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제 1 장 북한 정치 체제Ⅰ.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의 특징1. 주체사상(主體思想)2. 정치체제와 권력구조3. 권력 승계Ⅱ. 북한 정치 체제의 성격1. 1당 독재2. 수령지배체제3. 세습 영도체제Ⅲ. 북한의 실질적 권력기구 - 조선노동당1. 조선노동당의 형성과정2. 조선노동당의 조직 및 운영3. 북한의 정권기관제 2 장 북한의 정치변동Ⅰ. 북한정권의 수립과정1. 해방이전의 공산주의 운동2. 해방이후 북한정권의 수립과정Ⅱ. 김일성 체제1. 김일성은?2. 단일지도체제 성립과정3. 유일지도체제4. 주체사상Ⅲ. 김정일의 권력 승계1. 김정일의 등장2. 후계체제의 성립3. 군 장악과정Ⅳ. 김정일 체제1. 김정일은?2. 우리식 사회주의3. 체제관리론Ⅴ. 김정일 체제의 변화전망1. 현상유지 시나리오2. 붕괴 시나리오3. 체제 변화 시나리오4. 통합적 결론제 1 장 북한 정치 체제Ⅰ.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의 특징1. 주체사상(主體思想)북한의 정치체제 및 권력구조, 그리고 대내외정책 등을 논하려면 ‘주체사상’이라는 북한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지도이념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그만큼 북한사회에서 주체사상은 정치발전의 목표와 정치활동의 지침을 결정해 주는 최고이념이며,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상생활의 행위준칙을 결정해 주는 도덕규범이자 행위의 선과 악을 가려주는 종교이기 때문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체사상은 북한사회의 경전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사회에 확고히 정착되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김일성 1인지배체제의 확립과정과 맥을 같이하는데, 북한에서 ‘주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5년 12월의 소위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김일성 연설문에서였다.)사실 그 연설은 자신이 저지른 6ㆍ25전쟁이 실패했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론이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있어 궁지에 몰릴 것을 우려한 김일성이 책임을 정적들에게 전가할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다. 실제로 김일성은 이 연설을 통해∼50대 기술관료 내지 경제전문가들이 당·정 요직에 전면 배치되는 대신에 50∼70대 노년층은 퇴진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김일성 주석 사망 후 북한 권력엘리트 내부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7년 각 시·도의 농정 책임자인 농촌경리위원장을 전격 교체하면서부터이다. 평안남도·양강도·황해남도 등 6개 도·직할시 농촌경리위원장이 물러났는데, 퇴진한 이들은 60∼70대 노년층들이었으며, 빈 자리에는 실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40∼50대로 메워졌다. 곧이어 지방행정을 책임지는 도·군당 책임비서 및 인민위원장, 공장·기업소 지배인들이 곳곳에서 교체되었다. 13개 도·직할시 당책임 비서 및 인민위원장 가운데 새로운 인물이 80%를 넘어섰다.간부 교체는 1998년 7월 26일에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선거에서 두드러졌다. 대의원 687명의 64%에 해당하는 449명이 교체되었다. 9기 대의원선거 때의 교체 폭 31.4%(214명)에 비하면 2배가 넘는다. 최근 교체된 공장·기업소의 직장장·기사장, 협동농장 관리위원장, 경제기관 실무 간부 등이 대의원에 대거 발탁됐기 때문이다.또한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군부인물이 107명을 차지했는데, 이는 9기의 62명에 비해 약 2배가 증가된 것이다.중앙간부들도 큰 폭으로 교체되고 있는데 50∼60대 신진 전문 관료들이 대거 승진·등용됐다. 부총리 조창덕(전 채취공업부장)과 곽범기(전 기계공업부장)가 대표적이며, 전기석탄공업상으로 발탁된 한봉춘, 체신상이 된 이금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새 인물들은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혁명 2세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0년대에 주도한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떠오른 인물들은 일부 노년층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해외유학 경험이 없으며 1960년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같이 대학을 다녔거나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이다.2) 권력구조북한의 권력구조를 보면 모든 국가권력은 노동당에 집중돼 있으며적 영도를 철저히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1인 지배체제를 제도화하고 있다.북한사회에서의 수령은 『전당의 조직적 의사의 체현자』이며 『당의 최고 령도자』로 사회 정치적 생명체의 생명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령도의 유일 중심이라고 하여 그 절대적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북한은 수령의 『령도의 유일성』이 보장되고 있다는 북한식 사회주의 고유의 특성이 있으며, 이로 인하여 소련 및 동구 등의 여타 사회주의 국가가 좌절된 것과는 달리 북한식 사회주의제도의 공고성과 불패성이 담보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북한의 수령은 현재까지 김일성 개인에만 한정되어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에도 그를 영원히 수령이라고 부르고 있어 김정일의 수령 계승문제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3. 세습 영도체제북한 정치체제의 또 하나의 특성은 『당의 령도의 계승성』에 있다. 이것은 수령의 후계자 문제를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김정일을 ‘당과 혁명의 위업을 위대한 계승자로 높이 추대함으로써 당의 사상과 영도의 계승문제를 빛나게 하였다’고 하면서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단순히 김일성의 권력을 계승한 통치자가 아니라 김일성의 대를 이은 후계자로서 김일성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체제는 자율적인 통치체제라기 보다는 김일성 체제의 연장선위에 높여 있는 종속적인 체제의 성격을 띌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김정일 체제는 전근대적인 왕조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혈연적 세습체제 형태, 이른바 족벌정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온갖 논리를 동원하고 있다.이와 같이 북한의 정치체제는 사회주의 국가의 보편적 특성이 1당 지배체제라는 점과 북한 고유의 특성에 기인한 수령지배체제ㆍ세습영도체제라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 그 당의 영도, 수령의 유일적 영도, 수령의 계승성 등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체제라 할 수 있다.Ⅲ. 북한의 실질적 권력기구 - 조선노동당1. 조선노동당의 형성과정북한은 조선공산당이 1925년에 창라 하겠다.④ 중앙인민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는 구 사회주의 헌법에 의해 신설된 이래 형식상 국가주권의 최고지도기관으로 수위인 주석의 직접 지휘, 감독, 통치하에 사업하도록 되어 있다.)중앙인민위원회는 주석, 부주석, 서기장 및 위원들로 구성되며 분야별 위원회로 대내정책위원회, 대외정책위원회, 사법안정위원회, 법제위원회, 경제정책위원회 등을 두고 있다. 중앙인민위원회는 그 인적 구성에 있어서 위원들 대부분이 당의 정치국원이나 비서, 정무원의 총리나 부총리 같은 당ㆍ정의 고위간부를 겸하고 있어서 당ㆍ정 협의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또한 제9기 1차 회의에서 구성된 중앙 인민위원회에세는 도(직할시)당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 전원을 중앙인민위원으로 선임하여 중앙과 지방간의 행정적 연계를 강화하고 dLT다.중앙인민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국가정책 수립㈁ 정무원 지방인민회의 및 인민위원회 사업의 지도㈂ 사법, 검찰기관의 지도㈃ 국가기관의 법 준수 지도㈄ 헌법, 최고인민회의 법령, 주석명령, 국방위원회 결정ㆍ명령, 중앙인민위원회 정령ㆍ 결정ㆍ지시의 집행상황 감독 및 그에 위반된 국가기관의 결정ㆍ지시 폐기㈅ 정무원의 위원회, 부 설치 및 폐기㈆ 최고인민회의 휴회중 정무원 총리의 제의에 의하여 부총리, 위원장, 부장 및 기타 정 무원 성원들의 임명 및 해임㈇ 중앙인민위원회 부문별 위원회 성원들의 임명 및 해임㈈ 조약의 비준 및 폐기㈉ 외교대표의 임명 및 소환결정㈊ 훈장ㆍ명예칭호 및 외교직급의 제정, 훈장, 메달, 명예 칭호수여㈋ 대사권 행사㈌ 행정구역의 개편㈍ 정령과 결정ㆍ지시 등의 제정공포 등이다.제 2 장 북한 정치의 변동Ⅰ. 북한 정권의 수립과정(1945~1948)1. 해방이전의 공산주의 운동해방 이전의 공산주의 운동은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시베리아에서 시작되었는데, 대체로 반일 독립의 정치적 목적으로 공산주의운동이 일어났다. 한반도 내에도 1923~1941년까지 각종 좌익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25년 4월 17일에는 코민테른 일지도체제단일지도체계와 유일지도체계는 유사한 듯 보이나 차이점이 존재한다. 단일체계는 일인 절대 권력에 기초한 지도체계 일반을 지칭하는 반면, 유일체계는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지도자인 수령을 중심으로 전체사회가 하나의 l틀로 구성되어있으며, 수령의 유일적 지도가 국가기구 전체 사회에 수용 되는 체계를 말한다. 또한 유일지도 체계는 유기성이 매우 높은 사회체제를 지향하며, 북한에서는 이를 ‘수령의 유일적 령도 체계’ 라고 표현하고 있다.)② 유일지도체제 성립과정ㄱ) 8월 종파사건(연안파의 숙청)-발단: 북한은 6·25전쟁 이후 1953년 8월 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서 '중공업 우선 경공업·농업의 동시적 발전정책'과 '농업협동화정책' 등을 전후복구건설노선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최창익·박창옥 등 '연안파'와 '소련파'는 이러한 정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특히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이 북한에 전해지자 이를 계기로 반대세력들은 8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지배세력에게 집단적으로 도전했다. 이들의 비판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비판, 전후 복구사업에 관련된 제반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당시 권력핵심에서 소외돼 있던 부수상 최창익을 비롯한 연안파와 부수상 박창옥 등 소련파 잔존 세력들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당 지도부의 독주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세력을 규합해 김일성의 지도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평양주재 소련·중국대사관에도 거사계획을 귀띔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연고가 있는 군부에도 선을 대는 등 구체적으로 움직임을 진척시켜 나갔다. 이즈음 김일성은 경제원조 획득차 여명의 각료급 인사를 대동하고 56년 6월 1일부터 약 50일간 소련과 동구제국 순방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러한 장기 외유는 이들에게 더 없이 귀중한 호기였다. 그러나 사건은 계획단계에서 기밀이 누설돼 김일성 주류의 조직적인 반격에 부딪혀 좌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