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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음악의 이해]피아노 음악의 성서(바흐의 평균율과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피아노 음악의 성서(The Bible of the Piano)-바흐의 평균율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음악의 신약이라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음악의 구약에 비유 될 수 있다.” –한스 폰 뷜로-음악의 신약과 구약이라…이런 비유를 한 사람은 19세기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고 바그너에게 아내를 뺐겼던…한스 폰 뷜로 입니다. 당시의 잘 나가던 지휘자 였구요…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도 우여곡절끝에 이 사람의 초연으로 공연되었던…그런 사람입니다…음악의 성서라...거창하죠? 어떤 연유로 이러한 비유가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한 찰나…세미나도 있고…(세미나도 있고..라는 말보단 세미나 때문에가 어울릴 듯?…) 나름대로의 호기심으로 분석해 봅니다.잘 조율된 클라비어, 또는 모든 온음과 반음을 장3도(도.레.미) 또는 단3도(레.미.파)에 다같이 관계되는 전주곡과 푸가. 그리고 학습을 열망하는 음악 청년에게 도움이 되며 사용되기 위해, 또한 이러한 공부에 숙달된 사람들의 특별한 즐거움을 위해서..안하르트-쾨텐공의 궁정악장 및 실내악 감독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에 의하여서 기초되고 작성되었다. (1722년)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이 발행될 때 바흐가 자신의 곡에 직접 붙인 표제 입니다. 길고 장황한 설명..그리고 알아 들을 수 없는 용어까지…처음부터 난제에 봉착하는…어쩌겠습니까…하나하나 알아보는 수 밖에요…앞으로 잘 나갈 S대학 작곡과 다니는 제가 아는 동생으로부터 캐낸 정보입니다…(여자임.02학번임.83년생.소개가능ㅋ)평균율: 쉽게 말하면…한 옥타브를 12개의 음으로 균등하게 나눈 겁니다..깊이 들어가면 어렵기 때문에 이정도의 설명으로…(음대생도 모른다는…)클라비어: 바흐가 살던 시대의 건반악기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특정악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오르간, 챔발로 등을 나타내는 말이죠...온음: 평균율에 의거해 12음으로 나눴을 때..(도-레, 솔-라 미-파# 따위)반음: 미-파, 도-도# 따위장3도: 도-레-미 (밝은 느낌, 다시 말하면는 순정율 이라는 것을 썼는데요...중세 때는 건반악기가 거의 없었고…주로 현악기와 관악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할땐 그때 그때 줄을 댕겼다 풀었다 사용하면 됬었지요.그런데…바흐 시대쯤~에 이르러 건반악기가 슬슬 등장했으니…건반악기는 모든 음이 조율 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용 하는건 아시죠? (피아노를 생각해보시길…)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야…C음,D음,C와D사이에 있는 무수한 음을 손놀림으로 소리낼 수 있지만 어디 피아노가 그렇나요..? 그런데 순정율 이라는 음계를 이용하여 조율을 하면…우리가 (평균율로 조율했을 때) 같은 음이라 알고 있는(실제는 귀가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약간 오차가 있음)C#음과 Db음이 다른 음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마치 기타를 잘못 조율할 때 화음이 이상해지는 것 처럼…특히 바흐가 자주 사용하는 푸가나 대위법으로 작곡을 할 때 이런 문제는 걸림돌이었다고 합니다…(건반악기로 할 때) 그래서 대위법을 잘 써먹을 수 있는 한 옥타브를 12음으로 나눈 평균율로 악기를 조율하고 그 당시까지 잘 쓰이지 않았던 평균율을 알리는 목적 등으로 을 발표한 것이지요.다시 한번 평균율을 정의하면, 그냥 쉽게 다장조니 라장조니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네요.(솔찍히 순정율과 평균율을 정확히 정의하자면…수학적인 수치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의는 생략할께요. 음대생들도 머리를 싸매고 밤낮을 고민해야 겨우 알수 있는 내용 이라고 할까요…더불어 수학, 물리학에 대한 다양한 방면의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략! 또, 경나 누나가 차후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므로 생략! 이 글에서 평균율과 순정율의 정의보다 중요한 주제는…곧 나옵니다..)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 대해서 알아볼까요?바흐 작품번호(BWV) 846-869(1권) 870-893(2권)작곡년도:1722년(1권),1740-1744년(2권)작곡기법: 전주곡(Prelude)과 푸가(Fugue)이며, 한 옥타브가 12반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에 따른 장조와 단조가 각각 있기 때문에 한권 당 24개의 곡이 있, 쇼팽등 대 피아니스트들이 를 연습함으로써 기술을 연마하고 무한한 음악적 계시를 받아왔다고 함.2성,3성,4성,5성 푸가 등으로 이루어 져 있고 대위법의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왜 바흐(Bach)이며 바흐는 시작인가 끝인가?왜 바흐가 서양음악에서 그렇게 중요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본적 있나요?선율이 아름다워서? 후세에 남을 많은 곡을 썼기 때문에? 누군가 바흐는 대단하다고 말했으니까?…여러분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이번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도 하지만, 바흐의 위대함은 평균율이라는.. 고전, 낭만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음악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데 필요한 초석을 마련했다는 것이죠. 바흐의 음악은 바로크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 바로크의 음악양식이 어떻게 고전과 낭만의 초석이 되느냐? 하는 질문들이 있겠지만…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하는 다장조니, 라단조니, 내림 마장조니, 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베토벤, 쇼팽, 바그너, 말러등의 작곡가는 바흐가 마련한 조성체계 위에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후기낭만과 쇤베르크에 이르러서는 조성이 깨지기는 하였지만…)모든것이 기초가 가장 중요하듯 바흐가 음악사에 있어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다시 말하자면 바흐는 서양 음악에 있어서 중세와 근대의 사이에 걸터 앉아있다가 과거를 정리하여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길을 닦아 놓은 초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걸터 앉아 있던 두 배경은 순정율과 평균율로 대표되는 중세와 근대였구요…과거의 입장-중세 에서 보면 바흐는 끝이었지만, 다가올 미래의 입장-근대에서는 그의 음악이 시작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cf. 베토벤의 바하에 대한 평: 평균율 클리비어 곡집을 연습하면서 베토벤은 바흐는 실개천(Bach:독일어로 실개천이란 뜻이랍니다.)이 아니라 거대한 대양과 같다! 라고 말했다.cf. 과거를 정리, 마무리했다- 무반주 첼로 조곡 같은 현악독주곡에는 순정율을 유지 모르고 살았던 고삐리 시절…중창반 친구가 비창 3악장을 쳐주었습니다. 현란한 기교(그 당시엔 손놀림이 매우 현란하다고 생각했었음…)와 마음속까지 울리는 선율…그때 제가 느꼈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첫 인상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초등학교때 엄마들의 치맛바람으로 체르니 40번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쳐왔던 내가 피아노 악보를 사 들고 집에 들어가서 중간고사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시간날 때 마다 연습 했던 곡...그 정도로 그 당시 느낌은 충격적이었고 신선했습니다. 정말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도 “아, 이 음악은 엄청나구나.”라고 느끼게 했던 곡이었죠. 일단 감상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가 신약성서?-바흐가 푸가라는 엄격한 양식의 틀에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완결 시켰다면 베토벤은 한가지의 좁은 틀에 맞추기 보다는 그 나름대로의 음악 어법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베토벤은 자신만의 대담함으로 전형적인 소나타 양식으로 이루어진 형식을 과감하게 깨버렸다. 그 중 좋은 예가 그가 작곡한 교향곡에도 그렇듯 피아노 소나타에도 유난히 스케르죠 악장이 많다는 것이다. (스케르쬬 뿐만 아니라 미뉴엣등을 사용하기 했다.) 또한 이렇게 드러나는 특징 이외 에도 하나로 요약해서 표현하기 힘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만의 개성이 있다.-여기까지가 내가 책에서 찾아보고 정리해본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건반음악에 있어서 신약성서라면 약간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베토벤 말고도 혁신을 추구한 작곡가는 많았으니깐 말이죠. 또한 그보다 후대의-쇼팽,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의 피아노라면 내노라할 1류 연주자 및 작곡가들이 많았데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그런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앞서서 바흐를 바로크와 그 이전, 그 이후를 잇는 가교로써의 역할과 기초로서의 위치를 설명했었습니다. 저는 베토벤도 바흐와 같이 그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그의 역할이 지대했기 때문소나타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할까요? (마치 성경에서 구약에 예견 되 있던 일들이 신약에서 실현되었듯…) 베토벤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혁신, 중기로 넘어가면서 내면의 감정을 힘차게 토해내는 정열, 자신의 삶을 사색하고 낭만주의의 길을 닦아 놓은 후기작품들...그가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는 후대에 그의 음악을 듣는 이에겐 감동을,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사람에겐 넘어야 할 산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마치 후대 작곡가들이 그의 교향곡 9번을 넘어야 할 산처럼 생각했듯...)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작품번호 Op.2 부터 Op.111번 까지 총 32곡. 작품번호에 들지 못한 Woo등을 합하면 더 많은 작품이 있다.작곡년도: 그의 나이 13살부터(32개에 포함되지 않는 작품) 죽기 5년전까지유명한 작품으로는 비창, 월광, 전원, 발트슈타인, 열정, 고별, 후기소나타5곡 등이 있다.우리나라 대학 입시곡으로 자주 쓰인다.표제 음악과 베토벤 소나타표제음악이란 음악이 인간의 심리, 또는 자연의 풍경 등을 음악에 담아 나타내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양식(즉, 순음악-음자체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형식에서 나오는 미를 추구하는 음악)에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표제 음악을 매우 싫어했다고 하네요. 따라서 그가 직접 제목을 붙인 곡은 꽤 드뭅니다. 월광, 비창, 열정 같은것도 그가 지은 제목이 아니었죠. 악보상들이 매출을 올리기 위한 상술로 그럴듯한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베토벤이야 무덤에서 자기곡에 마음대로 제목을 붙여놨다고 노발대발 할지 모르지만…아이러니컬하게 우리는 상인들의 상술덕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 조금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나 싶군요.푸가(Fuga)? 대위법?자! 이제 지금껏 이야기 했던 것 중에 질문이 나올 법 한 것인데…일부러 앞에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푸가? 대위법? 휴…음대생이 공부할 만한 용어지요. 하지만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곡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중에 하나일 겁니다.그렇다면 푸가나 대위법은 무엇일까요? ?
    예체능| 2006.01.10| 7페이지| 1,000원| 조회(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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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소개서]자기소개서
    완벽한 지도를 가져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완벽한 지도를 갖추지 못했더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목표를 바라보며 나의 길을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정상에 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업| 2005.11.28| 1페이지| 3,000원| 조회(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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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건축] 창덕궁과 비원 답사
    창덕궁(昌德宮)과 후원(後苑)답사창덕궁 후원 답사에 들어가면서...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정궁 중 하나이며, 배후에는 자연과 인공적인 미가 조화된 후원을 두고 있다. 일제 치하를 거치면서 궁궐과 후원이 많이 훼손 되어 복원 중이기 때문에 개별관람은 허용되지 않고 안내관람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아주 늦은 가을인 11월 26일에 방문 했었는데, 늦게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던 낙엽과 마침 첫눈이 내리던 것과 어우러져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번 답사는 창덕궁 돈화문에서 시작하여 옥류천까지 약 3km의 거리를 안내요원과 함께 둘러보는 식으로 진행 되었다.1. 답사지로 선정한 이유궁궐의 경우 한 나라를 대표하는 건물이니 만큼, 밀도 있는 건축 수법이나 옛 사람들의 생각 등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후원은 조선시대 왕들이 거하는 궁궐을 두고 조성된 정원이기 때문에, 그 기법이나 방법에 있어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조경과 건축술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건축이나 조경 기술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로써의 사상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답사 결과 이는 많은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과거 선조들이 자연과 건물을 우리나라라는 지리적, 지형적 조건에서 어떻게 조화 시켰는지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곳을 답사지로 선정하게 되었다.2. 간략한 창덕궁과 후원의 역사조선조 태종 때 지어져 세조가 이곳에 이어 하면서 궁역이 확장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의 재위기간에 주요 전각이 복구되어 조선 말기까지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후원 역시 창덕궁의 창건 시기와 비슷하며, 임진왜란 이후 황폐해 졌던 것을 광해군 재위기에 복원을 하였다.1)조선 전기태조 때 경복궁을 창건했으나 2대 정종은 옛 도읍 개성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그 후 3대 태종 때 한양으로 돌아와 이궁인 창덕궁을 지었다.) 이렇게 완성된 창덕궁의 규모는 외전 74칸, 내전 118칸이었다. 세종에서 연산군 때 까지는 작은 개.보수만 만들고 정자를 지었다.2)임진왜란 이후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 버렸지만 전쟁이 끝나고 가장 먼저 복구를 시작한 곳이 창덕궁 이었다.) 그러나 중건 후 약 10년 만에 인조반정 때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영조 때 까지 소규모의 소실과 중건이 뒤따랐다. 후원 역시 광해군 때 복구되기 시작하면서 인조 대에 들어 수많은 정자들이 새로 건립 되고 물을 끌어 들여 조경을 함으로 현재와 같은 규모로 조성되었고, 정조 시기에는 후원 내에 규장각이 설치되었다.3)조선 말기와 광복 이후 복원조선 말기에는 몇 차례의 화재를 당했고 그 때마다 많은 전각들이 중건되었다.) 일제 치하였던 1917년 마지막 화재를 당했는데 중건의 재료로 경복궁을 철거하여 충당하여 완성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는 내, 외국인에게 관람이 허용되면서 각종 시설들의 훼손 되었고 특히 후원이 크게 망가졌다. 현재 3단계까지의 복원 공사가 완료 되었고 창덕궁과 후원의 원형이 거의 복원 되어가고 있다.3.답사 1 - 창덕궁 코스1)돈화문과 금천교돈화문은 창덕궁의 입구이며 남향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정면5칸 측면2칸이고 정면의 기둥은 abbba의 리듬으로 되어있다. 격식 있는 궁궐의 입구답게 공포의 형식은 다포양식 이었으며 지붕의 형태는 우진각 지붕이었다.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길이 꺾여서 금천교를 지나게 되는데, 조선의 궁궐에는 풍수지리상 초입부에 맑은 물이 흐르는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거북이 모양의 돌이 두 개의 아치를 지탱하고 있는 형태로 수량이 부족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돈화문과 금천교를 지나면서 들었던 생각은 진입 축(남-북으로 향한 돈화문)과 다리를 건너서 인정전으로 가는 축(동-서)으로 한번 꺾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프랑스의 라데팡스의 강력한 직선축이나, 광활한 평지 지역인 중국의 자금성과 같이 격자형의 체계와 같은 인공적인 축이 아니라 지형의 높낮이에 적응해야하는 우리나라에 맞는 순응적 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에 얕은 언2)인정문과 인정전 그리고 월대최근 새로 복원된 진선문을 지나 외행각을 따라가니 왼쪽으로 인정문(남-북 방향)이 보였다. 인정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것이 인정전인데 배경과도 같은 인왕산 산줄기가 건물을 감싸는듯 한 형상이었다. 이곳에서 효종, 숙종, 영조 등 여러 왕들이 즉위식을 하였다고 한다. 인정전의 월대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그 월대의 규모에 비교해서는 좀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심한 손길은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는데, 여름의 햇빛 반사를 막기 위해 돌의 표면부분을 정으로 쪼아내서 반사되는 것을 막은 것, 월대의 단면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어 비가 올 때 물의 배수를 원활하게 한 것 등에서 그러한 배려들이 느껴졌다. 인정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에 2층 다포양식이다. 내부를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예측하건데, 처마가 깊어서 많은 빛이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광창(光窓)으로 빛이 살짝 들어오면서 어둡지 않은 편안한 공간이 형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가 집을 틀어 구렁이나 뱀 등이 건물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 양성(兩城)용마루와 함께, 공포와 처마 사이에 그물을 쳐놓기도 하였다.3)선정전창덕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청색으로 채색된 기와에서 그 강한 인상을 느낄 수 있고,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진입구의 회랑 부분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역시 직접 들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느낌은 알 수 없지만, 아담하고 무언가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드는 공간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면 3칸이고 측면 3칸인 단층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으며, 문정대비가 이곳에서 수렴청정 했다고 전해진다.4)희정당전면부가 완전히 개조되어 대한제국 시절에는 문 앞까지 차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왕이 이용하던 교통수단이 가마에서 자동차로 바뀌면서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전면이 곡선의 완만한 경사로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서양식 문물과의 문화적 충돌이 건축에서두와 잡상이 올라가 있다.5)대조전조선 말기의 건축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기존 좌식 생활이 기본이던 조선 건축에 서양의 입식 생활 기기들-의자, 책상, 카펫 등- 을 배치하였다. 시대적인 이유 때문에 서양의 것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조건 적인 수용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남의 것을 우리 것으로 승화 시킬 만한 시간을 갖고 지어진 내부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부조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4.답사 2 - 후원창덕궁을 둘러 본 후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은 전체 면적이 약 9만평으로 그중에 건물이 들어선 비율은 1%가량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정원을 꾸몄던 조선의 조경 기법을 잘 알 수 있는 곳이었다. 후문을 통해 후원으로 가는 동안 눈이 내려서 관람 하던 사람들이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나무들은 가을의 마지막을 붉게 태우면서 기념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을 길이었는데 눈까지 내리니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1)영화당과 부용정 주변후원에서 처음 도착한 곳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남)을 상징하는 방형의 연못과 가운데의 둥근 섬으로 이루어진 부용지였다. 연못의 남쪽에는 부용정이, 북쪽에는 어수문이 있으며, 북쪽 단에는 규장각으로 서향각과 주합루가 있었다. 동쪽에 부용지를 마주보면서 영화당이 배치되어 있었다.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부용지와 사정기비각, 어수문과 주합루,부용정, 영화당.주합루는 이곳 후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 아니었나싶다. 정면이 5칸이고 측면이 4칸 규모로 주심포 양식의 2층 팔작 지붕을 갖고 있다. 아래층은 규장각으로 사용되었고, 위층 은 누각으로 사용되었다. 주합루까지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누각 위에서의 경치는 부용정에서의 프레임 속에서의 경치와는 또 다른 좀 더 넓직한, 마치 길게 펼쳐진 병풍 같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부용정은 십자형을 기본으로 후면의 십자부분이 꺾인 그야말로 자유로운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눈에 띄는 정자이다. 건물의 정조는 이곳에 앉아서 낚시를 즐겼다고 하는데 정자 안에서의 운치가 아주 좋았다. 정자에서의 특징은, 내부에서 바깥을 향한 시야에 있어서 사진 액자와 같은 프레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인데, 이는 다양한 각도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다양한 시점의 풍경이 나올 수 있다는 데서 주목할 만하다. 정자 안에서는 보는 시점마다 한 폭의 동양화가 그려지는 셈이다.영화당은 문무신하들이 모여 부용지를 바라보며 시예를 뽐내던 곳이다. 정면 5칸에 측면 3칸이며 단층의 팔작지붕의 익공집이다. 3면의 기단에 계단이 있어서 출입이 자유롭고, 기단이 있는 대청의 3면은 문비를 들어 올려서 경치를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지금으로 말하면 가변형 벽체를 가지고 있다. 영화당 앞에는 조선의 천문 과학의 산실인 앙구일부가 놓여 있었다.2)애련정과 관람정 주변애련정은 정면과 측면 각각 1칸씩이며 사모 지붕을 얹은 익공집이다. 부용정과 마찬가지로 반쯤 연못에 기댄 형상을 하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로 이루어져 있고, 지붕 꼭대기에는 절병통이 놓여져 있다. 연못가의 초석은 사다리꼴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름에 연못에는 수많은 연꽃이 핀다고 한다. 역시 내부에서의 액자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풍혈판이 있으며, 바닥은 난간으로 둘러싸인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 연못 전경, 존덕정, 승재정, 존덕정.애련정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불규칙한 곡면으로 이루어진 연못이 나타나고 이어서 연못가에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과 언덕에 승재정이 보이며, 석교를 지나면 육각형의 정자인 존덕정이 위치해 있다.정자 건축의 자유로움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 평면의 자유로움은 관람정에서 극치를 이루는데, 방형도 원형도 다각형도 아닌 조망을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부채꼴 형태의 평면을 가지고 있다. 존덕정은 육각형의 평면을 갖고 있으며 주심포 건물이다. 단순한 육면체에서 툇간을 한 겹 더 돌려서 2개의 지붕이 겹쳐져 있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연못에 면하고 있는 이 정자들 역시 평면의 절반이 연못에 의지하고 있웠다.
    공학/기술| 2005.05.26| 8페이지| 1,000원| 조회(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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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건축, 스티븐 홀] 스티븐 홀
    STEVEN HOLL1.약력- 1947년 미국 워싱턴 주 브레머튼 태생- 1966년 워싱턴 주립대학 건축과에 진학- 1970년 로마 수학 당시 판테온을 방문하고 영향을 받음- 1977년 AA과정 수료- 루이스 칸과 르 꼬르뷔제의 영향- 1976년 영국의 AA 스쿨에서 다양한 건축가와의 경험을 통해 1970~80년대 초반 미국 전반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형태적, 언어적 조작과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건축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복귀보다는 개념의 윤곽과 현상학적 접근 사이의 혼합방식에 관심을 갖게 됨2.주요작품- Chapel of St. Ignatius, Seattle- Kiasma museum, Helsinki- Fukuoka housing- Bellevue art museum, New York- Simmons hall ( residence at MIT )- Makuhari housing, Chiba- D.E.Shaw Company, New York3.현상학1)후설의 현상학가시적인 현상을 평가 절하해온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반발.->세계와의 어떤 직접적이고 소박한 접촉을 재 달성 하려고 노력하며, 이 소박한 접촉은 하나의 철학적 지위를 부여받는다.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 세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2)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과 공간신체는 지각의 근거, 주체 - ‘철학자의 절대적 지식은 지각이다’합리주의자들의 공간 개념은 ‘공간은 사물의 정립이 가능한 수단’경험주의자들의 공간개념은 ‘모든 사물이 잠겨있는 일종의 에테르, 사물들이 배치되는 무대’퐁티의 공간 개념은 양자를 부정하는 제 3의 공간성으로 상하, 깊이, 운동과 같은 공간적 관계들의 특성을 신체의 공간 지각과 관련해서 정의.Ex)인상파의 회화이론-환경을 지배하는 빛이 조명으로 작용해 대상에 실제 색을 부여함3)건축에서의 현상학공간과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체험의 대상으로서의 현상을 지각하고 지각된 현상본질을 다양한·감각을 통해 체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체화 시키고자 하는 것.Ex) 문학의 현상학적 접근 방법 중에는 구체화(Concretization)라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소설의 텍스트 만을 보고는 문학을 파악할 수 없고 그 속에서의 독자의 체험과 상상력이 작용할 때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다게 된다는 것이다.현상학적 체험이란 눈에 보이는 것뿐 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내포된 모든 것을 말한다.->시각적인 자극 및 인체의 오감뿐만 아니라, 이차적으로는 물리적 자극이 인간 내면에 배어 있는 느낌, 상상력, 의미를 포함하며, 삼차적으로는 인간 주변의 환경이 어우러져 융합하는 총체적인 현상.4)스티븐 홀의 건축에 나타난 현상학적 접근 방식정착(ANCHONING)-건물과 대지의 관계대지의 내재된 잠재력과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건물과 통합함으로써 건물과 대지의 통합에 의해 개념을 추출하고 이것을 매개체로 대지에 잠재된 장소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엮임(INTERTWINING)-개념적인 차원을 인간의 입체적인 경험과 통합하는 과정건물과 대지를 통해 드러난 개념을 지각적이고 감각적 경험을 통해 현상적 공간으로 구체화하는 것아이디어와 현상(IDEA AND PHENOMENA)-개념적 차원인 아이디어와 감각을 통한 다양한 현상을 체험을 통해 엮어서 건축물을 만들어 낸다.5)스티븐 홀의 PROCESS 표현 방식-수채화 다점 투시도대지와 프로그램의 개념을 현상의 특성과 연결하기 위한 개념적 전략동적인 시점에서 신체의 이동에 따른 현상학적 체험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면으로 처리된 벽면을 통해 빛과 색을 통한 시각의 감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도구-모형실제 건물재료를 사용함으로 수채 투시도에서 확인 했던 현상의 효과에 물질성을 가미모형을 통한 다양한 빛의 성질 STUDY6)현상적 지각 체험을 이루는 요소-빛과 그림자건축의 지각적인 정신과 형이상학적인 힘은 Solid와 Void에 의한 불투명도, 투명도, 반투명도에 의해 만들어진 빛과 그림자의 질에 의해서 이끌어진다. 건축의 문제에 있어서 눈이 보는 것과 감각이 느끼는 것은 빛과 그림자에 따라 형성된다.-색채색은 빛의 특성 중 하나이며 색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빛의 파장의 수학과 시간의 물리적 활동을 통해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색의 공간에 대한 체험은 신비한 효과와 철학적인 잠재력에 의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재료재료의 자연적 본성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욱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변형, 재료의 변형은 빛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현상을 지각적으로 활성화 시킨다. 시각적 감각의 촉각적 변화 역시 이에 포함.-물인간은 다양하게 변형되어 가시적으로 드러난 빛을 관찰함으로써 대상물 뿐 아니라 현상 그 자체를 지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물은 대상물을 반사시킴으로써 공간을 역전시킨다. 이런 물의 효과를 고려해서 물은 현상을 투여하는 ‘현상적 렌즈’로 생각될 수 있다.-신체의 움직임신체의 움직임에 따른 현상의 변화는 주로 시,지각에 관련된 것으로 시점의 이동을 고려한 현상의 지각적 활성화 방법-밤의 공간성, 시간의 지속과 지각, 소리, 디테일, 대지와 주변 환경이들이 개별적인 적용이 만이 아닌 전체가 통합된 경험을 만든다.7)구체적으로 드러난 현상학적 체험 요소-이중 내피단일 공간이 아닌 이중의 벽체로 처리하여 공간을 확장 함으로써 자신이 속해있는 공간 뿐만 아니라 벽체 너머의 공간에 대한 지각과 상상을 통해 간접적 체험요소로 사용.간접광을 통해 다양한 색채, 빛의 굴절 등을 통해 시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함.-이중 외피밤에도 건물 외부에서 다양한 빛을 접함으로써 외부에서도 현상학적 체험.-가변형 공간건물의 벽체 등을 실제적으로 이동시켜서 방문자에게 다양한 체험요소로 사용.시간대나 기능에 따라서 공간을 변화시킴으로서 변화하는 공간을 지각할 수 있음.-램프공간을 따라 상승 하강함에 따라 다양한 시각적 변화의 경험이 가능하고 이는 수채화를 통해 표현한 다점 투시도와 연관된다.-분절된 창분절된 창의 면에 다양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유발되는 빛의 변화 등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창의 분절은 단일한 빛이나 시각적 교감에 의한 체험이 아닌 다양한 복합공간에서의 체험을 만들어 낸다.8)사례-키아즈마 미술관? Anchoring, Intertwining : 대지에 잠재된 두가지 흐름(toolo만을 향한 자연의 흐름, 문화 역사의 흐름)의 교차점을 엮음.? 자연과 건물의 엮임 --> 두 매스의 엮임 --> 동선의 엮임 --> 디테일의 엮임
    공학/기술| 2005.05.26| 5페이지| 1,000원| 조회(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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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건축] 건축에서 흰색의 의미 평가A+최고예요
    건축에 있어서 흰색의 의미-아돌프 로스, 르 꼬르뷔지에, 리차드 마이어, 캉포 바에자에서 발견되는 흰색의 의미-{-개요-1. 일반적인 흰색의 의미2. 근대 이후에 사용된 건축에서 흰색의 의미1)아돌프 로스 (Adolf Loos)- 침묵하는 외부의 표피로써 흰색2)모더니즘과 르 꼬르뷔지에 (Modernism and Le Corbusier)2.1)모더니즘 (Modernism)2.2)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 순수함과 기능의 흰색3)뉴욕 5와 리차드 마이어 (New York 5 and Richard Meier)3.1)뉴욕 5 (New York 5)3.2)리차드 마이어 (Richard Meier)- 네오 모던의 흰색4)미니멀리즘과 캉포 바에자 (Minimalism and Campo Baeza)4.1)캉포 바에자 (Campo Baeza)- 비움과 본질의 흰색3.결론 - 흰색의 의미 종합1. 일반적인 흰색의 의미{-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3,4)-색채의 근원은 빛이다. 다양한 파장의 빛 중에 가시광선의 영역이 각자의 파장을 따라 색채를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가시광선영역의 색을 모두 합치면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인다. 따라서 흰색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즉 빛의 색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흰색은 모든 색중에서 가장 완벽한 색이며 절대적인 색이다. 흰색은 순수할수록 완벽하며, 다른 것이 첨가되면 그 완벽함이 떨어진다. 예수를 흰 양에 비유하듯이 흰색은 무결하고 흠 없음을 상징한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의 색 역시 흰색이다. 제우스는 하얀 황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레다는 백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백호나 흰 소, 흰 말, 흰 사슴 등 흰색의 동물이 태어나는 것은 매우 상서로운 일로 간주되었다.흰색은 형이상학적인 색이다. 플라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면서 순수하며 이상적이고 흠이 없는 세계를 이데아라고 정의했다. 흰색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적 삶을 사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건축에서의 정직성과 단순성을 높이 평가하고 당시 타락한 건축에 대한 대안으로 진솔하고 합리적이며 실제적인 건축을 추구했다.로스의 건물들에서는 구조와 관계없는 건축요소가 철저하게 배제되어 필요한 창과 최소한의 개구부만 뚫어낸 편편한 벽면의 단순한 매스를 보게 된다. 이러한 건물들은 후일 유럽 합리주의 건축의 효시로서 불리며, 르 꼬르뷔제나 그로피우스를 포함함 전후의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로스 자신이 합리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니며 단지 예술과 효용, 건축과 집, 장식과 무장식이 서로 연역된 결과인 것이다. 한편 그토록 강력히 장식의 배제를 주장한 그의 이론과는 다르게 그의 작품에서는 이오니아식 기둥이 간간히 나타나는데 이는 반복요소로서 로스건축의 원형적 디자인 요소로 자주 등장하며, 대도시 건축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즉 역사를 통하여 안정된 건축의 기성품을 쓰는 것은 상식을 창조하느라 애쓰는 태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우이다. 이와 같이 로스의 장식 배제론은 노동, 재료, 시간의 경제성에서 새 시대의 양식을 찾으려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아돌프 로스는(Adolf Loos) 외벽 표면의 요철에서 비롯되는 평활면의 파괴를 막기 위해 장식이 제거된 백색 피복을 사용한다.{1910년 그는 슈타이너 주택(Steiner House)에서 외부의 장식을 완전히 제거한 건축을 보여준다. 대신 재료의 물성이나 배색 피복을 강조해 장식적 피복이나 즉물적 표현성을 대체한다. 건물의 내부는 문명 에 노출되어 있고 내부는 개인 의 소유이기 때문에 장식을 개인의 의지에 맡긴 반면에, 외관은 문화가 소멸된 근대도시를 투영하기 위하여 또는 공적 영역에서의 침묵을 위하여 백색 피복의 침묵하는 볼륨으로 표현한 것이다.그는 외부에 어떤 장식을 가함으로 해서 그 시대의 정신의 상징이라고 자신이 생각하였던 더 이상 장식을 만들어 내지 않음 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외관이면 족하다는 생 콘크리트 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조나 벽돌이 주는 물질감이 배제되고 있다. 유리로 된 창문과 콘크리트로 된 불투명한 면이 요철 없이 단일한 표면으로 마무리됨으로서 벽면과 유리가 각각의 물질성을 떠나 추상적 구성요소로서 지각 이러한 비물질성으로 인하여 데 스틸의 건물은 시각적으로 공중에 떠있는 듯한 부유감을 준다.-개방성 : 방사형 팽창, 내외공간의 상호침투전통적 건물의 내부지향적인 닫혀진 공간개념이 무한한 외부공간을 향한 열려진 공간개념으로 대치 상호관련된 공간들이 전체공간을 향하여 개방되어있다.{■큐비즘회화에서는 투명, 내외 부 공간의 상호관입. 정적인 형태에 대한 운동의 도입 등이 큐비즘 화가들의 관심사였는데, 세잔느가 시각을 회화적 장치라고 하는 하나의 복합체 속에 적응시킨 주지적 조형성 이론에 근거하여 큐비즘이 질서를 버리고 전. 후관계를 무시하여 형체의 조립에 새로운 이미지 창조에 영향을 미쳤다. 큐비즘은 시간과 공간의 통념을 벗어나 공간이라는 3차원에다 시간을 다한 4차원을 표현한 동시적 표현(주제가 되는 물체주위에 관찰자를 유도하거나 그 주제가 되는 물체는 동시적으로 침투되어 결과적으로 공간에서 관찰자의 운동이라는 개념을 표현)을 평면위에 투영하였다. Cubist들은 전통적인 3차원에 새로운 차원(시간)을 첨가시킴으로써 이러한 시점도 절대적 시점이 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모든 시점으로 그 내적 구성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으며 아울러 전체적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 내적 유기체(뼈대, 구조)까지도 파악하려고 했다.{■퓨리즘오장팡과 꼬르뷔지에는 1918년 '큐비즘 이후'. 1919년 '신정신'에서 입체주의가 마지막으로 도달했던 종합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모든 현대 예술의 조형적 사고는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를 순수주의 혹은 퓨리즘이라 한다. 그들은 진정한 예술가는 기술자로서 그들이 고안해 낸 여러 가지 작품에 합리적인 질서가 발견될 수 있고 이러한 질서들이 일반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그 질서가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표현되고 있된 외길의 작업이었다. 거기서 보이는 것은 주택을 양산 가능한 한 개의 기계제품으로 어떻게 성립시키는가 하는 모더니스트 르 꼬르뷔지에의 노력이 엿보인다. 또한 그것과 병행하여 라로쉬-잔느레 저택이나, 슈타인 저택, 그리고 사보와 저택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큰 주택의 계보에는 추상적이고 순수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욕망과 함께, 특유의 기계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게 된다. 예를 들면, 사보아 주택에서는 견고하고 이성적인 건축이라는 느낌을 주며 대지와의 결속보다는 착륙한/혹은 이륙하기위해 준비하는 우주선과 같은 느낌을 준다.{슈타인 주택(1926년)은 파리에서 20km 떨어진 한적한 고급 별장지에 지어진 주택이다. 넒은 대지 중앙에 건물이 서있는데 녹색의 나무속에 백색의 커다란 전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파리 시내에 있는 백색이 주택에서 연상되는 주택=기계의 공식 보다는 도회에서 떨어진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한 느긋한 기분이 충만한 백색의 커다란 오브제로써 주택=궁전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주택 여기저기서 기계미학적인 메타포가 느껴지는데, 당시 출현한 공업 생산품이나 배와 비행기의 디테일이 느껴지게 된다. 또한 빌라의 이미지라고 하는 역사와 관련하여 그것들을 교묘하게 정형화한 백색 시대의 건축의 구성법의 위에 높고 교묘하게 틀어 놓음으로써 모던 시대에 살아가는 시대의 신선도를 나타내고 동시에 인간의 주거가 가지는 복잡한 감정이나 활동의 소용돌이, 마음의 설레임을 몇 장의 면의 구성에 각인하여 백색의 상자에 봉인하려 한듯한 느낌을 준다.{빌라 사보아(1929년)는 그의 건축적 어휘가 잘 드러난 주택이다.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 , 도미노 이론, 근대 건축의 5원칙 등이 거의 모두 적용된 이 주택은 대지와 떨어진 오브제로써 자리 잡고 있다. 외피에서 흰색이 사용되고 있는데, 흰색은 필로티와 함께 땅에서 분리되려는 의도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외피에 있어서 구축적인 성격을 지워서 중성적인 느낌이 나도록 하는 의도를 지녔다.롱샹의 백색의 외피 역시 오브제의 성격,성을 회복하는 움직임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합리주의적 건축관은 이러한 상황을 이끈 핵심적인 사상이었다.둘째로 네오-모더니즘적 역사관이다. 뉴욕 5 건축은 위와 같은 배경 하에 모더니즘 거장의 백색 이상주의로부터 출발한 모던-리바이벌의 역사관을 추구하였다. 이 현상은 1960년대를 거치며 르 꼬르뷔지에, 미스 반 데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등의 모더니즘의 거장이 잇달아 타계하면서 감성적인 노스텔지어 양상 까지 띄며 확장 되었다. 내용적으로 볼때, 모더니즘 거장의 원형 모델을 건축적으로 출발하는 동시에 일정부분 독창적으로 변형 하는 수법을 보인다.셋째는 백색(White)와 회색(Gray)의 논쟁이다. 뉴욕 5의 건축은 1960년대 대중 건축 운동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으며 다시 1973년에 스턴(Robert Stern)을 필두로한 대중 건축 운동 쪽에서 뉴욕 5을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였다. 이후 두 진영에서는 서로에 대한 비판이 오갔다. 이때 백색 순결주의를 추구한 뉴욕 5의 건축관에을 화이트라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여기에 대비되어 문화적 색깔을 나타내려는 대중 건축 운동의 건축관을 그레이 라고부르게 된다. 건축적 추상미로서의 화이트는 가치 중립적인 기하 형태의 조작 만으로 선험적 절대 가치를 얻을 수있다는 이상주의적 조형관을 배경으로 갖는다. 이러한 화이트의 조형작업은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소수의 건축가들만이 할 수 있다는 엘리트 주의를 표방한다.{3.1)리차드 마이어 - 네오 모던의 흰색리차드 마이어는 뉴욕 5의 건축관의 순도를 가장 오랜 기간 유지하며 가장 많은 수의 건축물로 이것을 구체화 시킨 점에서 뉴욕 5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그는 백색 에 관한 남다른 철학이 있어 그의 작품집이나 연설문에 자주 언급 되기도 한다. 그가 주장하는 백색 건축의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모든 자연색에서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색채이다. 앞서 설명한 것 같이 빛의 색으로써 프리즘을 통과하기 이전의 가시.
    공학/기술| 2005.05.26| 18페이지| 1,500원| 조회(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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