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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정당] 한국사회에서의 진보정당
    -----------------------------------------------------------------------------------------------한국사회에서의 진보정당운동에 관하여------------------------------------------------------------------------------------------------Ⅰ. 들어가며5년전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김대중 정권의 요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실로 엄청남 허탈감과 실망을 주고 있다. 한편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더 나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요즘 김대중 정권의 말로는 한마디로 최악이다. 과거 일인 보스체제의 지역정당을 기반으로 당선된 김대중 정권은 IMF 극복이라는 과제에 비교적 현명하게 대처했고 또한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정상회담으로 6.15공동선언 합의를 성사시킨 바 어찌보면 그동안의 정권에 비하여 분명 더 나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국민의 정부에 걸었던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그의 아들이 연루된 이른바 각종 게이트와 커넥션을 통해서 국민들의 느꼈던 실망은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식의 기성 정치권 모두를 향한 비판을 그리고 종국에는 더욱도 정치에는 무관심해지도록 만드는 것 같다.그렇다면 이렇듯 문제 투성이인 우리네 정치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 어쩌면 지금의 야당을 통해서 또다시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자고 그래서 심판을 하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그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가 바꿔야 하는 것이다. 분명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치인들이 함부로 정치를 하지 않게 만드는 힘은 분명 우리 국민들의 능력일 것이다.최근 민주당의 파격적인 국민 경선제를 통하여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노풍』이라 불리면서 기성 정치에 대해서 염증과 혐오를 느꼈던 우리 국민들이 참여의 정치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 그 결과를 드표1 참조) 해방정국 제정파의 경제강령 비교) 김재홍,「한국의 좌우익이념과 해방후 정당활도에 관한 연구」(1987,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박사학위 논문) 157쪽 : 심지연, 『한국민주당 연구 Ⅱ』, 창작과 비평, 1984, 267쪽구분'극우'(임협, 한민당)중도우(시협)중도파(시협)'극좌'(민전, 남로당)'극좌'(북로당)생산수단소유형태대: 공유내지 국가경영중: 국방산업의 사유소: 사유좌동대: 국가경영중: 관민합영소: 사유대: 국유화중: 국유·공유소: 대체로 사유, 공유은행, 철도, 전기등공리기관과지하자원 국유,회사, 소매업수공업은 국공사 혼합경제운영방식통제 경제계획경제계획경제계획경제계획경제사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때 한민당 등에 대해 '극우'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당시 정파간의 상대적 비교를 위한 '비교서술'적 개념으로는 적합한 것일지는 몰라도 이들 경제강령의 내용을 일반적인 이데올로기 분류기준에 맞추어보면 오히려 이들에 대한 분류는 '좌익'분류가 더 적합할 정도로 당시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좌경화되어 좌측의 반쪽 지형에 싸움이 이루어질 정도로 '좌경 반쪽 지형화'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이같은 이데올로기 지형은 미군정의 비호하에 억압적 국가기구를 장악한 '우파단정' 세력의 국가권력 장악 이후 서서히 우경화되면서 한국전쟁을 결정적 계기로 하여 해방정국의 정반대 형태인 '우경 반쪽 지형'으로 불구화하게 된다.특히 한국전쟁은 그 전까지 이승만, 한민당 등 '극우세력'과 지배계급에 국한되어 있던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절대다수의 국민들의 '수동적 동의' 내지 '능동적 동의'로까지 유도해 낼 정도로 확산시키는 한편 분단의식을 내재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게 됐고, 한국전쟁 이후 이같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와 한국이 나가야 할 길로서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은 민중운동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는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기정사실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은 한국의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그람시적 의미의 정치적 헤게모니('능동적 동의 주목하는 중간 입장이다. 이 문제는 민주적 국가형태(정상국가)와 억압적 국가형태(예외 국가)의 구별 기준인 민주성의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민주성의 정도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이 같은 입장 차이의 근저에 놓인 문제이다.부르주아 민주주주의적 제권리의 보장, 억압적 국가장치에 대한 국민(대표)통제, 강제력이 아니라 동의를 주된 기제로 한 지배라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민주주주의를 '과정'으로 보아주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주의로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그 과정이 진행되어 어느 시점인가 이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 그때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이지, 앞으로 충족시킬 것이라는 과정상의 미래 예측치로서 성격을 규정할 수는 없다.이와 관련, 국가보안법, 정치적인 형식적 평등마저 지켜지지 않는 노동악법 등의 존재등을 이유로 현 김영삼정권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볼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그러면 "국가보안법만 철폐되면 남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즉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강조하는 입장을 일종의 '법 물신주의'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럴싸한 반론이지만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 문제는 법이 규제하고 있는 제권리이지 법 그 자체가 아니다. 이 밖에 군에 대한 문민 통제등이 강화되었지만 안기부에 대한 의회 통제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서 볼 때 제한적인 헤게모니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손호철, 『현대 한국정치-이론과 역사』, 사회평론, 1995, 433쪽결국 국가성격의 변화 문제는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한 자유민주주의화, 이에 따른 민주-반민주 구도의 명실상부한 은퇴와 진보-보수 구도로의 정치구도 전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단기전 전환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할 장애, 즉 김정권의 세칭 '개혁'의 한계의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영삼 전대통령등 지배블록의 헤게모니분파의 자유민주주의적 성향의 불철저성이다. 이는 국보법 폐지, 노동악법 개정 등에 대한 이들의시켜 갔다.4) 87년 직후의 진보정당 시도1987년 직선제 개헌투쟁, 노동자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중운동진영은 대선에 백기완후보를 출마시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야권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막판에 사퇴하고 말았다.1988년 3월 제 13대 총선ㅇ르 앞두고 '민중의 당'이 창당되었다. '민중의 당' 창당은 수십년간 단절되었던 진보정치 운동의 재개를 알리는 역사적 의미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민중의 당은 당시 진보적인 정치역량을 대표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었다. 30개 지구당에 1천여명의 당원이 참가했을 뿐이었다. 민중의 당이 보다 급진적인 젊은 세대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출신자로 이뤄진데 반해 거의 동시에 창당된 한겨레민주당에는 진보블럭의 보다 온건한 일부 세력들이 참가하였다. 한겨레민주당도 60여개 지구당에 2천여명의 당원을 규합하는데 그쳤을 뿐이다.민중의 당은 1988년의 총선에서 의석을 획득하지 못함으로써 50여일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지만 출마한 15개 지역구에서 평균 4.3%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연것으로 평가되었다. 선거 이후 민중의 당은 88년 9월 한겨레민주당과 통합하여 진보정당 결성을 위한 정치연합을 건설하였으나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5) 90년 민중당 창당첫 번째 시도인 민중의 당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반정부운동 내부에서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시도는 점차 활기를 띄고 있었다. 두 번째 시도는 한국 최대의 반정부운동조직이었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내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반정부운동세력 다수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들은 1990년 4월 민중의 당, 한겨레민주당을 추진했던 세력들과 함께 민중의 정당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 조직은 창당을 앞두고 보수야당과 통합하자는 파와 먼저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보수야당과 연대해가자는 파가 대립하여 결국 통합파가 이탈한 가운데 90년 11월 민중당을 창당하였다. 51개 지구당에 2천여명의 당원이 참가하였다.민중당은 1991년 지방선히 이러한 알튀세르의 맑스주의 이론에 있어 이 글의 주제인 '정치학'과 관련되어 핵심적인 개념은 '중층결정'(over-determinabce)과 정세(conjuncture)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논지에 따르면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으로 대표되는 레닌주의 정치학은, 기실 구체적 정세(conjucture) 속에서 중층 결정되는 사회적 모순들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에 입각해서 노동계급의 입장-주로 당의 계획-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혁명당'은 하나의 정세를 구성하는 구성요소이자 그것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하는 정치 세력, 정치적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는 얼핏 보기에 이와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는 듯하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에세이에서, '정당'을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범주 속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논지를 일반화시킨다면, '진보정당' 또한 하나의 정당으로서 특정한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80년대 사회주의 운동의 조직적 전형이었던, 정파운동이나 비합전위당 건설이라는 조직적 과제는 공개적인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80년 이후 '민중민주운동'에서 하나의 큰 분기점을 형성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90년대 진보정당운동이 등장했던 역사적 맥락은 '민중운동의 정체'에 있다. 이는 어쩌면 6월 항쟁의 광범위한 참여세력들 중 이른바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는 중간계층의 '보수화'와 맞물린다. 지배세력은 중간계급에 대한 경제적 개량정책과 함께 경제위기설 등을 전파함을 통해 이들을 보수화시키고, 재야세력과 분리시켜냈던 것이다. 요컨대, 지배연합은 '민주화'라는 형태로 응축된 제반의 사회적 모순을 당야한 형태로 대체 전이시켰으며, 이를 위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적극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그 패배의 핵심적 계기는 외국어대에서 있었던 정원식 총리에 대한 달걀과 밀가루 세례 및 이와 관련되 이데올로기 공세와 연일 계속되는 분신에 대한 '분신배후조종설'등 보수다.
    사회과학| 2002.12.16| 16페이지| 1,000원| 조회(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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