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석 변법의 내용와 의의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실시된 것은 11세기 후반이다. 이 개혁은 직접적으로는 재정재건을 의도한 것이었으나, 단순한 세금징수정책이 아니라 광범위한 행정?재정개혁이며 동시에 사회개혁이기도 했다.신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농민생활의 안정과 생산의 증가 및 조세원의 개발을 목표로 한 부국책과 부병제의 회복을 통한 강병책, 과거제와 관료임용제도의 개혁을 통한 교육제·관료제개혁책 등이다.먼저 농촌을 대상으로 한 부국책으로는 농지 확대 정책인 어전법과 농전수리법, 봄에 싼 이자로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수확기에 현물이나 돈으로 갚는 청묘법, 정확한 토지대장을 만들어 토지소유자의 확인과 과세의 공평화를 도모한 방전균세법, 요역을 전납화 했고 관호의 면역특권을 부정한 모역법이 있다. .다음으로 상인 및 유통과 관련된 부국책으로는정부가 생산지에서 물자를 구매하여 이것을 부족한 곳에 운반하여 파는 것으로 물자의 유통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대상인의 폭리를 방지를 도모한 균수법,정부가 싼 이자로 중소상인에게 자금을 빌려주어 대상인의 독과점 방지를 도모한 시역법이 있다.강병책으로는 전통적 인보조직을 이용 경찰 업무와 민병 조직으로 활용하려는 보갑법, 보갑의 조직에 군마를 사육하도록 하는 보마법이 있다.왕안석의 신법은 정치기구 내부에도 미쳤는데 관리와 서리의 일체화를 도모한 창법, 과거제의 폐단 시정을 목적으로 한 삼사법이 그것이다.이러한 신법의 실시로 재정재건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다음과 같은 혁신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가진다.먼저 신법은 당과 송 사이에 성장한 다양한 중간층 세력을 억제하는 한편, 사회와 경제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 통제의 강화로 송조의 존립기반인 중소농민과 상인의 보전과 조직화를 꾀했다. 그러나 사회의 구석구석에까지 국가의 직접지배를 미치게 하려는왕안석의 의도와 중간층의 성장이 필연적이었던 송대 사회의 현실 사이에는 모순이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다음으로 신법은 유통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주목용하여 물자를 움직이는 수단으로서 화폐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청묘법과 모역법 등에 의해서 화폐를 농촌사회에 강제적으로 도입한 것은 반드시 상품유통의 전개와 결부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농촌경제에서
Do you remember 'Kim Hyun-su" who is called a genius in English. A few years a go, a 4-year old girl, Hyun-su, was came into the spotlight for her very fluent English. She has become an object of envy since, and also her mother`s name has become a synonym for good mother. Her mother`s education method has been not only published in many magazines but also telecasted.Some mothers were sure that they bred their children geniuses and also their methods were recognized and introduced by mass communicationarond then. And the number of people who follow those methods blindly has increased.In all ages and countries, it is natural that parents want their child to be excellent by means of good education. But I am sorry that today our education puts too much emphasis on only getting a good grade in the test in our country. It is not difficult to find geniuses in math, English, computer and so on in mass midea. Moreover, education method of thier parents is introduced. A child of excellent intellt of education and character building has long been ignored.Koreans are well known for having a great deal of interest during education. I grant that the motive of the rapid growth Korea is educational ardor. But these days, educational ardor has been degenrated because it not only has got children to be ill but also has produced many social problems.It is a winter vacation now. But it is impossible to find children playing in the ground. Most children are more busy going to institues in vacation than ordinary times. Things are such that children's emotions are getting dry, and they are being influenced by an idea that study is the most important and they are getting weaker in physical and mind.More than anything else, the peak of Korean education ardor can be found in English education.It is not only a pity but also miserable that we struggle to learn other language as only communication tools. Foreign journalism has ever noted the English education system of South Korea that some hav what really makes their children happy, they will never just stick to grades and drive their children to institetes. The student who does well in school is not necessarily a good man, and happiness is not necessarily consistent with getting high grade in school. If our children are evaluated by their grade both at home and in school, there will be no place where our children can have rest without being disturbed.It is said that the society which puts much emphasis on its children's grade and rank in school must be more or less wrong. If children can`t be acknowledged and loved for bad grade, our wrong education repeats itself. And our society will be full of people who will aim at success and vctory against other people's competition. It is certain that warm human love can't be found in such a society.It is natural that the child who will be a leader will be produced under parents making endless efforts in their children's education. What is the use of spanking the children who hate Ethey must do and what they must not do as well as giving them good examples?= 한글 전문 =몇 년 전 전 만 4세가 안된 현수라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미국의 고등학생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여 영어신동이라 불리며 각종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었다. 그리고 곧 현수는 조기 영어교육을 희망하는 대한민국 엄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자 희망이 되었으며, 그저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던 현수의 어머니는 훌륭한 어머니의 대명사가 되어 그녀의 교육법은 각종 여성잡지에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소개되었고, 심지어 주요 방송사의 주부대상 정보 프로그램에서도 비중있게 소개되었다.내가 보기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만 4살짜리 꼬마의 영어실력은 자녀교육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엄마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이 즈음 한창 영재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소위 내 아이를 영재로 키웠다고 자부하는,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받은 엄마들의 교육법이 많이 소개되어 ‘00신동 00엄마 따라하기’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훌륭한’ 교육방법을 통해 내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보고자 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부모나 가지고 있는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훌륭한 교육방법의 기준이 지나치게 학업 성취도에 치우쳐져 있는 감이 들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수학 신동, 영어 신동, 컴퓨터 신동, 한문 신동 등은 각종 매스컴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모들의 교육법도 덩달아 비중있게 소개되곤 한다. 인품이나 윤리의식 등은 소위 신동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평가하는데 그다지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뛰어난 지적능력은 그들의 이름 앞에 ‘훌륭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만든다. 반면 예의바른 어린이, 남을 잘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 등 인격적으로 뛰어난 아이들은 매스컴에 소개되지도, 사람들의 들을 더 이상 동네 놀이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와 할 일 없이 노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됐다.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평소보다 더 바빠진다. 엄마들은 자녀들이 방학이 되면 행여 내 아이가 뒤떨어지지나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아침부터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아침 9시 영어학원, 11시 피아노 학원, 1시 가정방문 학습지, 3시 수학학원 등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원을 전전하며 책과 씨름한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0년 전만 해도 반 정도의 학생들이 주로 교과목 중 성적이 떨어지는 한 두과목 정도를 학원에서 보충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원을 다닐 뿐 아니라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배운다. 영어, 수학, 컴퓨터는 기본이고 피아노, 검도, 태권도, 서예 등 예체능 과목까지 모두 학원을 통해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학생들은 집으로 방문해 교육을 해주는 학습지 등도 겸하고 있어 그야말로 하루종일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실정이 이러하다 보니 아이들의 정서도 점차 매말라가고 공부가 최고라는 인식에 물들어 가고 있으며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점점 나약해져가고 있다.뭐니뭐니해도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의 최고 정점은 영어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미치광이 바람, 광풍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한국의 영어 열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한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우리의 현실은 한심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영어 조기교육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어린 자녀를 홀로 낯선 외국으로 보내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혀 수술 경쟁까지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의 조기 영어교육 세태가 급기야 외국 언론에 의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AP통신은 2004년 1월 2일 한국의 엄마들은 영어조기교육 열풍 속에서 자녀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최근 어린이들의 혓바닥 아랫부분을 절개하는 수술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고 이 수술이 서울의
중국 고구려사 왜곡과 소수민족 정책◎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중요성 ◎중국은 소수민족 문제에 유독 민감하다. 일부에서는 한족(漢族) 외에 55개 소수민족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그러나 소수민족이 많기로는 러시아가 더 하다. 1707만5200㎢의 영토에 1억4378만 명의 인구를 가진 러시아는 러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82%를 차지한다. 소수민족은 공식적으로 131개이며 극소수 민족까지 포함하면 175개 정도다. 면적 32만5360㎢, 인구 8269만 명으로 중국과 비교할 수 없는 베트남도 54개 소수민족이 있으며 베트남족이 전 인구의 87%를 차지한다. 인구 2억9303만 명인 미국은 거의 모든 인종과 민족이 산다. 전체 인구의 83.4%가 백인이고 흑인은 12.4%, 아·태계 3.3%, 아메리칸 인디언 0.8% 정도다.지난 2000년 11월 실시된 제5차 인구조사에 의하면 중국의 총 인구는 12억6583만 명이다. 홍콩특별행정구의 678만 명,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44만 명은 뺀 숫자다. 이 가운데 소수민족은 1억64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41%, 한족은 11억5940만 명으로 91.59%였다. 소수민족 비율이 20%에 육박하는 나라들에 비하면 중국은 오히려 양호하다. 9600만 명의 당원을 가진 중국 공산당이 독재를 하고있기 때문에 소수민족에 대한 통제력도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중국은 소수민족 문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중국이 소수민족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칫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해체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옛 소련의 경우 연방을 구성한 소수민족 공화국에서 러시아인들이 다수를 점하지 못했고 이것이 결국 분리 독립의 기폭제가 됐다. 중국 정부는 이를 보고 비록 한족이 소수민족 자치지역에서도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중국의 총 국토면적은 959만6960㎢로 27개성(5개 자치구 포함), 4개 직할시로 이뤄져있다. 한반도 면적의 43.45배, 남한 면적의 96.66배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8% 선에 불에서는 이러한 관념을 독특하게 구체화하여 그것을 계서적 개념으로 만들었다. 즉, 중화민족에 해당하는 것을 ren(人)으로, 중화민족의 구성요소는 zu(族)으로 개념화 한 것이다.그리고 거기에서 인은 족의 상위 개념이다. 즉,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인은 이제 한족이라 불린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이제 더 이상 조선인도 한국인도 아니다. 그들은 중화민족의 일원인 것이다. 영어로 번역도 Chinese nation(중국인, 중화민족), Hannationality(漢族)으로 달리하고 있다.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인'의 개념이 단순하게 국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민족의 개념을 포괄하는 것이다. 즉, 일반 민족을 넘어서는 상위 민족 개념에 중화민족이 있는 것이다. 독특하다고도 할 수 있고, 자기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관념이 우리의 '동포'라는 개념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측이 재외동포 특례법에 대해 "재외 동포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였다고 항의한다면, 중국 역시 중화민족의 범위를 그것보다 더 넓게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즉, 중국은 민족의 개념을 국적 개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조선족은 자신을 중국인 혹은 중화민족이라 한다. 그리고, 조선족이라 한다. 이것은 49년이래 78년 개혁 개방 전까지 30여 년 간 고립된 채로 진행된 중국의 민족정책의 현실 인 것이다. 모든 것은 이러한 민족과 국적이 혼재되고 새롭게 규정된 중화민족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티벳 문제의 근원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조선족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특성 ◎중국의 독특한 민족관념과 함께 그것의 구체적 실천인 민족 정책은 이 관념을 현실로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중국의 민족 정책, 특히 소수민족과 연관하여 주요하게 나타난 표현은 1) 다원일체(多元一體), 2) 단기적 공존 장기적 융합, 3) 큰 것은 틀어쥐고 작은 것은 놓는다는 방침이다. 또한, 이러한 방침은 중화민족주의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다원일체란 중국 민족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를 구별하여 대처한다는 것이다. 즉, 위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일체적 요소는 소수민족이 침범할 수 없는 요소이다. 다원적인 것은 문화적인 면에서만 허용된다. 중국정부의 영토나 민족관념은 불가침이나, 언어나 풍습 등은 보호되고 때로는 장려된다. 우리는 연변에서 한국어가 쓰여진 간판을 보고 중국의 민족 정책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문제도 단순하게 문화적인 요소가 아닌 정치화 할 경우 중국 정부는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1957년의 민족어 순결논쟁과 이후 연결된 반우파 투쟁은 좋은 예이다. 또한, 중국의 민족 정책은 '구역자치' 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구역자치란 소수민족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일체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책이다. 구 소련이 민족공화국 정책을 사용하여 후에 분열하는데 빌미가 되었다면, 구역자치제는 소련보다 더욱 통제된 그리고 분리될 수 없는 행정개념이다. 이것은, 형식적인 자치이며, 주로 문화적 영역에서의 자치라 할수 있는 것이다.이상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의 중요성과 그 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좀더 나아가서 현재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살펴보겠다.◎ 고구려사 왜곡 및 동북공정 추진 배경과 내용 ◎고구려사 왜곡과 그 연구중심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 중국. 국가 사업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업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정식 명칭은 ‘중국 동북 변강지구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연속 연구 프로젝트’)은 중국의 민족관·영토관·국가관이 응축된 산물이다.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중국 동북지구(만주)에 새롭게 적용되면서 파생된 중국의 만주관이기도 하다.중국에서 민족학 연구는 문화대혁명 시기만 해도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 1958년 ‘반우파 투쟁’과 ‘민족정풍운동’ 시기에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가 기승을 부리면서 소수민족의 발전을 위한 요구는 ‘지역민족주들도 조선족 사회에 은거·접촉하면서 조선족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인뿐 아니라 탈북자도 ‘고구려사는 한민족의 역사이며 만주의 조선족, 연해주의 고려인, 북한인, 한국인은 모두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라고 교육받아왔다.최근 미국 의회에서 탈북자 지원 법률이 통과되었는데, 법이 발효되면 탈북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상하이박람회의 성공적 개최에 국운을 걸고 있는 중국으로선 인권문제를 외면한 채 마음대로 탈북자문제를 다루기도 어려운 상황이다.사정이 이렇게 되자 위기를 느낀 중국 정부는 인민군을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집중 배치했다. 이와 함께 대내적으로 조선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중국정부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구의 역사적 상관성을 부정함으로써 동북지구와 한반도를 영구히 단절시킬 필요성도 깨닫게 됐다. 그리하여 고구려사가 중국역사의 일부라는 동북공정에 나서게 된 것이다.한편 중국에서는 경제건설을 위주로 한 개혁·개방정책과 아울러 시장경제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에 접목되면서 자본주의 가치관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종래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입각한 계급투쟁 위주의 역사관은 점차 빛을 잃고 그 대신 ‘각 민족의 단결과 인민의 애국심을 바탕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는 ‘신중화주의(新中華主義)적 민족주의 역사관’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정부에서는 교과과정, 각종 매체, 연설 등을 통해 ‘애국주의’를 주창하고 있다.이런 과정에서 건국 초기에 제기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보편적 역사인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는 “중국은 한족과 이민족이 생존·경쟁하면서 분열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통일국가를 형성해왔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현재의 중국국경 내에 있는 민족은 모두 중국민족이고 그들의 활동 내용은 모두 중국역사에 속한다”는 논리가 전개된다.이 논리를 중국 동북지구에 적용시킬 경우 고구려나 발해 민족은 모두 중국민족인 셈이고 이들의 역사도 중는 정치논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결국 ‘중화민족관’이나 ‘동북공정’은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이고위금(以古爲今)’의 전형적인 사례이자 비민주적 독재권력의 쇼비니즘적 선전선동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중국은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인정하고 그 사실을 세계사 교과서에 기술했다. 중국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홈페이지는 중국이 현실 정치적 이유에서 동북공정에 나섰음을 분명히 말해준다.“개혁·개방 이래 동북 변강에서 러시아·북한·한국·몽골·일본·미국과 중국 사이의 쌍방 관계나 다변 관계에 큰 변화가 초래되었다. 동북아의 정치적·경제적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동북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동북 변강 역시 동북아의 중심적인 위치에 놓이면서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일부 국가(사실상 남·북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의 연구 기구와 학자들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역사 연구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몇몇 정객이 정치적 목적으로 여러 가지 그릇된 논리를 공개적으로 펼치면서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동북 변강의 역사와 현상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이 홈페이지는 ‘동북공정’의 중요한 임무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총결하고 역량을 집중시켜 역사상의 의문점이나 문제점, 현실 속의 논쟁이나 이론상의 어려운 점 등을 적극적으로 대비·극복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동북공정’은 남북통일 등 한반도 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은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당대중국변강계열연구과제조가 1998년 9월에 작성한 ‘한반도 형세의 변화가 동북지구의 안정에 미칠 충격’이라는 내부자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중국 당국은 한반도 형세 변화시 대응책 마련 차원에서 1997년 하반기부터 중국 공안국변방부 등의 지지 하에 지린성 내 북한 접경지역에 대한 조사 연구에 착수했음은 물론 청나라 때 중국-조선관
진시황의 흔적을 찾아- 진시황릉·병마용갱·아방궁 유적지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등 ○○ 싶은 것은 언제나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앞에 가장 이라는 단어가 붙어버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결정의 순간에 한참을 머뭇거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중국 영토 중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어쩌면 쉬울지도 모르는 이 주제 앞에서 정말 한참을 고민했다. 광활한 중국 대륙 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나도 많다. 눈과 얼음의 도시 하얼빈도 가고 싶고, 소수민족의 천국 운남성, 귀주성에서 그들의 생활도 보고 싶고, 몽골의 대초원과 사막도 둘러보고 싶고, 화려한 베이징의 밤거리도 걸어보고 싶고...... 수많은 장소들이 저마다의 매력으로 나는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진시황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되면서 진시황이 내 맘의 결정을 내리는 키워드가 되었다. 역대 중국의 왕들이 이룬 업적과 맞먹으리 만큼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인물, 그토록 대단한 진시황을 만나고 싶어졌다.‘짐은 최초의 황제다. 앞으로 짐의 뒤를 잇는 황제들은 제2대, 3대 황제라 불릴 것이며 이 법칙은 천대, 만대 이어질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명문이다.진시황은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인 기원전 3세기 후반의 인물이다. 중국 역사의 기본 틀로 알고 있는 황제지배, 군현지배의 전국적 확대, 통일제국의 출현 등은 모두 그에게서 시작됐다. 만리장성, 아방궁, 분서갱유 등 고대 중국을 떠올리는 중요한 코드들 역시 대부분 진시황과 연결돼 있다. 영생불사를 꿈꾸며 기이한 행적을 남겼던 그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시는 중국 서안(西安)이다.내게 단 한 번의 중국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역사적 도시 시안으로 가서 진나라와 진시황이 남겨놓은 문화유적 앞에서 그 위용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진시황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는 과업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국역사상 독보작했던 것이다.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그는 중앙집권적 전제정치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그는 황제라는 존호를 최초로 제정하고 스스로 시황제라 칭했다. 또한 전국을 하나의 통치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해 군현제도를 실시했다. 황제를 정점으로 서주(西周) 시대의 봉건체제를 대신하게 됐다. 이후 중국은 2천년 이상 군현제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영원하기를 원하듯, 통일제국이 영구히 존속하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집념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가 기원전 210년 50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얼마 못되어, 진제국의 장수도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진시황의 통치방식에는 통치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측면에 신비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황제의 호칭도 어디까지나 신비적 존재인 황(皇)과 역시 신성을 보유하여 숭배의 대상이었던 제(帝)를 결합시켜 만들어낸 것인 만큼 인민들에는 거의 신성시되어 경외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이를테면 거대한 황릉을 건설하고, 아방궁의 구조를 내밀하게 조성하였으며, 개인적으로도 선인을 찾거나 불사약을 구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진시황은 그 무엇보다도 통일 제국의 건설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자신의 행위에 무한한 자신감을 가졌던 듯하다. 그의 자신감은 몇 차례의 순행에서 새겨 놓은 각석문의 거의 모든 내용 가운데 역력히 드러나는 바, 이는 구태여 인용할 필요까지도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이런 그는 분명 자신의 위대한 업적과 신적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긴 혼란의 세월을 지나 그 광활한 영토를 통일 한 후, 보다 신격화되고 강력한 황권으로 전 중국을 휘어잡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방궁·여산릉·병마용갱 등의 대공사를 단행하였다. 또한 자신의 통일 왕조를 영구히 존속시키기 위해, 위협을 가해오던 흉노를 정벌하고 짧은 설명을 하고자 한다.시황제는 13세에 즉위하자마자 여산 기슭에 자신의 능묘를 만들기 시작해서 50세가 될 무렵에야 완성시켰다. 36년의 세월에 걸친 이 대공사는 서안시 동쪽 섬서성의 임동으로부터 동쪽으로 5∼6킬로미터 되는 지점에서 행해졌는데, 이 묘를 여산릉이라고도 하고 시황릉이라고도 한다. 의 기록에 의하면 여산릉의 공사에만 무려 75만명의 죄수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여기에 묻혀있다. 이 능 안에는 진시황의 아들 호해가 참살한 12형제, 10자매가 묻혀있고, 자녀가 없는 비빈들이 생매장 당해 있다. 그리고 능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능 조성에 관여했던 장인들이 마지막에 모두 산채로 묻힌 곳이기도 하다. 아직 내무는 개발되지 않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해도 내부는 볼 수 없고 밖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정도의 관광만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진시황릉의 외형만을 본다고 하더라고 꽤 의미 있는 답방일 듯 하다.진시황릉은 사방이 각각 6백 미터에 달하고, 높이는 120미터, 주위의 길이는 2.5킬로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능묘이나, 처음에는 이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라 여겨진다. 무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능묘 안에는 동으로 주조된 황제의 관이 있고, 궁전, 누각, 회랑 등 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또 시황제의 절대적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능묘 안의 천장에는 일월성진(日月星辰)이 반짝이고, 지면에는 수은을 이용한 하천과 바다가 흐르며, 게다가 천구까지 돌고, 특수한 기름으로 등불을 켜서 영구히 꺼지지 않게 하는 장치가 되어 있다. 또한 묘실에는 활을 장치해 놓아 도굴자가 침입하면 즉시 화살이 쏘아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시황제는 사후에도 생전 그대로의 호화로운 생활을 계속하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여산릉은 아직 그 발굴이 다 진행되지 않았을 정도로 광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능은 장방형의 두 겹의 담장으로 싸인 능원의 남쪽에 있으며, 안쪽 담과 바깥담의 사변 길이는 각각2,525. 발굴되자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5년 후 1979년엔 시안에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 건립돼 수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고 해외에서도 잇따라 전시됐다.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그 규모가 엄청나고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진시황병마용은 서안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로 병마용이란 진시황이 죽은 후 대군의 일부를 순장시키는 대신에 흙을 구워 만든 인형을 묻은 것을 말하는데, 1974년에 발견된 후로 현재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3개의 갱(坑)이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 1호갱에만 6,000여 병마가 실물 크기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나올 것만 같다. 이들 병사용은 하나같이 표정이 다르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다.갱내에 있는 토병과 말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동쪽을 바라보며 줄을 지어 정열하여 있다. 특이한 것은 남쪽과 북쪽의 토병들이 동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남쪽의 병사는 남쪽을, 북쪽의 병사는 북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또한 동쪽에 있는 가로 3열의 토병들은 무사토용(武土傭)으로서 손에는 먼곳을 저지할 수 있는 궁수병기를 쥐고 있다. 그 뒤로 약 6000여명의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정열하고 있는데 손에는 창과 같은 긴 병기를 들고 서있다.2호 병마갱의 평면은 曲자형태로 되어있다. 갱내에는 기마병, 보병, 궁병과 전차들이 혼합된 대형군대가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크게 4등분을 하여 나눌 수 있는데 궁병들이 모여 있는 궁병용 부대, 말과 전차가 있는 전차병 부대, 보병, 기마병이 혼합되어 있는 부대, 기마병만 있는 부대 등 4개의 부대가 서로 독립된 단위로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 병마용은 약 1300여건이며 전차가 80여량과 함께 다량의 금속병기가 출토되었다.3호 병마갱의 평면도는 凹자형태로 되었다. 면적은 520평방미터이다. 이곳은 1호와 2호갱을 통솔하는 지휘본부로서 6개의 토기 병마용과 4마리의 말과 1대의 전차가 함께 출토되었다.진 계속 보급하기 위해 필요했던 마굿간들도 여러 종류의 모습으로 땅 속에 재현해 놓았다.지상의 세계가 군대로만 구성돼 있지 않았듯이 땅 속의 세계도 다양하기만 하다. 병사들을 징발하고 세금을 거두는 행정 업무를 담당하며 법령을 입안하고 처리하는 관청도 지하세계에 만들어 놓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궁중에서 즐겼던 각종 오락을 사후에도 즐기려고 했던 것인지 여러 모습의 광대들도 흙 인형으로 만들어 지하에 넣어두었고, 궁중 바깥에 만들어 놓았던 연못을 옮겨 놓기 위해 땅 속 구덩이 속에 물을 채워 지하 수중 연못을 만들기까지 했다. 황제의 원림을 날아다녔던 진귀한 새들까지 땅 속에 넣어 두었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더구나 지하 속에 묻힌 병사, 말, 전차, 갑옷, 문관, 백희용 등 어느 하나 사실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돌 조각 하나하나에 쏟아 부은 장인들의 노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이것들은 단순히 지하에 지상세계를 옮기겠다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그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상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지하에서도 누리겠다는 표현의 다름 아니다. 살아서는 영생을 얻고자 동쪽 바다로 가서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과 불로초에 매달렸던 진시황이 또 한편으로는 죽은 뒤의 세계를 영원히 누리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2000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조각상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몸 위에 진흙을 바른 듯한 착각을 하게 할 만큼 생생하다. 이렇듯 병마용갱은 세계의 8대 경이 중의 하나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이 병마용갱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이 병마용들은 진시황 친위군단의 강력한 위용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나라의 군사편제· 갑옷· 무기 등의 연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와 아울러 일부 도용에서 확인되는 북방민족의 두발형식은 친위군단의 민족적 구성을 짐작하게 한다.그리고 이곳에서는 당시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일반 백성들의 공포와 애환도
이상한 나라의 교육약 3년 전 만 4세가 안된 현수라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미국의 고등학생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여 영어신동이라 불리며 각종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었다. 그리고 곧 현수는 조기 영어교육을 희망하는 대한민국 엄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자 희망이 되었으며, 그저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던 현수의 어머니는 훌륭한 어머니의 대명사가 되어 그녀의 교육법은 각종 여성잡지에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소개되었고, 심지어 주요 방송사의 주부대상 정보 프로그램에서도 비중있게 소개되었다.내가 보기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만 4살짜리 꼬마의 영어실력은 자녀교육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엄마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이 즈음 한창 영재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소위 내 아이를 영재로 키웠다고 자부하는,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받은 엄마들의 교육법이 많이 소개되어 '00신동 00엄마 따라하기'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훌륭한' 교육방법을 통해 내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보고자 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부모나 가지고 있는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훌륭한 교육방법의 기준이 지나치게 학업 성취도에 치우쳐져 있는 감이 들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수학 신동, 영어 신동, 컴퓨터 신동, 한문 신동 등은 각종 매스컴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모들의 교육법도 덩달아 비중있게 소개되곤 한다. 인품이나 윤리의식 등은 소위 신동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평가하는데 그다지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뛰어난 지적능력은 그들의 이름 앞에 '훌륭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만든다. 반면 예의바른 어린이, 남을 잘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 등 인격적으로 뛰어난 아이들은 매스컴에 소개되지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자녀교육의 모델이 되지도 못한다. 효심이 깊고 정직하며 예의바르지만 공부를 못하는 아이의 부모와 부모님께 막대하고 이기적이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부모가 만났을 경우 언제나 주눅드는 사람은 전자일 것이다. 사람들은 공부를 잘 해야만 엘리트가 될 수 있고, 엘리트가 되는 것은 곧 인생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자녀들을 몰아붙이곤 한다. 인격은 두 번째 문제로 밀려 난지 이미 오래이다.우리 민족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우리 민족이 그래도 이만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까닭은 힘겨운 삶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인재를 육성하였던 높은 교육열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교육열이 왜곡되어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많은 사회적 병폐들을 낳고 있다.지금은 한창 겨울방학 시기이다. 시린 손을 입김에 녹여가며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을 더 이상 동네 놀이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와 할 일 없이 노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됐다.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평소보다 더 바빠진다. 엄마들은 자녀들이 방학이 되면 행여 내 아이가 뒤떨어지지나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아침부터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아침 9시 영어학원, 11시 피아노 학원, 1시 가정방문 학습지, 3시 수학학원 등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원을 전전하며 책과 씨름한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0년 전만 해도 반 정도의 학생들이 주로 교과목 중 성적이 떨어지는 한 두과목 정도를 학원에서 보충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원을 다닐 뿐 아니라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배운다. 영어, 수학, 컴퓨터는 기본이고 피아노, 검도, 태권도, 서예 등 예체능 과목까지 모두 학원을 통해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학생들은 집으로 방문해 교육을 해주는 학습지 등도 겸하고 있어 그야말로 하루종일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실정이 이러하다 보니 아이들의 정서도 점차 매말라가고 공부가 최고라는 인식에 물들어 가고 있으며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점점 나약해져가고 있다.뭐니뭐니해도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의 최고 정점은 영어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미치광이 바람, 광풍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한국의 영어 열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한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우리의 현실은 한심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영어 조기교육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어린 자녀를 홀로 낯선 외국으로 보내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혀 수술 경쟁까지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의 조기 영어교육 세태가 급기야 외국 언론에 의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AP통신은 2004년 1월 2일 한국의 엄마들은 영어조기교육 열풍 속에서 자녀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최근 어린이들의 혓바닥 아랫부분을 절개하는 수술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고 이 수술이 서울의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만연되어 있다고 보도했다.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교육은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의 교육일 것이다. 내 아이의 영어 발음을 유창하게 하기 위해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수술대 위에 눕히는 등 순수한 동심을 멍들게 하고 아이들의 정신건강까지 해치는 부모의 비뚤어진 교육은 이제 여기서 멈춰서야 한다. 더 이상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것이 교육의 최고 목표 여서는 안된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내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그렇게 성적에 연연하고 싶지도,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성적이 좋다고, 조금 더 많이 안다고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되며, 진정한 행복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 조차 학업성적 위주의 상대적인 기준으로 아이들을 평가한다면 아이들이 마음 편히 쉴 곳은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