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ⅰ서양사개설Ⅰ의 첫 주에 우리는 ‘블랙 아테나(Black Athena)’를 접했다. 소위 서양 문명의 기원이라 일컬어지는 그리스의 문명이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서양사의 기본 관념을 뒤집기에 충분한 충격이었다. 그리스가 받았던 영향들 중에서 특히 이집트의 영향력은 지대한 것으로 『블랙 아테나』에서도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리스 여신 아테나가 유색인(有色人)으로,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의 흑인이란 것을 보여주면서 그리스 문명형성 과정의 아프리카 문명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유럽중심주의적(Eurocentrism)인 관점을 아프리카중심주의적(Afrocentrism)인 관점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러나 여기서 든 첫 번째 의문점은 아프리카 문명, 특히 이집트 문명이 갖고 있었던 중대한 특징 중 하나는 기자의 피라미드나 스핑크스와 같은 거대 건축물인데, 그리스 문명에서는 거대 건축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바탕으로 문화를 꽃 피우고 있을 때 역시 이집트적인 건축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스가 이집트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면 왜 그리스에는 이집트적인 대형 건축물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블랙 아테나』에 드러난 버날의 주장에 따르면 이집트가 그리스를 식민지배 했다는 데, 이집트의 식민지배구조는 왜 이집트의 대형 건축물을 그리스에 정착시키지 못했을까하는 의문으로부터 아래의 글들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와 더불어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끼쳤던 것은 이집트나 소아시아를 비롯한 북부아프리카-오리엔트 지역에서만 비롯된 것이었을까?’는 의문도 해결해보고자 한다.Ⅱ. 서 론ⅱ - 내 머릿속의 아리안 모델과 고대 모델우리는 수업 시간에 아리안모델(Aryan Model)과 고대모델(Ancient Model)에 대해 배웠다. 또 그것이 우리의 역사적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배웠다. 먼저 아리안모델은 우리가 흔히 서양 역사의 기원이라 생각하고 있는 그것 - 이집트의 건축물과 그리스2년 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했던 이집트 피라미드와 관련 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다큐멘터리를 통해 피라미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피라미드에 대한 상식은 절대자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무덤으로, 수십 만 명의 노예가 동원되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한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이집트의 나일강은 주기적으로 범람했는데, 나일강의 범람기에는 나일강 유역의 모든 논밭이 물에 잠겨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백성들은 할 일이 없어 일손이 남게 되고, 그것은 국가 전체의 경제활동을 마비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이집트 정부는 백성들에게 공공정책사업의 일환으로 피라미드를 비롯한 기타 대형 건축물의 건설했다고 한다. 인부의 동원은 일당제로 운영되었고, 그 계약의 내용은 쿠푸왕의 사제였던 카이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그 계약의 내용 중에는 전갈에 물려서 3일 동안 나오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고, 아내의 출산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일을 하고, 하지 않고의 자유도는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실들은 피라미드 건축을 연상하면 떠오르던, 노예가 채찍을 맞아가며 사막의 뙤약볕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일하는 장면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피라미드는 단순히 왕의 무덤이 아니었던 것 같다. 피라미드가 단순히 왕의 무덤이었다면, 파라오 한 명의 무덤이 5개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한 파라오 시기에 5개의 피라미드가 축조된 적이 있으며, 한 파라오의 집권기에 여러 개의 피라미드가 축조된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었던 내용은 믿을만한 역사적인 증거로 제시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피라미드는 이집트인의 신앙 혹은 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피라미드와 미이라는 사후세계를 믿었던 이집트인들의 영혼의 귀환처였으며, 사후세계의 여행을 다 끝마치고, 이 세계에집트의 그리스식민지론을 반박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또 헤로도토스의『역사』에 나타나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 세소스트리스(Sesostris)의 원정을 보면, 이집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외원정이었지만 그것이 그리스 본토에 이르렀다고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그리스가 이집트의 통치 영역에는 포함되지 않았거나, 혹은 통치 영역이었음에도 강제적으로 누락시켰을 가능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크레타의 미노스왕에 대한 ‘우리가 들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최초로 함대를 보유했었다.’)는 투키디데스의 기록을 통해 대형함선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세력은 이집트가 아니라 미노스왕이 그 최초의 세력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헤로도토스의 기록과 투키디데스의 기록을 병렬해보면, 이집트의 그리스식민지론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시 에게해 및 남지중해 문명권에서 이집트는 문화 혹은 문명선진국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 철학자나 정치가?역사가들이 이집트를 탐방했고, 이집트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또 그리스 신의 이름과 그 개념을 이집트 신으로부터 차용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그리스가 이집트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직접적인 지배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기기 또한 어렵다.Ⅴ. 본 론ⅲ - 그리스 폴리스의 문명적 기원이집트와 스파르타의 유사점은 헤로도토스의『이집트기행』을 빌려 앞에서 잠깐 언급했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했던 또 한 가지는 그리스 반도에 있었던 많은 폴리스들은 각기 다른 문명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스파르타가 다나오스의 후손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 그리고 그 다나오스가 힉소스的 기원을 갖고 있다는 점)은 그리스에 있었던 스파르타가 이집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집트의 그리스식민지론을 뒷받침하진 않지만, 이집트의 강력한 영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리스에는 스파르타나 없었던 것일까?아리안 모델에서 제시하는 아테네=그리스의 공식을 성립시키는 시점은 델로스동맹의 자금이 아테네로 옮겨지면서부터이다. 아테네는 델로스동맹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찬란한 아테네 문화를 꽃 피웠다. 이때 아테네는 이집트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많은 대형 건축물들을 남겼다. 이것은 전적으로 아테네로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자금이 아테네로 들어가지 않고, 동맹의 초기 맹주였던 스파르타로 들어갔다면 스파르타에는 피라미드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스파르타에 피라미드가 남아 있지 않은 첫 번째 원인으로 스파르타의 자금력 부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스파르타에 피라미드가 남아 있지 않은 요인은 자금력뿐만이 아니다. 만약 풍부한 자금력만으로 그것이 가능했다면, 아테네에는 피라미드와 같은 대형건축물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테네에는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피라미드 건축은 금전적인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파르타를 포함하는 그리스 지역에 피라미드가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를 비롯한 이외의 그리스 전역에서는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 발생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스파르타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체에 피라미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전역에는 나일강처럼 큰 규모의 강이 흐르질 않는다. 또 흐른다 해도 그것이 범람하는 여건이 이루어질지도 미지수이다. 그것이 범람한다 하더라도 이집트 정도 규모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것 또한 불투명하다. 만약 그리스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세력이 존재했었다면 그것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 폴리스는 동맹을 통한 여러 개의 세력이 공존하는 형태를 취했고, 그것은 폴리스 하나하나의 역할로는 피라미드 건설과 같은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기삼각주는 약 1만 년 전 이상부터 형성되었던 것으로, 그 강의 규모나 식생 면에서 여타 문명 발상지 강의 질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된 유럽의 고대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하 고대 도나우 문명) 현재 발견된 유적?유물이 없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리스문명이 금속문명을 안고 시작했다면, 이 고대 도나우 문명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형성과 그 시기를 비슷하게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석기를 기본으로 하여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나 점토 혹은 갈대’)를 문명적 기반으로 삼았다면 현재까지 유물?유적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명맥이 도나우강의 삼각주에서 끝나버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리리아나 트라키아 지역문명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고대 도나우 문명이었다고 생각한다.이 문명이 그리스문명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스 문명보다 먼저 형성된 문명이었다면, 그리스 북부 폴리스국가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문명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집트와 오리엔탈 문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Ⅷ. 결 론『블랙 아테나』를 읽고, 또 수업시간에 배웠던 고대모델을 생각해보았다. 먼저 필자가 블랙아테나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점은 이집트가 그리스에 직접적인 식민지배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집트가 남지중해를 비롯해 에게해 문명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영향은 직접적인 지배구조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남지중해 문명권의 활발한 인적?물적 자원의 교류를 통해서 였다. 과거 李氏朝鮮만 보더라도 明이나 淸의 문화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지만 직접적인 식민지배를 받았던 적은 없다. 高麗時代에도 원간섭기를 제외하고는 중국에 자리한 많은 국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나, 직접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