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포 트제국의 지배자들을 읽고..참된 진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어디서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에는 미국에 대한 언론이 어디까지 진실이며 거짓인지 알 수 없었으며 섭불리 판단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서 미국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의 평과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인류의 보편의 가치인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보이려고 하지만 미국은 이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일들을 서슴치 않더군요. 또 미국은 어느 나라 보다도 빈국에 원조를 많이 하는 구호자이며, 세계 각지의 분쟁을 도맡은 해결사이지만 비난도 많이 받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이러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전 이 책을 통해 이런 미국의 이중성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얼마 전에 미국은 9.11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테러범 색출에 적극 나섰는데 이는 미국으로써 당연한 행위이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이분법의 사고로 아군 아니면 적이다라는 식으로 테러전쟁에 나서서 아프카니스탄을 치고 각 나라의 테러들과 전쟁을 하면서 당시 테러로 죽은 6000명의 생명도 보다 몇백배 많은 생명들을 죽인 것은 정말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아니~ 자국민이 중요한만큼 다른 나라 국민도 중요한데 이런 일들을 저지른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바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한 테러를 잡기 위해서 한 나라를 친 것은 정말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완전 일방적인 전쟁이지 않았습니까?~ 또 미국언론들은 이 전쟁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TV속에 닮기 보다는 전시상황과 폭격장면 보도하면서 미국의 테러전쟁을 정당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것을 보면서 언론의 역할까지도 잊은 미국언론에 대한 믿음이 없어집니다. 우리나도 요즘 sofa협정, fx사업등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피해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겉에 비치는 모습이 아닌 속을 봐서 다시 미국을 제조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21세기에 살고 있는 지금 21세기 최대 국가로 자리 잡은 미국이란 국가는 21세기에두 그 영향을 미칠거라는 생각이듭니다. 지금 미국은 최대국가 자리에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 일본, 중국등 하지만 여전히 21세기에두 미국은 패권을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패권국가인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허울좋은 인도주의적 명분을 내서워 세계질서를 마음대로 농락하고 있는 지금 세계 경찰국가로 보일려고 하지만 이것을 냉철한 이성적 비판으로 잘 판단해야할 것 같습니다.
제목: 나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1. 서론 - 나노의 정의와 나노시대의 도래2.본론(1)나노 기술의 개념(2)정부와 민간의 나노기술 개발투자 현황(3)최근 나노 기술 개발의 동향A.점토-고분자 나노복합재B.반도체 성질을 갖는 광학고분자 복합재료C.파괴인성이 4배 이상 개선된 초미립 SiCE.나노미터지름 세라믹 다공체의 개발F.나노콤포지트 압출혼련기술 확립(4)나노 기술의 적용A.제약B.가전 및 자동차C.컴퓨터 및 반도체D.소재(5)생활속의 나노3.결론 - 나노의 전망 및 미래1. 서론나노의 뜻은 1/1000000000을 칭하는 말이다10억분의 1크기로 nano-technology의 사전적 정의 10억을 뜻하는 접두어이며, 1nm는 10 이고, 1 은 원자의 크기에 가까운 길이이므로 나노테크놀러지는 1nm 수준의 가공정밀도를 요구하는 기술이다현재의 가공도는 실용적으로는 5 m, 특히 공들여 만들어진 전자 부품 등에서는 20nm 정도이다. 이것을 다시 1자리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전자공학 분야에서는 nm의 정밀도가 요망되며, 이것이 실현된다면 대규모 집적회로(LSI) 등의 제조기술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다.이렇듯 초정밀소자를 개발해 의약이나 전제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고나노테크놀로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이너스페스라는 영화가 있는데 나노테크놀로지로 사람이 탄 로봇을 작게 만들어 사람 몸에 직접 들어가 암세포나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내용다.물질을 원자나 분자단계에서 규명하고, 그 구조와 구성요소들을 조작해 초미세 제품을 만들어내는 나노기술이 전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2. 본론(1)나노 기술의 개념그럼 나노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 우선 나노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자. 나노(Nano)는 작다는 뜻이고 이 용어는 10-9m(미터)을 표현하는 단위로 고대 그리스의 난쟁이라는 의미의 'nano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만약에 우리가 야구공을 지구 만한 크기로 확대시키면 원자들은 포도송이 만한 크기로 눈에 띄게 된다. 이 원자들을 세네 개정도 나 생각하고 있다. 나노기술자들은 이 탄소 빌딩블록이 다이아몬드를 값싸게 그리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에 사용될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차후에는 다른 더 큰 소자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쓰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소자들을 만들어낼 것을 꿈꾸고 있다.이러하듯이 나노재료의 기술성장은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신소재 및 환경 등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꿈의 기술이라고 불리는 나노재료분야에 대한 정보를 살피고 미래지향적인 연구방향제시를 위해서 선진국의 주요연구성과를 살펴봄으로 해서 국내외 기술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2)정부와 민간의 나노기술 개발투자 현황각국 정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노기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활발한 투자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1990년대 중반 국립과학재단(NSF)이 세계기술평가센터(WTEC)를 통해 나노기술의 연구개발 동향을 조사한 후 1998년부터 12개 연방정부기관이 참여하는 국가 나노기술개발전략(NNI)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지난해 NNI에 4억2300만달러의 예산을 지출했다. 지난해 나노기술 연구개발 예산으로 3억9600만달러를 사용한 일본은 NNI와 유사한 기술개발 종합계획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일본은 5~10년 후 실용화를 목표로 수요지향형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유럽연합(EU) 국가들은 연구소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연구개발을 국가차원으로 통합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며, 중국도 지난 2000년부터 4~5년의 중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페인의 시장조사기관인 CMP 시엔티피카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각국 정부는 나노기술 투자에 총 12억달러를 쏟아부었다.민간기업의 개발투자도 활발하다. 전세계 주요업체들이 나노기술을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삼아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뉴욕의 투자업체인 럭스(Lux) 캐피털 그룹의 조슈아 울페 공동대표는 올해의 벤처캐피털과 기업의 투자규모는 2000년도의 2배에 해당하는 20억달은 충격강도를 개선한 것이다. 나일론 나노복합재는 충격강도를 제외한 인장강도, 굴곡강도, 탄성율, 내열성 등 모든 물성에서 본래의 나일론보다 우수하다. 이에 대하여 최근 Nanocor는 가공온도와 반응물의 조성을 조절함으로써 나노복합재의 충격강도를 본래 나일론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가공업자들은 나일론 나노복합재의 충격강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충격보강재를 첨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폴리스타이렌(PS) 나노복합재의 보다 실용적인 제조법도 발견되었다. 일본 토요다자동차의 한 엔지니어의 보고에 따르면 메틸비닐옥사졸린(methylvinyloxazoline) 5%를 스타이렌과 혼합하여 중합시킨 공중합체는 특히 강도가 우수한 나노복합재를 형성한다. 이는 메틸비닐옥사졸린 단량체의 극성기가 고분자 사슬과 표면처리된 점토 간의 결합력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함량 4.8%의, 층간 박리가 이루어진 MMT(montmorillonite) 점토를 함유한 PS-점토 나노복합재는 일반 PS에 비해 인장모듈러스가 37% 높으며 연신율은 43% 낮다. 그러나 인장강도와 유리전이온도는 별반 차이가 없다. 1980년대 나노복합재 개발의 선구자였던 토요다자동차는 당시 자동차용 소재로서 PS 나노복합재 개발을 진행한 바 있다. 코넬대의 재료과학자 E. Giannelis 교수팀은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MMA) 나노복합재를 에멀젼중합으로 합성하였다. 이 나노복합재는 일반 PMMA에 비해 탄성율과 유리전이온도가 더 높다. 한편, 미시간주립대의 T. Pinnavaia는 "fluorohectorite"라는 점토 광물을 5% 함유한 실리콘 고무가 일반 실리콘 고무에 비해 높은 강도와 인성을 나타냈다고 보고하였다.B.반도체 성질을 갖는 광학고분자 복합재료반도체 성질과 광학적 성질을 동시에 지닌 고분자가 개발되었다. 이 고분자 복합 재료는 폴리(파라-페닐린바이닐린)과 실리카 나노입자로부터 만들어 졌으며 실리카 나노 입자의 조성비를 변화시킴으로써 고분자 반도체의 굴절율의 변화가 나타나며 전하 훨씬 못 미치는 온도이며 시간도 30분 이상 단축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제조된 세라믹재료가 가지는 파괴인성은 마이크론 크기의 분말을 이용하여 제조한 같은 재질의 재료에 비해서 약 400%가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탄화물, 질화물, 붕화물, 규화물과 각종 산화물로 구성된 세라믹 재료의 성형이 가능하다고 예상되고 있다.D.나노결정입자의 표면 조절나노결정 화합물을 이용한 신소재 개발의 선두주자인 Nanophase Technologies사는 미국에서 나노결정재료의 표면조절에 관한 특허를 취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기술담당 부회장인 Gina Kritchevsky에 의하면 나노결정입자의 표면을 다루는 기술은 나노입자가 관련된 많은 응용분야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며 특히 전도성, 내마모성, 광학 코팅 분야에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공동발명자이며 연구담당 부회장인 Richard Brotzman 박사는 이 새로운 기술을 입자들이 산성, 중성, 염기성 수용액에서부터 플라스틱, 고분자등 유기물과 같이 유전상수가 2에서 20까지의 다양한 범위의 매체에 적합한 성질을 갖도록 조절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라믹 또는 금속 분말을 코팅하고 감싸주기 위해 star-graft라 불리는 독특한 구조의 고분자를 채용하여 분말들이 넓은 범위의 전기적, 광학적, 화학적 거동을 할 수 있도록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Nanophase Technologies사는 또한 나노입자를 바탕으로 한 전자기 차폐용 또는 정전기 방지 투명 전도성 코팅에 관한 특허 출원중에 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산업용 제품 응용을 위한 나노결정 재료를 이용하는 기술적 방법을 제공하며 나노결정재료를 제조하는 독점적 기술을 사용하여 독특한 수행 특성을 가지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E.나노미터지름 세라믹 다공체의 개발일본일간공업신문(1998/12/21)에 의하면 구멍지름이 작은 mesopore와 micropore 영역에 속하는 균질한 세라믹 다공체의 개발이 주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액체분리용화전공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의 나노콤포지트(Nanocomposite)를 압출기 혼련법으로 제조하는 기술을 확립, 최근 오오이타 공장에서 폴리아미드66(나일론66)와 폴리아세탈(POM)수지 콤포지트로 실용화했다고 보도하였다. 합성마이카(Mica)를 토대로 한 나노미터(1/10억㎜) 수준으로 필러를 수지중에 균일 분산시킨 신규 복합재료로 첨가량이 몇%의 소량에서도 수지의 내열성과 강성을 대폭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최대 특징이다. 또한, 이 기술은 폴리올레핀으로부터 엔플라, 그 외에 마스터배치의 나노콤포지트까지 적용할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을 살려서 전자, 자동차, 산업기기분야를 중심으로 제품의 종류를 확대하여, 2000년을 목표로 1천 톤 이상의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압출기 혼련법으로 엔플라 나노콤포지트를 상업 생산하는 것은 세계에서 최초이다.새로운 용도개척분야로 이미 유리섬유를 이용하지 않고, 높은 강성과 난연성을 가지며, 나아가 비할로겐의 폴리아미드수지를 개발하는 등 엔플라의 새로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이번 신제법은 나노레벨의 필러 제조와 수지의 압출기 혼련기술을 융합함으로써 확립했다. 필러로는 층상점도광물의 일종인 합성 마이카를 이용하고 있으며, 마이카의 팽윤특성을 살려서 층간에 유기양이온을 첨가하여 이온교환반응(Intercalation)을 실시, 나노수준의 필러를 얻는다. 목적에 따라 필러의 첨가량을 조정하여 기존의 압출기(2축)에서 수지와 블렌드하여 나노콤포지트를 제조하는 방법이다.이 기술은 폴리올레핀으로부터 엔플라, 고농도(마스터배치)의 나노콤포지트, 여기에 3차원, 4차원계의 하이브리드 그레이드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이 회사에서는 먼저, 제1탄으로서 이 기술을 나일론66와 폴리아세탈에 적용하여, 오오이타 공장에서 양산화에 착수했다. 나일론66 콤포지트는 일반그레이드 외에 비할로겐으로 非인계 그레이드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 그레이드는 국제적인 난연지표인 미국 UL 규격의 94V-0, 94V-2를 취득했다. 내열성은 표준그레이드에 비해 있다.
리 포 트(직장과 심리학)막상 나의 직장과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니 그 동안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 습니다. 전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 정해진 틀이나 교육 받기 보다는 항상 나 자신을 믿고 내 의지대로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이런 행동들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게 살아 왔다고도 보일수 있지만 전 누구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기 보다는 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가는 능력을 키울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 저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저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사람도 소중하다고 생각도 해서 다른사람도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요. 이런 장점이 있는 반면에 전 단점이 있다면 틀을 너무 무시 해서 행동이 틴다는 것입니다. 그게 좋은거 일수도 있는데 나쁘게 보일때두 있습니다. 이제 대학교도 들어오고 내 미래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나이가 되니까 저도 저의 문제점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저의 미래에 대해서 이번 리포트를 계기로 더 깊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의 인생과 나의 진로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진로는 내가 생각해야 되는데 지금까지 내가 생각 해 놓은건 뭘까?~~ 항상 아버지께서 어릴 때 큰사람이 되라~ 사나이는 꿈을 크게 가져야한다라고 항상 말씀 하셨습니다. 저 또한 평범하게는 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부자가 되자 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길을 걸으면서도 누가 사업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 만 더 노력한다면 돈을 더 많이 벌수 있을텐데 왜 저렇게 사업하는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보면 그 사람들은 큰 꿈을 가져서 도전하기 보다는 현실에 만족하면서 지금 이대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어떤 책에 보니까 부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큰부자는 시대를 잘타고 나야된다고 적혀있더군요. 저 또한 큰부자란 시대를 잘타야 된다구 생각하고요. 기회를 잘 잡아야 된다는 뜻이겠죠.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만큼 기회를 잡기 위한 사람이 되어있어야 해야되는거 구요. 그럼 내가 기회를 잡기위해서 내가 지금 하는건 무엇일까?~~ 사실 전 경상대에 온걸 만족하지 않구 있습니다. ㅜ.ㅜ 경상대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와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대학도 넓고 좋은교수님도 많습니다. 또 대학이 중요한건 아닙니다. 나 자신이 노력한다면.. 하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기회는 진주보다는 서울에 더 많이 있고 서울보다는 뉴욕에 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그건 큰 도시 일수록 큰사람이 많고 보는게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편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업을 한다면 세상의 흐름을 잘 알아야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으로는 세상흐름은 사람의 관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요즘 다른 사람들의 입장들을 많이 이해 해볼려고 노력을 합니다. 심지어 tv를 보면서 그 사람 말 한마디 한마디 까지도요. 기회란건 잡을려고 해서 되는건 아니지만 전 오면 놓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습니다.아직 꿈은 막연합니다. 아직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요. 지금 제가 할수 있는건 항상 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제 맘을 다스리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년전부터 우리나라 상업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와 세계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 비즈니스 타임즈랑 폴베스코리아 잡지책 계속 읽는데 아직두 뭘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문뜩문뜩 아이디어는 떠오르지만 그걸 가지고 사업을 할수 없는거 아니겠어요. 항상 아이디어는 메모하고 적으면서 언젠가 때가오면 이 아이디어를 쓰는 날이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상도라는 책과 부자 이재훈이 지은 책을 읽으면서 상도라는 개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불교에는 불도가 있듯이 상업에도 상도가 있습니다. 또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주위에 성공한 사람을 보면 자기만의 철학과 인생관이 정립이 된 사람만이 성공하더라구요. 그래서 전 제가 원하는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사업에 관한 책과 인성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합니다.저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직업은 사업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업가가 될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첫째, 매일 희망을 바라본다.둘째, 남의 소리를 잘 듣는다.셋째, 아이들과 잘 논다넷째, 노인들과 함께 즐긴다.다섯째, 여행을 즐긴다.여섯째, 책을 많이 읽는다.일곱째,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여덟째, 일을 잊지 않는다.아홉째, 사랑을 외면하지 않는다.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고찰제1장 서 론제2장 패권이론의 이해제1절 패권주의 정의제2절 패권주의 결정요인제3장 미국 패권체제의 형성과 변화제1절 미국 패권체제 형성요인1. 경제면에서의 미국 패권적 영향력2. 군사면에서의 미국 패권적 영향력제2절 미국 패권 체제의 변화와 요인1. 경제면에서의 미국 패권의 변화와 요인2. 군사면에서의 미국 패권의 변화와 요인제4장 미국 패권주의 사례보고와 그에 대한 비판제1절 세계 속의 미국 패권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1. 미국의 걸프전에서의 이라크 공격과 그에 대한 비판2. NMD(국가 미사일 방어체제) 추진과 그에 대한 비판3. 아프가니스탄 침공, 테러와의 전쟁 선언과 그에 대한 비판제2절 한국내의 미국 패권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1. 불평등한 SOFA(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체결과 그에 대한 비판2. F-15 전투기 강매와 그에 대한 비판3.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박탈 사건과 그에 대한 비판제5장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전망과 과제제1절 앞으로 전개 될 미국 패권주의제2절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과제와 역할1. 미국 패권주의의 과제와 역할2.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한국의 과제제6장 결 론제1장 서 론미국의 국제 전략을 보면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ㆍ인권ㆍ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요, 수호자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원조를 빈국 등에 제공하는 구호자이며, 세계 각지의 분쟁을 도맡는 해결사이면서도 칭송 받기보다는 오히려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 국제적으로 미국을 움직이는 원인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가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다른 나라 국민에 대한 무관심, 나아가 묵시적이건 현시적이건 상대국과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발과 비난을 살 수 밖에 없다.{) 이상우, 국제관계이론, 개정증보판, 서울 : 박영사, 1987, p.34.이제 미국은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가 왔다. 그릇된 우월 의식에 기초한 국익만 챙기려 한다면 작은 것을 얻을지 를 직접적으로 입지 않았고, 전쟁 물자의 생산과 공급으로 국내산업의 발전과 많은 경제적 부의 축척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유럽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유입으로 과학과 산업 기술의 급진전을 이루었다.{) Ibid., p.110.그리하여 1939년 886억 달러이던 국민총생산이 1945년에는 1350억 달러, 2200억 달러로 급격히 늘어났고, 1940년에서 1944년 기간 중 미국의 산업은 연간 15%가 넘는 전무후무한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며, 종전 수년 후까지도 세계 수출의 1/3을 차지했다.{)강근형, 패권이론과 미일 관계의 정치경제, 1994년, p.77.종전 이후, 자국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하려는 미국의 의지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자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 미국의 원조가 절실한 국가들의 동의로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에 1944년 전후 경제 재건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확립된, 브레튼우즈 체제에는 미국의 입지가 상당히 반영되었다.브레튼우즈 협정{) 1944년 7월 연합국 44개국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연합군 통화금융회의를 열 고 최종의정서를 작성하였다. 여기에 IMF협정조문과 세계은행 협정조문 2가지가 부록으 로 붙었다. 1945년 12월 관계국의 정식조인이 끝나고 1946년 6월에 세계은행, 1947년 3월 에 IMF가 업무를 개시하였다. 이 두기관은 통화금융면에서 국제경제의 자유화를 촉진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브레튼우즈협정에 의거하여 발족한 이 국제통화 금융체제를 브 레튼우즈체제라고 한다.은 자유 무역 질서를 형성하였고 통화체제에서는 달러를 기축{) 큰 영향을 끼치는 활동이나 사상의 중심.통화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국제 통화 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켰다.{)금은 19세기 및 20세기초까지 통화의 보조를 사용되었고, 통화의 국제적 가치는 그 통화와 금 과의 고정된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에 브레튼우즈 협정에서는 금을 기준으로 각국의 통화 등가를 정하고, 환율의 변동을 상하 1%내에서 유지시키도록 하여, 안무역수지까지 적자를 냄으로써 국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실업이 증대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해 닉슨 대통령은 달러화의 금태환{) 금이 다른 통화나 재화 또는 용역의 대가로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는것.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국제통화체제의 조정 능력 미비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패권의 약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1970년대의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달러화의 의존도 약화로 인해 국제 수지 가 더욱 악화되었고, 일본과의 무역수지 불균형으로 인해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레이건 행정부는 공급 중심의 경제 정책을 실시하여 무역 적자를 해소하려 했다. 초기에는 내수확대에 따른 기업들의 수익증가로 경제호황을 이끌었지만,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계획(Strategic Defense Initiative:SDI)추진으로 인한 한해 2500억 달러를 넘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은 어마어마한 재정적자를 발생시켰고, 미국의 대외 채무액을 증가시켜 80년대 말에는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Ibid., pp.130-135.강근형, op. cit., pp.97-99.강일선, 강자의 논리, 열린포럼21(2000), p75.유럽과 일본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패권이 약화되었다. 특히, 1980년대의 일본은 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서 미국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만 한 해 45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올렸다. 1951년 미국의 1/20정도의 일본의 GNP가 1980초에는 미국의 1/2수준에 이를 정도로 일본의 경제성장속도는 빨랐다.{)강일선, op. cit., p.85.팍스 니폰니카(Pax Niponica)의 등장을 고려해 볼 정도로 일본은 경제 대국이 되었다. 일본의 경제대국화 못지 않게 유럽의 통합 노력과 블록화 현상 역시 경제의 다극화 현상을 초래함으로써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감소시켰다. 유럽 연합(EU)의 단일 시장 건설으로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보유하게 되었고, 역내 시장의 물리적, 기술적, 재정적 장벽을벌이고 있는 북부 이라크의 아동 사망률이 이라크 정부 관할의 중부나 남부보다 낮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후세인의 악마성'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러나 이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쿠르드족이 대부분인 북부 이라크는 석유 수출 수입금의 20% 가까이를 받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비율이다. 또한 경제제재의 수위가 북부 지역이 훨씬 덜하고 국경무역이 활발하며 기후조건 역시 다른 지역보다 좋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북부 이라크가 다른 지역보다 사정이 좋은 것은 후세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연한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국민을 위해서라면 좀더 적극 적인 외교로 대처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NMD계획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미국 측에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2. NMD(국가 미사일 방어체제) 추진과 그에 대한 비판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NMD(국가 미사일 방어체제) 추진과 더불어 TMD(국가 미사일 방어계획)은 요즘 한반도 문제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중국의 강력한 반대 의사와 학자들의 이론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NMD계획은 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구상한 '스타워즈 프로젝트'에 뿌리를 두고 이를 연계, 발전시킨 계획으로, 스타워즈의 아들로 불리는 이 계획은 미국 영토 내로 날아오는 적 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미사일로 요격하는 것으로 지상과 공중에 방어무기를 배치하는 기존 방식과는 달리 NMD는 한정된 지상기지에만 방어무기를 배치한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2차 실험에 실패하고도 추친 의사에는 변화가 없음을 나타냈다.이러한 NMD의 주목표는 북한을 비롯한 '불량국가들'이라 불리는 미사일 위협을 뿌리에 두고 있는데 이미 6천 여기에 달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실정으로써 이러한 불량국가들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또한 미국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과대 평가 해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또 다시 세계를 전세(9조), 선박과 항공기의 기착(10조), 기상업무(11조), 항공 교통 관제 및 운항 보조시설(12조), 비세출자금기관 (比歲出資金機關, 13조), 과세(14조), 초청계약자(15조), 현지조달(16조), 노무(17조), 외환관리(18조), 군표(軍票, 19조), 군사우체국(20조), 회계절차(21조), 형사재판권(22조), 청구권(23조), 차량과 운전면허(24조), 보안조치(25조), 보건과 위생(26조), 예비역의 훈련(27조), 합동위원회(28조), 협정의 효력발생(29조), 협정의 개정(30조), 협정의 유효기간(31조) 등이다.이 중 형사재판권은 중요한 문제이며 협정 제22조에 의하면, ‘주한 미국군대의 구성원ㆍ군속 및 그들의 가족이 한국 내에서 죄를 범한 경우에 그것이 미국법령에 의하여서는 처벌할 수 있으나 한국법령에 의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범죄(미국의 안전에 관한 범죄 포함)일 때에는, 미국이 전속적(專屬的) 재판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한국법령에 의해서는 처벌할 수 있으나 미국법령에 의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범죄(한국의 안전에 관한 범죄 포함)일 때에는, 한국이 전속적 재판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한편 재판권을 행사할 권리가 경합하는 경우에는, 미국의 재산이나 안전에 대한 범죄와 미국군대 군속 및 그 가족의 신체나 재산에 대한 범죄, 공무집행 중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의한 범죄에 대해서는 미국이 제1차적 재판권을 가지며, 기타의 범죄에 대해서는 한국이 제1차적 재판권을 가진다. 그러나 합의의정서에서는 한국 측은 미국군 당국의 요청이 있을 때 재판권행사가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1차적 권리를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www.naver.com, 2002년 5월 24일2SOFA에 대한 비판1999년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전체 미군범죄자 612명중에 한국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미군은 단 31명으로 재판권 행사율은 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건수를 기준으로 따지면 562건 중에 20건, 3.56%로 더이다.
Report(임진왜란)(목차)1. 서론2. 본론1 - 임진왜란의 경과3. 본론2 - 임진왜란의 결과4. 감상 및 결론1.서론임진왜란은 1597년 임진년에 일본이 조선을 침공한 조선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습니다.7년 간의 전쟁을 통해서 조선은 엄청난 국가에 손실을 가져다 주었고 변화를 겪게 됩니다. 전 이 전쟁이 일어난 계기와 전쟁의 과정, 조선의 변화과정을 통해서 당대에 시대적 흐름을 읽어보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순신은 누구이며? 임진왜란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역사는 현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알려면 역사를 알아합니다. 전 임진왜란을 통해서 현재 급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2.임진왜란의 경과(1)일본의 통일1338년 일본을 통치하던 무로마지 바꾸후가 통치력을 상실하고 명목상의 존재가 되면서 1477년부터 약 110년간 일본 각지에서는 자기의 역량으로 많은 부하를 모아 무력으로 나라를 지배하겠다는 호족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약육강식의 원리로 계속된 전쟁을 하게 되며 이것이 일본의 전국시대입니다.이떠 등장한 사람이 오다 노부나가이고 이가 군웅할거하던 일본의 전국시대에 통일의 기틀을 잡아놓았지만 이틈을 타 풍신수길이 등장하여 잔인한 방법으로 일본 전국을 통일하게 됩니다.(참고)*당시조선의 상황은?조선왕조의 집권체계가 성종에 완성되고 문화의 완숙기에 들어서면서 정부에 부패가 깃들기 시작하더니, 연산군의 등장으로 내부의 갈등이 사화로 나타났고, 선조초에는 다시 당쟁이라는 비운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서로 권력투쟁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국외의 사정은 북방에서 여진이 점차 세력을 점점 뻗쳐 북방 변방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이에 조선정부의 대응책은 세종때 4군 6진 외에는 대단히 미미했으나 여진의 침입은 빈번했고 군신(조광조)들의 반대로 출병을 의논하기는 했으나 그 경영책은 항상 소극적이고 안일하여 환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여을 하던 이른바 전국시대 말기에 있었고, 직전신장이 전국을 평정통일하는 기초를 닦아가던 중에 역신에게 피살되고 그 부장이었던 풍신수길이 뒤를 이어 전국을 완전히 통일하였습니다. 그는 중국대륙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먼저 조선과의 교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2)전쟁의 기운풍신수길의 일본 통일이 진행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대마도 도주인 소오 요시도시가 자진해서 풍신수길에게 충성을 맹세하게됩니다. 풍신수길은 소오 요시도시를 통해 조선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항복하고 왕자를 인질로 보내게 주선하라고 명령합니다.조선이 뻔히 거절할 것을 알았던 소오 요시도시는 입장이 난처해져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간을끌다가 조선 정부에 입장을 전달했지만 조선은 당연히 거절하였습니다.이러한 통보를 받은 조선은 일본의 현 사정을 정탐하기 위해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로 한 조선통신사 일행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두 사신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지금 전쟁 준비를 하고 있으며 우리도 전쟁 대비를 해야한다고 했고 부사 김성일은 전쟁준비를 하는 것은 민심을 어지럽히는 것이며 일본의 전쟁 준비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당파를 달리하고 있는 두 사신의 상반된 보고 떠문에 조선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른채 당파 싸움에만 몰두하여 계속된 싸움만 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전쟁에 대한 예고는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조선 통신사 일행이 귀국할 때 쓰시마의 요시토시와 겐소가 따라 들어와 전쟁을 외교적 수단으로 막아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이들의 전쟁론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당시의 평화적인 시대에 대한 조선 정부의 안주감이 불러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이듭니다.하지만 명 정부는 여러 경로로 일본의 전쟁계획을 듣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이 조선의 길을 빌려 명을 치겠다고 하는데도 조선이 이를 알려 오지 않는 것을 혹시 조선이 일본과 합세해 쳐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을 정도였습니다.명조정이 조선정부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조선 정부는 한웅인을무런 저항없이 부산앞까지 항진해 올때까지 조선을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이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 답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수차례의 일본의 경고와 최후통첩까지 있었다면 마땅히 경계태세까지 갖추고 있어야 했으며 바다에서 요격했어야 했었습니다.서 보면 일본군 선단이 바다를 뒤덮으며 항진해오자 경상우수사 원균이 100여척의 전선과 화포, 군기 등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되어있다. 13일밤 부산진성의 공격을 시작으로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첨사 정발의 장렬한 전사 그리고 다대포에서의 윤흥신의 사투...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체 성을 내주었습니다.이렇게 계속 조선군은 일본군에 밀리다가 이순신이란 인물이 등장하여 거북선을 만들면서 전세를 역전시키게 된다. 그럼 이순신이란 인물은 어떤인물일까?~궁금하죠?^^가.이순신장군이순신은 1545년 4월 28일 한성부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사형제중 셋째아들로 출생하고 어릴때부터 병정놀이 꼬마 대장이 된 순신은 책에서 읽은 작전을 병정놀이에서도 적용하며 "오늘은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겠다. 공격하는 적군은 윗마을 병사들이 맡고 수비는 아랫마을 병사들이 한다. 수비하는 병사들은 반으로 나눠 따로 진을 치도록 하겠다" "수비하는 반은 나무 뒤에 진을 치고, 그 나머지 반은 저 아래쪽 개울가에 진을 친다. 그러면 반드시 이길수 있을거야 뒤에 개울이 있어 뒤로 절대 적군이 쳐들어 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배수의 진'이라는 거야.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치는 진으로 옛부터 많은 승리를 거둔 작전이다" 이렇듯 어릴때부터 장군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청년때는문무도 두루 가추고 순신은 글공부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무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작정하고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 왜적들로부터 부모와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여 군사에 관한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말타기 연습,활쏘기,칼쓰기, 창쓰기를 계속해서 익혀 나갑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말위에서 떨어진적이 있는데 순신은 나이 28세 무과시험장에서 활쏘기,칼쓰기,창쓰기시험을 리로 이끈데 이어, 5 월 29일 경상도 사천에서 승첩하고 6월 2일 당포에서 승첩하였으니 이것이 제2차 당포해전 이었다.그리고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제3차 한산도 대첩을 거둔후 9월 1일 부산 앞바다에서 제3차 한산도 대첩을 거둔후 9월 1일 부산 앞바다에서 제4차 부산 대승첩을 거두어 완전히 제해권을 장악하였다.다.계사년 (선조 26년 : 서기 1593년(49세))1593년 2월 1일 ∼ 9월 14일계사년에도 전쟁은 계속되었으나 명나라 제독 이여송은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렸다.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던 공은 7월 15일 여수 좌수영 본영을 그대로 둔채 전투 본부를 거제 한산도 진으로 옮겨 왜적을 무찌를 준비를 하였고, 조정에서는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위를 새로 만들어 8월 15일 공을 임명하여 삼도 수군을 통괄하는 한편 전라좌수사까지 겸임하게 하였다. 이 자리에서 공은 장기전에 대비하여군무에 정진, 수만석의 군량을 확보하고 전선을 만들었 으며 각종 무기를 준비 하였다.라.갑오년 (선조 27년 : 서기 1594년(50세))1594년 1월 1일 ∼ 11월 28일명나라 장수들은 일방적으로 강화를 주장하고 싸움을 피하려고만 하였다. 3월에 명나라 지 휘관은 공에게 싸움을 중지하고 돌아가라는 패문까지 보냈고, 공은 우리 땅에 있는데 어디 로 가란 말이냐고 항의까지 하였다. 전염병으로 10여일을 앓는등 자주 아팠으나 군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전염병으로 죽은 군사와 백성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주고 또 글(제문)을 지어 위로해 주었다.10월에는 장문포의 왜군을 수륙 연합으로 협공하여 승리하였다.마.을미년 (선조 28년 : 서기 1595년(51세)1595년 1월 1일 ∼ 12월 20일나라는 휴전상태에 들어갔으나, 공은 한산도 진에서 항상 바쁘게 생활했다.군량을 준비하고 군사를 훈련시켰으며, 전선을 정비하였다.바.병신년 (선조 29년 : 서기 1596년(52세))1596년 1월 1일 ∼ 10월 11일전쟁 중에도 공은 항상 어머님을 잊지 못하였다. 일기 도처에 어머님셋째 아들 면의 부음을 듣고 공은 비통함에 잠긴다.아.무술년 (선조 31년 : 서기 1598년(54세))1598년 1월 1일 ∼ 11월 17일임진란이래 7년의 긴 전쟁은 수 많은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갔으며, 충무공에게는 최후의 전자이 시시각각 다가왔다. 7월 명나라 수군과 연합 함대를 결성한 우리 수군은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퇴각하는 순천 소서행장의 군대를 공격 큰 타격을 입혔는데 이 전투가 저 유명한 노량해전이다.이때 공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으나 공의 나이 겨우 54세로, 마침내 충무공은 자기의 한 몸을 던져 조국을 위기에서 영원히 살린 것이다.지금 이것은 난중일기입니다. 여기서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전쟁을 어렵게 치렸는지를 알수 있으며 전쟁중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성과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까지 조국의 승리를 안겨 주려는 애국자로서의 인물됨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또 하나의 공적을 들자면 세계최초로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철갑선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이끄는데 크게 이바지한 배입니다." 앞에는 용의 머리를 만들었는데 입은 총구멍이 되고, 용머리 위, 아래에 각각 2개씩의 포문이 있었습니다. 뒤는 꼬리처럼 되었는데 그 밑에도 총구멍이 있고, 등판 좌우에 각각 6개의 총구멍이 있었습니다. 또한 좌우 방패판에는 각각 22개씩 포구멍을 뚫었으며 문곁에 각각 포구멍이 한 개씩 있고 좌우 복판에도 각각 12개의 포구멍을 뚫었습니다.” 이글은 일본장수가 거북선과 전투를 한 후 패하고 나서 돌아가 장군한테 보고한 내용입니다. 거북선은 기동성도 빨랐으며 전투력이 막강한 그 당시 최강의 군함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3척이 있었다고 합니다.(4)전쟁의 승리이순신 등장하여 거북선을 만들면서 해상에서의 연전연승하고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군의 유격활동, 명나라의 군사지원으로 조선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순신장군의 부산 기습으로 상륙기지가 쑥대밭이 됐고 육지에서는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에서 진주대첩을 이끌게 됩니다. 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