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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행복의 기준 평가A좋아요
    요즘 뉴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에 하나가 자살이라는 말이다. , 등등 자살이라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들을 수 있다. 현재 우리 나라 사망률 1위 원인은 바로 자살이다. 하루 평균 36명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TV뉴스에는 안타까운 자살 한 건이 방송되었다.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한 가족이 자동차 안에서 자살한 것이다. 그들은 왜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일까? 안타까운 생명이 떨어진 일은 또 있다. 수능시험을 보던 중 한 고등학생이 시험을 보다 말고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을 한 것이다. 이 학생은 왜 자살을 한 것일까?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왜 이들이 인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천상병은 시를 통해서 인생은 즐거운 소풍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소풍을 도중에 그만둔 사람들은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인간 최고의 공포까지 뛰어넘는 시도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때문이다.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부유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넘치는 문화와 향락 그리고 각종 편의 시설들이 바로 그런 부유함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화 시설을 만든 사람들도 인간의 행복을 바라고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더욱 행복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앞으로 더 많은 문화적 혜택과 편하게 만들어주는 각종 편의 시설과 향락이 만들어질 것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석기시대부터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각종 도구가 발명된 것도 그리고 전쟁과 국가가 발생한 것 역시 인간의 이런 본성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에게 복종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자신에게 복종시켜왔던 인간은 일찍부터 이라는 개념에 따라서 살아왔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바로 를 만드는 것이다.앞에서 잠시 말했던 일가족 자살 사건을 한번 생각해 보자 . 왜 일가족은 자살을 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을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어도 그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집안의 가장은 직장을 실직한 사람이었다. 처음 직장을 실직했을 때는 곧 재취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카드를 사용해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그 가족은 이전보다는 아니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비록 지금은 실직을 했지만 나중에 재취업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직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을 것이다. 점점 카드 빚이 불어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고, 계속적인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아이들은 점점 커 가는데 교육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또한 계속되는 카드사의 압력에도 시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점점 행복이라는 것을 잃어갔다. 결국 그들은 자신 안에 남아있는 행복이라는 것이 완전히 소진되었을 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불행했을까?이런 가정을 하나 해보자. 자살한 가장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한 사람의 거지가 동냥을 하고 있다. 그 거지는 팔다리는 불편하고 보살펴줄 가족도 없고 그야말로 동냥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 거지는 아침마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는 그 남자가 부러웠을 것이다. 건강한 몸과 따뜻한 가족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건강한 몸과 가족들만 있다면 어떤 일을 해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고 돈을 벌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이 거지가 볼 때 자살한 그 사람은 과연 불행한 사람이었을까?예로부터 전해오는 잠언 중 ‘물 잔 이야기’라는 것이 있다. 절반이 들어있는 물 컵을 보고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낀다는 것이다.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과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사람의 차이. 바로 이런 차이가 우리 주변의 행복을 만드는 차이인 것이다. 과 가 모두 이렇게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수능시험을 보던 학생은 왜 자살을 택한 것일까 ? 그 학생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 대답 역시 그 학생도 상대적인 행복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일까?우리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의 한 편린을 의 대두에서 찾을 수 있다. 은 최근에 등장한 하나의 트렌드로 ‘잘먹고 잘살자’라는 말로 요약되는 생활 습관이다. 이들은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만족과 건강을 중요시하면서 살아간다. 최근에 유행하는 아침형 인간의 모습과 기수련과 같은 정신적 수양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모습들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 주변에서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은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자신의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행복의 편린을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이 웃는 순간에도 행복의 편린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복들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이다. 행복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행복을 마음속에서 찾지 못한다면 상태는 계속되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행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것이다. 아까 앞에서 말했던 두 사람의 죽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구조에서도 일부 기인한다. 신용불량자라는 족쇄로 인간을 옭아매어 사회적인 활동을 막아버리는 것도 행복을 빼앗는 사회적인 조건이었던 것이고, 학력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도 자신의 원하는 점수와 대학을 얻을 수 없었던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행복을 얻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지만, 행복을 지속시키는 것은 자신의 마음만이 아닌 사회적인 책임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각 개인이 행복한 삶을 살수 있는 기획을 박탈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대선 비자금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대선 비자금에서 왔다갔다하는 돈의 단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액수이다. 대선 자금에서 사용되는 돈의 단위는‘억’의 단위이다. 현재 서울에는 판자집 철거를 두고 경찰과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는 동네가 있다. 그 동네의 사람들은 이미 전기도 수도도 끊어진 상황에서 자신들의 살집을 마련해 달라고 싸우고 있다. 또한 현재 철거중인 청계천에는 하루하루를 길에서 보내는 노점상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 대선 자금 사건에서 왔다갔다하는 돈의 단위의 10분의 1의 돈만 있어도 자신들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방송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상대적인 박탈감은 마음에서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서 일시적으로 통제하는 박탈감을 방송에서 계속 말하고 그렇게 돈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과연 그들이 이 세상을 행복한 눈으로 쳐다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전경과 대차하고 있는 철거민들이나 자신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노점상들도 순간순간 웃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기는 힘들다.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과학| 2003.12.24| 4페이지| 1,000원| 조회(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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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한국의 앵커 평가A좋아요
    날이 갈수록 방송의 영향력은 커지고, 사회여론을 이끄는 주체로서 기자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이 발전한다. 그 중 전파의 사용으로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방송에서 활약하는 방송기자 역시 주가가 점점 치솟고 있다. 방송기자의 꽃 중의 꽃은 앵커이다. 미국은 앵커의 연봉이 인기 연예인의 연봉을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과연, 앵커란 무엇일까?얼마 전까지만 해도 앵커라는 단어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뉴스의 진행자를 앵커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 과거에는 아나운서가 9시 뉴스의 메인앵커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기자들이 메인앵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도 점차 선진국의 시스템 즉, 미국의 스타앵커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스타앵커 시스템이 무엇이고 그와 비교하여 한국의 방송 시스템을 대표적 여성 앵커들의 모습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한국언론의 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해보고자 한다.앵커(anchor)는 미국의 상업방송에서만 썼던 신조어로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방송뉴스 진행자에게 앵커보다는 뉴스캐스터란 호칭을 쓴다. 앵커와 뉴스캐스터는 모두 같은 방송뉴스의 얼굴이고 목소리이지만 한 가지 점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즉, 뉴스캐스터가 이미 취재, 편집된 뉴스의 전달자인데 반해 앵커는 단순한 전달에 그치지 않고 그 뉴스의 취재와 편집 등 모든 과정을 합친 조직의 책임자라는 점이다. 신문에 서명기사가 있듯 방송에도 기자의 이름은 물론 자신의 목소리로 보도하는 뉴스를 총괄하는 사람이 앵커다. 앵커란 대외적인 호칭일 뿐이고 방송국내의 공식호칭은 executive editor (집행력있는 편집자)이다.상업적인 미국 방송은 현재 스타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으며 각 방송사마다 스타급 앵커들을 모시고 있다. 연예인 보다 더 연예인 같은 스타앵커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바바라 월터스를 꼽을 수 있다. 70세 할머니의 연봉이 1백 32억 원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바라 월터스는 우리 나라 나이로 하면 70세이다. 그녀는 현재 ABC방송과의 연봉계약금이 1200만 달러(한화132억원)이다. 그녀는 미국 최초의 여성앵커이고 미국의 대표적 방송인이라고 불리우며 모니카 르윈스키와 힐러리 클린턴의 인터뷰를 따낼 만큼 능력 있는 할머니이다. 앵커우먼이자 유명한 방송인이고 저널리스트인 바바라 월터스는 76년도에 NBC에서 ABC로 스카웃 되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00만 달러를 받았었다. 그 뒤로 현재까지 ABC방송에서 [20/20]과 토크쇼 [더 뷰 (The View)] 의 진행을 맡고있으며 그 동안 왕과 대통령, 영화 스타는 물론 살인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한 방송인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인터뷰의 여왕이다. 그녀는 뉴스와 오락이 합병되면서 여자 인터뷰어가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남자와 같이 예리하고 진지하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다른 여성 진행자들을 위해 계속적으로 선두에 나섰다. 그녀는 남성에 의해 지배되던 뉴스방송에서 여자도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의 노력으로 증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으로 초대 스타앵커 자리에 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상업적 시스템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스타앵커의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청률을 위해 한 개인에게 전권을 맡긴 미국의 시스템은 커다란 문제점을 껴안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언론의 편파, 왜곡 보도에 관한 논란을 겪어 왔고 그런 시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저널리스트들은 수많은 사실들 중에서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은 뽑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언론의 속성이나 그들이 애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우리는 결국 그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똑같은 뉴스를 보고서도 가려진 진실을 알아차리는 사람과 미디어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왜곡된 정보를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버나드 골드버그에 의하면 미국 주요 TV뉴스를 제작하는 앵커와 기자들이 진보편향을 갖고 있다고 단언하면서 그 같은 편향이 어떻게 뉴스를 왜곡시키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보통 뉴스앵커들은 보수파에게는 이름 앞에 보수주의자라는 수식을 달지만 진보파에게는 아무런 수식을 달지 않는다. ABC TV 의 앵커 피터 제닝스는 1999년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상원의원들의 투표를 생중계하면서 공화당 의원의 경우 켄터키주의 매코넬의원입니다. 공화당에서도 아주 확고한 보수주의자입니다. 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 진보주의자를 소개할 때는 메릴랜드주의 미컬스키상원의원입니다. 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무수히 등장하던 노숙자 관련보도는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자취를 감췄지만 조지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자 3주만에 ABC 에 다시 등장했다. 이런 현상도 진보편향 또는 민주당 편행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중도파라고 믿으며 진보적 편향을 갖고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골드버그가 생각하는 뉴스 왜곡의 비극은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들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보도할 뿐이라고 믿기에 미국 뉴스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CBS, ABC, NBC 방송국의 뉴스 시청률은 75%에 달했지만 지금은 43%에 불과하다. 인터넷의 보급 등의 영향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인의 실제 생각과는 다른 미디어 종사자들의 편향이 외면 당하고 있다. 과연, TV 뉴스의 스타 앵커는 미국의 왕족이라 하기에 충분하다.반면에 우리 나라의 여성앵커에 대해 알아보자. 1980년대 컬러 TV시대가 열리면서 KBS 에서는 신은경이라는 스타 앵커를 배출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여성 앵커들이 브라운관의 꽃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백지연 시대 이후이다. 백지연은 1987년 11월 입사하자마자 MBC 뉴스데스크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단지 외모를 보고 신입사원을 앵커자리에 올렸겠지만 백지연은 단지 그것만으로 자신의 성공을 평가하는 것 억울하다고 한다. 외모는 분명 중요한 요소이나 단지 외모로만 승부하려고 마음먹는다면 그 생명성은 얼마안가 바닥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또, 예쁜 여자일수록 머리는 텅 비어 있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그녀의 저서 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얼굴만 예쁘고 머리가 텅 비어서 바닥이 드러나 중도하차 했던 여성앵커가 누가 있었을까? 그 동안 기용된 여성 앵커는 모두다 성공했다. 한국의 뉴스 시스템 자체가 처음부터 앵커의 머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여성 앵커의 수준이란 안타깝게도 딱 이런 수준이다. 외국의 방송뉴스처럼 즉석에서 현장 기자와 의견을 주고 받고 전문가나 정책담당자들과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초년병기자가 공중파뉴스를 통해 자기 주장을 한다는 것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 뉴스에서는커녕 편집회의에서조차 자기 발언을 하기 힘들다. 어차피 한국방송의 조직이나 뉴스 생산의 구조상 누가 와서 읽어도 전달력에서는 별 차이가 안 난다. 그렇다면 회사 간부들 입장에서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40대의 최소 차장급 이상의 남성 앵커를 앉혀서 보수적인 중년들에서 안정감을 주고 여성 앵커는 자기들 입맛에 맞은 젊고 예쁜 여성을 택했다. 그게 바로 1987년도의 백지연 카드 였고 이 카드가 성공하는 바람에 2003년도까지도 이런 성차별적 뉴스가 매일같이 공중파를 통해 전국의 시청자들에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칠 수 있는 직업은 권력이다. MBC에서 처음으로 기자출신인 김은혜를 메인앵커로 기용했을 때 내부에서 기자들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나운서 출신인 김주하로 교체되었으나 지금 상황에서 보면 기자출신이냐 아나운서출신이냐는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SBS에서 기자출신 곽상은 앵커를 기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기자출신을 앉혀놔도 남성앵커와 같이 부장이나 차장급이 아닌 햇병아리를 앉힌다면 여기자들의 미래는 여전히 강탈당한 셈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나운서가 하는 게 더 낫다. 젊은 여기자들이 뉴스 앵커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기자직을 뽑을 때도 아나운서만큼의 외모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2003.12.24| 3페이지| 1,000원| 조회(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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