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쁜 새와 더 좋은 새- 원형 이론 -지난 장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어떤 단어는 core property 혹은 fixed meaning을 갖고 그 의미를 분명히 하지만 대부분의 단어들은 그 반대여서 그 의미가 매우 불분명하고 그 각각의 의미 사이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게, 하지만 동시에 분명하게 화자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를 독일의 근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family resemblances로 설명했는데, 이는 그의 핵심 이론으로서 core가 없지만 막연하게나마 닮아 있는 각 단어들의 성질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원형 이론은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또 한 가지의 모델로서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의 이데아처럼 모든 단어는 최고 궁극의 의미 정점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이는 단어의 의미가 모호하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단어를 다루어야할까? 의 문제에서 인간은 어떤 단어보다 더 기본적인 단어를 찾아내는 것 같다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새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익룡을 보게 된다면 새다운 새 즉 원형적인(prototypical) 새의 특질에 익룡울 투사시켜 봄으로서 그 익룡이 새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파악하게 된다. 익룡이 원형적인 새의 모든 특질을 다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일종의 접점 이 있어야 새라는 명칭이 어울릴 수 있게 된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최소한 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겹치는 부분이 많아도 혹은 적어도 새라고 불리는 데에는 관계가 없으나 적어도 원형적인 새와 비교 대상인 익룡은 그 특질들 중 한 부분이라도 접해야 만이 익룡이 새라고 불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 이론은 매우 흥미 있는 생각이고 또한 검증될 필요가 있으므로 다음에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0여 년 전에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엘리아나 로쉬는 여러 새들 중 몇몇 새들이 다른 새들보다 더 새답고 몇몇 채소들이 더 채소답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결과는 놀라우리만큼 체계성이 있었다. 범주의 매우 좋은 보기로 평가된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원래의 결과들, 즉 위의 결과들을 뒷받침해주는 다른 실험을 수행하였는데 펭귄은 새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참새는 새이다 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시간이 걸린 것으로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들은 사용의 빈도, 겉모양, 시각적 특징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은 딱히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막연한 형태의 분석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는 사람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각각의 단어들을 범주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직관적으로 원형(prototype)의 특성에 대하여 어떤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원형 이론은 비 전형적인 범주에 속하는 보기들을 다루는 데에, 그리고 손상된 보기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또한 사물에 대해서 뿐 아니라 행위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등 그 효용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다시 거짓말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자. 유사 이래로 분명 어떤 특정 거짓말은 다른 어떤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답다는 생각이 존재해왔으며 현재에도 분명히 이는 유효해 보인다. 거짓말도 위에서 새와 채소 등이 그랬던 것처럼 등급이 매겨질 수 있고 심지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원형적인 거짓말이 아닐지라도 여전히 거짓말이 될 수 있다. 1틀린 어떤 것을 주장한다 2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한다 3속이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실제 우리의 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는데 이는 왜냐하면 한 원형에 대한 접근에 대하여 우리가 판단을 내리고 나서 대략의 대조와 비교가 맞아떨어지도록 허용하는 것이 그 원형이 아닌 또 다른 단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역시 비트겐슈타인의 family resemblances 개념과 큰 유사성을 지닌다.미친 사람의 원형을 살펴보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제대로 미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데, 1이상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2자신이 비정상사한 의미로 분류한다고 볼 수 있는데 대체 돼지와 쇳덩어리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상적으로는 원형이론이 사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의미들을 줄이도록 해주고 그 원형이론의 이해는 또 다른 의미들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지만 pig에서의 돼지 와 쇳덩어리 , fork에서의 포크 와 쇠스랑 , 그리고 sad 에서의 슬픈 과 슬픈 내용이 담긴 등과 같은 경우의 모호한 경우에서는 매우 난감해지게 된다. 다의성은 원형이론에 의해 도움을 받아왔지만 결코 풀리지는 않았다. 다양한 제안들이 제시되었지만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간단명료하지 않고 역사에 의존하는 사전들 같은 경우엔 pig의 경우처럼 같은 기원에서 유래되었다 싶으면 한 항목으로 묶어버리는 과오 를 범하는 등의 난점을 갖고 있기도 하고 오늘날의 화자들이 정신 속에서 어떻게 단어들을 다루는가를 고려해볼 때에도 그다지 썩 유용하지 만도 않다.over를 두고두고 생각하는 것은 최근에 많은 시간을 사용해왔는데 우선 over의 원형적인 의미를 규명해내기 어려웠고, 둘째 over가 얼마나 많은 분리된 의미들을 갖고 있는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정적인 것을 나타내는 over가 있는가 하면, 동적인 것을 나타내는 over도 있고, 위에 있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접촉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over하면 제일 처음에 떠오르는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긴 하지만 새로운 위치로의 성공적인 움직임 의 의미를 가진 over도 또한 존재한다. over의 제 1 의미로 여겨지는 위에, 위로 의 의미와 새로운 위치로의 성공적인 움직임 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그 둘이 쉽게 적응될 수는 없어 보이지만 반대로 또한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이는 수 차례 지적하였듯이 최소한 접점을 갖는다(이 글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던)는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 요컨대, 이 over는, 다의성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고 또한 다의성은 한 단어의 다른 의미를 안에서 겹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러한 다양한 의미들은 원형으로 쉽게 관련지어질 수 없고 또한 다 간주되어야하고 아울러 모든 의미들을 한 원형으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요컨대, old와 over는 원형 이론이 다의성 문제를 줄여주지만 완전히 풀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들은 또한 원형이 언제나 개별적인 단어들이 분리된 상태에 의해서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지금까지 우리는 단어의 의미가 불분명하고 가변적일 때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 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데아적인 단어의 원형을 떠올리고 그 원형에 사용하려고 하는 단어를 투사시켜서 그 의미적 유사성을 비교 혹은 대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의미적 유사성이 많을 필요도 적을 필요도 없으며 단지 적어도 접점을 공유할 정도의 유사성만을 갖고 손상된 보기 혹은 비 전형적인 범주의 보기들을 설명해낼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데아적인 단어의 원형이라는 개념은 모호하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각 산재해 있는 원형이 정말 동일한 이데아인지 서로 다른 이데아인지 등의 문제가 남게 되어서 경계선을 긋기가 어려워지는 문제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무의식적이건 혹은 의식적이건 간에 사람들이 머리 속의 단어들을 서로 분리해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것은 단어들이 metal lexicon내에서 어떻게 함께 결합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더 알아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13. 아이스크림 콘 해석하기- 기존 단어의 확장 -인간은 머리 속의 무수한 단어들을 매 순간 유효 적절하게 꺼내어 사용하는데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비유, 은유 등의 방법으로 창조적인 변용을 통해서 단어들의 적용을 확장시켜 나간다. 이러한 확장은 비단 문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어서, Cougars drown Beavers 에서나 Cowboys corral Buffaloes에서 혹은 Air Force torpedoes the Navy, 그리고 Clemson cooks Rice에서처럼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언어사용의림 콘 으로 사용하는 경우 등에 비추어볼 때 그럴듯한 정의라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이 은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젖꼭지와 아이스크림 콘을 혼동했다는 이유로 화자를 비난하거나 혹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는 등의 실수를 범하지 않고 매우 쉽게 그 의미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연상작용 때문이다. 즉, 둘 다 핥거나 빨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모양에 있어서도 유사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실 생활에서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은유들을 사용하고 있고 또 사용할 수 있으며 적용될 수 없고 설명되어질 수 없는 은유를 찾아내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은유는 간단하다. 그 낱말에 붙어있는 전형성 조건들'(typicality conditions) 중 하나 이상이 어겨짐으로서 만들어진 단어들의 용법인 것이다. 인간은 단어의 원형을 참고함으로서 다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다른 단어의 특징들을 원형적 단어와 비교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전형성을 발견하고 은유를 사용할 때에는 그 전형성을 최소한 하나 정도 제거함으로서 은유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다음의 보기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무수히 많은 쉽게 지나치는 은유들이 있다. The price of mangos went up' 가격이 물리적으로 언덕을 따라 오른 것인가? 그렇다면 은유인가? 혹은 전형성 조건이 어겨진 보통의 용법인가? 이 보기의 경우에 그 물음들에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형성 조건을 어길 필요성, 즉 다시 말해 은유의 불가피성은 너무나 커서 은유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어떤 특정 은유에 대해서는 그것은 올바른 은유다 라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어떤 특정 은유에 대해서는 그것은 올바른 은유가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5장에서 살펴보았던 원형 이론 즉, 진짜 은유다운 은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은유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항목들이 너무 유사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이런 은유는 이해하기 불가능하거나 아예 은유가.
머리말새로운 세기의 출발점에서 20세기를 되돌아 볼 때, 음악의 분야에 나타난 변화는 실로 대단하다. 전통적 음악 개념을 벗어나는 급진적 새로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작용 등, 한번에 열거하기 힘든 다양한 음악 경향이 한 세기 음악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이러한 현상들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러한 복잡한 음악적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는 이 시기의 음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서로 제 각기 독특한 개성을 보이는 그 많은 음악 작품과 음악관을 단지 개개의 현상으로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70년대 음악", "80년대 음악" 등의 객관적 시대구분에 근거하여 음악 현상을 설명하는데 만족할 것인가? 이러한 현란한 음악적 파노라마를 하나로 묶어서 설명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필자는 에서 찾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적·예술적 관점에서 "현재" 우리의 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부각되면서, 건축·문학·영화·무용·종교·정치·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미쳐왔다. 물론 이 개념은 "무조건적 수용"과 "알레르기적 거부 반응"이라는 찬.반 양론으로 갈라지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의미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과 시대적 사상(思想)의 연관성이 더욱 밀접해지고, 개별적 예술 분야 사이에서도 상호 영향력이 더욱 커진 오늘의 시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은 20세기 음악의 이해를 위해 시도되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한다.1. 포스트모더니즘과 20세기 후반의 음악적 흐름1980년대 들어 음악학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음악학에서 이 개념이 도입된 실제적 배경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다. 음악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적용하는 논의들은 주로 70년대를 전후로 나타난 20세기 음악 경향의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실험정신에 의한 새로움의 추구에 식상한 작곡가들은 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협주곡, 오페라 등의 전통적인 음악형식과 장르에 관심을 보이거나, 인간의 주관과 내면성에 호소하는 표현성 있는 음악을 추구하기도 하였다.2.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 접근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 설명된다. 이에 먼저 음악에서의 모더니즘에 대해 살펴보자. 모더니즘적 예술은 역사의 진보적 발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영원히" 적용되는 규범을 찾기보다는) 당 시대의 우연적인 것과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수용하여 독창적으로 새롭게 발전시켜, 진정한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경향을 지칭한다. 보통 문학에서는 19세기 중엽 보들레르 이후, 음악에서는 19세기 후반 바그너의 『트리스탄』 이후의 경향이 여기에 해당된다. 모더니즘은 계몽과 이성에 대한 믿음, 예술의 자율성 추구, 예술의 형이상학적 요구 등을 특징으로 하며, 이 주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합리적 사고에 의한 전통 비판적 특성은, 음악에서 주로 20세기 초반 의 미학적 근간을 이루었다. 전통적 양식에서 파격적으로 벗어난 쇤베르크 악파를 비롯한 20세기 초반의 음악은, 19세기말 20세기초에 을 변화시키고 소멸시켰다. 그러나 전통비판에서 기원된 은 자체적으로 전통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는 역사적 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연결된다. 즉 모더니즘으로서의 신 음악은, 이전의 고전주의자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스스로 고전성을 획득하려 노력한다. 이에 따라 드러나는 역사적 정통성의 강조는 모더니즘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여주었던 쇼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전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문학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모더니즘의 고전주의자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의 이러한 관계는 음악에서 쇤베르크에게 적용된다. 이러한 모더니즘 미학은 무엇보다도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에 드러난 카테고리로 설명된다. 1949년 첫 출판된 이 책은 20세기 신측면에서 설명함에 있어서, 이것이 모더니즘에 대립된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변화된 형태로 이해하려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대립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자체에서 설명되는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e)에서 포스트는 시간 개념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모더니즘 이후를 가리킨다. 독일어에서 오후를 Nachmittag, 즉 점심-이후라고 부르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적으로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 앞선 것의 본질적인 거부 또는 부정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앞의 것의 연장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진보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미적인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경향은 이미 음악사에서 계속적으로 존재하였는데, 만약 이러한 것을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부른다면, 70년대 이후 음악경향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의 대립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모더니즘의 현상이 시대적 특징과 맞물려서 나타난 후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누저는 "오늘날의 모더니즘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e als Moderne der Jetztzeit)이라는 용어로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설명한다. 그리고 -창작의 측면에서- 다음의 세 가지 특성을 언급한다: 첫째, 과거의 역사적 요소를 음악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이로서 음악의 구성이 다각적 코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작품을 인용하고, 이러한 요소를 꼴라쥐 기법으로 엮어나가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은 예술 음악과 저급 음악의 큰 간격을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아도르노의 역사철학적 미학에 의해 극복할 수 없는 대립관계로까지 치 닫았던 이 두 영역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 경향의 회복을 의미한다. 뷔르거가 확립한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에서는 무엇보다도 합리적으여러 논의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에서 비판적으로 보는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보는가의 문제를 접어두고- 이 개념 자체가 음악에서, 특히 70년대 이후 음악에서 간과될 수 없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유럽의 음악학계에서 심포지엄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적용가능성, 의미, 문제점 등을 계속 논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연구를 통해 20세기 후반의 많은 작곡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주장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곡가로는 베리오(L. Berio), 짐머만(A. B. Zimmermann) 등이 논의되는데, 베리오의 『신포니아』, 짐머만의 『병사이야기』는 음 언어의 다원적 층 구성과 인용의 측면에서 이미 60년대 후반에 포스트 모더니즘적 경향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급진적 아방가르드적 경향에서 출발하였지만, 전통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는 이 경향의 대표적 작곡가로 설명된다. 특히 펜데레츠키는 자신의 음악에 포스트 모더니즘적 특성이 나타남을 스스로 시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론가에 의해 "음악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시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주관적 표현에 주력한 볼프강 림(W. Rhim), 트로얀(M. Trojan)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전통을 새로운 음악의 창작에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을 주장하는 루치카(P. Luzicka)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적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다.미국에서는 뚜렷한 양식변화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선도하는 작곡가로는 록버그(G. Rochberg), 크럼(G. Crumb) 등이 꼽힌다. 그리고 미니멀 음악의 작곡가인 라이히(S. Recih), 릴리(T. Riley), 영(L. Young), 글래스(Ph. Glass) 등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부류로 설명되며, 후기 낭만주의의 맥락을 이어온 맥밀란(James Macmillan), 모오(N. Maw) 등과 뉴 심플러서티 경향의 스켐턴(은 반 음계적 구성에 근거한 무 조성 양식으로 서로 연관성을 보이며, 2악장과 6악장은 조성적 요소와 무 조성적 요소가 혼합된 것이 특징이며, 3악장과 5악장은 브람스를 연상시키는 조성적 구성을 보인다. 즉 이 작품은 전통적 형식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조성에 있어서도 무 조성과 조성이 악장마다 계속 변화되는 다양성을 보이며, 자유로운 무 조성, 반 음계적 양식, 낭만주의적 표현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단순한 나열로 드러나기보다는 작품의 대칭적 구조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작품의 질적인 수준을 보여준다.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적 독창미학에서 벗어나 를 보여준다. 모더니즘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새로움을 통한 진보 또는 발전에 대한 믿음이었다. 즉 음악사는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면서 변화되고 발전되며, 작곡가의 가장 중요한 미적 능력은 독창적인 어떤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독창미학"으로 설명되는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18세기 이후 20세기까지 서양음악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베리오의 『신포니아』는 이러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3악장에서는 말러의 2번 교향곡 스케르쪼 악장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되었고, 말러 음악의 수용 외에도 작품 전체에는 시대와 양식을 초월한 다양한 과거의 작품이 여러 층으로 인용되었다: 쇤베르크의 『관현악 작품 op.16』 중 4번, 드뷔시의 『바다』 중 2악장 및 3악장,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아곤(Agon)』 중 "Double Pas-de Quatre",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의 고정상념, J. S.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1번』,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이러한 인용은 직접적 수용에서부터 하나의 성부 또는 리듬의 인용까지 다양하며, 청취에 있어서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다른 맥락에 숨어서 전혀 들을 수 없는 것들까지 여러 종류이다. 또한 작품았다.
남북한 통일정책의 변천과정1. 머리말남북한은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통일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는데 시대적 상황 추이와 국내외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남북한의 통일정책도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 변천되어 왔고 또한 구체적으로는 각 정권마다의 변화를 거듭하기도 하였고 정당이나 사회단체들도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북한은 1960년 이후 연방제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시대에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 하였지만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으로 정립되어 있다. 남과 북의 통일 정책을 논할 때 중요시 되는 것은 한반도의 통일정책은 국가 이익과 민족 이익을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되어야한다 는 것이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할 경우엔 통일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위험(통일비용, 토지소유권 등)을 감수하기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논리가 도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급진적인 민족 이익 관에 따라 통일문제를 민족적 염원과 감정에 의해서만 추구할 경우엔 자유와 체제 안정, 물질적 풍요와 같은 가치들이 희생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남북한은 통일정책의 합일점을 도출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그간 양국에서 통일정책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2. 남한 통일정책의 전개과정1) 제 1·2 공화국의 통일정책제 1 공화국 이승만 정부 초기의 통일정책은 북한의 정치 실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북한 지역을 미수복지구로 생각하며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정책으로 통일을 위해서는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도 정당화된다. 이는 헌법에도 잘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1954년 6월 제네바 정치회담에서 유엔 감시 하에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총선거를 제기함으로써, 당시 1공화국의 통일정책은 북진통일론에서 남북한 총선 론으로 전환되었으며 제네바 정치회담이 실패로 끝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다시 남한 헌법을 토대로 북한만의 자유총선거 또는 무력북진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제 1 공화국 정정부가 평화통일을 내세운 것은 국제법상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즉, 막연하지만 종래까지는 북한을 영토의 일부를 강점한 괴뢰정부 및 폭력집단으로 파악했으나 어느 정도 대화의 당사자 내지 실체의 존재로서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2) 제 3·4 공화국의 통일정책제 3 공화국 박정희 정부 초기에는 통일논의의 무절제를 막고, 국력 증강에 우선순위를 두는 반공, 선 건설, 후 통일 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이로서 민간 차원의 통일 논의는 중지되었고, 정부 당국의 통일 논의만 있게 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성공적인 5개년 계획을 마치면서 1960년대 후반부터 대 북한 국력 우위를 확보하게 된 박정희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의 대화 없는 남북대결시대 를 마감하고 국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1970년대의 대화 있는 남북대결시대 를 열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닉슨독트린과 미·소·중·일 4강간의 새로운 세력 균형이 형성되면서 평화 공존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1970년 박정희 정부도 8·15 평화통일 구상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1한반도 평화 정착, 2남북 교류협력, 3총선거 등인데 이것은 북한지역에 공산정권이라는 하나의 사실상의 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공산정권을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종래의 수동적인 대북관계에서 탈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된 점뿐만 아니라 종래의 유엔에 의존해왔던 통일문제를 남북한 당사자 간에 협상의 방법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72년 7월 4일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서 남북한은 첫째, 외세의 간섭 없는 자주통일, 둘째, 무력 사용을 배제한 평화통일, 셋째, 이념을 초월한 민족의 대단결 도모 등의 3대 통일 원칙(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에 합의 하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남북한은 모두 이 공동성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제 4 공화국의 유신헌법이 그 정당성을 조국의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을 뿐 하나도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요컨대 제 4 공화국의 통일정책은 남북 당사자 대화의 원칙에 입각한 평화적 조국 통일로 요약될 수 있다.3) 제 5·6 공화국의 통일 정책1981년에 출범한 제 5 공화국은 통일되고 독립된 근대 민족 국가의 건설 이라는 평화통일을 향한 통일정책으로서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을 제시하였다. 이 통일 방안은 통일이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거하여 겨레 전체의 자유의사가 고루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입각하여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가장 합리적인 길로서 통일헌법을 채택하고, 이 헌법에 따라 통일된 단일 주권국가를 완성시킨다는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제 5 공화국의 통일정책은 제 3·4 공화국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정권의 정통성이 없었던 만큼 남북문제는 곧잘 정국 돌파용으로 이용되곤 하였다. 그러나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 그리고 서울올림픽 등의 국제 정세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쳐서, 수해물자 교류, 고향방문단, 예술 공연단의 상호 방문 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988년 제 6공화국이 출범하자 평화통일의 움직임이 나라 안팎에서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였는데, 노태우 대통령의 통일에 관한 기본 입장은, 7·7 특별선언 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등에서 표명되었다. 특히 7·7 특별선언 은 첫째, 북한을 경쟁과 대결 그리고 적대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일부로 포용하여 상호 신뢰·화해·협력을 바탕으로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서 대북한관에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둘째, 북한을 내외로부터 고립시켜 결과적으로 북한 내부에 변화를 꾀하게 한다는 소극적인 태도로부터 오히려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감 있는 성원으로 참여하는 데 협조함과 동시에 미·일 등 우방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게 한다는 적극적인 통일·외교 정책으로의 기조 전환을 하였다.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한소수교, 한중수교를 이루두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함으로서 남북관계는 경색되게 된다. 조문 파동, 식량 원조 중단, 인공기 게양 사건, 북한 잠수정 사건 등으로 인해 형성된 공안정국의 포로가 된 김영삼 정부는 어느 정권보다도 민족문제에 이렇다 할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다.5)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햇볕론 을 당당히 대북정책으로 내놓은 김대중 정부는 목표를 평화·화해·협력 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1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무력 도발 불용, 2흡수통일 배제, 3가능한 분야부터 화해, 협력의 추진 등의 3원칙을 제시하였다.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 등과 같은 무력 도발로 인하여 보수층으로부터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나갔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하였으며 금강산 관광을 햇볕정책의 결실로 얻기도 하였다.3.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1960년 8월 15일, 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에서 김일성이 행한 연설에서 처음 제시된 이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계속 주장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살펴보자.1) 1960년대 연방제 통일방안남북한 통일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외국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초 위에서 자유로운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전제를 깔고 있었다. 즉,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는 남한에서의 미군을 비롯한 외국 군대의 완전한 철수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김일성은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 가 행해질 수 없을 경우 과도한 대책으로 남북조선의 연방제 를 실시할 것을 제의하였는데 이런 내용들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1연방제는 남북 총선거가 실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득이한 조치로서 제시된 것이며, 2통일을 항한 과도기적 조치로서의 성격과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념상 연방제 라기보다는 연합 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김일성이 남북조선의 두 정부 를 지칭함으로서 사실상 남북한에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2) 1970년대음을 인지할 수 있지만 여기서도 남한과 북한의 현행 두 제도들을 당분간 그대로 지속시킨다고 전제함으로서 북한의 연방제 안이 통일을 향한 과도적 조치 로서의 성격은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3) 1980년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안1978년 4월 24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 이름으로 다시 연방제를 제안하고, 연방정부의 기능을 상당히 구체화시키면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의 일반적과제가 해결된 조건하에서 서로 상대방에게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민족 대단결의 관점에서 상호 인정 내지 용납하면서 남과 북에 두 개의 지역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그위에 통일연방정부로서 최고민족연방회의 를 구성하자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어느 한 쪽의 사상과 제도를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고 보고 한 나라 안에서도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으며, 또 하나의 통일된 국가 안에서도 서로 다른 제도가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에 있어서 기본 원칙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이며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이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갖고 각각 지역자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방안은 기구 면에 있어서 1980년대 이전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즉 1980년대 이후에는 상설적인 남북한 지도기관으로서의 동수의 남북 대표와 해외동포 대표로 이루어진 최고민족연방회의와 연방상설위원회가 구성된다는 점과, 남북한의 군대를 축소해서 연합군으로 편제한 민족연합군의 창설을 들 수 있다. 바꿔 말해면 단일 군대까지 보유하는 실질적이고도 명실상부한 연방국가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안에서의 연방제의 성격은 어떠한가? 북한은 연방국가의 국호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이라고 할 것을 주장하면서 남과 북의 지역 정부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하나의 통일국가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종전에 연방제를 통일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과도적 혹은 중간적 조치라고 규정했던 것과는 판이하다. 그리고 1남북지역자치정부, 2남북다.
OneDIFFERENT WORDS, DIFFERENT WORLDS몇 년 전 나는, 넌 여자고 나는 남자니까 넌 내게 목소리를 높일 권리가 없어 라고 내게 소리치던 남자와 결혼했다. 이것은 아주 절망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남녀는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나는 그가 내게 보여준 부당하고 불공평한 사고와 행동을 그런 그의 성장배경으로 원인을 돌렸다.이제 나는 동료이며 친구인 남자와 결혼한 상태다. 우리는 비슷한 배경에서 시작해서 비슷한 가치와 흥미를 공유한다.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움의 끊임없는 원천이다. 내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또 이해해주는 누군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보는 대로 늘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보지는 않고,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대로 반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가 하는 일을 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내가 이 책 쓰는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서로 다른 도시에서 직업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힘들텐데 , 어떻게 그걸 참고 견뎌? 라고 말하면서 자주 동정심을 표현했다. 나는 비행기 많이 타면서 자주 왔다갔다해요 와 같은 말들을 하며 그들의 동정심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때로 나는 그들의 걱정을 강화하곤 했다: 가장 나쁜 부분은 항상 짐을 쌌다 풀었다 해야하는 것이에요 . 하지만 내 남편은 다르게 반응했는데, 종종 화를 내기도 했다. 그는 그 불편함의 정도를 깎아 내리는 방식으로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academics로서 우리는 four-day weekends를 함께 보냈을 뿐 아니라 long vacation throughout the year and four months in the summer를 함께 보냈다 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심지어 일을 위한 방해받지 않는 사이에 낀 날들로부터도 고, 이것은 그가 독립적이지 못하고 그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가 어린이나 졸개라고 느끼게 할 것이다.Linda에게는 남편의 동의를 먼저 구한다는 것이 허락과는 관계없다. 그녀는 부부의 삶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한 명의 행동이 다른 한 명의 행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부부는 그들의 계획을 서로 상의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Josh와 상의해봐야겠어 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을 Linda는 꺼려하지 않으므로, 그 반대 역시 그래야 한다--그녀는 그걸 좋아한다. 그녀가 누군가와 동반되어있고, 그녀의 삶이 누군가의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 자신이 알고 또 보이는 것은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다른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Linda와 Josh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더 기분이 상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주된 우려의 핵심까지 상처를 냈기 때문이다. Linda는 그들의 관계에서 친밀함의 실패를 느꼈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그는 그녀가 그를 아끼고 보살피는 만큼 그녀를 아끼고 보살피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통제하고 자유를 제한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비슷한 충돌이 또 다른 부부인 Louise와 Howie 사이에서 돈 쓰는 문제에 관하여 존재한다. Louise는 Howie와 사전 상의 없이 100달러 넘는 물건을 결코 사는 법이 없다. 하지만 그는 나가서 그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살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뭐든지 산다. table saw나 new power mower등이 그것들이다. Louise는 불안하다. 그녀가 그 소비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마치 그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 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많은 남자들은 그들의 배우자와 사전에 상의하지 않고 더 많은 결정들을 내리는 반면, 많은 여자들은 매번 그들의 배우자와 상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것은 어쩌면 의사결정시의 큰 개념 차이를 반영할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먼저 상의하고 동의 잠도 못 이루는 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Having no others at disposal이어서, 이 아내는 심리학적인 설명에 의지했다: 그녀의 남편은 불안정하고, 거절당할까봐서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불안정하다. 그녀의 남편은 실제로 매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최소한 남편만큼 불안정하다고 믿는 그녀는 boss에게 가서 그녀의 임시 직업을 평생 직장으로 만들어줄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남자들의 관계 속에서의 지위에 의해 수행되는 중심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그것을 모두 분명히 밝혀준다. boss에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묻는 것은 그 관계 내에서의 계급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들 둘 모두에게 그 피고용인의 미래는 boss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낮은 계급을 가졌다는 사실이 이 남자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의 아내가 그녀의 boss에 관하여 애원자(supplicant)의 역할을 맡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을지라도, 그것이 그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머리 속에 있는 alarms를 set off하지는 않았다.비슷한 통찰력의 번득임 (flash of insight)에서, 판매 여사원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이제 그녀는 판매 팀의 리더가 지역 manager로 승진되었을 때 단행한 당황스러운 변화를 이해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그 boss가 권력에 대해 건전한 무시를 했으므로 그가 완벽한 boss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다. 팀의 리더로서, 그는 경영자 측에 의해 소집된 회의에 좀처럼 애써 가지 않았고, 팀원들에게 스스로의 판단을 중요시하고 독려했으며, 팀원을 위하여 규정들을 철회하는 데 있어서 그의 능력을 서슴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그가 지역 manager가 된 후에, 이 남자는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는 다른 이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규정들을 만들어냈고, 그에게 서면으로 제출해야만 예외가 가능하다고 주장 metamessages는 현재 진행중인 상황을 규명함으로서 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를 알게 하여준다: 논쟁인가 잡담인가? 도움인가 조언인가 혹은 비난인가? 동시에, 그것들은 화자가 어떤 위치를 가지고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청자는 어떤 위치를 할당받았는지를 알려준다.사회학자 Erving Goffman은 구성(framing)의 이런 양상을 표현하기 위해 alignmen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당신이 나를 무시하면 당신은 나와 관련해서 우월한 위치에 정렬되어있는 것이다. 더욱이, 당신이 다른 사람과 관련한 그 정렬을 보여줌으로서 당신이 말하는 것이 당신을 구성하게 된다. 마치 당신이 말하는 것을 당신이 구성하듯 말이다. 예를 들어, 마치 당신이 선생이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학생들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아는 체하거나 생색을 내는 태도라고 여기면서 당신의 말하는 방식을 인지할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마치 도움을 구하고 설명을 바라는 학생처럼 다른 이에게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불안하고 무능력하고 천진난만하다고 인지할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대한 우리의 반응은 종종 우리가 구성되고 있다고 느끼는 방법에 의해 야기된다.THE MODERN FACE OF CHIVALRY다음의 평범한 장면에서 구성(framing)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동차 한 대가 자동차 한 대가 주차장에서 천천히 나오고 있는 동안 다른 자동차 한 대가 도로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주차되었던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는 망설이지만, 또 다른 차의 운전자는 멈추어 서서는 손을 흔들면서 우측 도로를 양보한다고 신호를 보낸다. 만일 주차되었던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여자라면, 그 의리 있는 운전자가 기다리는 동안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을 하고는 운전해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운전자가 남자라면, 그는 어쩌면 스스로 손을 다시 흔들면서 계속 기다리기를 고집할 것이고, 혹시 다른 상황에서는 차가 자신의 앞길을 막기 전에 재빨리 주차장에대방의 경청에 의해 충족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상대방이 다른 상태 또는 대칭적인 관계에서 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게 된다. 또한 개개인은 의도되어진 말에 깃든 정신보다 청자의 관심사, 습관내지는 버릇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누가 믿을수 없는 사람인가?인간관계의 접근에 있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사람과 다른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역동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결속력(연대의식)을 사용하는 것은 속이는 행위가 아니지? 라고 앞에 나온 배관공에게 할 수 있는 대화의 방식을 분석한 나의 의견을 듣던 한 사람이 이와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처럼 이 사람도 인간관계는 하나의 수직적, 계급적 관계를 가진다고 믿는다면, Then, playing on connection rather than status amounts to "pretending" there is no status-being deceptive. 사람사이의 기본적인 역동적 관계로써 연대의식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교묘한 조작내지는 불공평하게 상태의 차이를 이용하기도 한다.상태나 연대의식은 일종에 인간관계이다. 이것들은 다른사람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며 다른사람과 관계되어질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비록 한가지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의 경우 관련(관계형성)의 수단으로써 다른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남자들은 대화에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조정사 내지는 기수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여자의 경우 더욱더 연대관계에 맞춰진다. 즉, 다른 사람과 친하냐 사이가 머냐?를 따진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같은 대화에 있서서도 서로 다른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것이 용이하다. 그것은 이런 서로 다른 두가지 요소들(STATUS, AND CONNECTION)은 항상 대화에 존재하기 때문이다.혼동된 판단과 오판남자와 여자는 대화에 있어서 대조적인 이익의 견해로부터 그려지는 그림을 이해하기 때문에 같은 그림은 그들에게 서고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또는 종종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반대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한 동료가있다.
서론를 처음 읽었을 때 문득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확신으로 바뀐 생각인데 그것은 바로 지난 학기에 영화 공부를 조금이나마 하면서 배웠던 영화의 사회성 이라는 개념이었다. 영화의 사회성이라는 주제는 물론 여러 가지 형식을 통해서, 특히 영화의 여러 장르를 통해서 구현 가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film noir라는 장르가 이 소설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다분히 작위적이고 조잡할지라도 영화, 그 중에서도 film noir라는 장르와 이 소설을 연관시키는 나 나름대로 혁신적이고도 창의적인 작업을 다음의 1, 2, 3, 4번과 그 후에 맺을 결론을 통해 감히 해보려 한다.본론1. What is film noir ?어두운 영화, 검은 영화 를 뜻하는 film noir라는 영화의 장르가 있다. 이 장르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를 꼽으라면, 그 한 가지는,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 어조의 어둡고 칙칙하고 건조함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갈등, 삶의 무의미성 등을 드러내는 등의 시각적인 스타일을 강조하는 것이 그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주로 밝음과 어두움을 강조하면서 현란한 네온 싸인, 밤거리의 추적 장면 등을 잘 표현해내는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의 특징은, 그 서사적 구조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대한 음모를, 사건을 해결하는 듯 싶지만 그 배후엔 더 큰 힘·세력이 존재한다. 라는 공식이 늘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 힘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실제의 조직일 수도 있고 혹은 추상적인 사상, 가치관 등일 수도 있다. , 에서 그랬다.베르토프{) 기록 영화의 아버지. 부지불식간에 포착된 진실 로서의 기록 영화를 추구.는 일찍이 영화 = 삶·현실 이라고 외치며 영화의 사회성을 부르짖었다. 작가는 작품에 개입하지 말아야하고 보여주기만 해야된다는 것이 그의 영화 철학의 핵심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이야기한 네오 리얼리즘 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영화관을 집약적으로 마비를 경험하고 있고, 그 마비는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적 마비를 겪는 독자는 film noir를 보는 관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What lies beneath'를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주인공이 결국 ending scene에서 접하고 느끼는 허무함과 좌절감은 바로 그 영화의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epiphany이며 그것은 분명 영화 속 주인공이 겪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다.3. The similarity between Joyce'epiphany and the one of film noir's186쪽 다음의 단락을 보면,『It was after nine o'clock when he left the shop. The night was cold and gloomy. He entered the Pa가 by the first gate and walked along under the gaunt trees. He walked throught the bleak alleys where they had walked four years before. She seemed to be near him in the darkness. At moments he seemed to feel her voice touch his ear, her hand touch his. He stood still to listen. Why had he withheld life from her? Why had he sentenced her to death? He felt his moral nature falling to pieces.』조이스의 epiphany, 즉 film noir적 결말을 볼 수 있다. 즉, 인용된 단락의 그토록 건조하고 간결하여 깔끔하기까지한 문체는 외부의 세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최소한의 수식을 사용하며 간결한 어휘를 구사하여 독자들의 눈앞에 사실적으로 분명한 이미지를 형성해 주는 효과를 갖게 한다. 그리고 친절하의 한계를 드러내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감독은 로스엔젤레스를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의 편집증적인 분위기에 휩싸인, 일상적인 법과 도덕성이 파괴된 부패한 대도시로 바라보았다. 타자로서의 인간을 뜻하는 명 대사, 잊어버려 제이크, 여기는 차이나타운이야. 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에서도 제이크는 최선을 다해 사건에 매달렸지만 타자로서의 인간 임을 재확인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다. 결국, film noir에서의, 그리고 에서의 epiphany는 실제 인간들이 영위하고 있는 죽음과 같은 삶을 해부하여 그 구체적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이 있다. 또한 그 둘 모두 보여주기만 할 뿐 , 어찌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라는 점에서 또 다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또한, 180쪽 다음의 단락을 보면,『Mr. Duffy was very much surprised. Her interpretation of his words disillusioned him. He did not visit her for a week; then he wrote to her asking her to meet him. As he did not wish their last interview to be troubled by the influence of their ruined confessional they met in a little cakeshop near the Parkgate. It was cold autumn weather but in spite of the cold they wandered up and sown the rads of the Park nearly three hours. They agreed to break off their intercourse: every bond, he said, is a bond to sorrow. When they came out of the Park they walked in silence towards the city which he was a citizen and because he found all the other surburbs of Dublin mean, modern and pretentious. He lived in an old sombre house and from his windows he could look into the disused distillery or upwards along the shallow river on which Dublin is built. The lofty walls of his uncarpeted room were free from pictures. He had himself bought every article of furniture in the room: a black iron bedstead, an iron washstand, four cane chairs, a clothes-rack, a coal-scuttle, a fender and irons and a square table on which lay a double desk. A book case had been made in an alcove by means of shelves of white wood. The bed was clothed with white bed-clothes and a black and scarlet rug covered the foot. A little hand-mirror hung above the washstand and during the day a white-shaded lamp stood as the sole ornament of the mantelpiece. The books on the white wooden shelves were arranged from below upwards according to bulk. A complete Wordsworth stood at one end of the lowest shelf and a tawny moustache did not quite cover an unamiable mouth. His cheekbones also gave his face a harsh character; but there was no harshness in the eyes which, looking at the world from under their tawny eyebrows, gave the impression of a man ever alert to greet a redeeming instinct in others but often disappointed. He lived at a little distance from his body, regarding his own acts with doubtful side-glances. He had an odd autobiographical habit which led him to compose in his mind from time to time a short sentence about himself containing a subject in the third person and a predicated in the past tense. He never gave alms to beggars and walked firmly, carrying a stout hazel.』우리는 위의 단락에서 사진과도 같은 상세한 묘사를 볼 수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 근처의 경치, 배경, 그의 방에 있는 물건들과 각각에 대한 자세한 위치 설명 및 묘사 등으로 그와 그의 주변에 대한 상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그 각각의 물건들이 제 각각 뭔가를 상징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잡한 가운데에서도 일관된 주제, 즉 더피의 성격 및 환경이라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생김새 묘사에 있어서는 그가 살아온 세월을 알 수 있으며, 그의 얼굴이 더블린의 거리처럼 갈색이라고 한 부분에서는 작품 끝에서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