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과 :학 년 :학 번 :성 명 :제출일 :제 목 : 1. 아인하르트는 누구인가? 그의 1 출생과 과정 2 주요활동경력, 3 그에 대한 평가 등을 설명하라.- 1 출생과 과정 : 아인하르트는 마인가우의 귀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인하르트와 엥길프리트였다. 그 부모는 아인하르트를 프랑크 프루트에서 동북쪽으로 약 60마일에 있는 헷세의 풀다 수도원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였다. 그의 부모는 그 기관의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791년에 대수도원장 바우골프에 의하여 엑슬라샤펠에 있는 샤를마뉴의 궁전으로 보내져서 샤를마뉴의 조원자와 친한 사이가 되어 샤를마뉴와 스스럼없이 어떠한 일들을 상의하였다. 814년 샤를마뉴가 사망한 후에 그 계승자 루이 경건왕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이 무렵 누이 임마와 결혼한다. 또한 네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이 된다. 815년에는 마인강변의 뮐하임을 왕으로부터 하사 받는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건강이 쇠약해져 830년에 엑슬라샤펠을 떠나 젤리건슈타르에 와서 살기 시작한다. 임마는 836년에 사망하였고, 아인하르트는 840년 3월 14일에 사망한다.2 주요활동경력 : 그는 『샤를마뉴의 생애』와 814년에서 840년까지 걸쳐 쓰여 진 것으로 추정되는 71편의 아인하르트의 편지들을 남긴다. 또한 종교적 내용을 가진 몇 권의 저술도 하는데 『성 마르켈리누스와 베드로의 유해의 이송과 기적들』,『순교자 마르켈리누스와 베드로의 수난』『십자가 숭배에 관한 소책자』가 있다. 그 밖으로 그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책들이 더 있지만 진위가 불확실하다. 또한 806년에 샤를마뉴에 의하여 교황 레오 3세에게 사절로 파견되었고, 813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샤를마뉴를 설득하여 그의 아들 루이 경건왕이 그의 공동 황제와 후계자로 대관하게 하였다.3 그에 대한 평가 : 발라프리트 슈트라보가 쓴 서문과 아인하르트를 직접 알고 지낸 9세기 사람들에 의하면 아인하르트는 과묵한 나머지 자기의 이름을 밝히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발라프리트 슈트라다. 그의 저술은 주로 편찬과 교육을 위한 것으로 그는 아인하르트의 Vita Caroli Magni의 개정판을 내면서 여기에 실은 서문을 원전에 추가하였다. 이 서문은 내용으로 볼 때 아인하르트가 사망한 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아인하르트를 대단히 찬양하고 추모했던 사람 중의 하나라 생각된다.(서문에서 신이 아인하르트를 지켜주는 것처럼 설명함)3. 샤를마뉴에 관해 현존하는 사료들을 간략히 설명하라.- 첫째로, 연대기를 든다. 741-829년에 기간을 다루는 『프랑크 왕국 연보』와 703-797년을 다루는 『모젤 연보』가 그것이다. 그밖에도 중요성은 덜한 몇 편의 다른 연보들이 있는데 무르바하, 로르슈, 생타망, 풀다, 잘츠부르크 등지의 수도원 연보들이다.둘째로, 샤를마뉴가 발포한『프랑크 왕국 법령집』셋째로, 카롤링조의 왕들과 황제들이 통신문이 있는데, 교황들과 교환한 편지들을 모은『카롤링 사본』과 일반적인 편지들을 모은 『카롤링 시대의 서한집』이 있다.넷째로, 라틴어 전기, 아달하르트, 알퀸, 리웃거, 슈투룸, 비그베르트, 그리고 빌레하트와 같은 당대 인물들이 전기와 트리예의 주교 테가누스와 이른바 리무쟁 천문학자에 의하여 쓰여 진 루이 경건왕의 두 전기가 있다. 여기에 부제 파울루스가 쓴 『멧츠 주교들의 행적』과 작자불명의 『퐁터넬 대수도원장들의 행적』과 같은 작품이 추가된다.다섯째, 샤를마뉴 자신의 전기 내지 의사 전기가 잇는데, 829년과 836년 사이에 아인하르트가 쓴 『샤를마뉴의 생애』와 샤를마뉴가 사망후 884년에 샤를비만왕을 위하여 생갈 수도원의 수도사 말더듬이 놋커가 쓴 산만하고 일화적인 『샤를마뉴의 행적』이 이에 속한다.4. 아인하르트는 1 왜 이 책을 왜 쓰게 되었고, 그 기록 시점은 언제인가? 2 이 책의 중요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이 책의 저자로서 그가 갖는 3 장점과 4 한계점은 과연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동기와 시점 : 머리말에서 저술 목적은 샤를마뉴의 공적인 역사를 기록하는 것과 황제의 생활과 그 일상적인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는 권세와 교회와의 연합을 이루었고 서유럽에 법과 질서를 확립하였고 기독교 전파에 공헌하였다.이 저자의 장점 : 샤를마뉴가 재임 기간 동안에 서슴없이 아인하르트에게 자문을 구했었으며 그의 아들들과도 돈독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었다. 또한 여러 서적들을 접하고 읽을 기회가 있었으며 그 저서들에서 아인하르트는 샤를마뉴의 인격에 관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며 그의 문체의 명쾌함과 내용의 간결성 등은 문학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많 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그는 항상 겸손하였다.이 책의 한계점 :첫째로, 정보가 때때로 부정확하다는 점이다. 사실적인 측면에서 보다는 부정확한 점들은 역사가들에게 지적된다.둘째로, 진실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샤를마뉴에 유리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여 나가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인하르트는 샤를마뉴와 그의 동생 카를로만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분석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첫 아내와 그녀의 아버지 데시데리우스를 어떻게 대하였는가 하는 점에 관하여 전혀 서술하지 않고 이다.셋째로, 머리말 이외의 곳에서는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사료 집들을 사용하였는데 프랑코 왕국 연보 와 멧츠 주교들의 행 적 그리고 황실 문서고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넷째로, 아인하르트가 우리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비범한 일련의 사건들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전기는 지극히 짧다는 것이다. 다른 전기들에 비하면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샤를마뉴 같은 위대한 왕은 치세를 적기만 해도 족히 한권은 나와야 하지만 아인하르트는 그의 저서를 매우 간략하게 정리했다.다섯째, 이 작품에는 그것을 특별히 830년대에 젤리건슈타트에 쓰인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불 때 더욱 기대되지 않는 이상한 원숙함이 눈에 뜨인다는 점이다.5. 이 책의 내용 중에는 1 부정확한 면이나 2 일부러 서술을 누락한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 각각랑크 왕국 연보와 달리 두 가지를 바꾸는데 하나는 전군을 하물 행렬의 끝 부분과 그 부분을 지원하며 행진하고 있던 후위 부대로 바꾸고 또 하나는 엑기하르트와 안쉘무스와 롤랑의 이름을 든다. 샤를마뉴의 정복기의 범위에서는 실제로 정복하지 않았던 아키텐, 토르토사, 에르보강까지 점령했다고 기술한다. 대외 관계에서는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정확하지 않고, 801년에 하룬 알 라시드가 샤를마뉴에게 코끼리를 보냈다고 하는데, 이는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이 책에서는 정보가 부정확하고 진실을 흐리게 하고 독자에게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아인하르트가 샤를마뉴에 대해 좀더 유리하게 쓰고 그를 더 위대하게 보이려고 한 취지에서 그런 것 같다.6. 샤를마뉴가 수행했던 1 주요 전쟁들과 그 전쟁을 통하여 어떠한 영토들을 획득했는지를 간략히 지적하고 2 그가 이룬 정치적 업적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라.- 주요 전쟁 : 아키텐 전쟁, 롬바르디아 전쟁, 작센 전쟁, 스페인 원정, 브르타누인들과 베네벤토인들의 항복, 타씰로와 바이에른 출정, 슬라브 전쟁, 훈족과의 전쟁, 데인 전쟁이 있다. 샤를마뉴는 많은 전쟁을 통해 그 아버지 페핀으로부터 물려받은 프랑크 왕국을 2배로 확장시켰다. 그 영토를 보면, 아키텐과 가스코뉴와 에브로강에 이르기까지 피레네 산맥의 전 지역을 병합하였다. 그는 다음으로 아오스타로부터 베네벤토인들과 그리스인들 사이의 경계선이 있는 하 칼라브리아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1000마일 이상 되는 영토인 이탈리아 전체를 정복하고, 작센을 정복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이스트리아와 리부르니아와 달마티아를 정복하였고, 끝으로 그는 라인강과 비스툴라강 그리고 대양과 다뉴브강 사이의 게르인강과 비스툴라강, 그리고 대양과 다뉴브강 사이의 게르마니에에 거주하고 모두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지만 풍속과 복식은 서로 많이 다른 모든 거칠고 야만적인 부족들을 정복하여 속국을 만들었다.역사적의미 : 780년대 이후에 섹슨족을 공격한 것은 오늘날의 독일이 유럽 역사 무대에 본격적으고 보는가? 2 샤를마뉴는 독실한 종교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될 수 있고, 반면에 무식하고 만행을 일삼는 인물로 묘사될 수도 있는데 그가 지닌 이러한 도덕적 양면성에 대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샤를마뉴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수십 번의 전쟁을 치러 다른 민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색슨족과의 전쟁(작센 전쟁)에서는 자기 군이 패한 후 다시 출정하여 승리한 후 하루에 4500명의 사람을 죽이기까지도 한다. 자기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은 곳에서는 인정을 남기지 않고 정벌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넓은 영토와 황제의 관까지 받지만 인정사정없는 무자비한 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순한 호랑이가 한 번 화가 나면 보이는 것이 없듯이… 하지만 샤를마뉴는 한편으로는 매우 충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자상한 아버지였다. 아인하르트가 그의 책에서 기술한 것처럼 샤를마뉴는 아침저녁으로 교회를 나갔고 특별한 일이 있기 전까지는 빠지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비록 자신은 문명에 가까웠지만 학자들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했고 늦은 감이 있지만 글을 배우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또한 사심 없이 자선 활동에도 열성적이었으며 교회를 소중하게 여겨 많은 선물과 보석도 기부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샤를마뉴는 단지 무자비한 학살자나 무식한 황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샤를마뉴가 영토 확장을 위해서 잔인하게 일을 행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문화를 사랑하고 이를 부활시키려고 한 점은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며 이런 점에서 샤를마뉴는 뛰어난 황제였다고 할 수 있다.8. 799년, 로마 귀족들과 교황 레오 3세간의 발생한 불화 사건의 1 내용은 무엇인가? 2 이 사건은 교황과 황제에게 각각 어떤 기회를 부여하는가?- 이 사건의 원인은 레오 3세가 로마 귀족과 관련 없는 교황청 직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로마 귀족의 일부가 그 즉위를 시기하였을 가능성과 그의 삶에 부도덕한 점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뽑힌다. 그 내용은 799년에 일부 귀족들이 거리에서 그를 급습하여 구타하였고 혀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