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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전통극장-전통무대 평가A+최고예요
    中國 演戱 문화의 구조적인 힘희대?臺와 극장劇場을 중심으로목 차1. 들어가기2. 희대?臺의 연원淵源과 성립成立2.1. 희대의 역사적 발달과정2.2. 전통 연극 장소의 4가지 유형2.2.1. 유동형 (야외공연장)2.2.2. 광장형 (노대露臺, 무정舞亭을 중심으로)2.2.3. 청당형廳堂型 - 연악宴樂과 당회堂會2.2.4. 극장형 - 악붕樂棚, 구란勾欄, 희원戱園2.2.5. 회관會館3. 희대?臺의 구조와 극劇 연출3.1. 지붕 양식의 변화3.2. 희대의 공간구조3.3. 조정藻井3.4. 극장구조와 희곡의 예술 특징4. 나오며1. 들어가기중국의 ‘희대?臺’라는 말은 우리에게 무척 낯선 말인 동시에 ‘무대’를 뜻하는 단어라는 정도만 희미하게 추측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은 물론 동양의 연극을 이해하는데 있어 공연 ? 극의 형식이 어떻게 ?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 볼 때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에 대한 효과적인 이해와 활용을 돕기 위해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먼저, 중국 고전 희곡이 발전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 및 역사적 배경을 간단하게 살펴보아 그 이해를 돕고, 각 형태를 이르는 ‘명칭’을 소개하여 처음으로 접할 수도 있는 희대?臺에 대한 낯선 느낌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썼다.둘째로, 건축 양식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양식을 갖추게 된 배경,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시대순 ? 시간순으로 간략하게 다룬 후에 그 형태와 양식의 ‘다양함’, 그리고 선조의 ‘지혜’를 익히는 데에 집중하였다.마지막으로, 본격적으로 희대?臺의 내용을 다루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지식을 본고 초입부 (들어가기) 부분에 간략하게 서술함으로써 본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꾀하였다. 아래는 ‘희대?臺’를 살피기에 앞서 중국의 희곡 양식과 무대 ? 극장 양식의 변천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한 것이다.중국의 고전 희곡은 선진先秦시대의 가무歌舞에서 출발외였으며 장안(지금의 서안)에서는 무려 4km에 이르는 야외무대를 설치한 대규모 공연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공연 장소는 특별한 건축물의 축조보다는 다양하고도 규모 있는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일종의 도상 공간을 무대로 활용한 공연으로 관람석 공간은 책柵이라는 나무 울타리를 길 양 옆에 쳐서 무대와 객석 공간을 분할하였다. 특히 2,3 층으로 만든 특별관람석인 목책木柵도 있었다. 애초부터 거리의 공연에는 책과 같은 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공연의 효과적인 진행과 관객의 보다 나은 관람을 위해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형태로 발전된 일종의 거리의 극장이었다. 배우와 관객이 하나의 지평선상에서 관람하므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제후들은 야회 광장에 무대를 낮게 하고 사방을 높게 구성한 완구) 형태를 띤 극장의 형태도 형성하였다. 당대 현종시기 궁중 공연은 일반적으로 근정루 앞마당에서 공연되었고, 민간에서는 가무희가 성행했으며 공연장소는 시정의 광장으로 비단으로 치장된 카페트가 악봉을 이용한 일종의 가설 무대의 극장 형태였다.▶ 송宋, 근대金代의 극장1) 노대露臺송, 금대는 중국 희극의 성숙기이자 중국 연극이 태어난 시기로, 가설무대의 형태가 아닌 영구성을 지니 극장 및 노대露臺, 희대?臺, 구란勾欄 등이 등장했던 시기이다. 송대는 예교적 도시가 번창하는 상업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여 공공장소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따라서 극장도 함께 번창 하였다. 또한 농촌에서도 개인의 시간적 여유와 사유가 보장되어 민간 연희가 활성화 될 수 있었다. 당시 민중들이 즐겨 놀았던 연희 양식은 (ㄱ) 중소도시, 지방, 읍, 면 소재지의 기와집 난간에서의 상업적 연희, (ㄴ) 도시 내 극장 중심의 술집 및 다원茶園에서의 연희, (ㄷ) 궁정이나 귀족 등의 사대부 저택의 경축 연희, (ㄹ) 성시城市의 농촌이나 작은 마을의 유량예인들의 연희, (ㅁ) 사묘, 사찰을 중심으로 한 묘우廟宇 연희 등이 있었으며 가장 광범위하게 분포된 것은 각 성시나 농촌 시장에서의 묘희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2) 원대元代의 극장- 원대 후기 정방형正方形 무대대덕大德이래 북 잡극의 중심이 남으로 이동하였고 많은 극작가와 배우들이 항주抗州를 향해 이동했다. 그 후 북잡극이 쇠퇴의 길에 들어섰지만 당시 경제가 안정된 평양지역은 계속해서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농촌 민중들의 연출 활동은 원대 초기보다 북 잡극이 매우 번성하여 정자식 묘우무대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건축적인 발전도 더해갔다. 이후에 건설된 무대는 모두 변형된 정자식 무대로서 무정루舞亭樓리 했는데 이것은 북송北宋때 이미 출현하였다. 무정루는 송宋, 금金대 이래로 신묘神廟의 중심적 위치로 대개 정전의 남쪽에 자리잡았으며 정전과 무정루 사이의 빈 공간은 관객들이 서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무루에 있어서 이 루는 노대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지붕이 없는 영구적인 무대인 노대에 임시로 가설한 악붕이 공연 후 매번 철거되었으나, 그 후 고정적인 석재와 나무로 된 구조물이 붕의 꼭대기에 세워짐으로써 정자식의 건축 형태의 무대가 형성된 것이다. 을 보면 이 무대는 노대 위에 사각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사면의 벽이 개방된 형태였으며, 평면의 형태는 노대 및 정자와 같은 정방형이었다. 이것은 원대元代 전기와 비교해서 두 벽이 무대 입구 쪽으로 나와 있으며 무대의 3면에 벽이 생겨 있다. 무대 입구의 한 면은 관객을 향해 열려 있다.이러한 무대는 당시 노천 광장이나 정원에서 행해진 극에서는 음향 효과를 고려하여 공연을 할 수 없었음에 반해, 무대의 3면을 벽으로 쌓고 한 면만을 관객을 향해 열린 형태의 희대로 만듦으로서 음향에 관한 문제를 어느 정도 개선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면의 벽을 막다보니 무대 안의 밝기가 좋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북송대北宋代부터 묘희 연출은 대체로 낮에 거행됨으로써 관객은 밝은 자연 광선 빛에서 관극하더라도 무대는 삼면의벽 속에 있어 배우의 얼굴을 식별하기 조차 어렵게 되자, 지붕이엉을 최대한 넓혀 앞으로 내밀게 함으로써 무대의 채광을 도 관객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의 극을 연출할 수 있었으며 예의범절이나 속박이 없었다. 즉, 유흥적이고 음담패설적인 성격의 극도 공연할 수 있었다. 또한 상업 극장간의 경쟁을 유발하여 연극 발전에 큰 발달을 촉진하였으며, 극 공연 시 배우의 절대적인 자유가 허락된 곳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배우는 끊임없이 새로운 연기술이나 공연기법을 창출하였고 다른 배우들 역시 서로의 극 기술의 교류와 학습의 기회가 주어진 곳 이었다. 청대의 상업성 극장은 모두 목조구조로써 같은 목조구조인 궁궐극장이나 사찰극장에 비해 초라하기 이를 때 없었다. 반면 배우들의 의상은 시설에 비해 대조적으로 화려하였다.▲ (왼쪽부터) 다원극장 연희도, 다원극장 연극도당시 청대의 다원극장은 다원茶園이라는 말이 암시해 주듯 손님이 돈을 지불하고 차를 주문하여 마실 수 있는 장소이며 간단한 간식과 차를 마시는 목적 이외에도 책이나 신문 등을 읽거나 친구들과 과일이나 땅콩 등을 먹으로 한담을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며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나 노래를 즐기는 일종의 성인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였다.▲ (왼쪽부터) 다원극장 1층 평면도, 다원극장 2층 평면도상업성 다원극장의 배치는 보통 작은 무대와 객석만을 고려하였고 따라서 전후前後 무대의 공간 및 설비는 상당히 낙후하였고 초라하였으며, 심지어 후무대가 없는 무대도 있었다. 상업성 다원극장의 무대인 희대는 전용극장의 희루나 희관의 희대와 형태가 거의 동일하였으며 다원극장의 희대는 초기 한쪽 구석에 설치된 간이 무대를 수정 보완하여 실내 전면 중앙에 위치시킨 돌출무대였다. 다원극장은 건물 전체가 지붕으로 덮여있는 실내 극장이었으며, 무대면 또한 전면 좌우 양측에 전통 희대와 동일한 시 구절이 적혀 있는 2개의 기둥이 설치되어 별도의 무대 지붕을 지탱하였다.마지막으로 위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 다원극장을 찾는 관객의 태도는 한 편의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시선을 무대에 집중하기 보다는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 위해 서로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이 예사인 공간이었다. ? 유행한 원대元代의 90여년간 이 희대?臺는 극장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연출 수요에 부흥하여 전국적으로 사찰 안에 필수요소처럼 취급되어 급속도로 그 건축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건축양식은 규격화 ? 통일화의 길을 걷게 된다.) 장場에서 대臺로의 이행이라는 초기 무대 형태가 지배했던 공연환경이 장기간에 걸쳐 광장형 무대 공간을 유지함에 따라 장과 대의 관계는 공존 내지 병렬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광장형 극장은 ‘보고’, ‘보여지는’ 관계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유동성을 갖기도 한다는 점을 독특하다 할 수 있겠다.)2.2.3. 청당형廳堂型 - 연악宴樂과 당회堂會당회堂會의 공연 방식은 고대의 연악宴樂에 기원한다. 택원宅院 또는 대청마루에서 공연하였기 때문에 당회堂會라고 부른다. 대청 안에서의 공연은 주인과 관객들이 연기자 앞에 앉거나 또는 3면에 둘러앉는다. 감상할 때 연宴, 즉 잔치가 따르기 때문에 관객들은 술, 안주, 차 등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등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여기서 주의할만한 가치는 중국 대청 안에 늘 설치하는 ‘병풍’이다. 그것은 실내의 바람을 막기 위해 사용되거나 또는 활동 구역의 칸막이 구실로 사용되어 대청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였다. 병풍이 잔치의 공연구역으로 사용되었을 때, 전대前臺와 후대後臺로 그 공간을 구분하였다. 전후前後 무대의 구분은 공연장의 정화淨化)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관념에 의하면 왼쪽이 상上이고, 오른쪽이 하下로, 후세 희곡 무대의 ‘상장문上場門’과 ‘하장문下場門’의 실마리를 이것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연악宴樂과 당회堂會는 가정 안에서도 열 수 있었다. 때문에 관객과 배우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아주 가까워서 오늘날의 소극장과 같은 관람 형태를 갖고 있었다.)▲ 북경 고궁 영수궁寧壽宮 열시루閱是樓 앞 창음각暢音閣 희대고대 궁중에는 전문적인 악무樂舞기구를 두고 있었다. 왕공귀족王公貴族과 관신官紳들은 가악家樂을 집에 두고 예의禮儀나 연악宴樂에 사용하였다. 명 연할
    인문/어학| 2009.03.19| 24페이지| 3,000원| 조회(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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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주의-입센
    진정한 근대극의 정신 - 입센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사실주의의 탄생2. 사실주의 연극2.1. 사실주의 연극의 배경2.2. 사실주의 연극의 특징2.2.1. 사실주의의 이해2.2.2. 사실주의 특성 - well-made play와 problem play를 중심으로3. 사실주의에 대한 입센의 공헌3.1.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3.2. 인형의 집3.3. 유령 :『유령-소인물에 있어서 비극적 리듬』을 중심으로3.3.1. 유령의 플롯, 문제극, 스릴러, 그리고 비극3.3.2. 알빙부인과 오스왈드 - 소인물(minor character)에 있어서 비극적 리듬3.3.3. 『유령』의 결말 - 무미건조한 응접실과 유럽이라는 무대Ⅲ. 결론* 참고문헌Ⅰ. 서론19세기 후반기에 시작된 사실주의는 낭만주의라는 전 시대의 반발로 나온 것으로 낭만주의와는 대조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와는 다르게 오감에 의해 경험된 분명한것으로서의 자연적, 합리적 설명에 그 근거를 둔다고 할 수 있다.우선 낭만주의는 아름다운 이상을 동경하고 그것을 추구하지만 사실주의는 적나라한 현실을 그대로 폭로하려고 한다. 즉, 보편화에 의한 추상개념이나 전통적 편견을 배제하고 가식이나 과장이 없는 무기교를 표방한다. 산업혁명을 거치게 되면서 자연과학정신의 영향을 받아 직접적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며 주지적 경향을 띤다.또한 낭만주의는 주관적이라고 한다면 사실주의는 객관적이다. 사실주의는 작가가 자기의 주관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냉정히 사물을 관찰하려 한다. 이는 작가의 관점의 변화를 불러오게 되는데 낭만주의가 현상을 영적이고 정신적으로 본 반면, 사실주의는 기계적이고 물질적으로 보는 것이다.낭만주의 문학은 예술지상주의의 경향을 띠지만 사실주의는 인간이 당면한 현실에 집중하는 경향을 띤다. 물질문명의 생존경쟁이 심화되면서 현재의 생존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문학은 인생과 예술의 밀접한 관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문제, 결혼문제, 윤리와 종교문제9세기 드라마와는 다르게 사실주의 연극은 실제의 삶을 기반으로 하였다. 무대 위의 행위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입고 말하고 행동했다.사실주의자들은 현실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금기시하던 사항들도 가차 없이 다루었다. 예전의 연극은 무대 위에서 비도덕적인 장면을 올리지 않았었지만 사실주의자들은 무대에서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금기 주제들 중에는 경제적 불공평, 남녀 차별적인 성도덕의 기준, 불행한 결혼생활, 성병, 종교적 위선 등이었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드라마의 목적이 관객의 관심을 사회 문제로 유도하여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데 있다고 믿었다.이전의 낭만주의 연극이 유행하던 때에 있었던 멜로드라마는 단순하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해피엔드로 산뜻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에 반해 사실주의 연극은 도덕과 부도덕의 구분이나 정의도 상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사실주의의 가장 큰 근간인 ‘인간의 실제 삶’에서 이 둘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선인과 악인으로 명확히 구분되었던 전형적인 인물들 대신에 실제 인간이 그러하듯 타고난 것과 다른 환경에 의해 복잡해진 인격을 창조해 냈다. 이러한 인물들의 언어는 구어체와 회화체로 이루어져있었다.) 또한 사실주의 희곡은 상세한 무대 묘사와 지시가 주어지며 과장이나 우연에 기대지 않고 논리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이 때에는 사실주의 연극과 함께 자연주의가 대두되고 있었다. 연극에 있어서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무대 위에 나타내고자 한다는' 생각은 빅톨 위고(Victor Hugo)가 처음으로 주창하였는데 그는 1827년에 발표한 「크롬웰」의 서문에서 인생만이 그 모든 다양성에 있어서 유일한 연극의 모델이며 연극은 어떠한 주제라도 자유롭게 제시하고 어떠한 형식이나 스타일도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사실주의의 입장에서 희곡에 관한 이론적 저술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은 에밀 졸라(Emile Zola)였다. 그는 인로 이들 두 가지의 결합의 경우에 있어서는 관객들이 믿는 사건들과 사람들, 즉 관객들이 알고 이해하는 바의 극장 밖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과 사람들을 묘사한다.그러나 위의 세 요건에는 잠재적인 문제들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인정해야 할 사실은 무대 장치란 결코 완전히 사실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연출가와 무대 디자이너가 아무리 깊이 들어가 세밀한 부분까지 마무리한다고 하더라도 제4의 벽 (관객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비밀의 문) 까지 성취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비사실성이 남게 마련이다. 둘째로,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아니 결코 일반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소 과장되고, 다소 고귀하게 되고, 다소 더욱 극단적으로 되기 쉽다. 무대 액션도 실제 사건의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연극의 대본으로써의 희곡이란 관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의 기본적인 패턴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패턴은 언제나 실제 생활보다 더 빈틈없이 짜여져야 하고, 때로는 어떤 종류의 위기나, 아니면 등장인물의 생활 속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 드라마의 대화 또한 실제 생활의 말보다 더 직접적이고 더 빈틈없이 짜여져 있다.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대화, 친목회, 논쟁 등을 테이프로 녹음을 해서 정리한다고 해도 그것이 드라마의 대화로서 구실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산만하게 이야기하기 쉽고, 반복되기 쉽고, 화제에서 벗어나기 쉽고, 사물을 일방적으로 표현하기 쉽다. 이와 반대로, 드라마의 대화는 설사 그것이 산만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훨씬 더 빈틈없이 조직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요건의 문제점은, 관객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에 의해 이해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을 비사실적인 것으로 거부하기 쉽다는 점이다. 만일 관객들이 일정 정도 이상의 경험과 지식을 두루 가지고 있으며, 그들 모두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어느 수준까지의 , 모든 장면은 인과 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논리적으로 대단원에 도달하는 형식을 취했다. 대화, 장치), 의상 및 소품들을 인물의 성격과 환경을 드러내도록 고안하였다. 또한 각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이 유전적, 환경적인 이유를 갖추게 하였다.사실주의 연극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는 바로 문제극問題劇(problem play)이다. 이는 시대의 특정 사회문제를 소재로 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토론을 유발하려는 연극의 한 유형으로, 프랑스의 극작가 A.뒤마 피스(1824~95)와 E.오지에의 작품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형식인 well-made play를 단조롭고 교훈적인 진지한 주제로 각색하여 ‘주제극(thesis play)’을 썼다. 그 주제들은 창녀 ·직업윤리 ·부조리 ·여성해방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 후 문제극은 입센의 작품에서 한층 성숙되었다. 문제극에 속하는 그의 첫 작품으로 당시의 결혼을 비평한 『사랑의 희극』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에서 위선 ·탐욕 등 그 당시 사회의 부패상을 폭로하였다. 이후 『인형의 집』에서는 여권문제女權問題)를 다루었고, 『유령』에서는 애정이 없고 불행한 결혼마저 신성시하는 전통을 공격하였다.문제극은 20세기에 와서도 많이 쓰였지만, 점차 자연주의와 표현주의 희곡에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러나 연극은 새로운 형식 속에서도 여전히 사회를 비평하는 하나의 매체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3. 사실주의에 대한 입센의 공헌3.1.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입센은 사실주의 연극의 창시자이다. 근대 연극은 입센이 사실주의적 양식으로 희곡을 쓰기 시작한 18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우저는 입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근대 연극사상 중심인물은 입센이다. 단순히 그가 19세기 최대의 연극인이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당대의 세계관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가장 강렬하게 희곡으로 표현한 사람이 마로 입센이었다는 이유에서도 그렇다.”) 입센, 연극은 작품의 완전히 이해시키는 순간에 서둘러 끝이 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스타일상의 진정한 진전을 제시하였으나, 그 내용은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시켰다. 입센은 독일 공연을 위해 자신의 허락 없이 작품이 개정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른바 ‘해피엔딩’을 쓸 수밖에 없었다. 독일 공연의 결말부에서 노라는 남편을 버리고 떠나려는 욕망과 아이들과 함께 그대로 남아 있으려는 충동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단지 ‘마루에 주저앉는 것’에 그쳤다.독일에서의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영국에서는 10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무려 15년 동안 이 극이 무대에 올라갈 수 없었다. 입센의 인지도에 비해 턱없는 수모를 겪은 셈이다. 또한 미국에서 올라간 첫 번째 영어 공연은 「어린이 아내」The Child Wife 라는 이름으로 W.M. 로렌스에 의해 각색된 작품이었다. 노라의 행동을 ‘어린이 아내’라고 여길 정도로 이 연극의 모험성은 실로 전적인 불신不信을 마주해야만 했다. 런던에서는 1889년이 되어서야 ‘칼질 하지 않은’ 작품을 올릴 수 있었으며 이 공연은 예상했던 대로 큰 소동을 일으켰다. 이 때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같은 한 두 사람의 ‘입센 신봉자’)가 나타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라를 여성의 타락과 관련이 있는 병적이고 변태적인 새로운 종파의 본보기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관객들은 심지어 이 작품을 추잡하다고 생각하거나 따분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일반 관객들이 관람 방식을 바꾸기에는 때가 너무 일렀던 것이다.그러나 이는 입센 《인형의 집》이 ‘사실주의 연극’의 시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훗날 1897년에 버나드 쇼는 이렇게 평했다.우리는 단지 우리의 사회학적 관심에만 어필할 뿐인 만물의 영장의 본보기는 더 이상 탐구하지 않아도 된다)또한 버나드 쇼는 그의 저서 『입센주의의 정수』(The Quintessence of Ibsenism)에서 입센은 현실주의자, 개척자, 위대한 교사였다고 말했다. 쇼에 의하면 입센의 위대함은 유럽의징이다.
    예체능| 2009.03.19| 16페이지| 2,500원| 조회(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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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연극사적 배경과 이론- 목 차 -Ⅰ. 들어가며Ⅱ. 시대적 배경 - 절대군주제와 이성의 시대Ⅲ.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연극이론3.1. 신고전주의의 통찰방식 - 상식과 양식의 연극3.2. 신고전주의의 연극적 진실 - 진실다움, 예법, 삼일치 법칙3.3. 신고전주의의 연극적 즐거움Ⅳ. 나가며※ 참고문헌Ⅰ. 들어가며‘이성을 사랑하라, 당신의 작품은 모두 이성으로부터 빛과 가치를 얻어야 한다.)’ 는 프랑스 신고전주의 이론가 브왈로의 말처럼 르네상스 프랑스의 연극은 본격적으로 이성의 시대가 도래한 때였다. 단지 직관(intuition)과 지각(知覺)에 의존하는 예술에서 벗어나 이성(理性)으로 예술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연 것이다. 이는 공허한 상상력이나 종교적 목적을 가진 연극에서 벗어나 이성적 논리나 추론적 사유에 근거한 연극의 시대를 열었다는 말과 상통한다. 이러한 르네상스 프랑스의 ‘이성적 연극’은 당시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 - 종교 개혁과 상업의 발달, 절대 군주제 등 -을 바탕으로 더욱 흥성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신고전주의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연극은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사회 속에서 출현하는 문화적 산물로서, 그것이 처해있는 시대적 ? 사회적 맥락과 뗄 수 없는 관계 안에 있기 때문에, 당대의 사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큰 영향을 받아왔음은 자명한 일이다. ‘연극의 안정과 성장은 정치적 변혁과 맞물려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이성의 연극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따라서 본 소고는 르네상스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과 사조의 흐름을 알아보고, 그것의 핵심 개념인 당대의 ‘이성’이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 그것이 연극에 미친 영향 등으로 그 내용을 구성하기로 한다.Ⅱ. 시대적 배경 - 절대군주제와 이성의 시대‘앙리 4세의 통치시대인 16세기 말엽에서, 루이 13세의 통치시대 초기인 17세기 초에 걸쳐, 르네상스정신은 변모하여 고전주의 정신이 싹트게 된다)’. 개ne loi, une foi))'라는 절대주의의 신조 아래 절대 권력을 누리게 되며, 귀족들의 정치권력은 박탈하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고 상업 활동을 지원해 주는 등의 정책으로 귀족 계급을 자신의 손 안에서 통제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무엇보다도 절대군주제 대두의 주요 요인은 상업혁명이었다. 중상주의 정책으로 국내외의 상업 활동을 보호 육성하고 식민제국을 세워 원료 공급지와 해외시장을 확보하였다. 그 결과 군주들은 강력한 병력과 많은 함선을 보유할 수 있게 되고, 왕권 확장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풍부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경제적인 요인 이외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절대군주 국가 대두의 요인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17세기는 기독교 시대였다. 종교 전쟁의 결과로서 혼란과 방종의 시기가 끝난 후에, 종교 규율의 포교와 예수회 수사들의 영향, 그리고 선교사와 신학자들의 행동에 힘입어 가톨릭 재건의 강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신의 구원과 사랑 등에 대한 민감하고 까다로운 논쟁에 관심이 집중되게 되었고, 사실상 승리자인 가톨릭교회는 그들 신앙의 우위와 견고함을 법적으로 확립하는 등의 성과를 거둔다)’. 또한 이렇게 봉건적이거나 신교도적인 저항의 징후가 사라지는 흐름에 이어 안정된 생활에의 갈망으로 전통에 순수히 복종하고, 강하고 명백한 권위의 확립을 원하게 된다.때문에 이렇게 안정된 환경은 프랑스 연극에 변화를 이루어 낸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절대주의 단계를 경험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오페라와 발레의 바로크적 요소가 자본주의 사회를 반영하는 새로운 형식의 고전적 희곡이 구축되기 시작한다)’. 즉, 고전적 희곡은 16세기 사람들이 고대의 발견과 이에 대한 숭상과 모방 위에 쌓아온 업적을 이어가려는 욕망의 발현에, 독자적인 자각을 가지고 이론적 ? 실천적 움직임을 보였다는 면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겠다). 즉, 프랑스의 17세기는 ‘고대의 모방과 정신적 고찰)’에 본질적으로 그 근거를 둔 것이다. 이러한 고전주의 시대에 대한 이짐과 더불어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사상이 권위 ? 권력에 대해 비판의 눈을 뜨게 된다. ‘신구논쟁’을 계기로 하여 고전주의 예술가들은 치명적 반격을 받게 되고, 이러한 합리적 비판정신이 18세기를 이끄는 주요 정신이 되면서 루이 14세 말기는 고전주의의 쇠퇴기로 접어든다.)Ⅲ.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연극이론3.1. 신고전주의의 통찰방식 - 상식과 양식의 연극17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연극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외쳤던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처럼 ‘이성(理性)’을 연극의 절대명제로 내세운다. 이러한 이성의 연극은 시문학의 이성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호라티우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신고전주의의 절대적 근간을 이룬다. 특히 프랑스 신고전주의자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이성은 동일한 의미였다. 즉, 《시학》에서 말하는 법칙은 모두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고전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이성은 아리스토텔레스만으로 충족되지 못했다. 서서히 《시학》에서 그들이 믿는 이성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그들이 말하는 냉엄한 이성의 기준에 부합하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살아남게 되고, 도비냑(Abbe d'Aubinac)과 같은 신고전주의자가 ‘무대의 규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보다는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면서 신고전주의는《시학》의 선택적 수용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 신고전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의 미학을 극단적으로 추구한다.신고전주의자들은 이윽고 연극이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극적 창작력을 통제하는 규칙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그들이 기준으로 삼은 이성에 의해 규정된 규칙이 신고전주의 연극을 지배하게 되고, 그들이 만든 규칙에 따라 작품이 검토되고, 판단되며, 평가받게 된다. 이것은 신고전주의자들 특유의 연극적 통찰 방식-삶과 세상을 이성적인 규칙의 틀 속에서만 조망하겠다는-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이서 모두 극적 재현의 대상은 아니었으며, 이성 ?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진실은 무대에서 배제되었다. 여기에서 제기된 개념이 ‘진실다움(verisimilitude)’ 이다. 즉, 신고전주의자들에게 진실다운 것은 오직 ‘상식에 부합하는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는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사실성과 일반성을 포함하며, 때문에 환상 ? 초자연적 ? 부자연성 ? 폭력 등이 배제되며 연극이 도덕적 교훈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작가는 도덕성과 정의에 바탕을 둔 궁극적인 진리를 나타내야 했다)’. 따라서 비상식적인 진실은 연극에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다. 아무리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도 이성(理性)에 어긋난 것이라면 용납되지 않았다.상식적인 진실의 추구는 신고전주의가 기본적으로 수용자 중심의 《시학》을 지향한 결과였다. ‘신고전주의는 관객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즉, 극의 수용자인 관객을 즐겁게 하거나 도덕적으로 교화하기 위해 극적 요소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렇게 관객의 입장에서 출발한 극은, 관객의 믿음과 의견을 창작과 비평의 기준으로 선택하고, 그것이 연극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때문에 극의 내적인 논리에 따라 ‘그럴법한 ? 있을법한 사건(probability)’을 의미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연성의 법칙’은 관객의 상식적인 믿음에 따라 판단되는 ‘진실다움’으로 변했다. 이렇듯 극을 판단하는 기준은 ‘관객의 상식’이었으며, 그것은 인과관계에 따른 작품의 내적 일관성보다 더욱 중요시 여겨졌다.이 때 ‘관객의 상식’이란 다소 귀족과 같은 상류계급의 상식을 의미했으며, 이러한 상류계급에의 지향은 호라티우스의 《시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절대군주제의 위계질서 속에서 조성된 신고전주의 시학에 부합하는 이론이었고, 때문에 신고전주의는 신분적 ? 지적 엘리트를 전제로 하면서, 그들의 상식적 판단에 맞는 규칙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이러한 상식적 판단에 근거해 만들어진 규칙 중 하나가 예법(bie라져갔고, 결국에는 연극이 대사 위주로 변하게 된다. 스펙터클(spectacle)은 그 존재만으로 이미 이성적이고 진실 되지 않은 것이었기에 이러한 부분을 없애고 지적인 이해를 강조하다보니 결국에는 말 중심의 연극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3.3. 신고전주의의 연극적 즐거움연극을 이성(理性)적 활동의 산물로 보는 신고전주의의 연극은 즐거움보다는 도덕적 교훈과 교화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 따라서 초자연적이고 비이성적인 현상을 표현하는 ‘경이로움)’은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전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무시당하면서 그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부분에서 이론가들은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다. 이성에 기초한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연극은 지루하기 쉽고, 규칙을 따르지 않는 연극이 오히려 감동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자신들의 주장과 모순되는 부분이 그것이다. 이러한 딜레마 극복을 위해 ‘교훈적인 것에 기분 좋은 것을 얹어 쾌감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극을 위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쾌감이 ‘어디서부터 오는’ 즐거움이냐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쾌감 ? 즐거움 등은 이성의 원칙과 반대선상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쾌감 ? 즐거움은 이성적인 것이기 보다는 감정적인 것이었고, 때문에 이 둘의 융합을 위해 '경이로우면서도 그럴듯해야 하는(marvelous and probable))', 정서적인 감동이 있으면서도 이성적인 사유를 만족시켜야 하는 이중고(二重苦)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이 때 신고전주의 연극이론은 ‘수정주의자)’와 ‘원리주의자)’로 양분되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르시드 논쟁(Le Cid Controversy)이 이렇게 해서 일어난다. 비평가인 스퀴데리는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르시드》를 비판하고, 극작가인 코르네이유는 수정주의적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변호한 것이다. 이러한 스퀴데리와 코르네이유의 논쟁은 지적인 즐거움과 선정적인 즐거움 사이의 갈등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성적인 규칙에 따라 연극을 즐기며 .
    인문/어학| 2008.12.25| 9페이지| 2,500원| 조회(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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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랑바르트,후기구조주의
    ▶ 후기구조주의*의 이해 - 롤랑 바르트1. 롤랑 바르트 사상의 흐름바르트의 학문인생은 흔히 세 단계로 구분된다. ① 초기는 『현대의 신화』,『글쓰기의 영도』를 써낸 1950년대. 이 시기 그는 마르크시즘과 사르트르, 브레히트의 영향으로 문학의 역사성과 사회성에 주목한다. 특히 1945년 스위스 요양 중에 접한 마르크시즘에 심취해 1955 년 카뮈의 『페스트』를 놓고 논쟁이 붙었을 때 ‘나는 역사적 유물론 관점에서 말한다’고 선언해 한동안 ‘바르트=마르크스주의자’라는 딱지가 따라다니기도 했다. 바르트는 그러나 학문인생에서 ② 중기로 분류할 수 있는 60년대 들어 기호학적 방법론에 빠져든다. 1940년 대 후반 루마니아 부쿠레시티대 교수 시절 동료였던 리투아니아 출신의 언어학자 그레마스와의 인연으로 구조주의에 눈뜬 그는 60년 대 본격적으로 소쉬르의 기호학을 자신의 분석틀로 응용했다. 이 분석틀은 그가 현대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③ 1970년대들어 바르트는 푸코, 데리다, 라캉, 솔레르스, 크리스테바 등 후기구조주의자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현대사회를 읽는 틀을 제공했다.2. 롤랑바르트를 통한 후기구조주의의 이해바르트는 그의 저서 『신화Mythologies』에서 대중문화를 분석하는데 있어 그의 목적은 대중문화의 텍스트와 실천행위들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들을 밝혀내는 것이며, 그 원칙은 항상 ‘명백한 것의 허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목적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며, 그가 가장 증오했던 부르주아 규범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바르트는 대중문화를 읽는 기호학적 모델로 소쉬르의 기표/기의=기호라는 도식을 취하면서 여기에 이차적인 의미작용의 단계를 다시 추가하였다.일차적 의미작용-외연적 의미1. 기표(개)2. 기의(네 다리를 가진 개과 동물 ‘개’)이차적 의미작용-내포 의미3. 기호 (개)↓ ← 하나의 기호가 다시기표가 되는 것ⅰ. 기표 (개)ⅱ 기의(못마땅한 인간)ⅲ 기호 (개)바르트의 후기구조주의 시기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 (1968)』이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 저자가 의미의 원천인 텍스트의 기원이며 해석의 유일한 권위를 갖는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거부한다. 텍스트는 저자의 의도가 순수하게 나타나는 매체도 아니고, 오히려 독창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다양한 글들이 함께 섞이고 부딪치는 다차원적 공간이며, 수많은 문화의 근원에서부터 끌어온 인용구들의 조직일 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바르트가 정의한 ‘저자’는 모든 형이상학적 지위를 빼앗기고 그 무한한 인용, 반복, 반향 그리고 지시의 창고인 언어가 교차하고 재교차하는 위치(십자로)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독자만이 그 텍스트에 일시적인 통일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았고, 때문에 독자는 텍스트에 들어갈 때 자유롭게 아무데서나 들어갈 수 있고, 굳이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기의를 고려하지 않고 텍스트에 자유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그 과정 자체를 독자들 스스로가 제약 없이 개방하고 폐쇄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르트는 ‘독자의 다양한 반응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부여된 지식의 차이, 즉 실용적, 민족적, 문화적, 미학적 차이에 의해 좌우된다’고 지적하였다. 때문에 그는 독자가 어떠한 텍스트나 이미지를 접했을 때 그 외연적 의미로부터 내포적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독자가 그 이미지를 읽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식(문화적 레파토리)의 축적 때문이고, 이것이 없으면 내포적 의미의 작용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또한 바르트는 『S/Z』에서 ‘하나의 단일한 구조 속에서………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구조주의 내러티브 연구가들의 헛된 야망을 언급하면서 모든 텍스트는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구조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헛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각각의 텍스트는 ‘이미 쓰여진 것들’의 무한한 바다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지시한다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사실주의 소설은 제한된 의미를 가진 ‘닫혀진’ 텍스트를 제공한다. 이외의 텍스트들은 독자가 의미를 생산하도록 격려한다. 글을 읽는 ‘독자’는 ‘그 자체가 이미 다른 텍스트들의 다원성’이며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된다. 사실주의적 유형의 텍스트는 독자가 단지 고정된 의미의 소비자가 되는 것을 허용할 뿐이지만, 그 이외의 유형은 독자를 또 하나의 생산자로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독자의 역할이 ‘단순 소비’에서 ‘재생산’으로 확대 된 것이다. 『S/Z』는 발자크의 중편『사라진』에 대한 책으로서, 바르트는 그것을 561개의 독서단위로 나누고 있다. 그 독서단위는 다섯 개의 약호들을 통해 차례대로 읽게끔 되어 있다. 그 다섯 가지는 ① ‘서술적’ 약호, ② 이야기가 펼치는 수수께끼들에 관련된 ‘해석학적’ 약호, ③ 작품에 의존하는 사회적 지식을 음미하는 ‘문화적’ 약호, ④ 인물과 장소와 대상에 내포된 의미를 다루는 ‘함의적’ 약호, 그리고 ⑤ 텍스트 안에 설정된 성적?심리적 관계들을 나타내는 ‘상징적’ 약호이다. 여기까지는 어떤 것도 기존의 구조주의 활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하지만, 텍스트를 단위들로 분할한 것은 다소 자의적이고, 다섯 가지 약호는 무한히 가능한 숫자에서 선택한 다섯 가지일 뿐이라는 재정의에서 그 차이를 보인다. 그 약호들은 어떤 위계질서도 가지지 않으며, 때로는 세 개가 하나의 독서단위에 적용되는 등 복수 적용의 방식을 지닌다. 또 그들은 작품을 최종적으로 일관된 의미로 ‘총체화하는’ 것을 꺼린다. 오히려 그들은 작품의 분산과 분열을 보여준다. 텍스트는 ‘구조’라기 보다는 ‘구조화’의 끊임없는 과정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 구조화를 행하는 것이 비평이라는 것이다.※ 참고* 후기 구조주의 : 후기구조주의 비평 방법은 모든 문학 연구 방법론 가운데에서 가장 뒤늦게 생겨난 방법론이다. 이 접근 방법은 그 역사를 아무리 일찍 잡는다고 하여도 1960년대 후반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후기구조주의란 글자 그대로 ‘구조주의 다음에’ 나타난 새로운 비평방법을 말한다. 어떤 이론가들은 이 비평방법을 구조주의가 논리적으로 발전한 형태(후기 구조주의)로 보는가 하면, 다른 이론가들은 오히려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그 대안(탈구조주의)으로 본다.
    인문/어학| 2008.12.25| 3페이지| 1,500원| 조회(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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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리에르 희곡 및 연기법 연구
    몰리에르 희극의 연기양식 연구연기법 연구- 차 례 -Ⅰ. 들어가며Ⅱ. 몰리에르 희극(喜劇)의 희곡(戱曲)적 요건2.1. 플롯의 구성적 특징2.2. 인물 설계Ⅲ. 몰리에르 희극 연기 양식의 특성3.1. 신체와 언어의 유기적 조합3.2. 의상 및 소품의 활용 그리고 가면의 제거3.3. 무대Ⅳ. 나가며Ⅰ. 들어가며배우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소극(Farce)과 꼬메디아 델 아르떼 (Commedia dell' arte)를 지나, 그것에 문학적 창조력이 더해져 완성된 몰리에르 희극은 희극의 양상을 배우의 신체기술 중심에서 텍스트가 있는 언어와 신체로 조직된 희극문학의 지평으로까지 확대 시켰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극중 인물에게 유형성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성까지 부여하고, 신체 중심의 연극 특성에 언어적 요소를 첨하는 등의 변화를 꾀한 것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프랑스가 종교적 분열, 급격한 국가 성장을 거치던 16세기 초, 종교적 드라마가 자취를 감추고,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로마나 그리스 스타일의 모방이나 각색이 유행함과 동시에 아마추어 극단에 의해 대부분의 공연이 진행되는 등)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몰리에르의 등장은 가히 파격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에는 배우에게 자유를 안긴 것이라고 대부분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배우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라’는 등의 당시까지 해왔던 것과는 다른 낯선 주문이 오히려 제약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이에 본 소고는 몰리에르의 등장으로 인해 변화된 연기 양식 및 연기법이 배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조명하고, 그것을 몰리에르(작가)와 배우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하며, 이것을 현재까지 긴 생명력을 가지고 공연되며, ‘프랑스 연극사는 몰리에르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의 인정을 받는 몰리에르 희극의 원천(源泉)을 파악하는데 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Ⅱ. 몰리에르 희극(喜劇)의 희곡(戱曲)적 요건2.1. 플롯의 구성적 특징몰리에르 희극 플롯의 가장 큰 특징은 대단히 의 부인, 두 명의 젊은 남자 하인들 등의 등장인물을 각각 쌍으로 등장 시킨다. 극 중 사기꾼을 구심점 (혹은 지렛대) 역할인물로 설정 해 모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까지 그 구심점으로 하여금 중심인물들을 자극하도록 한다. 에 나오는 영리한 종도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구심적 또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이러한 구성은 몰리에르 극의 특징 중 하나인 ‘간결함(Economy of Means))’과도 연결된다. 몰리에르의 극에는 군더더기나 불필요한 부분은 존재하지 않으며, 필수적인 부분은 생략이나 지연 없이 필요한 자리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정확성과 간결함, 단순한 구성에 대한 몰리에르의 애착은 몰리에르의 극 대부분이 ‘시작부터 끝까지 특별한 멈춤도 없고, 상상하는 장면이나 회상하는 장면도 없으며, 장면 전환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직 (몰리에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의도한) 필수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인물 역시 중심인물과 대립인물만이 존재할 뿐, 기타 부수적인 요소는 모두 제거되어 있다. 관객이 특별한 상상력이나 회상으로의 여행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도 단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상황에만 몰입하게끔 구성을 하는 것이다.또한 몰리에르는 ‘유사한 장면의 반복)’으로 극을 전개하는데, 이는 현대의 희극에서도 널리 이용되는 방법 중에 하나로, 그 속도나 빈도의 정도가 점점 더해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같은 대사의 반복(echo phrasing)))’이라는 언어 양식을 이끌어내기도 한다.)몰리에르는 ‘유사한 장면의 반복’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음악에서 다른 음조로 넘어가기 전에 원래 음조가 몇 번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를 보면 한 쪽 부모와 스카펭이 함께 나오고, 그 다음 장면에서 스카펭은 또 다른 한 쪽 부모와 함께 나온다. 그런 다음 양쪽 부모 모두와 스카펭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이런 식의 구성은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그 빈도가 높아진다.…장인물의 의향들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전제가 뒷받침 되어 있는 것이다.그러나 몰리에르 역시 하나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단선적인 인물 구성과 유사 장면의 반복만으로는 극을 매끄럽게 마무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몰리에르는 극의 끝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式(Deux ex Machina))’ 기법을 사용하여 딜레마나 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이 연결 방법은 전 장면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극을 종결로 몰고 가기 위한 장치로서의 의미만 갖는다. 때문에 몰리에르 극은 ‘특정 상황에서 시작해 이런 저런 변화를 겪으면서 가능한 모든 위트와 코믹적인 요소를 다 짜낸 다음 데우스 엑스 마키나式(Deux ex Machina) 엔딩으로 급박하게 끝을 맺는다)’. 그 예로 을 들 수 있다. 에서 늙은 간호사 Nerine이나 에서 왕의 사자 M. Exempt가 그런 인물들인데, Exempt 는 Orgon을 잡으러 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Tartuffe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式(Deux ex Machina) 엔딩의 기본적인 포맷이다.)2.2. 인물 설계몰리에르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첫째는 캐릭터들이 ‘성격적 변화’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중심인물이 어느새 무대 위에서 사라지면서 가장 주목을 받는 기이한 형태의 인물이 된다는 것이다.몰리에르의 극에서는 나이든 캐릭터이건 젊은 캐릭터이건, 성격이 선하건 악하건 간에 극이 진행되면서 인물들이 변하거나 달라지거나 잘못을 깨닫고 개과천선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나의 개인이 부여 되면 그것이 극의 종결까지 지속되는 것이다.에 나오는 Orgon은 처음부터 끝까지 맹목적이고 어리석다. Orgon이 보여주듯 몰리에르의 캐릭터들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 성격이 희미하거나 불분명한 캐릭터가 없다. 조용하거나 안온하지 않다. 그 인물에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으 웃을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몰리에르의 의도인 것이다. 이러한 ‘인물과의 거리 유지’를 살펴 볼 수 있는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몰리에르에게 영향을 준 Plautus와 Terence의 극이 그랬듯이, 나이 든 사람들은 대개 탐욕스러우며 이기주의자들로 나온다. 나이에 걸맞게 원숙하거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도 결코 낭만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열정은 소유욕으로 비쳐지며, 그들의 광기 어린 모습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나 동정을 유발하지는 못한다. …… (중략) ……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나이든 사람은 대부분 지혜롭고 성숙하기 때문에 현실과는 다른 극중 인물에 자연스럽게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고, 때문에 동질감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동정의 감정은 생기지 않은 채 거리낄 것 없는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이러한 거리 유지를 위해서는 몰리에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완전한 하나의 인물로 창조되어야 한다. 역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물론이고, 배우 스스로가 ‘유머러스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거나 그 상황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면, 그 거리감은 유지되기 힘들며 이 때문에 등장인물은 진지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 몰리에르적 인물 창조는 배우에게 그만큼 까다로운 작업을 요구한다.또한 몰리에르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로 "Silent-center(중심인물의 침묵상태)" 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이는 주인공에게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주인공은 물리적으로 무대에서 모습을 감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주인공은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대에서는 주인공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주인공은 관객의 엄청난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배우는 무대에 없는데도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셈이다. "Silent-center(중심인물의 침묵상태))" 캐릭터를 주시하는 이유는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대해서 이 인물이 무언가 행동을 관객의 눈을 한 몸에 받는다.Ⅲ. 몰리에르 희극 연기 양식의 특성몰리에르는 과도하게 큰 동작, 발성, 표현 등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는 ‘ 에서 몰리에르는 배우들에게 부자연스럽거나 과도한 연기표현을 자제하도록 요구했고, 배우들이 배우 자신의 성향(Personality)을 자제하고 인물 자체를 표현하도록 주문했다.)’는 모습 등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양식화된 연기에 익숙해 있던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주문하는 몰리에르에게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 비극 연기의 한 정형이 바로 과장하는 기법의 연기와 노래를 부르는 듯한 발성법(Chanting declamation)이었고, 이런 부분이 상당히 유행했다는 점에서 그랬다.이 때문에 배우에게 연기를 주문하고 그 연기를 훈련시키는데 있어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몰리에르가 원하는 자연스러움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체, 언어 및 음성, 의상 및 소품, 무대 등이 그에 맞게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연기 양식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3.1. 신체와 언어의 유기적 조합소극과 꼬메디아 델아르떼가 인물의 유형성 표현을 위한 ‘준비된 즉흥의 신체표현’이 중심이었다면 몰리에르의 희극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분석한 논리적인 인물의 ‘유형성 및 개인성을 창조하기 위한 신체표현’이 중심이었다. 때문에 ‘소극에 뿌리를 둔)’ 몰리에르의 희극은 신체의 자유로운 활용은 기본이요, ‘판토마임의 적극적인 제스처를 기본으로 위트 있는 말과 재기 있는 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정도의 기량을 배우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이전까지 신체에 집중하거나 언어에 집중하는 연기를 익혀온 배우들에게는 신체와 언어의 적절하고도 유기적이면서도 탄력적인 융합점 모색이라는 일종의 과제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움직임은 선택적이고 템포가 빨라야 한다. 고도로 연극적이고 전시적인 방법이 쓰여야만 한다. 예를 들어 움직임은 단호한 보폭과 똑바로 선 자세 (뒷발에 무게를 의지하고 앞발은 앞으작품
    예체능| 2007.12.01| 12페이지| 2,500원| 조회(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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