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광장이 지녀야 할 광장의 외연적 또는 외부적 맥락과 내재적 속성 을 고려하여 서울시청앞 광장 또는 다른 유사한 광장을 비판 또는 평가해보기 바랍니다.진양교 교수님의 강의에서는 채원이 정원이 되고 동적인 요구에 맞추어 공원이 되는 과정이 있다. 광장은 시민들의 놀이터와 운동경기가 열리던 곳이 합쳐져 태어난 공간이라고도 들었다. 다음에 강의하실 길에 대해서 언뜻 보았는데 우리나라는 길이 하나의 광장처럼 여겨졌다는 사실도 들었다. 광장이라는 단어는 모호하다. 공원같이 보이지만 같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광장과 공원을 쉽게 구분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필자가 보기에는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여 진다. 우선 광장의 큰 기능중의 하나인 모임과 토론문화가 서양의 경우는 시민이 중심이 되어졌지만 동양은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누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장이라는 큰 공간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5일장) 문화를 누리기보다는 생계를 위해 쓰인 성격이 짙다. 광장은 비어있는 땅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떠들고 놀며 정보를 나누고 무언가 행위를 하는 땅이다. 광장이란 도로의 연장으로 비어져 있는 넓은 공간이며 통행과 군집이 자유로운 곳을 의미한다. 자발적 시민 모임과 다양한 문화행사가 어떠한 제한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그런 점에 시청 앞 광장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서울광장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잔디’이다. 물론 온통 검은 아스팔트로 뒤덮여진 서울 도심에 푸른색 잔디가 있다는 것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잔디문화에 익숙하지가 않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라는 푯말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는 잔디를 사랑한다. 그저 보는 것만 즐기라는 것이다. 예전에 신문기사에서 앞으로 서울시에서 광장사용료를 지불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가뜩이나 잔디와 친숙하지 않는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돈을 지불하고 광장을 이용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또 세계 최고의 잔디를 설치했다고 하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해 간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광장의 ‘네 가지 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강의를 들었다. 볼 것, 살 것, 먹을 것, 놀 것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서울광장은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 시원스럽게 충족하는 것이 없다. 주위에 보이는 건 건물들에 둘러싸인 잔디뿐이고 살 것은 더더욱 없을뿐더러 간간히 가족끼리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긴 하지만 사방에서 차가 매연을 뿜는데서 먹으면 그리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분수대로 인해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놀 것은 조성되었다고 보지만 부족하긴 마찬가지다.광장이라는 곳은 자유로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시민들이 마음대로 들어가 뛰기도 하고 음악을 연주한다던지 춤을 춰도 하자가 없어야 한다. 광장의 중요한 기능 중에서 집회의 공간이라는 측면도 있다. 이런 집회들을 차단하고 그저 잠시 쉬었다 가는 마당적인 역할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서울광장은 서울시민들에게 현재나 앞으로 무한한 즐거움과 휴식처, 또한 세계의 명소로도 자리 잡을 것이다. 하지만 ‘광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광장의 기능을 충족시키지도 못할뿐더러 상징적인 성격으로서도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한다. 물론 녹지의 유무로서 광장과 공원을 구분하는 옛 시대는 지났고 광장의 녹지를 부여하는 요즘 추세에는 맞혀졌다고 본다. 서울광장이 개장한 직후에 많은 서울 시민들이 좋아하고 직접 찾아가서 쉬기도 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과연 서울광장이 사람들을 끌만큼 매력적이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서울에서 그만큼 시민들이 쉴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서울광장으로 몰려든다고 본다. 서울광장도 수업시간에 봤던 벤치를 불규칙적으로 배치한다거나 다른 내향적, 외향적 기능을 보충한다면 더 가깝게 광장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2. 정원, 공원, 광장, 가로를 성격, 기능 또는 역사적 연원 면에서 비교서술 해보시기 바랍니다.가. 정원정원이란 인류가 사냥이나 열매를 따던 생활을 농작물과 가축을 키우는 생활로 전환되며 정착함으로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정원의 모태는 채원이다. 작물과 채소를 기르는 곳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채원이 거주자의 건물내의 마당이나 건물마당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현재의 정원과 유사하다. 인류의 문화가 발달되고 산업이 발달됨으로서 인간의 생활본거지는 점차 도시로 변모하면서 야생의 자연과 멀어지게 된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자연, 도시, 정원의 삼각관계에서 인간문명의 초기에 자연은 두려움의 존재였지만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면서 마을과 도시를 이루었지만 이렇게 자연과 멀어지면서 자연에의 동경이 일어났다고 봤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소위 ‘길들여진 자연’인 정원이다. 이로서 도시나 전원에서 정원은 흔히 볼 수 있지만 특히 도시에서는 정원의 가치가 극대화 된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원 못지않게 야생자연에 대한 가치도 높아졌다. 정원은 대개 주택의 외부공간을 실용적 또는 심미적 목적으로 처리한 뜰이다. 정원은 주거문화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한 사회와 시대의 생활문화와 가치체계 및 예술이 총체적으로 결집된 장소라고 여겨진다.나. 공원정원이나 공원 또는 광장이라는 것이 보통 유럽에서 그 개념이 정리되었는데 공원은 정원이 특정 계층에만 전용되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고의 전환이 생기면서 특정 계층의 정원을 한시적으로나마 공공에게 공개하게 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생겨났다. 태생적으로 도시민에게 복지와 건강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원은 시대의 변화로 인해 현재에 있어서는 도시전체의 녹지체계를 구성하는 핵으로서의 역할 요구 등과 같이 환경?생태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공원의 정의를 말하자면 "공공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일정 구획의 땅을 의미하며, 또 그곳에는 숲과 녹지, 물 등의 자연요소들이 인위적으로 배치되어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을 쉽게 접하도록 하는 한편, 레크리에이션 등의 동적 스포츠 활동도 포함할 수 있는 장소"이다.다. 광장우리가 알고 있는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아고라나 고대 로마의 포룸이라고 한다. 그 곳은 처음에 정치나 입법상의 집회를 위한 장소였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사람이 모여들수록 상업기능으로 특수화되고, 주위에 제단과 작은 신전도 마련되는 등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수목과 녹지의 유무가 공원과 광장의 구분이 되었다. 하지만 차츰 현대의 도시공간구조와 광장의 공원화 경향으로 광장과 공원의 하이브리드화가 이루어져 광장이 공원도 될 수 있는 것이 현대 광장의 모습이다. 집들 사이의 좁고 꼬불꼬불하며 어두운, 그러나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은 길을 따라 가다보면 갑작스레 어떤 환함, 밝음, 넓음, 그리고 그에 따른 웃음과 기쁨, 안도감, 소속감과 맞닥뜨리게 된다. 유럽도시의 광장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의 광장이 많다. 하루일과를 위해 또는 가족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 시장거리와 물건을 사러 가던 곳, 그곳에서 우연히 이웃과 사촌 형제를 마주치던 곳, 실내에서 못 다한 종교적 집회를 위해 야외에서 예배를 드리던 곳, 마을축제 때에는 모두가 모여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를 나누던 곳, 아이에 대한 얘기, 남편에 대한 얘기, 정치에 대한 얘기가 가식 없이, 격식 없이 마음껏 풀려나던 곳,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 놀고 청소년들이 나름대로의 규칙을 갖는 경기를 위해 땀을 흘리던 곳이 광장의 기능이자 성격이다.? 가로가로는 기원전부터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사람이 다니는 길과는 달리 도시의 혈관으로서 자리매김 한 것은 로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길은 로마에서 통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로마는 계획적인 가로들을 잘 이용해졌다고 알려진다. 90년대 후반부터 가로에 대한 조경의 역할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가로에 대한 조경의 책임도 막중해졌다. 가로수, 포장, 적당한 녹지, 벤치, 보행등을 포함한 가로등, 버스나 택시정류장의 쉴 터가 모두 가로를 멋진 공간으로 만드는 소재들이고 그 소재들을 다루는 일이 조경의 몫이 된다. 멋진 가로는 가로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뿐 아니라 도시의 상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멋진 거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현대의 길은 옛날의 길과 많이 다르다. 그 원인은 자동차 때문이다. 현대에서 가로의 주역이 자동차이고 가로의 기능이 자동차의 통행에 편향되어있는 현상이 그래서 당연하다. 자동차가 점유한 가로의 특징은 사람을 가로로부터 몰아낸다는데 있다. 이런 가로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차도를 없애는 근원적인 대책이 아니라 차도를 중심에 두고 차도의 양쪽에 붙어있는 보도를 손질하는데 쏟아지고 있다. 간혹 차도를 양쪽에 두고 보도를 중심에 두는 가로도 없진 않지만 그 경우에도 궁극적으로 차도가 가로주변과 중심보도를 갈라놓는 현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