었다. 경제개방은 중국의 모든 개혁조치와 마찬가지로 초기에 4개의 경제특구(나중에 1개 추가)에서의 제한적 실험을 통해 14개 개방도시, 연해 경제개방구, 내륙 변경지역, 내륙 도시 등길을 걸어 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지도 모른다. 중국 경제의 행운은 경제 발전에 수반하여 경제 개혁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향후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이 경제개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급능력의 증대와 함께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격화된 시장경쟁환경과 시장포화상태의 진전은 공급능력의 증대에 의존하여 성장을 이루어오던 경제성장이 한계에 직면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유효수요의 부족은 경제 성장률의 둔화로 이어졌고, 이로 인하여 중국경제는 과거에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각종 비효율과 문제를 드러나게 하였고, 국유기업 등 그 동안 본격적인 개혁을 회피하여 왔던 민감한 분야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제도개혁을 요구 받게 되었다.따라서 최근 수년간은 중국이 경제개혁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해 온 시기이며 향후 경제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적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의 철저한 개혁과 (산업 및 노동) 구조조정, 지역간·계층간 소득격차의 시정 등 대단히 본질적이고 각 계층간 이해갈등을 낳을 수 있는 문제들의 해결이라는 벅찬 과제를 풀어 나가고 있다.사실상 중국 경제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이와 같은 과제들은 중국이 그 동안 점진주의적 경제개혁의 길을 걸어오면서 철저한 해결을 회피해 왔던 문제(국유기업 개혁 등), 혹은 점진주의적 개혁방식의 부산물(지역격차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구소련·동유럽 국가들이 개혁 초기부터 정면 해결을 시도하였던 문제들을 지금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은 그 동안의 개혁과 경제규모 증대를 통해 이러한 도전에서 오는 충격을 견딜 힘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다는 점이다.중국의 WTO 가입에 따른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경제 정책 : 개혁 가속화 및 지속적 성장WTO 가입으로 인해 중국 경제 운용 체제의 국제적 규범화가 가속화 되면서, 경제 개혁이 국내 차원을 벗어나 국제적 영향을 받게 되었성장 전략 추진』° 2001 ~ 2020년 : 중산층 수준 달성.- 2010년 GDP 규모, 1996년의 4배.° 2021 ~ 2030년 : 중진국 수준 도달.- 일인당 GDP 5000$ 진입.° 2031 ~2050년 : 선진국 진입사회주의 현대 국가를 건립하여 물질, 정신적 풍요를 보장하는 공산주의 사회에 도달중국 및 세계 주요 기관의 경제 전망세계 은행,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조차도 2020년까지 중국 경제는 고도 성장을 구가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는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은 우리 경제에 기회와 위기의 양면성을 부과한다.《 중국 정부 연구 · 기관의 전망》중국 경제가 2010년까지 연평균 최저 6% ~ 최고 8%대의 고성장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중국 정부는 제 10차 5개년 계획 기간 ( 2001 ~ 2005년 ) 7%대의 성장률을 유지함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중국 국가 발전 계획 위원회 보고서에서는 2020년에는 구매력 지수 기준 14조 6000$로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 예상한다. 2020년 시장 환율 기준으로는 중국 GDP가 미국의 32.3%로 세계 3위로 상승( 일인당 GDP 2600$ )할 것이라 예상한다. 중국 사회 과학원 보고서에서는 201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8%를 초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2011년 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011 ~ 2020년 6%, 2021 ~2050년에는 3.5%로 각각 둔화 될 것이며, 2020년 중국의 GDP는 구매력 지수 기준으로 12조 5000억$로 미국의 11조 8000억 $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기계 · 전자 , 석유화학, 자동차, 건축 등 4대 전략 산업과 에너지, 정보 통신 등이 빠른 속도로 발전 할 것이라 예상한다.《세계 은행의 전망》중국 경제가 1996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6.6%의 고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 하였으나, 저축율은 현재의 40%에서 향후 10년간 35% 정도로 감소될 것으로 무역마찰은 WTO 체제하에서 처리됨에 따라 한국은 그동안 쌍무협상 과정에서 불리한 지위에 놓여 있던 것이 개선될 전망이다. 이처럼 중국의 WTO 가입은 한국의 전반적인 대외 교역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며 중국은 다자간 교섭에 정식 멤버로 참가해 자국의 이익 뿐 아니라 개도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융, 유통, 통신 등 서비스업도 점차 개방됨에 따라 한국의 대중국 투자 여건도 개선될 것이다. 또한 대 중국 수출에 있어 관세인하로 각국 제품들이 중국 시장에 몰려들어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종전보다 더욱더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전망이다. 대 중국 투자에 있어서도 중국 시장 내 경쟁이 종전보다 격화됨에 따라 중국에 투자한 기업의 영업환경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WTO 가입에 따른 대 중국 투자환경 개선은 한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세계 모든 나라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따라서 한국 기업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기업, 특히 구미 기업의 대 중국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중국 시장 내 경쟁이 보다 치열해지면서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입지가 약화될 우려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반덤핑 조례, 긴급수입제한조치 조례 등 관련 법령과 기구를 정비하고 있어 이들 조례의 적용이 종전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중간에 통상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중국으로 더욱 몰려들어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위축될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을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던 외국인들이 중국에 직접 투자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정부로서는 중국이 WTO 가입 이후 한국에 대해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위한 각종 통상 압력을 가해올 가능성이 크고, 특히 WTO 제소를 통한 한·중 무역마찰이 보다 빈번해질 전망이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의류, 신발, 완구와 같은 가격경쟁E 8
    경영/경제| 2003.04.01| 9페이지| 1,000원| 조회(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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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와 독일경제의 비교 평가B괜찮아요
    지금 세계의 경제가 당면한 현안 중 하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는가 하는 체제전환 일 것이다. 그 이유는 말 할 것도 없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로 인한 국제적인 체제전화의 현상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은 동독 뿐만 아니라 구 소련과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표방하던 거의 모든 국가들도 그들의 경제를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세계적인 변혁을 거쳤다. 사회주의식 경제가 시장경제로 성공적으로 전환된 예는 독일의 혁명을 들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시장경제체제가 돌입 되면서 독일의 심한 경제난으로, 독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Schacht의 노력은 독일의 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역사다. “3K 정책” 을 비롯하여 녹화사업등은 사회적 시장경제체제가 성립되는 발판이 되었다. Hitler의 경제정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국가와 국민의 빈곤을 타계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가 완전히 배제 되지는 않았지만, 소비의 자유가 제한 되고 직장변경과 선택의 자유가 제한 되고 경제적 조직의 편성과 이 속에 개인을 강제로 종속 시키는 경제체제가 구축된 것이다.여기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념을 살펴본다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보장 하고, 경쟁질서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계약 체계를 자유 보장하고, 국가의 질서 정책을 통한 동태적 의미의 완전 경쟁을 지향하고, 시장의 진입과 퇴출의 자유를 보장 하고, 물가 안정을 최우선 순위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는 어떠한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의 작당문화가 판을 치는 외형상의 민주주의가 형성되어 있고, 철저한 배타성에, 상부상조하는 권력 기관의 형상은 과히 앉아서 지켜 볼 수 없는 모습 들이다. 더군다나 투기적 이익을 노리는 저급한 윤리 의식들이 상업자본주의를 연상케 하고, 정경유착으로 일반 중산층의 투기심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성장제일주의적 경제 모형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독일경제는 80년대에 이르러 시장경제적 질서정책의 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한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성장의 조건개선을 지향하는 시장경제적 개혁정책이 성공적 이었다는 것은 경제의 안정성 회복과 많은 고용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뽑을 수가 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고용효과 창출의 원동력은 경제성장에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오래된 숙제 중에 하나가 실업문제 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동시장에 있어서 노동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의 원인 중 하나는, 실업자들이 현재의 기업 이나 사업체에서 찾고 있는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일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실업자들을 위한 재취업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실업자들을 위한 직업 교육이나 훈련 등을 마련 하는게 바람직한 개선 방법 일 것이다.또한, 시장경제적 질서정책의 핵심은 시장기능의 저해 요인인 국가의 규제를 줄이는 것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규제완화는 더 많은 경제적 자유, 더 많은 시장, 더 많은 경쟁 그리고 더 큰 복지수준을 달성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시장에서 완전히 규제를 없앤다면, 지나친 자유로 인한 방종이 발생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의 원인 중에 하나는 국가의 느슨한 규제로 인한 부작용일 것이다. 시자의 자유경쟁을 도모하고, 시민의 자유와 복지, 경제수준의 안정을 위해서는 적당한 선에서의 정부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이것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하여 개선 해야 할 점들이 많다. 효과적인 자연 환경보호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필요 하다. 토지, 산림 및 수자원과 같은 자연 자원은 모든 인류의 공동 유산이다. 다라서 이들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규제가 필요 하다. 아무리 경제 성장이 주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현세대의 인간과 후세대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 중에서도 개체나 집단의 해결이 불가능 하거나 바람직스럽지 않는 경우에는 당연히 국가가 담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적인 자연 생태계 균형의 파괴로부터 오는 위기증상, 즉 대기권의 오존층 파괴, 온실효과, 열대우림의 황폐화 등에 직면하여 인류의 생명과 경제생활을 유지 할 수 있는 자연적 환경기반을 확고하게 하고자 하는 정책과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독일이 현재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에는 국가 뿐만 아니라, 국민의 뒷받침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도 올바른 국민의식을 바탕으로 독일의 여러 정책을 본받아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닌, 한국 속의 세계를 만들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PAGE 1PAGE 1
    경영/경제| 2003.04.01| 2페이지| 1,000원| 조회(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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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적 광고에 대한 비평 평가A+최고예요
    《광고와 홍보》-REPORT※현재 TV에 방영되는 광고 중, 성 적인 광고에 대한 비평 글.1] ‘메가패스’ 의 “네스팟” 광고 -『 연인 』 편처음 이 광고를 접했을 때, 웃어야 할 지 민망해 해야 할지 정말 난감 했다. 그 광고는 KT의 무선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메가패스’ -“네스팟” 의 광고 였다. 첫 장면은 야외 벤치에서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연인이 나오는데, 순진해 보이기만 한 남,여의 모습 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뒷모습이 비춰지고, 남자친구가 용기를 내어 여자친구의 어깨로 슬그머니 손을 올린다. 그러다 놀래서 하는 말이, “끈(?) 이 없네…” , 그 말에 대한 여자친구의 대답은, “뭐야~? 처음 봤어~?? , 대게 편해… 너두 해볼래~??” 여기까지만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런 광고가 TV전파를 통해 보여 질 수 있을까~?’ 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여자의 무릎에 한 노트북이 보여지고, 두 사람은 야외에서 인터넷 선이 없어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이 광고를 보고 나서, 평소에 함부로 내뱉지 못할 말들이 광고에서 까지 사용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이 광고를 제작한 사람은 ‘선’ 이 없이 어디서든지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의 문구를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 이었겠지만, 그 광고를 본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만을 받아 들였을까~?? 광고란 짧은 시간동안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어 들여야 하므로, 그만큼 독창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 할 것이다. 거기에 맞추기 위해 단어나 말의 선택도 중요 할 것인데, ‘선’이란 단어 대신 ‘끈’ 이란 단어를 선택하여,순간 여성들의 속옷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끈이 없네” 라는 말과 함께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으므로… 물론, 이 광고에서 어떤 단어를 사용 했냐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 문구를 각인 시키는데 성공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어느덧 ‘여성의 속옷’ 을 비유하는 말이 아니면 광고의 문구 조차 기억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광고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서 사람들이 모든 광고를 다 기억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광고를 기억 시키기 위해서는 좀더 파격적이고, 놀랄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광고 문구를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단어가 어떤 것인가는 바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광고란 사회 문화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유행을 창조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광고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를 어필하기 위해 색다른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칭찬 할 만 하지만, 광고가 사회 문화적 상황을 반영 한다는 점에서 좀더 신중한 단어의 선택이 필요 할 것이다.2] ‘SK 텔레콤’ 의 “스카이” 광고 -『 스카이 슬라이드』편이 광고는 SK 텔레콤의 스카이 휴대폰 광고다. 기존의 플립 형태나 폴더 형식의 휴대폰과는 다른 슬라이드 형식으로 열리는 기능을 표현한 광고다. 도시의 빌딩들 사이에서 두 남녀의 모습이 비춰지는데, 남자의 허리에는 다리를 휘감은 채 안겨 있는 여자의 모습이 나온다. 그 여자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이상한 자세를 취하더니, 남자의 허리에 안겨 있던 여자의 몸이 서서히 공중으로 밀어 올려진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는 ‘저 두 사람이 과연 무얼 알리려고 저런 자세로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할 것 인데, 곧이어 핸드폰이 나오고 제품의 열리는 방식이 슬라이드형 임을 보여줌으로써 방금전에 두 남녀의 자세가 제품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이 광고를 보고 나서 핸드폰의 열리는 방식을 남과 여의 묘한(?) 자세와 연결시켜 나타냈다는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강하게 어필 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이런 광고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제품의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단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제품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한 점이긴 하다. 이 광고는 제품의 이미지를 떨어뜨렸 다기 보다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점에서 칭찬 할만 하다. 그러나 핸드폰의 열리는 방식에 사람이 이상한 자세로 표현 되었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홍수처럼 밀려드는 광고물의 시장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오래, 더 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인식되기 쉬운 것에 제품을 비유하는 것이 좋다라는 것은 이해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남,여의 묘한 자세가 아니면 제품을 설명하고 이해하기에 힘이 들게 된 것은 아닐까~?? 아까도 말했듯이 광고에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남,여의 이상한 자세가 TV의 한 광고 속에 등장한 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그러한 장면들을 즐기고, 좋아하며 더 이상 그런 장면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놓기 시작 했다는 것을 의미 할 것 이다. 그렇다고 꼭 감추고 드러내놓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광고가 공중파를 타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 되는 만큼 광고를 제작 하기에 앞서, 이 광고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 될 것인가를 한번 더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이다. 요즘은 광고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기억 속에 쉽게 잊혀지고 있는 만큼,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성 적이기 보다는 제품의 특징을 잘 살리고, 독창적인 광고를 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영/경제| 2003.04.01| 2페이지| 1,000원| 조회(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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