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잘못된 인정 :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대충 봐주는 것은 결코 인정이 아니다. 그렇게 봐주면 그 사람은 아, 대충 해도 넘어가는 구나 생각하고 점점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멀쩡한 사람이 파멸의 길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잘못이 발견되면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인정 이다.-한국 사회에는 인재, 영웅을 키워 주는 풍토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앞서 가는 기미라도 보이면 철저하게 견제하고 방해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갈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일본 사람이 한국에 대해 쓴 책에서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고향을 사랑하고 인정이 많아 지역 감정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고향을 사랑하고 인정이 많은 듯이 보이는 것은 위험이 닥쳤을 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기 위해서, 비빌 언덕을 미리 준비해 두기 위해서라고 본다.-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지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개개인의 각오가 없는 이상 한국은 세계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박세리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든 생각은 그야말로 불 같은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빨리 흥분하고, 너무 쉽게 실망하며, 모든 것을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 특유의 품성을 요즈음에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한국 노인들은 이런 식으로 젊은이들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 먹은 것을 무슨 특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리를 양보한 젊은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당연히 자기 자리라는 듯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말이다. 오히려 양보한 사람이 쭈뼛쭈뼛 미안한 표정이다. 젊은이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노인을 공경하는 것과 노인 스스로 오로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정부 자신부터 법과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철새처럼 시류에 따라 여기저기 떠다니는 사람일수록 높은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런 정부라면 국민에게 법과 질서를 지키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런 소리를 백날 해 봐야 아무도 듣지 않는다.-일본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므로 어디엔가 심신을 기댈 언덕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불행하게도 나라는 기댈 언덕이 되어 주지 못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자기 먼저 도망갈 궁리부터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지연이다 학연이다 혈연이다 따질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따져서 상대방하고 연결되는 공통점을 발견해야 한다. 거기에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전 세계를 통틀어 국회의원 가운데 전과자 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한민국만큼 높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뇌물을 받아 교도소에 갔다 온 사람들이 버젓이 국회의원으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한국에는 자기 돈 가지고 사업하면 바보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그 바탕에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도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괜찮다는 뜻이 깔려 있다. 전형적인 도둑놈 심보다. 바로 그런 심리에서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 는 또 하나의 명언이 탄생한다.-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습성은 여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동안 환경 문제의 상징처럼 떠들썩하던 난지도 이야기는 이제 흙을 덮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도 거론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 코 앞에 2002년 월드컵 주경기장을 건설하기로 결정되어 머지 않아 난지도 일대는 전세계인이 벌이는 축제의 앞마당이 되게 생겼다.
뉴에이지운동의 정의뉴에이지운동은 간단하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다양한 개념군(郡)을 형성한다. 뉴에이지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동방 신비주의, 고대의 밀교적인 전통, 힌두교와 불교 등의 동양 종교, 진화론적 낙관주의, 사라져버린 과거의 문명들, 외계문명, 점성학 등의 용어들이 언급된다. 김영한에 따르면 뉴에이지운동은 서구 사상에 동양적 비교주의 사상을 혼합시키고, 이에 점성학까지 동원하는 신비적 혼합주의이다. 또한 뉴에이지운동은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신비사상을 혼합하여 '과학'이라는 옷을 입힌 "현대판 신화운동"이라고도 한다.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 속에 내포된 공통적인 개념은 뉴에이지운동이 서구문명과 동양신비종교와의 만남으로부터 접촉점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뉴에이지운동은 월터(Walter Martin)의 견해와 같이 "동양의 비술적 신비주의가 서양문명으로의 급증하는 침투를 묘사하는 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힌두교의 브라마(Brahman)와 아트만(Atman) 사상을 차용하는 뉴에이지운동은 요가와 명상 등의 수행을 통해 윤회와 환생으로 거듭되는 카르마(Karma)의 공작을 차단하고, 범아일여(梵兒一如)의 해탈 경지를 모든 인간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그림] 불교의 창시자 고오타마 붓다는 "열반"을 통하여 구원의 과업을 이룬자의 완전한 모범으로 간주된다.주목해야할 것은 비록 뉴에이지운동이 서구인들의 주도하에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지만 기본 사상은 인도종교철학과 고대의 이교적 신비주의 전승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즉, 문화사적 측면에서 볼 때 뉴에이지운동은 그 뿌리를 동양에 두고 있으면서 꽃과 열매는 서구사회의 장을 통해 나타난 일종의 종교와 문화의 통합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대하여 월터마틴(Walter Martine)은 "우리는 여기 뉴에이지에서 영성과 미신, 열광과 흉내의 결합을 본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확실 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뉴에이지운동의 역사뉴에이지운동에 관한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학자들 간의 관점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홍치모에 따르면 새시대운동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사상 그 자체가 혼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문화사적 견지에서 뉴에이지운동은 1960년대의 미국의 히피족들의 반문화운동(反文化運動-Counter - Culture Movement)과 1970년대의 자기성취문화(The Culture of Narcissism)운동을 거쳐 1980년대의 들어서자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새시대운동(New Age Movememt)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먼저 세계종교의 사상을 흡수 하고 있으며 힌두교와 불교의 환생과 윤회 사상, 선불교(仙佛敎)의 절대무(絶對無), 동양의 이원론인 태극사상(太極思想)을 받아 들이고 있으며, 초대교회 안에서 유행하였던 영지주의사상도 흡입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초월사상과 초월운동(Trancendentalism or Trancendental movement)사상적 발전 역시 뉴에이지운동 역사와 병행하고 있다. 특히, 프랜즈 안톤 메스머(Franz Anton Mesmer)의 영성주의와 메스머의 최면술은 이후에 시작된 신지학회운동과 연계되고 흡수되었다. 손종태에 따르면 초자연주의(Trasncendentalism)와 심령술(Spiritism), 신사고(New Thought), 신지학(Theosephy) 등은 뉴에이지 운동이 전격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철학적인 기반을 마련한 몇가지 중요한 사상들이라고 한다.한편, 이양림은 사상적 관점에서 "뉴에이운동의 뿌리는 인본주의"라고 한다. 인본주의는 과학주의, 진화론, 유물론적인 생활철학과 무신론을 골간으로 하는 인본주의자 선언문 Ⅰ(Humanist Manifesto Ⅰ)에 의해서 세상에 공개적으로 표출되었으며, 제2의 인본주의 선언에 이르러 "무신론적 태도가 보다 강경해"졌다고 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혐오를 가중 시켰고 물질문명에서 오는 모순과 부조리에 지친 서양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했다. 이와같은 서구인의 영적 공백은 1960대 대거 미국으로 이주한 힌두교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동양종교의 요가와 명상과 심령술의 유입을 촉발하였던 것이다.이상과 같이 뉴에이지운동의 기원과 관련된 다각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1875년에 러시아 여인 마담 헬레나 브라밭스키(Madame Helena Petrovna Blabatsky, 1831-1891)에 의해 창립된 "신지학회"가 뉴에이지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통념이다. 브라밭스키 이후 신지학회는 제2대회장인 애니 빈산트(Annie Besant, 1847-1933)에 의해 번성해 나갔고, 제3대 회장 앨리스 베일리(Alice Bailey, 1880-1949)에 의해 뉴에이지운동의 기초가 다져지게 되었다.또한 학자들은 마릴린 퍼거슨(Marilyn Ferguson)이 뉴에이지운동을 대중적 개념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녀는 1980년에 출판한 '물병자리의 공모(The Aquarian Conspiracy)'란 책을 통해 비로서 전 세계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으며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새 시대를 만들어야 된다는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을 하였다.한편, 뉴에이지운동의 기원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이 운동이 보이지 않는 영적존재들과 긴밀하고 근본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에 관한 것이다. 신지학회 창설자 바브라스키는 자신의 수호영 '마하-도마 M'의 수호를 받아서 넓고 깊은 지식을 쌓았다고 고백하였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전기를 저술한 메리 루틴스에 따르면 신지학회 제2대 회장 애니 벤산트(Anne Bensant) 역시 중요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비술을 통해 히말라야의 영적 존재들과 접촉한 사실들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티벳의 라마승들의 수행과 삶에 관련된 자서전적 저술로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롭상 람파 역시 세계밖에 존재들로부터 사명에 대한 지시를 받은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리드비터와 크리슈나므르티(Krish Namurti), 스폴딩(Baird T. Spalding), 요가난다(Yogananda), 맥도널드 베인(Mcdonald Vein) 등 뉴에이지운동과 관련된 주도적 인물들이 거의 예외없이 영적 존재들과의 접촉에 관한 사실들을 저서를 통하여 진술하고 있다. 이들이 접촉한 존재들은 초인간적인 존재들이며 그 사상과 의도에 있어서 반기독교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메리 루틴스가 저술한 크리슈 나무르티의 전기에서 애니 벤산트와 리드비터가 접촉했던 히말라야의 영적인 존재들을 '루시퍼를 중심으로 영적 위계를 구성하는 존재'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복음주의자들에 따르면 창세기 3장의 '타락사건'에서 뉴에이지운동의 기원에 관한 모티브를 발견한다. 곧, 뉴에이지운동의 기원은 '여자를 유혹한 뱀'으로서 '우주에서 발생한 최초의 범죄자 사탄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다.뉴에이지운동의 사상1. 신관(神觀)과 우주관(宇宙觀)새시대운동의 우주관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표어는 "All is one, One is all."이다. 이 말은 곧 범신론적인 신관과 자아관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우주는 원래 하나의 존재이며 각 인간은 모두 다 개체로서의 우주임과 동시에 개체적 인간들의 모임이 바로 우주라는 것"이다.뉴에이저에게 있어서 만물의 근원으로서 신은 인격성으로서가 아니라 우주의 근본원리나 힘등으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제인 로버츠(Jane Roberts)에 따르면 신은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이며.... 팽창하는 의식의 심령피라미드이다. 이 의식이 삼라만상과 개인들을 일제히 그리고 동시에 창조한다."고 표현된다.한편, 힌두교의 경전과 요가철학을 수용하는 뉴에이지 운동은 우주만물의 창조적 동인으로서 하나의 통일된 힘을 직관한다. 이 우주적인 힘은 우주의 순수원리, 우주정신, 보편적정신, 우주의 영 혹은 우주 대영(the universal spirit)으로도 불리는 브라마(Bramahn)를 의미한다.뉴에이지적 사고에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주대영에 기원을 둔다. 따라서 우주와 우주 대영 속에 있는 만물들은 그 기원이나 영원성에서 신의 본질이나 절대적 통일체와 일체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범신론적 뉴에이지 사상의 신관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인격적인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물의 근본으로서 만물 속에 내재된 근본적인 원리이며 힘을 의미하고 있다.2. 인간관(人間觀)그러므로 뉴에이지사상은 인간의 본성을 말할 때 신성의 일부분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인간관은 뉴에이지사상의 신관으로부터 비롯된다. 즉,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오직 '우주 대영(Universal Spirit)'이며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우주 대영의 개체적 존재이자 동시에 우주 대영 그 자체이기도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우주적 신성이 내재된다. 인간의 내면에는 우주대영과 본질적으로 같은 '신성의 불꽃(Divine Spark)'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영적 자아(Spiritual Self)는 실제적으로 전지(全知 : omniscience)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여우 셜리맥클래인(Shirley MacLaine)이 공공연하게 무대위에서 "나는 신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신이다."라는 외침 속에 요약되고 있다.
Hacker의 윤리철학입문2003. 10. 6해커를 크래커와 구별할 경우 기본선으로서의 정보에 초점을 두고 해커 윤리를 옹호하는 논변을 구성해 보십시오. 먼저 현대 사회에서 기본선이 될 수 있는 정보와 해커란 무엇인지 정의 내리는 일부터 하십시오.들어가며15세기 한글 창제는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정보의 통로를 여는 일이었다. 흔히 정보 사회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면 정보 사회 이외의 시대에는 정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자원이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선 시대 사회 계층을 구분할 때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문자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음을 알게 된다. 일반 백성들이 글자를 알게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글이 양반들만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한글이 창제 되는 것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으며 실제로 많은 양반들은 훈민정음이 창제 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우려 했던 대로 한글의 발명은 일반 백성들의 인식의 지평을 엄청나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글 창제가 정보의 통로를 여는 일이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런 한글 창제의 정신을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엄청난 정보의 통로를 연 해커들의 윤리 의식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한다.논변해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커와 정보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아야 한다. 어떤 주장을 할 때 용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해커에 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이 작업은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해커’라는 용어가 크래커와 구분 없이 사용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은 이 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해커와 크래커는 특정 시스템에 허락 없이 접근하는 행동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뛰어난 컴퓨터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해커와 크래커의 구분은 그러므로 이들의 특정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통해 가능하다. 해커들은 그들 나름의 윤리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때문에 해커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의를 위해서는 ‘해커 윤리’의 구체적 항목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해커 윤리는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정보는 개방 되어야 하고 공유되어야 한다.’ ‘해커는 자신들의 해킹에 의해서만 평가 되어야 하며 연령 지위 재산과 같은 주관적 기준에 의해 평가 될 수 없다.’ ‘컴퓨터를 통해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 컴퓨터는 모든 생활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 시킬 수 있다.’ 등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윤리들에서 알 수 있듯, 해커들이 해킹을 함에 있어 전제하고 있는 가치들은 ‘공유’ ‘자율성’ 과 같은 것들이다. 컴퓨터에 대한 접근이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자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컴퓨터를 통해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고, 컴퓨터가 모든 생활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항목들은 이들의 컴퓨터에 대한 애정이나 열정을 드러낸다. 해커 윤리에서 특히 주목해 보아야 할 항목은 ‘모든 정보는 개방 되어야 하고 공유되어야 한다.’ 는 부분이다. 해킹은 즐기면서 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개인의 자유와 열정을 매우 가치 있게 생각하는 해커들이 정보의 공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이 공익이라는 명분에 매력을 느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의 자율성 열정 즐거움을 해킹의 기본 마인드로 보는 이들이 ‘정보 공유’에 대해 이야기했음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정보의 공유와 개인의 자유 신장과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정보의 공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기본선이 되는 정보를 무엇으로 정의 할 것이냐 하는 것은 해커에 관한 논의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정보 사회는 정보가 우리 삶의 필수요소, 기본선이 되는 사회이다. 실제로 어떤 정보를 소유하고 소유하지 못하고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경향이 심화되어 결국 물질적 재화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우리의 기본 가치 목록에서 재산과 수입이 빠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정보사회론에서 흔히 주장되고 있는 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보가 어떻게 분배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정보 공유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해커들이 이야기 하는 정보공유가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이런 논리는 그다지 현실적인 것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많다. 각자의 노력이나, 능력이 고려되지 않는 무조건적으로 똑 같은 ‘양’을 분배하는 것이 좋다는 발상이 합리적인 것도 공평한 것도 아님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기본선으로서의 정보를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정보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그러나 과거에 생활이 단순할 때는 가족단위의 정보로 충분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은 그 정도 양의 정보를 갖고는 기본적인 사회 생활도 힘들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보의 양은 내가 보고서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므로 무한히 늘어나는 정보를 모두 머릿속에 집어 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어떤 특정 정보나, 일정정도의 양을 측정해서 그것이 정보의 기본선이다 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수가 많다. 그러므로 기본선이 될 수 있는 정보는 어떤 특정한 정보자체보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 또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정보라고 정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보를 이렇게 정의 한다면 인터넷을 만들어낸 해커 윤리는 이런 정보의 기본선을 보장해 주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임이 드러난다. 인터넷은 정보를 쉽게 운용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의 형성 0345050 양지우(揚智友)주일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비전’에 관한 설교를 하기위해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던 기억이난다. 첫째 예로 여호수와의 가나안 정복여정을 둘째 예로 로마시대의 엄청난 핍박과 고난을 이겨내고 전세계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을 준비했다. 둘째 예로 준비했던 전세계에 대한 복음전파를 곱씹어보며 ‘초기 기독교의 형성’이라는 책을 읽었다. 흔히 기독교를 냉정한 관점으로 바라본 서술을 접하게되면 우리가 시험이라 표현하는 상태에 빠진다고 하는데 놀라운 복음전파의 과정을 알아가며 몸에 소름이 돋고 감동하는 나는 이상한 것일까?‘심하게’말하면 성령이 인도하신 기독교 초기형성의 과정을 신학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는 학생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당연히 이 글의 전체적인 생각은 저자를 따를 것이다.기독교의 초기 형성을 논하려면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의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 역사적 상황은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왕국이 다른 나라에의해 멸망당하고 민족의 상당수가 메소포타미아로 강제 이주된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페르시아가 6세기 말 근동전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이 가능해진다. 귀환이 가능해졋지만 메소포타미아에서 일부의 유대인만 돌아오고 상당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하였기에 메소포타미아는 오랫동안 유대인의 활동지로 남게된다. 4세기말 메소포타미아에 남아있던 유대인에게 알렉산드리아 제국과 셀류커스 왕국은 페르시아와 시리아, 아나톨리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같은 시기에 프톨레미 왕조는 이집트와 키레나이카에 정착할 수 있게 한다. 얼마 후 페르시아 제국과 로마제국이 큰 영토를 통합하여 발전해 나갈 때 두제국은 자신들의 영토안에 유대인들이 새로운 정치적 환경속에서 팽창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독자성을 지키고자 하는 어느 소수집단이 그러하듯 스스로의 전통과 통일성을 잃지 않고자 한다. 그래서 ‘회당’이라는 기구를 두어 교육과 사법을 담당케 하며 결속을 유지해 간다. 이러한 통일성과 광야에서 금욕적인 삶을 살다가 대단한 명성을 얻게되고 그 명성을 따라 찾아온 인물들에게 하나님의 임박한 도래를 외친 인물이다. 그는 ‘회개하라’라고 설파했으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의 징표로 세례를 허락했다.그의 회개의 개념은 그 당시 많은 사람의 의식을 깨웠을 것이다. 이 하나님의 용서라는 개념의 행위들은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베풀어진 만큼 그들 내부의 영적 분열울 사라지게 했다.또 하나의 화합의 시도는 바로 예수다. 그는 믿을만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역사적 존재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예수의 전기 재구성은 불가능하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받았다는 것에 유의할 때 요한의 생각에 예수가 동의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몇몇 제자들과 함께 갈라져 독자적 세례운동을 펼친다. 요한이 체포되자 예수는 광범위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포에 전력하게 된다. 요한의 사상에서 이어받은 부분도 쇄신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답하기가 곤란한데 이유는 말씀이 워낙 풍부하고 전승과정에서 왜곡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의 청중에는 모든 사회계층과 모든 종교분파가 존재했다. 그의 설교는 하나님의 오심과 절박한 호소의 회개의 되풀이로 이어졌다. 그의 설교에는 바뀐내용도 존재하였고 우리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버린 내용도 존재하였다.예수는 분파들로부터 거리가 먼 갈릴리 시골하층민들 가운데 계셨다. 조직된 집단들과 당국에 대항할 용의를가진 예수를 움직인 것은 자신의 사명과 하나님과의 관계, 매우 강한 자의식이었다. 모든 예수의 사상과 언행들은 유대전통에서 초월적인 개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활동을 중단시킨 파국을 초래했다. 그의 명성은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게 했고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했다. 그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요한과 그가 쌓아올린 성은 무너지고 말았다.예수의 죽음은 모든 것의 ‘와해’라는 결과를 낳았다. 제자들은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열성은 식어져 버렸다. 그러던 상황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들에게 죽었던 해 복음은 전파되었으며 예루살렘 밖 여러지역에 공동체가 형성되게 된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스스로를 단순한 종교이상으로 생각하고 외부 공동체들에게 영적 권위를 행사하며 확인과 검증을 한다.이러한 복음전파 과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비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공동체에 정착하는데 이들은 ‘헬레니스트-그리스말을 하는 사람들’로 불려지는 자들로 교리적으로 주류유대인과 다른견해를 가지고 있어 일종의 분열을 야기한다. 그들은 초반에는 희생제사(권력자)에 일부가 참여하는 등 타협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후에 스데반과 그의 추종자들은 우상숭배라 생각하고 갈등을 표출하게 된다. 스데반 박해사건이 일어나고 일곱지도자들은 밖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나중에 도피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된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예수가 메시아임을 강력하게 설교했다. 그 들의 선교활동 중 눈에 뛰는 인물은 일곱지도자 중 두 번째인 빌립이라는 자다. 그는 여러 이적을 행했으며 설교는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빌립의 위대한 선교활동의 서술이 있는가 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시각이 반영된 비판의 서술도 있다. 바로 세례를 받았음에도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빌립과 예루살렘 교회의 다른 점은 빌립이 성령을 받지 않은 비유대인들에게 자유롭게 세례를 줄 수 잇다고 생각한 반면 예루살렘 교회는 비유대인의 경우에는 성령을 받은 경우에만 세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뒤따르는 빌립에 대한 이야기는 빌립의 무책임함을 비판한다. 이는 빌립, 다시말해 헬레니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들에게 호의적일 수도 비판적일 수도 있단 것을 보여준다.빌립이 거쳐간 모든 도시에 사는 주민은 대다수가 비유대인이고 따라서 예루살렘 산헤드린의 관할이 아니다. 이런 곳에 빌립은 가는 곳마다 공동체를 세운 듯 하다. 대표적인 예로 빌립이 있듯 스데반의 박해이후 헬라파들은 베게네와 키프로스와 시리아의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파한다. 회당의 범주를 벗어난 곳이 안디옥이란 것이 알려진다. 헬라인, 아니면 적어도 헬라식으로 사는 러 굴곡을 거쳐 최초공동체는 이제 외부적인 안정의 위기를 맞는다. 헤롯 아그립바가 박해를 가해 위기를 조성했고 이는 공동체의 성격변화에 촉매역할을 했다. 최초 기독교 공동체는 평범한 제도 가까운 교회생활로 성격이 바뀐다.이렇게 공동체의 구조와 성격에 변화가 있을 즈음 공동체나 교회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권위에 대한 우열에 변화가 생긴다. 그 사건은 로마의 도움을 받은 헤롯 아그립바가 성전에 제국의 동상을 세우는 것을 무마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일로 제사장들과 친밀한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제사장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헤롯은 제사장의 사주를 듣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를 구금하게 된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하게 되고 목숨을 부지하지만 그의 권위는 잃게된다. 그 권위를 야고보가 이어받게 되고 야고보는 교회를 장악하게 된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이며 열린 태도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야고보는 미묘한 상황에서는 타협을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이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때도 적용된다. 그러나 초기에 타협의 정신에 불구하고 야고보의 이끈 방식은 엄격했다 한다. 예루살렘의 권위를 팔레스타인과 디아스포라에게 엄격히 행사했다. 야고보와 추종자들은 단일성의 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후에 바울과 바울이 세운 교회의 대표자들이 야고보를 찾아왔을때와 로마에게 바울이 끌려갔을 때 보이는 야고보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었는데 이는 야고보의 단일성을 해치는 자들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태도나 정책은 기독교 안에서의 비유대인의 양적증가와 비중증가로 인해 효력이 상실된다. 금지조항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자 그것들은 도덕적 교훈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야고보가 산헤드린의 판결후에 돌로 쳐죽임을 당한다. 제사장이나 그의 인기를 두려워한 바리새파와 서기관의 짓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들은 흩어졌는데 일부는 젤롯파에 가담하고 지도부는 펠라로 도피하고 일부는 멀리 피난하였다.초대교회의 역어냈지만 그 제안에 따르자면 진정한 화합을 이룰 수 없다고 여긴 바울의 심한 분노를 야기했다. 이로써 바나바와의 한 팀은 결렬되고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실현하기위해 새로운 길을 나서야하는 인생의 국면에 다다른다.이 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한 새로운 걸음을 시도한다. 이제 그의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진이 시작된 것이다. 이 전진은 그의 선교적 기반을 재정비함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선교의 결과로 탄생된 갈라디아 남부지방 교회들을 서신으로 깨운다. 그것을 기반으로 마케도니아로 향하게 된다. 이 행보는 단순히 선교활동의 행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로마라는 비유대인 선교에 있어 최고의 거점지역을 점하고자 했던 바울의 전략적인 행보였다. 로마로 인해 유대인 선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균형을 이루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를 갈라디아 남부교회와 로마의 중간거점으로 사용하였다. 마케도니아에 도착하여 첫 선교지로 먼저 빌립보를 택했다. 그러나 빌립보는 그들을 원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로마이기에 여정을 계속한다. 바울에게 있어 이탈리아로 향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중간거점이 될 데살로니가로 갔다.그러나 그 지역안의 회당지도자들의 압력으로 중요한 지점이지만 큰길에서는 벗어난 베뢰아로 갔고 그곳에서 데살로니가의 회당지도자들의 반대에 밀려 아테네로 갔다. 이렇게 마케도니아 활동이 일단락되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마케도니아는 독자적 선교 활동의 첫 후원자였던 갈라디아 남부보다 더 중요한 선교 기지가 되었다.마케도니아와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가야에 도착한 바울은 오래 머무르게 되면 로마로의 행보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생각한 대도시 아테네에 그는 로마대신의 거점을 만들 생각을 하다가 가담하는 사람을 많이 얻지 못하여 포기하고 고린도로 출발했다. 지적 중심지 아테네에서의 참패를 기억하며 고린도에 도착한 그는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과 협력하였고 고린도에서의 자신의 사역을 건실하게 펼쳐간다. 회당의 지도자들의 시기와 질투가 극에 달것이다.
1. 세계화의 개념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한국에서도 익숙하게 사용되는‘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보다 고차원적인 개념이다. 통합도의 차이에서 이 둘의 차이를 정의할 수 있는데 국제화가 국가간의 관계를 강조한다면 세계화는 국가간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초국가적인 개념이다. 국제화에는 경쟁이 존재하지만 세계화에는 특정국가를 향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는 자본, 노동, 상품, 서비스, 기술, 정보등이 주권과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 조직, 교환, 조정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여러 행위자간 교류와 교역이 증대되는 반면, 기존의 주권국가의 위상을 쇠퇴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세계화는 미제국주의 주도의 경제 정책의 확산, 개도국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는 조류이기 때문에 반대 여론도 있다. 또한 국외, 대외적인 소득격차-GNP등-은 줄어들었지만 국내적인 소득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는 더 가난하게 소수의 나라가 부를 독점하는 체제가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국제연합은 전쟁억제와 평화유지에 큰 성과를 남겼다.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 이바지하였다. 초기 국제연합은 미국·소련 등 강대국들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기구로 인식되었으나, 1950년대 이후 제3세계 국가들의 대거 가입과 단합으로 차츰 성격이 변모되었다.그러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빈번한 거부권 행사로 일부 기능이 마비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의결이 지연되는 등 폐단이 나타나기도 하여 군사적 분쟁이나 국제통화문제 등 중요한 문제들이 국제연합 밖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그러나 국제연합의 한계성도 종종 지적된다. 코소보전쟁이 국제연합의 한계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이 말해주듯이 인도적 개입을 이유로 또다른 형태의 무력사용을 정당화하였기 때문이다. 평화 후의 부흥과 개발원조에는 평화유지활동기구가 많은 공헌을 하지만, 내란에 국제연합이 제55차 총회를 '밀레니엄 총회'라 이름하고 NGO(국제비정부기구)밀레니엄 포럼을 기획하는 등 21세기의 국제연합은 더 많은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2. 다보스 회의 & 국제 사회 포럼스위스 다보스 회의(the World Economy Forum)는 경제계 최고의 사람들이 초대되는 민간회의로써 이번이 제 33차 회의이다. 다보스 회의에서는 세계 경제의 방향을 예측 할 수 있다.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회의(the World Social Forum)는 다보스 회의와 같은 시기에 개최된다. 개도국들의 입장을 모으고 다보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외채에 관한 국제 민증법정이다. 선진국의 관심 환기하고 행동을 유발한다.3. UN 조직 (주요 기구 몇 개)주요기구총회를 비롯하여 사무국·안전보장이사회·경제사회이사회·신탁통치이사회·국제사법재판소의 6개 주요 기구와 그 산하에 많은 보조기구와 16개 전문기구가 있다.[총회(General Assembly)]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국제연합의 최고기관이다. 각국은 5명의 대표를 파견할 수 있지만, 표결 때는 1국 1표가 원칙이다. 중요 안건은 투표국 2/3 이상의 찬성으로, 일반안건과 절차 문제는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한다. 총회는 매년 1회 9월 셋째 화요일에 시작되며, 안전보장이사회 가맹국의 과반수의 찬성에 의한 특별총회도 개최한다. 특별총회는 이제까지 22회 개최되었는데, 1997년에는 환경특별총회가 열렸다.국제연합의 모든 활동과 산하기구에 대해 심의·권고할 수 있는 권한과 재정문제, 신규회원국의 가입문제, 각종 이사국의 선출 등에 대한 권한을 가진다. 또한 경제사회이사회의 회원국 전체와 안전보장이사회 및 신탁통치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에 대한 선출권을 가진다. 안전보장이사회와 함께 사무총장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사를 선출한다.원래 세계평화유지의 일차적 책임은 총회가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에 있었다. 그러나 강대국의 빈번한 거부권 행사로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이 마비되자 긴급특별총회를 소집하여 1950년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안(l)] 국제평화와 안전유지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진다. 미국·영국·러시아연방·중국·프랑스의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주권평등에 기초한 1국 1표주의의 원리에 위배되지만, 국제연합헌장의 규정상 인정된다. 기권이나 결석은 거부권 행사로 인정되지 않는다.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제분쟁에 대해 정황을 조사할 수 있고 평화적 해결을 권고한다. 그러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침략국가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인정한 국가에 대해 제재를 할 수 있다. 또 각국에 군비제한을 권고할 수 있다. 세계의 인적 및 경제적 자원을 군비로 전용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의 확립 및 유지를 위하여, 군비규제 체제의 확립에 관한 유엔회원국에 제출될 계획을 군사참모위원회의 원조를 받아 작성한다.절차상의 문제는 9개국의 동의로 의결되나 실제문제는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9개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분쟁 당사국은 기권해야 한다. 이사국 대표단이 유엔 본부에 상주해 있다. 1948년부터 53년간 평화유지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보조기구로 CANH(가입심사위원회)·MSC(군사참모위원회)·DC(군축위원회) 등이 있다.[경제사회이사회(Economic and Social Council)] 경제·사회·문화·인권 등의 여러 문제를 다룬다. 총회의 2/3 이상 표를 얻어 선출된 54개 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기는 3년이고 재선이 가능하다. 해마다 2번 이상 회합을 갖는다. 이사국은 1인의 대표를 가진다. 아시아 11개국, 아프리카 14개국, 중남미 10개국, 서유럽 13개국, 동유럽 6개국이다.경제사회이사회는 경제·사회·문화·교육· 보건 및 관련 국제 사항에 관한 연구 및 보고를 하거나 발의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항에 관하여 총회, 유엔회원국 및 관계전문기구에 권고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존중과 준수를 촉진하기 위하여 권고할 수 있다.모든 결정은 출석하여 투표하는 이사국의 과반수에 의한다. 2차 세계대전 결과 적국으로부터 분리된 지역, 시정국(施政國)이 자발적으로 신탁통치 받기로 결정한 지역에 대하여 통치한다. 목적은 신탁통치지역의 행정을 감독하고 그 지역의 자치와 독립을 위하여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있다.당초 신탁통치국과 신탁통치를 하지 않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국제연합총회에서 선출된 비신탁통치국으로 구성되었으나, 나중에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만 독점하도록 개편되었다. 국제연합 창설 초기에는 신탁통치지역이 아프리카 및 태평양에 있는 11개 지역이었으나, 1994년 10월 마지막 신탁통치지역인 팔라우가 미국으로부터 독립함에 따라 신탁통치이사회는 사명을 다하고 해산되었다.[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세계법원'이라고도 불리는 국제연합의 사법기관이다. 국제연맹 때 설치된 PCIJ(상설사법재판소)의 후신으로, 국제연합헌장과는 별도로 '국제사법재판소규정'을 두었으며, 이것을 기준으로 활동한다. 15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9년이고 중임할 수 있다. 독립성 보장을 위해 국제연합본부에서 떨어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있다.이해 당사국이 위탁한 모든 사건, 헌장과 발효중인 조약, 협정에 명시된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며, 조약·국제관습·일반법리를 적용한다. 판결에 구속력은 없으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2000년 현재 188개국이 가입하였다.[각종 전문기구(Specialized Agencies)] 각 전문분야에서 정부간 협력을 증진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제연합 산하기관은 아니지만 경제사회이사회와 협정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ILO(국제노동기구)·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WHO(세계보건기구)·IMF(국제통화기금)·IBRD(국제부흥개발은행)·IFC(국제금융공사)·IDA(국제개발협회)·ICAO(국제민간항공기구)·UPU(만국우편연합)·IMO(국제해사기구)·WMO(세계기상기구)·ITU(국제전기통신연합)·W이 있다.4. UN 설립 과정과 배경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은 전후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검토하였으며, 국제연맹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일반적이고 새로운 범세계적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구상을 하였다.1941년 8월 14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와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은 대서양헌장을 통해 종전 후 새로운 세계평화의 정착을 희망하였으며, 1942년 1월 1일에는 추축국에 대항하여 싸웠던 26개국 대표들이 워싱턴에서 연합국선언(Declaration by United Nations)에 서명하였다.이 선언에서 대서양헌장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목적과 원칙에 따른 공동행동을 재확인하고 국제연합 창설을 위한 연합국의 공동노력을 천명하였으며, 루스벨트에 의해 제안된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라는 용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1943년 10월 30일 모스크바 외상회의에서 미국·영국·중국·소련 4개국은 일반적 국제기구 설립의 필요성에 합의한 후, 1944년 8~10월까지 워싱턴 교외에서 열린 덤바턴오크스회의에서 '일반적 국제기구 설립에 관한 제안'을 채택하여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 및 구성 등에 합의하였으며, 전문 12장의 국제연합헌장 초안을 마련하였다.1945년 2월의 얄타회담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표결방식 등 미결사항이 모두 타결되고, 1945년 4월 25일 50개국 대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여 '국제기구에 대한 연합국회의'를 개최하고, 그해 6월 25일에 '국제연합헌장'을 채택하였으며, 다음날 51개국이 서명하였다. 그해 10월 24일 서명국의 과반수가 비준하였다. 총회는 국제연합헌장이 발효된 10월 24일을 'UN Day & QUOT'로 정하고, 세계 각국이 기념일을 준수하도록 촉구하였다.5. 한국의 대 유엔 외교 약사- 한국은 1948년 이승만 박사가 처음 특사를 보냈다.- 유엔 총회에서 매년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