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자본주의 [ 賤民資本主義 , Pariakapitalismus ]독일의 사회학자 M.베버가 사용한 사회학상의 용어로, 그의 영향 아래 사회경제사의 연구 등에도 어느 정도 원용(援用)되었다. 베버가 이 용어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유럽경제사에서 상인 ·금융업자로서 특이한 지위를 차지해왔던 유대인들의 생활상이었다. 유대인의 경우 고대 말기 이후부터 그들 종교의 독특하고도 강렬한 성질로 인하여 외계에 대하여 스스로를 천민민족으로 분리시켜 거의 상업 ·금융업만을 영위하는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상업이나 고리대금에 갖가지 사회적 제한을 가했던 중세봉건시대에는 반대로 여기에 기생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처럼 천민자본주의란 비합리적이며 종교나 도덕적으로 비천하게 여겼던 생산활동을 의미한다. ‘근대 자본주의’ 이전의 영리활동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두 유대인의 상업활동과 공통되는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어느덧 한국사회에도 자본주의가 도래한지가 한 세기가 더 흘렀다. 다른 서유럽이나 서양 보다는 역사는 많이 뒤쳐지지만 자본주의의 파급도나 그 여파는 다른 여타의 나라보다도 빠르고 강하게 작용했다.급속한 자본주의의 파급으로 인해 이제 빈부의 격차는 더 이상 어쩔수 없는 현상으로 밖에 받아들여지고 있고 무조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물질만능주의가 사람들의 의식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심지어 어느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돈이면 어떤 죄를 범해도 돈으로써 그 죄가 해결될수 있다는 사람들이 더 많으며 돈이 법보다 우선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과연 그 무엇이 계기가 되어 지금 이렇게 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수가 없다.과거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6.25로 인해 자본주의가 절름발이 형식으로 밖에 싹트지 못했다.자본주의의 맹아가 점점 싹을 틔울 무렵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라는 핍박과 억압에 눌려 반세기를 보냈다.해방이된 이후 다시 짓밟혔던 자본주의를 싹틔우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6.25라는 민족분단의 않고 그 자신들의 위력을 유지 해온 것으로부터 찾고 있다.제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층의 비호아래 더 커졌다고 할수있을 것이다.통치권자가 바로 친일세력인데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로 설수 있겠는가.우리의 천민자본주의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한다.정의를 외치기가 껄끄러운 세력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배금주의로 유도했던 것이다.돈이면 다 되는 세상. 국민들은 역사니 정의니 따지지 말고 오로지 열심히 일해서 잘 살면 된다는 사상이다.그 지배세력들이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는지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볼 수가 있다.또 그들이 대충 어떤 세력인지도 말이다.우리가 천박한 국민이 된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아무리 고귀한 사상도 그들은 쉽게 농락하고 그 가치를 하락시킨다.그들이 내세우는 가장 유력한 구호,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동조하고 현혹된다.그런데 실제로 국민들이 열심히 일한 댓가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돌아간다.서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배층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가끔 혼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극소수이자, 그들이 내주는 약간의 단물에 지나지 않는다.정의가 올바로 서고,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제대로 바로잡힌다면 그 지배층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그들에게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우리가 숭배하는 자본주의를 진작에 경험한 선진국들(여기선 미국도 천민자본주의의 국가이기 때문에 제외합니다)은 무모한 자본주의의 결말을 두려워하고 있다.자본주의가 가장 내세우는 시장원리도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된다고 보기 때문에 일정부분은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것이다.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지속적인 발전이다.현재 자본주의의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언젠가는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그것을 위해 그들은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곳이 실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나라가 영락없이 그것이다.과연 현재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혹자들은 현재의 한국을 천민자본주의 사회라고들 한다.또 혹자들은 한국의 자본주의는 망했다고들 한다.경제 개발계획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하며 ‘재벌’ 이라는 새로운 경제주체를 탄생시키기도 했던 한국의 자본주의 실험은 역설적으로 변신을 두려워한 공룡 ‘재벌’ 때문에 실패로 귀결될 운명을 맞은 것이다.그것이 1997년 12월3일. 한국의 자본주의 실험은 약 반세기만에 실패로 막을내렸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기초적인 질서부터 IMF로부터다시 배워야 하기에 이르렀다. 통화관리와 물가 성장률에 이르기까지 새로운경제질서를 확립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IMF를 빨리 졸업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자본주의 질서를 터득하고 이를 우리 힘으로 시장체제속에 구현해낼 수있느냐 하는 문제가 관건이 돼야 한다. 얼렁뚱땅 국민들의 근면과 절약과 피땀어린 노력에 힘입어 1년반내에 벗어난다해도 지금까지 우리를구속해온 경제체질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12.3 경제위기는 다시 오고 말 것이기때문이다.IMF이후 세계의 여론은 한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안정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고 있다.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가 못한 것 같다.소위 재벌이라는 기업체들은 자기들 주머니 부풀리기에만 혈안이 돼있고 정치권도 자기들 편 만들기에만 급급하고 정부도 이런 사이에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한 마디로 현 한국사회는 총체적인 난국상태라고 할수있다.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는 천민자본주의의 경향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알아보자.얼마 전부터 한국에는 로또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예전에도 복권 이란게 존재 했었는데 왜 이 시점에서 로또라는 복권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사실 로또의 취지는 복권의 판매액 반만을 당첨자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국가의 공익사업에 쓰겠다는 취지였다.하지만 그 취지와는 달리 로또란 하나의 사행심을 조장하는 물질로 전락하고 말았다.한 예로 직장인들이지만 지금처럼 한탕주위가 맹위를 떨친적도 없었다.일단 당첨되고 보자는 식으로 많은 돈을 투자하고 보자는 식의 사 행위 조장은 국민들에게나 나라전체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현 졍제위기로 보아서는 국민들 모두 열심히 일해도 이 난국을 타개할수 있을지 의문인데 정부와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손을 잡고 사행심을 조작 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언론에서도 은근히 로또 기사를 실어서 사행심을 조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또 한 예로는 강원도에 있는 카지노 랜드를 들 수 있다.몇 해 전부터 지방자치주의가 되면서 각 지방의 자치주들은 그 지방의 살림을 운영할 모자란 세금을 충당할 방법을 세우면서 각지자체 들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시작했다.강원도에서 시작한 게 바로 강원랜드 라는 한국 최대의 카지노 랜드이다.다른 관광거리로도 세입을 충분히 충당할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하필 많은 논란과 문제가 되고 있는 카지노 였을까.모두 알다시피 강원도는 천혜의 자원과 관광명소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그런 천혜의 자연 자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쉽게 돈을 벌수 있고 세금을 충당할수 있는 카지노를 세운 것이다.카지노가 생긴 후의 강원도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카지노가 위치해 있는 정선에는 예전에는 없던 전당포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고 한다.또 예전에는 없던 노숙자도 생겨나고 범죄율도 급증 했다고 한다.일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 어두컴컴한 카지노장 안에서 몇날 며칠을 보내고 또 가지고온 돈을 모두 잃으면 집에도 가지 못하고 노숙자신세로 전전긍긍하고 또 도박중독에 걸리는 사람도 허다 하다고 한다.실례로 카지노랜드 안에 사람들을 조사해본 결과 10명 중에 3명이 도박중독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또 도박자 들 중의 70%가 대졸이상의 고 학력자들이라고 한다.이렇듯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가 뒷수습에 나서지만 역시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광고도 천민자본주의를 부추기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나는 부자아빠를 꿈꾼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사는 하고 있다.홈쇼핑광고 에서는 외국유학 상품이라는 것까지 나와서 광고 속에서의 천민자본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신용카드불량자가 속출한 가운데에도 광고속의 신용카드는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신용카드 하나면 모든 게 다 되는 것처럼 조장하고 있다.요즈음에는 학생들도 신용카드 하나쯤은 다들 가지고 다닌다고들 한다.그 사용요금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납부를 해준다고 한다.돈을 벌어서 그 돈의 소중함을 알기도 전에 카드 사용하는 맛을 본 우리들이 과연 나중에 돈을 벌어서도 그 돈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지 의문이다.나 역시 카드를 몇 번 사용해봤는데 일단 사용할 때에는 내 돈이 아닌 것만 같은 생각 때문에 돈을 무분별하게 남용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또 다른 천민자본주의의 현상은 투기나, 의도적인 땅값 상승을 부추기는 무리들이다.돈이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해서 자기 집 한번 마련해보겠다는 서민들을 울리는 투기야 말로 천민자본주의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정부에서도 수 년 동안 투기 억제 정책을 세워 왔지만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의 투기 열풍은 그 열기를 점점 더해왔다.강남의 아파트 한 평의 값이 몇 천 만원 이니 어디 땅을 사두면 나중에 몇 배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얘기들이 그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정보가 되어왔다.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전국 평균 98.3%에 이르고, 주택 사정이 나쁜 것으로 알려진 서울특별시의 경우에도 주택보급률은 79.8%에 달한다고 합니다. 흔히들 경험하는 일이지만, 통계 수치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주택보급률 통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택보급률은 일반가구 수)를 현존 주택수로 나눈 수치를 백분율로 표시한 것인데, 주택 수효는 거주단위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소유단위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는 주거용 오피스텔, 상가주택 등은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고, 구분소유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다가구주택 등은 가구 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의 주택으로 간주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한다.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 계층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는 1960년대부터 급속히 진행된 근대화, 산업화, 그리고 도시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1960년대부터 국가주도에 의한 강력한 근대화와 경제성장의 추진은 한국사회를 신흥공업국가의 모습으로 완전히 변모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시로의 인구유입과 공업노동자의 폭발적인 수적 팽창을 야기하였고 노동자의 소득향상은 물론 비교적 큰 구매력과 높은 정치의식을 가진 중산층을 확대한 결과를 낳았다.한국사회의 계층구조 변화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직업구조의 변화이다. 직업구성에서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종사자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생산직, 사무직은 물론 판매직, 전문직, 관리직 등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종사자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직업분화 및 전문화가 가속화되어 왔다. 이러한 산업구조와 직업구조의 변화는 한국사회의 계급, 계층의 크기, 종류 그리고 계급구조의 변화추이에 대한 분석에서 학자들간에 시각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사회의 계급구조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라는 양대 계급 중심으로 분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중간계급, 계층이 꾸준히 확대되는 변화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전문기술직, 관리직 및 사무직 종사자를 포함하는 신중간계급의 양적 증대는 한국의 자본축적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아울러 교육받은 인력의 대량공급이라는 공급적 측면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계급구조의 이러한 변화로부터 자본주의적 사회발전의 가속화로 인한 계급결정화현상이 보다 뚜렷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지연 학연과 같은 문화적 요소들이 아직도 구조적 원리로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태도 및 행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계급개념의 유용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국사회를 중간계급사회 또는 중산층사회로 규정하기보다는 그러한 사회로 진행 중에 있는 과도기적 사회로 보는 것이 현 시점에서 적절한 것 같다.한국사회의 이러한 계급, 계층구조의 형태는 사 따라 임금 노동자의 수도 급속히 늘어나게 되었다.1960년대 초만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농업국이어서 전체 경제활동의 8할이 농민 이었고 5% 정도만이 제조업등 2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진전으로 1970년대에는 농민이 전체 노동력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제조업을 포함한 2차 산업인구는 14.3% 로 증가하였다. 1990년에 이르면서 농.림.어업 종사자는 17.9%로 감소하고, 반면에 광공업 노동력은 27.6%로 증가한다.이 기간중에 3차 산업의 인구도 증가하여 1970년에는 35.3%, 1980년에는 43.5%, 그리고 1990년에는 54.5% 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1990년에도 이와같은 추세가 계속되어, 1990년대 말이 되면 농.림.어업 등 1차 산업 종사인구는 1할 남짓으로 감소하고, 3차 산업인구는 7할 가까이로 크게 늘어난다.이렇게 산업구조가 변함에 따라 임금 노동자의 수는 괄목할 만하게 증가하였다.한국의 임금노동자화 현상은 다른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볼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첫째, 한국의 임노동자의 증가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지난 30여 년간 한국 임노동자의 증가폭은 19세기 서구 산업사회들이 한 세기 동안 경험한 변화보다 큰 것이었다.둘째, 한국의 임금노동자화는 생산직 임금노동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동시에 거의 같은 속도로 증가시켰다. 서구의 산업화 과정 초기에는 생산직 노동자가 대량으로 증가하고 20세기 초에 와서야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후발 산업화와 독점적 자본주의화 때문에 산업화 초기부터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셋째, 한국의 임노동자들은 지역적으로 농촌보다는 도시, 그리고 도시 중에도 일부지역에 집결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 이유는 제조업 공장들이 대도시에 편재해 왔고, 농촌의 공업화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과 같은 나라에서는 공업이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에 분산해서 발달했기 때문에 노동력의 농촌 유출을 완화 시키고 연대 원칙적이며 분석적인 것이다. 실제 현실에 있어서는 이런 요소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한국의 재벌은 전형적인 독점자본가이지만 그 영역은 산업자본, 상업자본, 금융자본의 전 영역에 복잡하게 겹쳐져 있으며, 필요하다면 분사, 계열분리 등을 통해 대자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기업과 중소자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기업들을 복합적으로 소유하고 경영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석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이러한 자본 구분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단계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체로 초기 산업화단계에서는 투자 자본이 상업자본이나 원시적 금융자본(고리대자본)으로부터 조달되며, 따라서 산업자본은 상업자본보다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이 단계를 상업자본주의 단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상업자본보다는 거대 산업자본의 힘이 훨씬 지배적인 것이 된다. 이 단계를 산업자본주의 단계라고 한다. 산업자본주의 단계의 후반이 되면 투자 자본의 규모가 방대해지며, 따라서 은행 등 금융자본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산업자본은 자신이 직접 조달할 수 있는 투자자본(이윤의 일부를 축적해서 조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을 은행 등 금융자본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으므로, 금융자본가지를 직접 장악하여 자신이 독점적으로 사회적 자본을 조달하려고 애쓴다. 이에 성공한 자본, 즉 금융자본에 대한 지배력가지를 가지게 된 거대 산업자본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단계를 독점자본주의 단계 혹은 금융자본주의 단계라고 부르기도 한다.2) 구중간계급위의 표에서 보듯이 구중간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직접 생산노동에 종사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계급이다. 가장 전형적인 구중간계급은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자신이 소유한 농기구로 직접 농사를 짓는 자영농민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자본주의적 계급분해의 원천지였다. 자본주의가 일정하게 진행되면 농촌의 구중간계급은 그 수가 대폭 줄관리자' 정도로 정의되는 이 하한선은 다소 유동적이어서, 예컨대 생산직과 사무관리직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매우 컸던 산업자본주의 단계에서는 기업 내에서는 과장급 이상의 사무관리직 모두, 그리고 은행원이나 초중등학교 학교 교사 등 소위 '화이트칼라' 직종에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계급과는 구분되는 경향이 있었다.신중간계급의 하한선이 불분명한, 즉 노동자계급과 신중간계급의 경계가 불분명한 가장 큰 이유는 이 두 계급이 모두 하나의 계급, 즉 넓은 의미에서 근대적 임금노동자계급에 속하기 때문이다. 두 계급은 모두 광의의 노동자계급이며, 그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변화, 즉 산업구조의 변화와 노동과정의 변화에 따라 분화된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경제의 산업구조, 노동과정의 변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양자는 다시 하나의 계급으로 합류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예컨대 과거 은행원은 하급직이라도 모두 안정된 직장에서 전문적 업무에 종사하는 고급의 정신노동자로 존재했다. 생산직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노동자계급과는 실제로 일의 성격, 보수, 사회적 대우, 그리고 생각과 의식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의 평균적 학력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그러면서 사무자동화 등이 진행되어 은행업무의 대부분이 단순직종으로 전환해감에 따라 은행원 중 노동자계급과 실질적인 차이를 가질 정도로 사회적 상층이라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 부분에서도 노동운동이 발전하기 시작하고, 노동운동 과정에서 양자가 하나로 결합하거나 연대하는 양상이 강화되기도 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간호사, 교사 등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한국의 대부분의 생산직 노동조합들도 기업 내에서 사무관리직 조합원의 범위를 과거에는 '계장' 정도로 한정했으나 최근에는 점차 '과장'급 혹은 그 이상으로까지 확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무관리직, 전문직, 전문기술직들만 집중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은행, 병원, 기술연구소, 초중등학교, 대학 위치에서 서로 대립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폐절하지 않는 이상, 양자는 서로 하나로 결합됨으로써 비로소 존속할 수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서로 대립하는 모순관계에 놓여 있다('적과의 동침'). 역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는 한 양자간의 대립도 계속될 것이다.산업화 초기단계의 노동자계급은 그 구성과 성격이 대체로 단순하고 단일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농촌 출신이었으며, 가진 재산이 없어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아야 먹고 살 수 있는 무산자(프롤레타리아트)의 주된 부분이었다. 농민이나 도시 빈민과는 달리 이들은 고용되어 집단적으로 한 장소(공장)에서 종일토록 노동하고 있었으므로,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고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과 집단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었다. 노동과정 속에서 이들은 서로 역할을 나누어 협조하고 있었고, 노동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자와는 공통적으로 함께 대립하고 있었다. 임금 인상은 모두의 이익이었고, 노동조건의 개선도 모두의 이익이었다. 자본가와 개별노동자와의 관계는 힘관계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는 일방적 종속관계였으나, 노동자들이 힘을 합치면 자본가에 대항하여 공통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음을 빠른 속도로 깨달을 수 있었다.노동자들의 노동은 과거 전자본주의 사회에서와는 달리 어떠한 외부적 강제도 없는 자발적인 노동이어야 했다. 그들의 노동을 감시하는 무장 군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의 이름으로, '하늘의 뜻'으로 힘들게 노동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요 숙명이라고 설득당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아닌 그들로서는, 그리고 농촌에 자기 땅과 텃밭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 노동자들은 고용되어 임금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방도가 없는 존재였다. '경제외적 강제'는 사라졌으나, '경제적 강제'는 그들을 자본주의적 노동 속에 얽어매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족쇄가 되었다. 이 족쇄를 부수어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의 운명의 개선은 그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얼마나 더 단단히 단결하여 함께 요구하고 함께 싸우는가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사회학자.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은 베버, 뒤르켐, 마르크스 등의 고전 텍스트의 정독에 기초하여 현상학, 구조주의, 언어학 등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수용.◈'성찰적 사회학' - '사회학의 사회학'.그의 사회이론은 기존 학문의 전통적 패러다임에 대한 인식론적 단절의 입장과 자신의 이론에 대한 부단한 인식적 비판의 연구태도의 의미에서 비판적 성격을 갖고 있다.◈부르디외 이론의 특색 - 객관적인 것, 주관적인 것 & 물질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 &구조적인 것, 자발적인 것 등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두차원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교환하는 과정속에서 계급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음.◈부르디외 계급이론의 핵심적 개념◈- 장(champ)과 아비투스(habitus)1. 아비투스(habitus) - 행위와 구조의 통합.위치들이 구별되고 동시에 위치들이 구별하는 원리.(1) '아비투스' 개념의 도입 배경부르디외는 체험의 즉각성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주관주의적 직관주의와 규칙적 관계를 세우고, 그 의미를 풀어내지 않고 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데에 국한하는 객관주의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하여 '아비투스'라는 개념 창출.그리하여 그는 직관성과 객관성, 이론과 실천, 구조와 행위를 통합시키기 위한 새로운 사회이론을 창시하기에 이름.(2) 정의 :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획득되어진 성향,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의 체계.-한 개인의 성장과정을 통해 내면화된 문화적인 성향-문화적 취미나 성향인 아비투스는 갑자기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을통해 서서히 몸에 배어들게 되는 것.-이와 같은 문화적 요인이 각자의 계급적 위치를 결정하고 또한 계급간의 구분과 경계선을유지시키는 역할. 즉 아비투스는 계급의 재생산을 가능케하는 매우 중요한 매개체이다.-그렇다고 아비투스가 사회환경에 의한 사고와 행위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재생산하는 매커니즘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른 전략의 조절기능을 하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개념이다.2. 장(champ) - 사회공간의 하위공간.(1) '장' 개념의 발전베버가 종교분석에 이용하였던 공급, 수요, 자본, 이익, 경쟁, 독점 등 경제학적 개념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장의 개념을 구조적으로 발전시킴.(2) 정의 : '위치들의 객관적 관계의 망'-부르디외는 장을 기존 행위자들의 관계를 변형하거나 유지하려는 것을 목표 로 하는 힘의 대결의 공간으로 본다. 즉 장은 행위자들(또는 위치자들)간에 권력과위신을 추구하는 투쟁의 공간.◈자본의 3가지 분류◈생활양식과 취향에 있어서의 실천은 실체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간 속의 계급적 위치와 조응하면서 구별되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부르디외는 '자본'이란 개념을 사용한다.①경제자본-생산수단과 경제적 부의 소유.②문화자본-계급간 기회불평등을 초래하는 문화적 지식.2가지형태-교육자본: 학위, 전 문직 자격증과 같이 제도화된 것.상징자본: 의식, 명예, 위신 등(가정 교육을 통해 체득한 문화적 성향)③사회(관계)자본-사회적 연줄망 또는 인맥."상징적 차원에서의 계급투쟁"부르디외는 계급간의 관계를 착취나 억압의 관계로 이해하기보단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서로 구분을 짓고 거리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측면에서 파악한다.각 계급은 물질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상징적인 면, 즉 문화적·이데올로기적·도덕적인 면에서도 다른 계급보다 우위를 차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결국 사회계급구조와 계급분화는 일상생활 속의 실천들을 구별짓는 행위로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부르디외는 그의 저서 [구분짓기]에서 음악, 미술, 의상스타일, 실내장식, 스포츠, 요리, 영화 등 여러항목에 걸쳐 프랑스인의 취향 및 생활양식의 자본배분에 의한 사회공간 속에서 어떻게 차별적 구조를 갖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상징폭력과 사회재생산◈상징폭력(symbolic violence)가시적인 형태의 폭력이 아닌 신뢰와 개인적 충성, 선물, 경건, 인정, 채무와 같은 체면 윤리에서 존중되는 모든 덕목들처럼 보이지 않는 형태의 폭력이다. 이것은 피지배자들 스스로가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점잖은 것이라고 여긴다. 또한 자신들이 상징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혹은 스스로가 상징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모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기도 하다.피에르 부르디외는 계급투쟁에서 중요한 측면이 사회세계의 의미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보았다. 이 때 기존 질서가 사회적으로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폭력보다는 상징적인 형태의 지배, 즉 문화적 재생산 과정에 의한 상징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설득력 있으면서도 강력하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 표방하는 사회는 지배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제도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은폐된 지배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 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상징폭력이다.
맬더스의 생애토마스 로버트 맬더스는 1766년 잉글랜드 서리에서 부유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자신의 표현을 빌면 "출생이라는 커다란 제비뽑기에서 제법 큰 행운을 잡은" 것이다. 그 행운을 내린 사람은 증조부 다니엘 맬더스 1세이다. 그는 앤 여왕 시대에 왕실 약제사를 지낸 유명한 사람인데 명성에 못지 않은 재산을 모아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토마스 로버트 맬더스의 아버지인 다니엘 맬더스 2세는 천성적으로 겸손한 태도와 상냥한 성품을 타고난 지성적인 목사로서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푼 사람이다. 그는 도킹 부근의 계곡의 아름다운 농장을 사서 거기에 멋진 저택을 지어 루커리(Rokery)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여섯 번째 자식이자 둘째 아들인 로버트가 태어난 곳도 이 집이고, 집필의 계기가 된 부자간의 토론도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다.다니엘 목사는 루소의 열렬한 숭배자답게 자녀들이 개성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다. 맬더스는 9세까지 아버지와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다가 역시 루소 숭배자인 목사가 경영하는 한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18세 되던 1784년 케임브리지 지저스 칼리지에 입학했는데 어떤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역사와 문학 등 폭넓은 분야의 공부를 꾸준하게 해나갔다. 그런데 증조부 다니엘 맬더스 1세가 많은 재산과 더불어 언청이라는 신체적 결함까지 물려주는 바람에 그는 발음상의 장애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맬더스는 그같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라틴어와 영어 웅변까지 잘 해내는 쾌활한 학생이었다.지저스 칼리지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맬더스는 이들 가운데 하나쯤은 성직자를 만드는 18세기 영국 부유층의 관행에 따라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길 잃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소임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는 하느님의 사업보다는 인간의 사업에 더 큰 흥미를 가졌던 모양인지 30세 되던 1796년에 정부의 행정을 비판하는 책을 집필했으나 출판하지는 않았다. 그는 대학을 마친 후 역사와 정치, 경제 등 다방면의 서적을 읽으면서 소일했는데, 루커리 집에서 아버지와 한 토론을 계기로 초판을 촐간한 것은 그가 32세이던 1789년의 일이다.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 맬더스는 1805년 신설된 동인도회사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부임했다. 아담 스미드가 글래스고대학에서 가진 직책은 도덕철학 교수였으므로, 맬더스는 영국 최초의 정식 경제학 교수로 기록되었다.식민지의 부를 본국으로 들여오는 역할을 한 동인도회사의 간부양성소인 이 대학 교수직은 맬더스에게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그는 경제학자로서 정교하고 체계적인 경제이론을 창안하지는 못했지만 불평등한 경제체제와 부자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일에는 빼어난 재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맬더스는 후일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로 대표되는 사회진화론-자연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에서도 생존경쟁을 통해 우수한 사람들이 선택됨으로써 문명의 발전이 촉진된다는 사회이론-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래서 맬더스는 만약 인구법칙으로 인해 다수 대중의 비참한 생활이 필연적인 사태라면 도대체 부자들은 왜 부유한가 하는 의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에서 명료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해답을 제시했다. 그것은 부자들의 생활에서 발견할수 있는 여러 가지 미덕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현상적인 타락과 방종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가난한 노동자는 속된 표현으로 하루살이처럼 산다. 이들은 눈앞의 궁핍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는 일이 없다. 저축할 기회가 있어도 대부분 이를 외면하고 눈앞의 필수품 이외에는 전부 술집에 가서 마셔 버린다.성경의 글귀와 정신은 이 세계를 도덕적 훈련과 시련의 상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난관과 유혹을 제공하는 한편 이를 극복하는 자에게는 내세는 물론 현세에도 행복으로 보상해 주는 성질을 가진 듯하다. 그러나 인구법칙은 특히 이것과 잘 어울린다.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주어지거나 종교가 인정한 미덕을 실천함으로써 자신과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능력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미덕 덕분에 생활조건이 크게 향상되고 이를 실천하는 개인이나 사회 전체가 훨씬 안락해지는 것이 분명하므로, 이 위대한 법칙은 인간에 대한 신의 섭리임이 완벽하게 입증되는 것이다.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상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나태하고 방종한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벌을 받고, 갖은 난관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도덕적 절제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유유자적'이라는 상을 탄다. 부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편안하게 해주는 사상이 또 어디 있으랴! 아마 오늘날의 부자들도 대부분 이런 사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아담 스미드가 "철학자와 지게꾼의 차이는 마스티프 개와 그레이하운드 개의 차이의 반도 안된다","인간의 타고난 재능은 모두 비슷하지만 교육과 환경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 것과 비교해 보면 부자들에세 맬더스의 사상이 갖는 의의는 대단한 것이다.맬더스의 업적맬더스의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의 제1판은 1798년에 출간되었다. 그 시기는 프랑스 혁명과 그에 뒤이은 유럽 동란의 시기였다. 1793년 루이 16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영국과 혁명 프랑스는 전쟁 중에 있었다. 더욱이 프랑스의 새로운 혁명사상은 영국의 민중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동시에 영국은 산업혁명의 와중에 있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진전에 의해 파멸의 늪에 빠진 농민 및 수공업자 들의 무리가 전 국토에 넘치고 있어끨.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사회주의 사상이 엄청난 열광으로 영국의 민중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고드원은 그 대표적인 사상가 중의 하나였다.맬더스의 인구론은 이러한 시대사조에 찬물인것으로서 등장하였다. 그의 하버지는 고드윈의 찬미자였으며, 아침 식사때마다 항상 아들에게 인류의 미래에 관한 낙천적인 세계를 이야기해 주었다. 아들은 어떻게든 이를 논파하고자 연구를 거듭한 결과가 이 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 세상으로부터 악평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반사회주의적 성격 때문이었다.맬더스의 만큼 악평을 받았던 책은 많지 않다. 고드윈은 이것을 "인류의 희망을 항상 파괴하려는 암흑의 무서운 악마"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맬더스 연구가로서 유명한 영구그이 보나는 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담 스미드는 만인이 칭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을 남겼고, 맬더스는 아무도 읽지 않으면서 만인이 매도하는 책을 남겼다.인구론의 요지는 극히 간단하다. 인류는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 성욕 본능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이들을 먹여 살릴 식량은 경작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과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산술급수적으로밖에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구의 증가는 이식량으로 부양될 수 있는 한도에 의해 제약된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초과하는 경우에는 기아, 빈곤, 전쟁에 의해 식량의 부양가능 한계까지 축소된다. 인구는 항상 증대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다수는 항상 빈곤에 처하고 있다. 문명사회에서 인구와 식량간의 균형을 도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생률을 감소시키는 도덕적 억제, 즉 경제적 능력을 얻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는 것 이외에는 없다.
역할과 지위지위는 일반적으로 사회조직이나 그룹 안에서의 개인의 지위나 서열을 나타낸다.지위는 그 개인 자신이 아니라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나타낸다.또한 지위는 어떤 특정한 집단 예를 들면 그의 가족이나, 파벌, 그룹이나 이웃 등에서 위치한다.그렇지 않다면 지위는 보통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어느 중년의 백인 남성은 청년기의 흑인 여성과는 다른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각각의 사람들은 그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듯이 항상 변화하는 몇 가지 지위를 가진다.각각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 지위에 걸맞은 역할이 동반된다.역할은 어떤 지위 안에서의 기대되어지는 행동으로 정의된다.만일 남성이라면 의복이나, 걷거나 말하는 예절, 그리고 그의 업무형태나 흥미 등은 그 사회가 어떤 행동이 남성의 행동인가를 한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형상에 의해 정의된다.어떤 사회학자들은 역할집합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어떤 행동이 지위와 연관되어진 역할의 연속이라고 구분한다.그래서 성인 남성의 역할집합은 반드시 성인, 남편, 그의 아들이나 딸들에게 아버지로서, 부모에게는 다자란 아들로서, 가장으로서, 또는 이웃의 재산가, 그리고 많은 다른 역할을 포함한다.귀속지위와 성취주의 그리고 역할역할과 지위는 귀속지위, 성취지위 두 가지가 있다.귀속지위와 역할은 생년월일이나 불변의요소와 원인 등에 따른 것을 말한다.나이나 성별 그리고 인종은 귀속의 기본적인 형태이다.성취지위와 역할은 그만의 선택이나 활동을 통하여 습득된다.예를들면 우리사회에서는 직업이나 결혼관계의 지위를 포함한다.사람은 보통 그의 부모님들의 사회적 지위로 귀속되어지지만 우리사호에서 성취지위 또한 그의 활동을 통하여 다른 계층의 지위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역할사회화역할수행을 배우는 것은 사회화의 주된 부분이다.학생이 학생의 역할을 시작하듯이 그는 학생에게 기대되어지는 행동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갖고 있는 감성과 공통된 마음가짐을 배운다.모든 대학 1년생들은 고등학교 때의 학생의지위로부터 변화되어진 역할 변화의 문제들로부터 익숙하다.처음 학교생활 며칠동안 그가 학생의 기본적인 체계를 확인하려고 시도 하듯이 초기에는 신중할 것이다.예비교육 주나, 때로는 좌절을 경험하면서 그는 비로소 대학사회에서의 역할기대에 사회화 되어질 것이다.역할을 배우려는 과정은 유아기 때부터 시작해서 일생동안 계속된다.유아는 그에게 주어진 장난감들의 종류로부터 그의 성에 따른 역할을 익힌다.남자 어린이들은 트럭이나 공구 등을 여자어린애들은 인형이나 장난감집 그리고 예쁜 옷 등을 받는다.적절한 역할수행은 부모들이나 동료집단들이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재 강화된다.부적절한 역할수행은 조롱이나 거부 등에 의하여 단념되어진다.남자애들의 행동에 많이 관련되어진 여자아이는 "말괄량이" 라고 불리워 지고 귀여운 여자아이로의 행동으로 바뀌도록 강요되어진다.이렇한 경험들은 성인의 역할수행을 위해 기본의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남자아이가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장차 직업을 생각하는 동안에 여자아이는 가정주부로서 또는 그의 놀이처럼 엄마로서의 역할을 준비한다.몇몇의 지식과 기술이 대부분의 역할을 위해서 요구 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준비의 부분은 가치 있는 것과 보답하는 역할로 나타나는 태도나 희망 등으로 발전되어진다.신부가 어떻게 가정을 꾸리느냐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정일이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냐 아니면 흥미 있고 삶을 사는 보람된 것이냐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모든 종류의 역할 실패자들은 역할을 수행하기위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편안하고 감성적으로 만족해 보이는 역할행동이 요구되어지는 태도나 감정의 필요성이 부족해서이다.역할변화사람이 일생을 살듯이 그는 계속해서 적절한 역할과 함께 새 지위로 옮겨간다.각각의 사람들은 어린이 , 청소년, 성인, 그리고 노인으로 연속되어진다.다른 가능한 역할변화는 시민에서 군인으로 또다시 시민으로, 직업의 변화. 또는 건강하다가 아프고 또 건강하게 되듯이 이런 변화를 포함할 때 가능하다.역할변화는 역할준비가 계속 되어질 때 가능하다.즉 어떤 역할에서의 경험은 다음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위한 훌륭한 준비가 된다.전통농장에서는 소년 소녀들은 대부분의 역할을 그들의 부모들의 역할에 참여하거나 지켜보면서 습득한다.중년 때는 노년 때의 고독과 쓸모없음에 대해 거의 준비가 않되었기 때문에 우리사회에서는 중년에서 노년으로의 변화가 힘이 든다.우리가 젊음, 육체적, 성적매력 등의 강조는 여자들에게는 폐경기라는 고통스러운 변화를 야기한다.역할준비에서의 이런 차이는 어떤 역할의 경험들이 다음단계를 위해 빈약한 준비를 한다면 이것은 역할준비에서의 단절로 불리는 현상으로 전개된다.역할변화는 또한 어른의 행동, 다른 하나는 어린이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게다가 청소년기 때의 행동에서 가족들의 행동은 청년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결과적으로 청년기는 그의 의무와 권리사이에서 불분명하게 의미지어 짐으로서 갈등하고 충격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