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를 지향하는 이 시대의 대학 캠퍼스 - ‘한국전통문화학교’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원지역?지구: 도시계획구역, 농림지역 및 준농림 지역대지면적: 165,289.00㎡건축면적: 13,587.24㎡규모: 지하 1층, 지상 3층구조: 철근콘크리트조용도: 교육연구시설민현식의 눈으로 건축보기“공동시설군(행정본부, 도서관, 공동 강의실군, 학생회관 등)과 교육시설군(각 전공별 일반 교육시설 및 실험?실습실군 등)을 띠모양의 광장을 사이에 두고 병치시킨다.” - 위계와 방향성이 느슨하고 단부가 개방되어 성장체계까지 내포하고 있다.‘기존의 대학캠퍼스는 마치 중세도시와도 같이 하나의 중심에서 뻗어나간 방사선형 도시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각 대학들은 중심의 공동 영역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있을 뿐 독립되어, 학문간의 소통이 폐쇄적일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중심성의 강화는 전체를 일관하는 하나의 학문적 태도만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다.’-광장을 중심으로 마주선 두 기다란 건물들은 유리면과 테라스로 시야적으로 교류가 가능하도록 계획되어있다. 긴 광장 중간에 연결된 다리로 두 건물을 이어준다. 기다란 광장은 자칫 지루해보일 수도 있는데 중간중간의 식목과 건물옆의 수로, 중간중간 하부가 개방되어서 뒤의 작은 광장까지 이어지는 공간들과 광장을 바라보는테라스에서의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광장이 지루하지 않고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며 사람들(학문적)이나 공간간의 소통이 생기도록 도와준다.“길이 370m, 폭 25m내외의 광장은 기존 지형의 고저 차를 쫓아 평판과 경사판이 이어져서 여기에 면한 병렬된 기능들을 기능적?공간적으로 통합시켜서 인공적 영토를 구체화시킨다.”‘이 땅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왔던 옛 것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흔적을 새겨 넣어 중첩시키기 위해, 광장은 기존 지형의 기억에 따라 경사진 면이 이어진다.’-기존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계단 보다는 경사판을 이용하여 보다 자연스럽게 공간들이 이어지게 하였으며 개방된 하부를 통하여 보여지는 작은 광장들 넘어의 언덕의 수림들로 인해서 소광장의 영역을 잡아주고 자연과 건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자연이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건물 내부로부터 외부로 확장된 그물망은 캠퍼스 생활의 패턴을 압축하고 방향을 전환하며, 내외를 연계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게된다.”-사진에서 보이는 스카이라이트창을 통하여 어두운 실내로 빛이 들어오며 내 외부를 수직적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긴 광장에 마주보는 한쪽의 벽에 발코니를 설치하여 건물내부에서 외부로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였고 이 발코니를 통해서 광장과의 적극적으로 연결이 되도록 한다. 건물 중간에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광장과 후면의 작은 소광장과 건물을 더욱 활기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며 서로를 연결해주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연접한 언덕의 수림과 서로 교호하고 틈입하여 기존의 자연에 새롭게 개입된 기존의 자연에 새롭게 개입된 인공구축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자연과 일체가 되어가면서, 인공과 자연이 하나의 특별한 건축적 풍경을 이룬다. 바로 특별한 불확정성 공간이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건물의 사이사이, 틈마다 자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과 자연이 서로 하나가 되어 일체가 된다. 주 광장의 입구 쪽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다 보면 사람형상의 돌로 만들어진 인공구조물이 네거리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가까이서 보았을 때는 주변건물과 어울리지 않고 쌩뚱맞아 보이는데 좀 떨어진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보았을 때와 브릿지에서 올라가서 원경의 자연과 함께 보았을 때는 돌의 질감과 색감으로 인해서 자연에 묻혀지는 듯한 느낌이 난다.“건축은 유기체” - 이 캠퍼스는 아직도 완성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성장과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훌륭한 유기체는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학사 계획의 진화와 주변의 물리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모든 내포된 체계들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이제 씨앗과도 같은 제안된 캠퍼스의 물리적 체계들이 얼마나 열려 있는 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을 곧바로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찰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현재 한국전통문화학교는 발전 중으로 광장을 중심으로 계속 건물이 지어지고 있으며 점차 확장되고 있다. 건물은 처음 의도되었던 대로 이 땅이 가지고 있어왔던 옛 것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흔적을 새겨 넣어 중첩시킬 수 있도록 하려던 의도를 잊어서는 안되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확인해야 한다. 변화를 수용하고, 식생을 변화시키고, 공간적 성격을 이동시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사용되도록 계획되어져야 한다.수업내용에 근거하여 배울 점을 기술한국전통학교의 설계 전제조건으로 첫 번째 Site를 보면 역사도시로서의 부여에 생기는 캠퍼스로 이 대학으로 말미암아 이 도시의 정체성을 확고히 구축함과 동시에, 지역적 한계를 넘어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큰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였고, 현재 그렇게 작동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로 Program은 대학교로 다른 대학과는 다른 한국전통문화학교로 특수성을 가진다. 세 번째는 공사비 주어진 공사비로 건물이 지어지고 있으며 네 번째 주어진 시간동안 정해진 건물을 짓고있다. 하지만 이 캠퍼스에서는 오랜 시간을 두어서 서서히 변해가며 이런 시간으로 인해서 건물들 사이에 건물들의 나이차를 느낄 수 있도록 되었다.
◎ Space Scenario - ROCKY BALBOAPARTSTORYImpression공간 분석Space ExpressionImage Sketch높다/낮다동적/정적넓다/좁다밝다/어둡다개방적/폐쇄적1최고의 헤비급 챔피언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바쁜 일상을 보내는 록키발보아인생의 변환점에서의 삶(평온한 공간)높다정적넓다밝다개방적빛의유입이 많아환 환한 공간을 유지하고 높은 층고를 가지고 있는 공간2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아드리안을 잊지 못하고 매일 그녀의 무덤을 찾는다아내에 대한 그리움(그리움, 고독함, 쓸쓸한 공간)높다정적넓다어둡다폐쇄적길고 외부의공간을 느끼지만단절된 느낌을 주며 머물 수 있는 정적인 공간3자신의 명성에 가려져 삶을 살고 있는 아들과의 사이가 안 좋음아들과의 불화(불안, 초조의 공간)높다동적넓다밝다폐쇄적높은 층고 사이를 통과하는 수평적인 연결통로좁고 낮은 통로 식 공간4일상을 보내던 중 옛날에 자신이 꾸짖었었던 불량소녀 마리를만남옛 소녀와의 추억(기쁨, 놀라움의 공간)높다동적넓다밝다개방적넓고 높은 공간개방적인 시야5마리의 아들을 만나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연민을 느껴 인생을 가르쳐 주려고 함자신과의 비슷함(연민)낮다정적좁다밝다개방적개방적이며안 과밖에서같은 느낌을갖게 하는 공간6자신의 내면에 감춰져 살고 있있던 야수를 느끼게 됨내면 세계의 발견(신비로움,정열)높다동적넓다밝다개방적어둔운 쪽에서 밝은쪽으로 좁은곳에서넓은 쪽으로폐쇄된 공간에서 개방적인 공간으로흘러가는 표현7해비급 챔피언과 시합제의를 받고 고민하던 중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합을 나가려고 결정을 함인생의 중요한 결정(단호한 결의, 기대)낮다동적넓다어둡다개방적폐쇄적인공간에서한곳을 개방해 그공간으로 가도록유도8최고의 경기를 펼치기 위해 예전의 몸 상태를 회복하려고 트레이닝에만 집중자신의 과제에 대한 집중(집중, 노력)낮다동적좁다밝다개방적길고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과 빛으로 시야를한곳에 모으는 표현9판정에는 아깝게 졌지만 할 수 있는 최고의 경기를 펼치고 링에서 내려옴최고의 경기를 이뤄냄(아쉬움, 만족, 환희)높다동적좁다밝다개방적개방적이며 넓고 높은 공간으로 표현
도 시 설 계 이 론목차Ⅰ. 서론1. 도시설계의 개념2. 도시설계의 탄생3. 도시설계의 특성Ⅱ. 본론1. 기능주의1) 르꼬르뷔지에(Le Corbusier)2) 아테네헌장(Athens Charter)3) 기능주의적 도시 사례2. 합리주의1) 알도로시(Aldo Rossi)2) 롭크리에(Rob krier)3) 합리주의 도시 사례3. 경험주의1) 까밀로 지테(Camillo Sitte)2) 케빈린치ㆍ고든쿨렌(Kevin LynchㆍGorden Cullen)3)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Ⅲ. 결론Ⅰ 서 론1. 도시설계의 개념현대 산업사회는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하여 개발 행위가 이루어지므로 자본가의 사적인 이윤추구에 따라 도시개발의 방법과 그 대상이 결정되게 된다. 따라서 공익의 관점에서 자본가의 경제력에 우선한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즉 도시설계를 통해 도시의 일반 시민을 비롯한 특정 이용자 및 공고주체 등 개발에 관계된 여러 부류의 사람들간의 입장과 함께 개발비용과 그에 따른 개발이익의 분배를 고려한 도시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도시설계는 도시의 물적 환경을 조성하는 비의도적 혹은 의도적인 도시설계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한편 좁은 의미에서의 도시설계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시형태를 조성하는 행위를 말한다.일반적으로 도시계획을 도시의 물리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및 행정적 측면을 다루는 종합적 계획으로 본다면, 도시설계는 그 중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구성하는 데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도시계획이 평면상에서 이루어지는 2차원적인 작업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비해 도시설계는 도시의 전체나 일부분의 물리적 환경을 구성하는 3차원적인 작업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더욱이 도시는 3차원적 공간에 존재하지만 항상 변화하므로 4차원적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설계를 전문분야로 인식하여 도시를 4차원적인 특성을 살린들을 디자인하는 것과 관련되며 따라서 다른 부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도시설계는 결코 그 자체만으로 완결될 수는 없으며, 네트워크로 통합되어야만 하는 디자인 작업의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 이것은, 디자인에는 강한 사회적인 요소를 필요로 한다는 또 다른 예가 된다. 도시의 한 부분을 위한 디자인은 그 부분만을 위해서 혼자서 존재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도시정책 전체를 반영하는 전략내에 자리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도시설계는 종합디자인의 한 부분이 된다고 할 수 있다네번째, 도시설계는 아티스트의 컨셉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도시설계를 수행한다는 것은 도시사회 속에서의 의사결정과정을 의미하며, 따라서 공감대 형성도 포함하는 종합적 전략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도시설계가 단순히 관계 디자인만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형태로 표현될 미래의 물질적 비젼(material vision)을 기초로 명백한 개발목표를 가지는 디자인 행위이다. 그러나 종종 관계의 디자인과 궁극적 형태의 디자인 사이에는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이 논문의 후반부에서 더 깊이 다루어질 것이다.다섯번째, 도시설계는 그 도시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때만이 의미가 있다. 그러나 디자인의 예술적 가치가 높더라도, 그 도시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한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사진1). 그러므로 도시설계의 평가는 "design sense"라는 막연한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디자인된 공간은 그 도시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위한 장소가 될 것이며, 도시공간의 생명은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으로부터 생겨난다. 도시설계란 그림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그곳에 사는 사람이 좋아하는 도시공간이 좋은 공간이며, 아름답지만 이용되지 않는 공간은 불쌍한 공간이다. 불쌍한 공간은 사는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진정으로 아름답지는 못한 공간이다. 디자인이란 사는 사람들의 지원을출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설계의 개념과 방법을 살펴보는 것은 도시와 건축에 있어서 근대 기능주의적 설계의 기법과 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 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의 도시에 대한 개념과 설계방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 르 꼬르뷔지에르 꼬르뷔지에는 근대건축운동에서 기능주의 이론과 설계방법의 창출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건축가이며, 도시와 건축에서 근대적 변화를 주도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였다. 특히 그는 근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수용하고 근대의 합리적 전통에 입각하여 도시와 건축 디자인에서 기능을 위주로 하여 ‘장식을 제거한 단순화’와 ‘새로운 형태의 창조’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1920년대 초에 그는 자신의 드로잉들에서 고층건물이 주변에 오픈스페이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결론짓도록 전개하였으며, 개개의 고층건물은 모두 동일한 규모와 디자인으로 고가의 고속도로를 고립되어 위치하도록 배치하였다. 이러한 그의 개념은 1922년 ‘300백만을 위한도시 계획안’)의 디자인에서 정밀한 기하학적 격자모양을 가진 고층 건물들로 구성하였고, 1925년 파리의 ‘부아쟁 계획’에서는 고층의 오피스건물과 거대한 복합 아파트의 시스템을 통해 고속도로가 실제로 세워지기전 오랫동안 도시를 가르고 나가던 모습처럼 도시의 역사적 중심지 흔적을 완전히 없앴다. 이러한 현대도시 계획안은 그의 도시계획과 설계이론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기하학적인 격장형의 가로체계와 수직적 건물 구성, 하나 혹은 여러개의 평지붕형태로 표출된 고층건물, 가구 및 설비가 일체화되어 통풍과 일조가 모두 충분한 집합주거, 개개 고층집합주거 사이에 있는 충분한 녹지, 그리고 폭넓은 도시 고속도로망과 좁은 보행도로망의 개발 및 두 도로망의 분리등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은 거주, 노동, 휴식, 교통이라는 도시의 주요기능이 서로 분리된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들은 실제로상징성, 지역성(locality) 및 장소성을 상실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은 그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의 상실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보편성의 추구로 야기된 기능주의의 추상화된 개념은 도시조직(urban tissue)의 상상을 초래했다. 즉 구성요소로서 도시공간의 어휘의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공간에 대한 표현 등과 같은 구체적인 공간어휘 대신에 ‘경제적 곤간(획일화된 격자형의 공간분할), 합리적 공간(평면적 토지이용체계) 등과 같은 매우 애매한 추상적인 어휘로 표현됨으로서 근대이전의 전 산업 도시에서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도시조직이 붕괴되어 획일화된 도시조직을 형성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도시답고 건물다운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적정한 규모 및 크기가 설정되어야 하는데, 근대 도시와 건축의 설계에서는 기능, 경제(대량생산체계) 그리고 효율성이라는 논리하에 상대적 관계로서의 척도를 배체함으로서 주어진 상황 및 전체구성 속에서의 주체와의 관계(human scale)를 상실한 거대한 건물 및 획일적 도시경관 및 공간을 끝없이 나열하게 하였다. 넷째는 근대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도시 환경의 문제는 경제성의 추구라는 목적에 내재하는 편협한 선형적 체계로 인하여 나타난 양상으로 다른 환경속성이 가지는 다양성이 배제됨으로서 나타나는 획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도시를 디자인하는 데서 도시전체를 다룰수 있는 도시적 차원의 설계 개념과 기법의 부재로 인하여 건축적 접근을 통하여 도시설계의 무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던 점을 들 수 있다.3) 기능주의적 도시 사례기능주의」라는 도그마가 지난 세기의 환경설계를 지배해 왔다. 성냥 곽 모양의 건물들은 획일적이지만 가장 기능적이며 현대적인 것이었다. 단지는 몇 가지 하부 체계들, 즉 토지이용·동선·상하수도·오픈스페이스·설비 등을 거느린 체계로 파악되었다. 이를 「체계적 접근」이라 부른다. 나아가서 도시 역시. 즉 이러한 묘사는 ‘삶의 행위와 그 행위가 차지하는 공간 사이의 관계성을 설정하지 않고는 건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즉 도시가 수용하는 행위와 사건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기존의 도시 형태에 관한 신 합리주의자들의 분석은 안정성과 통일성을 가져오는 형태 요소와 구조를 확실히 하였으나 다양성과 변화의 구조 원리를 빠뜨렸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도시설계에서 신 합리주의 경향은 근대도시에서 기능주의에 입각한 도시설계의 이론과 기법에 관한 한계성의 자각과 도시에 관한 재평가 속에서 태동하였으나 그 맥락은 기존의 합리주의적 접근방법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1) 알도 로시알도 로시는 합리주의 건축의 주요한 전형을 창출한 설계가로서 도시들과 건축유형들에 관한 논리적인 질서화를 바탕으로 디자인 문제에 관하여 합리적이고 실행가능한 해결대안을 설정하였다. 그의 도시에 대한 이해는 그의 저서 “도시의 건축”과 ‘유추적 도시’라는 드로잉에서 파악할 수 잇는데 이에 따르면 역사성과 지역성을 갖고 있는 현대도시가 과거와의 연속성과 부분간의 연계성 부족으로 말미암아 심한 사회적 혼란과 특성이 없는 장소로 변화되었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그는 근대건축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역사와의 단절로 인하여 환경의 질이 저하되었다고 평가하였으며, 이에 비해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도시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절재 되어 있으며 풍부한 내용과 질서를 포옹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유형’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유추’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또한 현대적 도시 프로그램은 건축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고서 도시를 장소의 유추를 통해 ‘기억의 예술’을 표현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에게서 ‘유형’은 모든 시대화 장소에 존재하는 건물에 대한 인식, 서술, 구분을 가능케 하는 형식적인 불변요소로서 이러한 불편요소는 건축의 제 상황에서 나타나는 복합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물리적 특성을 추출해 내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것이며, 그리고 유추는 유형을 형성하는 과정으
‘아테네 헌장’ 이란, 1931년 세계 각국의 문화재 보존 관련 전문가들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발표, 토론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문화재보수 기본원리에 관한 선언문이다. 이것은 문화재 보존 원리에 관한 최초의 국제적 동의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간 각 나라에서 이루어졌던 보수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기 때문에 문화재 보수이론에 관한 최초의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의 출발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세계 2차대전이 일어나기 얼마 전인 이 시대에는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으며, 이러한 정치적 상황때문인지 헌장의 문구 곳곳에는 참가국가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고심한 흔적을 역력히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어떠한 민족의 문화예술적 우월성에 바탕을 둔 프로파간다(propaganda)적 예술논쟁은 상당이 뿌리가 깊으며, 어떠한 점에서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였다. (예를 들어 1700년대 고고학의 발전과, 이에 따른 이집트 및 고대 그리스문화 유적에 대한 발굴경쟁은 신고전주의라는 새로운 예술사조를 탄생시키며, 이와 함께 이태리 북부 및 프랑스에서는 그리스 건축의 합리성에 기반한 합리주의 건축이론이 나타나게 된다. 이 그리이스 건축 및 합리주의에 대한 예찬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문화예술의 중심을 차지했던 로마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즉 로마예술은 그리스예술이 타락하고 변질되어 만들어진 열등한 문화라는 식의 공격적인 논쟁이 시작되는데, Piranesi-Mariette로 대표되는 1700년대 후반 합리주의 ? 낭만주의 건축 논쟁은 이런 점에서 매우 흥미있는 주제이다.) 하지만 문화재 보존의 측면에서는 ‘과학적인 검증이 결여된 채 가정에 근거한 보수나 중건’, ‘양식적인 선입견에 근거한 보수(아테네 헌장, 항목 II 참조)’, ‘손실되거나 원래 완성되지 않은 부분을 상상에 근거하여 재현시키는 보수’ 등등의 부정적인 경향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아테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문화재 보호의 범위가 해당 문화재를 비롯한 주변환경, 조경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며, 역사도시는 물론 경관이 뛰어난 자연환경도 보호의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아테네 헌장아테네(Atene) 국제 회의, 1931I.‘아테네 국제 회의’(이하 ‘회의’)에서는, 문화유산과 고고학적 유물의 보존은 인류문명에 관심을 갖는 모든 국가의 공통적 관심사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각 국가는 문화, 역사 유산 보존의 보다 효율적인 관리를 돕기 위하여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공동작업체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현재 각 단체나 전문가 집단은 위협 받고있는 대표적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한 관심과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절실하다; 이러한 요구가 충족될 수 있기 위하여, 각 국가의 각별한 관심하에 ‘국제 박물관 협회(Ufficio internazionale dei musei)’의 조사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전문 연구집단의 결성을 결의한다. ‘국제 전문가 공동연구기구’는 ‘국제 박물관 협회’의 조사 및 각 지역의 필요한 정보를 입수한 후, 대상 문화재에 대하여 보존작업의 적합성과 각 경우에 해당하는 적당한 방법과 순서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II.본 ‘회의’에서는 문화재 보존을 위한 각 나라의 기본 원리와 실천 지침들을 발표하고 검토하였다. 문화재는 물론 저마다 서로 다른 특수한 상황 속에 처해있으며, 그에 따른 적절하고 개별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문화재 관련 정책은 공통적으로 '원 상태로의 총체적 재건’ 위주의 문화재 복원 행위를 중단하는 것과 정기적 수선, 수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화재 훼손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제거하려 한다는 공통적인 경향을 갖는다.본 ‘회의’에서는 만약 훼손이나 부분적인 손실로 인하여 보수가 불가피할 경우에는 그 문화재에 속해있는 과거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최대한 존중할 것을 권하며, 특히 어떠한 시대에 속을 조정한다는 어려운 과제에서 기인함을 인식하였다. 그럼으로 이러한 제도는 각 국가의 지역적 상황과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여 반대 의견을 최소화 시켜야 하며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재산권이 희생될 수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이에 본 ‘회의’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모든 국가와 공공기관은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마련하여야 한다. ‘국제 박물관 협회’는 이에 대한 각 국가의 법률을 수집하여 목록화 하길 바란다.IV. 본 ‘회의’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문화재 보존에 대한 원칙과 기술이 다행히도 다음과 같은 공통된 경향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였다.즉, 유적의 경우에는 철저한 발굴상태 보존의 원칙이 적용되며, 가능할 경우에는 발굴된 부재(유물)를 원래의 자리로 원상 복구 시킨다; 이 경우 불가피하게 새롭게 부가된 부분은 항상 원래의 유적과 구분되어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약 새로 발굴된 유적의 완벽한 보전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유적이 손실될 위험성에 노출시키기 보다는, 정밀한 실측을 마친 후 다시 땅 속에 묻기를 권장한다.발굴 기술과 유적의 보존기술이 고고학자와 건축가의 긴밀한 공동작업을 요구한다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기초적인 사실이다. 또한, 모든 문화재는 각각 저마다 다른 특수한 성격을 갖는다. 그럼으로 그에 관한 어떠한 종류의 보존 작업이든, 먼저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정확한 질병의 성격과 이에 적용될 치료의 종류를 먼저 결정하여야 한다.V.본 회의에 참석한 관련 전문가들은 다양한 보고서와 발표문을 통하여, 현재 역사적 건물의 보강을 위하여 현대적인 재료가 사용되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이에 모든 현대적인 기술과 특히 시멘트의 적절한 사용에 동의한다.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하여 동원된 이러한 현대적 기술과 재료는 잘 처리되거나 감추어져 본래 대상물의 특성과 모습을 변질시키지 않도록 할 것을 권장한다; 이와 더불어 특히 이러한 작업은 현장에서 발굴된 원각종 연구보고서나 출판물을 통하여 세계박물관협회에 발표할 것;각종 조형문화재(조각)의 보존에 관하여, 본 ‘회의’는 작품을 원래 위치에서 이동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간주한다. 또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원래 모형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보존할 것을 권하며,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석고모형을 만들어 놓을 것을 권장한다.VII.본 ‘회의’는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경우에는 도시의 특성과 물리적 환경을 존중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역사 문화재의 주변환경은 문화재에 버금가는 각별한 관리의 대상이 된다. 또한, 비록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지역이 특징적인 경관을 갖고 있다면 이도 각별한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어떠한 단일문화재나 여러 문화재가 군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 조경이나 장식을 위하여 특정한 식생이나 나무가 심어져 있으면, 이러한 것들도 문화재의 원 성격을 규정하는 일부로 생각되어 연구, 보존되어야 한다.특히, 문화재 주변에는 모든 종류의 선전물이나 전화, 전기선, 혹은 소음을 유발하는 공장의 설치를 철저히 금지할 것을 권장한다.VIII. 본 ‘회의’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한다;1) 각 국가는 담당 기관을 통하여 보유 문화재목록을 작성하고 사진자료를 작성하여 보고할 것;2) 각 국가는 보유 문화재에 관련된 자료를 전문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문서보관소를 설치할 것;3) 국제 박물관 협회는 간행지에 문화재 복원의 방법과 작업순서에 관한 연구논문을 개재할 것;4) 상기 협회는 이렇게 수집된 연구성과를 각 학계나 전문가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연구할 것;IX. 본 ‘회의’는 국민들의 애정과 관심만이 문화유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이러한 정서는 국가 기관의 적절한 대책에 의하여 유도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발표한다; 모든 교육자들은 모든 인류의 문명을 기록하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고, 왜 보전하여야 하는지를 인식시켜야 하며, 이를 통하여적을 두었으며, 이러한 C.I.A.M.은 1928년 라사라 회의를 시작으로 1956년 10차 회의에 걸쳐 개최되었다.C.I.A.M.은 1920년대 유럽 근대건축 활동의 노력이 하나로 결집된 것이며, 새로운 건축 원리가 C. I. A. M.에 의해 공통의 국제적인 주제로 만들어져 세계로 보급되었다는 점에서 근대 건축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추진한 단체라 할 수 있다. 10차 회의 이후 C.I.A.M.의 해산은 근대건축의 종말과 현대건축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1). 결성기디온, 르 꼬르뷔지에, 월터 그로피우스 등이 중심이 되어 1928년 결성된 CIAM은 건축가가 국제적으로 결속하여 같은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중요한 Moment 가 되었다." 최초의 소집목적은 건축을 Academic 한 막다른 곳에서 끌어내려는데 있으며 한 층 더 나아가서는 건축을 그 본래의 사회적 및 경제적 위치에 되돌아오게 하려는 계획을 수립하려는데 있다.”라는 구절과 함께 탈 Academy를 주장하였다.CIAM은 건축이란 경제 및 정치의 폭넓은 화제에 따라 불가피하게 변하는 것이며, 산업 세계의 현실로부터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적 질의 일반적 수준을 장인이 아니라 합리적 생산방법의 보편적 채택에 의존한다고 1928년 첫 회의에서 라 사라 선언을 통해 공식적으로 주장하였다.2). 발전1928 년 라사라 선언과 1958년 두부로브니크 ( Du bro vnik )에서 열린 CIAM 마지막 회의 사이에 CIAM은 세단계의 발전을 거듭했다.a. 제1 단계1928 년부터 1933년 까지 지속되었고, 1929년 푸랑크푸르트와 많은 측면에서 가장 공론적이었다. 이 회의는 대부분 사회주의 신념을 지녔던 독일어권의 신 즉물주의 건축가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처음에는 프랑크프르트에 “ 최소한도의 생활수준을 위한 주거”라는 제목하에 최소생활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다음에는 브뤼셀에서 “ 합리적 건축요령 ” 이라는 제목하에 가장 효율적인 토지 및 재료의 사용을 위한 적정 높이와 인동간격의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