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1946년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후 모범적인 아시아 국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것은 다른 신생독립국들에서 보여 지던 군부의 정치개입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2년 마르코스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군부를 정치에 개입시킴으로서 정치적 중립화가 깨어지고 아키노 재임 시절에까지 위협세력으로 지속된다. 여성의 정치참여의 국가 모델로서 필리핀은 그 어떤 국가보다 한국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로서의 지리적, 문화적 유사성과 식민지 경험을 지녔다는 점, 시민참여의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 등 많은 공통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성정치에 대한 관심과 정책적 초점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의 여성정치참여가 한국의 상황보다 발전적이고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 필리핀의 높은 여성정치 참여율과 지금까지 두 명의 여성 대통령을 배충 하였다는 정치적의의 이다. 둘째, 필리핀은 필요시 이루어지는 적절한 법제정과 상대적으로 강력한 국가기구 그리고 NGO들의 참여 등 여성발전에 우호적인 기반을 가졌다. 셋째, 지방정부 차원에서 여성정책과 참여를 위한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이다.이 보고서에서는 필리핀의 최초 여성대통령이었던 아키노의 정치리더십을 조명하고 21세기의 중심적 과제인 성주류화의 발전적 비전을 제시해보고자 한다.Ⅱ. 필리핀 여성 정치 개요1. 여성 정치 참여의 역사적 배경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의 증대는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 점령 전, 필리핀 여성들은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마을 추장의 아내들은 종교적 의식이나 씨뿌리고 추수하는 의식과 같은 사회 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필리핀은 식민지 시대 3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로마 카톨릭 문화에 지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원주민 문화의 모계 사회 전통이 남아 있어서 여성이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를 점할 수 있었다.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때에 부랑칸의 한 지역인 마로로스에서는 여성들이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고, 정치 폭동에도 가담하였다. 식민지 초기에 일로코스 지역의 가브리엘라 시랑은 남편인 디에고 시랑이 사형 당한 후 혁명을 이끌기도 했다. 당시에 유입된 카톨릭 급진 신학의 영향을 받은 수녀원에서 설립한 수많은 여학교들도 여성운동에 유리한 토양을 조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2. 필리핀 여성정치 현황해방 이후 정치영역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필리핀여성의 사회참여는 꾸준히 증가하여 왔다. 1980년의 정치적 혼란기에 특히 필리핀 여성은 독재를 끝내고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코라손 아키노를 배출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 피플 파워에 의해 집권한 두 번째 여성대통령인 글로리라 아로요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투표권을 획득한 이후, 필리핀 여성의 정치참여는 크게 신장되었다. 1946년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필리핀 여성의 정치참여는 크게 신장되었다. 1946년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선거에서 당선된 여성후보는 4.98% 였으나, 그 이후 정부관료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1987년 상원에 출마한 여성은 전체의 7.1% 1992년 총선거는 7.4&에 달하였다. 1965년까지 여성상원의원은 1명에 불과하였으며, 1967년에 2명으로 늘었다가 1969년에는 여성의원이 1명도 선출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92년에는 24명의 상원에서 4명의 여성의원이 선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1998년 선거에서 여성은 상원에 4명이 진출하여 각각 17.4%를 기록하고 있다.1957년까지 하원에서도 여성의원은 1명뿐이었으며, 이는 1965년에 2명, 1987년 19명, 1992년에 20명, 1998년에 27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1992년에는 여성과 노인을 위한 직능대표로 여성이 하원에 2명 지명을 받았다. 1998년에 여성은 217명의 하원에 27명으로 12.4%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국회에는 180명의 선출위원이 있는데, 그 중 11명이 여성위원이다. 정부관료나 지방관료의 고위 집행직에 많은 여성이 임명 되었다.이러한 필리핀의 높은 정치참여는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에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영국, 핀란드, 스웨덴 등과 같은 국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행정 관리직과 국회의원, 기술직, 대기업의 과장급 이상의 비율에서 한국과 일본을 훨씬 앞서는 등 높은 참여율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Ⅲ. 아키노의 정치리더십1. 코라손 코주앙코 아키노(Corason Cojuanco Aquino) - 재임기간 1986~1992코라손 코주앙코 아키노는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필리핀의 대표적 야당 지도자인 베그니노 아키노와 결혼했다. 남편이 민주화 운동 중 마르코스에 의해 암살되자 그늘에 머물러 있던 아키노는 남편의 후광을 등에 업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아키노가 당선되면서 오랫동안 독재권력을 휘둘러왔던 마르코스가 퇴진하였고 국민들은 아키노를 민주주의의 여신으로 떠받들었다. 독재자 마르코스가 집권하면서 필리핀의 민주화는 암흑기를 맞았다. 그의 독재권력으로 이에 반하는 세력들에 대해 철권통치로 대응해 반발의 기운이 잠재되었고, 베그니노 아키노의 암살을 기점으로 민주화혁명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그 기점에 서있는 것이 살해된 베그니노의 미망인인 아키노이다.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뜨리는 첫 번째 민중항쟁(people power) 로 이어짐에 이른다. 그녀의 재민주화 노력은 필리핀 민주역사에 발전된 영향을 미침이 분명하다. 이전의 권위주의체제의 붕괴가 정치적, 사회적 세력의 재편을 가져옴에 따라 더욱더 혼란을 가중시킬지는 모르겠으나 민주화로 나아가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하고 싶다.그녀의 정치리더십은 어쩌면 독재권력의 마르코스로 인해 빛이 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먼저, 독직과 부패 등 불합리한 사회체제 속에서 억압된 이들은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개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 아키노에게 집중되었던 것이다.그리고, 그녀의 약점이었던 선거자금의 문제도 마르코스 측에 견주어 그녀가 지닌 패기와 기백이 자발적인 인기를 가져왔고, 돈으로 매수된 선거꾼들 대신 야당의 ‘코리의 십자군’ 이라 불리우는 지원자들이 많았다. 즉 야당은 잘 돌아가는 정치기구 대신에 국민의 힘을 갖고 있었다.또한, 마크로스를 완강하게 지지하는 사람들 이외에 대통령이나 정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국민들이 거의 없다는 데에서 더욱 큰 신뢰감을 얻을 수 있었다. 코리에게 향한 엄청난 동정심에 의해 강화된 이 신회감은 마르코스 정부가 꿈도 꾸어보지 못한 이득이었다. 특히 사람들은 코리 아키노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였고 기꺼운 마음으로 그녀와 함께 하고자 하였다. 이 믿음의 요소는 코리의 연설과 선거 공약에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의 요소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살해당하기 전까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베그니노의 역량이다. 그녀는 자신의 정치적 능력의 미숙함을 이렇게 대변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정규적인 정치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정치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교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인 니노이가 살아있는 동안 조명 뒤의 배경처럼 정치가인 남편을 조용히 돕는일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식견을 공감하고 존경했으며, 미래에 대한 큰 비젼과 그것을 추구할만한 배짱과 인내심을 키워왔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그녀가 업고 있는 명문가의 배경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아키노, 그녀는 불합리라는 추위에 시달리던 필리핀 국민들에게 따뜻한 어머니의 존재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2.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와의 비교아키노를 인도의 대표적 여성 지도자인 인디라 간디와 비교하는 것은 매우 공통된 유사점과 큰 차이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인디라 간디 역시 반영 기치아래 전개된 민족운동의 주역인 회의당이라는 인도 사회내의 강력한 영향세력의 소산인 간디 왕조(Neru Dynasty)의 네루 간디(Neru Ganghi)의 영도력을 등에 업고 정계에 들어서게 된다. 네루의 서거로 인해 당내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추대된 인디라 간디가 비록 정치적 경륜이 부족하다고 하나 아버지를 보좌하며 비공식적인 관여로 경험을 쌓은 그녀는 어쩌면 네루보다도 더 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당내에서 여성이니 고분고분 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빗나간 결과이다. 인디라 간디의 권위적인 통치 형태가 민심이반을 가져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엄청한 일을 감행하여 반회의당(Janata Party)까지 결정하게 한것은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Ⅰ. 서론1. 연구목적최근의 한국사회의 시민사회운동의 성장은 정말로 눈부시다. 국민경선, 월드컵, 붉은악마, 촛불시위, 노사모, 대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보여준 시민운동은 한국사회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와 참여민주주의의 시대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여러 점에서 시민사회운동의 한계가 지적되고는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운동이 사회개혁과 시민의식을 일깨워 주는데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서의 현상만은 아니다. 세계가 21세기를 NGO의 시대라고까지 한다. 세계시민사회의 성장과 같이하여 한국의 시민사회도 계속 성숙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내의 자발적 결사체로서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계속 늘어나가고 있다. 최근 시민의 신문에서 발간한 민간단체총람 2003년 판에 의하며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는 무려 1만 5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하지만 한국사회에서 NGO의 정의는 아직까지 논란이 많다. 이는 NGO라는 개념이 워낙 광범위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데, 어떤 이들은 비영리단체의 한 부분)으로, 다른 이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을 통한 사회공익의 실현을 위한 조직)이라고 말한다.따라서 필자는 필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현대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몇 가지 패러다임에 따라 NGO를 구분해 보고자하며, 이에 따라 한국NGO를 정의해 보고자 한다.2. 연구방법기존의 문헌연구에 의존하던 형식을 탈피하고, 각 단체에 전자우편을 통한 질의 응답을 통해, 문헌의 내용보다는 실제 시민사회조직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조언을 참고하였다. 지난 2003년 6월 4일, 20개의 단체에 전자우편을 보낸 결과, 6월 12일 까지 6개의 단체에서만이 응답을 보내왔다. 비록 적은 수이지만 본 보고서를 작성하는데는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응답을 토대로 NGO에 대하여 공부하였다.NGO를 구분하려는 본 보고서의 목적에 따라서 NGO를 분류함에 있어 기준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각 단체에게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NG활동분야에 따라서 분류했던 방식으로 나누어 간단히 소개하고, Ⅲ장에서 현대 한국사회의 특징을 통하여 한국NGO를 네 가지로 분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 Ⅳ장에서는 Ⅲ장에서 분류한 NGO를 통해서 NGO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며 본 보고서를 마치고자 한다.Ⅱ. 분석 NGO의 소개)1. 경제/정치/행정(1)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정한 시장경제질서와 경제정의의 안정적 유지를 목적으로 1989년 7월 시민?청년?서민층 등이 결성한 시민운동단체이다. 사회적?정치적 부정부패, 건전한 시민의식의 고양, 빈부격차 등을 해소하고, 건전한 생산활동의 활성화를 중요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 양심적이고 의식있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자주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하여 합법적?비폭력적인 평화운동의 형태로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생산된 경제적 부가 민주적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2)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1991년 12월에 결성된 민족민주운동 세력의 결집체이다. 1989년 1월에 결성되었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합법정당 논쟁’으로 이부영을 비롯한 일부 간부진이 사퇴하고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정권의 탄압으로 조직역량이 약화되자, 침체되었던 재야운동세력들이 다시 모여 출범한 단체다. 민족민주운동진영의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결성 목적은 민중생존권 수호, 전 사회적 민주개혁, 민족자주권쟁취,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에 있었다. 주요활동은 ①1992년 총선 및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 ②범민족대회 참여 등 통일운동의 대중화, ③노동자?농민 등 민중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지원, ④국가보안법?노동법 등 악법개폐운동 등이다.(3)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국가발전 저해 요소중 하나인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94년에 발촉한 단체로서, 이를 위해 시민궐기대회 등을 통한 활동으로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본 단체는 전자신문인 밝은세상 뉴스를 발송하고, 시민 감시단을 운용, 부정부패를 감시하기도 하며, 시민의 소리, 신문고 각종 대안을 연구 수립한다.(5)한국자유총연맹한국의 대표적 보수단체로서 주로 회원은 전직 국회의원이나 국군장성, 예비역들이 많이 있다. 자유민족회의와 보수의 쌍두마차를 이루는데 전자는 강경보수단체라면 본 단체는 중도적 보수주의 단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관변단체, 즉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는 조직이다. 주요 활동은 반공활동에 대한 지도와 협조, 국제반공기구와의 연락 및 정보교환, 반공사상의 계몽, 기관지 《자유공론》 발간 등이다.(6)행정개혁시민연합모든 행개련 조직과 활동은 행정이나 정책의 주인이면서도 이를 어렵게만 여긴 나머지 제몫을 찾지 못 하고 있는 우리 일반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지지를 고대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의 힘을 모아 바람직한 정부를 만들어가고자 한다.2. 여성/인권(1)북한인권시민연합1996년 5월 인권운동가?지식인?탈북자가 중심이 되어 발족한 시민단체이다. 휴머니즘의 정신에 따라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개선하고 고통받고 있는 북한난민을 돕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의 시민단체와 인권 운동가들이 함께 하여 활발한 국제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또한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고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젊은 세대가 중심이 돼 실시하고 있다.(2)엠네스티 한국지부앰네스는 특정 정부, 정파, 이데올로기, 경제체제, 종교적 신념을 초월하여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순수 민간차원의 인권운동단체이다. 한국지부는 1972년 3월 28일 한국에서 최초로 인권운동을 시작한 후, 엠네스티는 줄기차게 양심수 석방, 고문종식, 사형제도 폐지 등을 위한 국제적 인권연대운동을 전개하여 왔다.(3)월드비전 한국월드비전은 기독교 선교단체로서, 지난 50여 년간 도움이 필요한 곳, 소외된 이웃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현재 국내에서는 13개 지역사회복지관 운영을 비롯해 75개 아동시설 지원, 결식아동지원, 폐광촌 진폐환자 결연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해외 저개발 국가에서 지역개발사업을, 재난과 분쟁의현재 유엔경제사회이사회특별협의기구로 활동하고 있다.3. 환경/노동(1)녹색연합녹색연합은 우리의 삶 터인 금수강산을 오염으로부터 되찾고, 나아가 대안문명운동으로서의 녹색생명운동을 널리 펼쳐, 궁극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어 살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과 그에 바탕한 녹색대동세상 건설을 위하여 활동한다.(2)환경운동연합지역운동의 확산과 초국적인 연대를 기치로 시민환경운동을 벌여온 환경연합은 2000년 8월 현재 46개 지역조직과 7만3천 회원이 함께 하는 아시아 지역 최대의 환경단체로 성장하였다. 환경연합은 새 천년, 환경의 세기를 맞이하여 환경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제기하고, 또한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 나가고 있다.(3)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외노협은 모든 회원(외노협의 목적과 규약에 동의하는 외국인노동자 상담소와 외국인노동자 공동체)이 주체가 되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단결을 통해 외국인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 및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며 세계 민중 연대를 발전 시켜 세계인류의 평화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4)한국노동사회연구소본 연구소는 노동자의 눈과 입이 되어,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이론과 정책을 생산한다. 또한 연구소는 현대 사회의 정보와 지식을 선도하는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싱크탱크로서,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노동자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국제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있다.(5)한국노동조합총연맹우리 노동자는 생산의 직접 담당자이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동시에, 사회정의 실현의 선구자이고 평화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전진적 문화 창조의 주역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사회?경제적 지위향상과 번영된 민주 복지사회의 건설 및 참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며, 강력한 정치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역량을 확고히 구축해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6)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생산의 주역이며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주체인 우리 노동자들은 일백여년에 걸친 선배 노동자들의 불굴의 투쟁과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거대한UN 마약통제본부, 콜롬보계획 등과 유대 강화), 홍보(방송 광고, 지하철 광고, PC통신, 홍보판 설치) 등이다.(2)진보네트워크정보화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변화 속에 진보운동의 각 부문간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을 되살려 사회적 연대전선을 재구축하고, 진보적 사회단체들이 겪고 있는 네트워크 활용 상의 어려움을 해결한다. 또한 분산되어 있는 진보운동의 정보화 성과물들을 모아 그 활용도를 높이고,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네트워크 활동을 한다.Ⅲ. NGO의 분류1. 현대 한국사회의 특징(1)탈 권위주의 시대권위주의)는 평등의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지배 복종의 관계를 강조하는 문화이다. 관지배주의나 관우월주의 또는 관존민비사상은 권위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가 보편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권한이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고 관의 민에 대한 책임의식이 약하다. 그리고 정책결정과정은 흑백의 논리에 지배되기 쉬워 수정보완과정을 좋아하는 점증주의는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하지만 최근의 정치문화는 이러한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탈 권위주의화 되는 경향이 강하게 일고 있다. 즉, 정치문화나 기업문화에서도 상향식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고, 이전의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대통령의 지위가 대통령 스스로가 탈 권위주의를 표방하면서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하나로 탈권주의화를 들 수 있다.(2)다원화 시대다원화란 대중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권력 엘리트가 사회의 권력을 독점한다고 보는 엘리트주의의 반대로 등장한 개념으로, 간단히 말해 가치의 다양성이 허용되고 존중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는 여러 이익 집단이나 결사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기보다는 다양한 집단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체제인 것이다.다원주의 한 형태를 Robert A. Dahl은 polyarchy라고 표현하고, polyarchy라는 것은 다수가 지배하는 체제, 즉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하는 현대다.
정당과 한국의 NGO11 -정당정치론Ⅰ. 서 론연구목적현대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로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해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체제로 선거를 통해서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가지게 되는 체제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정책수립에 있어서 얼마나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며, 국가 정책에 대하여 얼마나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가에 따라 정치의 척도가 결정된다고 하겠다. 현대 민주주의는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가 어려워 진 것에 대해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책을 내세우고 정권을 획득하여 정권유지의 목적을 가지는 정당은 빼놓을 수 없는 정치적 조직체이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국민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실질적 경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질적인 경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국민 개개인의 의사가 정당에 반영된다는 것은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NGO는 시민사회에 있어 대의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할 대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제도권에서 권력화 된 집단인 정당과 거리가 멀어진 시민들로써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정치적 의견을 결집해 나가는 NGO가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또한, 1990년 후반부터 수적으로 급속히 증가한 NGO는 비록 중심축을 구성하여 정치적 권력화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자체적인 연대체계를 구성함으로써 정치권에 대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는 추세이다.정당의 정치활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선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나 총선을 통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나아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획득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므로,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정당은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이할 점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정치에서 나타난 선거의 양상은 정당만의 활동으로는 폭 넓은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GO 의 성장과정한국의 경우 1980년대 후반까지 권위주의 정권은 시민사회의 성장을 억압하였다.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시민사회는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이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에 따른 지방분권화와 규제완화의 결과로 인하여 시민사회는 양적인 팽창과 더불어 이슈, 활동범위, 이념적 정체성 등에서 다양성을 띠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양정팽창과 질적성장,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는 시민사회의 중심적 행위자로 등장하는 비정부단체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제 16대 대통령 선거에 있어 시민사회의 활발한 정치참여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2000년 4월 13일에 실시된 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 전개한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대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2003년 2월 25일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한국정치에 있어서 새로운 정치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새로운 정치실험의 주요 화두의 하나는 시민운동 또는 시민사회 이다. 2002년 12월 19일에 실시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 문민정부 / 김대중 정부 - 국민정부 라 할때) 제 16대 대통령 선거는 평범한 시민이 주축이 되어 변화와 개혁의 21세기를 맞이해 처음으로 국가 지도자를 선출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시민 스스로가 한국정치 발전의 주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가 가지는 역동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아래 시민활동으로 대표되는 NGO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된다.■ 시민사회단체 설립 연도별 비율 구분시민사회지역자치빈민사회서비스환경문화교육 학술종교노동경제국제전체1940 492.0201.830.560.7782.52.43001.781950 591.79013.302.810.803.6405.135.591960 694.260.487.420.567.934.812.58.516.710.35.731970 796.610.484.성 정치 연맹, 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 등6) 교육, 문화-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열린문화운동시민연합,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 본부7) 자원봉사-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운동본부, 한국 자원 봉사 포럼, 한국시민자원봉사회 등나) 세부 내용1) 경실련경제 정의의 안정적 유지를 통해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를 목적으로 결성된 시민단체이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989년 7월 8일 명동 YWCA강당에서 500여명의 회원과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대회를 가졌었고, 그 해 11월 4일 '창립대회 및 토지공개념 강화입법과 주택문제를 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1500여명의 회원과 시민이 모인 가운데 열었다. 경실련은 공익성, 자율성, 자발성을 원칙으로 하는 비당파적 순수 시민운동단체이다.2) 장애우 권익 문제 연구소1987년 12월 2일 YWCA 강당에서 창립 후, 연구소는 장애우 정책 운동에 주력하고 인권 확보 운동과 장애우 전문 잡지 '함께 걸음'을 통해 올곧게 장애 문제를 알려내는 활동, 그리고 장애 문제에 대한 시민 교육을 하고 있다.3) 한국 소비 생활 연구원(사)한국소비생활연구원은 1994년에 개원, 1999년에 재정경제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제9호)된 비영리 민간소비자 단체이다. 건전한 소비실천확산에 중점을 둔 전문 연구교육기관이다. 한편 녹색소비자시대의 정착을 위해 환경보전실천운동의 일환으로 자원절약과 재활용의 생활화, 환경과 친화할 수 있는 소비행태 연구 및 실천, 환경친화적인 먹거리 보존과 같은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4) 환경운동연합‘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연합)'의 기원은 1982년 한국 최초의 환경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서 1988년에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와 ‘공해추방운동청년협의회'가 통합되어 발족한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으로 이어진다. 지난 1993년 4월 2일 공추련 등 전국 8개의 환경단체(서울 공해추방운동연합, 부산 공해추방시민운동협의회, 진주 남강을지키는시민의모임, 광주 환경운동시민연합, 대구 공해추방운동협의정과정에서의 의견을 제시하였고, 총선연대 행동조직으로는 대학생 퍼포먼스단이 각종 행사에 참여하였다.)2) 낙천운동낙천운동이란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이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낙천운동은 공천반대자 명단의 발표로 시작되었다.?경실련 : 2000년 1월 10일 - 낙천대상자 발표?총선시민연대 : 2000년 1월 24일 - 1차 낙천대상자 발표15대 국회의원 대상자 329명 중에서 60여 명을 공천반대자로 선정: 2000년 2월 2일 - 2차 낙천대상자 발표1차 발표에 추가 6명, 36명의 원외 후보 예상자 포함 42명: 공천철회운동 - 공천반대자 중에서 출마한 후보공천무효확인 소송 및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공천반대자 45명에 대한 소송 및 가처분신청 : 해당지역구 유권자 대상 원고인단 모집)→ 2000년 3월 26일 “지역구 유권자는 원고자격이 없다” 가처분각 하결정■ 총선시민연대 조직도3) 낙선운동낙선운동이란 후보자의 자질론이나 양심, 도덕적인 면을 감안하여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선거 중인 후보를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총선시민연대 : 2000년 4월 2일 - 전국대표자회의에서 낙선대상자 명단 발표(총 대상자는 86명으로 민주당 16명, 한나라당 28명, 자민련 18명, 민국당 8명, 한국신당 3명, 무소속 13명, 기타 4명)내용 - 낙선운동 상황실 운영, 집중 낙선운동 대상지역의 선정, 유권자 약속 227만 표 모으기 운동, 청년, 여성, 종교인과 함께하는 낙선운동4) 충북참여연대 활동?자료 제공2000년 1월 31일 : 충북총선시민연대 발족식(청주 CCC대강당): 충북지역 34개 단체(충북참여연대, 청주 경실련, 충북환경운동연합 등)2월 1일 ~ 10일 : 낙천대상자 선정, 발표2월 11일 ~ 26일 : 낙천운동과 공천철회 운동2월 27일 ~ 3월 31일 : 정치개혁 여론 확산과 조직확대기4월 1일 ~ 13일 : 낙선운동과 선거(4월 2일 낙선대상자 발표)?충북지역 공천반대인사 발표 인 원출마예상자한나라당3명신경식, 김현수, 이충범 선택의 척도로 하자는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메니페스토 운동은 언론의 집중적 조명 아래 전국적으로 바람을 일으키게 되었고 총선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는 선거에 있어 역할을 새롭게 모색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또한 총선과는 다르게 많은 후보자가 난립하는 지방선거의 상황아래서 지역 시민단체들은 과거 총선에서와 같이 모든 후보자들의 자질을 검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필요성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충북참여연대 역시 이러한 고민아래 지역 시민단체의 역할을 찾게 되었다. 중앙 방송사에 의해 자칫 외면되기 시운 기초단체의원에 대한 후보자 토론회를 지역 케이블 방송인 HCN과 공동으로 추진한 것이 그 좋은 사례일 것이다. 또한 이번 지방선거부터 낮추어 적용된 선거 연령을 고려하여 지역 내에 새롭게 등장한 유권자들을 배려하는 행사를 기획하였다. 즉 19세 새내기 유권자 토론회 등이 그것이다.이렇게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와는 다른 형태로 진행되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충북참여연대는 총선시민연대를 통해 전국적 규모의 정치참여 활동을 한 노하우와 지역에 뿌리를 둔 지역 시민단체라는 장점을 살려 이번 5?31지방선거 과정에서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것이다.Ⅲ. 결 론‘대구 지하철 사고와 시민단체의 대응’ 이라는 글을 읽었다. 대구에서는 수차례 계속해서 지하철 사고가 났다. 95년, 2002년, 2003년... 사건당시 대구지역의 시민단체인 ‘대구 YMCA', ’대구경실련‘, ’대구여성회‘등 몇 십 개의 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발표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나타냈다. 시민단체들은 어떻게든 단시일 내에 사고를 수습하려는 정부와 수사기관의 태도를 지적했다. 또한 시민제보 접수, 원인규명에 대한 심포지엄도 열었으며 공동으로 시민단체대책위원회를 조성해서 시장을 면담, 사고처리 감독 등을 맡았다. 2003년 2월에 발생한 대구지하철사건에서는 대구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큰 역할을 벌인다.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재난사고에 지역단체가 어떻게이다.
Ⅰ. 핵의 특성과 핵정치북한의 핵실험이 국제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한 나라가 핵을 가지고 있으면 핵의 국제 정치적 역할로 국가의 군사능력, 특히 군사공격력이 올라가게 된다. 현대의 군사력의 잣대는 핵무기의 보유와 더불어 보유량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1. 핵의 특성→ Pre-emptive war - 먼저 때리고 싶은 경향을 일컫는다. 핵무기라는 특성이 선제 공격(First strike)을 하게 되면 이미 상대가 일어서지 못할 정도의 치명타를 입히게 되기 때문에 생기는 특성이다.→ Endless Military Competition - 끝없는 핵 군비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Unit Veto System - 핵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 끼리는 좀처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약 전세계가 핵을 보유한다면 전세계가 거부권을 갖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Deterrence - 맹독의 독사가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 것처럼 핵을 가진 나라끼리는 서로 잘 건드리지 않는다.→ 핵이라는 것이 평화적인 이용과 군사적인 이용의 구분이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주도의 IAEA 가 핵사찰을 실시하는 것이다.미국의 NPT 논리는 이성적인 국가만이 핵을 갖자는 것인데 각 나라간에만 본다면 불평등 하지만 현실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이 같은 핵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핵을 갖고자 하는 까닭은 핵무기의 보유가 가져오는 균형의 힘에 있지 않을까? 특히, 후진국에서는 자주외교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메리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Ⅱ. 북한의 의도북한의 핵카드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이익은 생각보다 많다. 때문에 북한이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추측 또한 할 수 있다.우선 북이 핵 개발을 하게 된 동기부터 살펴봤을 때 안보위협, 후진경제, 국제질서에서의 고립 등 북한의 대내외적 환경과 상응하는 동기를 주요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에너지 공급원인 핵을 이용하여 타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 및 정치적 양보를 얻는 등 외교적 효과를 거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 북의 핵 개발 초반 의도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그들의 외교방법을 대표하는 벼랑 끝 외교 전술과도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심해진 경제 침체 속에서 핵 개발을 국내 체제 결속과 김정일 후계구도 확립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북의 노후한 재래식 군사력은 미국의 공격 위협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이를 보강하기 위해 핵을 개발한 것으로 사려 된다.북의 핵개발 의도와 핵실험을 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이 핵 협상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미국을 대상으로 북한정권의 정당화와, 현 북한체제의 보장이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현재 북한의 체제는 상당히 위기에 빠져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Ⅲ. 북핵문제와 주변나라와의 관계1. 중국의 입장과 의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북한에게 있어서 경제협력 의존도와 교역량이 가장 높은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2002년도 북한과 중국의 교역규모는 738백만 달러로 북한 교역량의 약 33%에 해당 되는 것이다.)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기본방향은 경제발전 및 사회주의 경제체제 확립에 유리한 평화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하고 신장된 국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2003년에 전격적으로 ‘평화와 발전’으로 수정하고, 세계 각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전방위 외교를 추친하면서 다극화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의 이같은 다극화 전략은 미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한편 여타의 강대국과 동반자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며, 구체적인 실현 수단으로서 다자간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책임 있는 대국’ 의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주변국의 경계를 완화함과 동시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한다.)이러한 대국외교는 주변지역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선린외교와 병행, 전개되었다. 선린외교는 주변국가와의 우호협력관계를 중시하는 외교로서 주변국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안보적 불안 심리를 완화시킴으로써 중국의 현대화를 위한 주변정세와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고 있다.)중국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주변국이면서 동시에 미국, 러시아, 일본등 강대국과의 이해관계가 조성되는 특수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의 대국외교와 선린외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역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실험에 대해 중국경제의 개방과 개혁이라는 국가적 사업의 기초아래 철저히 국익을 따지는 실용주의 노선을 펼칠 것이다.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기 전 중국에게 먼저 보고했지만 중국은 북한에게 지지를 버렸다.중국이 취하는 동북공정을 보자. 미국과 맞먹으려 하는 나라인 중국은 소수민족이 80%의 땅을 가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에 반발하는 세력으로서 근근이 살아있으면 더욱 좋고 설령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미리 작업해 놓은 동북공정으로 북한을 먹으려는 속셈이 분명하다.2.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일본은 지난 10년간 매년 500억 달러에 이르는 군비를 지출하고 있는데, 이것은 군비지출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3위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F-2, F-15J 같은 최신예 전투기와 이지스함 등을 보유한 일본 자위대의 전투력은 이미 중국을 능가하고 있으며, 이미 도입 배치한 조기경보 통제기(AWACS)와 2003년과 2005년 성공적으로 발사된 4기의 H-2A 정찰위성은 일본이 정보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으렀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에 대한 정당화와 자율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어 주변국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 나아가 일본의 우익들은 2003년 5월 전시대비법(유사3법)을 통과시키고, 평화헌법개정 논의를 통해 ‘일본이 적국의 선제공격에 대해 방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의 공격조짐이 있을 경우는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북한 핵실험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싶다.일본은 탈냉전 이후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성장과 군사력 증강에 맞서 미국과 미일 동맹 체제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에 따라 일본은 동북아 지역에서 이제는 일방적인 미국중심에서 벗어나서 동북아정세에 영향력을 끼치려 하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일본이다.나는 전시작통권 조기 환수에 대해서 반대하는 바이다.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한국이 채워 넣는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역량으로서는 시기상조라 생각된다. 미국의 공백을 그의 파트너인 일본이 차지한다면 큰 일이다. 주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시도하는 것은 미국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양국의 군사 협력은 이미 MD 추친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일본에게 식민지 경험을 가진 우리다. 그들이 물러간 이후에도 독도문제를 거론하는 일본이 점점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현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으로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는 일본에게 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은 막강하다. 여기에 북한 핵 실험은 자칫 일본에게 핵개발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까지도 핵개발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반드시 이것만은 피해야 한다. 이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같을 것이다.3. 미국과의 갈등북한이 왜 미사일을 쏘았을까? 나는 북한이 미사일을 장착했을 때 미국과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성격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미국이 거절한 것이다.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핵을 포기하면서 확실하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있어야만이 핵을 포기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북한의 행동은 신뢰감을 상실한만 하다. 미국은 핵을 포기했다는 것을 검증한 후에 경제적 지원을 주겠다는 것이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바로 지원을 달라는 입장이다.미국의 논리는 NPT체제에서 핵보유 자체가 위법이며, 북한의 핵보유 후에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지원을 하면 NPT체제의 세계나라들이 핵개발을 한다고 나서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논리는 각자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핵개발을 저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경제적 지원과 체제 유지의 일환으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Ⅲ. 결론북핵문제를 연구하면서 자주적인 역량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과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에 얽혀 갈팡질팡 하는 한국과 스스로 자멸하가는 북한을 지켜보면서 울분과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감상에 젖어있기 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입장에서 최선을 방안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정치를 배우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 씨티그룹-경희대NGO대학원 인턴십프로그램 활동보고서 >볼런티어21의 주요활동과 한국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제언1. 한국의 시민사회지난 한국의 역사에서 권위주의 체제는 시민사회의 가치를 억압하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근대화를 추구하여 왔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권력을 가진 국가는 정당화되었고 항상 시민사회 우위에 존재해 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개인의 자율성과 참여정신을 근본적으로 억압하였고, 또한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민주시민으로서 가져야할 자질과 태도를 함양하는 시민교육의 부재와 반공체제를 지탱하는 체제 지향적 교육으로 인해 공동체 정신과 질서의식을 가진 시민을 생산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적 가치, 자율적 인간, 참여 지향적 행동, 공동체적 사고를 가진 시민사회는 형성되지 못했으며, 부정부패, 불안한 경제, 복지의 부재, 빈부 격차의 고조, 이기주의의 만연 속에서 시민의식의 성장이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국 근대화 과정의 모습이었다.하지만 1980년 중반의 한국사회는 권위주의 정권과 시민사회의 저항이라는 정치적 대립구도 속에서 1987년 6월 항쟁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 후 시민사회의 팽창은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농축되어온 사회문제를 공론화 시키고, 시민사회의 조직화와 정치과정으로의 편입에 물꼬를 텄다.)1987년의 정치상황은 또한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권력의 태도에 일대 변화를 초래하였고, 위로부터의 민주화와 여론에 입각한 헤게모니적 통치, 그리고 그 후에는 위로부터의 개혁정치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특히 1990년을 전후한 냉전체제 와해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비정부조직(Non Governmental Organizations))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으며, 한국의 경우에도 NGO의 수는 1980년대 말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시민들은 권력이나 자본에 의해서 희생될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의 권리?평등?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한 성 차이에 의한 불평등의 구조에 저항하고,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 시민들 스스로회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 보다 큰 상황이다. 또한 전 코피아난 UN사무총장이 2000년 밀레니엄 총회 연설에서 21세기는 NGO의 시대라고 선언했다. 정부영역과 시장영역이 모든사회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등장한 제3의 영역인 시민사회는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한 핵심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따라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팽창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그리고 NGO에 대해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제는 팽창우선의 방향이 아닌 시민사회 내에서의 시민단체의 방향정립과 발전적 방향들이 모색되어 져야 한다고 판단된다.따라서 필자가 근무했던 볼런티어21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자원봉사 단체의 현 상황과 이를 한국 일반시민단체에 도입하여 한국 시민사회의 발전방향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물론 현 한국시민단체를 분류함에 있어 정치, 경제, 행정, 여성, 인권, 환경 등의 여러 분야의 단체들이 존재하지만, 이와 같은 단체들에 자원봉사 분야 NGO와의 비교를 통해 발전방안을 모색함에는 한계가 존재 하지만, 분명 가치 있고 건설적인 방향은 분명하다 판단된다.2. 볼런티어21의 활동(1) 볼런티어21 설립“훈련과 나눔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볼런티어21”이라는 슬로건 아래 1996년 창립하여, 우리나라의 자원봉사분야를 명실 공히 개척한 단체이다.초창기 볼런티어21이 발전 모델로 삼은 조직은 미국의 촛불재단(Points of Lights Foundation)이었다. 촛불재단은 국가의 막대한 예산 지원을 받되 정치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공공재단이며, 지방자원봉사센터를 회원으로 하여 자원봉사 정책을 개발하고 자원봉사를 활성화하기 위한 학문적 연구를 지원하며 양질의 자원봉사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자원봉사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전국자원봉사센터의 역할을 맡고 있다.)볼런티어21은 한국사회에서 자원봉사활동이 본래적 의미를 지키면서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촛불재단과 같은 형태의 전국자원봉사센터를 설립해듭하였다. 창립당시인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주제는 “자원봉사의 새로운 이해”, “공공부문 자원봉사”, “기업의 자원봉사”, “IMF시대의 자원봉사”, “병원자원봉사프로그램 관리”, “문화자원봉사프로그램관리”, “자원봉사센터 현황과 전망”, “풀뿌리조직 자원봉사 프로그램 운영” 등이었다. 한편 1999년 이후로는 주로 시대적 상황에 따른 특별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Wataru Ozawa 교수(일본 Ritsumeikan 대학교)한국?캐나다?일본 고교생 및 교사들의 자원봉사 인식 비교 연구 결과보고회(2007.1.22)2) 자원봉사 연구조사주요 연구주제는 자원봉사계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제도 및 정책에 대한 연구와 기업자원봉사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한 제도연구, 자원봉사관리 및 교육 커리큘럼 등에 관한 것이다.①한국인의 자원봉사 및 기부 현황조사 주기적 실시(1999, 2002, 2005년)②기업자원봉사프로그램 개발 방법 및 운영평가③자원봉사 영역별 활동 매뉴얼 제작④자원봉사 교육 커리큘럼 개발 볼런티어21 주요 연구문헌3) 자원봉사 컨설팅 및 자문활동볼런티어21의 자원봉사 컨설팅 및 자문활동은 1999년 컴팩코리아의 기업 자원봉사 컨설팅을 시작으로 2006년 현재까지 민간단체, 대학 및 대학원, 공공기관, 기업, 학생, 연구자, 자원봉사관리자 및 지도자 등 다양한 대상에게 연 200회 이상 제공되어왔다. 컨설팅 및 자문내용은 법인관련, 정부정책수립, 기업 자원봉사 정책수립, 효과적인 센터 운영방법 등이었다.기업 자원봉사 교육4) 정책제안①각 부처별 자원봉사인증제 사업 철회요청 성명서 발표- 2001년 보건복지부를 시작으로 여성부, 문화관광부(청소년 자원봉사) 등은 부처별로 별 도의 “사회복지 봉사활동 인증관리 사업” 시행계획 발표- 부처별 독자적 인증제 실시가 봉사자 관리의 비효율성 및 중복관리, 지역 체계성 훼손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한다고 판단, 이의 철회를 요청②정부 정책수립 제안서 제출-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당시 대통령, 특수교육분야, 상담분야, 공부방분야, 장애인분야, 재난재해분야, 노인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시도되었다.③종교단체 자원봉사자 교육종교단체의 자원봉사활동이 적극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다양한 종교영역에서 교육에 참여하고 의뢰해 왔는데, 교육대상자가 일반 자원봉사자인 경우가 많았고, 간혹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되었다.④자원봉사리더교육볼런티어21이 실행해 온 자원봉사 리더교육은 청소년 지도자, 노인지도자, 여성지도자 등 다양한 지도자를 대상으로 풀뿌리조직, 자원봉사센터, 시민단체, 복지관, 기업, 국립공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 졌다. 볼런티어 21의 리더교육은 5년 미만의 자원봉사 리더인 경우 자원봉사 리더의 자세와 역할, 지역사회와 자원봉사, 자원봉사활동의 의미와 비전찾기, 성공적인 자원봉사조직의 운영 등의 커리큘럼으로 진행되었으며, 5년차 이상 중견리더인 경우에는 문제 해결워크샵을 통해 스스로 현장에서 고민하는 문제를 내어놓고 문제의 원인 진단, 해결책 마련 및 실행계획 세우기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우는 훈련을 진행하였다.⑤자원봉사 관리자 교육볼런티어21은 자원봉사 교육전문기관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자원봉사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 관리과정을 탄탄하게 진행한 자원봉사관리자 아카데미의 역할이 컸다. 볼런티어21은 비전과 능력을 겸비한 자원봉사 관리자를 요구하는 자원봉사계 안팎의 요구를 체계화하여 1998년 자원봉사관리자 아카데미를 시작하였다. 주 1회씩 총 6주(50시간)과정으로 진행된 자원봉사 관리자 아카데미는 초기에는 자원봉사센터의 직원들이 많이 참여하였으나 자원봉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이후 사회복지시설 및 기관, 시민단체, 대학사회봉사센터 담당자, 병원 자원봉사담당자, 기업사회공헌 담당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실무자 등 참가자의 폭이 매우 다양해 졌다. 자원봉사관리자 교육과정3. 한국자원봉사단체 속의 볼런티어21현재 한국의 자원봉사단체 현황을 살펴보면 과 같다.) 한국자원봉02위와 같은 단체들의 중심에는 볼런티어21이라는 단체가 있다. 본 단체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단체들에 자원봉사 매뉴얼 보급, 자원봉사관리자 교육, 자원봉사프로그램 소개 및 개발, 자원봉사 포럼개최, 자원봉사 관련 연구 수행 등 대민밀착형 자원봉사가 아닌 프로그램 연구?개발을 통한 지원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지난 2006년 실시된 자원봉사교육 사업을 살펴보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2006 자원봉사교육 관련 사업내역사업명사업내용수행일정제13차 자원봉사관리자교육(단기과정)-참가자: 자원 봉사 담당 실무자 32명-내용: 자원봉사관리 및 조직운 영 강의 등 20시간일시: 3월21~23일장소: 서울유스호스텔제14차 자원봉사관리사자격과정-참가자: 자원 봉사 담당 실무자 26명-내용: 자원봉사관리 및 조직운 영강의,현장방문,과제 수행,자격시험 등 60시간일시: 4월18일~6월7일(매주 화, 총8회)장소: 볼런티어21 교육장제14차 자원봉사관리자일반과정(단기과정)-참가자: 자원봉사관리자30명-내용: 자원봉사관리 및 조직운 영 강의 등 20시간일시: 9월13일~15일장소: 대명리조트 양평자원봉사관리자일반과정수료자를 위한 1-day workshop-참가자: 자원봉사관리자33명-내용: 일반과정 수료 후 자원봉사관리자로서 지도력 향상 및 자기관리 및 네트워킹을 위한 강의 및 워크샵 8시간일시: 11월30일장소: 볼런티어21교육장2006 자원봉사교육역량강화과정-참가자: 자원봉사관리자 및 봉 사자27명-내용: 교육기획, 효과적인 자원봉사 교육방법, 강의실습 및 피드백 등 21시간일시: 2월22일~24일장소: 볼런티어21교육장경북자원봉사강사양성심화과정-참가자: 경상북도 내 자원봉사 관리자 및 봉사자31명-내용: 효과적인 자원봉사 교육 방법, 강의 실습 및 피드 백 등 심화과정 21시간일시: 4월5일~4월7일장소: 경주교육문화회관자원봉사리더양성협약기관선정-10개기관 개별접촉, 협약기관7 곳 선정-협약기관 교육생 모집 및 확정4월자원봉사리더교육컨텐츠회의-참가자: 각 협약기관실무자-내용: 3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