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서론 -----------------------------------------------------1Ⅱ. 고전적 조건화와 조작적 조건화 -------------------------------11. 고전적 조건화 --------------------------------------------------11) 고전적 조건화의 주요 개념 ---------------------------------------------2(1) 소거 --------------------------------------------------------------2(2) 자발적 회복과 재조건화 ----------------------------------------------2(3) 자극일반화와 변별 ---------------------------------------------------2(4) 고차적 조건화 ------------------------------------------------------32) 고전적 조건화의 학습 원리 ----------------------------------------------3(1) 시간의 원리 --------------------------------------------------------3(2) 강도의 원리 --------------------------------------------------------3(3) 일관성의 원리 ------------------------------------------------------3(4) 계속성의 원리 ------------------------------------------------------32. 조작적 조건화 ---------------------------------------------------41) 조작적 조건화의 주요 개념 ----------------------------------------------4(1) 강화 ---------------------- 행동의 변화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따라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관찰 가능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행동주의 학습이론의 근본 원리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연합이다. 자극이란 유기체가 감지, 관찰할 수 있는 사물과 현상을 뜻하며 반응은 자극에 대하여 유기체가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행동주의 학습이론은 이러한 자극과 반응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이론으로 자극-반응 이론(S-R 이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행동주의의 대표적인 학습이론으로는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화와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가 있다. 조건형성(條件形成, conditioning)혹은 조건화(條件化)는 특정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조건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행동을 변화 내지 수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말한다.)고전적 조건화와 조작적 조건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여 조건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학습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Ⅱ. 고전적 조건화와 조작적 조건화1. 고전적 조건화고전적 조건화는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에 의해 주장된 학습이론이다. 개의 소화기관을 연구하던 파블로프는 한 실험을 설계하였다. 파블로프는 훈련받지 않은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주었고 종소리가 개의 타액 분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그 뒤에 파블로프는 개에게 먹이를 제시하였다. 먹이를 본 개는 타액을 분비했다. 다음 단계로 그는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준 뒤 먹이를 제시하였다. 이를 반복하자 개는 먹이 없이 종소리만 들려주어도 타액을 분비하게 되었다.처음 개에게 들려준 종소리는 중립자극(Neutral Stimulus : NS)으로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먹이은 무조건자극(Unconditional Stimulus : US), 먹이에 의해 분비된 타액을 무조건반응(Unconditional Response : UR)이라 한다. 이 때의 무조건이란 동물에게 있어서 예외 없이 무조건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중립자극이었던 종소리한 강도의 반응을 되살릴 수 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한 조건화는 처음의 조건화보다 신속하게 형성되는데 이것을 재조건화(reconditioning)라고 부른다.(3) 자극일반화와 변별특정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도록 학습-조건형성-되면 조건자극과 유사한 다른 자극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하게 된다. 이를 자극일반화(generalization)라고 한다. 이때의 반응 강도는 원래의 조건자극에 가까울수록 커지고 멀어질수록 낮아진다.자극일반화로 인해 유사자극에 모두 반응하는 상태의 학습자에게 특정한 자극에만 반응하도록 강화를 계속하면, 학습자는 각각의 자극을 구분하여 조건자극 이외의 유사한 다른 자극에는 반응을 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두 개 이상의 자극을 구분하는 능력을 변별(discrimination)이라고 한다.(4) 고차적 조건화일단 조건자극이 조건반응을 형성되고 난 뒤, 조건자극에 새로운 자극을 결합시켜 반복적으로 제시하면 유기체는 새로운 자극만으로도 조건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조건화 되었던 본래의 자극은 이제 무조건자극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처럼 기존의 조건자극을 무조건자극으로 해서 2,3차 적인 새로운 조건화가 유도될 수 있는데 이를 고차적 조건화(higher-order conditioning)라고 한다.2) 고전적 조건화의 학습 원리(1) 시간의 원리조건자극(CS)과 무조건자극(US)을 결합하는 시간적 배열에는 다음과 같은 패러다임이 있다. 동시조건형성, 지연조건형성, 흔적조건형성, 역행(후진)조건형성, 일시적 조건형성의 다섯 가지로, 각각의 패러다임은 조건자극을 기준으로 무조건 자극이 어떻게 제시되는 가로 구분된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연구에 따르면 지연조건형성이, 특히 조건자극이 주어진 후 0.5초 뒤에 무조건자극이 주어질 때 조건형성이 가장 잘 이루어진다.) 따라서 조건자극은 무조건자극보다 시간적으로 앞서서 제시되어야 학습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2) 강도의 원리조건자극은 수용자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자극이어야 한다.주는 또는 반응을 강하게 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강화의 종류에는 정적강화(positive reinforcement)와 부적강화(negative reinforcement)가 있다.정적강화란 어떤 행동을 하고 났을 때 쾌감을 주어서 그 행동을 다시 할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반응이 자극의 출현이나 자극의 강도 증가에 의해 증강된다. 반대로 부적강화는 어떤 행동을 하고 났을 때 유기체가 싫어하는 대상, 자극이 제거됨으로써 그 행동을 다시 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부적강화에서 제거되는 자극이란 소음 등과 같이 유기체가 회피하거나 도피하려고 하는 종류의 어떤 것을 일컫는다. 부적강화에서는 반응이 자극의 제거나 자극 강도의 감소에 의해 증강된다.강화물(reinforcer)란 뒤따르는 반응의 비율을 증가시키거나 강하게 하는 어떤 후속자극, 사건을 말하며 강화인자 또는 보상이라고도 한다. 강화물은 일차적 강화물과 이차적 강화물, 일반화된 강화물이 있다.일차적 강화물이란 별도의 학습에 의존하지 않는 자동적, 선천적으로 작동하는 강화물이다. 일차적 강화물은 생물학적 욕구의 만족과 관련되며 음식물, 물과 공기, 성적 자극 등이 있다. 이차적 강화물은 단독적으로는 강화능력이 없는 중립자극이 다른 강화물과 반복적인 연합에 의존하여 형성된 강화물로 고전적 조건형성의 과정을 통해 학습되며 칭찬이나 성취감 등이 있다. 이차적 강화물은 다른 강화물과 짝지어져야 강화능력을 획득할 수 있으므로 조건 강화물(conditioned reinforcer)이라고도 하며 일차적 강화물과의 연결이 제거되면 일반적으로 강화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일반화된 강화물은 이차적 강화물의 일종으로 상이한 다수의 일차적 강화물과 결합해서 형성된 강화물을 말하며 광범위한 상황에서 사용이 가능하며, 대표적인 예로는 ‘돈’을 들 수 있다.강화에 영향을 주는 변인으로는 수반성과 근접성, 강화물의 특징, 과제의 특징, 박탈수준 이 있다. 수반성이란 반응과 그에 따른 결과 간에 확립될 수 있는 특별한 관계로 사건 A가 일어나면인 반응을 보인다. 고정간격계획과 유사하게 여기서도 강화를 받은 후 얼마 동안 휴지기간이 나타나는데 이를 강화 후 휴지(post-reinforcement pause)라고 한다.) 강화에 대해 요구되는 반응의 횟수가 클수록 휴기가 더 길게 나타난다.라) 변동비율계획특정한 평균 횟수의 반응에 기반을 둔 강화 제공 방식으로 요구되는 반응의 수가 변칙적이기 때문에 강화가 주어지는 주기를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계획에서는 꾸준한 반응을 보이며 고정비율계획보다 휴지가 뜸하거나 기간이 짧은 경향을 보인다.(3) 처벌강화가 행동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자극이라면 처벌(punishment)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의 강도를 감소키는 역할을 하는 어떤 자극이나 사건을 말한다. 처벌에는 정적처벌과 부적처벌이 있다. 정적처벌은 부정적인 자극(혐오자극)을 제공함으로써 반응의 빈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꾸중이나 체벌이 그 예이다. 부적처벌은 유기체가 선호하는 무언가를 제거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의 빈도를 감소시키는 것이다.처벌에 영향을 주는 변인으로는 수반성과 근접성, 처벌물의 강도 등이 있다. 처벌에서 수반성이란 적용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특정 행동에 대해 일관된 반응(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근접성의 원리에 따라 행동과 처벌 사이에 지연은 짧을수록 좋다. 처음에 약한 처벌물로 시작하여 서서히 그 강도를 높여 가는 데에서 생기는 문제점은 처벌물의 강도가 증가되는 동안 처벌받는 행동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행동을 억압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처벌물이 필요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처벌물의 강도는 처벌을 하려면 행동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만큼 강력한 처벌물을 가지고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4) 소거와 자발적 회복유기체가 조작행동을 실행했을 때 그에 따른 강화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으면, 조작행동이 사라지는데 이를 소거라 한다. 소거는 얼마나 자주 강화를 받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계속적 강화에서는 강화가 중지되면 소거가 빨리종이다.
관동지방과 관서지방의 식문화 차이Ⅰ. 관동지방과 관서지방 개관----------------1Ⅱ. 관동과 관서의 음식문화 ------------------21. 가미가타요리(上方料理) -----------------------------21) 교토와 오사카의 요리 -----------------------------32) 가미가타의 요정요리 ------------------------------42. 에도요리(江戶料理) ---------------------------------41) 에도요리 -----------------------------------------42) 에도의 포장마차 요리 -------------------------------53. 에도의 메밀국수와 오사카의 우동 ---------------------54. 에도마에스시와 오사카의 스시 -----------------------65. 기타 --------------------------------------------7 -------------------------------------8관동지방과 관서지방의 식문화 차이지역을 구분하는 방식은 기후나 지형과 같은 자연환경이나, 사회 역사적 연원, 생활문화 등 어떤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현재 일본의 행정구역은 도도부현(都道府?)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일본은 1도(都) 1도(道), 2부, 43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8개의 지방으로 구분할 수 있다. 8개의 지역은 홋카이도지방, 도호쿠지방, 간토지방, 주부지방, 긴키지방, 주고쿠지방, 시코쿠지방, 규슈지방이다. 이와 별개로 일본에서 널리 통용되는 지역 구분 방식은크게 관동지방과 관서지방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관동과 관서의 경계는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니가타현?나가노현?시즈오카현을 경계로 이들 지역을 포함한 동쪽을 관동지방, 나머지 서쪽을 관서지방으로 본다. 좁은 의미로서의 관동과 관서지방은 도쿄도와 혼슈 동부의 6현을 포함하는 지역을 간토지방, 오는 가미가타의 맛으로, 에도의 맛이라는 관동요리의 시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에도막부가 에도에 설치되면서부터이다. 두 지역의 맛의 비교는 에도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1. 가미가타요리(上方料理)가미가타요리를 대표하는 맛은 「담백한 맛」이다. 가미가타는 궁정요리에서 시작되어, 불가의 정진요리나 다도세계의 가이세키요리 등, 아주 세련된 요리로 매력적인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가미가타요리에서는 주로 묽은 간장으로 간을 한다. 이 묽은 간장은 진한 간장보다 고농도로 재료 본연의 색을 살리는 「옅은 색」에 그 특색이 있다. 가미가타 요리는 맛이 연하면서 국물이 많고, 재료의 색과 형태를 최대한 살리는 특징이 있다. 가미가타 요리는 다시 교토와 오사카로 나누어진다.1) 교토와 오사카의 요리천황이 살던 곳으로 정치의 중심지였던 교토는 귀족문화가 발달하여, 우아한 궁중 문화를 보여주는 요리가 되었다. 교토에는 귀족이 낳은 구게요리,유쇼쿠요리와 날 것을 넣지 않은 사원의 정진요리, 다도세계의 가이세키요리, 그리고 교토 서민들의 음식인 오반자이가 있다. 내륙지방인 교토는 해산물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채소, 민물생선, 건어물을 주재료로 한다. 교토와 가까운 해안지역은 대부분 갯벌로 된 곳이었기 때문에 교토의 생선은 갯장어를 비롯한 갯벌 지역의 바다생선에 불과했다. 예전부터 야채와 건어물이 주재료였던 교토는 지금도 특산 야채의 종류가 제일 많으며, 이를 맛있게 요리하는 기술인 「조림」과 「무침」이 교토요리의 특징이 되었다.일 년 내내 축제, 행사, 관례가 있었던 교토에서는 정해진 날에 정해진 반찬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매월 1일에는 다시마 말이, 8일 붙는 날에 대황조림, 월말에는 콩비지, 15일에는 교토명물인 새우토란과 대구포를 매콤달콤하게 조린 것을 먹었다. 교토에서는 건어물, 염장식품, 공 등의 단백질과 지방이 함유된 식품과 야채를 섞은 균형 잡힌 조림과 무침, 츠케모노 등 두 세 가지 반찬을 준비하는 게 보통이었다.오사카는 예로부터 구이다오레(먹는 것에 목를 비롯해서 관동요리의 중심지인 요코하마 등의 대표 지역이 대부분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과 바로 접하는 지역이라 생선을 구하기 쉬웠을 뿐만 아니라 생선의 종류도 관서지방과는 달랐다. 또한 에도 지역은 하천이 많은 지역이기도 해서 민물생선도 다양한 편으로 특히 민물장어 요리가 발달했다.가미가타 요리가 주로 묽은 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과 달리 에도요리에서는 진한 간장(코이쿠치 간장[濃口?油])을 사용하며 간장과 설탕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에도요리는 가미가타 요리에 비래 맛이 달고, 짜며 농후한 맛이 난다. 따라서 관동지방의 조림은 재료의 온전한 형태가 유지되기 어려우며, 국물이 거의 없고 짭짤한 편이다. 간장의 사용이 많은 이유는 수질 때문이다. 연수라서 물이 부드러운 관서지방의 경우 소금만으로 약간 간을 하지만, 관동지방의 물은 경수라서 거칠다. 따라서 간을 강하게 하면서 소금이 아닌 간장을 사용해서 맛을 진하게 한다. 설탕의 경우는 당시 권력자와 부유층이 많은 지방이어서 수입품인 고가의 설탕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2) 에도의 포장마차 요리에도는 산킨고타이(에도 막부가 영주들을 견제하기 위해 일정기간 에도에 머무르게 한 제도)의 무사, 인근지역에서 품팔이를 하러 나온 기술자 등의 독신 남성이 많은 곳이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외식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날품팔이에 의존하는 기술자들은 현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먹을 수 있으면서도 배를 채울 수 있고 가격이 싼 메밀국수 같은 포장마차 요리를 즐겼다. 에도에 포장마차 요리가 발달한 또 다른 이유는 화재 때문이었다. 에도에서는 3년에 한번 꼴로 큰 불이 났던 에도는 이 때문에 도시 문화가 아주 발달했다. 1657년 정월에는 대참사에 이르는 큰 불이 났었고, 대참사 뒤 전국에서 에도로 사람이 몰려와 에도 재건은 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 사람들을 위한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발달된 것이 바로 소바, 튀김, 스시 같은 일본 전통의 패스트푸드들이었다. 본격적으로 스시가서 전국에 에도마에스시가 퍼졌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에도의 스시가 에도마에즈시로 대표된다면 오사카에는 하코즈시, 오시즈시, 치라시즈시, 마키즈시, 보즈시, 무시즈시가 있다. 하코즈시는 상자에 밥을 깔고 위에 생선을 올려 눌러서 직각으로 썰어 만든 스시다. 오시즈시는 목판에 식초를 가미한 밥을 일정한 모양의 상자에 넣고 스시 재료를 얹은 뒤 힘으로 눌러 만든 스시이다. 치라시즈시는 식초를 가미한 밥을 그릇에 담고 어패류나 다양한 재료를 수북히 담은 스시이고, 식초를 섞은 밥과 재료를 김으로 말아 썰은 것이 마키즈시, 식초를 가미한 밥을 봉 모양으로 만들고 간을 한 고등어, 다시마를 순서대로 얹어 대나무 껍질로 힘주어 만 보즈시, 맛을 낸 표고버섯·박고지 등을 섞은 초밥에 구운 붕장어 등을 얹어서 찐 스시가 무시즈시이다.5. 기타?스키야키 : 관동지방은 간장, 설탕, 미림 등의 조미료를 넣은 장국인 와리시타에 쇠고기를 넣어 익혀 먹고 관서지방은 고기를 굽고 나서 조미료를 더해 먹는다.?오죠니 : 지방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다. 관동지방에서는 사각형으로 관서지방에서는 원형으로 만든다.?오시루코 : 팥알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것과 껍질을 벗겨 만든 것이 있다. 관서지방에서는 팥을 으깨지 않고 만든 오시루코를 젠자이라고 한다.?오니기리 : 관동에서는 오무스비, 관서지방에서는 오니기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낫토 : 낫토는 관동지방에서 주로 먹고, 관서지방에선는 잘 먹지 않는다.? 단행본정형, 『사진과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다락원, 2004정형, 『일본어로 읽는 일본문화』, 다락원, 2007김숙자 외, 『사진으로 보고 가장 쉽게 읽는 일본문화』, 시사일본어사, 2010정현숙?한영혜, 『일본학개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7봉영아, 한일언어연구원 저, 『일본의 모든것 지식백과사전』, 제일어학, 2006은미경, 『도쿄 3S (스시·소바·사케)』, 달, 2008? 인터넷http://ko.wikipedia.org/wiki/http://」、大阪?京都?神?を中心とする地域を含めた地方を「近畿地方」と呼んでいる。Ⅰ. ?東地方と?西地方???東地方というのは東京都を含む日本本州の東部に位置する茨城?、?木?、群馬?、埼玉?、千葉?、神奈川?の1都6?の地方のことである。?東地方はまた大きく南?東と北?東の二つに分けることができる。南?東は千葉?、東京都、神奈川?、埼玉?のことで、北?東は茨城?、?木?、群馬?のことをいう。なお政府の行政上8つの地方に分ける時は首都?に山梨?が含まれるので?東地方を?明するときに山梨?を含むケ?スもある。?東地方は日本最大の平野「?東平野」が中央に?がり、北西側は山岳地?、東南側は太平洋に面する。東京都を中心に明治時代から工業が?達し大都市化した?東地方は日本の?人口の3分の1が集中している。東京?沿岸には?前から京浜工業地が形成されていて、また京葉工業地帶、鹿島臨海工業地帶も形成されている。北西側の山岳地?には?光地が形成されている。?西地方は南の紀伊半島から北の若??に至る地域で、中?地方と中部地方の間にある地域だ。?西地方には兵庫?、京都府、滋賀?、大阪府、和歌山?、奈良?、三重?などが含まれる。?東地方の文化と?史的な面から「近畿」または「?西地方」とも呼ばれている。近畿という言葉の「畿」の字は首都(都、みやこ)という意味で「近畿」というのは首都から近い地域、つまり首都?を意味する。 ?西地方は10年前までは日本の首都があって、アジア本土から先進文化を受け入れる玄?口として???政治?文化の中心地だった。?西地方の中心は大阪を代表とする大都市?である。京都?大阪?神?の三つの都市を中心に大都市?が作られ、このような大都市?を三つの都市の頭文字から「京阪神」とも呼んでいる。この三つの都市をつなぐ形で?道、私?、高速道路が?達されており、JRを中心とした?東地方の地下?とはまた違う。政治???の中心が?東地方に移った現在も西日本の?点であり、日本?統的な?史?文化の中心である。Ⅱ. ?東と?西の食文化本?の日本料理の主な材料は肉じゃなくて野菜と魚である。??の影響により유제품、油をほとんど使わずに材料の自然の風味を生かすため香辛料もあまり使わない。日本料理の原型が形づくられたのは室町時代(1338-1573)の頃で、以後、近代的食品流通網ができるまでは、各地にそれる。
북한문학사의 시대구분과『장화홍련전』평가 양상의 변화목 차Ⅰ. 서론 1Ⅱ. 제 1기 - 해방에서 유일사상 체계 확립 전까지 (1945~1966)31. 평화적 민주건설시기3 2. 조국해방전쟁시기33. 전후문학 시기4 4. 천리마운동시기5Ⅲ. 제 2기 - 유일사상 체계 확립과 주체사상 (1967~1979)51. 유일사상 체계 확립과 수령형상창조52. 유일 혁명 전통으로서의 항일 혁명 문학7Ⅳ. 제 3기 - 1980년대 이후71. 1980년대의 북학문학72. 1990년대의 북학문학8Ⅴ. 북한의 고전문학사와『장화홍련전』평가 변화91. 북한의 고전문학사 개관92. 「장화홍련전」의 평가 변화10Ⅵ. 결론13참고문헌14Ⅰ. 서론북한에서 출간된 문학사 관련 저서는 대략 10여 종으로 파악되며 이중 널리 알려진 자료로는 59년 판『조선문학통사』(상,하)와 전 5권으로 된 『조선문학사』(1977~1981), 86년 판 『조선문학개관Ⅰ.Ⅱ』, 전 15권 『조선문학사』(1991~2000) 등이 있다. 각 서의 문학사 시대 구분을 간략)하면 다음과 같다.『조선문학통사』는 1900년대를 기점으로 상하권을 구분하였다. 상권에서는 원시?고대문학은 소략하고 14세기 이후는 세기별로 나누어 19세기까지를 서술하였다. 하권은 1900년-전후시기의 문학으로 구분하였다. 『조선문학사』(5권)은 사회문화과학원 문학연구소에서 발간되었으며, 1권은 고대 중세편 (원시/고대/1~7세기 전반/7세기 후반~9세기/10~12세기 전반/12세기 후반~14세기/15~16세기/17세기/18~19세기)이고, 2권은 19세기 말~1925년이다. 3권은 1926~1945년으로 나뉘었고 4권은 해방이후부터 1958년까지를, 5권에서는 1959~1975년까지를 다루었다.『조선문학개관Ⅰ.Ⅱ』에서는 1926년을 기점으로Ⅰ(조선문학의 시초/1~7세기 전반/7세기 후반~9세기/10~14세기/15~16세기/17세기/18~19세기 중엽/19세기 후반~20세기 초/1910~1920년 전반)에서는 원시 고대~1920년 전반을, Ⅱ에서는 1에 해당하는 광복 직후부터 1967년까지의 북한문학사는 정치적인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으며, 평화적 민주건설시기(1945~1950.6), 조국해방전쟁시기(‘1950.6~1953.7), 전후문학 시기(1953.7~1960), 천리마 시기(1961~1967)의 네 단계로 구분된다. 이 중 평화적 민주건설시기는 다시 고상한 리얼리즘이 정착되는 1947년을 기준으로 나누어진다. 주체문학이 주류를 이루기 전인 1967년까지의 북학문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일반론에 입각한 ‘문학의 유일한 최고의 창작 방법’ 이라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학이 문학 실천의 중심)을 이루었다. 북한 문예이론의 미학적 특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3대 원칙은 문학의 인민성, 당(파)성, 계급성으로 이는 북한문학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조이기도 하다.1. 평화적 민주건설시기해방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이라는 변화를 겪게 된 북한문학은 프로문학의 비판적 계승에서부터 시작된다. 안함광은 「민족문화론」에서 과거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단순히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현단계적 특질 위에서 계승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후 북한에서는 민족문학론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노동자 계습의 이념을 견지한 채 그 위에서 민족문학론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프로문학의 비판적 계승과 남한과 다른 독자적인 문학의 방향에 대한 논의에 대해 김재용은 민족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는 역사적 의의와 관련을 가지며, 대중적 토론과 진정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이 시기의 활발한 민족문학론이 6?25 이후의 편협한 순수주의나 정치주의적 성향과 비교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김용직은 일제하의 규제와 핍박 때문에 위축된 힘을 기능적으로 회복하지 않고는 사회주의 예술이 요구하는 인민을 위한 창작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점과 김일성 중심의 북쪽 정치 여건의 작용)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1946년 말 북한 사회에서는 의식의 개혁을 위해 ‘건국 사상 총동원 운동’이 주장되었다. ‘건국 도 많이 창작되어졌다. 1958년 김일성의 교시「문학예술분야에서 반동적 부르주아사상과의 투쟁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교시가 내려지면서 반대되는 두 세력 간에 촉발된 논쟁에서, 당시의 공산주의 문학에 배치되는 도식주의 비판 글들이 부르주아 잔재라고 규정되어 비판을 받았다. 이 논쟁에서 도식적 리얼리즘관을 가지고 있던 주도적인 논자들의 일방적인 비판)으로 끝나게 되었다.4. 천리마운동시기전후 복구 시기를 통해 추진되었던 농업 부문과 상공업 부문의 협동화 작업이 1985년 완성됨으로써 북학은 사회주의제도가 일단 확립되었다.) 이에 1960년부터 사회주의의 전면 건설을 모토로 북한은 ‘천리마운동’을 가속해서 추진한다. 북한 인민의 사상 개조를 목적으로 하는 천리마 운동은 혁명적 사상의식의 강조와 더불어 인민의 생산력을 혁신을 꾀하는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우리 인민은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라는 정치 구호 하에 놓이게 됨에 따라 문학은 ‘천리마현실을 반영하며 시대의 영웅인 천리마 기수들의 전형을 창조’해야 한다는 정치적 주문)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의 북한 문학은 천리마운동의 현장 하의 인민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품과 김일성의 영도성을 찬양하는 작품, 항일무장투쟁을 형상화한 작품 등이 창작된다. 또한, 1950년 후반에 처음 언급되기 시작한 항일 혁명 문학은 1959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북한의 혁명적 문예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Ⅲ. 제 2기 - 유일사상 체계 확립과 주체사상 (1967~1979)1967년은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하는 체계가 확립되는 체제 변화기로 북한문학사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모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해이다. 이 시기를 계기로 북한 문학은 그 이전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에 기초하고 혁명 전통으로서의 카프 문학과 항일 혁명 문학을 계승하던 입장에서 주체 문학 예술에 기초하고 항일 혁명 문학을 유일한 혁명 전통으로 인식하는 입장으로 완전한 변모를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체제 변화와 그에 따른 문예 정책의 변화가 반영되문학을 계승하던 입장이었다면 1967년을 기점으로 혁명 전통은, 주체 문학 예술에 기초하고 항일 혁명 문학을 유일한 혁명 전통으로 인식하는 입장으로 전환된다.항일 혁명 문학에 대한 최초의 논의는 1953년의 항일 무장 투쟁 전적지 조사단의 파견과 조사단의 답사 보고서에서 비롯되었다. 1956년을 전후로 1953의 답사 자료를 근거로 항일 혁명 문학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1950년 말부터 북한 문학의 혁명전 전통으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형성된 항일 혁명 문학은 1967년 이후 ‘수령의 지도를 받은 것만이 혁명 전통이 될 수 있다는 수령관에 따라 혁명적 문예 전통’)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 이전에 김일성과 항일 유격 대원들의 집체 창작이라고 되었던 것이 이 시기에 이르러 김일성의 창작으로 바뀐 것이다.)혁명 문학이 혁명적 문예 전통으로 평가되면서 김일성이 활약했던 항일 유격 투쟁, 김일성이 그 당시에 창작 했다는 작품을 여러 예술 형식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항일 혁명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 앞에서 언급된 4·15창작단의 『불멸의 역사』시리즈를 비롯하여 『피바다』,『한 자위단의 운명』,『꽃 파는 처녀』등의 희곡이 소설·영화·가극으로 재창조 되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이 시기 항일 혁명 문학이 형명적 문화 전통으로 평가하게 되는 과정에서 김정일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Ⅳ. 제 3기 - 1980년대 이후1. 1980년대의 북한문학1967년 유일사상 체계가 확립된 이후 주체 문학이 지배적인 문예 정책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후의 모든 문학적 활동은 이에 직적접인 영향을 받았고, 1980년대에도 이는 변함없이 적용되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1970년 중반부터 문학에서 김일성의 인물 형상화와 더불어 김정일의 인물 형상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이르러 김정일의 형상화 경향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김정일에 대한 형상화 작업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부자권력 세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19전통’에 서 ‘민족문화유산’의 확장을 꾀한다. 이에 따라 실학파 문학?민요?시조?궁중예술 등을 재평가하고 우수한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쓸 것을 언급하였다.문학 내용상의 변화를 중심으로 봤을 때, 1980년대에 다루어졌던 세대 갈등이 90년대로 넘어오면서 더욱 심화되는 양상과 과학 기술의 문제가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90년대의 북한 문학에서는 세대의 구분이 단순한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아닌, 제 1, 2, 3, 4세대로 구체적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이 중 3세대는 전후 세대이고 4세대는 현재의 20대로 이들이 1,2 세대의 위업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의 문제로 제기된다. 이는 국제 사회의 변화에 따른 북한의 위기 의식과 시대 변화에 따라 등장하게 된 새로운 세대의생활 방식이 기존 세대의 생활방식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대 갈등과 더불어 어떻게 과학 기술을 혁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는데 이는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 증가와 현존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로 인한 북한의 고립과 이것의 결과로 대두한 과학 기술의 차단 및 독자적 개발이 불가피한 사정)'때문으로 보인다.박태상은 90년대 북한문학의 변화 양상으로 혁명가극, 송가 등의 장르를 통해 항일 혁명 문학을 중시하던 태도에서 장?중편소설 등 문학의 본래적 장르를 강화하는 양상에 주목)하였다.Ⅴ. 북한의 고전문학사와『장화홍련전』평가 변화1. 북한의 고전문학사 개관북한의 문학사와 마찬가지로 고전문학의 기술 변화 역시 북한의 문예 정책의 변화에 종속되어 그 기조를 같이한다. 민족문화 유산으로서의 고전문학에 대한 북한의 정책 변화는 크게 3기로 분류해 볼 수 있다.첫 번째는 북한정권 수립 초기로 일제의 잔재 청산과 정권의 전통성을 확립하기 위한 차원에서 민족문화 유산을 강조)하던 시기다. 이 시기의 북한의 논의는 ‘민족적 특성론‘으로 집약된다. ‘민족적 특성론' 논의 초기에는 민족적 정서와 기질, 심리, 성격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 되었는데 이것을 '민족적 성격'이라고 한다 없다.
한국어의 계통론에 관하여목 차Ⅰ. 들어가며1Ⅱ. 한국어의 계통 연구11. 19~20세기 초반의 국어계통론11) 한국어의 타타르(Tartar) 어족설22) 한국어와 투란계 언어 비교 연구23) 우랄-알타이어족설32. 알타이어족설31) 서양학자의 연구42) 우리나라 학자의 연구5Ⅲ. 한국어의 계통론61. 알타이어족설62. 반알타이어족설73. 일본어와의 동계설84. 인구어와의 동계설85. 드라비다어와의 동계설96. 한국어족설10Ⅳ. 마치며10참고문헌11Ⅰ. 들어가며국어계통론의 효시는 19세기 중엽에 한국어를 연구하기 시작한 서양의 학자들이 문법형식의 유사성에 의거하여 한국어를 ‘타타르제어’ 혹은 ‘스키타이제어’와 같은 무리라고 기술한 것이었다. 이후, 핀란드 출신의 언어학자 카스트렌 (M. A. Castren)에 의해서 우랄-알타이어족설이 등장하였다. 빈클러(Heinrich Winkler)는 카스트렌 이래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함을 천명하였고, 결국 한국어의 우랄-알타이어족설이 점차 정착되었다.핀란드의 언어학자인 람스테트(G. J. Ramstedt)는 우랄-알타이어족설을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으로 분리하여 한국어의 ‘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였다. 람스테트의 알타이어족설을 계승한 포페(Nicholas Poppe)는 한국어의 알타이어족설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러한 알타이어족설에 반대하는 여러 주장들이 이후 전개되었고 한국어 계통에 관한 다양한 가설이 등장하였다. ‘한일어 동계설(韓日語同系說)’ ‘남방계설 (南方系說)’ ‘인구어 동계설 (印歐語同系說)’ 등이 그 예이다.20세기 중에 한국어의 계통에 관한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부류이고, 둘째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할 개연성이 크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는 부류이며, 셋째는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이 아니라는 부류이다. 이처럼, 한국어가 어떤 계통에 속하는가는 아직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양한 가설이 공존하는 실정이다. 따 Ross)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인 로스는 전반부는 한국어음과 동사의 특징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고, 후반부에 ‘한국어와 이웃한 투란계 언어들의 비교’라는 제목으로 투란계 언어의 어휘와 문법 등을 한국어와 산발적으로 비교하여 상이성과 유사성을 지적하는 논문을 집필하였다. 이 논문에서 로스는 한국어가 문법적으로는 투란계 언어와 유사하지만, 어휘에서는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② 애스턴(William George Aston)애스턴은 1879년 한국어와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모음과 자음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이에 더해 유럽어와도 비교하여 특징들을 지적하였으며, 민족과 언어의 관계에 관한 견해를 서술했고, 일본어와 한국어의 문법적 절차의 동일성과 상이성을 거론하고 명사?대명사?수사?어순으로 절을 나누어 기술하였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해서 두 언어의 상이성과 유사성을 상세하게 논한 뒤 결론 부분에서 두 언어의 계통적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일본어와 한국어는 공통 수사가 부재하기 때문에 같은 계통으로 분류할 수 없지만, 한 문장 안에서 단어들의 순서를 규정하는 법칙들에서 공통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두 언어가 가까운 계통적 관계를 가짐을 시사하며, 두 언어에는 아리안제어(인도-유럽제어)에 적용되는 원리들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두 언어는 아리안어족 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언어들의 관계와 같은 정도로 상정하였다.③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미국 선교사 출신인 헐버트는 한글의 계통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한국어를 투란계로 추정하는 근거로 투란계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한반도 남부까지 이른 이동 경로를 여러 가지 사실에 의거하여 추정하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민족의 기원설에 이어 투란제어와 한국어의 공통성과 비교 예들을 제시하였으며, 한국어가 인도남부로부터 동남아 지역과 태평양 열도에 산재한 민족들의 언어와 같은 계통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지역의 원주민의 언어와anov)폴리바노프는 규칙적 음운대응의 발견에 의한 친족관계의 수립이라는 방법을 한국어의 비교연구에 처음 적용한 사람이다. 그는 1927년 논문에서 자신이 제시한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비교 결과가 역사비교언어학에서 수립된 친족관계 수립 이론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할 개연성을 시사하였다. 그는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언어구조상 일반적 유사성으로 형태론적 현상에서 접미사적 성격, 엑센트 위치의 고정성과 평기적 특성 등 5가지 항을 제시하였다. 그가 제시한 5가지 항 중에는 오늘날 관점에서 봤을 때 옳지 않은 점이 있는 것도 있고, 설명이 모호한 것도 있다.폴리바노프는 국어의「l/r」-근원적으로「r」과 「l」이 합쳐진 것-과 대응하는 알타이제어의 음운대응 양상을 4개로 나누어 제시하기도 하였다.② 람스테트(Gustaf John Ramstedt)람스테트는 국어-알타이제어의 비교연구를 방대하게 수행한 사람으로,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국어에 관한 논문은 “Remarks on the Korean Language(1928)"이다. 이 논문에서 람스테트는 한국어의 구성 요소를 고래로 전해 내려오는 요소(단어, 문법형식과 어미, 구를 구성하는 방법), 수입된 요소(이른 시기 혹은 후세에 차용된 중국어, 차용된 표현), 의성?의태어적 성질을 가진 신조어로 분류하였다. 그는 이 중에서 고래로 전해 내려오는 요소들이 비교연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한국어의 특징을 ‘음성’과 ‘언어구조’로 나누어 기술하였다.람스테트는 한국어의 격조사가 알타이제어의 격조사와 유사함을 지적하였으며(1928), 한국어에서 특수한 문법적 기능을 가지는 ‘후치사’와 기초 어휘 중 하나인 ‘-것’을 알타이제어와 집중적으로 비교하였다(1933, 1937). 이후 1939년에는 한국어와 퉁구스어?한국어와 튀르크의 음운대응 예들과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음운단위 대응 및 그에 의한 알타이 공통조어 재구형을 표로 제시하면서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함을 확실히 언급하였다.③ 포페(Nichola이기문은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여섯 가지 공통 특징을 언급하면서 이들 여섯 가지 특징을 모두 지닌 언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친족관계 증명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③ 김방한1950년대 말부터 한국어의 계통에 관한 여려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기문과 함께 국내 한국어 계통론연구를 주도하였다.김방한은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음운과 형태 몇 가지를 비교하여 제시하였고, 한국어의 저층(底層)으로 ‘원시한반도’의 가설을 등장시켰으며, 한국어에 길리약어의 요소가 존재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④ 그 밖의 학자들의 연구1960년 이래 한국어 계통에 관한 연구 논저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어를 알타이어족으로 분류하는 람스테트의 학설을 전제하고, 한국어와 알타이어제어 혹은 튀르크나 몽고?만주-퉁그스어 중의 하나와 비교 고찰한 부류이다. 둘째는 한국어의 알타이어족설을 부정하고 알타이어가 아닌 언어, 특히 길리약과 같은 고아시아어족의 언어와 비교한 내용으로 강길운 등의 논저를 들 수 있다.Ⅲ. 한국어의 계통론)앞서 한국어 계통에 관한 연구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한국어 계통에 관한 연구는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명백한 계통을 밝힐 수 없는 처지이며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이 장에서는 한국어 계통에 관한 다양한 가설 중 ‘알타이어족설’ ‘반알타이어족설’ ‘일본어와의 동계설’ ‘인구어와의 동계설’ ‘드라비다어와의 동계설’ ‘한국어족설’을 살펴보고자 한다.1. 알타이어족설알타이어족설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타이제어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알타이제어의 특징은 음운론적 측면과 문법적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음운론적 측면으로는 ‘모음조화’와 ‘두음법칙’이 있다. ‘모음조화’란 한 단어 안에서의 모음의 동화현상을 말하며, 전설모음이나 후설모음으로만 이루어진 단어는 있지만 두 계열의 모음이 한 단어 안에서는 공존할 수 없다는 법칙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의성어나 의태어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중세국어에서는 뚜렷한 모음조i)는 한국어와 알타이어족설의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기 때문에 비교과학적 연구가 더 필요함을 주장했다. 벤징(J,Benzing.)또한 이러한 입장이다. 그는 한국어와 알타이제어 사이에는 공통된 수사가 없다는 점과 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든 비교 예가 의심스럽거나 그릇된 어원 해석이 많다는 점에서 회의적 태도를 취하였다.두 번째 입장은 되르퍼(G. Doerfer), 클로슨(G. Clauson) 등이다. 이들은 알타이제어와의 친근성을 완전히 부정하며 수사와 같은 공통된 기초 어휘가 없다는 점과 튀르크어와 몽골어에 공통된 낱말을 모두 차용으로 본다.이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알타이제어의 언어구조의 유사성은 인정되지만 어휘 면에서 차용어를 제외하면 공통된 요소가 없거나 있다 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기초어휘도 대명사의 일부를 제외하면 신체 부분 명칭이나 친족 명칭등의 유사성이 거의 없다. 그리고 문법체계가 규칙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에 뭄법적 요소도 차용되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고, 일부 문법 요소의 유사성으로는 알타이제어의 친근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3. 일본어와의 동계설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는 주로 일본어의 계통을 연구하기 위한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자나자와 쇼사부로(金澤庄三郞)는 음운?형태?어휘 등 전반에 걸친 연구를 하였고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는 한국어?우랄-알타이어?일본어의 관계를 논하면서 한일 두 언어의 밀접성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만 동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세월이 필요함을 말했다. 2차 대전 이후 한국어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대체로 한일 두 언어의 친근성을 인정하거나 두 언어가 친근 관계에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았다.아스톤(Aston)은 19세기 후반에 한일 언어를 비교 연구하여 발표한 초기 학자였고 이후 밀러(Miller)는 한국어와 일본어는 퉁구스어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마틴(Martin)과 레빈(Lewin)역시 한국어와 았다.
김현승의 시 세계-시 의식의 변모 양상을 중심으로-목 차1. 서론12. 민족적 감상주의와 자연23. 서정에서 신에 대한 관념의 세계로53-1. 신에게 순명하는 시기53-2 신앙에 대한 회의와 고독의식74. 신앙으로 회귀105. 결론116. 참고문헌121. 서론김현승은 1913년에 태어났다. 양주동의 인정을 받아 이라는 시가 동아일보에 발표된 1934년부터 문단활동을 시작해 타계하는 1975년까지 40여 년간 시작활동을 했다. 작품집으로는 처녀시집인 와 제2시집 , 제3시집 , 제4시집 , 제5시집 이 있다. 작고한 1975년 유고시집인 가 출판되었다.김현승의 시는 기독교적 정신의 자취를 짙게 드러내는 점과 더불어, 간명한 시구 안에 드리워진 깊은 사유, 가독성(可讀性과) 조화를 이룬 난해함 등을 그 특징으로 지니고 있으며, 따뜻함과 차가움의 공존, 깐깐함과 너그러움의 표리, 퓨리턴적 정신세계와 그 절제 안의 자유로움 또한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논할 때 핵심이 되는 것은 그의 기독교적 사상이다. 아버지와 형이 목사였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표적인 기독교시인으로도 꼽힌다.김현승의 시 의식을 변천으로 시기 구분을 할 때 자연에 대한 외경과 인간 내면에 대한 관심이라는 두 시기로 분류하기도 하고 그의 시 의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앙과 관련하여 세 시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제 1기는 김현승이 문단활동을 시작한 1934년부터인 1930년대 초기 시이다. 제 2기는 8.15 광복 후 활동을 재기한 때부터 1972년 또는 1973년 이른 봄까지의 시기이다. 제 3기는 1973년부터 타계하는 1975년까지의 시기이다. 광복 후부터 1972년 까지를 다시 두 시기로 나눠 신앙에 순명하는 시기와 신앙에 회의론적인 자세를 보이는 시기로 나누어 시의 변모 양상을 네 시기로 구분하기도 하며 같은 세 시기라도 첫 단계는 데뷔작 등을 포함한 초기 단계이고, 두 번째는 6.25이후의 속에 포함된 가을 주제와 등의 단시켜 보려고 노력해 본 것만은 사실이다) 라고 말한바 있다. 작가 자신이 언급했듯이 그의 초기 시는 자연에 대한 동경과 예찬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자연을 인식하는 김현승의 태도는 서구적이고 근대적이었고 선명하고도 감각적인 이미지의 표현은 그의 초기 시를 모너니즘으로 평가하는 근거가 된다. 모더니스트적인 그의 초기 시에 대해서 홍기삼은 그 중에서도 모더니스트였던 김기림의 높은 평가는 다형의 시 세계와 관련해서 생각할 때 의미심장한 바 있다)고 말하였고, 김우창은 초기의 시는 다른 '이미지스트' '모더니스트' 시들과 취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이 계열의 시로서는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손꼽힐 만한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그의 시는 모더니즘적인 경향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지즘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었다. 작가의 말처럼 그가 노래하는 자연은 인사(人事)와 결부된 자연이었다.김현승이 문단활동을 시작했던 1934년은 일제감정기로 일제의 강압적 통치와 수탈에 민족이 고통 받던 시기였다. 일제치하의 불합리하고 암울한 시대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민족해방과 긍정적인 미래 인식이라는 이분법적인 자세를 김현승은 자연을 소재로 표출하였다. 그의 초기 시에서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부정적인 이미지의 시어가 서로 대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단 데뷔 작인 , 나 1935년에 발표한 같은 시에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대립적인 심상이 잘 나타난다. 이러한 시어들은 위 작품이 창작된 1930년대와 관련 있다. 이 시기는 1919년 3?1 운동의 실패 후 일제강점으로부터 해방 될 것이라는 희망이 소멸된 때이다. 결국 극복할 수 없는 부정적 현실을 대할 때 소망은 더욱 간절하게 되었고 현실과 이상의 양분화가 이루지게 된다. 이러한 긍정적/부정적이라는 이분법은 낭만적 양분법으로서 작품 창작의 기본구조를 형성하였다.)새까만 하늘을 암만 쳐다보아야 어딘지 모르게 푸르러터니그러면 그렇지요, 그 우렁차고 광명한 아침의 선구자인 어린 새벽이벌써 희미한 초롱불을 들고 사방을 밝혀 가면서거으로 빠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그러기에 어제밤 당신을 보고 말하지 않았읍니까?밤을 뚫고 수천 수백리를 걸어 나가면 광명한 아침의 선구자인 어린 새벽이희미한 등불을 들고 또한 우리를 맞으려 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문위 시는 새까만 밤을 지나 밝아오는 새벽을 소재로 쓰였다. 미지칭의 청자를 향한 설의법으로 쓰인 이 시는 의인화 된 자연물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면서 ‘새까만 하늘’, ‘쓸쓸한 저녁’, ‘비가’, ‘답답한 어두움’, ‘절망’, ‘험상궂은 산봉우리’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의 시어와 ‘광명한 아침’, ‘용감스러운 해’, ‘환호’, ‘승리’, ‘참새’, ‘선구자인 어린 새벽’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의 시어가 대립적으로 나타난다. ‘새카만 하늘’이 일제강점기의 부정적이고 암담한 현실을 의미한다면 ‘광명한 아침의 선구자인 어린 새벽’은 해방에 대한 염원 내지는 해방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출이다. 아직은 험상궂은 산봉우리가 해를 가린 채 절망적인 현실을 살아가지만 밤을 뚫고 새벽이 오듯 당위적인 희망이 반드시 오리라는 기대가 성취 되리라고 시적자아는 확신한다.그 당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흉악한 인간 일인(日人)들과 같은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향하는 의미가포함되어 있었고, 지상에서 빼앗긴 자유를 광대 무변한 천상에서찾는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었다.)김현승은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은 자신의 시작과 관련해 위와 같은 발언을 하며 자신의 시를 민족적 센티멘털리즘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발언처럼 김현승은 자연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자연을 통해 억압받고 수탈당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민족의 해방이라는 염원을 담고자 하였으며 조국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부정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밝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에서 잘 나타난다.새벽은 푸른 바다에 던지는 그물과 같이 가볍고 희망이 가득 찼습니다밤을 돌려 보낸 후 작은 별들과 작별한 슬기로운 바람이지금 산기슭을 기어 나온 작은 안개를 몰고 미지를 ‘낙엽’이라는 생명 감각과 ‘모국어’라는 생활 감각으로 전이?결합시킨다.) 시인은 낙엽이라는 종말의 시간 앞에서 겸허한 모국어라는 진실한 소리를 담은 기도로 생과 사라는 생명의 숙명을 자각한다. 2연에서 시인은 참된 사랑에 대한 염원을 드러낸다. 1연에서 생명의 숙명을 깨달은 시인이 염원하는 사랑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닌 절대자로서의 신에 대한 사랑이다. 김현승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어 얻고자 하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다름 아닌 신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순결한 정신이다. 3연에서 시인은 운명적인 고독 속에서 본질적인 자신과 대면하려는 의지를 형상화한다. ‘굽이치는 바다’ 같은 삶을 지나 ‘백합의 골짜기’ 같은 깨끗한 신앙의 행로로 나아가 참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시인의 염원이 바로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이다. 진애순은 자연물의 구체적 매개와 더불어 시간현상 매개로서 가을날은 신의 완성을 상징하는 시간대이며, 예술가의 정체성 확인의 시점이고, 예술가로서의 완성을 향한 성찰의 시점이라고 말하면서 김현승은 에서 신성성과 창조성을 찬미하게 하는 가을의 거룩함을 온전히 종교적 존재의 위상으로 표상한다. 기도가 곧 시의 말이 되는 종교적 체엄의 실행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현승에게 있어 가을은 종교적 존재의 위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소멸되는 존재로부터 정신적이고 본질적이며 영원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간이다. 기독교 신앙에 순명하는 태도로서 내면의 정신세계를 견지하는 또 다른 시는 이다.더러는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져......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전문시인이 아들을 잃고 난 이후에 쓴 이 시는 종교적 승화를 통해 슬픔을 극복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 ‘눈물’이 일차적으로는 슬픔에 대한 ‘나’의 반응이지만 실제로는 에 종속되어 있기에 깊은 신앙은 인간을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현세가 아닌 내세를 중심으로 한다. 현세의 고통과 고뇌는 지금 여기가 아닌 내세로 밖에 보장 받지 못한다. 신에게 순명하는 신앙은 믿음의 영역이지만 작가가 탐색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은 사실상 철학의 영역이다. 의심과 논리적 사고에서 이루어지는 철학은 의심도 질문도 용인하지 않는 절대적인 순종인 믿음과 상반된다. 작가가 포착한 고독은 ‘이 절망과 이 구원의 두 팔을 어느 곳을 우러러 오늘은 벌려야 할 것인가!’ 라고 물을 수밖에 없게 만들고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인간이 아닌 신은 할 수 없다.로 신앙에 대한 고뇌를 드러낸 김현승은 이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신앙에 대한 회의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인다.떠날 것인가남을 것인가나아가 화목할 것인가쫓김을 당할 것인가어떻게 할 것인가나는 내게로 흐르는가너를 거슬러 내게로 오르는가-중략-파도(波濤)가 될 것인가가라앉은 진주의 눈이 될 것인가.어떻게 할 것인가끝장을 볼 것인가죽을 때 죽을 것인가.무덤에 들 것인가무덤 밖에서 뒹굴 것인가. 부분신과 인간 사이에서 고뇌하는 시인은 인간을 향해 돌아선다. 작가는 자신이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의 일원론은 악마의 영원한 세력인 지옥을 인정함으로써 결국은 이원론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일원론이 성립되려면 선(善)의 책임과 함께 악의 책임도 창조주에게 지워져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행복의 영광은 신에게 돌리고 불행의 책임은 악마에게 돌림으로써 스스로 이원론의 모순을 저지른다.) 절대적인 믿음이 기반인 신앙에 합리성을 적용해 모순을 찾아낸 작가는 이제 신앙을 버리고 신을 부정한 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색으로 나아간다. 이 탐색을 통해 작가가 도달한 인간 존재의 본질은 바로 ‘고독’이다. 작가가 직면한 이 ‘고독’은 무엇인가? 작가가 스스로 말하는 고독이란 ‘한 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의지해 왔던 거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에 허공에서 느끼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