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짓이다를 읽고인간개발학부 20020853이혜숙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난 졸필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 글을 쓰곤 했다. 참 어이없긴 하지만 내 딴에는 공부를 하는 것 보다 그것이 빠르고 수월해 보였기 때문이다.그 날도 창원쯤인가(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마산에 있었다)에서 열린 고교생 백일장 따위에 나갔다가 허탈해 지는 기분만을 안고(늘 시제를 받고 글을 써나가다 보면 짜증 섞인 글만이 나오게 마련이고 백일장 장소를 떠나 내팽개치듯이 글을 내고 나와야만 비로소 오늘도 맘에도 들지 않는 글을 그저 써내고 나왔다는 사실에 허탈해 졌으므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마산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중학교 때 내게 국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선생님은 늘 그렇듯 안경너머로 나를 살짝 흘겨보시면서 "왜 연락이 뜸했느냐","공부는 잘되어가냐", "대학은 어디로 가려느냐" 하는 말씀을 하셨다. 고분고분한 제자였던 나는 여러 가지 자잘한 안부인사와 내 근황과 고민 따위를 적절하게 얘기하면서 버스를 기다리던 5분 여를 보냈던 것 같다.버스가 오기 직전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하셨다. "아직도 글을 쓰니?"백일장에 참가했으니 내가 글을 쓰고있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었다. 어쩌면 우스운 질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당시 나는 버스가 도착해 얼버무린 대답을 혼자 버스 안에서 곱씹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아직도 글을 쓰니?"나는 아직도 글을 쓰고 있기는 하다. 물론... 예전처럼 내 또래 녀석들보다 더 잘 쓴다는 우월감이나, 글을 써내고 난 뒤 느끼는 성취감 같은 것은 사라졌지만. 필요에 의해 정기적으로 써야하는 레포트와, 과제물... 그리고 재미 삼아 쓰던 것이 이제는 10년도 넘은 습관이 되어버린 일기와, 시시껄렁한 소설과, 시.아직도. 내가 글을 쓰고있을까...?전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늘은 비가 내렸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이른 저녁 무렵 엄습하는 허기를 달래려 간단히 차와 샌드위치를 먹고, 우산을 받아들고 거리를 걷다가 문득 과제가 생각나서 근처 서점으로 달려들어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사들고 집에 가는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전철 속에서의 40분 거리는 책의 1/4를 달려갔다. 손바닥만한 책이 읽히는 속도도 빠르다. 마치 저녁을 먹고 앉아 어머니와 딸들이 보는 트렌디 드라마처럼 가벼운 내용에, 주인공들의 대화-그 속의 시시껄렁한 위트조차- 영화를 보는 것(티브이로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결혼은 정말 미친 짓일까?소설의 첫 부분에는 미친 짓인 결혼보다 주인공의 가족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등장한다. 유행과 사치품에 정신이 팔린 여동생, 독실한 기독교이자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찍어내는 어머니, 위가 아파서 은퇴한, 코를 골며 자는... 아버지... 그 외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아니,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주절대는 것처럼 가족이라는 단위가 등장하는 연속극에서 등장하는 보편적인 가족 구성원들이다.그리고 등장하는 모든 사건 사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일상적이다. 한번쯤 나도 주위에서 보거나 듣고, 또 나 스스로 겪어서 마치, 주인공이 주절대는 것이 실제인양 생생하다.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독 비꼬아 틀어 생각하길 즐겨하는 주인공의 생각조차도, 어쩌면 일상적이다. "그녀"와, 주인공이 백화점으로 주인공 조카의 선물을 사러 가는 장면에서 주인공과 그녀의 대화가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 비슷한 옷가지, 머리모양, 유행.그건 정말 단순하게 예를 들 수 있는 문제이다. 엊그제 동대문으로 옷을 사러 나가면서 가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만난 남자와 똑같은 옷을 전시해 놓은 수십 개의 부스... 그리고 주인공 여자처럼 똑같은 옷을(똑같은 수영복 이야기)입은 사람을 보고 친구로 착각한다거나 하는 일은 정말 일상적이지 않은가.사람으로 북적이는 동대문이나, 명동, 신촌쯤을 걷다 나, 혹은 오늘 나와 차를 마신 친구 넷, 그리고 길가에 널린 그 사람들도 한번쯤은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서로 잘 알기 위해 시작했던 인터넷 까페의 100문100답 의 100답 조차도 100가지 다른 항목의 여러 가지 조합일 뿐 그게 나의 본질이라고, 나의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00개의 질문과 답에서 파생된 수백만 가지의 경우의 수로 60억이 넘는 인구를 나눠 보면, 이 세상 어딘가 나처럼 똑같은 조건을 가진 인간이 있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을까. -마치 영화 더 원의 설정처럼.-워낙에 우리 교수님의 스타일은 -_-...과제로 내준 작품(?)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한 적이 없는 것 같기에... 이번 과제에 대해선 뭐라 실 지 모르겠다. 늘-_-... 내겐 괜찮았던 작품이어서 "좋았다고"썼는데... 늘 수업시간엔 내가 쓴 과제를 미리 읽어오기라도 한 듯(제출도 안한 과제를!!) 팍팍 씹어주시던 교수님을 생각하면 " 이 소설, 괜찮았다. " 라고 쓰기가 다시 한번 두려워 진다.그렇지만 뭐 어떠랴. 내겐 2시간만에 읽혀진 이 소설은 가볍지만 그저 가볍기만 하지도 않았고, 허풍선이 주제에 철학이라는 어색하고 무거운 추를 달려 한 것 같다는 느낌도 별로 안 들었기에. 그냥 괜찮았다고 쓸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