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화)「화 Anger」「평화로움」「발자국마다 평화」「귀향」「이 세상은 나의 사랑이며 또한 나다」「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등 많은 책들을 통해서 우리는 틱낫한 스님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3월 16일 한국을 방문하셔서 어느때보다 스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는 왜 틱낫한 스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틱낫한 스님의 이름을 한자로 하면 석일행((釋一行) 스님이라고 합니다. 일행, 1926년에 베트남에서 태어나셨고 지금은 만으로 76살이 이십니다. 열여섯 나이에 불가에 입문하여 구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고,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운동을 주도하시다가 베트남 정부의 박해를 받아 귀국을 금지 당하는 고통을 당하면서 ‘전쟁은 인간의 화가 빚어내는 가장 비참한 참사’라고 하시면서 결코 그 전쟁을 피하지 않고 평화운동을 벌이셨습니다. 이런 정신은 1960년대에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로 주창되어 내세론에 치우친 불교의 빗장을 풀었다는 면에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인간 각자가 화를 풀면 그 파장은 곧 인류공동의 평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1982년 프랑스로 망명하시고 보르도 지방에서 수행 공동체인 ‘자두 마을(플럼 빌리지)’를 세우셨습니다. 자두마을이란 뜻은 ‘흙과 사람,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곳’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이들이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수행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구름(자유)과 달팽이(느림), 불도저 (마음의 힘)를 닮은 틱낫한 스님은 그 이름만으로도 세계 평화의 상징입니다.틱낫한 스님의 여러 책 중에서 를 중심으로 스님의 가르침과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지 생각해 봤습니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내 마음속의 ‘화’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친구와 아무것도 아닌일로 화가 나서 싸우기도 하고 , 시험 성적이 공부한 만큼 나오지 않아서, 몸의 특정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무수히 많은 일들로 화를 냅니다. 심사람 모두에게 이미 ‘부처’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불성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어서 사람들은 쉽게 해탈에 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장애 요인이 바로 탐(貪), 진(瞋),치(癡) 라는 삼독심(三毒心))입니다. 불교의 수행은 이런 탐욕스러움,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상태를 없애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삼독심은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바탕이므로, 이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무명(無明)을 없애고,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삼독심 중에서도 틱낫한 스님이 주로 언급하는 것은 바로 성냄 입니다. 하지만 탐욕과 어리석음의 또한 성냄보다 옳지 못하고 해로운 현상이 적다고 말 할 수 없을 텐데 왜 틱낫한 스님은 성냄을 강조를 두셨을까요? 성냄의 주제는 다소 상투적이고 막연해 보일 수도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의 주제 대신 불교의 핵심을 아주 흔하고 가까운 예를 통해서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냄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시면서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 전체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틱낫한 스님이 란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 모으는 일(Mindfullness)’입니다. 모든 것이 상호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은 연기설(緣起說))에서 나오는 관점으로, 틱낫한 스님의 평화에 대한 생각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나와 남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 밖의 남이든 내 안에 남이든 나와 남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폭력을 가하면, 결국 부메랑처럼 나에 대한 폭력이 되어 돌아옵니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은 마치 나와 남을 분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분노를 일으키게 한 남을 미워하고 폭력을 사용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어 화가 삭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화내는 자세는 폭합니다. 그럼 분노와 화는 어떻게 다스리는 것일까요?틱낫한 스님은 성내는 것을 비유하여 우는 아이와 같다고 하십니다. 아이가 울며 보챌 때,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고 어르듯이, 화를 품에 안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에 마음을 모아서 보듬고 달래라고 하십니다. 연민을 가져야 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내가 숨쉬는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믿고 지금 이 시간에 깨어 있기의 실천을 강조하십니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온전하게 마음을 집중하는 것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설거지 할 때에는 설거지 하는 것에 열중하기, 도착하기 위해 걷는게 아니라 걷기 위해 걷는 것. 수업 시간에도 방과 후의 놀 일, 지난번 미팅 때의 일들, 데이트에서 할 일 들을 생각하다보면 강의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으며 미래나 과거에 사로잡힌 나머지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 하지만 우리 삶은 현재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앉아 있거나 걸으면서 자신의 호흡과 몸의 움직임에 기도를 드리듯이 마음을 기울입니다. 이때의 마음은 몸과 구별되는 마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는 것입니다.여기서 두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한가지는 그럼 정당한 분노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입니다. 사회적 불합리와 정의롭지 못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화를 표출해야 하지 않을까요? 틱낫한 스님께서는 화는 독이라고 하십니다. 화는 자신을 태우는 불길이라고 하십니다. 화에 휩싸이면 이성을 잃어버린다고 하십니다. 사회적 불합리에 대해서 화를 낼 수 도 있지만, 연민을 느끼라고 하십니다. 연민은 강력한 에너지이며 이는 강력한 행동으로 옮기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화는 눈을 멀게 하지만 연민은 현명하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불합리한 상황을 고찰하여 잘 이해 할 때 연민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비행 청소년이 있습니다. 그 소년이 빵집에 들어가 빵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잡혔습니다. 빵집 부모님도 안계시고 여러 동생 들을 책임지는 소년가장입니다. 배가 고파서 그랬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연민의 감정이 생길 것이며 화는 사라진다고 틱낫한 스님은 말씀하십니다.또 한가지 의문은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 우리의 삶은 현재에 이뤄진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현재에 느끼고 깨달으라고 하셨는데 그럼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포자기 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도 바람직 할 수 있는지? 이 질문에 틱낫한 스님은 우리가 현재에 집중한다고 해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아니며 과거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뜻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만일 현재에 깊은 뿌리와 기반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행동에 대한 후회에 사로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면 과거와 미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십니다. 왜 진작 아이를 폼에 안고 어르듯이 보살핌을 마음에 주지 못했을까 하는 미안한 감정이 생깁니다.스님이 책 마지막에 써 놓으신 생활에 에너지를 더해주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행복감을 느끼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에게 화나게 한 사람을 용서하면서 호흡을 하고 ,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공기, 대지, 여러 가지 사물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사는 방법입니다. 여러 가지 행복이 나의 주위에 있다는,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 하는 수행은 나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방법입니다.틱낫한 스님의 강연에 갔을 때에 스님께서 호흡과 보행을 자각하시며 걸으시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걷기 명상은 왼발에 숨을 들이 쉬고 오른발에 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는 것입니다. 수 만 가지 생각을 붙잡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호흡으로 돌아옵니다. 호흡과 보행을 직접 몸으로 체험을 했을 때 침착불어 마음에 커다란 평온이 느껴졌습니다. 만일 화가 났을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정념(늘 깨어있기), 이해, 연민 (사랑) 입니다. 스님의 ‘몸의 긴장을 푸는 수련 방법’ 이란 수련을 해 보았습니다. 가장 좋은 자세로 눕고 몸의 각 부분들에 집중하면서 자각이라는 사랑의 에너지를 쏘이라고 하셨습니다. 평상시 자리에 누워 할 시간이 없으므로 잠자기 전에 잠자리에 누워서 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나에게 불편하지 않게 항상 일해 준 심장, 뇌, 뼈 등 모든 신체 부분에 감사의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 자각 할 수 있고 필요 없는 욕심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된다면 내가 삶을 사는데 훨씬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작은 수행에도 우리의 행동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부드(Buddh)’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 아는 것, 이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잠에서 깨어 이해하게 된 사람을 동양에서는 붓다라고 부릅니다. 붓다가 되는 것은 그 만큼 간단한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고, 이해하고 ,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불교인들은 ‘나는 붓다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들은 자기 자신이 가진 이해하고 깨어나는 능력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 안에 있는 붓다에게 귀의 합니다’ 입니다. 우리 모두는 깨어 있는 사람, 아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 곧 붓다인 것입니다. 붓다는 우리들 모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고, 이해하고, 사랑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수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것입니다. 스님 또한 그 점을 강조 하셨습니다. 수련을 통해 단번에 깨달을 수는 없지만, 이세상의 작은 평화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작게는 개인에게 평화가 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가정의 평화가 오고 더 크게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나날이 각박해져가는 물질문명 속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