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기본계획 ▣1. 숙박시설 및 호텔의 종류우리나라의 숙박시설은 크게 호텔과 여관으로 분류한다. 호텔과 여관의 구별은 시설내용과 구분에 수반되는 경영방식에 따라 구분을 하고 있다.호텔의 구비 조건은 양실의 객실이 주체를 이루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객, 기타인의 자유로운 출입을 할 수 있는 로비, 식당을 두고, 중앙난방의 설비와 객실에는 자유로운 목욕시설이 갖추어져 있다.호텔의 종류는 그 위치와 지역별에 따라 다음의 2종으로 나뉘어진다.1시가지 호텔(city hotel)도심형 대규모 호텔로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시설을 완비하고 있으며, 최대한의 수용력을 가진 객실과 공공공간과의 관계는 충분한 기능적인 고려를 하고 있다. 도심에 입지하므로 호텔 외부의 도시서비스기능을 이용권으로 고려하게 되고 대부분 고밀도의 고층형이 된다.a. comercial hotel : 주로 상업상, 사무상의 여행자를 위한 호텔로서, 도시의 가장 번화한 교통의 중심으로 편리한 위치에 있다.b. residential hotel : 상업상·사무상의 여행자, 관광객, 단기 체재자 등의 일반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최고의 스위트와 호화로운 설비를 하고 있다.c. apartment hotel : 객이 장기간 체재하는 데 적합한 호텔로서, 각 객실에는 부엌의 설 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d. terminal hotel : 교통기관의 발착지점에 위치한 호텔로서, 객의 편리를 도모한다.2관광지 호텔(resort hotel)조망, 기타의 광대한 환경적인 조건에 충분한 고려를 하고 있으며, 호텔의 내외에는 레크리 에이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리조트호텔은 대부분이 넓은 공공공간을 가지고 있다. 객실도 도시의 커머셜 호텔에 비하여 매우 넓으며, 일반적으로 운동시설과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갖추고 잇는 것이 보통이다. 건축의 형식은 주변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루어진다.a. beach hotelb. mountain hotelc. hot spring hoteld. ski hotele. group hotelf. cl것이 좋다. 시가지에 세워지는 시티호텔은 부지가 제약되므로 복도면적을 적게 하고 고층화에 적합한 평면형이 지향되고 있다. 아파트먼트 호텔은 리조트 호텔과 시티 호텔의 중간적인 배치방법으로 특히 거주성을 생각하여 통풍 채광이 좋은 평면형의 계획이 요망된다.3. 평면계획1 호텔의 기능a)관리부분b)공공부분 또는 사교부분c)숙박부분2 소요실a) 숙박부분 : 각실 및 이에 부수되는 공동변소, 공동용 욕실, 메이드실, 보이실, 리넨실, 트렁크실, 복도, 계단 등b) 공공공간 : 현관, 홀 로비, 라운지, 식당, 오락실, 연회실, 매점, 나이트 클럽, 바, 볼 룸,커피숍, 그릴, 담화실, 독서실, 진열장, 흡연실, 프런트 카운터, 이발실, 미용실, 엘리베이터, 계단, 정원 등c) 관리부분 : 프런트 오피스, 클로크 룸, 지배인실, 컴퓨터실, 사무실, 공작실, 창고, 전화교환시, 종업원관계 제실 및 이에 부수되는 변소, 복도, 계단 등d) 요리관계부분:배선실, 주방, 식기실, 냉장고, 식료품창고 및 이에 부수되는 변소, 복도, 계단 등e) 설비 관계 부분:보일러실, 각종 기계실, 세면실 및 이에 부수되는 창고, 복도, 계단 등f) 대여실:상점, 창고, 임대사무실, 클럽 등3 각부의 면적비율영업부문객실24 27%연회7 8%식사4 5%점포3%퍼블릭부문로비2 3%그 밖의 15 17%객용 스페이스서비스부문주방6 7%기계실17 20%그외 서비스 8 10%스페이스주차장13%4 객실 기준층기준층은 호텔의 객실이 있는 대표적인 층을 말한다. 이러한 기준평면의 규격과 구조적인 해결로써 호텔 전체의 통일을 시켜야 한다. 이와 같이 호텔설계는 기준층의 계획부터 시작이 되어 기준층의 객실수를 배치하는 방법은 기준층의 면적이나 기둥간격의 구조적인 문제에 좌우되며, 기둥간격을 정하는 방법으로는 2실을 연결한 것을 최소 기둥간격으로 보면 구조나 시공상의 어려움이 없다. 그 柱間은(최소의 욕실폭+각실 입구통로폭+반침폭)*2로 한다. 각 실은 편측복도와 중앙복도로 편면 또는 양면으로 객실을 배치한다. 트 테이블, 라이팅 데스크, 화장대, 정리장, 라운지 세트, 라디오 및 텔레비젼 세트, 포장대2 보이·서비스실숙박시설이 있는 각층의 엘리베이터, 계단을 중심으로 감시하기 편리한 곳에 위치하여 서로 인접시켜 배치한다. 보이실에는 휴식, 숙직용 베드를 두어야 하고, 서비스실에는 각실의 침대 150개당 리프트 1개를 매층에 설치하고, 또는 25 30실당 모든 부품과 리프트를 추가한다. 트렁크실은 화물엘리베이터를 설비한다.3 현관, 로비, 라운지현관은 호텔의 외부적 접객장소로서 로비, 라운지와는 분리한다. 로비는 객의 동선의 중심으로서, 현관에 도착이 되는 객이 먼저 들어가게 되며, 숙박이나 식사, 사교를 위해서 이용되는 것이 로비이다. 보통은 현관 홀에 접속되어 프런트 오피스에 용이하게 연속될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한다. 엘리베이터, 계단에 의해 객실로 통하고, 식당이나 오락실에 보다 용이하게 갈 수 잇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4 프런트 오피스호텔운영의 중심부로서, 프런트 오피스의 사무는 다음과 같다.a) 안내계 : 고객의 확인, 보도, 통신, 연락, 우편, 전신b) 객실계 : 접수, 실의 배치, 숙박료의 결정c) 회계계 : 계산서, 현금출납, 각종 전표정리, 귀중품예치5 식당, 연회장a) 주식당 : 주식당은 숙박객 및 외래객을 대상으로, 외래객에게 편하게 출입구를 별도로 설치하여 아담한 분위기로 계획하여야 하는 부분이다. 커머셜 호텔은 다른 호텔에 비해서 절반의 면적으로 충분하다. 식당면적은 3.3m2당 2 2.5명으로 보고 있다. 식사를 제공하는 각실의 합계면적과 주방면적과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70 80%이다. 식당에 설치되는 의자석수는 시티 호텔에서 약 0.6석/수용인원, 리조트 호텔에서 약 0.8석/수용인원이다. 각 석당 1.3m2정도이기 때문에 시티 호텔은 0.8m2/수용인원, 리조트 호텔은 1.0m2/수용인원으로 하는 것이 좋다.b)연회장, 집회실(ball room)대연회장은 다양한 집회를 목적으로 하는 다목적홀이기 때문에 구조나 디자인의 검토와 조면, 있다.9 기타설비a) 공기조화설비 : 에어컨디션의 종류는 센트럴 시스템과 유닛 시스템 그리고 그룹 시스템으로 대별된다. 인체에 적합한 온도는 15 20 , 습도는 40 60%이다. 객실에는 온수난방, 퍼블릭 스페이스는 증기난방이 좋으며 창, 벽, 도어는 공기와 열을 차단하는 구조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b) 위생설비 : 퍼블릭 스페이스층에는 60m이내마다 공동용 변소를 설치한다. 변소 내부는 물론 입구마다 남녀별로 구분하고 전실을 두어야 한다. 종업원용의 변소는 따로 설치하여 고객과의 혼용을 피한다. 객실층에는 전객실에 전용의 변기가 설비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용 변소를 설치할 필요는 없으며, 객실층에 잇는 서비스 스테이션에는 필히 전용변소를 설치하여야 한다. 공동용 변기는 1개당 25명에 해당하며, 大:小:女 = 2:4:2 의 비로 한다.〈사례분석〉▣ The Ritz Carlton Seoul & 제주신라호텔 ▣. 개 요{The Ritz Carlton Seoul제주신라호텔위 치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제주 서귀포시 색달동설 계이공건축삼우설계지역지구주거(일부상업)지역. 2종미관지구. 주차장정비지구미지정(유원지)공사종명증축증축주요용도관광호텔관광호텔대지면적10,362.5m287,233.2m2건축면적4,141.46m215,288.51m2건 폐 율39.66%18.06%용 적 율297.38%49.18%연 면 적61,557.45m256,105.72m2주차대수521대(옥내 451/옥외 75)194대(법적 184대)조경면적2,381.75m257,195m2최고높이67.65m19.44m규 모지하 7층. 지상 17층지하 2층, 지상5층구조방식철골조. 철근콘크리트조설비방식공기조화방식-팬코일유닛주요내장재바닥/대리석 벽·천장/벽지주요외장재화강석 복층유리건 축 주(주)전원산업신라호텔시 공 자(주)두산건설삼성물산공 사 비615억원설계기간1989 19901988 1989(신축) 1994∼1997(증축)시공기간1990 19951989 1990설계담당이관직삼우설계구조설계태경건축삼우설계기계설비우원설비삼우 정화조 등의 많은 시설면적을 확보하였다. 상업지역이 아닌 주거지역에 300%밖에 안 되는 용적률 또한 지하층의 이용을 극대화하게 한 제한조건이었다.제주신라호텔총 429실의 객실규모를 가진 특급호텔의 규모로 넓은 대지에 다양한 시야의 확보를 위해 저층형의 리조트 호텔이 계획되었다. 기준층의 평면형태가 교차형으로써 중심지점은 공용공간으로 사용되며 길게 뻗어나온 동관과 서관은 객실로 계획되었다.양 호텔의 면적 배분{구 분호텔의 성격연면적 1,000∼20,000㎡(사 례)숙박부분리조트 호텔43∼56%(제주신라호텔 31418.8㎡)비즈니스 호텔51∼63%(리츠칼튼호텔 38780.91㎡)공공부분리조트 호텔37∼24%(제주신라호텔 13465.2㎡)비즈니스 호텔29∼17%(리츠칼튼호텔 9849.12㎡)관리부분공 통20% 내외(제주신라호텔 14587.3㎡, 리츠칼튼호텔 16004.82㎡)3. 배치계획{TheRitzCarltonSeoul대연회장의 위치결정은 건물의 배치와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대지특성을 살려 연회장의 위치에 따른 구관과 신관의 배치가 초기설계의 주안점이었다. 1000명을 수용하는 연회장, 포디윰(Podium)과 로지(Lodge)가 필요하고 기둥간격이 8m내외로 제한된 신관은 주 숙박 부분의 방향과 위치와도 관계된 부분이었다. 22m 대형 스팬의 대 연회장이 남쪽 지하에 위치하고 조금 북쪽에 구관과 평행하게 신관 객실부가 위치하였다.제주신라호텔대지의 여건상 숙박공간과 공용공간의 바다에 대한 조망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안을 바라보게 배치되었다. 주 진입은 북측으로써 주차장은 투숙객 주차장과 위락시설 이용객 주차장으로 구분되어 배치되었고 남측의 Open View의 수영장과 산책로를 조성하여 휴식장소로서의 활용도를 극대화하였다.{{리츠칼튼호텔 배치도 제주신라호텔 배치도4. 내 외부 공간의 개념과 호텔의 외부계획{TheRitzCarltonSeoul조형에 있어서 인위적인 것을 철저히 배제하고 구조와 기능을 표현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시작하였다. 신관전면에.
Biography 약력1941 일본 오사카 출생1962~69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독학으로 건축수업1969 안도 타다오 건축 연구소 설립1987 예일대 객원교수1988 콜럼비아대 객원교수1990 하버드대 객원교수안도 다다오(TADAO ANDO){그림Award 수상1979 스미요시주택으로 일본건축학회상1983 록고집합주택으로 일본문화디자인상1985 핀란드건축가협회로부터 알바알토 메달수여1986 일본 문부성의 순수미술진흥상1987 록고교회로 마이니치예술상1988 키도사키주택으로 요시다 이소야상1989프랑스건축아카데미상1990 오사카현으로부터 오사카예술상1991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미국문예아카데미로부터 아놀드 브루너 기념상1992 덴마크 칼스버그건축상1993 영국왕립건축가협회 명예회원1994 치카츠 아스카역사박물관으로 일본예술대상1995 프랑스예술원으로부터 가시작위수여프리츠커건축상 ,제7회 국제디자인상1996 제8회 프리미엄 임페리얼상제1회 프리이트 소울상1997 독일건축가협회 명예회원추대영국왈립건축가협회상프랑스 예술원회원안도 타다오의 건축사고를 살펴보기 전에 그 배경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독학과 여행이다. 고졸출신(게다가 기계과)인 그는 실제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다고 볼 수 없다. 오로지 독학만이 그의 유일한 건축공부 방법이었다. 고졸이라는 학력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책을 읽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걸어다니면서 보고 스케치하며 여행하였다. 건축에 있어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직접 건물을 보고 느끼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는 미켈란젤로, 아돌프 루스, 르 꼬르뷔제, 알바 알토 등의 작품과 수많은 고전건축 등을 보고 발로 공부하며 온 몸으로 느끼면서 독자적인 건축관을 형성하였다.안도 타다오의 건축사고는 크게 네 가지의 틀로 볼 수 있다.『1. 장소성-시작과 질서』오늘날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환경이 그 장소로부터 자연히 표출되는 것 같은, 질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 이에 대해 안도는 그 건축이 서 있 나에게는 느껴진다. 건축대지는 늘 인간에게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다. 자기에 가장 알맞은 건축을 바라는 그 부르짖음은 그것을 들으려고 귀기울이는 자에게만 들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지의 요구에 어떻게 호응할 것인가가 건축이라는 행위일 것이다."이는 지형 뿐 만이 아니라 그 지역과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지역의 사람과 문화적 환경 등을 구체화하여 건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장소성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장소성을 읽어 내는 그의 시각은 탁월하며 대다수의 작품에 구체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때때로 그 것은 단지 자연스러운 조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대립과 갈등으로 시작하여 건축을 고유의 場(장)으로 만든다. 주변과 고유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닫혀진 영역으로의 성격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장소는 장소끼리 물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교환될 수 없다. 즉, 각기 장소에 따라 고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성격의 장소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안도의 건축은 단순한 형태의 구축이 아니라 생활과 관련된 현상으로서 접할 때 사람들의 기억에 무엇이 각인되며 어떻게 전달되어 가는 가를 제시하고 있다. 안도는 이러한 장소의 특성을 끌어재기 위하여 건축구성에 있어서 기하학이라는 방법론을 취해왔다.『2. 기하학-건축의 추상성』그는 건축의 형태로써 원이나 정방형의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선택한다. 이는 기하학적 형태를 단순한 형태의 조작이 아닌 공간구축과 장소의 구현으로서의 본질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예로 화가 요셉 알버스의 '정방형에의 경의 (Homage to the Square)를 들 수 있다. 이 시리즈의 그림들은 정방형이라는 규칙에 스스로를 한정하고 독특하고 투명한 색채를 칠해 관찰자가 진동과 확장을 느끼고 다양한 자유를 발견하게 한다. 기하학적 형태를 벽돌과 중첩, 결합 그리고 삭제함으로써 기하학의 힘에 의해 지어진 건축의 상징성이 어떻게 주위를 자극하고 어떻게 존재하는 지를 표명하는가 추구하는 것이다.『3. 공간- 건축의 구상』건축이ceri)' 으로 설명하고 피라네지의 꿈과 허구의 감옥은 그 압도적인 박력과 비 일상적인 공간감각으로 미로성을 확대시켜 주는데 이 건축의 육체성 또는 육체의 미로 이미지가 그가 추구하는 건축의 구상성이다. 안도의 건축은 엄격한 기하학에 의해 구축된 극도로 추상적인 존재에서 인간의 육체와 같은 구상성을 띤 공간으로 바뀌어 간다. 즉 알버스적 골결 형태 안에 피라네지적 환상의 미로공간을 깃들게 함으로써 건축의 추상성과 구상성 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한다. 또한 그의 건축은 진정한 창조의 의미를 지닌 매우 독보적인 존재이다. 안도의 건축에는 고뇌스런 사고의 흔적이 그 공간마다 각인도어 있으며 그 진동과 여운이 체험자에게 자극을 부여하고 있다.『4. 전통-정신과 감성의 계승』안도의 건축을 보면 지극히 일본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과 그 만의 개성과 지역성이 녹아서 작품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계승은 전통건축의 형태를 모더니즘이 가져온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표현한 형태상의 모방이 아닌 '정신과 감성' 을 계승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역사적인 형태의 복사가 아닌 과거 문화의 총체로부터 그 기원을 갖지만 그것이 건축으로 완성되었을 때에는 승화되어 단지 형태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건축이나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용하는 사람, 즉 주체에 의거하는 부분이 많다. 안도의 건축은 이처럼 만들어진 후 하나의 목적으로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의 프로그램을 야기하는 사영자의 자주적인 활동에 의해 행위의 내용이 풍부해진다. 또한 안도의 건축에 있어서 형태란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신체감각에 의한 공간의 체험으로서 전개되기 때문에 체험되고 있는 공간은 장소적 특성을 띠며 정신과 관련된 신비적인 것이 된다.안도 타다오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재료로서의 콘크리트, 철, 유리등의 엄선된 소재에 의해 쓸데없는 것을 전부 사상시키며 극한까지 추구되는 미학을 제시하여 왔다. 이것은 그가 인간의 정신에 호.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건축은 진정한 창조와 관계된 것으로 사고의 고뇌로서의 흔적이 공간에 각인되어 있으며 그 진동이나 여운이 체험자에게 전달되어 기억화 된다. 건축이나 아트와 같은 창작 세계에 있어서 작품이 되는 것은 항상 가시적인 형태라고 하는 최종적 결과에 의해 판단된다. 그러나 조형의 미에 있어서 구축이라는 행위를 그만 두었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안도의 건축은 명쾌한 대답을 주고 있다. 즉 그의 건축에 있어서 형태란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신체 감각에 의한 공간의 체험으로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안도의 건축에 있어서 이 것을 표현하는 공간적 형식으로 건축에 접근하는 과정을 들 수 있다. 안도는 항상 건축에의 접근을 최단거리 동선으로부터 멀리 회유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다음에 전개되는 과정에 의해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안도의 건축에서 느끼는..... >건축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공간체험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매우 추상적인 작업이다. 여기에는 발상의 이미지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기재되어 건축가의 사고가 작품의 독자성과 일치되는 지에 대한 근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건축의 개념을 확고히 하고 있는 건축가가 바로 안도 타다오이다. 안도는 지금까지 신간과 함께 색이 바래어가는, 즉 일종의 유행과 같은 조류에 좌우되지 않고 항상 새로움을 나타내는 건축의 본질 을 추구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움이란 물리적이면서 형태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질과 관련된 자극과 긴장감을 자져오는 것이다.안도는 점차 인간의 존재가 배제된 중성적이며 획일적인 공간을 보편적으로 적용한 결과, 환경의 질적인 문제가 따로 떨어져 나가면서 구체적인 생활과 문화가 지닌 의미와는 동떨어진 장소의 상실 을 초래한 지금에 문제를 제기하고 장소의 특성을 끌어내기 위하여 건축구성에 있어서 기하학이라는 방법론을 취해왔다.그는 침실과 거실, 화장실등 거주공간은 각각 외부의 중정에 의해 바람, 것이다.안도의 주택을 보면 그 핵이 되는 중정은 주택내부에서 영위되는 생활을 흡수하거나 확산시키는 매우 탄력적인 공간이다. 이것은 항상 변화하면서 일시적으로 방생하는 체험자의 행위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건축이나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용하는 사람, 즉 주체에 의거하는 부분이 많다. 안도의 건축은 이처럼 만들어진 후 하나의 목적으로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의 프로그램을 야기하는 사용자의 자주적인 활동에 의해 행위의 내용이 풍부해진다. 그의 건축에 있어서 형태란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신체감각에 의한 공간의 체험으로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험되고 있는 공간 은 장소적 특성을 띠며 정신과 관련된 신비적인 것이 된다. 안도는 항상 건축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최단거리의 동선에서 벗어나 멀리 회유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다음으로 전개되는 과정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안도의 건축에는 고뇌스러운 사고의 흔적이 그 공간마다 각인되어 있으며 그 진동과 여운이 체험자에게 자극을 부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풍경을 단편적, 연속적 장면을 통하여 체험하며 장소의 감각을 기억하게 된다. 바로 건축과 자연환경과의 관계성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미를 경험하는 것이다.┟ 코시노 주택 ┩위치: 일본 효고현 아시야설계: 1979. 9 ~ 1980. 4증축/ 1983. 11 ~ 1983. 6시공: 1980. 8 ~ 1981. 2{증축/ 1983. 11 ~ 1984. 3대지면적: 1,141 평방미터건축면적: 224 평방미터, 증축/ 52.7 평방미터연면적: 231.4 평방미터, 증축/ 52.7 평방미터『코시노 주택의 대지와 형태 분석』흩어져 서있는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나란히 정렬된 두 개의 무기물 콘크리트 상자들은 국립공원의 초록빛 경사면에 반쯤 묻혀 있다. 건물은 자유로운 모습이지만 자연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크기가 다른 두 상자는 지하복도에 의해 연결되며 중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첫 번째 볼륨은 두 레벨로 되어 있는데 아래층에는 두 배의 층고를 지.
⊙ 모더니즘(Modernism)1. 가레트 에크보(Eckbo, G.)에크보는 근대 미술, 근대 건축에 대응하는 근대주의 조경설계양식(아방가르드 조경)의 창시자인 작가이자 이론가이다. 단 카일리, 제임스 로스와 같이 하버드 설계 대학원 재학시 전근대적 설계 교육(포멀리즘 대 인포멀리즘으로 한정된)에 대항해서 벌인 모더니즘 운동은 근대주의 조경 설계가 시작되는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는 조경 작품 속에 '점', '선', '면' 의 공간구성 요소를 선명하게 구분, 구성함으로써 근대 추상미학의 창시자인 칸딘스키 이론의 철저한 조경적 구현자가 되었으며 실제 작품 속에서는 근대건축의 원리인 3차원적 공간성을 '바닥면', '벽면', '천개면' 으로 구성되는 옥외실 개념으로 표현하였다. 이로써 이론과 실천면에서 전시대의 양식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갖는 독자적인 근대주의적 조경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창출되기 시작하였다. 실제 그의 작품 속에서는 그리드를 기반 형태 요소로 사용하면서 원호와 정규사각을 변화 요소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론가 로리 올린에 따르면 그는 사선을 조경공간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한 최초의 조경가였다. 특히 이러한 사선은 소주택의 정원을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한 투시도적 착시효과의 수단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다.젊은 에크보는 당대의 새로운 사조를 수용하여 조경의 구습을 타파하고, 미국 경관 설계의 근대화 운동을 일으킨 혁명가이며, 향후 50여년간 설계가, 교육자, 환경계획가, EDAW의 설립자 등 조경전문가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당시의 삶의 요구와 필요에 적합한 디자인을 추구한 에크보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조경가 중의 하나이다." 2000년 5월 15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Publication. Landscape for Living (1950). The Art of Home Landscaping (1956). Urban Landscape Design (1964). The Landscape We See (1969). Urban Lan모두 그의 도제로서 설계를 익힌 바 있다.{토마스 처치는 모더니즘 조경설계의 또다른 한 유형인 유기적 형태(organic form) 양식의 초기 대표작가이다. 이런 면에서 직선 그리드 위주의 에크보와는 대조가 되는 작가이다. 이러한 유기적 형태는 생체형(bio-morphic form) 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의 유행에는 당시 근대미술의 한 유파인 야수파(마티스 등)와 초현실주의(아르프, 미로 등)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도넬가든에서는 몽상적, 유기적, 관능적 형태, 콩팥 타입의 연못 등, 물흐르는 듯한 공간구성은 근대주의 조경 중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전형이 되었다.도넬가든(Dornell Garden, 1948)3. 로베르토 벌 막스(Burle Marx, R.)브라질 상파울로에서 1909년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쉽게 예술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브라질의 국립미술학교와 베를린 예술학부를 다녔으며 베를린 유학 당시 Dahlem Botanic Garden'을 방문한 것이 그가 조경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과 조경에 대한 전문적 교육이 부족한 그는 순수예술에 대한 집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으며 조경설계를 식물로 그린 그림으로 표현하였다.화가 겸 조경가, 성악가이기도 한 벌막스의 작품들은 초현실주의풍의 극단적인 곡선적, 유기적 형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근대회화의 평면적, 추상적 특징을 그대로 조경작품에 적용하여 식물로 그린 그림 이나 대지 위의 거대한 추상화 와도 같은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식물에 대한 깊은 생태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남국(브라질)의 환상적 열기를 원색조의 식재패턴으로 표현하였다.{Burton Tremaine Residence(1948)4. 루이스 바라간(Barragan, L.){바라간은 1902년 멕시코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그는 공학을 전공했으나 건축이나 조경은 스스로 터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자그마한 마을의 농장, 교회의 경관 그리고 북아프리카, 유럽, 스페인 등의 여행체험스러운 공간들과 Chapel for the Capuchinas Sacramentarias의 화사하면서도 정돈된 빛을 발하고있는 예배공간을 그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그의 건축물은 이처럼 국제주의적 스타일 건축물이면서도 그 스타일속의 평범한 건축물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멕시코 특유의 풍토와 기후를 잘 소화하여 세계적 인정받는 건축물로 만들어 내고 있다.{{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이 국제화된 건축물이면서도 우리나라 특유의 풍토와 기후를 잘 소화시켜 세계적 인정받는 건축가의 탄생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Barragan Los Clubes(1963-64) Lovers Fountain-Los Clubes(1963-64)San Cristobal Stable, Pools, and House(1967-68) 수변공간-Las Arboledas(1958-61)Tacubaya-Casa Gilardi(1976) Chapel for the Capuchinas Sacramentarias(1952-55)5. 단 카일리(Kiley, D.)1912년 보스턴에서 출생한 카일리는 앞서의 에크보와 함께 하버드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하였다. 단 카일리는 통상 고전적 근대주의자라고 불린다. 모더니즘 조경설계 최초의 주창자 중 한 사람이었으면서도 에크보와는 달리 축과 직각구성 등 정태적 정형성이 그의 작품의 주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통기하학(orthodox geometry)과 수평성(horizontality)은 고전적 균형감각과 고요한 명상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여기에 복합적인 수직?수평의 그리드 패턴, 이의 변형인 바람개비 형태(pin-wheel), 복수축의 전개 등 근대적 운동성(dynamism)과 시간성을 표현하고 있어 모더니스트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카일리 만큼 직선(특히 축선)을 강조하는 조경가도 드문데 밑의 작품에서는 한 방향으로 평행한 수많은 축선(여기서는 수로로 표현)들이 탈중심의 평면성과 명상적 분위기를 표현한다. 녹지와 포장면의스는 스미슨의 'Gluepour', 'Asphalt Rundown'등이 부지의 지형학(Physio graphy)과 물질의 물리적 특성을 잘 표현한 작품들이라 언급했다. 하그리브스는 스미슨의 작품들이 엔트로피, 중력, 침식 등 모든 환경의 변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조각의 모든 실마리와 존재의 이유를 주변환경으로부터 이끌어내고, 작업의 과정은 부지와 밀착된 상태로 시작되고 부지의 모든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였다.각 개인이 전체의 맥락 속에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현상학적이고 조건적이며 반응적인 예술의 원칙을 따른다. 변화의 가능성은 이러한 작업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하그리브스가 조경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더 큰 주변환경을 연결시켜 주는 것둘째, 물의 흐름, 바람의 움직임, 빛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현상셋째, 인문학적인 탐구하그리브스는 이 세 가지를 한데 엮어 사용함으로써 조경을 통해 자연과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표현하려 한다.하그리브스는 20세기 초반기의 예술스타일인 드슈틸(De. Stijl), 큐비즘(Cubism),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구성방식은 임의적인 미적 기준에 의해 설계된 '닫혀진 구성(Closed Composition)' 라 했다. 이러한 닫혀진 구성은 경관의 미묘한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한편 하그리브스가 이야기하는 '열린구성'은 부지(site)의 변화하는 현상을 읽고, 그 변화를 강조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변화하는 빛, 물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등의 물리적 특성들을 조경작품의 요소로 이용하는 것이다.그는 조경의 의미와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다의성이나 전치, 전위, 왜곡, 비자연적 소재의 사용과 자연적 소재의 비자연적 사용, 자극과 과장 등에 의한 의외성, 재치와 장난기, 그리고 도상과 우상, 담론을 이용한 은유적 표현과 같은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된다.{Candle Stick Cultural Park(1985-1993)3. 베르나t를 통해서 에너지가 응집된 느낌을 주는 대상물(folie)을 보여준다. folie는 망상이라는 뜻으로 불일치와 환영이 가져오는 망상과 광기는 그의 기묘한 건축적 배열속에서 드러나고 있다.{{한마디로 그는 기계적 인간관계나 장소가 주는 의미에 집착하는 것을 거부하는 작가다. 지난시기 이어져오는 설계의 관습을 깨는 과정에서 gride와 point를 사용한 배치가 나타나며 그것을 통해 공간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이제 설계의 관습은 우리인간의 정신적 구조물과 함께 인간생활 자체여야하며 그것은 하나의 공간이 한정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 형상을 특징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자 설계철학인 것이다.라빌레뜨 배치도 라빌레뜨 평면도라빌레뜨는 파리라는 특정문화 체계속에서 가능한 설계로서 건축적 디자인이나 다양한 할동을 담을 수 있도록 중첩의 개념을 사용한 것은 자연과 접하는 계기를 만드는 기존의 공원양식에서 벗어나 정형적인 파리의 정원양식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Walker)Peter-Zyberk는 공원으로서 가질수 있는 공간의 배분이나 배치가 아닌 파격적인 형태로서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으나 전체구조를 볼 수 없는 이용자들의 경험을 중시하고 각각의 설계요소들의 구조화된 배열 속에서 이용자들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한 설계라 평하고 있다. 라빌레트 공원은 원래의 의도대로 파리를 현대건축에서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고 건축은 물론 조경사, 도시문화사의 한 장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실험적 조경 철학이나 새로운 조형적 시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점은 자연의 모방으로 이어져온 옴스테드식 전통에 대한 반성과 도시공원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라빌레뜨와 이에 대한 비평작업을 통해 마련되었다는 데에 있다.{{일부에서는 공원이 지나치게 건축위주의 구성으로 자연경관적 요소를 건축에 종속시켰고 자연을 건축물 사이에 채우는 것으로 전락시켰다는 날카로운 비판의 소리도 있고, 건축적 관념의 과잉으로 공원이 가져야할 감각적인
중국 근대화의 실패 원인서구의 근대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186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걸쳐 전개된 중국 청조의 양무운동은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패배하면서 당대에 벌써 실패로 인정되었 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도 일본의 명치유신이라는 성공의 모델과 비교되어 실 패의 모델로 논의된다.실패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근대화 과정에 중대한 운동 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몇몇 특정인인 양무파 관료에 의해 개별적으로 추진된 것을 비추어본다면첫째 원인으로 청 정부 중앙권력의 핵심세력이 양무운동이 근대 화 운동으로써 가지는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근대화는 결코 한 개인이나 한 지역에서 진행되어 달성 할 수 있는 것이 아니 다. 사회전체의 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물론 한 지역의 파급효과가 전 지역에 미쳐 전 지역의 변화가 야기된다면 가능 하긴 하다. 그러나 양무파 관료가 자신이 관리하는 지역에서만 개별적으로 시행하 고, 전임지방관이 시행한 양무 사업을 후임지방관이 중단시키거나 지방관이 전입 되면 그가 설립한 기업의 설비자체를 자신의 새 임지로 이전하는 등 통일되고 일 관된 지속적 사업이 되지 못하고 지역성을 탈피하지 못한 양무운동은 근대화운동 으로서 명확한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그러한 지역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력핵심부가 통일되고 지속된 사업으로 추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일부관료를 제외하고 여전히 보수 적 성향을 지닌, 권력투쟁에 익숙한 관료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으며, 지방의 양무 운동 추진 주체들은 분열되어 있었다.양무운동은 이렇게 정책적인 면에서 비효율적이며 중앙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추진되지도 못하였다. 같은 시기 일본의 명치유신(1868)은 그 주체가 권력의 핵심 을 장악하고 추진하였던 중앙의 개혁세력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운동의 성격 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둘째로 지적될 수 있는 실패의 원인은 추진주체인 양무 관료의 보수성이다.양무운동 추진주체는 태평천국 등 민중반란의 진압과정에 관료세 력이었다.증국번, 이홍장 등은 각각 상군, 회군 등의 단련을 조직하여 청조의 군사적 무 력을 진압하는 가운데 태평군의 토평을 효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논공행상의 주역 이 되었고, 태평군 토평에 군사적 배경이 된 단련은 향리를 보호하기 위한 자위군 이었다.그리고 이 단련의 주도자는 향신이었는데, 향신은 청조의 전통 질서 하에서 최 대의 경제적 혜택을 받는 계층이자 노력하지 않고 분리하는 계층이었다. 그러므로 향신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고, 향신들이 주체인 단련 역시 보수적일 수밖에 없 었다.때문에 양무 관료들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태평군이 제기한 봉건적 모순의 극복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와해된 청조의 지방통치조직을 재건하여 청조의 생명을 연 장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실패원인 세 번째는 양무 사상의 한계성이다.먼저 양무운동은 지방관인 양무 관료들이 개별적으로 시행했음에도 드러나듯이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근대화 운동이라는 지향 점을 가져야 하는 양무운동의 사상이 실제로 매우 파편화 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 해준다.또한 양무 관료들의 경세치용 사상은 양계초의 "以復古爲解放(이복고위해방)"의 패턴에 넣어서 보면 청초 또는 공맹에 복고하여 청대 정통파로부터 해방된 유학의 한 변이임을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서구와 접촉한 이후에 들어온 만큼의 서구의 문물은 양무 관료의 경세학에 힘입어 수용될 수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전통성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라는 한계성을 가졌던 것이 다.양무 관료들은 대체적으로 중, 서 문화종합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으나 그들 의 문화종합은 대등한 입장에서의 문화종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중국문화의 주도 적 입장이었던 것이다.서학의 외래성을 중화하여 중학에 일치시키거나 근접시킴으로써 서양문물을 받 아들이려 했고, 서학의 채용은 문화모방이 아니라 복고의 한 현상이라고 주장했 다.이러한 중체서용의 기본관점은 당시의 시대적, 역사에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현재에 비추어본다면(산업화, 도시화, 서구화에 의한 갖가지 문제점--인간성 상실, 도덕성 추락 등등--을 고려해본다면) 별로 문제될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당시 양무 관료들의 서양에 대한 인지수준은 그렇게 깊지 못했다. 중국 이 인식한 것은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성이지 혁명으로 근대성을 획득한 서양에 대 한 인식은 아니었다.양무 관료들은 서학을 중학에 보완하는 것으로서 이를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서 학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표면만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서구문명 수용을 한 정시켜 버렸다.넷째로 청조말기 관료사회의 부패, 불안정을 들 수 있다.당시 청의 관료사회에는 광범한 부정부패가 저질러지고 있었는데, 양무 관료 역 시 예외는 아니었다.양무 기업은 그 자체가 중요한 자금원이었기 때문에 기업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그들 내부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양무운동의 新산업활동은 그 경영방식을 관 영이거나 관상합판의 형식을 취하였다. 관영 또는 관상합판의 기업경영은 자본축 적이 없거나 영세한 후진국 산업화에 있어서 불가피한 방식이기는 하나 이것은 사 실상 청 대 전기의 관영공업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었다.청 대 전기의 관영 공업은 경영 관리들이 부정, 탈세 등을 일삼았기 때문에 부 패하였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것은 관직을 사적인 영리원천으로 이용하는 가산관 료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양무 관료들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그들이 청조의 관리로 남아 있음으로 써 가산관료의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예외일 수는 없었다.다섯째로 청조말기 권력구조의 경직 때문이다.이들 태평천국란 군공자 출신의 지방 독무들은 군대와 중흥 공신의 훈작을 배경 으로 그들의 권력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 확장된 권력을 가지고서 양무운동에 종 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뿌리를 둔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중앙정부 권력 의 핵심을 장악하기에는 이르지 못했고, 권력이 확대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청조의 가산관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이는 중앙의대화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양 무운동이 통일적, 체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다.여섯 번째로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전통적 관료체제의 전근대성 을 들 수 있다.유자들의 지식은 교양과 작문을 내용으로 하였다. 그런데 그 교양과 작문의 원 천은 고경전 이다.그런데 중국의 유자는 제왕과 밀접한 봉사관계를 가졌고 이와 같은 봉사는 그들 의 유자적 교양을 시험하는 과거에 의해 길이 열리게 된다.근대관료는 근대적 의미의 법에 따라서 행동하는데 대하여 왕조국가의 관리는 전통 또는 전제군주의 자의에 따라 행동한다.근대 관료제는 기능적 분업의 원리에 입각하여 성문법의 규정에 따른 직무체통 을 갖는다. 이 직무체통에 의하면 직무상의 상하관계는 신분과는 무관하다. 그러 나 이에 대해 가산관료제에 있어서는 직무체통은 곧 바로 신분체통을 의미한다.근대 관료의 관장사무는 분업의 원칙에 따라 분파적 전문적이다. 따라서 관리는 일정수준의 전문적 교육을 받아야 했고 그것이 증명되어져야 했다. 이에 대해 가 산관료는 그들의 인문적 교양만을 갖고 또 요구되었기 때문에 전문적 교양을 가질 수 없었고 따라서 '분업의 이익'도 '조직의 힘'도 존재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근대 관료는 기능적 분업의 원리에 입각하여 기술적으로는 능률적, 일 체의 처치를 정확 신속히, 또 이를 일의적으로 처리하고 운영을 질서 있게 지속 적, 계획적으로 함으로써 제 경비를 절약하는데 대하여 가산관료는 전통에 집착하 여 혁신을 기피하고 책임의식이 결여되고 공사를 혼동하여 관직을 사적 영리원천 으로써 경제적 이용의 대상으로 삼아 그러한 가산국가의 현실에서 그들의 상층 구 조적 위치를 보장받음으로써 현상 유지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자이자 청조라는 가 산국가의 관리인 양무 관료 역시 그 예외일 수는 없었다.. 중국 근대화의 실패요인은 근본적으로는 아시아 근대화의 이중적 성격에서 기인 하는 것 같다.아시아 근대화 과정은 서구의 자본주의의 근대성에 대한 상향 과정임과 동시에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성에 대한 다시 말하자면, 중국은 서력동점의 이중성격, 서구의 근대성과 침략성에 대하여 반발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중서 불평등화 요인인 전자에 대해서는 수용 적으로, 주권의 존립을 위협하는 후자에 대해서는 반발적으로, 그러므로 19세기 의 중국 근대화 운동의 성패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 게 마련이었다.그 극복의 과제는 중국 민중 모두에게 부여된 것이었고, 그 추진력을 제공해야 했던 것은 청 정부였다. 청정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인지하고 과감한 변혁을 시도했어야 했다. 그러나 태평천국 운동에서 제기된 봉건적 모순의 극복방안을 제대로 수용하지도 못했고, 양무 운동의 실천과정에서도 강력한 추진력(추진의 지)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의화단 운동이 전개될 때에는 현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선택으로 일관했다.수구파들은 의화단세력과 결합하여 열강에 선전포고를 하지만 서구열강의 화력 앞에 전세가 불리해지자 투항하였다. 이로써 수구파들은 실각하고 다시 양무파 관료가 세를 얻으면서 청조는 때늦은 개혁(新政)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미 혁명 의 서곡은 시작되었으며, 봉건지배체제를 유지하려는 최후의 왕조국가가 더 이 상 버티기는 힘들었다.동아시아의 근대사에서 가장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서구열강이다.만약 서구열강이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지 않고, 동아시아에 침략을 하지 않았 다면, 다시 말해서 동아시아의 근대사에 서구열강이라는 변수가 없었다고 한다 면,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자체적인, 혹은 자연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서구의 근 대에 비견될 만한 역사단계를 이루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역사는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근대사에는 서구열강이라 는 결정적인 변수가 작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최대한 막아내고, 자국의 근대화 흐름을 최대한 발전 육성시키면서 서구열강의 근대문명(문화)를 동아시아 각 국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냐"였다.그 가장 핵심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했던 정부는 봉건적 지배체제에 매달 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