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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수유음료 제품계획서
    ◆ 산수유 음료1. 원료 수집 및 관련정보◇ 산수유학명 : Cornus officinalis과명 : 층층나무과이명 : 조피(棗皮) 유육(萸肉) 석조(石棗) 촉산조(蜀山棗) 육조(肉棗).분포지 : 한국 중부이남, 특히 구례, 양평, 의성, 이천, 봉화자생지 : 전남 구례 산동면, 경기 이천시 백사면 등채취시기 : 9~10月층층나무과의 낙엽교목인 산수유나무의 열매이다. 타원형의 핵과(核果)로서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8~10월에 붉게 익는다. 종자는 긴 타원형이며, 능선이 있다. 약간의 단맛과 함께 떫고 강한 신맛이 난다. 10월 중순의 상강(霜降) 이후에 수확하는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과육(果肉)에는 코르닌(cornin)모로니사이드(Morroniside)로가닌(Loganin) 탄닌(tannin)사포닌(Saponin) 등의 배당체와 포도주산사과산주석산 등의 유기산이 함유되어 있고, 그밖에 비타민 A와 다량의 당(糖)도 포함되어 있다. 종자에는 팔미틴산올레인산리놀산 등이 함유되어 있다. 성분 중 코르닌은 부교감신경의 흥분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예로부터 한방에서는 과육을 약용하였다.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등에 의하면 강음(强陰), 신정(腎精)과 신기(腎氣)보강, 수렴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두통이명(耳鳴)해수병, 해열월경과다 등에 약재로 쓰이며 식은땀 야뇨증 등의 민간요법에도 사용된다. 차나 술로도 장복하며, 지한(止汗) 보음(補陰) 등의 효과가 있다.산수유나무는 한국중국 등이 원산으로, 한국의 중부 이남에서 심는다. 국내에서는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일원, 경상북도 의성군 등에서 특산품으로 매년 출하하고 있다.주로 산지나 인가 부근에서 재배한다. 높이는 4~7m이다. 나무껍질은 불규칙하게 벗겨지며 연한 갈색이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 바소꼴이며 길이 4~12cm, 나비 2.5~6cm이다.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끝이 뾰족하며 밑은 둥글다. 뒷면에 갈색 털이 빽빽이 나고 곁맥은 4~7쌍이며 잎자루는 길이 5~15mm이다.꽃은 양성화로서 3~4월에 잎보다 먼저 노란색으로 핀다. 20~30개의 꽃이 산형꽃차례에 달리며 꽃 지름 4~7mm이다. 총포조각은 4개이고 길이 6~8mm이며 노란색이다. 꽃잎은 4개이고 긴 타원 모양 바소꼴이다. 수술 4개, 암술 1개이고 씨방은 털이 나며 하위(下位)이다. 열매는 핵과(核果)로서 타원형이며 윤이 나고 8~10월에 붉게 익는다. 종자는 긴 타원형이며 능선이 있다.약료작물로 심었으나 점차 관상용으로 가꾸기 시작하였다. 한방에서 과육(果肉)을 산수유라고 하며 자양강장강정수렴 등의 효능이 있어 현기증월경과다자궁출혈 등에 사용한다. 한국중국 원산이며 한국의 중부 이남에서 심는다.△ 효능산수유는 약간 따뜻한 성질에 신맛을 갖고 있으며 간과 신장을 보호하고 몸을 단단하게 한다. 신맛은 근육의 수축력을 높여주고 방광의 조절능력을 향상시켜 어린아이들의 야뇨증 을 다스리며, 노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요실금증상에도 효능이 있다.노인이나 어린아이가 이런 증상을 보일 때 인삼과 오미자 진피 익지인을 함께 쓰면 잘 낫는다. 허리가 아픈 경우 산수유와 두충 우슬 지황 산약 등을 배합해 가루내어 먹는다.산수유의 가장 큰 약리작용으로는 허약한 콩팥의 생리기능 강화와 정력증강효과가 꼽힌다. 산수유를 장기간 먹을 경우 몸이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과다한 정력소모로 인한 요통 무기력증으로 조로현상 이명현상 원기부족 등에도 유익하다.정자수의 부족으로 임신이 안 될 때도 장기간 복용하면 치료효과가 있다.△ 생 산산수유는 층층나무과에 속하고 정원에도 관상할 수 있는 활엽, 낙엽 성 교목으로 높이는 7m까지 달하며 잎은 마주 나고 난상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번식은 삽목으로는 되지만 발근율이 낮아 이용되지 않고 주로 종자에 의한 실생번식을 하며 종자는 장기휴면성이므로 수확한 과실의 과육은 벗겨 약용으로 사용하고 종자는 즉시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늦가을 또는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최근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주산지는 구례, 양평, 여주 등이고 경남은 아주 미미하다. 산수유는 내한성이 강한 식물이지만 이른 봄에 꽃이 피기 때문에 서리에 의한 상해의 우려가 있으므로 남부지방 따뜻하고 햇빛이 잘 드는 서북풍이 막힌 경사분지 등 한파가 없는 곳이 좋 고 토양조건은 배수가 잘 되고 부식질이 많은 사양토, 자갈이 섞인 양토가 좋으며 육묘를 할때는 되도록 부식질이 많은 양토가 좋다. 2001년 재배면적은 170ha이며 341.6톤 정도가 생산되었다.△ 소 비이용부위는 잎과 과실로서 과실의 과육을 약용으로 이용하며 잎은 건강차로 이용한다. 주요성분은 Morroniside, Loganin, Cornin, Gallic acid, Tartaric acid, Malic acid 등이며 약리작용으로는 자양작용, 항균작용, 항진작용 등이고 효능은 삽정, 염한 등이다.△수 출 입수출은 '92년 118톤이 있었으나 이후 계속 감소하여 '96년 34톤 정도 이루어졌으며,수입은 없다. 주요 수출국은 일본, 홍콩, 대만이다.△ 수확 및 조제정식 후 7∼8년 만에 개화 결실하며 20∼70년생이 수확최성기이다. 7∼8년생은 주당 600∼1,200g정도이나 20∼30년생은 생육상태가 좋으면 20∼30kg까지 수확된다. 수확은 10월 하순∼11월 상순경 나무 밑에 멍석 등을 깔고 털어 모아서 햇볕에 널어놓거나 온돌방에 3∼4일 건조시켜 반건상태로 씨를 발라낸 후 과육을 양건하거나 건조기에 건조시켜 과육의 함수율이 15∼19% 정도 될 때까지 건조시킴. 기계를 이용하여 씨를 뺄 경우 손으로 뺀 것에 비하여 품질이 떨어지며 가격도 낮음. 건조된 과육은 적자색을 띠고 윤택이 나며 신맛이 많아야 우량품으로 평가된다. 씨에는 렉틴(Lectins)이 들어 있어 인체에 유해하므로 반드시 씨를 제거토록 해야 한다.
    자연과학| 2003.12.15| 4페이지| 1,500원| 조회(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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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학]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증거 평가A좋아요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증거영국의 미생물학자 그리피스(Fred J, Griffith, 1877-1941)는 1928년에 폐렴 쌍구균(Diplococcus pneumonial)의 야생형인 S형(smooth type)과 돌연변이주 R형(rough type)을 실험 동물인 생쥐에 주입시키는 실험을 하였다. 이 실험으로 유전이 화학물질로 결정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그 유전물질이 무엇인지 까지는 아직 알지 못하였다. S형 폐렴균은 콜로니가 매끈한 다당류의 껍질을 가졌으며, 이것이 보호막 역할을 하여 숙주의 공격을 막아내어 체내에서 세균이 살아 남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나 쥐와 같은 동물의 체내에서 폐렴을 일으킨다. 그러나 R형 세균은 보호피막이 없어 쭈굴쭈굴한 표면을 가지고 있고, 숙주동물의 방어 기작에 의한 공격을 받아 죽게 되므로 폐렴을 일으키지 못한다.S형이라도 죽인 뒤에 주사하면 발병하지 못한다. 그러나 죽인 S형과 살아 있는 R형을 섞어서 쥐에 주사하면 그 쥐는 폐렴에 걸리고 쥐에서 S형이 발견되었다. 이 실험으로 죽은 S형에서 무엇인가가 R형 속으로 들어가 R형을 S형으로 바꾸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다음에 그리피스는 적은 분량의 R형이 들어 있는 시험관에 죽은 S형의 추출액을 넣었을 경우에도 R형에서 S형으로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와 같이 세균의 형질이 변하는 것을 형질전환이라고 한다.도대체 어떤 물질이 형질전환을 일으키게 하였을까? 이 의문을 풀지 못하고, 그리피스는 1941년에 안타깝게도 런던에서 독일군에 의한 대공습으로 죽었다. 그리피스의 죽음으로 그의 연구도 잠들어 버렸다.그리피스의 연구내용을 다시 살려낸 것은 록펠러 연구소의 에이버리(Oswald T. Avery, 1877-1955)였다. 1943년 에이버리와 그의 동료들은 S형으로부터 DNA를 순수하게 분리하고 이를 R형 페렴균이 들어 있는 배양액에 넣었을 때 역시 R형이 S형으로 전환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 DNA가 바로 그리피스가 발견한 '형질전환의 원리'의 기본적 단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단백질보다 훨씬 단순한 DNA가 유전자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당시의 과학자들은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는 DNA분자가 자기증식을 하여 그 특징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것을 밝혔다. 이 실험결과는 유전물질이 바로 DNA 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동안 막연히 또는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유전자가 구체적인 화학물질인 DNA로 밝혀진 것은 유전학 연구에 큰 발돋움이 될 수 있었다. 유전자의 본체가 DNA라는 것은 박테리오파지로도 증명되었다.1940년대에 유전물질의 본체에 관한 견해1940년대에 진핵생물의 염색체가 DNA와 단백질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단백질이 20종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T2파지는 어떠한 기작에 의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숙주세포로 하여금 새로운 파지를 만들어 내도록 한다. 그러나 파지의 DNA와 단백질 중 어느 성분이 새로운 파지를 만들어 내도록 했는지는 모른다.DNA가 유전자임을 증명하는 실험적 증거① 그리피스의 실험 - 폐렴균의 형질전환폐렴균은 S형(smooth)균과 R(rough)형균이 있는데, S형균은 균에 막이 있어서 균의 표면이 매끄러우며 항체로부터 보호될 수 있어서 생물체 내에서 폐렴을 일으킨다. 그러나 R형균은 막이 없어서 표면이 거칠고 생물체 내에서도 폐렴을 일으킬 수 없다.[실험과정]가. 폐렴균 중 S형균은 독성이 있어 쥐에 S형균을 투여하였을 때 생쥐가 죽었다.나. R형균은 독성이 없어서 생쥐에 R형균을 투여하였을 때 생쥐는 예상대로 죽지 않았다.다. 60℃에서 3시간동안의 열처리를 하여 죽은 S형균을 생쥐에 투여하였을 때 생쥐는 죽지 않았다. 이는 살아 있는 세균만이 질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라. R형균과 열처리로 죽은 S형균을 함께 생쥐에 투여하였더니 놀랍게도 생쥐는 죽었으며 그 쥐로부터 많은 수의 S형 세균이 검출되었다.[그리피스의 결론]열처리로 죽은 S형균의 어떤 물질이 R형균을 S형균으로 형질전환 시켰다. 즉, 형질전환 인자가 R형균에 들어가서 S형균의 캡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 형질전환 인자는 유전물질임에 틀림없으며, 그 실체를 확인 함으로서 유전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밝힐 수 있다.② 에이버리의 실험[가설] 형질 전환시키는 물질이 유전자(유전물질)임유전자로 작용할 수 있는 물질은 DNA, RNA, 단백질, 탄수화물 등의 유기물일 것이다.[실험 과정과 결과]S형균에서 추출한 물질에 네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각각 넣어 분해한 후 R형균에 넣어주고 형질전환 여부를 조사함가. DNA분해 효소로 처리 : 형질전환 안됨나. RNA분해 효소로 처리 : 형질전환됨다. 단백질 분해 효소로 처리 : 형질전환됨라. 탄수화물분해 효소로 처리 : 형질전환됨[결과]RNA, 단백질, 탄수화물 분해효소 처리 시는 모두 형질전환이 되었지만, DNA 분해효소 처리 시는 형질전환이 되지 않았다. 즉, 유전물질은 DNA임이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당시에는 유전자가 단백질이라는 주장이 더욱 유력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으므로 새로운 실험적 증거가 필요하게 되었다.③ 허시와 체이스에 의한 박테리오파아지의 증식 실험.파아지는 단백질과 DNA로 구성되어 있으며, DNA구성 원소는 C, H, O, N, P이며 단백질 구성원소는 C, H, O, N, S 이다.[실험 과정]가. 파아지의 DNA 구성 원소 중 P를 방사성 동위원소(32P)로 표지하고, 단백질 구성원소 중 S를 방사성 동위원소(35S)로 표지함나. 오른쪽 그림과 같이 박테리아에 32P로 표지된 파아지를 부착시키면 방사선은 박테리아 내부에서만 검출이 되며, 증식된 파아지의 DNA에서 방사선이 검출됨다. 35S로 표지된 파아지를 박테리아에 부착시키면 박테리아 내부에서는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으며, 증식된 새 파아지에서도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았음[결론]생물체의 유전물질은 단백질이 아닌 DNA이다.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간접적 증거1. DNA의 함량비교세포에서 DNA의 함량을 비교해 보면 배우자의 DNA함량은 체세포의 약 ½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DNA가 염색체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한 것이며, DNA는 유전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2. DNA의 UV흡수와 박테리아 돌연변이율의 비교DNA를 생화학적 방법으로 분리하여 UV를 조사한 결과 2600Å의 UV를 최대로 흡수시키고, UV를 박테리아에 조사 시키고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비율을 비교해 보았더니, 역시 2600Å의 UV를 조사 받았을 때의 돌연변이율이 가장 높았다. 따라서 2600Å의 UV는 박테리아의 DNA에 최대로 흡수되어 DNA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박테리아의 돌연변이율을 높였다고 추측된다. 따라서 DNA는 유전물질 일 것이라는 추측은 더욱 확실해졌다.PAGE PAGE 1
    자연과학| 2003.11.07| 5페이지| 1,500원| 조회(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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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 갈릴레오 갈릴레이
    ♠ 갈 릴 레 이(Galileo Galilei : 1564 – 1642)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며, 물리학자. 수학자이기도하다. 피렌체의 시민계급 출신이다. 성과 이름이 비슷한 이유는 장남에게는 성을 겹쳐 쓰는 토스카나 지방의 풍습 때문이다. 피사의 사탑에서 실시한 낙체에 대한 실험으로도 유명한 그는 1579년 피렌체 교외의 바론브로사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1581년 피사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는데, 이 무렵 우연히 성당에 걸려 있는 램프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단진자(單振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였다고 한다.1584년 피사 대학을 중퇴하고 피렌체에 있던 가족과 합류하였다. 이곳에서 아버지 친구이자 토스카나 궁정수학자인 오스틸리오 리치에게 수학과 과학을 배우면서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이때 습작(習作)으로 쓴 논문이 인정을 받아 1592년 피사대학의 수학강사가 되었고, 같은 해 베네치아의 파도바 대학으로 옮겼다. 파도바 대학에서는 유클리드기하학과, 천동설(天動說)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리치에게 배운 응용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간단한 군사기술 입문》 《천구론(天球論) 또는 우주지(宇宙誌)》 《축성론(築城論)》 《기계학》은 이 시기의 저서이다. 베네치아의 여성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며, 파오로 사르피 같은 당대의 뛰어난 학자나 귀족 등과 친교를 맺었다. 1604년의《가속도운동에 관해서》에서 발표한 근대적인 관성법칙(慣性法則)의 개념도 이미 그 전에 사르피에게 보낸 서한에 나타나 있다. 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망원경(갈릴레이식 망원경)을 만들어 여러 천체에 대하여 획기적인 관측을 하였다. 예를 들면, 당시에는 완전한 구(球)로 믿었던 달에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목성(木星)도 그것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위성(갈릴레이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1610년에 이러한 관측결과를 《, 우주는 수학문자(數學文字)로 쓰인 책이라는 유명한 말을 함으로써 자기의 수량적(數量的)인 자연과학관을 대담하게 내세웠다.그 후 숙원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 Dia1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tolemaico e copernicaon》의 집필에 힘써, 제1차 재판의 경고에 저촉되지 않는 형식으로 지동설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이 책은 1632년 2월에 발간되었지만, 7월에 교황청에 의해 금서목록(禁書目錄)에 올랐으며, 갈릴레이는 로마의 이단심문소의 명령으로 1633년 1월에 로마로 소환되었다. 4월부터 심문관으로부터 몇 차례의 신문을 받고, 몇 가지 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자인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심문소 당국이 증거로 제시한 서류 중 몇 가지는 그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6월에 판결이 내려졌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절대로 이단행위를 않겠다고 서약하였다(제2차 재판). 그 뒤 갈릴레이는 피렌체 교외의 알체토리에 있는 옛집으로 돌아왔는데, 사랑하는 장녀와 시력마저 잃었지만 마지막 대작인 《두 개의 신과학(新科學)에 관한 수학적 논증과 증명, Discorsi e dimonstrazioni mathematiche intorno a due nuove scienze attenenti alla meccanica》의 저술에 힘썼으며, 일단 정리되자 신교국(新敎國)인 네덜란드에서 출판하였다. 이어 속편 집필에 착수하였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죽은 후에는 공적(公的)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었으므로 묘소를 마련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만년에는, 스승의 전기를 쓴 V.비비아니와, 기압계(氣壓計)에 그 이름을 남긴 물리학자 토리첼리의 두 제자가 그의 신변에 있었다. 갈릴레이의 생애는 르네상스기와 근대와의 과도기에 해당되며, 구시대적인 것과 새로운 것이 그의 생활이나 과학 속에도 공존하고 있었다. 천문학에서는 지동설을 취하면서터 거리가 먼 경우 중력은 지구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감소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낙체는 공기의 부력(浮力)이나 마찰을 무시하면 물체의 부피나 질량에 관계없이 일정한 가속도 g를 얻으면서 일정시간 내에 일정한 높이만큼 낙하하여 t초 후에는 v = gt의 속도를 얻어 높이를 h라 하면,만큼 낙하한다. 이것을 '낙체의 법칙'이라고 한다.옛날에는 낙체의 속도가 물체의 질량에 비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16세기 말 G.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쇠와 나무공을 함께 떨어뜨려 낙체의 법칙을 증명하였다.단진자 (單振子, Simple Pendulum): 길이가 변하지 않고, 질량을 무시할 수 있는 가는 실에 추를 달아 연직면(鉛直面) 안에서 진동시키는 진자로 진폭이 아주 크지 않은 한, 추의 왕복운동에 의한 단진동으로서 취급할 수 있다. 진동의 주기를 T라 하면, (l : 실의 길이, g : 중력가속도) 로 주어진다. 즉, 진자의 주기는 같은 장소(중력이 일정한 장소)에서는 실의 길이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진폭의 크기나 추의 질량과는 관계가 없다. 이것을 보통 단진자의 등시성(等時性)이라 하며, 시계의 진자는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반대로 중력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진자의 주기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이 오래전부터 이용되고 있다. 단진자의 등시성은 1581년 G. 갈릴레이에 의해 발견되었고, 1656년 C. 호이겐스는 이것을 시계에 적용하였다. 또 1851년 J. 푸코는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는 데 단진자를 이용하였다.갈릴레이위성 (Galilean Satelites): 목성의 위성 중 가장 먼저 발견된 4개의 위성으로 1610년 갈릴레이가 손수 만든 망원경(望遠鏡)을 사용하여 처음으로 발견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목성의 제l위성 이오(Io), 제2위성 에우로파(Europa), 제3위성 가니메데(Ganymede), 제4위성 칼리스토(Callisto)이다. 이들 위성은 매우 밝아서, 쌍안경으로도 잘 보인다. 이들 가운데 가니케플러는 이 자료를 이용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에 관하여 세 가지 법칙을 만들었다.한편, 케플러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G. 갈릴레이는 1632년 출간된 그의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대우주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행성들의 공전궤도가 타원이라는 케플러의 견해보다는 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믿었고, 특히 목성은 자신의 둘레를 원운동하는 4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태양 주위를 원운동한다고 보았다.피사의 사탑 사건, 지동설의 주장, 망원경의 제작대학의 강단에 선 갈릴레오는 공공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그는 대담하게 자신의 이론을 권위보다 위에 두었다.또한 무거운 물건일수록 빨리 떨어진다는 2000년 동안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사고 실험(실험실에서 하는 것이 아닌 상상 속에서 행해지는 실험이다. 실험을 위한 유일한 조건은 그것이 이미 알려진 물리학의 법칙에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을 통해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내려 했다.1590년의 어느 날 갈릴레오는 손에 두 개의 쇠공을 들고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질량이 다른 두 개의 공을 동시에 떨어뜨렸다. 이 실험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는데, 두 개의 쇠공이 동시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움에 소리를 질렀다.그는 2000년동안 잘못되었던 믿음을 바꾼 것이다.1590년경 안경 연마공이었던 얀센은 통에 렌즈를 넣어 보니 물건이 확대되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상이 뒤집혀 보여서 그는 자신의 발명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였다.그 후 다른 안경업자가 눈 가까운 부분에 오목렌즈를 넣었더니 제대로 된 상을 얻을 수 있었다.1609년 파도바 대학의 교수였던 갈릴레오는 새로운 망원경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세웠다.그는 망원경의 구조와 용도를 설명한 문서를 총독과 원로원장에게 보냈다.갈릴레오의 망원경은 총독을 기쁘게 했기 때문에 갈릴레오는 세 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해를 받아들이기는 힘든 시기였다.한 예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를 열렬히 옹호했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는 이단재판소에 회부되어 화형을 당하였다.갈릴레오의 목성과 달에 대한 주장은 매우 파격적이었고, 그의 주장이 근거가 있었지만, 그에 대한 적의는 날로 고조되었고, 마침내 가톨릭 교회까지 움직이게 되었다. 특히 제수이트 교단의 신부들은 이에 격분했다. 그들은 태양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거짓이고, 조리에 맞지 않으며 신학적으로도 잘못이라고 주장했다.교황 바오로 5세와 벨라르미노 추기경 앞에서 갈릴레오는 앞으로 이러한 학설을 글로 나타내거나 가르치지 않기로 서약했다. 그의 저서는 금서목록에 오르기에 이르렀다.1623년 바르베리니(M.Barberini)가 우루바누스 8세로 새 교황이 되었다.이듬해 갈릴레오는 새 교황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로마로 갔다. 교황은 갈릴레오에게 호의를 보냈으나,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신봉하는 것만은 반대하였다. 갈릴레오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비교하는 대화체의 책을 쓰는 것을 허락 받으려 했다. 교황은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하에 이를 허락했다.1624년부터 1630년까지 갈릴레오는 "두 가지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를 써서 1632년에야 겨우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두 가지 체계 모두 가설적인 것이며,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다는 표현을 써서 교황청의 검열을 통과했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의 지지자 살비아티(갈릴레오의 대변자)와 반대자 심플리치오와 중립적인 사그레도 세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논쟁이 살비아티에게 유리하게끔 쓰여졌다. 교황청의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어리석은 심플리치오로 조작되었다는 것이었다.종교 재판소는 1633년 6월 22일 갈릴레오를 소환하여, 이단적인 주장을 취소하고, 앞으로는 영원히 교회의 교리다.
    자연과학| 2003.10.24| 7페이지| 1,000원| 조회(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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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자기소개서] 영문 자기소개서
    I am glad to attend your class and thank you for giving me a chance to introduce myself.My name is ----. I was born in Seoul. My birthday is April18. I'm an Aries.I think i'm hardworking and friendly, but stubborn.There are four in my family: my father, mother, brother and I. My brother is three years older than I am. Also, I have been keeping a dog, it's called "bang-ul". My parents are good fun. Sometimes father gives pleasure to us with interesting story. My mother is of a very cheerful disposition. And she is an excellent cook. I am proud of my happy family.
    취업| 2003.10.23| 1페이지| 3,000원| 조회(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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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소개서] About my dream
    When I was young, the old often put a question to me. "What is your dreams?" or "What do you want to be?" At that time, I just answered that. "I will be great man." Nowadays, I often listened this questions too. " What is your dream?". I think that I will listen this questions until I die. However, this question always makes me confused.Now I tell you about my dream. Dream is always changed.But if I tell you these dreams, you can understand my goal easy. Frankly speaking, I can not remember my old dream.
    취업| 2003.10.23| 1페이지| 3,000원| 조회(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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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3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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