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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인역 연구
    목차 *****************************************Ⅰ. 70인역 성경의 역사1. 기원2. 전승(2세기의 번역본)3. 70인경의 증거들1)70인경 편집본2)70인 역본 필사본3) 70인 역본 고대 번역본4. 확산5. 의의Ⅱ. 70인 역본 상이문구(相異文句)1. 사무엘상에 나타난 중자생략(重子省略)2. 마소라 사본 예레미야에 있는 확대 본문1)마소라 사본 예레미야에 나타난 이문융합2)명칭확대3. 기타 상이문구1)예레미야 외에 다른 부분에 나타난 첨가3)상이한 연대기4)편집에 대한 새로운 견해5)공관 평행 구절Ⅲ.성서학과 70인역 성경1. 언어2. 70인경의 본문 비평3. 사해문서의 발견과 70인경4. 70인역 성경과 신약 성경5. 70인역 성경과 히브리어 성경Ⅰ. 70인역 성경의 역사1. 기원70인경의 기원은 소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는 고문서를 통해 전설과 같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 방대한 문헌은 유세비우스나 이레니우스 등 거의 모든 교부들이 알고 있었다. 문헌 자체의 증거에 의하면 기원전 2세기 말경의 기록이나 오늘날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 진실성을 의심한다. 그들은 이 문서의 출현을 기원전 2세기-주후33년으로 잡고 있다. 즉 적어도 이 사건의 목격자에 의한 기록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 편지가 쓰여지게 된 동기를 유대인들이나 그들의 율법의 변증, 70인경의 정통성 및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따져 보면 우선 이 편지의 원본 문제, 역사성과 진실성 문제를 먼저 취급해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이 편지가 사실을 근거하고 있고 또 70인경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가정 하에 이 편지를 따라 70인경을 고찰할 것이다. 70인경에 관한 다른 모든 정보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절대로 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를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편지의 증언보다 더 나은 정보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톨레미 왕조의 2대 왕이었던 필라델푸스 왕은 도서관을 건립하고 이 도서관에 남다른 열심을 보였다. 그는0인역본이 편집본에는 바티칸 사본 본문이 각 페이지 상단에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본문과 고대 헬라어 구약성서 본문이 일치하지 않는다. 비록 바티칸 사본이 많은 사본들 가운데서 70인경이 가장 초기 형태에 속하는 최고의 유일한 증거 본문이지만 그것은 수백 개의 부수적인 본문들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비평적 본문은 그 캠브리지 70인경의 사용자 각자에 의해 재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현저하게 잘못된 바티칸 사본의 본문들도 편집자들에 의해 수정되어 왔기 때문이다.이 편집본의 기본적인 가치는 그것이 많은 양의 증거 자료들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대로 하나의 약점이 될 수 있다. 퀠러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것은 모든 자료를 제시하고 있으며 70인경을 탐구학자 하는 선장에게는 불가분의 것이다. 그러나 오두막집 소년이나 뱃사람에게는 단지 빠져 죽게 될 포효하는 바다일 뿐이다.)’ 이 편집본의 각 권에 있는 너무도 간단한 개론들은 모두 젤리코의 ‘70인역본과 최근의 연구’ 안에 제시하고 있는 자료들에 의해 보충될 수 있으며 새롭게 변경될 수도 있다.B.괴팅겐 70인역본괴팅겐 70인 역본에 있는 대부분의 책들에는 두개의 중요한 비평장치 단락들이 있다. 첫째 단락에는 캠브리지 70인 역본의 비평장치 1과 2에서 발견되는 자료 형태를 담고 있다. 더 많은 필사본들이 이 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외에도 그 비평장치는 두 가지 다른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 ①소문자 사본들이나 초서체 사본들은 작은 로마 글자로 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숫자로 표시했다. ②일반적으로 상이한 본문들은 군이나 계통들로 구별해서 수록했다. 이런 방법은 그 비평장치에 기록하는 문제를 간소화할 뿐 아니라 주어진 이문과 그것의 중요한 정도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단락의 비평장치를 잘 이용하면 직접 그 70인 역본의 수정 작업을 할 수 있다. 둘째 단락 비평장치는 헥사플라적인 자료를 담고 있다.이 편집본에 있는 각 권은 매우 긴 서론을 담고 있가지 종류, 즉 언셜체로 쓰인 고대 사본과 소문자체로 쓰인 중세 사본으로 구분한다. 나아가 사용된 필기구에 근거하여 파피루스 문서, 양피지 문서, 그리고 종이 문서로 구분된다. 파피루스 문서들은 그것들이 가지는 중요한 특수성으로 인해 언셜 문서와 구분되어 별도의 범주에 속한다.사본들은 소장 도서관이나 박물관의 색인 체계에 근거하여, 공유 이름이나 고유 번호 혹은 그 둘 모두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어떤 특정 분야의 학자들은 사본 내용의 유사성에 근거한 종합 색인 체계를 따라서 사본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인다.70인경 성경학자들도 그들 나름이 색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 대사수의 언셜 문서들은 알파벳 대문자로 표기된다.4. 확산70인경은 이집트에서만이 아니라 번역된 이후 오랜 시일을 거쳐 다른 디아스포라로도 확산된다. 그것은 아마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도 헬라어 성경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들 중에는 이렇게 오경이 확산되는 중에 다른 채들이 번역,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나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언제 팔레스틴에도 상륙하며 또 예수님 당시에 이것이 읽혀지고 있었는지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글러나 사도시대에 이 70인경은 회당에서 애용되었다.70인경이 세계로 확산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사도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 의해 헬라 언어권의 선교활동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특히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선교 및 저작활동을 위해 구약성경을 필요로 했는데 이미 번역된 70인경은 더 없이 좋은 도구였다. 70인경의 확산에 기여한 또 하나의 사건은 주후 70년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에 의한 성전의 파괴, 유대사회의 붕괴 그리고 뒤이은 유대인의 헬라세례로의 분산이었다. 즉 이제 히브리어 경전의 절대성을 유지할 기구가 사라졌다. 그리고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이 실용적으로 채택되었다.교회와 유대교는 그 기반을 유대주의에 두고 있다. 구약성경이 모두에게 전통적인 권위를 갖고 있1)마소라 사본 예레미야에 나타난 이문융합A. 예레미야25:6,7(a)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o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b) 그러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말이니라, (c)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같은 의미를 지닌 이문들 즉(a)-(b) 연속 본문과 (c)-(b) 연속 본문들이 예레미야 히브리어 필사본들에 나타난다. 그래서 70인 역본 마소라 사본보다 더 짧으며 또한 어순도 다르다.70인 역본 일반적인 정보를 언급하고 있는 반면에 마소라 사본은 이 짧은 본문 옆에 더욱 상세한 본문인 (b)를 갖고 있다. 흥미롭게도 새 영어 성서는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을 따라서 그런지 (a)의 표현을 생략했다. 반면 영어 개역 표준 성서는 어떤 설명도 없이 두 번째 ‘애굽으로’를 생략하고는 어떤 각주도 달아 놓지 않았다.B. 예레미야26:22여호야김 왕이 (a)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어 (b)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그와 함께 애굽으로 보내었더니70인 역본 일반적인 정보를 언급하고 있는 반면에 마소라 사본은 이 짧은 본문 옆에 더욱 상세한 본문인 (b)를 갖고 있다. 흥미롭게도 새 영어 성서는 ‘비블리아 헤브라이카’3판을 따라서 그런지 (a)의 표현을 생략했다. 반면 영어 개역 표준 성서는 어떤 설명도 없이 두 번째 ‘애굽으로’를 생략하고는 어떤 각주도 달아 놓지 않았다.C. 예레미야 41:10그대에 이스마엘이 (a) 미즈바에 있던 나머지 모든 사람들/ 왕의 딸들과 (b) 미즈바에 남아 있었던 모든 백성들을/ 곧 시위 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했던 자들을 사로잡고70인 역본 (b)부분을 번역하여 마소라 사본에서 (a)가 위치한 곳에 두었다. 결국 (a)부분은 70인 역본서 생략된 것이다. 앞의 1번 본문에서처럼 다른 순서로 결합된 생략 본문은 마소라 사본에서 (a)와 (b)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다른 본문들에 이문융합 되었다는 사실을 특이한 파생 본문들이 발견되어 왔다.그러나 이 모든 파생 본문들은 역대기 기자와 그의 신학적인 도는 정치적인 편견들에 기인된 것인가? 만일 역대기 기자가 더 탁월한 본문을 사용했다면 그 본문은 어떤 본문인가? 우리는 사물엘 쿰란 사본들과 요세푸스의 인용문 그리고 고대 희랍어 구약성서에 의해 가정된 히브리어 사본들 즉 루키안 원본과 카이게 형식의 사본들은 사무엘-열왕기의 세지방 본문 형태들이라고 임시적인 구분을 샜으며 또한 세 지방이란 이집트, 팔레스틴, 베벨론을 의미한다. 역대기 기자는 분명히 팔레스틴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그의 편집 원리들을 평가하는 유일한 방법은 단편적인 헬라어 자료들과 히브리어 자료들로부터 할 수 있는 데까지 재구성한 사무엘-열왕기 팔레스틴 본문과 그의 본문을 비교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차이를 밝히기 위해 우리는 현존하는 히브리어 본문들의 비교에 근거하여 역대기 기자의 편견을 간파할 수 있는 분명한 구절들을 조사할 것이다. 역대기 기자의 자료들이 팔레스틴 형태에서 관찰될 때 대부분의 편견들은 사라진다.5) 공관 평행 구절사무엘-열왕기와 역대기 사이의 공관 평행 구절들을 연구하는 목적은 역대기 기자에 대한 편견들을 제거하거나 재정의 하고자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런 연구는 우리가 이 책에서 전개해 가고 있는 본문 이론들에 대한 보편적인 정확성ㅇ을 입증해 준다. 역대기 기자는 4세기에 팔레스틴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사무엘-열왕기에 대해 그가 참조한 사본은 마소라 사본이 아니었다. 오히려 쿰란에서 후기에 입증되었으며 또한 최초의 70인 역본 번역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히브리어 본문과 밀접하게 관련된 팔레스틴 양식의 본문이었다.Ⅲ.성서학과 70인역 성경1. 언어70인경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배경과 재능들을 가진 번역가들이 생산한 여러 번역본문들의 혼합물이다. 이런 복잡성이 가장 분명하게 들어나는 것은 번역가들이 사용한 번역어에서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70인경의 언어 혹은 성경 헬라어 에 관해 이야기 하지만,.
    인문/어학| 2011.06.02| 16페이지| 2,500원| 조회(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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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원운동의 발전과 그 영향
    수도원 운동의 발전과 그 영향목차 *****************************************1. 수도원의 기원1. 수도원 설립의 배경2. 수도원의 정의와 양태3. 수도원의 역사적 발전2. 수도원의 종류1. 클루니 수도원2. 카르투지오 수도원3. 시토 수도원4. 탁발형태의 수도회(1)도미니쿠스회(2)프란체스코회5. 갈멜 수도원6. 어거스틴 수도회7. 무장수도원(1)성전 기사단(2)병원기사단(3)독일 기사단3. 수도원의 평가1. 긍정적인 면2. 부정적인 면4. 수도원 제도의 영향1. 교황권에 미친 영향2. 학문에 미친 영향3. 노동에 미친 영향4. 문화에 미친 영향5. 결론* 참고자료1. 수도원의 기원1. 수도원 설립의 배경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으면서 역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여러 변화 중에 중세 교회는 초대 교회가 물려준 축복을 망각하고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감독들은 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일삼았고 평신도들은 외형적인 특권과 권위를 찾기 위해 열심이었다. 형식상 제국 하의 교회는 놀라운 번영을 가져왔으나 진실 된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의 정진을 추구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화려한 황제의 궁정이나 번화한 도시를 떠나 조용한 곳을 찾아 그곳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곳에서 이들은 평화롭고 안정된 신앙생활을 위해 힘쓰며 공동체적 삶을 지속하였다. 도한 규정에 따라 말씀을 연구하고 그밖에 실천적 삶을 통해 기독교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수도사들과 수녀들에게 귀착되었다. 수도원은 교권적이며 제도적인 교회를 개혁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신앙생활의 실천을 강조하였다.)2. 수도원의 정의와 양태일반적으로 수도원은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이 공동 거주 장소로 개인의 신앙 정진과 완전한 성화를 우해 금욕 생활을 강조하였다. 당시 각 수도원은 한 사람의 지도 아래 가난, 정절, 순종 서약으로 공동 규범을 순수케 하였다.수도사들은아니라 사제와 부사제를 수도사 중에서 선발하였다.유럽 전역에는 수백 개의 클루니 수도원이 있었는데, 그 뜻 성장하다의 의미처럼 11세기에 제국과 교회와의 투쟁에서,) 특히 세속적 지위를 이용하여 막강한 권력을 사용하는 성직자들의 계서조직에 맞서 투쟁하였다. 클루니 수도원은 역사가들의 지적처럼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꽃이요 순결함의 본보기요 활력의 진원지였다. 이들은 교회의 세속화를 강력히 반대하며 개혁 운동에 앞장 선 대표적인 수도원이 되었다. 이들의 이상은 수도원 제도 안에서 관철되었는데, 1074년의 ‘교황 교령’, 즉 교황은 모든 이를 심판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심판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클루니 수도원은 세속사회는 물론 이전의 수도원 시대와 단절하기 위해 안전에 기초한 특별한 구조를 채택하였다. 무엇보다도 수도승들은 질서가 없으면서도 완전하게 보이는 사회와의 융합을 피하기 위해 세속세계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이들은 수도원적 경건의 회복, 예배의식의 발달, 평화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클루니 수도원은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매일 낭송하는 관습을 견지 하였다. 그들은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가톨릭의 전례 기도에 헌신하였다. 클루니 교단은 중보의 역할을 자신들의 원초적인 기능으로 삼았다. 그것은 스스로 부활의 방편이요, 천국으로 가는 문이 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한편 여가 시간에는 학문을 연구하고, 엄숙하고 정교한 의식들을 읽혔으며, 유명 인사들과 친근하게 교제하였다. 지적 활동으로는 필사본의 전사 작업을 전개하였으며 속세에 대해서는 다른 교단보다 개방적이었다. 또한 생활 예술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견지하여 세상의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이들에 의하면 교회의 타락은 세속화, 즉 성직 서임권이 국왕이나 제후 등 세속 지배자에게 장악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성직자의 결혼과 성직 매매의 금지), 니골라주의)의 척결, 그리고 교황 이외에 심지어 황제라도 성직자의 임명과 면직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클루니는 전 교회의 않고 모두 지킨다는 목표 아래 시작되었다. 이들은 자기부인, 가난, 간소함, 은둔과 순결 생활을 강조했는데, 뛰어난 농업 기술의 생활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들은 베네딕투스회에 안주하는 현실에 반기를 들고 교단 조직의분산화를 괴하였다. 특히 이들은 농노 소유를 거부하였으며 자신들의 손으로 황무지를 개간하여 당시 농업 개발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이들은 흰 승복을 입고 열정과 경건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100년 교황 파스카릴스 2세에게 승인을 얻은 이 수도회는 다른 개혁파 베네틱투스회 수도원들과 달리 봉토에서 나오는 모든 수입을 거절 하고 평신도 수사들의 지원을 받은 수사들 자신의 노동을 경제 기반으로 삼았다.4. 탁발형태의 수도회이 수도원은 십자군 전쟁으로 정신생활이 느슨해진 때에 일단의 수도사들이 절대적으로 청빈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탁발로 연명하는 생활을 추구함으로 태동하였다. 이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10년 프란체스코가 조직한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1216년 도미니쿠스가 창성한 도미니쿠스 수도회이다. 그리고 1247년 갈멜회, 1253년 아우구스티누스회, 1256년에 성모 하복회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모두 사도적 청빈과 교회에 대한 순종을 서로 결합시켰다. 그들의 사역 중에 특히 도회지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돌보는 일이 아주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교황의 승인을 받기까지 여러 지역 성직자들의 견제를 받았다. 수도회를 세우면서 탁발수도회에서 청빈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개인의 소유뿐만 아니라 일체의 공유권을 포기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게 포기했어도 사회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때문에 결심은 상당히 해이해지기도 했다. 프란체스코는 적어도 자기 수도회의 회원들은 걸식보다는 노동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회원이 증가하면서 어렵게 되자 점차 구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탁발수도회는 구걸하는 수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 조직 안으로 들어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1)도미니쿠스회:다. 도미니쿠스회와 프란체스코회는 이전 수도회와 달리 주로 도시와 읍에서 활동하였다. 그 이유는 탁발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디들을 통해 남녀가 일상적인 직업에 종사하면서 금식과 기도, 예배와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준수도원적 생활을 위한 제삼회 혹은 제3의 수도회가 태동하였다. 이들은 맹세와 무기를 드는 것을 삼갔는데, 후에 완전한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14세기 초에 1/5의 수녀원을 포함하여 약 1,400개의 수도원이 도처에 세워졌다.5. 갈멜 수도원이 수도원은 1154년경 이탈리아 수도사 칼라브리아의 베르톨드에 의해 팔레스타인의 갈멜산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1185년에 그곳에 은자들의 공동체가 세워졌다. 한때 이 수도회는 그곳에서 살았던 엘리야와 선지자 공동체로부터 직접 전해졌다고 주장하였다. 이 수도회 역사의 새로운 시기는 십자군 국가가 멸망하고 갈멜수도회 수사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열렸다. 1452년에 교황 니콜라스 5세에 의해 갈멜 수녀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16세기에 수사들과 수녀들 사이에 기강이 해이해졌다. 이에 아빌라의 테레사는 본래의 수도회칙을 회복하고 개혁을 위해 명상생활을 실천하였다. 이 개혁 운동은 맨발로 아려졌는데 특별히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 대한 특별한 헌신을 강조했는데, 최초로 가톨릭 무염수태 교리를 옹호하였다.6. 어거스틴 수도회1253년에 교황 알렉산더 4세의지시로 이탈리아의 여러 은수자 공동체를 통하여 어거스틴 수도회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이제 은수자가 아닌 탁발 수사가 되었다. 보통 수사 사제단 혹은 오스틴 교단으로 불린 이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수도회라기보다는 서임을 받은 성직자들의 무리ㅗ서 속세를 떠나지 않은 채로 청빈과 독신과 상급자에 대한 복종의 생활을 실천하는 단체였다. 시토 수도회가 엄격한 세상 거부를 통해 베네딕투스 수도회를 개혁했다면, 수사 사제단은 세사에 대하여 목회하는 사도적 생활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어거스틴이 성직자들과 수녀들에게 남긴 영적인 충고를 기초로 작성된 규율을 따랐다. 3세로부터 정식 수도원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후 기사단은 제 6차 십자군 전쟁을 수행한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지원 아래 크게 성장하였다. 이들은 흰색 외투에 검은 십자가를 표시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발트해 연안에서 군사력을 동원하여 이곳의 주민을 강제로 기독교화 하였다. 독일기사단은 1283년에 프러시아를 정복하공 지방을 기사단의 영지로 만들었다.3. 수도원의 평가1. 긍정적인 면(1)순수한 사도적 신앙과 전통을 계승 도모한 점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욕심과 욕망을 다 버린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오직 믿음으로 정진하였다. 그리하여 수도언의 핵심적 서약인 자발적 가난, 자발적 동정, 자발적 복종을 실행에 옮겼다. 이들은 가난했으나 깨끗하게 단순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천한 제자들을 열망하였다. 이는 믿음 안에 완전한 성화를 이루려는 영적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열망은 세상에 막강한 영향을 주었다. 이 수도원은 동방에서 시작되어 서방에서 발달하였다. 동방 교회는 서방 교회의 논리와 이성대신 감정과 영성에 기초하였다 서방 교회가 하나님의 연합과 초월성을 강조했다면, 동방교회는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 즉 인간의 신성화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이 성품에 참여하려는 열심과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통해 완전에 이르고자 한 것이다. 지소적인 영성훈련을 위해 기도와 명상, 독경과 금식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추구하였다.(2)사도적 신앙전통과 성화에 대한 열망은 중세의 낙후된 봉건적 영농생활에 실천적 농장 역할을 감당케 하였다. 다시 마하면 철저한 직업윤리와 삶의 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는 중세 모든 수도원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사실 당시에 봉건적인 영농생활을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었으나 아직도 노동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저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칭송이 수도원을 통해 표현되었다. 정당한 노동으로 만족감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곧 수도원의 발전에
    인문/어학| 2011.06.02| 11페이지| 2,000원| 조회(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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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서의 성경적 설교에 관한 견해
    역사서의 성경적 설교에 관한 나의 견해목차 *****************************************Ⅰ 서론Ⅱ 본론1. 역사서 설교의 문제1. 성경의 언어에 대한 무관심2. 모범적 설교3. 구속사적 설교2. 역사서의 명칭, 범위, 성격1. 히브리 전통과 기독교 전통에서 본 역사서2. 역사서의 범위3. 언어 구조물로서 본 역사서4. 내러티브로 본 역사서5. 케리그마로 본 역사서6. 역사적인 기록들의 성격3. 성경적 설교1. 성경적 설교는 무엇인가?2. 설교자의 자질과 자세3. 본문선택4. 성경해석1)역사적 해석2)유기적 해석3)하나님 중심적-그리스도 중심적 설교5. 역사서의 성경적 설교Ⅲ 결론Ⅰ 서론한번이라도 설교를 해 보았거나 설교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설교를 잘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필자도 교회의 한 부서에서 설교를 하는 사람으로 또 앞으로도 계속하여 설교를 해야 할 사람으로서 매 설교 준비 때마다 고민하는 것이 이러한 주제이다. 특별히 사역의 초기에 설교를 막 시작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더욱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나처럼 드는 생각은 “나도 설교 잘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저 설교를 잘하고 싶다고 하는 목표만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설교의 바른 방향을 파악하고 그 방향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는 작업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설교란 무엇이며, 설교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이 무엇이고 논쟁이 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필자는 자주는 아니지만 일기를 쓴다. 하루의 시간 속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다 기록하기 보다는 그 날에 기억해야할 특별한 것들을 기억해 내고 주제로 하여 그 주제를 상세히 적으려는 것이 필자의 노력이다. 때론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케치하기도 하지만 기억나거나 의미 있는 사건들을 먼저 기술하여 구성하기도 한다. 일기라고 하는 것은 학술 논문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필자의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이야기를 서술하거나 설명해 내는 내러티브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의도하고 있는 의미가 파악되고 전달되어야지 그 본문이 더 이상 예화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범적이라는 말은 성경에 묘사된 특정 인물들을 따로따로 취급하여 그들을 심리학적으로 그려내고, 그들의 투쟁과 시험, 그들의 힘과 연약함을 말하고, 그리고는 성경 인물들의 경험과 오늘날 신자들의 투쟁 사이에 평행선을 긋는 일이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 조상들은 성경 인물들의 미덕을 모두에게 모범으로 추천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악과 연약함을 경고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역사적 본문을 모범적으로 보았을 때는 구속역사를 세속역사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이런 모범적인 접근으로 인하여 역사적 본문의 해석조차 모범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모든 문학 장르에는 해석규칙이 있듯이 역사적 본무에도 해석적 규칙이 있다. 그 특별한 규칙을 결정하기 위해서 본문의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역사적 본문은 비유 같은 것이 아닌 역사의 사실로 다루는 것이 합당하다. 역사적인 본문의 예증적인 목표를 허용하는 것은 그것의 고유성, 곧 그것의 사실적 속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만약 서경 이야기의 사실성에 대한 확신이 역사적 본문들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에서 충분히 제구실을 하고자 한다면, 예증적 해석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단편적 해석이 구속사를 여러 조각들로 해체시킨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즉, 본문을 그 자체만 다루게 됨으로써 한 구속사의 통일성이 여러 이야기들로 해체된다. 반면에 본문 안에 있는 원자들을 본문의 내적 일관성, 곧 중심된 흐름으로 분리시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이 원자들 가우데 그 어느 것이라도 설교에서 독립적ㅇ로 취급된다면, 그 결과는 종속적인 부분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원자주의가 되고 또 본문의 중심된 흐름을 상실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만약 통일된 설교를 하기 위하여 하나의 원자를 중심에다 두게 된다면, 중심된 흐름은 중심적이지 않은 것에 대치되고 만다. 이 둘 중 어느 경우에건 본문은 왜곡되어 버릴 것이 있다. 역사서는 다지 과거의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한 “역사 보고”가 아니라, 선지자적 관점의 역사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점을 강조하며,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역사 안에서 성취되는지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고, 셋째, 그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선포이기에 그 성격상 “선지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기독교 전통에서 모세 오경은 여호와 종교의 기원을 보여주는 헌법과 같은 것이다. 이를 근거로 역사서, 시서, 선지서는 “과거-현재-미래”의 방향성을 띠고 배열되어 있다. 역사서는 언약의 주이신 여호와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사이의 관계사를 기술하고 있기에 “과거성”을 띤다. 한편 시서는 언약 백성이 언약의 주를 모시고 살면서 느끼는 삶의 고통과 기쁨을 표현한 애가와 찬양, 언약 백성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담은 지혜서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의 “지금 여기서의”삶의 체험, 즉 “현재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선지서는 물론미래 일을 주로 예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많이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런 방향성을 지닌 구약의 배열은 구약을 기독교 전통에서 이해, 해석하려는 이들에게는 마땅히 출발점이 이어야 한다. 비록 역사적인 요소가 종교적인 요소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서를 히브리 전통에서 전선지서로 부르는 것이 이해가 되지만 역사서를 신약의 새 계약의 “역사적 서론”으로 보는 기독교적 이해를 잘 드러내기에 “역사서”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2. 역사서의 범위이스라엘 역사서에서는 단순히 왕들의 통치와 업적을 기록, 선전, 전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왕들 개개인과 그들이 섬겨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 왕들을 평가하는 일차적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한 이 모든 왕들이 이스라엘의 율법전수자인 모세시대로부터 전해져 온 야웨 신앙의 전통을 무시하거나 떠나갈 대에는, 그것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등장하는 예언요소를 지니 내러티브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성경 기자들은 선택된 자료를 일지나 연감 형식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역사서 기자들은 등장인물과 플롯의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내러티브 형식을 사용하였다. 등장인물이 나오고, 이들의 대화나 행동이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가끔 내레이터의 논평이 등장한다. 이야기 초반부에서 갈등이 싹트더니 점차 커져 긴장이 야기되고 나중에는 절정에 이르렀다가 대단원으로 막을 내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등장인물 각자의 시점이 그들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제시되면서 다양한 시점들이 등장함으로써 사건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이런 점에서 구약 역사서는 여대기 성격의 역사가 아니라 “플롯으로서의 역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결과적으로 구약의 역사서라고 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모든 것들을 다 표현 할 수는 없다. 또한 때론 불필요한 기술하지 않아도 되는 사건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 특별히 역사서의 저자는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에 따라 철저히 기획한 것이다. 즉, 필연적 사건들로 구성하였으며 이 사건들은 필연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저자들 통하여 독자들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말씀인 것이다.5. 케리그마로 본 역사서구약 역사서가 선포라는 점은 역사서를 성경적으로 설교하는 데 있어서 명심해야 할 또 다른 요점이다. 역사서는 이미 설교이다. 여기서 역사서가 설교라 함은 현대적 의미에서 예배라는 의식에서 전달되는 “설교”라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서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대한 중립적인 기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케리그마라는 점에서 설교라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서뿐 아니라 성경 전체는 이미 선포요 케리그마이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해석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설교자의 과업은 과거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을 해석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구약 역사서는 인식 주체는 주로 성경본문에 대한 해석을 다룸으로써 듣는 사람들의 주의를 성경에 집중시키게 된다. 그리고 성경본문은 설교자를 비롯한 청중들에게 적용하게 된다. 성경적 의미에서 설교란 성경 본문과 오늘의 삶의 상황을 이어주는 교량이요 오늘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재발견 하는 작업이요 오늘의 상황을 말씀의 빛 아래서 밝히 조명해 주는 것이요 또한 설교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는 상황에 적용시켜주는 작업이다.2. 설교자의 자질과 자세)칼빈은 말하기를 설교자는 먼저 주석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성경해석에는 세 가지 규칙이 요구된다. 첫째로 성경 해석은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여야 하며, 둘째는 쓸모없는 여담과 수다를 피하고 간결하여 설교자가 설명하고자하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야 하며, 셋째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한 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증거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용기를 가진다는 말은 설교자에게는 이중적인 음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중적인 음성이란 양을 영접하고 모으는 음성과 이리와 도둑을 교회 밖으로 몰아내는 음성이다. 설교자는 양무리를 인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이리와 도둑에 대하여 대항하여 외치는 또 다른 음성이 있어야 한다. 양무리를 인도하는데 친절함과 자비로 해야 할 것이나 때로는 교훈과 훈계로 해야 한다. 그러나 회중을 훈계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훈계하여야 한며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 교훈을 실천하고 증거 해야 한다. 또한 칼빈은 이리와 도둑에 대하여 격렬한 태도를 견지했다. 곧 칼빈은 만인 제사장직에 근거하여 설교자의 직분을 무시하는 자들, 성령의 직접계시를 주장하는 신령주의자에 대하여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칼빈은 이와 같이 말했다. "율법이 오늘날에는 폐지되거나 더 이상 언급되지 않기를 원하는 자들은 개와 돼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칼빈은 설교자의 자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설교자들로 산들과 논쟁케하라. 그들로 언덕을 오르게 하라. 다른 말로하면 그들로 인간에 의하여 끌려 다니지 말게 하고, 그것이다.
    인문/어학| 2011.06.02| 22페이지| 3,200원| 조회(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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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자씨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1.비유의 해석사비유의 중요성과 복음서에 대한 비유적인 가르침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비유가 과연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비유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비로소 나오며 웅변의 한 방도로 사용된 비교나 비론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이 말이 쓰일 때에는 구약 성서적 배경을 가진다. 구약성서가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될 때에 Mashal이나 hidah라는 낱말이 그 같이 번역되었다. "mashal"은 잠언, 수수께끼, 속담 등으로 넓은 의미로 사용되던 말인데 70인역 성서이래로 “parabolh.”나 “paroimi,a”로 번역되었다. “parabolh.”는 “para”와 “ballw”란 두 말을 결합한 것인데 “para”는 줄을 따라, 옆에 가지런히 라는 뜻이며 “어떤 계통을 따라 끼치는 영향”을 지시하며 “ballw”는 던지다라는 뜻으로서 “어떤 권위적 행위”를 지시한다. “paraballw”는 어떤 것을 가지런히 던져 주어서 비교하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신약사전에서는 “parabolh.”를 “어떤 도덕적 혹은 영적인 진리를 위해 일상 생활 중에 흔히 일어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 형태의 예화, 비교 또는 유비”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리라고 생각되는 아람어는 “마들라(Mathla)"라는 말이었으리라고 한다. 이것도 잠언, 수수께끼, 어려운 문제, 암호의 해명등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A. M. Hunter는 비유를 정의하기를 ‘어느 한 영역에서 타당한 것이 다른 영역에서도 타당하다는 전제 아래, 어떤 영적 진리를 밝혀 주기 위하여 자연이나 일상적인 생활 안에서 끌어낸 비교’라고 하였다).래드는 비유를 정의하기를 “비유란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이끌어낸 이야기로서 우리 주님의 메시지의 핵심적인 진리를 예로써 보여주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 핵심적인 진리를 바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 부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드는 “비유는 자연이나 일상 생활에서 이끌어낸 은유리키고, 도덕적인 의미에서는 믿음을, 영적인 수준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루터는 그리스도는 겨자씨의 낟알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관목으로 이해했다. 칼빈은 겨자씨와 누룩 비유를 동일한 관점과 맥락에서 이해했는데, 그리스도의 왕국이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보잘것없는 상태이지만 그것은 마지막 성과를 통해 그의 능력을 찬양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19세기 이후 바이스는 겨자씨와 누룩 비유가 성장의 비유가 아니라 미세한 원인과 거대한 결과에 대한 대조의 비유로 해석하였는데, 겨자씨와 누룩 비유를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로 해석했다. 슈바이쳐도 이 비유에 대해 아주 미세한 겨자씨가 뿌려졌고 그것이 자라서 새들이 안식처가 될 만큼 아주 큰 관목으로 성장했지만 이러한 것은 예수님의 선포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을 갖고 도래할 것으로 보았다. 이는 미세한 시작과 거대한 종국을 대조하는 관점에서 겨자씨와 누룩비유를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바이스와 슈바이쳐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이스와 슈바이쳐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묵시적 개념이요, 그 도래가 임박한 장래에 잇을 것으로 기대된다.)"라는 철저한 종말론에서 겨자씨 비유를 해석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도드는 겨자씨 비유를 성장의 비유 개념을 새롭게 이해했는데 겨자씨와 누룩 비유에서 모호한 발전의 과정이 종말-현재에 완성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성장의 비유는 예수의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뿌려진 씨앗이 이제 그의 사역을 통해 추수괴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헤르만 리델보스는 겨자씨 비유의 요지는 적은 것, 하잘 것 없는 시작과 영광스러운 성취사이의 대조에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겨자씨 비유는 또한 천국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천국과 그리스도의 현재적 현현을 보고 당황하게 될 만한 현재성의 특징을 다루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현재성만을 강조하는 다드의 견해와는 다른 것이다. 리델보스는 이루어질 구원의 현실을 가리킨다. 여기서 ‘공중의 새들’은 세상 만민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러한 상징적 혹은 구상적 표현은 아주 친숙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성장, 발전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초라함과 미래의 영화로움 사이의 긴장 관계에 역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3.2. 겨자씨 비유에 나타난 예수의 삶의 자리겨자씨 비유의 청중은 제자들이다. 당시 예수가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실 때는 외인들에게는 숨기시려 하셨다(마4:10-12)). 마11-12장에서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거부당하셨는데 예수님께 적의를 품고 있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눈으로 볼 때, 위협적 존재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수께서 마13:1-35절에서 그 유대인들에게서 방향을 돌리시고, 사실상 그들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백성들이라고 비난 하신다. 왜냐하면 유대인 자신들의 하나님 나라의 기대에 대한 사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겨자씨 비유는 언젠가 거대한 나무가 될 천국이 작고 보잘것없는 형태로 이미 세상에 현존한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미미한 시작과 커다란 결말사이의 대조에서 이 비유의 강조점을 찾는데, 이것은 확실히 이 비유의 핵심이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들이 직면한 급박한 문제는 어떻게 천국이 그의 사역에서 구현된 대로, 그렇게 보잘것없는 운동으로 실제로 현존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열방이 피난할 거대한 나무와 같은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것을 망라하여 그렇게 나타나지 않는 천국에 대해 어떻게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도래하는 영광스러운 천국이 보잘 것 없는 소수의 예수의 제자들과 관련을 가질 수 있었는가? 예수에 의하면 처음에는 조그만 씨요 후에는 거대한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는 비록 작고 보잘것없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현존한다는 사실이다.이 비유는 예는 겨자씨 비유와 동일하다). 그러나 좀 더 세부적 차이가 있는데, 겨자씨는 성장의 과정을 다루는 반면에, 누룩은 성장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5. 겨자씨 비유의 주석#31절:Allhn parabolh.n pare,qhken auvtoi/j le,gwn h` basilei,a tw/n ouvranw/n ko,kkw| sina,pewj( o]n labw.n a;nqrwpoj e;speiren evn tw/| avgrw/| auvtou/이 비유의 첫 행에서 마태는 그가 선용하는 관용구 o`moi,a evsti.n(~과 같다)를 도입한다. 서두에서 비유를 시작하는 방식이 병행귀절인 마13:31과 막4:30, 눅13:18과 다르다. 마가와 누가는 두 가지 의문문으로 겨자씨 비유를 끌어내는 반면, 마태복음에서는 바로 예수님의 직접적인 설명이 나온다. 마가와 누가에 나오는 두 의문문의 형식은 유대인이 진리를 이끌어 내려는 통속적 의도로 기록된 것이다. 누가가 그 진리를 이끌어 내는데 비인격적(ti,ni o`moi,a)이며, 단수(ti,ni o`moiw,sw)의문문을 사용한데 비하여, 마가는 청중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나타낸 인격적이며,복수(o`moiw,swmen, ti,ni ... qw/men)를 사용하였다. 마가에 의해 사용된 이 방법은 e;gw 대신에 h``meij를 사용하는 것과 동상의 1인칭 단수 대신에 1인칭 복수를 사용하는 형식으로서, 당시 헬라 저자들뿐만 아니라, 통속적 언어와 본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형식이었다. 저자는 그것에 의해 독자를 자기 자신의 행동과 연대감을 갖게 하였다.31a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그의 전이적 진술은 이 비유가 앞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과 동일하게 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저희 앞에”라는 사실을 통해 입증한다.31b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와 같다” 마태는 천국을 한 알의 겨자씨에 비추어 비유를 시작한다. 천국을 예증하기 위한 한 대상물로서 겨자 더 크고”라는 크기에 대한 진술과 대조적 병행구이다.32b “자랐을 때에는” 마태복음의 auvxhqh/|는 이 배경에서 비교적 찾아보기 힘든 동사이다. auvxhqh/|는 “뿌리다(e;speiren;31c)”와 “나무가 되어(gi,netai de,ndron;32d)”사이의 자연적 변화를 제공하는 표현이다. 마태는 천국을 겨자씨에 견주어 말하므로, 그가 겨자씨의 성장과 결부시켜 천국의 상을 본다는 건 분명하다.32c-d “채소보다 더 크고 나무가 되어”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겨자씨가 나무가 되는 것이 과장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재배된 겨자 관목은 10내지 12피트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보다 키가 작은 초목들일지라도 아랍 세계에서는 나무로 지칭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겨자수가 그 어떤 상상을 펼침으로써 de,ndron, 즉 정작의 수목으로 분류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마태는 32a의 mikro,teron과 mei/zon을 비교급을 사용하여 대조를 고조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32d에서는 de,ndron(나무)을 언급하면서 동사 gi,netai를 사용하고 있다. 마태는 동사 gi,netai를 능동형이 없고, 중간태나 수동태의 형을 가진 데포넌트 동사를 사용하되 현재형으로서 “나무가 되어 가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의 면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32d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본문은 구약으로부터의 인용구들이다. 이 세 개의 기술들의 하나하나는 식물이나 나무의 성장을 말하고 있다. 이 개념들과 겨자씨 비유의 개념들 사이의 유사성은 명백하다. 또한 새들이 둥지를 틀거나 짐승들이 숨을 곳을 찾는 나무의 표상은 강대한 제국에 대한 구약의 친밀한 이미지이다.“하늘의 새들”을 어떤 사람은 가시적 교회가 성장할 때 사탄의 역사가 교회에 깃든다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이것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맨슨과 다드는 이 표현이 이방인에 대한 은근한 언급을 대표한다고 설득력 있다.
    인문/어학| 2011.06.02| 8페이지| 1,500원| 조회(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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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신학 정리(슐라이어막허, 바르트, 불트만)
    현대 신학자의 사상 요약.? 슐라이에르마허1. 개관인간의 이성, 감정, 자연을 중시하는 현대사조의 도전 앞에서 신학적으로 응답했던 최초의 신학자이다. 그는 현대의 인간관과 세계관에 기초하여 기독교의 전통적 진리를 현대의 정황에 맞게 재해석함여 현대신학의 질을 제시하였다.그러나 그는 인본주의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역사적 기독교의 신학 방법론을 포기하고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신학의 토대로 삼음으로써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2. 그의 신학a. 신학방법론슐라이에르마허는 칸트의 비판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종교의 자리를 초월적 요소나 하나님의계시의 말씀에서 찾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경건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종교의 자리를 인간의 감정에서 찾았다. 그에게 종교를 연구하는 것은 종교인 자신의 종교적 감정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하는 것이다. 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인의 종교저거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의 신학방법론은 사변철학적 신학을 거부하고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감정에서 찾음으로써 신학에 활력과 관심을 불어 넣었지만 신학의 토대를 객관적 자료 위에 세우지 않고 인간의 감정 또는 자기의식에서 찾음으로써 신학의 주관화를 초래했다.b. 신론그의 청중이 비기독교인인 경우에는 종교의 본질을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대상이 기독교인 일때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존감정”으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을 우주와 동일시 한 것은 범신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끝내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 부르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우주와 하나님의 질적 차이를 말하지 않았고, 따라서 평생동안 범신론이라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했다.c. 그리스도론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표현대신에 그리스도의 신의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했다. 즉 신성은 본질을 묘사하는 개념인 반면에 신의식은 ‘그리스도가 사실은 신이 아니고 다만 인간일 뿐인데 자기 자신의 탁월한 도덕성이나 능력을 보고 자기자신을 신이라고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 슐라. 속죄란 하나님 의식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할 때 뒤따르는 인간 의식과 감정의 변화라고 보았다.e. 죄론죄란 인간의 의식이 하나님 의식에 대항하는 것이다. 죄는 부분적으로 인간에게 기원하며, 부분적으로 우리의 존재 밖에서 기원한다. 이는 죄가 인간의 행위임을 말하며,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즉 인간이 죄의식을 갖게 될 때에 죄가 성립이 되며,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죄의식을 갖게 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f. 결론그의 문제는 칸트의 비판철학을 받아들여 기독교의 모든 초월적 요소들을 내재적 요소들로 환원시켜 설명하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하나님과 우주를 동일시하는 범신론에 빠졌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신학의 토대로 삼음으로써 주관주의에 빠지게 되었다.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기독교를 새롭게 설명하려 했던 슐라이에르마허의 시도 그 자체는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지만 현대인의 사조에 지나치게 아부한 나머지 기독교의 교리적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면서 이런 시도를 할 때는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기독교가 아닌 종교철학을 세우게 되고 만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바르트1. 바르트 신학의 배경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전개하면서 대두한 신정통주의 산학자들의 사상적 틀을 형성한다.a. 실존의 개념이 세계 안에 실제로 생존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을 실재로 이해했다. 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양식이 인간에게 적용되었을 때 실존이라는 단어를 썼다. 실존은 인간의 진정한 구체적 존재 양식이다. 영원한 진리는 실존적이고 주관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b. 역설의 개념역설이라는 말은 진리를 조화를 이룬 하나의 통일체로서 이해하지 않고 명제와 반명제간의 대립과 긴장이라는 변증법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는 사상과 존재가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역설적이지 않으나, 현 뜻한다.2. 바르트의 신학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칼 바르트의 신학은 신학의 자료를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서 찾는다.a. 배경바르트는 그의 목회에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으로는 회중들의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설교를 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귀신들린 사람 앞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1차대전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을 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근본적인 환멸을 느끼게 된다.b. '로마서주석‘에 나타난 변증법적 신학바르트는 로마서를 주석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거대한 크레바스(빙하 중간에 난 길은 균열), 건널 수 없는 극지대, 또는 사막지대가 놓여 있으며, 영원과 시간이 만나는 지대는 칼날과 같은 예리한 선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체험하며 경배하는 존재와는 일치하지 않는 존재이며,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으로서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는 존재다. 인간이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하나님은 우상일 뿐이다. 하나님은 피안으로부터 마치 일종의 공습경보와도 같이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모든 것을 동요시킨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는 이 세상과 인간의 위기다(위기신학). 이 같은 바르트의 초절적 신개념은 19세기를 풍미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학화된 신개념 그리고 이성을 신뢰한 문화적 낙관주의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었으며, 1차대전을 전후한 정치/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기도 했다.역사적 예수 사건은 인간세계라는 수평의 선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수직의 선이 직각으로 내려 꽂혀서 만난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은 인간 세계 안에서 어떤 외연도 가지지 않는다. 곧 이 점은 어떤 역사적 도는 심리학적인 폭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적 빛의 방사이며, 빈공간일 뿐이다.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부활한 예수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 세계이며, 역사적 직아예 차단시켜 버렸던 것이다.c. 바르트의 교회교의학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종교의 자리를 인간의 경험이나 역사나 윤리적 공동체에서 찾음으로써 주관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던 사실을 비판하면서, 신학의 토대를 객관적인 근거에서 찾고자 했다. 바르트에게 이 객관적인 토대는 성경 안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성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다. 여기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가지 형태로 구분하는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그리스도, 계시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 선포된 말씀인 설교, 여기서 가장 근원적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경과 설교는 2차적인 것이요, 무오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비평학을 받아들인 바르트는 성경전체를 오류가 없는 기록으로 본 개신교 정통주의의 입장을 거부했다. 향후 바르트의 신학은 철저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됨으로써 기독론적인 일원론의 성격을 띠게 된다.1) 하나님과 인간의 매개1, 예수 그리스도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형상과 현존재 안에서만 이해되는 계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독자적 주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건널 수 없고 매개될 수 없는 무한한 질적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연결되며, 초월적인 하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인간성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타자로서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대자로서, 인간과 만나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신다.2) 하나님과 인간의 매개2, 유추하나님과 인간, 자연과 은총, 창조와 구속 사이에는 유추의 관계가 성립한다. 곧 세계의 사건들은 구속사건의 거울이자 비유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신적 본성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유추로서, 신앙의 유추, 계시의 유추이다. 곧 이 유추는 하나님과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본성과 나아가서 전 세계의 현실태를 제시하는 일반적이고 초시간적인 원리로 등장하고 있음을 감지하며, 바르트의 보편주의적 사고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3) 은총의 선택론바르트는 하나님의 본질을 충만한 사랑이 넘치는 힘과 자유로 규정한다. 이 넘치는 사랑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태초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존재에 대해 결정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 앞에서 인류의 대표자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선택된 인간이다. 태초에 하나님 곁에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는데 이것이 바로 예정의 모든 것이다.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유기를, 인간에 대해서는 연합을 선택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이와 같은 영원에서의 선택을 통해서 인간에게는 다만 선택, 축복, 생명을 생각하셨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다만 유기, 저주, 죽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기의 대상이 됨으로써 보편주의에로 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유기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향하였으므로 이제 인간에게는 유기란 없게 되는 것이다.4) 보편 은총론하나님의 행위는 예외 없이 은총이며 결코 취소할 수 없는 원결정이므로 어떤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도 변경될 수가 없다. 인간의 유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기에 의하여 지양되었고, 이 같은 지양은 역사 속에서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선시간적인 영원의 영여에서 일어났다. 물론 바르트는 범구원론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범구원론은 하나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바르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보편적 은총에 근거하여 인간을 사랑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때 인간은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게 되는데,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우리가 버림받은 자로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영원한 처벌인 것이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역사적 종말론은 역사 내에서 느끼는 실존적 종말론으로 환원되는 것이며 이는 만인구원론으다.
    인문/어학| 2011.06.02| 5페이지| 1,500원| 조회(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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