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바람직한 금융협력AMF를 통한 협력과 한국의 역할경 제 학 과:화 학 과:전자전기통신공학부:1.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1) 외환위기의 배경2) 외환위기의 원인3) 외환위기의 결과2. 아시아 통화기금 창설논의의 현황3. 아시아 통화기금 설립의 부정적 효과1) 도덕적 해이현상의 발생우려2) 국제기구 분담금증가우려4. 아시아 통화기금 설립의 긍정적 효과1) 기존 IMF중심의 경제감시기능의 한계성을 극복2) 위기조정비용의 최소화3) 국제금융시장의 구조적 결함에 대처4) 엔화의 구조적 약세방지를 통한 아시아 경제권에 부수적 효과5 .아시아 통화기금 설립의 필요성과 한국의 역할결론: 한국의 대응1. 연구의 요약 및 시사점2.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과제3. 정부의 대응4. 기업의 대응5. 맺음말??Ⅹ?Ⅸ .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 외환위기의 배경? IMF는 GATT(현 WTO)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하여 온 국제기 구이다. IMF는 구조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단 IMF의 구제금융은 그 수혜국의 경제정책과 경제구조에 대한 조정을 강제적인 조건으로 부과하게 되는데, 이것은 구제금융 수혜국의 경제주권이 크게 제 약됨을 의미한다.? 우선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시작된 건 1997년 태국의 외환보유액이 300억 달러로 발표되었는데 실제로는 11억4천만 달러뿐이었고 금융기관들은 중앙은행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빌려가고 있었다.? 물론 자금 압박을 받던 금융기관들은 영업정지 조치를 받고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제히 태국에 대한 국가신뢰도 평가를 낮추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싱가포르 외환시장에서 바트화 가치는 전날보다 무려 18%나 급락하며 아시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러한 태국의 바트화 위기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 확산되었고, 그리고 10월에는 대만과 홍콩으로 파급되었고, 11월에는 한국과 일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원인? 이러한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1998. 7월 호주는 아시아 통화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호주의 외환보유고를 모아 2000억달러 규모의 지역적 통화방어용 펀드를 만들 것을 제안하면서 우선 일본과 호주양국이 위기국가의 무역신용중단을 막기 위해 자금을 투입할 것을 제의하였다? 또한 최근 들어 ASEAN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아 중앙은행(Asian Central Bank)의 설립, 지역적 감시체제의 구축등 AMF와 유사한 기구의 설립제안도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 중앙은행설립 추진 움직임? 1998년 7월경 일본엔화, 중국위안화의 불안한 움직임으로 역내통화 가치의 안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아시아중앙은행의 설립과 아시아 통화의 거래비중 증대를 통한 단일통화체제의 구축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여기서 아시아 중앙은행은 새로운 기구의 설립보다는 기존의 아시아개발은행(ADB)의 기능을 강화하여 중앙은행의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이 우세하였다. 아시아 단일통화체제는 ‘유로화’의 출범을 벤치마킹한 것으로서 우선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를 조정하여 ERM(Exchange Rate Mechanism)와 유사한 환율조정체제를 구축하고 공동통화를 창출하여 사용함으로써 아시아통화연합(AMU : ASian Monetary Union)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또한 일본의 Takehiko Kondo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 일본, 중국, 미국등 APEC지역내 주요회원국 통화로 구성된 “APEC Currency Unit(ACU)”을 창설하여 우선 역내무역거래와 직접투자 시 거래표시단위의 기능을 수행하게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는 ACU의 사용을 통해 우선 역내 거래 시 외환 리스크를 줄여주며 부수적으로 각 회원국들이 고유의 통화정책을 펼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목적이 있는 제안이었다. 한국의 AMF창설 지지발언? 98. 12월에 개최된 한일각료회담에서 김종필 총리는 아시아 금융?경제위기는 아시아의 한계라기보다 아시아 발확산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IMF는 긴급융자제도의 신설을 고려하고 있으나 이 경우에도 첫째, IMF가 인정하는 경제 및 사회정책을 이행해야 하며 둘째, 은행등 민간기관으로부터의 대출자금을 확보할 것 등 엄격한 조건을 적용할 예정이므로 신속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엔화의 구조적 약세방지를 통한 아시아 경제권에 부수적 효과? AMF의 출범은 자체적인 엔화재원확보과정과 향후 활동과정에서 엔화의 국제적 사용증대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엔화에 대한 구조적인 수요증가로 엔화의 강세를 유도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당국은 바로 이러한 엔화강세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엔화의 국제화에 소극적이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아시아지역의 무역과 투자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제 3국에서 일본과 경쟁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신흥공업경제(NIEs)의 수출증대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아시아지역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예: 인도네시아, 중국, 필리핀, 태국)에게도 수출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회복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Ⅳ . 아시아 통화기금 설립의 필요성과 한국의 역할일본과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구상하고 있는 아시아통화기금 창설 안에 대하여 미국?영국 등 주요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역내의 통화위기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하여 500억 달러 내지 1천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아시아 국가들이 조성 운용하는 방안에 대하여 IMF가 반대하는 논거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첫째, 외환시장의 불안정은 아시아만의 현상이 아닌 범세계적인 현상이므로 범세계적 기구인 IMF가 위기 발생 시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다.둘째, 아시아통화기금을 IMF와 완전히 분리하여 운용하게 되면 IMF의 외환지원 결정 시 부과되는 안정화정책 이행압력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셋째, 안정화조치가 수반되지 않는 외환지원은 투자자 및 당해 정부에 대하여도 도덕적 해이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위기발발 시 환영하지는 않았다. 극단적으로 전세계가 하나의 통화만 쓴다면 IMF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4년 ADB 설립방안이 ECAFE에서 논의되었을 때 국제 부흥개발은행(IBRD)이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범세계적인 기구인 IMF가 어떤 의미로 경쟁관계가 될 수 있는 아시아통화기금의 창설을 환영할 리가 없다. 큰 재원을 부담 없이 IMF를 통하여 세계경제통화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서구 선진국들이 아시아 국가들에 의한 통화기금설립에 반대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마디로 현행의 IMF 체제 하에서는 아시아 국가의 입맛에 맞는 통화안전재원 조달이 불가능하다.? 앞으로의 논의 진전과정에서 각국의 입장이 뚜렷해질 것이나, IMF는 반대 입장을 쉽게 바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아시아 국가의 입장이 확고하다고 판단하면 APEC에서와 같이 참여를 통하여 아시아통화질서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아시아 금융시장의 안정은 미국의 이해에 부합될 뿐만 아니라 반대의 명분도 IMF내에서의 거부권 등의 기득권이 훼손된다는 점을 빼고는 분명하지 않다. 미국은 제한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며 아시아 국가 주도의 아시아통화기금 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논의 초기부터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우리나라는 앞에서 논의한 대로 보험적 의미로소뿐만 아니라 상호협력 차원에서 아시아통화기금을 만들어 가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 우리나라가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게 되면 아시아통화기금 창설 논의가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참여결정은 다른 아시아 국가의 일본경제에의 예속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아시아통화기금 창설 논의 자체의 신뢰성을 제고시킬 것이다. 논의가 성숙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논의초기에 일본·중국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주도적인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일본·중국·아세안 외에 여타 아시아국들은 자유의사에 맡기도유입되면서 중국 시장에서의 우리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저하될 것이다. 이미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한 일본이 자극을 받아 아세안 전체와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과 FTA 협상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한다고 해도 거대한 동남아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으며 중저급 품목에서는 중국에게 시장을 잠식당할 것이다. 동아시아 질서변화에 대해서 한국은 입지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FTA를 추진하여 지역주의의 기회손실은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Ⅱ . 정부의 대응■ 산업경쟁력 강화? 제조업의 업그레이드와 고부가가치화 중국의 산업경쟁력 향상으로 우리 조립산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이 가공무역형으로 발전함에 따라 하부구조가 취약한 상황에서, 생산비용이 저렴한 중국이 우리의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조립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산업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제조업 대신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조업을 대체하여 단기간에 서비스 산업을 국민의 소득수준을 증대시킬 정도로 발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현실적인 차원에서 현재 중심산업인 철강, 전자,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조립산업의 수명을 늘려야 한다. 산업의 수명주기를 확장하는 것은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고 중간 기술자와 교육받은 인력이 풍부한 우리와 같은 중규모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이다. 주요 조립산업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재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제조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부품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조립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과도한 노사분규이다. 정부는 안정적인 노사환경을 유지하며 합리적이고 공평한 중재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성장 동력 발굴 및 R&D 정책 강화 중국의 부상에 대해 한국 경제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역동성이 회복되어야 하고 기업의 투자가 회복되어야 한다. 성장 경 개선
Dynamic Korea - Let's move together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비교분석1. 반도체 산업의 개관3(1) 반도체의 정의와 분류3(2) 반도체의 용도4(3) 반도체 산업의 특징 52. 중국반도체 산업의 발달사7(1) 탄생기(1950~66년)7(2) 난립기(1966~78년)8(3) 조정기(1978~85년)8(4) 본격적인 산업 육성기(1986년~현재) 및 요약93.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10(1) 세계 경쟁구도 변화를 촉발하는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10(2) 글로벌기업 : 前공정 진출 및 R&D확대11(3) 중국업체: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12(4) 기술경쟁력 : 아직은 낮은 수준13(5) 정부 정책 : 국가 전략사업으로서 육성에 총력144.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산업 비교분석15(1) 한ㆍ중 반도체산업의 포괄적 비교15(2) 한ㆍ중 반도체 기술경쟁력 비교175. 시사점 : SWOT 분석과 Hexagon strategy18(1) SWOT 분석19(2) Hexagon strategy(육각수 전략)201. 반도체산업 개관(1) 반도체의 정의와 분류반도체(半導體 : semiconductor)란 구리처럼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導體)와 나무가 돌처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不導體)의 중간 성질을 갖는 물질을 말한다. 반도체도 원래는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지만 필요시 빛, 열, 불순물 등을 가하여 전기를 통하게 함으로써 전기신호를 제어하거나 증폭, 기억하도록 가공된 전자부품의 일종이다.전기를 기준으로 하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물질이 있다.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다. 백금, 구리 등 금속물질은 대부분 도체이고, 나무, 바위, 옷감 등은 부도체다. 반도체는 말 그대로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 특성을 가진 물질이다. 실리콘(Si), 게르마늄(Ge)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자유전자를 가진 물질만 전기가 통하고 자유전자가 없는 부도체는 전기가 안 통한다.반면 반도체에는 평상시에 자유전자가 없으나: 2006년 기준)또한 비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활용분야가 다양하여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더라도 수요 측에서 이를 흡수할 여지가 있다. 반면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가 PC 등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 급증이 수급불균형으로 직결되고 있다. [표2]참조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사업 비교[표2]메모리 사업비메모리 사업제품 성격ㆍ?생산기술 지향ㆍDRAM 등 표준품ㆍ?짧은 수명주기ㆍPC시장 의존ㆍ?설계기술 지향ㆍASIC) 등 용도별 품목 다양성ㆍ?시스템 및 소프트웨어와의 조화ㆍ기계의 전자화로 수요 다양사업 특성ㆍ?소품종 대량생산ㆍ대규모 투자집중 추구ㆍ공정의 극한기술 극복ㆍ?대기업형 사업구조ㆍ?다품종 소량생산ㆍ제품의 칩세트화 구축ㆍ시스템부문의 경쟁력 제고ㆍ중소벤처기업형 사업구조경쟁 구조ㆍ선행기술개발, 시장선점ㆍ?중단없는 설비투자 관건ㆍ높은 위험부담ㆍ?참여업체 제한적ㆍ우수한 설계인력 및 IP확보 관건ㆍ경쟁 시스템과의 기능 경쟁ㆍ낮은 위험부담ㆍ참여업체 다수다양자료 : 산업연구원재인용 : 반도체산업의 경기변동에 따른 정부의 연구개발 연구, 주대영, 2004, 이룸출판사반도체 제조공정별 특성과 주요 기업[표3]공정별사업특성주요업체前공정일관공정(IDM)ㆍ칩설계에서제조및테스트까지일관공정체제를구축하여 직접수행ㆍ메모리제조의 가장 성숙한 모델ㆍ기술력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확보ㆍ거대투자의 고위험 고수익 형태Intel,삼성전자,하이닉스,Micron,Ti,STMicro, Qimonda,Infineon,Frescale,Elpida,Renesas,NEC Elec설계전문(Fabless)ㆍ칩의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ㆍ고위험의 거대투자를 회피할수 있으나, 위탁제조의 비용 부담 필요ㆍ고도의 시장예측이 필요하며, 주?생산의 최소물량수 준예측필요Broadcom,Qualcomm, Marvell,Xilinx,Altera,NVIDIA,ATI,코어로직,엠텍비젼제조전문(파운드리))ㆍ주문방식에 의해 칩생산만 전문ㆍ직접 칩을 설계하고, 설계전문업체로부터 위탁제조TSMC,UMC,SMICChatered의 반도체 기술수준은 선진국에 비교해 크게 뒤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동 시기에 있어서 군수산업정책 이외에 명확한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은 수행되지 않았으나, 중국의 주요 IC생산메이커는 이 시기에 일정한 정도의 생산기반을 확립하였다고 볼 수 있다.(3) 조정기(1978~85년)1978년 이후 개혁ㆍ개방의 시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정부는 반도체 산업육성을 위한 정책조정을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반도체산업의 육성정책은 군수산업에 초점을 맞추어왔으나, 개혁ㆍ개방기 이후 TV를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중심도 군수산업에서 자연히 민수산업쪽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1978년을 전후하여 일제 텔레비전이 중국에 수입되면서 텔레비전시장이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한 가운데 특히 IC를 탑재한 일본(히타치)의 ‘p-24型’흑백 텔레비전은 중국 측의 관심을 끌었다.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같은해 강남무록전기재(江南無綠電氣材)을 선정하여, 중국 반도체산업에 있어서 최초의 텔레비전용 IC 양산라인을 동지(東芝)에서 도입하였다.한편 1982년 국무원은 전자산업 주무부서를 재편하여 전자공업부(電子工業部)를 신설하였다. 또한 전자제품의 각 분야마다 전문관리국을 전자공업부내에 설치하고 전국규모의 관리권한을 부여하였다. 아울러 전자공업부 산하의 군사관련기업을 포함한 170개 사에 대한 관리권한을 지방정부로 이관하였다.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관할에서 벗어나 군수업체 가운데 군수용품의 생산을 포기하거나 축소하고 민수업체로 전환한 기업이 속출하였다. 결국 이 같은 기업의 속출은 칼라 TV로 대표되는 민수용품에 대한 생산수요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IC에 대한 수입수요를 조장함으로써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IC에 대한 수입대체정책이 시급한 정책과제로 대두되었다.(4) 본격적인 산업 육성기(1986년~현재) 및 요약한편 중국정부는 1986년 제정된 제7차 5개년 계획(1986~90년) 및 ‘1986~2000년 국가고기술발전연구계획’에서 ①중점 발전지역으로 화동지역 지정②중점 육성분야체일본업체유럽업체대만업체한국업체투자형태독자위주합작ㆍ기술협력합작위주→독자모색합작위주→일부합작독자 위주진출방식후공정 중심판매/조립→생산/설계초기 前공정→後공정위주파운드리생산위주後공정 위주→R&D진출지역天津 ,上海, 蘇州上海, 北京, 蘇州上海, 蘇州,上海, 蘇州蘇州, 中山주요업체모토로라,인텔, AMD,암코NEC,도시바,미쓰비시,히타치,마쓰시타,후지쯔벨,필립스,ST마이트로TSMC,UMC,마크로닉스,大王 子삼성전자,광전자,KEC자료 : 반도체산업협회 실사단 조사재인용 :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장성원, 2004, 삼성경제연구소향후 중국 시장 확대에 대응하여 글로벌기업들은 투자 규모와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그 예로 2003년 인텔은 四用 成 에 2억 달러를 들여 조립공장을 추가로 건설하였고, 2004년 하이닉스는 유럽업체인 ST마이크로와 합작으로 메모리 생산라인 건설을 추진하였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대만)은 2003년 TSMC 上海를 설립하였다.한편 글로벌기업들은 중국을 현재는‘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R&D기지‘로 고도화 시킬 계획에 있고, 2003년 상반기기준으로 상해에 입주한 외자기업의 R&D센터는 101개이다. 그 예로 인텔, IBM, GM, 노키아, 모토로라, NEC, 유니레버, 마쓰시타, 삼성전자, LG, 전자 등이 R&D센터를 설치하였다. [표7]참조(3) 중국업체: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파운드리 분야는 중국 국영기업과 외국업체의 합작(후아홍NEC, ASMC),화교자본 및 대만인력의 유입(SMIC, GSMC)에 의해 성장하였다. 2003년 기준으로 SMIC(4위), CSMC(11위) 등이 세계파운드리 업계에서 상위권에 포진하였고, 합작업체인 화응NEC(7위),ASMC(10위) 등은 10위이내에 포진하였다. [그림1]참조중국 파운드리 업계는 2003년 말에 8인치 웨이퍼 기준 월12만매 규모의 처리능력을 보유(대만 TSMC 43만매, 동부아남 6만매)있다.중국 현지 반도체업체와 외자계의 관계[그림1]자료 직까지 그 증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중국이 부상하기 훨씬 전에 이미 개별반도체를 비롯한 저부가가치 반도체를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이전했다. 그 후 중국이 부상하면서 현지시장을 목표로 중국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며, 이것도 한국에서의 생산을 포기하면서 이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중국이 우리의 상당한 경쟁자로 부상할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한편, 한ㆍ중간의 반도체사업 영역은 아직까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반도체산업의 중점영역은 선진국에서 칩 설계 된 것을 웨이퍼처리를 통해 생산하는 파운드리사업 분야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저급기술분야인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등 개별 반도체사업과 IC 조립분야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메모리를 비롯한 IC의 일관생산체제에 역점을 두고 있다.설계분야는 중국의 경우 논리합성이나 레이아웃 등 백엔드분야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한국은 설계방법론, IP 등 신제품설계에 역점을 두고 있다. [표12] 참조따라서 한ㆍ중 간의 반도체산업에 대한 강약점을 비교하면, 중국은 전자제품의 급성장에 따른 반도체의 유효수요가 증가하여 커다란 내수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경쟁적 지원정책으로 외국인의 투자 인센티브를 큰 폭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부각된다.한국은 주지하다시피 메모리의 강국으로 부상한지 오래이며, 상대적으로 유경험의 고급기술인력이 풍부하여 우수한 제조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한ㆍ중 반도체산업의 사업영역 비교 [표12]중국한국중점분야설계제조조립ㆍ파운드리사업, 개별반도체, 패키징 등의 영역ㆍ논리 합성이나 레이아웃 등 백엔드 분야ㆍ약 2세대 후행기술의 웨이퍼처리 공정ㆍ패키징조립 및 보드실장ㆍ반도체 선행개발 및 양산 영역ㆍ설계기법 개발, IP등 신제품개발ㆍ신규공정의 선행기술,장비재료 등개발ㆍ신규패키지, 테스트, 조립장비ㆍ재료 등 개발자료 : 산업연구원(KIET).재인용 :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산업 비교분석, 주대영, 20 %
Ⅰ. 시대적 배경1910년대는 우리 현대사에서 핍박과 격동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고,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구시대의 봉건적 삶의 방식과 근대적 서구 문명의 수용 의지가 맞부딪친 시대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로서 민족의식이 제고되던 때이며 신문학의 흐름이 계속되면서도 서구문학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기법과 의식을 담은 현대문학이 출현하였다. 민족 계몽의식을 주제로 한 문학이 등장하였으며 서구 문학의 기법과 의식이 수용되었다.Ⅱ. 1910년대 문학의 갈래1. 자유시자유시의 성립배경으로는 소년(1908), 청춘(1914)지와 함께 학지광(1914), 태서문예신보(1916)등과 같은 근대적 잡지의 간행과 유학생들의 서구문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태서문예신보의 창작시 및 번역시로 서구문학이 도입되는 등 서구 근대문학의 영향을 들 수 있다.첫째, 전 시대의 계몽 의식으로부터 탈피하였다.둘째, 운율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실험 정신을 추구하였다.셋째, 관습적 형태에서 벗어나 미의식의 표현에 집착하였다.넷째, 서구의 상징주의 시와 시론의 소개를 통해, 개성적 내면 탐구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조응의 시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근대적인 자유시 형식을 수립하는 과도기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근대시의 발전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문학의 교훈성과 계몽성에 대한 반성적인 의식이 대두되고 개인적인서정이나 국권 상실의 위기감을 노래한 시들이 발표되기 시작하였다.2. 근대소설초기의 계몽적 성격을 상실하고 점차 상업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는 등 신소설이 성행한다. 새로운 사상의 반영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 민족의 현실에 대한 관심과 이상주의적 성격의 작품이 많이 쓰였다. 1910년대는 이광수의 독무대로 그는 1917년 『무정』을 발표함으로써 현대소설의 문을 열었다.첫째, 현실적 소재, 취재의 현실성을 보인다.둘째, 언문일치에 가까운 사실적 산문문체를 보여준다. (사건, 인물의 묘사가 사실적이다; 근대적 인물유형)셋째, 서술과 묘사를 통한 이야기 전개가 나타난다.넷째, 플롯의 다양성을 띤다.신소설들은 내용상에 있어서도 진부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성격창조와 소설적 구성, 묘사기법 등에서도 일정한 도식과 유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1910년대 소설들은 신소설이 보여주고 있던 과도기적인 성격을 극복하고 근대소설의 면모를 뚜렷이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3. 희곡이시기의 희곡은 일본에서 들어온 신파극이라는 새로운 근대극 양식을 맞아 재래의 전통극이 중앙무대를 잃고 퇴조해 갔으며 신파극이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음에 따라 근대적 형태의 희곡문화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이 때 조일재의 『병자삼인』, 윤백남의 『국경』, 『운명』 이광수의 『규한』등이 발표되었다. 당시 희곡을 발표한 작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작품 역시 5,6편에 불과했다. 전통적인 구파와 일본적인 신파가 대중오락으로 유행하면서 문학으로 성숙하지 못했고 낙후된 형태와 진부한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4. 비평이 시기는 근대적 비평의 초창기라고 볼 수가 있다. 일본 유학을 경험한 이광수 등을 필두로 일단의 비평가들이 근대적 문학관과 비평의 기초이론을 수립하고 실재비평의 초보적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특히 이광수는 근대비평의 시발자로서 당시 문학 비평에 선구적인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종래의 문학이 유교도덕의 도구화가 되어 권선징악적 의미만을 추구하던 교훈성에서 탈피하여 인생의 사상과 생활을 자유롭고 충실하게 묘사할 것을 역설하였다.5. 주요 신문 및 잡지신문 및 잡지 발행에 의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문학 활동도 왕성해진다.그러나 이들 잡지는 독립 운동의 내용을 담은 작품 발표로 일제의 탄압을 받는다.소년; 1908년에 창간된 최초의 잡지로 월간문예 계몽지, 신문관에서 발행되어신문화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함.매일신보; 를 강제 매수하여 발행한 신문붉은 저고리, 새별, 아이들 보이; 최남선이 주재한 어린이 계몽잡지청춘; 최남선 주재의 월간 종합지학지광; 최팔용, 현상윤 등이 주관한 동경 유학생회 기관지유심; 한용운이 주재한 불교 계몽과 근대적 교리 해석을 위한 잡지태서운예신보; 장두철, 순 국문 문예 주간지로 서구 문단의 동향과 시론의 도입 및 번역시Ⅲ. 문학사적 의의 및 성격1910년대 문학의 중심이 되는 시와 소설을 바탕으로 살펴보겠다.우선 한국 근대시의 경우 서구시의 영향이 각별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것은 외부적 자극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초창기 최남선의 신시나 주요한의 자유시에서 서구시와 접촉하면서 이루어진 한국 근대시가 다시 전통적 경험에로 귀의하려 한 노력 속에 한국시의 근대성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이념보다는 감각, 관념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또한 이시기의 시는 개화기시가에서 근대시로 넘어오기까지의 과도기적인 구실을 수행하였다는 점에서 근대시의 전사로서의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신시, 자유시, 산문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이다. 신시, 자유시, 산문시는 한결같이 그 이전의 정형성에 대한 반 명제이자, 자유시 지향이라고 볼 수 있다. 형식면에서 새로운 것은 갖추어 지기 시작했으나 내재적인 감수성에서는 근대시로 넘어가기 전의 과도기적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1910년대, 이 시대의 신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은 거의 일본유학생이거나 유학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국권을 박탈한 나라에 가서 새로운 신문물을 접한 이들은 자아각성의 인식과 개성의 신장 등을 자가하면서 유학생으로서의 경험 미숙, 깊이 천작할 수 없는 각기 고유의 정서나 역사인식 부족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전망 또한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개인의 삶과 시대 문제가 얽혀 이 시대의 단편 소설로 나타나게 되었다.
1. 시대 배경1930년대는 20여년이 넘는 총독부 정치가 완전한 식민지 체제를 갖추면서 조선에 대한 수탈정책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다. 3.1운동이후 일시적으로 보였던 기만적 문화정치에서 탈피, 식민지 영구화 작업 - 30년대 말 국어국문의 말살, 창씨 개명 등으로 이어지게 됨 - 에 박차를 가하던 가장 가공스러운 시기였다. 이에 우리 민족은 식민화 정책에 대비하여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계열의 집결 아래 ‘신간회’가 발족(1927)하여 새로운 전략의 항일 운동이 전개되고, 1931년에는 조선어학회가 발족하여 ‘조선어사전’을 편찬하였다. 전국 곳곳에서는 야학이 생겨나 글을 깨우치고 생활을 개선하는 일이 민족의 역량을 비축하는 것이라고 여겨졌으며, ‘브나로드 운동’이 온 누리에 번져 나갔다. 시대의 가장 예민한 촉수로서의 문학은 이 시기의 수탈과 탄압, 고발과 저항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2. 시 문학㉠ 시문학파 시- 배경; 1920년대 중반 이후 프로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의 대립으로 인한 이념적 문학풍토에 반발‘구인회’ 및 ‘해외문학파’와 같은 순수 문학 동인이 결성됨.- 특징; 시어의 조탁과 시의 음악성 중시.시적 변용에 의거하는 순수 서정시의 창작 과정 강조.자율적인 존재로서 시의 본질 탐구.- 대표 시인 및 작품 경향김영랑;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운율감 있는 고운 시어로 표현 박용철; 감상적인 가락으로 삶에 대한 회의 노래 정지용; 감각적 인상을 세련된 시어와 향토적 정취로 표현 이하윤; 해외 시의 소개를 통한 서정시론 수용 ㉡ 전원파 시- 배경; 1930년대 후반 극심한 일제의 탄압 아래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의식의 반영서구 의존적인 시관(詩觀)에서 탈피하여 동양적 세계관을 중시하려는 경향의 대두.- 특징; 이상향으로서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과 안빈낙도의 세계관서경적 묘사를 토대로 한 자족적 정서자연 친화적이며 관조적인 태도- 대표 시인 및 작품경향신석정; 자연 친화의 목가적 시풍으로 이상향에의 동경 노래 김상용; 농촌귀의와 동양적인 관조의 세계 노래 김동명; 낭만적인 어조로 전원적 정서와 민족적 비애 노래 ㉢ 모더니즘 시- 배경; 1920년대 감상적 낭만주의와 같은 전근대적인 요소를 배격하고 현대적인 시의 면모를 확립하 고자 하는 의도. 서구의 신고전주의 철학 및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입체파, 미래파, 이미지즘 등 현대적 문예사조의 이념이 본격으로 수용됨.- 특징; 구체적 이미지에 의한 즉물적(卽物的)이고 지성적인 시 강조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상황적 인식과 비판적 감수성 표출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학에 의거한 의도적인 시의 창작전통에 대한 거부와 언어에 대한 실험 의식 및 내면 심리의 탐구- 대표 시인 및 작품 경향김기림; 해학과 기지를 동반한 감각적 시어로 현대문명을 현상적으로 관찰함 이상;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초현실주의적 언어 실험의 난해시 김광균; 회화적 이미지의 구사로 도시적 서정과 소시민 의식을 표현 등장만영;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감성과 시각을 기교적으로 표현 ㉣ 생명파 시- 배경; 모더니즘 시의 서구 지향적 태도와 기교 위주의 시 창작에 대한 반발1930년대 후반 시문학 전반의 침체 현상에 대한 타개 노력- 특징; 삶의 깊은 고뇌와 본원적 생명력의 탐구정신 강조.토속적인 소재와 전통적인 가치 의식 추구.철학적 사색으로 시의 내부 공간 확대.- 대표 시인 및 작품 경향서정주; 원시적 생명의식과 전통적 정서에 의거한 인생의 성찰 등㉤ 청록파 시- 배경; 일제 말 군국주의 통치에 따른 문학적 탄압에 대한 소극적 대응물질문명에 대한 거부로서 은둔과 관조의 태도 형성모더니즘 시의 퇴조이후, 김상용·김동명·신석정 등의 목가풍 전원시 창작지를 통해 순수 서정을 지향하는 시인들의 등단- 특징; 자연을 소재로 한 자연 친화적인 태도 표출.향토적 정조와 전통 회귀 정신의 강조.해방 후 전통적 서정시의 흐름 주도.- 대표 시인 및 작품 경향박목월; 민요적 율조에 의한 향토적 정서의 표현 박두진; 이상향으로서 자연에 대한 신앙과 생명력 넘치는 교감의 표현 조지훈; 고전적 감성을 바탕으로 옛것에 대한 향수와 선적 관조를 노래함 ㉥ 저항시- 배경; 일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승화한 시를 지칭하는 것으로, 현실에 대한 철저한 내면적 인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구도자 내지 예언자적인 자세로 표현하여 정신적인 시의 영역을 구축함.- 대표 시인 및 작품 경향이육사; 고도의 상징성 및 절제된 언어, 남성적 어조로 불굴의 지사적 기개와 강인한 대결정신을 노 래함 등윤동주; 자기 반성적 사색, 양심적인 삶에의 의지와 순교자적 정신을 노래함 등㉦ 전통적 현실주의- 배경; 1930년대 중반 카프의 해산으로 이념 지향적인 시가 퇴조한 후 전통적인 민중들의 삶을 소재 로 생활의 현실과 민중적 정서를 그려내고자 하는 경향이 대두됨.- 대표 시인 및 작품 경향백석; 민속적 소재와 서사적 이야기시의 구조로 향토적 정서와 공동체 의식을 추구함 이용악; 일제 하 만주 유이민 생활 현실과 감정을 체험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민중시적 전통을 확립함 3. 소설 문학㉠ 특징- 장편소설의 활발한 창작; 등- 일제하 지인인 문제의 작품화; 등- 농촌을 제재로 한 소설의 확산; 등- 역사소설의 유행; 등㉡ 전개양상- 도시 감각과 현대인의 상황 제시; - 풍자적 기법을 통한 우회적 현실 비판; - 총체적 현실 탐구와 사회적 전형의 창조; - 농민의 삶에 대한 현실적 인식; - 토속적 세계의 근원적인 탐구; 4. 기타 문단의 동향㉠ 극문학; 본격적 근대극과 시나리오의 창작‘극예술 연구회’를 중심으로 사실주의적인 희곡이 창작, 공연되었으며, 발성 영화의 도입으로 저항적 주제의 시나리오 작품이 쓰여짐.㉡ 수필; 근대적 수필의 본격화‘해외 문학파’를 중심으로 서구의 근대수필이론이 도입되고, 이양하, 김진섭 등 전문 수필가가 등장함㉢ 비평; 다양한 비평 방법론의 확립- 예술주의 비평; 순수문학의 논의 (김환태, 김문집)- 휴머니즘 비평; 인간성의 회복과 태도론의 제기 (백철, 이헌구)- 주지주의 비평; 주지적 경향의 현대 영미 비평 이론 소개 (최재서, 김기림)㉣ 1930년대 주요 잡지시문학(1930) - 언어의 기교, 순수한 정서를 중시하는 순수시 지향 (박용철 주관)삼사문학(1934) - 의식의 흐름에 따른 초현실주의적 기법 (신백수, 이시우 주관)시인부락(1936) - 시전문지, 창작시 및 외국의 시와 시론 소개 (서정주 발행)자오선 (1937) - 시전문지, 모든 경향과 유파를 초월함 (서정주 발행)문장(1939) - 월간 종합 문예지, 고전 발굴에 주력, 신인 추천제 (김연만 발행)
현실인식과 소설문학의 근대적 각성- 근대성의 소설화와 민족현실1. 머리말전통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던 한국사회는 일본, 서양세력의 이권 침탈을 거쳐 1910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며, 한일합방은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원천적으로 막게 된다. 이러한 민족 현실 내에서 문학에서의 근대성을 살펴보려한다. 근대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난해하며,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정의 될 수 있는 것이 근대성에 관한 논의라고 생각한다.한국 근대문학 출발기의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춘원 이광수의 문학에서 발견되는 특징적 요소 가운데 우리 문학사의 근대성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을 살펴보고, 이것이『무정』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2. 문학사의 근대성근대성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과 역사를 달리하는 서구의 개념을 정리하지 못한 채 적용시키기 보다는 근대성의 개념과 한국의 특수성 검토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1) 근대의 의미보편적 의미의 근대란 봉건체제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발달 및 민족 국가의 성립 그리고 이성적 계몽에 의한 합리적 세계인식 등이 주된 요소를 이룬다. 이는 무조건적 권위에 대한 부정이나 경직된 형식성에 대한 부정, 현세적 인간주의, 과학적 합리주의, 인간의 자율성과 인격의 존중 등의 요소로 부연 설명되기도 한다. The encyclopedia of philosophy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 1978)- 『민족 문학과 근대성』, 문학과 지성사 (1995), 338면2) 한국 문학의 근대성일제하의 대표적인 문학사가(文學史家) 임화는 한국문학의 근대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임화는 신문학과 근대문학을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한다. 1939년에 발표한 『개설 신문학사』서론에서 임화는 근대 문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근대 문학이란 단순히 근대에 씌어진 문학을 가리킴이 아니라 근대적 정신과 근대적 형식을 갖춘 질적학쟝르를 형식으로 한 문학이고, 우리시대의 언어인 한글을 사용하면서 언문일치가 이루어진 문장으로 씌어진 문학이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한국문학의 근대성이란 대략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정리된다. 김영민, 「춘원 이광수 문학의 근대성 연구」 - 『민족 문학과 근대성』 문학과 지성사 (1995), 344~345면첫째, 우리민족의 언어인 한글을 사용하면서 언문일치가 이루어진 문장으로 씌어진 문학.둘째, 시민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산문 문학.셋째, 자유주의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근대 사조를 받아들이는 문학.넷째,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을 언어로 드러내려는 언어 의식을 담고 있는 문학.다섯째, 봉건제적 구습을 비판하고 개성을 존중하며, 현대 한국인의 생활과 사상을 담아내 는 문학.여섯째, 민족 국가 의식 혹은 민족주의 의식을 담고 있는 문학.일곱째, 그 발생과정에서 일정 정도 계몽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문학.여덟째, 분화된 장르 의식에 기초해서 씌어지는 문학.아홉째, 전문적인 작가에 의해 씌어지는 문학.이러한 각 요소들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3. 이광수의 근대성한국 근대사의 주요인물이며 근대문학 출발기의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사람인 춘원 이광수 문학이 가지는 근대성을 앞에서 살펴본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통해 살펴보겠다.1) 새로운 언어 의식이광수의 근대적 언어 의식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첫 글은 그의 대표적 초기 문학론 가운데 하나인 「문학이란 하오」이다. 여기서 이광수는 그 동안 우리 문학의 발달을 저해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한문이 아니면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점을 지적한다. 이 논의의 결론으로 신문학은 반드시 현대어, 일상용어로 쓸 것을 제안한다.姑로 新文學은 반드시 純現代語 ˙ 日用語 ˙ 卽 今 何人 이나 知하고 用하는語로 作할 것이니라 이광수, 「文學 이란 何오」, 『이광수 전집』제 1권, 삼중당 (1962), 515면이어서 이광수는 새로운 문체의 사용과 새로사용과 신사상의 세례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조선 신문학의 서막을 여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우리 문학사에 남긴 업적, 가운데 문학작품 자체와 연관된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문체발달에 대한 기여를 꼽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 시기 이광수 자신은 아직 언문일치 문장을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 일본의 언문 일치 운동 등을 보면서 그러한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시대적 제약과 개인적 실천력의 한계 등으로 인해, 자신의 글의 주장 내용과 그것을 담는 형식의 괴리라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언문일치의 구어체 한글 문장을 주장하면서도 자신 역시 아직은 국한문 혼용의 문어체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10년대 후반 이후 거의 구어체 문장을 구사하게 된 이후에도 문학 평론이나 논설에서 매우 빈번히 한자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거의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평론이나 논설은 국한문 혼용의 한글문장을 사용하였고 작품은 거의 한글 전용의 우리문장을 사용했다.이광수의 이러한 새로운 문체에 대한 관심은 실제 자신의 소설을 통해 구현되었다. 『무정』에 나타난 이광수의 새로운 언어의식은 우리 문학사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것이었다.2) 반봉건성과 계몽의식반봉건성과 계몽의식 계몽의식 ; 계몽이란 신화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합리적이지 않은 권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이성에 대한 신뢰 및 인간이 자기 존중과 자기 결정의 자율권을 갖는 일과도 연관된다. 인간이 미성숙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일, 인간의 본성에 대한자각, 인간의 이성에 적합한 조화롭고 인간적인 사회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류의 자기 실현에 대한 자각 등이 모두 이 근대적 계몽성과 연관된다.은 흔히 사상사 속에서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특질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반봉건적 의식을 드러내는 그의 초기 논설로는 1916년에 발표한 「조선 가정의 개혁」및「조혼의 악습」, 1917년에 발표한「혼인에 대한 관견」및「혼인론」, 1918년에 발표한 「숙명론적 인생관에서 자력론적 흙』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작품화되었다. 『무정』이 1910년대 지식 청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작가의 계몽적 의도를 드러낸다거나, 『흙』이 1930년대 농촌 계몽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이광수 문학의 반봉건성과 계몽의식의 특질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3) 소재의 당시대성 및 작품의 사실성이광수는「文學 이란 何오」에서문학의 재료에 대해 거론하면서 문학예술이 그 재료를 인생에서 취해야 할 것임을 말한다. 인생의 생활 상태와 사상 감정이 소설의 재료이니 그를 묘사하는 것이 문학예술이라는 것이다.최호(最好)한 재료(材料)를 최정(最精)하게 묘사한 것이 최호(最好)한 文學이라 이광수, 「文學 이란 何오」, 『이광수 전집』제 1권, 삼중당 (1962), 509면문학이 그 시대의 삶을 진실되고 세밀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지적 등은 모두 문학이 그 시대의 삶을 진실되고 세밀하게 그려내야 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상성이 고대문학의 특징이라면 현실성이 신문학의 특색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작품의 현실성에 관한 논의는 사실주의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광수가 여기서 말하는 사실주의란 소재를 현실에서 취한다는 점과 그 묘사가 사실적이라는 모사론적 측면에 기울어져 있는 논의이다.나는 사실주의 전성시대에 청년의 눈을 떴는지라 내게는 사실주의 색채가 많다. 내가 소설을 모(某)시대의 모(某)방면의 충실한 기록으로 보는 경향이 많은 것이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이 졸렬한 시대의 그림이 어느 정도까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감정의 고민상을 그렸는지는 내가 말할 바가 아니다. 내 의도가 그것들의 충실한 묘사에 있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광수, 「여(余)의 작가적 태도」, 『이광수 전집』 제 16권 , 375면자신이 사실주의 전성시대에 청년의 눈을 떴다는 언급 역시, 그가 말하는 사실주의가 고전소설의 비현실성에 대응하는 현실성을 강조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게 한다.4) 민족주의와 민족 문학론우리나라의 경우 민족국가의 형성 자체가 근 외세에 의한 식민 통치 체제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로지 일시적인 문화적 활동의 자유로움을 추구했다. 그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강조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였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민족주의라는 동일한 용어 아래 반민족적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전혀 다른 내포를 지닌 전근대적 사상이었다. 그의 민족주의 의식과 민족문학에 대한 주장은 외형상 근대성을 지닌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전근대적인 내포를 지닌 것으로 단정할 수 있다.4. 무정의 근대성1) 새로운 언어 의식『무정』의 문체 가운데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작품이 이광수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순한글로 씌어졌다는 점이다. 이광수의 새로운 언어 의식은 우리 문학사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광수가 『무정』을 통해 보여준 새로운 언어의식과 문체발달에 대한 기여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한 것이었다. 자신의 술회에서도 문체로 말하면, 그때의 것이 대개 고문체였고 내가 국문체로 쓰기는 「무정」부턴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광수, 「작가로 본 문단의 십년」,『이광수 전집』제16권, 395면『무정』은 순한글 문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한자를 사용할 경우 그것을 괄호 속에 넣어 처리하고 있다. 그 전의 작품들에서 한문문장의 어휘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국한문 혼용체로 글을 썼던 사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2) 계몽의식이전의 작품들이 작가 이광수의 직접적 해설이나 서사적 주인공의 연설 등을 통해 드러나던 것에 비해『무정』에서 계몽성은 인물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거나, 여러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등 훨씬 더 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나타난다. 하지만 작가가 파악하고 있는 현실인식이나 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의 제시 등에서는 이전의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무정』에 나타난 계몽성은 다음과 같다. 교육의 중요성, 조혼 문제의 심각성, 선각자의 사명과 그들이 사회에서 당하는 고난, 남녀 평등에 대한 인식, 자녀 중심적 사고의 필요성, 수재민 구호를 매개로 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