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서론: 새로운 도전, 그리고 성찰과 비전1. 목적21세기의 세계가 한국인에게 어떤 새로운 능력과 자질을 요구하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근접 미래사회에 대비한 한국인의 자세를 개발하고 그 모형의 현실화에 필요한 과제들을 살펴본다. 21세기 세계 속의‘한국인의 상’을 그려보는 것이 일차적 작업이다. 그러나 이 ‘한국인’은 ‘이상적 인간상’을 중심에 둔 초시간적 모형이기보다는 21세기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의 한국인, 이미 발생하고 있는 국내외 환경변화와 향후 예견되는 변화의 장들이 제기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의 한국인이다. 도전적 환경은 그에 창조적으로 적응하고 대응할 능력과 자질을 요구한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한국인의 출현’ 혹은 한국인의 ‘재탄생’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 한국을 연구하는 자들의 공통 인식이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 한국인의 정체성은?”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이끈 관심사이며, 한국인의 재탄생이라는 요청에 응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법률, 교육, 여성문제 등의 영역에서 어떤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하고,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2. 도전의 정의1) 21세기 국제 환경은 세계 주요 지역의 모든 사회적 활동 영역과 주민 생활세계에서 한편으로는 ‘세계성(globality)의 심화’라는 원심적 경향을, 다른 한편으로는 ‘국지성(locality) 혹은 지역성(regionality)의 유지’라는 구심적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하게 한다. 세계성은 지구촌 주민들이 그 생활세계, 사회활동, 이념, 가치관 등의 차원에서 ‘상호의존적이며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새로운 삶의 환경으로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발전을 의미하고, 국지성은 단위 국가, 사회, 지역이 국지적 결속, 통합, 공존의 가치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의 지속적 중요성을 의미한다. 세계성과 국지성은 일단 상반-대립적 경향처럼 보인다. 세계성의 가치가 지배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영역은 시장의 세계적 확대로 특징지워지는 경제 영역이며, 그것이라 규정할 수 있다.6) 세계성과 국지성의 상호 관계라는 관점에서 정의된 창조적 대응력은 국지적 차원에서는 시장과 사회의 병립을 추구하는 능력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각 지역 단위 사회들 사이의 협력의 수단들을 찾아내어 시장체제적 세계 단일화가 초래할 수 있는 비민주적 획일화를 방지하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공익의 명분과 보편적 가치, 다양성과 관용을 추구할 줄 아는 능력이다. 국지 차원에서 창조적 대응력이 단위 사회의 생존과 결속의 능력을 의미한다면, 세계 차원에서 창조적 대응력은 세계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관용을 증대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의미의 창조적 대응력을 우리는 ‘21세기 한국인의 자질’이라 규정코자 한다. 이 자질은 국지성의 자질과 세계시민적 자질을 동시에 의미한다. 21세기의 한국인은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인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국지 단위 사회의 시민이면서 또한 국제사회의 시민이어야 한다.7) 21세기의 국지 시민은 시-공간이 압축된 ‘하나의 세계’를 삶의 터전으로 갖게 되고 그 터전의 보존과 개발이 인류 전체의 공익이라는 준거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는 요청 앞에 서 있다. 정보소통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세계화’를 진행시키고 있고, 어떤 역사시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효율적인 국제 협력, 정보유통, 지식습득의 수단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수단들을 사용하는 능력은 말할것도 없이 창조적 대응력의 일부이며 그 능력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를 ‘아는’ 것이 자질이다. 정보의 세계화는 시장체제의 세계화를 보완한다. 경쟁력은 국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새로운 지식의 생산력, 습득력, 유통력에서의 기술고도화를 요구하며 그 고도화에 필요한 정책 수단의 동원을 요구한다. 그러나 국지적 결속과 세계적 협력의 필요성은 경쟁력의 고도화가 세계 공동체의 공존에 필요한 보편이익과 세계적 차원에서의 공공성의 가치들을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며 다양성과 관용의 가치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의미의 경쟁력과 공존능력은 세계성이냐 국지성이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략은 우리 근대사의 가장 불행한 국면의 하나이다. 사회 변화를 준비, 추진, 실현하려는 주민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결정, 신질서의 이념 확산과 그 이념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 동의와 수용, 새로운 사회적 가치-규범을 내면화하는 시민화의 과정 등은 전통사회가 근대 사회로 이행할 때의 필수적 단계이고 절차이다. 그러나 식민통치로 자율권을 박탈당한 사회가 그런 변화의 과정들을 ‘자율적으로’ 거치는 이행기를 가질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방과 함께 근대 국민국가-민주주의로의 급작스런 체제 변화를 맞게 되고, 이런 상황은 국가 수립 이후의 한국 사회를 4~50년에 걸친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에 빠트리게 된다.3) 이 혼란은 근대성의 이념과 가치체계를 채 내면화하지 못한 사회가 근대적 사회체제를 도입해야 했다는 사실, 그리고 민주주의 질서라는 것에 사실상 생소했던 사회가 민주주의 국가체제를 선택해야 했다는 사실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1948년 민주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내부적 민주 역량은 ‘외피 민주주의’의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고 근대적 제도들이 도입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내부적 근대성의 수준 역시 ‘표피적 근대’에 머문 것이었다고 말해야 한다. 한 사회의 근대성을 규정하는 핵심적 기준은 ‘합리성의 전영역적 확장’이며 한 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재는 기본 잣대는 ‘자율성의 전사회적 확대’이다. (일제 식민통치가 조선반도에 ‘근대’를 가져다주었다는 주장은 합리성과 자율성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사실의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일제 치하인 193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회가 상당 정도의 근대를 경험하고 있었다는 관점 역시 옳지 않다. 1930년대의 ‘근대’는 근대성의 이념과 가치체계의 자율적 내면화와는 거리가 먼 식민 치하의 왜곡된 표피적 근대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4) 1948년 국민국가의 수립이 근대적 민주사회의 조건을 사실상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국가 탄생이었다는 사실은 이 ‘국가’에 ) 시대는 새로운 정치질서, 제도, 문화를 요구함에 반해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전근대적 정치문화를 갖고 있다. 따라서 변화의 필요성과 변화를 거부하는 문화 사이의 부정합을 교정하여 국민적으로 체화된 ‘민주주의 이념’을 강고하게 하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하다.2) 민주주의 이념은 국가가 지배계층의 현상 유지를 위한 정권적 차원의 도구적 이념보다는 국민을 위한 이념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 이념을 공고히 할 국민적 담론형성이 필요하다. 이런 담론 형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는 전통적 이념과 새로운 이념의 ‘결합’을 모색해볼 수 있다. 신/구 이념간의 접목을 통해 기존 이념의 긍정적 변용을 꾀한다면 새로운 가치에 대한 저항이라는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3) 신/구 이념의 접목은 구체적으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의 강화’라는 형태로 추구될 수 있다. 전통사회적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는 한 측면에서 ‘고신뢰 사회’라고 할 수 있으나 신뢰가 집단 안에서만 강한 결속으로 작용하고, 집단 밖에서는 오히려 불신을 증가시키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소규모 내집단 속에 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신뢰를 현대적으로 조명하고 내집단의 규모를 확대하여 공적 결속력을 강화시킴으로써 소집단간 균열과 갈등을 줄이는 한편 확대된 대규모 집단의 규범을 개인이 인지-체화하게 하여 국가 전체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4) 공적 신뢰를 회복하여 사회적 자본을 보다 많이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적으로 강력한 정책 시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직적으로 구조화되고 수평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중첩적 불평등 구조를 제거해나가야 한다.5) 공동체와 ‘민족’의 개념을 복원해야 한다. 원천적으로 신뢰가 존재하는 공동체 개념과 민족 개념을 복원시켜 민주주의와 접목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서 ‘민족’이라 함은 서구 국민국가적 폐쇄성의 상징이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소집단간의 균열을 방지하며 인간성을 회복하고 통일 염원을 살리는 집, 고립된 규범의 폐해는 실로 큰 것이었다.법생활과 법문화의 이같은 왜곡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무엇보다도 법의 이름으로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 때문이다. 법을 안지키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었던 일제 강점기의 기억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다음으로는 헌정사의 굴곡 속에서 비상입법기구 즉 사이비 입법기관들에 의해 국민의사 수렴과정을 생략한 채 사회현실과 괴리되고 국민정서에 맞지 않은 법률들이 무더기로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법도구주의가 만연한 풍토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이다. 법을 사회통제와 압축경제성장을 위한 도구주의적 측면에서만 운용한 대가는 인명을 경시할 정도로까지 치달은 안전불감, 정경유착에 수반하는 부정부패 등 총체적 공공신뢰의 부재로 나타났다.이제 법치문화의 미성숙을 청산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시대의 바람직한 규범인상은 어떤 모습의 것이어야 할까?1) 새천년을 향한 인간상의 밑그림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인권의 우위를 지켜나가는 법치주의의 실현에 있음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2) 법률생활인을 넘어서서 헌법생활인을 지향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하는 헌법은 종교적 복음서가 일상에서 그 빛을 잃은 세속사회에서 생활인들을 위한 복음서이다.3) 참다운 규범인은 ‘자유로운 개인’에서 ‘연대하는 개인’으로 새로이 탄생한다. 이는 바로 참여민주주의의 생활화를 뜻한다. 공동체의 안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각자가 정치적 관심을 사화(私化)시키지 않고 이성을 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4) 국제규범을 창출하는 세계시민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세계화의 추세에서 제반 영역에서 요구되는 ‘세계적 기준(global standard)에 부합하는 법생활을 해야 한다. 세계규범을 정당화 해주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가치이다. 세계화란, 진정한 내면화의 의미로 새길 때, 투기자본의 전지구적 이동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가치(인권, 평화, 환경보호 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