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전자패키징 기술과 제품이란 능동소자(반도체칩)와 수동소자(저항, 콘덴서등)로 이루어진 전자 하드웨어 시스템에 관련된 기술을 통칭하는 매우 광범위하고 그 파급성이 큰 중요한 기술이다. 전자패키징의 중요한 기능과 이에 따른 핵심기술은 다음과 같다.1.Power Distribution전자패키징은 소자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해야한다. 그러므로 이에 따른 저잡음 전력/접지 회로 구현, 관련재료, 공정 등은 패키징 구조와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2.Signal Distribution전자패키징은 소자간의 신호연결 기능을 갖는다. 신호의 속도,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한 signal-integrity, 회로 설계, 도체/부도체 재료, 접속기술 등이 필요하다.3.Heat Dissipation패키징은 소자에서 발생되는 열을 방출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열방산 없이는 소자의 동작과 패키지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4.Package Protection자연적, 화학적, 열적 환경 변화에도 견디고 전자소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다. 기계적인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기계적 설계, 신뢰성 기술이 필요하다.전자 패키징 기술의 기술적인 중요성은 전자제품의 성능, 신뢰성,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제조기술로서 반도체와 기타 전자부품을 사용하여 전자 제품을 구현하는 핵심제조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자 패키징의 경제적 중요성은 전체적인 전자 패키지 수요는 전자 제품의 발달에 따라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노트북, 휴대용 전화기, 휴대용 자료 송수신 기기, 디스크 드라이버 등에 사용 되는 QFP, CSP, BGA와 같은 경박 단소형 패키지들이 급격히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전체시장규모는 1997년 56억 달러에서 2002년 116억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새로운 패키지 기술인 MCM(Multichip Module)과 같은 고속, 고밀도 시스템 패키지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이면 MCM의 경우에는 2001년에 이르러 그 시장규모가 10억 달러이상으로 커질 것이다.전자 패키징 기술의 발전반도체 소자 패키지 기술은 초기삽입형(plated-through) 패키지인 DIP, PGA 형태에서 패키지 크기가 작고 전기적 성능이 우수한 표면 실장형(surface mount technology : SMT) 패키지인 QFP, SOP 형태로 발전하여 극세피치 표변 실장형 TQFP, TSOP등을 거쳐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경박 단소형 SMT 패키지는 1990년도 중반부터 솔더 플립칩과 SMT 기술의 장점을 결합한 BGA(Ball Grid Array) 형태의 패키지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솔더 볼 접속 패키지 기술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BGA 패키지 크기와 전기적 성능을 더욱 개선한 칩 크기 패키지(Chip Size Package : CSP)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CSP기술 칩/패키지의 크기가 80%이상인 고집적 패키지로서 점차 소형화되어 가는 전자제품에 없어서는 안될 패키지 부품이 되어가고 있다. CSP패키지 예로는 현재 16메가급 이상 메모리 칩 패키지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LOC(Lead On Chip)형 과 micro-BGA 패키지가 대표적이다.최근 전자 패키지 및 어셈블리 기술 요구 조건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2010에는 현재에 비해 die size 2배, 속도 4배, 전압 1/2배, pine count 4배가 된다. 이러한 rdugid은 전자패키징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인 고속, 고밀도 시스템 패키지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의 전자 패키징은 극소형/고밀도, 저전력, 다기능, 초고속 신호처리, 영구적 신뢰성을 요구한다.. 패키지 및 어셈블리 기술 요구조건의 변화(source : national technology roadmap for semiconductor)key need1995-20*************5-2010cost/pin(C)0.84-5.40.6-4.10.4-2.7powor(W)2-602-1202-160Die Size(mm2)240-300340-430460-620Performance(MHz)100-*************-625Voltage(V)1.8-3.30.9-2.00.9-1.2Pin Count300-675675-13001140-2200참고문헌 : 전자패키징 재료(논문 : 백경욱(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공학과))전자패키지재료 연구센터(소개자료). 실험 REPORT(개인)1. 실험목적솔더볼 증착시 소요되는 시간과 전단실험을 통해 측정된 강도와의 상관관 계 파악2. 실험방법.솔더볼을 리플로우 기계를 이용 기판(PCB)에 증착시킨다.(12개)- Sn-3.5Ag를 솔더볼 시료로 이용(높은 열산화율과 열피로특성이 양호한 각광받는 시료임)- Flux는 RMA타입을 사용(엑터베이션 성분이 적당히 섞여 있음)※ Flux의 역할 : 접착제의 역할로써 산화물을 제거하고 재산화를 방지하며 표면장력을 저하시킨다..리플로우 속도를 변화시켜 가면서 여러시편을 제작한다..제작된 시편들의 전단강도를 측정한다.- 전단시험 : BGA ball shear test로 수평적 기계적힘에 견딜수 있는 강 도를 측정함→실장된 전자부품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시험임, 수치단위 는 gF(질량×힘)이다.
골프(Golf)란 무엇인가?코스 위에 정지하여 있는 흰 볼을 지팡이 모양의 클럽으로 잇달아 쳐서 정해진 홀(球孔)에 넣어 그때까지 소요된 타수(打數)의 많고 적음으로 우열을 겨루는 경기이다. 코스를 1바퀴 돌면 7∼8㎞의 거리에 이르므로 하이킹 또는 사냥 등과 같은 레크리에이션 효과를 즐길 수도 있다. 핸디캡의 채용으로 남녀노소가 동등하게 기(技)를 겨룰 수 있으며, 룰 적용의 심판은 플레이어 자신이 해야 하고, 규칙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미묘하게 세분화되어 있는 점이 골프의 특징이다.골프(Golf)의 기원골프는 야구나 농구처럼 근대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스포츠가 아니다. 오랜역사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로써 현재 그 기원과 어원의 발상에 대해 여러 학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골프의 기원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어떤 이는 이미 14세기 중반에 영국인들이 즐겼다고 하는 프렌다스의 콜이라고 하는 놀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중세기에 양치기들이 양을 돌보는 동안 지팡이로 자갈을 치던 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네델란드의 기원설이다.13세기에 행해진 것으로 증명된, 얼음위에서 끝이 굽은 길죽한 작대기를 가지고 볼을 치며 즐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16세기 네덜란드 벽화 등에서도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골프를 많이 닮았을 뿐 아니라 그 놀이를 네덜란드에서는 '콜벤'이라 불렀고 작대기를 '콜프'라고 했다고 한다. 이름까지 유사했기 때문에 이것이 골프의 유래가 틀림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콜벤이 볼을 구멍에 적중시키는 형태가 된 것은 15세기에 스코틀랜드로 건너간 후이므로 스코틀랜드야 말로 골프의 발상지라는 설도 있다.당시 골퍼는 양치기들이었다. 스코틀랜드의 해안지방에는 광대한 모래언덕이 있었으며, 그곳에 펼쳐진 초원에서 양치기들은 심심풀이로 끝이 굽은 지팡이로 돌맹이를 쳐올려 토끼굴에 넣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이와 같이 스코틀랜드에서 오늘날 골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 발전해 온가기 시작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귀족 등에 의해 런던의 남부에 블랙허스라는 7홀의 코가 만들어 졌고, 그리고 20세기 후반에는 온 세계에 확대되어 갔다.골프(Golf)의 역사18세기 중엽까지는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에도 골프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플레이 할 수 있는 반면 코스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홀의 수도 제멋대로 였으며,정식 규칙이나 조직도 없었다. 골프가 끝나면 코스 근방의 선술집에 모여 술이나 음식을 먹으면서 골프에 관한 토론을 하며, 골프모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갔다고 한다. 이러한 골프의 모임은 이윽고 클럽 조직으로 발전해 갔다.1744년 스코틀랜드의 리스라는 고장에서 사상 최초의 클럽 조직 '오나러블 컴퍼니 오브 에딘버러 골퍼즈(Hono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가 탄생하였다. 동시에 13개조로 구성된 골프 룰도 제정되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룰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소실되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은 '룰'이 되고 말았다.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 세인트 앤드루스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세계 최고의 코스가 있다. 1754년 이곳에 모인 22명의 회원에 의해서 유명한 R&A의 전신인 '소사이어티 오브 세인트 앤드루스 골퍼즈'(Society of St. Andrews' Golfers)라는 클럽 조직이 창립되었다. 이 클럽의 주도로 리스의 '오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딘버러 골퍼즈'에서 만든 룰을 규범으로 홀의 수와 다양한 클럽들을 규정하는 13개조의 룰을 성문화하였다. 이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룰이며 오늘날 제너럴 룰의 모체가 되었다.1764년 전에는 St.Andrews'코스도 22홀로 구성되어 있었고, 다른 코스는 적게는 6홀, 많게는 25홀로 되어 있었으며, 1858년에야 18홀로 합의되었다. 1834년 Society of St. Andrews' Golfers가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Andrews가 되면서 즉, 한 1865년에는 정식으로 스코어 카드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금도 프레스트윅에 보존되어 있는 당시의 스코어 카드는 아주 간소한 것으로 각 홀의 거리나 파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로선이 들어가 있는 메모지 같은 것으로 홀 번호의 옆 빈칸에 1타마다 사선을 긋고 그 합계를 숫자로 기립한 것 뿐이었다.영국에서 발달한 골프는 이윽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입되면서 본고장 영국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발전해 갔다. 미국의 골프원년은 뉴욕 교외에 미국 최초의 골프코스가 탄생한 1888년으로 한다는 설이 현재로서는 일반적이다. 이 코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레이드가 친구와 플레이를 즐기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처음에는 단 3홀 밖에 없었다. 캡으로는 토마토 통조림의 빈 깡통을 이용하는 등 손으로 만든 소박한 것이었다. 레이드는 이 코스에 고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골프장의 이름을 그대로 빌어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 클럽이라 하였다. 그 후 이 코스는 몇 번인나 이전을 반복하면서 규모를 확대하여 1897년 겨우 18홀이 되었다. 동시에 당시로서는 아주 현대적인 클럽 하우스도 건설돠고 많은 저명 인사가 이용 하였다. A.카네기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로서 유명한 코넌 도일도 회원이었다.센트.앤드루스GC의 발전과 보조를 맞추듯이 미국의 골프 환경도 급속히 발전해 갔다. 1894년 10월, 9홀에 불과한 이 클럽에서 처음으로 오픈 경기가 개최되었고, 이것이 전 미국 오픈의 모태가 되었다 이 해의 12월에는 이 클럽을 비롯하여 5개의 클럽 조직이 모여 전 미국 골프협회(USGA)가 창설되었다. 1895년 10월, USGA 주최의 제1회 전미오픈이 뉴포트도 골프 클럽에서 개최되었으며, 1916년에는 전미국 프로 골프협회 (USPGA)가 창설되어 제1회 전미국프로 선수권이 개최되었다. 그 해 존 레이드는 76세의 생애를 마쳤다. 초창기 미국 골프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는 '미국 골프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뉴욕의 USGA본부에는 현재도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골프 초창기 부터 클많은 유명 프로가 징병되어 경기가 거의 중지되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속에서도 미국 정부는 프로 골프의 쇠퇴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강구하였다. 이것은 전후의 미국 골프가 다른 나라보다 앞서 재빠르게 부활하여 세계 골프의 주도권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는 골프에 관한 밝은 호제가 잇따르자 거국적으로 골프 붐에 박차를 가하였다. 종전의 해인 1945년 바이런 넬슨은 1승도 힘이 드는 프로시합에서 놀랍게도 계속 11연승을 하였고 연간 36시합 중 18승의 쾌기록을 수립하였다. 이 기록은 아직 깬 자가 없으며 앞으로도 깰 수 있는 프로는 없을 것이다.1950년에는 자동차 사고로 재기불능이라는 진단을 받은 벤 호건이 불굴의 투지와 연습으로 멋지게 컴백하여 플레이 오프 끝에 전미오픈에서 우승하여 온 미국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1954년의 전미오픈은 처음으로 TV 방송을 했고 이듬해 55년에는 USGA가 시니어선수권을 창설하였다.60년대에는 '세계의 빅스리'라는 칭송을 받으며 이름을 온 세계에 떨친 세 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이다. 빅 쓰리 중에도 연장자인 아놀드 파머의 활약은 195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1954년 전 미국 아마추어에서 우승을 계기로 이듬해 55년 프로에 진입하였다. 58년에는 마스터즈를 포함해서 3승을 기록한 상금왕으로 빛냈던 적이 있다. 그의 플레이를 보려고 모여드는 열광적인 팬들은 '아니즈 아미'(아니 군단)이라고 하며 그들을 거느리고 라운드하는 파머의 모습은 미국의 영웅 그 자체였다. 골프의 TV중계가 시작되었을 때 영상화된 파머의 강력한 플레이는 사람들의 눈을 화면에 고정시켰다. 그는 플레이뿐 아니라 보고 즐기는 스포츠로 골프의 이미지를 바꾼 최대의 공로자였다. 빅 쓰리 시대의 탄생은 텔레비전 방송의 급속한 보급의 영향으로 골프를 보다 가까운 스포츠로서 확립시키는 결과가 되었다.골프를 플레이뿐 아니라 보고 즐기는 스포츠로 끌어올린 아놀941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이후 골프장 페어웨이는 식량증산을 위한 농경지 , 비행장 등으로 바뀌고 1943년 경성골프클럽도 폐장하게 되었다.1949년 골프장 복구를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1950년 6.25로 경성골프클럽은 다시 폐장되었다.5. 재생기(1953-1963)1953년 사단법인 서울컨트리클럽이 정식 발족되어 6.25로 폐허가 되었던 옛 경성골프클럽 자리에 1954년 국제규모의 새로운 코스가 탄생되었다. 사단법인 서울컨트리클럽 개장 후 명실공히 우리나라 두 번째 골프장이라 할수 있는 사단법인 부산컨트리클럽이 1956년 9홀로 개장하였다.6. 도약기(1964년 이후)한국 골프계는 1964년 한양컨트리클럽의 창설을 기점으로 도약 단계에 접어들었다. 획일적인 사단법인체의 컨트리 클럽시대는 가고 새로운 체제의 컨트리클럽 즉, 기업화한 민간 골프장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그 시발점은 한양컨트리클럽이었다. 이 코스는 18홀로 개장하였으나 그 후 36홀로 확장하여 한국최초의 36홀 코스가 탄생되었다. 한양컨트리클럽 개장 후 민간기업의 제2번 주자로 뉴 코리아컨트리클럽이 탄생하였으며 그 후 관악컨트리클럽,태능컨트리클럽,안양컨트리클럽,용인컨트리클럽등이 잇달아 태동하게 되었다.7. 현재우리 나라에서는 골프업무가 교통부에서 체육부로 이관되고(현재는 문화관광부관할) 골프의 대중화 및 국토이용의 효율화를 목적으로 체육시설의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사업 승인절차를 간소화하였으며, 18홀 이상 회원제 골프장을 조성하고자 할 때는 일정 규모의 퍼브릭 코스(publiccourese)의 조성을 의무화함으로써 골프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많은(150여개) 골프장이 사업승인을 받아 골프장을 완성하였으며, 현재는 전국에 회원제와 퍼브릭을 합하여 약 180여개의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50여 개의 골프장이 공사 중에 있다. 최경주, 김미현, 박세리, 박지은, 펄신, 강수연, 장정 등등 대한 민국을 대표하는 많은 프로골프 선수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