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아들 > - 급진적 변화에 빠졌던 젊은이들...이 작품에서는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생각의 차이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바자로프와 알카지를 중심으로 한 신세대와 알카지의 부모와 바자로프의 부모를 구세대로 하여 그들간의 갈등, 고민을 나타내고 있다. 알카지는 바자로프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고, 스승으로 삼았으나, 결국 그의 사상과는 분리되었다. 바자로프 또한 그의 신념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졌으나 결국 그는 종반부에 바뀌게 되고 말았다. 젊은 신세대를 대표했던 이 두 사람이 바뀌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자로프 그 자신은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무가치를 생각하고 낭만주의의 대표하는 시보다는 실제주의의 농민들을 더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바자로프 자신은 그 스스로도 그러했지만 주위의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 또한 그를 니힐리스트라고 단정했고, 닮고 싶어 했었다. 아무것도 여기지 않고 무가치하게 생각했던 그도 결국엔 바뀌게 되었다. 모든 계급을 무시하고 옛것을 무시하던 그가 어떻게 해서 변화를 갖게 되었을까? 그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 그런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한때 가졌던 생각은 젊은이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객기라고 생각된다. 한때 유행하는 노래처럼 그들도 한때에는 그 유행하는 사상에 빠졌던 것이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니힐리스트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 세상을 떠받들고 자신도 그처럼 되는 것이 멋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니힐리스트를 대표했던 바자로프 역시 변화하면서 종반에는 그런류의 인물은 사라져간다.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믿지 않았고, 구세대들이 중시했던 시와 글, 자연들도 비판했다. 그런 그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졌다. 얼마안가 자신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되돌려 놓기는 했으나 그건 잠시였다. 죽음을 앞에 둔 그는 오진소바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했고, 모든 것에 대해 비판을 하던 그가 세상을 유익하게 살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다음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정말 당신은 너그러운 분입니다, 아아,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젊고 싱싱하고 깨끗한 당신이.... 이런 더러운 방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오래오래 사십시오. 그것이 무엇보다도 좋은 것입니다. 늙기 전에 마음껏 유익하게 사십시오, 자, 저를 보십시오. 이 얼마나 추한 모습입니까. 반쯤 짓밟힌 벌레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할 일을 끝내야겠다, 나는 죽을 수 없다, 내가 할 일이 있다, 나는 거인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 거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훌륭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런걸 아무도 알 바 아니지만,,, 뭐 상관할 거 없어요, 이제 몸부림 쳐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세상을 순리대로 변화시키려 했다면 그는 이런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젊은이의 객기로, 열정으로 모든 것을 생각했기에 그는 결국 허무하게 죽어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젊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한 그의 생각은 마지막엔 위의 글처럼 바뀌게 되었다. 그런 그를 따랐던 인물이 알카지였다.그는 처음부터 니힐리스트가 되기엔 너무도 순박하고 착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도시에서 지냈고, 지내면서 어울리는 사람들의 가진 생각을 공유했었을 것이라. 물론 나이가 어려서 생각의 정립이 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바자로프를 스승으로 삼고 따르긴 했으나, 그것도 한때였던 것이다.그는 자연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생각이 긍정적이었다. 그는 감정 또한 풍부했다. 그런 그가 니힐리스트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처음부터도 바자로프를 100% 좋아한 것은 아니였지만, 그에게서 마음이 떠나간 것은 그가 오진소바를 사랑하면서 바뀐 모습을 보고난 후 부터였고, 그가 카차에게 마음을 연후부터였다. 처음에 그는 진보적인 모습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가진 오진소바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진보적이고 당당한 모습의 그런 사람에 대한 마음이었으리라. 그는 카차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카차와 이야기하고 정원을 거닐고... 그는 예전에 바자로프만 어울렸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카차와의 만남이 잦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변화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정립된 니힐리스트로서의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그와 어울리는 친구의 사상을 본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카차는 그가 변화했다고 얘기하고, 그런 얘기에 대해 그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이 아닐까? 알카지는 카차와의 만남과 생각이 자신에게 더 맞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파벨과 니콜라이의 인생은 어찌되었을까?파벨과 니콜라이는 구세대의 산물로서만 그려졌던 것일까? 아니다. 그들 역시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살았다. 파벨은 그가 젊었을 당시에 유행했던 그런 차림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바자로프와의 만남에서 불쾌했을 거라는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한 때 사교계를 휘어잡던 그가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 입장이 되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는가... 그 역시 한 때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진보적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자존심으로 인해서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대로를 고집했던 것이다. 이런 그의 모습이 현재의 젊은이요, 세상의 중심인 바자로프에게는 퇴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음은 당연하다. 파벨은 그런 그를 싫어했고, 결국 결투까지 하게 되지만 상처를 입고 깨닫게 된다. 자신이 지나간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그는 페네치카에게 동생에게 자신과 같은 그런 상처를 주지말라고 부탁하고, 결국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