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공인 독일어를 경험하면서 여러 가지 독일문학을 접하게 된다. 독일에서 특히 잘 발달되어서 많이 접하는 계기가 되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장르 중에서도 나의 최고 관심장르는 희곡 이다. 글을 읽거나 내가 직접 몸으로 작품을 체험하면서 느끼는 독일연극의 매력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변하곤 한다. 그러는 사이 작년 겨울, 대학로의 알과 핵 소극장에서 「서 푼짜리 오페라」를 관람하게 되었고 브레히트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앎의 폭이 좁은 내가 여태껏 보아 온 몇 안 되는 독일의 여느 작가와는 다른 브레히트의 작품을 한번 접하고는 그의 작품을 알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난 가을, 나의 욕심대로 내가 속한 작은 학회극단은 브레히트의 작품을 준비하였다. 당시 나는 연출의 자리에 있었는데, 작품을 선정할 때 즈음 극중 노래가 자주 등장하고 저학년인 우리에게 그 자체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브레히트의 작품은 반대가 잇따랐다. 하지만 그의 초기작품은 원어자체에서도 비교적 현대의 말을 사용하고 있고, 정서적으로도 적합할뿐더러 무겁지 않은 소재로 사회풍자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시민의 결혼식(Die Klein B rger Hochzeit)」을 무대에 올렸다. 이러한 경험의 계기를 통해 나는 또다시 브레히트의 연극에 대해 알고자 한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먼저 브레히트가 처음 그의 독자적인 연극세계를 형성할 때의 배경과 그의 첫 작품인「바알」(1923), 단막극 「소시민의 결혼식」(1919),「서 푼짜리 오페라」(1928)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작품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가 작품을 연구할 당시의 배경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처음 연극에 입문할 당시 독일 연극계는 사실주의가 퇴색하고 여러 가지 다른 형식으로의 실험이 한창 진행중이었던 시기였다. 브레히트는 여러 극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중 피스카토르와 그 서사극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연기자를 관객과 함께 어울리게 하는 역할 연기 (role- playing)를 시도했던 라인하르트의 조수로 일하거나 연극연습에 참관하기도 했다. 또한 표현주의의 선구자의 한사람으로 불리는 베데킨트의 후기 극은 이화효과(alienation effect)를 사용하였는데 그는 브레히트를 그의 찬미자로 만들었다. 역시 혁명적인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뷔흐너의 작품「보이체크」는 브레히트의 초기작품에 좋은 모델이 되었다.브레히트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실험을 하며, 자신의 실험과 다른 실험을 비교하는 등, 연극에 있어서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을 끊임없이 다듬어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 온 끝에 그가 남긴 연극 미학은, 오늘날과 같은 회의적인 시대정신에 적합한 여러 가지 작품과 이론의 결과를 낳았다.그의 극은 앞서 말했듯이 피스타토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브레히트의 극은 도덕적인 딜레마에 초점을 맞춘 폐쇄적이며 우화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그 역시 이야기 형식을 취해 삽화와 코러스, 해설자, 춤과 노래, 스크린에 투사된 문구와 요약 등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피스카토르가 즐겨 사용한 기계장치들을 이용했다. 그러나 브레히트의 공적은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적 환각 연극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다. 즉, 브레히트의 이론에 따른 서사극 공연은 단지 한편의 연극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공연을 통해 대사는 외어진 것이며 행위는 연습됐으며 무대장치는 미리 제작 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또한 배우가 객관적으로 연기하려고 할 때 그는 거리감을 갖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극이 사회 문제를 실생활인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어야 된다." 고 하는 것이 바로 서사극이 요구하는 이화효과(alienation effect) 이다.이러한 이론은 또한 당시 오래 된 바그너의 종합예술이론과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서사극의 예술가들이 각기 다른 이론을 통해 표현하여야 했다. 그리고 거리감 개념은 그 중요성이 인식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1918년에 쓰여진 「바알(Baal)」은 브레히트의 첫 작품으로 요스트(Hans Jost)의 「외로운 사람. 한 인간의 몰락 (Der Einsame. Ein Menschenuntergang)」(1917)에 대항하여 구상되었다. 그 작품은 문학가 그레베(Grabbe)를 드라마로 다룬 전기로서 표현주의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극히 산만하기도 한 천재숭배의 산물이기도 했다. 이에 맞서 브레히트는 시민적 영웅의 삶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알이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은 그의 첫작품임에도 늘 존경하던 베데킨트 보다도 더 거칠고 생생하게 희곡 작품을 쓸 수 있다 는 젊은 브레히트의 패기와 자신감이 나타나 있다.무자비한 냉소주의자이자 술주정꾼이며 색한인 주인공은 대부분의 시간을 술집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보낸다. 그는 여러 여자를 유혹하는데, 그 중 하나인 요한나는 임신을 하게 되지만 바알이 등을 돌리자 자살한다. 그는 또한 에카르트라는 친구와 동성연애를 하는데 나중에 질투로 그를 살해한다. 바알은 이 세상을 신의 배설물로 가득할 것 이라고 소리치서 검은 숲 의 더러운 오두막집에서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어간다. 브레히트는 이 극의 대사 속에 성과 배설 등의 흉폭한 이미지를 담았고 이 극의 주인공은 아무런 자각 없이 더러운 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이러한 서정적인 내용과 냉소적인 작가의 태도는 처음에는 관객에게 어떠한 의미도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오늘날에 와서야 그의 의도가 인식되었는데 작품 속의 괴물같은 바알의 모습을 통해 이기적인 현대인의 보습을 풍자하였다고 볼 수 있다.「소시민의 결혼(Die Klein B rger Hochzeit)」은 1919년에 쓰여졌고 1926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우선 이 작품은 브레히트의 교육극이나 서사극과 무관한 그의 초기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막극에 비친 영향을 찾는다면 카를 발젠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쪽 바이에른 지방의 농부 및 민중소극이나 익살극 공연으로 유명했던 발젠틴의 영향은 무엇보다도 연극이란 관중을 즐겁게 하는 예술 이라는데 있다. 이 작품에서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것, 그리고 이와 결부되어 삶의 즐거운 면이 독특하게 부각되고 있다.이 작품은 소시민의 결혼식 축하연 서술이 주된 내용이다. 결혼식 축하연은 결혼식 날 저녁 신랑집에서 개최된다. 축하연 요리는 어머니가 부엌에서 거실 탁자로 나른다. 신랑의 장인은 틈 만 있으면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야기꾼이다. 부인이야기, 수종 병으로 돌아가신 삼촌 이야기 등의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의 대화는 서로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냥 미끄러질 뿐이다.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지만, 대화는 곧 단절되어 또 다른 소외를 낳고 만다. 축하객들은 신혼부부의 결혼을 축하하지만 그것은 의례적인 상투어에 불과하다. 신부 친구(카린)의 축사도 겉으로 보기엔 교양 있고 예의바른 언어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책에서 외운 틀에 박힌 이야기이다. 신랑은 결혼살림(가구) 준비를 위해 5개월이나 아침 점심을 이용하여 손수 가구를 만들었다. 가구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은 분업의 세상에서 아직도 모든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의 표현이자, 단지 이런 방식으로만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나 손수 만든 가구들이 잘 붙지 않아 손님들의 의자가 하나하나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바로 소시민 것 생활의 불안정성과 그 해체 과정을 반영한다. 그들은 음식과 술을 권하면서 정겨운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실체가 곧 드러난다. 유쾌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이면에는 적개심과 시기, 방종과 육욕이 자리잡고 있다. 에미는 신부가 임신한 사실을 옷으로 교묘하게 가렸다고 폭로한다. 부인의 무례함에 화가 난 부인의 남편은 그녀에게 화를 내며 망가진 상다리를 던진다. 마침내 축하객들이 화가 나서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신혼부부만 남는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치욕스러운 피로연의 책임을 전가시키며 계속 비난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화해하고 결혼을 자축한다. 침실로 들어가려는데 침실문의 손잡이는 망가지고, 즐거워하며 침실로 들어가지만 침대도 망가져 버린다.결국 「소시민의 결혼」은 망가지는 이야기 라 말할 수 있다. 가구만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야기, 친구의 노래가 그랬다. 그리고 청순한 처녀로 나타나야할 신부는 임신 5개월의 망가진 몸으로 나타났다.전체적으로 볼 때, 이 단막극은 거칠고 별 악의 없어 보이는 가볍고 해학적인 내용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소시민 사회를 폭로하여 철저하게 부정적이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며, 극 중 연극은 끝나면, 진지함이 시작된다(Aber jetzt ist das Theaterst ck aus, und der Ernst beginnt) 라는 대사에서처럼 사회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브레히트의 서사극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고 또한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게 한 희곡은 「서 푼짜리 오페라」(1928)이다.
< 경어 敬語 >ⅰ. 일본의 경어 - 상대경어- 일본어의 경어체제는 손윗사람이면 무조건 경어를 쓰는 우리의 경어(절대경어)와 달리, 상대방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경어를 구별해서 쓰는 상대경어이다. 일본어의 경어에는,① 존경의 대상을 높이는 형태인 존경어(),② 존경의 대상에게 자기 자신을 낮추는 형태인 겸양어(),③ です(~でございます)나 ます의 일반적인 말 높임의 형태인 정중어()가 있다.※상대경어의 예A : 山田課長いらっしゃいますか。(야마다과장님 계십니까?)B : すみませんが、山田は席を外しております。(죄송합니다만, 과장님은 자리에 안계십니다.)ⅱ. 존경어1. 인칭의 경어화① 1인칭 - わたし、わたくし、自分、ぼく、おれ、うち (※복수 - ~ども、われわれ)② 2인칭 - あなた(さま)、そちら、お宅③ 3인칭 - このかた、そのかた、あのかた④ 부정칭 - どなた、どなたさま⑤ 그 밖에겸양어존경어겸양어존경어家族ご家族兄お兄さん/さま父、おやじお父さん/さま姉お姉さん/さま母、おふくろお母さん/さま弟弟さん夫ご主人、旦那さま妹妹さん妻、家?、女房?さん/さま親類ご親類祖父おじいさん/さまおじおじさん/さま祖母おばあさん/さまおばおばさん/さま子供お子さん(たち)いとこおいとこさん息子(お)ぼっちゃん孫お孫さん息子さん、ご息子うちのものおうちの方、お宅の方娘お?さん、娘さんみんな皆?兄弟ご兄弟?社のもの?社の方⑥ 존경의 접미어 - さん、さま(?)명사에 접미어를 붙여 존경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것이 「さん」이다. 「さん」은 원래 「さま」가 변하여 된 말이다. 이것을 성 뒤에 붙이면 존경을 나타내고, 이름 뒤에 붙이면 친근감을 나타낸다. 주의할 점은 존경의 접미어는 중복하여 쓰지 않기 때문에 「~課長さん」「~社長さん」「~先生さん」이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 사물의 경어화 - 「御」(お、ご)어떤 사물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 「お」와「ご」는 일본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어 접두어이다. 일본어에 있어 경어라고 하면 흔히 「お」와「ご」만을 붙여 말하면 공손한 말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된다. 그래서 잘段がまた上がったそうですね。(술값이 또 올랐다면서요.)② 관용어의 「お?ご」접두어 「お?ご」를 붙여 공손한 표현으로 쓰지만 사실상 현대의 일본어에서는 경의는 물론, 미화의 의식도 없이 그저 관용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들이 있다.*さあ、みんな早くご飯食べよう。(자, 모두 빨리 밥 먹자.)*お茶でも一杯?みましょうか。(차라도 한 잔 마실까요?)*お早う(ございます) (아침 인사)ごご??(인사)ご結婚(결혼)ご案?(안내)ご決心(결심)ご意見(의견)ご飯(밥)ご家族(가족)ご注文(주문)ご兄弟(형제)ご相談(상담)ご?分(기분)ご夫婦(부부)③ 문법적으로는, 원칙적으로 和語(일본 고래로부터 전래된 말)에는 「お」, 한자어에는 「ご」를 붙인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おお命(목숨)お?(나라,고향)お邪魔(방해)お米(쌀)お風邪(감기)お菓子(과자)お金(돈)お?(약)お?の毒(가엾음)お顔(얼굴)お客?(손님)お湯(더운물)④「お」와「ご」의 구분 사용법?「お」를 관용적으로 붙이는 사물*部長のお手紙(부장이 편지), お客?のお荷物(손님의 짐), お手元の資料(바로 옆의 자료)상대방의 동작이나 소유물*お電話いたします。(전화드리겠습니다.)상대방과 관계가 있는 경우*よいお天?です。(좋은 날씨입니다.)상대방에 관계없이 회화에서 정중하게 말할 때*おでん(꼬치안주)、おなか(배)、おむつ(기저귀)「お」를 붙이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는 것*おひや(냉수)、おにぎり(주먹밥)、おひらき(폐회)「お」를 빼면 다른 의미가 되는 것cf)おひや(차가운)、おにぎり(쥠)、おひらき(열림)*お茶わん(밥공기)、お部屋(방)、お着物(옷)여성어에는 붙지만, 남성어에서는 생략?「お」를 관용적으로 붙이지 않는 사물*背がお大きい。(키가 크다)「お」가 세 번 겹치므로 사용하지 않음*お?くなってすみません!(늦어서 죄송합니다.)「おおそい」와 같이 「お」가 겹침*お机(책상)、お手帳(수첩)、お道路(도로)、お?(역)사회적 시설이나 장소에는 붙이지 않음*おノ?ト(노트), おコ?ト(코트), おビ?ル(맥주), おコ?ヒ(커피)외래어에는 붙이지 않음*お社長(사장), ご新 낮추는 말에는 붙이지 않음?「お」와「ご」를 붙이는 호칭*お連れ? - 손님이 두 사람 이상일 경우 그 동반자를 부르는 말*お二人? - 두 사람의 손님을 동시에 부르는 말*ご主人さま - 상대방의 남편을 부르는 말?「お」와「ご」를 붙이지 않는 호칭*みなさま - 여러분*主人、旦那さま - 자기 남편을 이르는 말, 「旦那さま」는 상대방의 남편을 부르는 경우에도 사용된다.3. 동작어(동사)의 경어화(1) 첨가형식 - 「お〔ご〕~になる」,「お〔ご〕~なさる」 「お〔ご〕」+명사화된 동사+になる「お〔ご〕」+명사화된 동사+なさる※명사화된 동사란 동사의 연용형(ます형)을 말한다.*話す(말하다) → お話しになる/なさる(말씀하시다)*?む(읽다) → お?みになる/なさる(읽으시다)*?る(돌아가다) → お?りになる/なさる(돌아가시다)*起きる(일어나다) → お起きになる/なさる(일어나시다)*借りる(빌리다) → お借りになる/なさる(빌리시다)*出かける(외출하다) → お出かけになる/なさる(외출하시다)*受ける(받다) → お受けになる/なさる(받으시다)*する(하다) → なさる(하시다)*?る(오다) → おいでになる(오시다)(★いらっしゃる - 교체어)(2) 첨가형식 - 「れる」「られる」 5단 동사 및 サ변동사의 미연형(未然形)에는 「れる」가 붙으며, 상?하1단 동사에서는 「る」탈락, 「+られる」형으로 활용된다.*話す(말하다) → 話される(말씀하시다)*?む(읽다) → ?まれる(읽으시다)*?る(돌아가다) → ?られる(돌아가시다)*案?する(안내하다) → 案?される(안내하시다)*起きる(일어나다) → 起きられる(일어나시다)*お借りる(빌리다) → 借りられる(빌리시다)*出かける(외출하다) → 出かけられる(외출하시다)*受ける(받다) → 受けられる(받으시다)※「れる」「られる」는「~になる」형식보다는 경어의 정도가 높진 않지만 형식이 단순하고 규칙적이기 때문에 일상 대화에서, 특히 남성들의 경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신문, 논문, 기타 공용문 등에서도 경어를 써야 할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れる」「られる」형식에 비해「이다.*する(하다) → なさる(하시다)*いる(있다) → いらっしゃる(계시다)*見る(보다) → ご?になる(보시다)*行く(가다) → いらっしゃる(가시다)*?る(오다) → いらっしゃる(오시다)*食べる(먹다) → 召し上がる(드시다)*くれる(주다) → 下さる(주시다)*着る(입다) → お召しになる(입으시다)(4) 보조 동사의 경어화① ~てくれる(~해주다) → お~下さい (~해주시다)→ ~て下さい (~해주시다)*どうぞお入り下さい(ませ)。 / どうぞ入って下さい(ませ)。(어서 들어오십시오.)*おかけ下さい(ませ)。 / かけて下さい(ませ)。(어서 앉으십시오.)*お話し下さい(ませ)。 / 話して下さい(ませ)。(이야기 해주세요.)② ~てもらう (~해 받다) → お(ご)~いただく (~해 받다)→ ~していただく (~해 받다)*ご相談いただきました。 / ご相談していただきました。(상담해 주셨습니다.)*ご相談いただきたいです。/ ご相談していただきたいです。(상담 드리고 싶습니다.)*ご相談いただけますか。/ ご相談していただけますか。(상담해 주시겠습니까?)*ご相談いただい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ご相談していただい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상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あの、今日ちょっと休ませていただけますか?(저, 오늘 좀 쉬어도 될까요?)*では、これから?表させていただきます。(그럼, 지금부터 발표하겠습니다.)4. 상태어(형용사, 형용동사)의 경어화 형식(1) 형용사의 경어화 「い」→う+ございます「しい」→しゅう+ございます「よう」→よう+ございます「たい」→よう+ございます①「い」*早い → お早うございます。(아침인사)*寒い → お寒うございます。(춥습니다.)*有難い →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고맙습니다.)*良い → ようございます。(좋습니다.)*聞きにくい → 聞きにくうございます。(알아듣기 힘듭니다, 묻기 거북합니다.)②「しい」*よろしい → よろしゅうございます。(좋습니다.)*悲しい → 悲しゅうございます。(슬픕니다.)*?しい → 樂しゅうございます。(즐겁습니다.) - 그러나 형용사 중에는 위와 같은 형식이 부자연스러운 말들이 있다. 이를 경어화한다.*吉元さん相?わらずお元?ですか。(요시모토씨는 변함없이 건강하십니까?)*どうぞお?をお大事に!(부디 몸 조심하십시오!)*何とお?の毒さまでしょう。(정말 안되셨어요!)(3) 「です」「ます」첨가의 경어화「です」와「ます」를 말 가운데 첨가시켜서 활용하면 한층 더 부드러운 경어가 된다.*ここから?くと何分かかりますか。 → ここから?きますと何分かかりますか。(여기서부터 걸으면 몇 분 걸립니까?)*月末になると試?がありますね!→ 月末になりますと試?がありますね!(월말이 되면 시험이 있지요!)*これはちょっと高いですね。あちらだといくらですか。→ あちらですといくらですか。(이건 좀 비싸네요. 저건 얼마입니까?)*今日が五日だからあさってだと七日になりますね。→ 今日が五日ですからあさってだと七日になりますね。(오늘이 5일이니까 모레면 7일이 되는군요.)*先生も音??に行くでしょう。先生も音??に行きますでしょう。(선생님도 음악회에 가겠지요.)ⅲ. 겸양어1. 첨가형식 - お(ご)~する 「お+동사의 연용형」또는「ご+한자어 명사」에 「する」를 첨가한다.*話す(말하다) → お話する(말씀드리다)*持つ(들다) → お持ちする(들어 드리다)*?ける(전하다) → お?けする(전해 드리다)*?明する(설명하다) → ご?明する(설명 드리다)2. 첨가형식 - お(ご)~いたす(いたします) 「お+동사의 연용형」또는「ご+한자어」「いたす(いたします)」를 첨가한다.*話す(말하다) → お話しいたします(말씀드리겠습니다)*持つ(들다) → お持ちいたします(들어 드리겠습니다)*?ける(전하다) → お?けいたします(전해 드리겠습니다)*?明する(설명하다) → ご?明いたします(설명 드리겠습니다)※「する」의 활용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する」대신「~になる」「~なさる」로 하면 존경어가 되고, 「~いたす」「~いたします」로 하면 겸양어가 된다. 「お」가 붙어 있어서 존경의 표현으로 잘못 알기 쉬운데, 예를 들면,「切符をお持ちしない方は…(표를 갖고 있지 않은 분은…)」은 존경어이지만,「ここでお待ちしますから、どうぞごゆっくり(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오다)
과목명 : 연극의 이해 (월 1,2교시)성명 : 함지혜학번 : 200203545학과 : 독일어과발표일 : 2003년 11월 17일목 차1.표현주의의 어원2.표현주의의 시대적 배경3.연극에서의 표현주의4.표현주의의 선구자들-뷔흐너, 베데킨트, 스트린드 베리5.독일 초기의 표현주의 연극6.독일의 표현주의 - 카이저와 톨러◆1920년 이반 골의 「표현주의는 죽어간다.」中참고문헌표현주의의 본질과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공통된 견해는, 시기적으로 그것이 1910년에서 1920-1925년 사이에 발생했다는 점, 즉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나타났다는 점, 그 내용이 아주 혁신적이고 반항적이고 격렬했다는 점, 그래서 문화 · 예술의 분야에서 뿐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정신과 사회사상 전반에까지 심대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 등 이라고 하겠으며, 그 개념은 명쾌한 정의라든지 문학사적 의미는 아직 이론의 여지가 많다고 할 것이다. 표현주의에 대한 비판과 발달은 이미 1920년 이전에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발생 초기의 열기가 강했던 만큼 냉각의 속도도 빨랐다. 그러나 표현주의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스트린드베리와 오케이시, 오닐 그리고 브레히트로 이어져 오면서 오늘날 현대희곡에도 강렬한 영향력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표현주의에 있어서도 가장 그 영향력이 강하게 발휘되었던 장르는 연극인데, 본 발표자는 표현주의 작가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1910에서 1925사이의 독일 표현주의 연극 에 대해서 발표하고자 한다. 먼저 표현주의의 어원에 대해서 알아보고, 표현주의가 폭발적으로 나타났던 독일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그리고 표현주의 희곡의 특징과 표현주의 드라마의 선구자들인 뷔흐너와 베데킨트, 스트린드베리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그 다음으로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과 대표적인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겠다.1.표현주의의 어원표현주의는 원래 회화에서 온 말로서,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가 되면 문학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시각예역할을 한 것은 기술의 진보였다. 특히 화학공업, 광업, 정밀기계, 광학, 전자산업, 조선업 등의 발달은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이에 힘입어 가스 · 전기 · 수도 공급이 보편화되고 독일은 전례없던 복지국가로 발돋움했다. 이 같은 경제구조 변화와 더불어 사회구조의 변화, 특히 사회계층의 변화가 병행되었다. 고도산업화시대에 생겨난 사회계층의 변화, 즉 이 시대의 얼굴은 인구증가 및 도시화로 특징 지워진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인구증가는 노동력의 강력한 증대를 가져와 경제성장은 잉여인구를 흡수, 농촌노동력을 빨아들였다. 또한 문화적으로 보자면 현대화는 18세기에 형성된 독일 고급문화의 사회 담당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현대화가 삶의 내용을 변화시킴으로 인해 고급문화의 내용과 표현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변화의 근저에는 물론 교육확대가 놓여 있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문맹자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제 2교육 및 고등교육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이었다. 1880-1895년 출생한 독일 표현주의 세대의 작가들이 1910년경 문단에 등장,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독일 빌헬름제국의 체제는 이처럼 완성되어 있었다. 현대산업은 대기업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으며 시민계층은 속물적인 외피의 세계에 안주했고 대도시의 노동자들은 사민당(SPD)으로 집결되어가고 있었다.3. 연극에서의 표현주의연극은 표현주의의 도입으로 사실주의를 이탈한 어떤 연극도 구분할 수 있는 용어를 갖게 됐고 극의 형식이 그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매우 개인적이며 특이한 양식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표현주의 연극은 카이저와 톨러의 훌륭한 기법을 거쳐 다듬어졌고 표현주의의 급진적인 변형인 브레히트의 극을 통해 새로이 꽃을 피웠다. 사상적으로 초기 독일 표현주의 연극은 일종의 저항극으로서 1차대전 이전의 가족제도와 관료제도의 권위, 완고한 사회질서, 종국적으로 산업사회의 삶의 기계화에 대한 도전으로 탄생되었다. 이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의 권위에 대한 자유의 항거를 담은 격렬한 극이었다. 표현주의n Goll)은 가면의 등장은 변화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바로 운명 그 자체 라고 쓰고 있다.5. 대사 는 대화와는 달리 시적이며 열정적이며 또한 광상적이다. 대사는 때때로 긴 서 정적 독백 형태를 취하다가도 한두 단어, 혹은 감탄사로 이루어진 단음적인 전보문 형 식을 취하기도 한다.6. 연기양식은 인간 행위의 세부적인 묘사를 피함으로써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되어 보이 며 마치 인형의 연기 같은 과감하고도 기계적인 움직임을 취한다.표현주의 드라마의 이면에는 많은 주관적인 자극들이 아직도 전달되지 않은 채로, 보여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연출가의 조명, 무대 디자이너들은 사실주의극의 공연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창조적인 실험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독일 표현주의 드라마는 그것이 태동된 후 짧은 수명을 다하고 곧 사라지게 된다. 쾨테나 쉴러 이후 연극의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왔던 독일 연극계에서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적으로 삶을 취급했던 표현주의 연극이 오랫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표현주의의 외적 요소들은 연극을 사회 변화의 도구로 간주한 위대한 극작가의 작품에 도입되어 계속 살아남게 되었다. 독일 연극의 라인하르트, 피스카토르, 브레히트의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점차 사회 변화의 도구로서의 변신을 위해 투쟁해 나갔다. 표현주의 드라마운동은 곧 감상주의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깃발 아래 현대연극의 반낭만주의적인 세력을 이끌어 갔다. 그 후에도 선정적인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으나 광적이고 귀에 거슬리는 어조라든지 얄팍한 신비주의, 그리고 초기 표현주의자들의 종교적인 열정은 다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반체제적인 태도도 나치의 독재 하에서 오랫동안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만다.4.표현주의의 선구자들독일의 표현주의자들도 뷔흐너와 베데킨트, 스트린드베리등 세 명의 위대한 선구자의 그늘하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이들이 새로운 극 형식을 창안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연주의 연극운동에서 벗어난 사등장해 한 불쌍한 고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고아는 달이 한 조각의 나무로 변하고 해는 말라비틀어진 꽃송이로, 별들은 죽은 파리들로, 그리고 지구는 뒤집혀진 변기로 변하는 것을 본다. 이 장면은 보이체크의 환멸과 외로움을 확대시키기 위한 직접적인 상징이다. 이처럼 단편적인 장면들의 빠른 전환은 표현주의 연극의 공연에서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베데킨트 - 사춘기, 루루극뷔흐너의 또 다른 열광적인 추종자는 프랑크 베데킨트(Frank Wedekind, 1864 - 1918)였다. 베데킨트는 홀로 모든 금기를 타파해 나갔고 표현주의의 폭발적인 무대 효과를 20여 년 앞서 예언했다. 또한 일정하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은 부르조아사회의 허위 의식을 과감하게 공격했고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주제를 무대 위에 도입하여 금기를 타파했다. 그의 주된 주제는 성 문제였고, 후에 브레히트, 주네의 극에서도 나타나듯 범죄자를 극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매춘을 미화하기도 했다. 베테킨트의 성적인 주제에 관한 집착은 다른 극에서는 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연극적인 이미지를 탄생시켰다.「루루극」에서는 베데킨트의 성해방을 향한 외침이 분명하게 들려온다. 「루루극」은 두 편의 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하나는 「지령」으로 1895년 발표되었고 또 다른 극 「판도라의 상자」는 1902년에 발표되었다. 이 두 작품은 괴물의 비극이란 부제하에 발표되었다. 성과 쾌락을 주제로 한 베데킨트의 작품은 젊은인들에게 닥칠지도 모를 파멸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켰지만 대체로 피상적이며 관대하다는 평을 들었다.이 극에서는 후에 이화효과(alienation effect)로 불리는 기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브레히트는 한때 베데킨트의 열렬한 찬미자였다. 베데킨트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의 삶에서보다 확대된 인물들이고 풍자화된 인물들이다. 스트린드베리와 마찬가지로 베데킨트 역시 자연주의의 경계를 맴돌았으며 사실주의에 기인한 요소를 첨가하기도 했고 또한 명백한 이유 없이 극을 악몽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가기도 교과서로 삼은 사실은 불행한 일일지도 모르나 자신의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 되는 싸움을 무대 위에 이끌어 내는 그의 힘은 젊은 극작가들에게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큰 자극을 주었다.5.독일 초기의 표현주의 연극표현주의 연극운동은 처음에 한 국가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1912년부터 21년까지의 약 10년 간 젊은 독일 극작가들은 혁명가와 같은 열정으로 현대 독일 연극에 참여했다. 오늘날 이들의 작품이 다소 거칠고, 미숙해 보이지만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일련의 무대 테크닉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이러한 극의 내용은 오늘날 다시 무대에 올리기에는 부적합하지만 이 극들은 당시 독일제국의 사회 가치관의 붕괴를 다루고 있으며 세계대전으로 인한 참사에 대해서도 증언하고 있다.1912년 「거지 (Der Bettler)」라는 작품이 라인하르트 조르게(Reinhard Sorge, 1892-1916)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 극은 연극적 임무(Dramatic Mission)'라는 다소 거창한 부제를 가진 반자서적인 작품이다. 다소 유치한 이극은 과장된 양식을 갖고 있으며 또한 지루할 정도로 긴데도 현대희곡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이 극이 전이연극적(metatheatrical)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이 극은 의도적으로 쓰여진 혁명적인 작품이었다. 이 극은 중심 인물인 거지 시인의 시각을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는데 이러한 기법은 후에 표현주의의 원형이 되었으며 극에서 거지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공연해 줄 새로운 극장을 찾아 나선다. 그는 자신의 극이 일반 대중을 위해 쓴 극이며 사회적 · 지적 엘리트를 위해 쓴 극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거지」는 표현주의의 방침을 선언한 극이 아니라 표현주의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한 극이며, 이를 어떻게 실행하는가를 시위한 작품이다. 이 극은 결국 거지 시인의 실패로 결론이 유도되지 않은 채 끝이 나지만 이 극이 표현주의 연극에 끼친 영향력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