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으로 인한 혁명의 이해 - 프랑스 혁명을 중심으로Ⅰ. 서론 - 목적프랑스 대혁명, 그것은 세계사를 뒤흔든 중요한 사건이었다. 혁명을 통해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시작했으며, 혁명을 통해 압제자의 최후에 대한 교훈을 보여주었으며, 혁명을 통해 비로소 현대의 세계사 가 시작되었던 것이다.우리는 프랑스 대혁명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그것이 갖고 있는 현대적 의미와 혁명 자체에 대한 의문의 이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그러기 위해서 프랑스 혁명을 다시 바라보고, 그것의 전개과정과 의의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에 그 무게를 둘 것이다.Ⅱ. 본론1. 혁명의 배경왜 계급투쟁의 혁명적 양상이 프랑스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났는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꽤 많은 지면이 필요하겠다 .간략히 말하자면 , 영국에 비해 산업적 측면에서의 혁명적 양상 -즉 , 산업혁명 -은 약 반 ( 半 ) 세기가 늦게 시작되지만 프랑스의 정치·사회 체제에는 영국과 달리 계급간의 갈등과 투쟁이 노골화되는 걸 방지할 만한 탄력적인 장치가 결여되어 있었고 , 거기에 영국에 버금가는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재부 ( 財富 ) 와 산업적 발달이 바탕이 되어 계급투쟁은 폭발적인 양상을 보인 것이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민중이 시민계급을 선두로 절대주의하의 구제도(Ancien Rgime : 앙시앵레짐)를 타파하고 자유와 평등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싸운 투쟁이다. 즉 구제도의 유지를 이익으로 하는 보수적 특권 신분과 이를 타파하려는 신흥 시민계급 사이의 대립이 날로 심각해졌다. 이러한 때 계몽사상이 신흥 시민계급을 부채질하고 용기를 주어 드디어 혁명이 일어났다.그러나 실제로 혁명을 일으키게 한 직접적 도화선이 된 것은 재정 문제였다. 루이 14세 시대에 시작된 재정 궁핍은 루이 15세의 궁정의 낭비와 戰費에 의해 더욱 심해졌다. 그러므로 1774년에 즉위한 루이 16세(Louis 16세 : 1774-1794)는 유명한 중농주의 경제학자 Turgot(1727-1781)는 농민층으로 나뉘어진다. 이들 세계급 중에서도 농민층의 곤궁과 핍박은 실로 엄청났으며, 이들에게 부과된 직접세와 간접세는 이들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 부담이었다. 당시의 농민층은 국가와 교회, 그리고 영주등의 이중 삼중의 짐을 모두 떠맡아야 했다. 한편 부르조아 계급과 도시의 공인 계급은 농민보다는 훨씬 잘살았으나 이들은 자신들의 커다란 경제적인 역할에 비하여 볼 때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정치적 참여를 열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어서 국가행정의 비효율성을 비판하고 문벌보다 능력과 업적에 의한 출세의 원칙을 바라고 있었다. 이들은 국가의 부채를 주로 담당하면서도 정치적 권리가 박탈된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18세기 후반기의 프랑스의 이러한 사회적 모순과 계급간의 대립은 과거의 한 사회구성체가 사회를 조절할 능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했으며 사회적 발전과 사회제도간의 모순이 각 계급간의 모순으로 현상했음을 알 수 있다.2. 혁명의 전개과정 - 계급관계를 중심으로프랑스혁명은 대표적인 부르주아혁명으로서 중세의 잔재를 내포한 낡은 사회와 국가를 파괴하고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으로 등장시켰다. 혁명기의 부르주아들은 농촌에서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자유주의에 입각한 여러 가지 사회개혁을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신분제에 기초하고 있는 귀족계급이 무너졌으며 그 계급을 뒷받침하던 절대왕정도 붕괴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낡은 사회와 국가를 파괴하는 작업에 있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을 내세웠다. 이중에서 평등이 더욱 큰 의미를 띠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도처에서 보는 시민적 평등에 입각한 사회가 세워졌다.프랑스혁명에는 미국혁명이나 근대의 다른 혁명들에 비해 계급투쟁이라는 면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는 혁명 초기에 귀족계급이 부르주아와의 타협을 거부하였기 때문인데 국민회의 (1789년 5월에 소집된 삼부회로부터 출현한 근대적 의회로서 혁명기 권력의 중심기관이었다)의 부르주아 지도자들은 귀족뿐 아니라 자국의 혁명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다른 나라의 보수 봉건 세력에 대해서도 투쟁해야 했다. 프랑스의 귀족계급 및 왕족과 결탁한 외국의 봉건 세력은 혁명을 와해하기 위해 프랑스로의 침공을 단행하였던 것이다.내외적인 계급 세력간의 역관계에 따란 전개된 프랑스 혁명은, 정치적 참여를 열망했던 부르조아 계급의 의회진출로부터 시작되었다. 1787년 프랑스의 루이 16세 정부는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이는 루이 14세 시대의 전쟁으로부터 유래하여 아메리카 독립전쟁에의 개입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었고, 내부적으로는 특권계급의 향락과 부패에 크게 기인한 것이었다. 재정적 위기를 타개할 능력이 없었던 루이 16세는 신분회를 소집하여 부르조아 계급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자 하였는데, 이 신분회 소집은 기존의 정치적 열망을 안고 있던 부르조아 계급을 크게 고무하였다. 제3신분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들은 신분회 소집을 계기로 사회개혁을 요구하였는바 그들은 특권계급인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할 것과 성문화된 헌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특권계급의 이익이 보장되는 신분회를 통과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제3신분의 대표자들은 테니스코트 선서를 통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의회를 해산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였다. 이를 무력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정부의 시도는 파리 민중의 바스티유 함락으로 실패하였고 파리는 자치시정부를 구성하여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채택하여 새로운 헌법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 선언은 입헌정치의 정신을 요약하였으며, 민주주의 혁명의 배경인 정치적 자유주의를 표현하고 있긴 하였지만, 이 권리 선언의 실제 내용은 상승하는 중산층 부르조아의 자연법 관념을 반영하여 유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한번 더 혁명을 저지하려 했던 루이 16세의 기도는 분노한 파리 민중의 베르사이유 행진에 의하여 좌절되었고 입법의회가 구성되어 입헌군주제를 규정하는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졌다.입법의회는 성문 헌법을 만들고 특권계층의 특권을 폐지하는 것으로 민중들의 힘을 자각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이후의 역사는 민중과 권력 또는 노동자와 부르조아의 힘겨루기와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도록 기초를 제공하였던 것이다.3. 프롤레타라아 독재론 - 파리 코뮌을 중심으로마르크스는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1852년 3월 5일)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근대 사회에 있어서의 계급들의 존재, 또는 그들 사이의 투쟁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보다 훨씬 전에 이미 부르조아 역사가들은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기술했었고, 부르조아 경제학자들도 이 계급들을 경제적으로 해부했었다. 내가 새로이 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 계급들의 존재는 생산의 발전에 있어서의 특정한 역사 단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이다.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 이 독재 자체는 오직 모든 계급의 폐지와 무계급사회로 향한 과도기를 이룰 뿐이다.파리콤뮨은 이와 같이 추상적으로만 남아 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에 구체적인 내용물을 담은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었다.파리 코뮌은 1871년 3월, 독일군이 파리를 포위한 가운데 일어난 19세기 최대의 노동자 계급 혁명이다. 파리 코뮌은 약 70일 남짓 계속되다가 결국 티에르(Louis Adolphe Thiers)가 이끄는 정부군에게 진압되었으나, 그 뒤 세계 각국의 혁명가들이 자기 나라의 혁명 수행을 위해 연구 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세계사적인 의의를 지닌 혁명이었다. 마르크스는 코뮌을 평하여 "그것은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부였다. 그것은 착취 계급에 저항한 생산 계급의 투쟁의 결과이며,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새로 발견된 정치 형태였다."(『프랑스 내란』)고 말했다. 엥겔스 또한 '코뮌은 전유럽의 노동자들에게 사회 혁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열쇠를 준 것'(『프랑스 내란』 서문)이라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코뮌은 노동자의 이익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코뮌의 주된 통치수단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상태를 편하과도기의 국가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형태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국가를 구상했던 것 같다.4.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대대적인 사회의 혁명적 재편 또는 경쟁하는 계급들의 공동파멸로 끝이 났다.이전의 역사적 시대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사회가 다양한 질서, 잡다한 사회적 서열의 등급으로 복잡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 기사, 평민,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영주, 가신, 길드장인, 직인, 도제, 농노가 있었다. 이들 계급의 거의 대부분은 또한 부수적인 등급들로 나누어져 있었다.봉건사회의 폐허로부터 싹튼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적대를 없애지 못하였다. 단지 낡은 것들 대신 새로운 계급, 새로운 억압의 조건, 새로운 투쟁형태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하지만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명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계급적대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전체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양대 적대 진영으로, 서로 직면하고 있는 양대 계급으로 점점 더 분열되어 가고 있다.중세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시민이 생겨났으며 이 시민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최초 분자들이 발전해 나왔다.부르주아지의 각 발전단계에는 그에 상응하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진보가 뒤따랐다. 봉건귀족의 지배하에서는 피억압 계급으로, 중세 코뮨에서는 무장자치단체 - 어느 곳에서는 자립적 도시 공화국(이탈리아와 독일), 또 어느 곳에서는 군주의 과세대상인 '제 3신분'(프랑스) - 로 있던 부르주아지는 이후 매뉴팩처 시기에는 귀족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 사실상 일반적으로는 대군주들의 초석으로서 반(半)봉건군주 또는 절대군주에 봉사했으며 현대 산업과 세계시장이 확립되면서부터는 마다.
Ⅰ. 서론1. 목적본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의 행정 문화를 비교·분석함으로써, 각 행정 문화의 일반적인 특성을 정립함과 동시에 행정 개선에 필요한 지식기반을 구축함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2. 행정 문화의 개념일반적으로 행정문화에 대한 정의는 주로 행정행위의 원인, 결과분석이나 행태에 대한 규제적 기능에 연구의 초점을 두고 행정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이나 규범적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이러한 행정문화는 특정 국가의 공무원들의 의식구조, 사고방식, 가치관, 태도와 일반국민의 행정에 대한 가치의식의 결합 등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행정문화는 항상 상위 문화인 사회 일반문화에 의존하고 있으며 일반문화의 변화에 따라 행정문화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3. 행정 문화의 일반적 주요 내용1 선진국의 행정 문화- 합리주의, 성취주의, 상대주의, 모험주의, 사실정향주의, 중립주의2 개발도상국의 행정 문화- 권위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형식주의, 情적 인간주의, 운명주의, 일반주의, 관직이 권주의Ⅱ. 본론1. 한국 행정 문화의 내용한국 행정문화는 일반문화가 행정체제나 행정조직 속에 전파되어 행정현상에 영향을 미쳐서 표출되거나 공무원들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와 행정조직 내에서 자생된 문화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일반 국민들 중에서 행정조직 속에 몸을 담거나 행정조직과 어떤 형태로든 간에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행정문화의 형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채용과 사회화 과정에 의해서 최초로 행정조직의 모든 계층에 문화가 전달이 되고 뒤이어 훈련과 계발교육 그리고 공식, 비공식 의사전달 통로를 통하여 행정문화가 성립되게 된다다음에서는 한국 행정문화의 내용을 몇몇 학자들의 논문을 토대로 알아보기로 한다1 김 봉식의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통해 본 한국행정문화"김 봉식은 행정행태로서의 한국 행정문화를 다섯 가지로 들고 있다.첫째는 상의하달식 의사전달, 불도저식 행정, 그리고 계급서열을 중시하는 권위주의적 행정이다. 둘째는 지연, 학연, 족벌을 기준 있다.이상의 다섯가지 행정행태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고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소극성 내지는 부정적 성격이다. 이는 전통적인 불교문화를 통해 인도인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보다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는 성격이다. 둘째는 자아말살적 권위주의의식이다. 중국 유교의 자아말살적이고 가부장제적 가족중심적 윤리관에 영향을 받은 사고방식이다. 개인의 자유, 평등보다는 지배자 혹은 통치자의 권위를 더 앞세우고 수직적 신분관계나 상하의 명령복종관계를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셋째로는 한국의 특징적인 사고방식을 침체성 내지 정지성으로 규정짓고 있다. 이는 동양 공통의 특징으로 비진취적이고 비활동적 성격을 말한다.2 백완기의 "한국행정의 근대화에 대한 문화심리학적 접근법"백완기는 한국 행정문화라고 불릴 수 있는 여섯가지 관치관은 운명주의, 가족주의, 권위주의, 정적인간주의, 의식주의, 그리고 비물질주의 등으로 요약하고 있다. 이들은 불교, 유교, 전통적 샤머니즘 등이 복합되어 이루어진 일반문화적 산물이다.- 운명주의운명주의에 입각한 생활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 된다. 또 삶이 수동적이고 무계 획적이며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족주의가족주의는 행정에 있어 보편성의 추구보다는 배타적이고 귀속주의를 낳는다.- 권위주의권위주의적 행정문화는 유교적 관존민비 의식을 고취시켜 공무원을 국민의 봉사자 보 다는 지배자로 생각하게 한다.- 情的 인간주의이것으로 인한 행정은 정실주의 인사가 만연하고 정책결정은 합리성을 잃게 된다. 또 인물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파벌적 소집단이 행정단위가 됨으로써 조직은 유기적 통일성을 잃게 된다.- 의식주의의식주의적 가치관은 법적 절차가 모든 요소에 우선하는 행정을 낳는다. 관료는 소극 적이고 보수주의화 된다. 행정은 겉치레적인 형식주의가 된다.- 비물질주의빗물질주의적 문화로 인해 행정은 과학정신과 객관성을 잃게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인 물질에 대한 욕구를 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행정을 한다는 것이다. 조직은 명확한 업무의 한계가 없이 미분화되어 있고 관리절차도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다. 또한 파벌주의와 내집단성이 강해 조직목표달성에의 기여보다는 자신이 소속해 있는 부서나 집단에 대한 공헌을 더 중시 여긴다. 이러한 한국관료의 인적, 정적인 행정행태는 한국의 사회적 특징(문화 혹은 지배적인 가치관)에 연유된 것으로 설명한다. 김 해동은 행정행태에 영향을 주는 한국인의 사회적 특징을 크게 셋으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가족주의이다. 가족주의는 "가족집단의 유지와 번영이 사회의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생각과 행동"으로 가족적 권위주의, 종적 질서체계, 전인격적인 참여, 온정주의적 상하관계 및 내집단 성향을 포함한다. 둘째는 권력획득과 유지 및 확대를 행동의 중요 목표로 여기는 권력지향성이다. 이는 전통적 관존민비 사상과 6·25이후의 생존경쟁,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에 영향을 받은 사회적 특징이다. 셋째는 사대주의이다. 사대주의는 "일정한 주관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 또는 사람을 붙잡아 섬기며 의지하려는 사상"이다. 행정문제의 경우 "선진국의 예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 또는 "그와 비교하여 안심하거나 걱정하는 현상"등을 말한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 학자들이 지적하는 한국 행정문화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네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는 소극적이고 비성취적인 운명주의이다. 둘째로는 자아말살적인 가족주의이며 셋째로는 권력지향적 권위주의이다. 마지막으로는 전문성과 물질 경시주의로 요약 할 수 있는 것이다.2. 일본 행정 문화의 내용유가·법가·도가 성장 모형을 토대로 일본의 행정문화를 분석해 보면, 이는 방법론적 개체주의 관점을 위하기보다는 체제적 관점, 전체주의적 관점을 토대로 일본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학자들이 일본의 성장을 보면서 유교적 요소, 법가적 요소, 도교적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관점과 비슷하다.1 국가 성장 초기의 법가자본의 축적을 돕고, 미약한 시장 기능구하는 국가주의가 여기에 접목된다.- 形名參同(형명참동)의 실적주의명분주의라는 것과도 맥을 함께 하는데, 여기서 '명'이라는 것은 처음에 작정한 내용 이고, '형'이라는 것은 나중에 실천한 결과를 말한다.- 필승주의법가의 사상은 필승의 패권주의를 지향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이 내포되어 있다.2 고도 성장기의 유가자율적 성장이 가능케 된 민간 부문은 점차 정부의 간섭을 배격하면서 자본주의 본래정신에 입각한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 이후에 나타나는 병폐를 시정하게 위한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경제 체제로 전환되는 경향을 띠게되어 있다.- 자율주의고도의 자율 능력을 갖춘 사람을 지향하는 내용이다.- 작은 정부필요한 최소한 법규만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나머지는 양식 있는 민간인들의 자율적 행동에 맡겨야 한다.- 복지주의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하며, 삶에 부족함에 없게 해야 한다. 이런 유가의 입장은 복지주의적인 정신과 맥이 통한다.3 안정 성장기의 도가사람들은 힘든 일을 기피하고, 보다 적은 시간의 노동과 보다 많은 보수를 찾으며, 최선의 문화 생활을 추구한다. 또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이런 시기에는 도가의 무위주의, 자연주의, 극단적 자유주의가 나타난다. 자본주의의 안정 성장기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나태해지고, 보수주의적 제도와 법은 오히려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반성주의 인데 이는 국민 전체의 자발적인 자각에 의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소수 선각자들에 의해 혁신적인 방법을 띠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無爲主義모든 일이 특별한 '무위'가 없어도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자연주의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여 이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자연주의적 사고 방식이다. 자연 주의 사상은 사회 구성의 기본 원자인 개개인의 자율을 강조하게 된다.- 반성주의도가의 사상은 현실의 모든 행위나 정치 조건인공주의높은 산과 급류통일되기 어려운 조건가치관비법루한원사람은 곧 하늘이요 하늘은 곧 사람이다.비리법권천윗사람은 곧 신이다.조직효도중심(대가족주의)가로의 문화(민중의 역사)평등의식충성중심(소가족주의)세로의 문화(지배자의 역사)귀족주의문화선비의 문화(붓의 문화)주자학문관중심명분중심정통성방위중심무사의 문화(칼의 문화)양명학무관중심현실우선습합성침략중심2 문화 수용적 특성일본사회는 서양문화가 일본의 문화와 융합하여 잘 투영되는 원인은 우리와 다른 상이함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일본의 지난 100년 간에 걸친 발전에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요인으로는 우리와 같이 집권적 관료제도가 아니며 유교사상의 영향이 우리보다 적은 관계로 지나친 이념 및 사상의 일원화도 없었다. 따라서 他이론이나 이상을 받아들일 수 잇는 여지와 융통성이 있을 수 있어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우리보다 전진적일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또 다른 요인으로는 德川이 집권하면서도 혼자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분권적이었다고 하는 점이다.일본의 민주성이라 할 수 있는 능률 제1주의적인 가치관이 성립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섬나라라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집단주의가 강조되어지고 이러한 조건 때문에 의식적으로 전통이나 민족문화를 내세울 필요가 없었던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3 통치구조상의 특성- 한국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집권화체제를 지녀왔으나, 일본의 경우는 오랫동안 분권화의 전통을 지녀왔다.한국사회에서는 '효'가 최우선적인 가치가 되어 있었을 때 반하여 일본은 '충'을 강조하는 사회이다.한국의 정치행정에 있어서 중세에도 존재하였지만 관료제적인 국가의 틀을 갖춘 것은 李朝라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 초에 유교를 국교로 정한이래 조선조 500년의 역사를 통하여 유교의 이념 및 규범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크게 지배하였고 사회제도, 경제생활, 문화생활 및 정치와 행정 체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본가치로 군림하였다.조선시대 사회에 있어서의 정치·행정 문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연혁 및 개정내용2.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대상3.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범위4.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주요내용5.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중개정 법률 개정 배경6. 주요 개정 내용 해설7. 기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심사시 검토내용Ⅲ. 결론참고 문헌住宅 賃貸借 保護制度Ⅰ. 서론주택임대차보호법은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사회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1981. 3. 5. 제정된 특별법으로서 주택임대차에 관하여 "민법에 대한 여러 가지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이 법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임차인의 보호를 위하여 마련한 것으로서 임차인의 강요에 의하여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다. 임대차계약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위반된다고 해서 모두 효력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임차인에게 불리한 경우에만 효력이 없는 편면적인 강행규정성의 법이다. (법 제10조)무주택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세얻어 사는 경우 그에 대한 법률관계는 민법상의 전세권이나 임대차 규정에 의하여 규율됨이 원칙이다. 한편 민법상의 전세권이나 임대차에 관한 규정은 개인주의적 법률사항을 기초로 하여 당사자(세든사람과 세준사람)사이의 자유의사에 의한 계약을 중시하고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형식적으로 평등하게 규율하고 있다.그러나 현실은 경제적 강자인 집주인의 횡포와 자의에 의하여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이 부당한 요구를 강제당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게 되었다.이에 따라 주택의 이용관계를 규율하는 민사법규를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는 시민법의 차원에서 임차인의 주거생활과 경제적 지위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사회법적 차원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었고 결국 무주택임차인의 권리와 지위를 보호하는 내용의 주택 임대차 보호법이 1981년 3월 5일 제정되게 되었다.주택은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며, 주거문제는 생존권의 차원에서 헌법상 권리로 보장될 만큼 매라는 것 때문에 임대차 계약 체결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2 임차주택의 일부가 주거외에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법 제2조 후단)- 임차목적물이 주거용 건물과 함께 사용되는 것인 이상 임차주택의 일부가 비주거용인 경우까지 이 법의 보호대상이 되는 바, 주택에 딸린 가계에서 소규모영업 및 공장을 하 는 자도 이 법의 보호대상이 된다.3 미등기 전세에도 적용된다.(법 제12조)- 미등기전세는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부동산임대차 특히 건물임대차의 한 형 태로 관습상 발전하여 온 제도로서, 예컨대 건물의 소유자인 갑이 그 건물을 세얻어 살 고자 하는 을로부터 "전세금"을 받고 일정한 기간 그 건물을 을로 하여금 사용.수익하게 한 후 그 기간이 만료된 때에 그 건물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전세금을 반환하는 것을 내 용으로 하는 갑, 을간의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4.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주요내용1 주택임차권의 대항력주택임대차는 그 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주택의 인도(입주)와 주민등록(전입신고)을 마 친 때에는 그 다음날로부터 제3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제3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간 다 함은 임대인 이외의 자에 대하여도 세든사람은 그 주택의 임대차관계를 주장할 수 있다 는 의미이며 이것은 결국 임대차 기간중 임대주택의 소유자가 변경되는 경우에도 임대인의 지위가 신소유자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됨으로써 임차인은 계약 기간동안(보증금을 준 경우 에는 그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그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주의할 일은 임차인이 입주와 전입신고를 하기 전에 그 집에 이미 저당권등기나 가압류, 압류등기, 가등기 등이 행하여졌고 그 결과로 경매나 가등기에 의한 본등기에 의하 여 소유권자가 변경된 경우에는 임차권은 소멸되어 임차인은 신소유권자에 대하여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타인의 주택을 임대차하고자 할 때에는 최소한 등기부를 열람하여 저당권 설정이나 가등기 여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2 임차주택양수인의 임대인지위 승계"임차주택의 양수인일정한 범위의 보증금에 관하여는 다른 담보물권자보다도 우선하여 변제받을 수 있다. 그 범위는 서울특별시 및 광역시는 3,000만원 이하의 보증금으로 입주하고 있는 임차인에 한하여 1,200만원까지 우선변제권이 인정되고, 기타지역은 2,000만원이하의 보증금으로 입주하고 있는 임차인에 한하여 800만원까지 우선변제권이 인정된다.다른 담보물권자보다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당해 임차주택소유자에 대한 일반 채권자는 물론 그 주택 위에 선순위저당권 등 담보물권을 가지고 있는 자(임차인보다 선순 위로 등기되어 있어도 물론이다)보다도 우선하여 당해주택(대지포함)가액의 2분의 1 범위 내에서 보증금의 반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우선변제권이 인정되더라도 보증금 전액에 대한 우선변제권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므로(예 : 3,000만원의 보증금이라면 주택가액의 2분의 1 범위내에서 1,200만원만 인정) 보증금 전 액의 우선변제권을 보장받기 위하여는 3항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 자인을 받아 두어야 한다. 즉 일정한 범위의 임차인은 일정한 범위의 보증금에 대하여 최 우선 변제권을 갖게 되지만 그 전액에 대하여 최우선 변제권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전액에 대한 우선변제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인을 받아 두어야만 한다.임차권의 승계임차인과 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는 민법상 재산상속권이 없으므로 임차인이 상속권 자 없이 사망한 경우에는 민법 제 1058 조의 규정에 따라 당해 주택임차권 및 보증금 등 반환청구권은 국가에 귀속되고 상속권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권자가 주택임차권 및 보증금 등 반환청구권을 상속하게 된다. 따라서 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는 임차인의 사 망으로 인하여 그 임차주택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러한 불합리를 제거하고 임차인과 사실상의 혼인과계에 있는 자의 주거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임차인의 상속권자 없이 사망한 경우에는 임차권은 그 주택에서 임차인과 함께 살고 있던 사실상의 혼인 과계에 에는 민사소송법 제491조의 2의 규정에 불구하고 대응의무의 이행 또는 이행의 제공을 집행개시의 요건으로 하지 아니한다.민사소송법 제491조의 2 제 1항(반대의무의 이행과 상환으로 집행할 수 있음을 내용으로 하는 채무명의의 집행은 채권자가 반대의무의 이행 또는 이행의 제공이 있었음을 증명한 때에 한하여 개시할 수 있다)에 의하면 상환이행판결의 경우 자기채무의 이행 또는 이행제공이 집행개시의 요건으로 되어있으므로 임차인이 상환이행판결을 받아 경매를 신청하기 위하여는 집을 비워 주어야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종전의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하는 경우 주택의 점유등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의 보유요건이므로 집을 비워주게 되면 기존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상실하게 되어, 사실상 임차인이 소송을 통하여 보증금을 반환받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으므로 임차권자의 경매를 통한 보증금 회수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가 없었다.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 2 제1항은 민사소송법 제491조의 2에 대한 특칙으로서 임차인이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의 확정판결 기타 이에 준하는 채무명의에 기한 경매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반대의무의 이행 또는 이행의 제공(임차주택의 인도의무)을 집행개시요건으로 하지 아니하도록 하여 주택 임차인의 경매신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하였다.다만, 개정안에 의하여 임차인이 집을 비우지 않고 경매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되더라도, 임차인의 주택인도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는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으므로 임차인이 임차주택을 인도하기 전에는 배당금을 교부받을 수 없을 것이고, 이 경우 언제 집을 비워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실무상으로는, 보증금반환청구권을 정지조건부 채권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하여 배당액을 일단 공탁하였다가 임차인이 집을 비워 준 사실을 입증하면 그 때에 공탁금을 수령할 수 잇는 것으로 보고 있다.2 대항력 있는 임차권자의 우선변제권 보장(종전 제3조의 2 제1항의 단서삭제)1 --- 다만, 임차인이 당해 주택의 양수임대인의 조력에 기하지 않는 등기를 인정함으로써 주택의 점유없이도 기존의 대항력 및 우선 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임차권등기명령에 대한 재판절차는 현행 민사소송법의 가압류신청절차를 준용하는 것으로 하였다. 즉, 법원은 임차권등기명령신청에 첨부된 서류의 심사 및 필요한 경우 당사자의 간단한 심문 등을 거쳐 1,2주내에 결정으로 임차권 등기명령을 발하고 이를 직접 촉탁함으로써 등기가 경료되게 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임대인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임대인의 이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 법원은 임차권등기명령의 신청이 정당한 것인갈ㄹ 판단하게 되고, 그 밖에도 임대인은 언제든지 임차인에 대하여 보증금을 변제한 후 임차권 등기명령의 취소신청을 하거나 임차인의 도움을 얻어 임차권등기명령의 신청을 취하하는 등의 방법으로 임차권등기를 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임차권등기명령에 의한 임차권등기에 관한 제3조의 3의 규정은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없이 법원의 결정을 받아 단독으로 등기를 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민법 제 621 조에 대한 특칙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개정법 제3조의 3의 규정에 의한 임차권등기명령에 의한 임차권등기는 그 대상이 주택임대차에 한정되므로 주택임대차의 등기의 효력에 관하여는 민법의 적용을 받을 여지가 없게 되나, 주택이외의 부동산에 대한 임차권의 경우(예컨대 토지나 상가용 건물에 대한 임차권 등)에는 여전히 민법 제621조의 임대차등기규정이 적용되게 된다.제3조의 3 제6항의 취지는 임차인이 임차권등기후 우선변제권을 존속한다는 사실을 믿고 다른 곳으로 거주 이전을 한 이후에 임차목적물을 소액임차인에게 임대한 경우에는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권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하고 퇴거한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이 유명무실화될 우려가 있으므로 임차권등기가 경료된 주택을 그 이후에 임차한 임차인에 대하여 제8조의 규정에 의한 최우선변제를 받을 권리를 배제하려는 것이다.개정법 제3조의 3 제8항은 임차권등기명령제도가 임대차가 종료하였음에도 불구있다.
* 참고 문헌김성철·임강택 외, 『북한 이해의 길잡이』전영사, 1999.김경호·김인혁 외, 『신북한학 개론』신지서원, 2002.김창희, 『북한정치사회의 이해』법문사, 2000.박영희, 남북한 사회 통합 방안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동국대학교 출판부, 1997.박재정, 남북한 통일 과정에 있어서의 사회복지제도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7.이완기, 『북한체제 및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정향』전북대학교 출판부, 2001.장해광, 남북한 정치교육 비교분석,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계명대학교 출판부, 1991.장상환·정진상 외, 『한국사회의 이해』한울아카데미, 1990.북한실상 종합자료집,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본 북한사회, 내외통신사, 1995.http://www.unikorea.go.kr/* 남·북한 사회의 동질성과 이질성 - 이질성 중심으로 -남·북한사회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남한 사회체제와 북한 사회체제를 요인을 살펴봄으로써 남·북한 사회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인식해 보기로 한다.1. 남한사회의 성격남한의 정치과정은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국가와 사회의 관리과정이기 때문에 국가·사회관계는 알포드와 프리드랜드의 분류에 따른 관리적 퍼스텍티브 시각에서 규명되는 것이 다원주의 모델이나 계급론적 시각보다 기본적 추세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한배호, 남북한의 정치·사회진보와 남북관계, 『통일연구론총』창간호 (서울: 민족통일연구 원, 1992), pp. 107-108.해방 직후 한국의 시민사회는 서구와는 달리 식민지적 조건과 분단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외세의존적 국가권력의 영향력하에서 주로 바깥에서 안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형성·발전되어 왔다.{) 정태석·기호기·유팔무,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전망, 유팔무·김호기 엮음, 『시민 사회와 시민운동』(서울: 한울, 1995), p. 273.해방 직후 시민사회의 세력들은 국가권력이 공백상태에 있을 때 노동자와 농민 중심의 계급갈등과 중앙과 지방간의 지역분쟁의 촉발로 강력히 분출되어등을 중심으로 이념갈등에 까지 비화하였다. 1980년대 말 정치적 민주화 이후 사회갈등은 양적으로 감소되고 내용적으로 전선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갈등관리가 제도화되어 갔으나 1990년대 와서도 사회갈등은 여전하다.2. 북한사회의 성격북한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는 융합적이다.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의 완벽한 통제, 그리고 당·국가에 대한 개인의 절대적 예속이 이루어지므로 북한에서는 국가에 대해 자율적인 시민사회를 논할 수 없다. 북한사회의 이념형은 시민사회가 아니라 신민사회다. 국가는 보편적 이익을 구현하고 보호할 뿐만 아니라 민간사회에 대하여 도덕적·윤리적 우월성을 가진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미분화된 상태에서 신민적 개인으로 구성된 시민사회는 국가에 종속되고 흡수될 따름이다.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도전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회내부의 갈등은 부자연스럽고 일탈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사회통합은 그 자체가 체제의 목표이다.남한이 산업화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태동을 가져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주체사상과 집단주의를 통하여 신민사회를 구축하였다. 1980년대까지 북한은 사회 통합적 측면, 사회 갈등적 측면을 압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북한에서도 고도의 사회 통합성을 동요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점차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면서 북한도 그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산업화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하지만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적 공업화의 경우에는 산업화가 전적으로 국가나 당의 관리주의적 통제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회집단의 분화는 더욱 뚜렷하다. 북한에서 농민은 1960년 총인구의 44.4%를 차지했으나, 1987년 25.3%로 감소하였고, 노동자의 비중은 38.3%에서 57.0%로 대폭 증대하였다. 이와 같은 집단구조의 변화는 지식인과 기술자, 사무원 그리고 일반 관료를 포함하는 근로인텔리 혹은 신중간계급의 비중을 크게 증가시켰다. 신중간계급은 교육수준이 높고 또한 자으로 북한에서 한국전쟁 이후에 출생한 사람은 전체인구의 78.5%에 달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인구의 대부분은 혁명후기 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혁명의 일상화 과정에서 대체로 사상성과 혁명성이 약하여, 절대적 빈곤을 경험한 기성세대와 갈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차이와 갈등은 남북한 모두에게 나타나고 있다.산업화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 신중간계급의 부각, 경제적 침체상황의 지속, 그리고 혁명후기 세대의 출현 등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적 개혁, 개교화와 관련하여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 결과 북한에서 시민사회의 맹아가 나타날 수 있는 개연성을 갖게 한다. 그것은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나 중국의 변화과정으로부터 유추된다. 동유렵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경제운용의 실태는 이들 정권이 생활 필수품이나 무형의 재화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무시하고 강제력만 유지하였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국가의 영역밖에서 비공식적이고 비정치적 활동으로 그 힘이 분출계기를 찾아 점차 정치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하였다.북한은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병행하여 사회통합 정책의 기본방향을 펼쳐왔다. 군중노선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여 사회적·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전략이며, 계급노선은 그러한 사회통합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계급적 성분과 사상적 동태에 대하여 의심하고 감시하는 전략이다. 군중노선은 적극적 사회통합의 전략으로, 계급노선은 부정적 요소를 색출하는 사회통합이 전략으로 추진하였으나 이 두 가지 노선은 모순적이다.북한은 전체적으로 볼 때 1980년대까지는 사회적 통합의 측면이 크게 두드러졌다. 1980년대 이후부터 갈등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의 형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산업화의 진전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 경제상황의 지속적 침체, 후기 혁명사회로의 세대론적 이동, 그리고 대외적 폐쇄성의 점진적 약화로부터 불가피하게 유래된다.3. 동질성분단이 고착화·내재화되면서 남북한 개별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 구체적인 이질화 을 역사적으로 탐구한다.고영복, 『한국사회의 구조와 의식』(서울: 사회문화연구원, 1991), pp. 112-113.에서 나타난 이질화를 살펴보면 분단 후 남한 사회변동의 경향은 서구 근대화 변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왔으므로 근대화의 이상아래 남한 사회구조는 민주화, 산업화, 도시화, 평등화 등의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민족통일연구원, 『남북한 사회·문화공동체 형성방안 -사회·문화적 동질성 확대방안중심-』 (서울: 민족통일연구원, 1992), p. 78.남한의 사회구조는 자유주의적 개방적 계층구조를 원칙으로 하고 정치적 통제를 통한 안정을 가졌다. 그러나 내부과제로서, 구조적 과정에서 정치인, 경제인, 지식인간에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주도력이 존재하고 있다.{) 고영복, 『한국사회의 구조와 의식』(서울: 사회문화연구원, 1991), pp. 1116-1117.이에 반하여 북한의 사회구조는 의식적으로 통제된 신분제적 계층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계층상승의 통로는 당성과 투쟁경력으로 단일화되어 있다.계급구성에서 남한에서는 자본가계급이 중·상층의 계급요원이 되는데 반하여 북한에서는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이다. 북한에서는 중간계급을 모두 노동계급화 하지만, 남한에서는 중간계급이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을 상호 억제하고 조정하는 중심세력이 된다.{) 고영복, 문화와 성격구조의 이질화, 『동일정책』, 제3권 제4호 (서울: 평화통일연구소, 1977), pp. 169-170.북한사회 계층구조의 특징은 첫째, 정권의 공식정책인 전인민의 노동계급화, 둘째, 사회주의 진보과정에서의 불평등 심화, 셋째, 공업화의 진전에 따른 계급구조의 재편이다. 북한은 전체주민을 성분과 당성을 기준으로 하여 핵심계층, 기본계층(동요계층), 적대계층(복잡계층)으로 3분하고, 이를 다시 51계층으로 분류하여, 각 계층에 상응하는 특혜조치와 제재조치를 제도화하였다.{) 박창열, 『신북한사회론』(서울: 일신사, 1990), pp. 177-179.사회화에서 나타난 이질화를 보면, 남한에서의 사회화는 집단압력을 자발 제 47조: 국는 대학과 전문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제48조: 국가는 사회교육을 강화하며 모든 근로자들이 학습할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보장한다. 제53조: 국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 로 발전하려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현대적인 문화시설들을 충분히 갖추어 모든 근로자들이 사회주의적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한다 제57조: 국가는 생산에 앞서 환경보호대책을 세 우며 자연환경을 보존, 조성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하여 인민들에게 문화위생적인 생활환경과 노동조건을 마련한다.이온죽, 『북한사회의 체제와 생활』(서울: 법문사, 1995), p. 134.전통문화 측면첫째, 민족관에서의 이질화를 들 수 있다. 남한은 민족을 논할 때 피와 역사, 그리고 얼(정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반해 오늘날 북한의 민족개념은 핏줄과 언어, 영토와 문화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생활단위이며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 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언어의 공통성을 가장 중요한 만족의 징표로 보고 있다.{) 사회과학출판사, 『철학사전』(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5), pp. 246-247.둘째, 역사관에서의 차이이다. 북한은 1949년 우리역사의 시대구분을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원시공동사회, 중세봉건사회, 근대 자본주의사회, 현대 공산주의사회로 구분했다. 그 후 맑스의 5단계 경제발전사를 중심으로 볼 때 고대 노예사회의 단계가 공식적으로 필요, 인정되어 1962년 『조선통사 상하』권이 정사로 확인되고 그들의 유물사관적 입장이 고착되었다. 북한은 그들 평양정권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구려시대를 부각시켰고, 왕조사적 측면을 무시하였으며, 김일성 체제의 명목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김일성 빨치산 투쟁을 부각시키고 있다.셋째, 언어에서의 이질화가 나타난다. 인간생활이 변하듯 언어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 변화에는 자연발생적인 변화와 인위적인 변화가 있다. 남한의 언어변화는 언어의 근본성격에 따른 자연발생적인 조류와 상호영향을 주면서 서서히 진행되어 가는 변화이다. 이에 비하여 북한어40.
Ⅰ.서론사회심리학을 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인식해야 한다.사회심리학에는 몇 개의 탁월한 이론적 틀 혹은 패러다임들이 있으며, 이것들은 각기 특히 영향력 있는 이론가와 연관되어 있다. 사회심리학의 주도적 이론들의 논점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품게 되는 문제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사회심리학에서 인정되고 있는 주요한 접근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그것이 형성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사회심리학을 소개할 때 느끼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모든 이론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해서 그것들을 통합하는 하나의 단일한 보편적 관점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사회심리학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들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Ⅱ. 사회심리학의 대가들1.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 와 정신분석학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볼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기의 사상가이자 신경과 의사로서 정신의학/사회심리학 /문화인류학/교육학/범죄학/문예비평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정신분석의 창시자이다. 1900년 이후 꿈, 착각, 해학과 같은 정상심리학까지 그 연구 영역을 확대하였다.정신분석학은 Freud에 의해 제창된 이론으로서 그는 1856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유태인 부모 슬하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으며, 중등학교시절 7년 동안이나 학급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우수한 학생이었다.1873년 비엔난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으며 1876년부터 신경학에 관심을 갖고 이후 15년 간이나 신경학자로서 연구에 전념하였다.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무의식적 동기의 중요성, 저항과 억압의 과정, 심리적 갈등에 있어서 성적 요소의 일반적 중요성, 유아성욕의 특별한 중요성 등은 1910년 말경에 공식화됨으로써 프로이드의 심리학적 해석에서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되었다.그는 인간의 성격구조를 빙산에 비유해서 3가지영역 즉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에 영향을 주는 힘일 자아가 합리적인 방법으로 불안을 상대할 수 없을 때는 비현실적인 것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것이 방어기제 (defence mechanism) 로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1 억압 (repression ) - 사회적이나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욕구나,충동, 사고 등을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숨겨버리는 것을 말한다.2 반동형성 ( reaction formation ) - 실제의 욕구나 충동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금지된 욕구나 충동의 표출로 갖게 될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한다.3 투사 ( projection ) -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를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전 가시켜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 보호한다.4 합리화 ( rationalization ) - 현실을 왜곡시켜 불합리한 추리를 통해 자존심을 보호하 는 것을 말한다. ( 이솝우화의 신포도 )5 전위 ( displacement ) - 덜 위협적인 상대에게 전가 ( 남편에 대한 화풀이를 자식에 게 )6 승화 ( sublimation ) - 억압된 충동이나 욕구의 발산을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인정되 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7 고착과 퇴행 ( fixation and regression ) - 좌절과 불안이 그 개인에게 너무 클 때 그 이전의 만족스러웠던 시절의 행동양식으로 돌아가는 행동기제를 말한다.Freud의 성격발달 이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성격이란 출생 후 5세 이전 유아기때 기본 골격이 형성되고 그 후에는 마무리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이고, 두번째 특징으로는 심리성욕 단계를 거쳐서 발달해 간다는 것이다 ( 구강기 - 항문기 - 남근기 - 잠재기 - 생식기 )Freud는 잘 적응하는 개인이란 진정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란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억압된 충동들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고 원욕과 자아, 초자아 가 적당히 균형되어 있어 본능적인 욕구와 도덕적인 규제 사이의 갈등을 자아가 적절 사회적 행태주의미드는 한 개인의 행위는 그가 구성원으로 속한 전체 사회집단의 행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한 개인에게 행위의 맥락을 제공하는 것은 더욱 큰 집단이기 때문이다. 미드의 방법론은 일반적으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세력을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작은 사상인 개인의 행위를 연구하는 것으로 변화해 갔다.미드가 사용한 정신적 행위라는 개념-미드의 마음론 -은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몸짓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고 있다. 몸짓이란 개인적인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한 부분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행위의 의미는 예견되는 결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지, 실제로 뒤따라 일어나는 행위 자체로부터 연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몸짓 중에서도 특별히 언어를 사용한 표현방식을 강조하였다. 언어적 몸짓은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이는 상대편의 반응에 따라서 자신의 반응을 조절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몸짓을 먼저 해보인 사람이 겉으로 드러난 타인의 반응에 따라서 반응하도록 보이지 않는 암시를 받게 될 때, 그것은 의미있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미드에 의하면, 개개인의 의식은 그 자신의 몸짓에 대한 타인들의 태도를 받아들이는 데 의존해 있는 것이다 .의미있는 상징들에 의해서 전달되는 의미는 본질적으로 항상 사회적인 속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하나의 상징은 그것을 발생시킨 사회적 행위와 사회적 경험과정에서의 유의미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상징적 요소에 의한 의사소통전개→ 자아개념·Self(중요한타자):개인의 성장발달에 영향을 주는 요소 의도적 학습=(일반화된 타자): 선악의 구분, 사회가치규범 내면화·I(주체적 자아): 제3자와 상호작용과정에서 주관적 상태에서 자아개념 형성·Me(사회적 자아): 사회규범에 따른 행동, 성원과 상호작용과정에서 합리, 객관, 보편화된 개념형성개인의 마음과 사회 간의 밀접한 연속성은 미드로 하여금, 사회적 행위에 대해서도 그가 개인의 행위에 적용하도록 유도하였다. 개인의 행위는 사회적 상재의 시점 안에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3. 레빈(Kurt Lewin, 1890-1947)의 장(場)이론레빈은 미드가 몸담고 있었던 베를린 대학교에 재학하면서, 미드와 마찬가지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게쉬탈트학파의 한 사람이긴 했으나, 물리적 사건과 심리적 사건이 조직되는 형태는 유사하다는 초기 게쉬탈트학파의 정설에 동의하지 않았다. 초기 게쉬탈트학파가 지각의 문제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던 데 반해, 레빈은 행위의 동기 쪽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레빈의 장이론심리학에서는 여전히 인간 행위를 개인들이 지닌 특성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속성에 따라 행동을 범주화하는 작업을 통해서는 심리학에서 타당한 과학적 법칙은 결코 수립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레빈의 주장이다. 그러면, 과연 진정으로 행위를 결정하는 힘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레빈은 개인에게 작용하는 전체적인 심리학적 장을 밝혀냄으로써 발견될 수 있다고 보았다.레빈은 특정 시간 및 주어진 공간에 위치한 개인의 생활 공간의 주요 특징들을 그가 생각했던대로 그려낼 수 있었다. 여기서, 그가 사용한 생활 공간이라는 개념은 종래의 심리학에서 설명해오던 특정 개인들의 성향의 산물이기보다는 전체적인 장의 세력의 합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주고 있음을 강조해야겠다.하나의 장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사실들의 총체, 다시 말해서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상황 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의 심리적 경험은 상호 의존적인 사실간의 상호 관련하에 구성되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것이 개인의 생활 공간 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은 항상 생활 공간과 함수 관계를 가지게 된다. 즉 개인과 그의 환경과의 상호 작용의 결과가 곧 생활 공간인 것이다. 레빈의 장이론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행동이든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속성에 따라 연유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항상 개인과 환경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설명하는kinner, 1904-1990)의 조작적 행태주의하버드 시절 그는 유기체의 행태에 관한 기본 법칙들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실행했다. 자신의 실험실에서 그는 방법상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기구를 많이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 스키너 상자 가 만들어졌는데 그 후 이것은 심리학적 조사 연구에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도구가 되었다. 스키너는 상이한 강화 스케줄이 지레를 누르는 행태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는 데 사용하였다.조작적 심리학스키너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행동은 자극적 사건들의 작용이다. 그러나 그 자신도 초창기에는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행동 양식을 구별했다. 반응 과 조작 이 그것이다.스키너(skinner)의 조작적 조건형성(operant conditioning)1 강화 - 어떤 반응이 일어날 확률을 증가시기키기 위해 자극과 자극 또는 반응과 자극 을 짝 지우는 것.2 일반화와 변별 - 비둘기가 빨간 불빛 단추를 쪼면 먹이를 보상 받도록 학습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비둘기가 원래 훈련시와 다른 유사한 빨간 불빛 단추가 켜졌을 때에 쪼는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일반화의 한 예이고 이번에는 원래 훈련시의 빨간 불 빛 단추를 쪼을 때는 강화를 주고 흐린 빨간 불빛 단추를 쪼면 강화를 주지 않는다면 그 비둘기는 원래의 빨간 불빛 단추와 나중의 흐린 빨간 불빛 단추를 변별하여 반응하 는 것을 학습하게 되는데 이렇게 두 자극 사이의 관계를 구분하는 현상을 변별이라고 한다.3 소거 - 지렛대를 눌렀을 때 먹이를 보상 받도록 훈련된 쥐에게 이번에는 아무리 지렛 대를 누르더라도 먹이(보상)를 주지 않으면 지렛대 누르는 반응은 점차 감소되어 일정 한 기저선 이하에서 고정화 된다. 다시 말하면 지렛대를 누르는 반응이 원래의 우연수 준 이하에서 머물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소거라고 한다.강화물1 정적강화자극 : 특정반응이 일어난 다음에 그 자극이 주어짐으로써 반응이 일어날 확 률을 높임2 부적강화자극 : 특정반응이 일어난 다음에 그 자극이 제거됨으로써 반응이 일어날 확 률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