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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와 언론을 보는 수용자의 올바른 관점
    뉴스와 언론을 보는 수용자의 올바른 관점서론.뉴스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말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뉴스가 수용자에게 다량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수용자들을 무비판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만드는데 공조한다는 Lasswell의 미디어의 제1기능-환경감시의 역기능에서 보여지듯 뉴스는 수용자를 동원하고 행동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것이 어느 방향이던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뉴스와 그 배후의 언론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스스로의 감시와 비판능력이 상실되고 무시되고 있는 요즘 수용자는 그들의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미디어 이슈들을 통해 뉴스와 언론의 편파성과 그에 대한 수용자의 올바른 관점을 제시해보기로 하겠다.본론.게이트 키퍼 이론은 1947년 쿠르트 레빈이 언론인이 게이트키퍼로서 정보의 의미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도입하였다. 이는 게이트 키퍼의 사회적 배경과 입장 등이 그들의 뉴스선택과 내용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언론은 각각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에 따라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기준과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조직적이고 관습화된 체계로 정보를 통제하게 된다. 언론의 개인적, 집단적, 조직적, 사회적인 이해관계로 인한 사고방식들은 그들만의 집단주의를 일으켜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를 방해하고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편파성 보도가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이는 각각의 이념색이 다른 만큼 결과적인 표현물인 신문의 기사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논평이나 사설의 상관조정적 기사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최근 메이저 신문사들의 편파보도는 이미 극에 달해 있는 실정이다.17대 총선 보도에서 나타난 각 신문사들의 특정정당에 대한 편파보도는 의제 설정이나 편집에서 극히 의도성을 드러내며 공정성을 해쳤다. 특히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편파보도는 지나친 정당 편들기와 반대당 비하의 끊임없는 정당 시비를 부추겼다. 그의 단적인 근거로 선거 당시 열린 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한나라당 선대위원장 사퇴는 상대적으로 작게 처리하는 등의 편파 보도를 일삼음으로서 독자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총선 보도에 대한 조?중?동 삼사가 나름대로의 정도 차는 보일지라도 이러한 이념적 편향을 보이는 것은 어느 언론에서나 흔히 있는 것으로 미디어의 게이트 키핑의 역할이 지나치게 개입되어 언론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할 당위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립성과 공정성은 언론이 객관성을 가지기 위한 충분조건으로서 독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 있고 공정하게 보도함을 뜻한다. 이는 모든 선택권은 독자에게 있고 수용의 정도와 기준 또한 독자의 판단여부에 달린, 언론인의 가치 개입이 없는 보도의 의견과 사실의 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하지만 언론은 절대적인 객관성과 중립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게이트키퍼의 출신 배경, 전문적 훈련, 개인적 기질, 경제적 지위 등이 큰 중요성을 갖는다는 ) 로스텐의 지적에서와 같이 완벽한 객관성을 지니기 어려운 언론은 그 불안전성으로 인하여 객관성이 오히려 스스로를 의제에 대해서 방어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언론의 객관주의는 양시양비론적인 중립주의로서 전략적, 의도적으로 편향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수용자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정치-특히 선거보도의 경우-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편향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문제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적합성의 문제이므로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게끔 도와주는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고 적당한 선의 정당을 지지하고 보도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주의의 역기능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은 그 기준과 언론의 자제 능력을 설정할 수 없어 많은 부분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러한 신문사들의 이념색은 비단 총선과 같은 개별적 이슈에 대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신문사, 특히 메이저급 신문사는 오랫동안 지녀온 고유의 이념색이 있어 그로 인해 사건의 정확한 전달보다는 자신들의 프레임에 맞춘 여과된 해석을 내보내게 된다. 가령 조선일보의 이념색은 80여년간의 정권과 권력에 대한 몸바침의 보수적인 권력언론) 이라고 극단적으로 평가되는가 하면 영향력 있는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 뉴스의 경우 보수적인 메이저 언론사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자신들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특히 정치색이 짙은 기사에만 유독 기사 실명제를 꺼려하는 모습과 안티 조선에 열혈을 기하는 편향적인 자세의 기사들이 과연 공정성을 담보로 해야 할 기자, 뉴스, 신문, 언론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의심케 한다) 는 비판을 받고 있다.이처럼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는 결국 상대적이고 극히 해석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판단과 수용의 역할은 결국 독자 자신에게 맡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언론의 정보 제공에 대한 수용자들의 비판 의식과 선별적 수용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편향적이고 조정된 보도는 수용자들에게 지배적인 가치와 이념을 주입시키고 주체적인 비판능력을 상실하게 하여 다양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사고와 문화를 양산하게 만든다. 또한 지나치게 미디어의 의견에만 의존하게 되어 미디어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과 동일시하는 자아매몰과 정체성이 상실된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수용자들은 스스로의 의견을 개진하고 정당하게 공표하여 사회의 한 목소리로서의 역할을 당당하게 해내야 한다. 최근 사회 이슈에 있어서 인터넷의 활발한 토론 문화와 게시판 문화는 이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 주고 있다.그러나 최근의 여러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인터넷상의 의사표현은 이러한 긍정적인 수용자의 참여의 역할이 도를 지나쳐 건전한 비판과 이성적 토론이 아닌 욕설과 공격성 비방 등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4.15 총선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문제로 정치적 토론이 가장 뜨겁던 인터넷에서 대부분의 논쟁들이 특정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 한다는 입장에서 많은 반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더 이상 사이버상의 자정 능력에 맡길 수 없을 정도의 언어적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는 반론도 간과할 수 없다.
    사회과학| 2005.05.23| 3페이지| 2,500원| 조회(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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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 ° 쏘 ° 공이 소설은 산업사회의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난장이 가족으로 대표되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조명한다. 기계화에 종속되는 산업사회에서 난장이 아버지는 그 수공업적 가치를 잃었으며 공장에서 기계적인 노동을 하는 그의 아들과 딸이 난장이의 모습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상실한 난장이는 결국 그의 소망인 달나라로의 여행을 가지 못한 채 차가운 공장의 굴뚝에서 떨어져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불거지기 시작했던 사회문제와 노동문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문학을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각각의 연작들은 모두 각기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인 구성을 통해 하나의 완벽한 장편 소설을 탄생시킨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돌아가면서 배치하고 그 연관되는 사건을 하나의 통합체로서 제시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여러 사건들도 그 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하나의 공통된 귀결 내지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로 함몰된다. 작가가 내비친 사건의 표면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 사건의 저변에 어떤 복잡하고 심층적인 구조가 내재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은 사회의 가장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는 하층민의 소시민적 삶의 양상을 가장 사실적이고 극명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내면에의 지향을 통해 현실의 비참함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다.작품에 등장하는 난장이나 꼽추, 앉은뱅이 등의 신체적 불구의 묘사는 단순히 그의 결함적 측면만을 들춰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연작 ‘칼날’에서 신애는 수도를 고치는 난장이에게 친근감과 동류의식을 느끼게 된다.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난장이나, 신체적으로는 정상이지만 사회에 의해서 난장이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 속에 매몰되어 소시민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난장이로 대표되는 우리의 하층민들은 사회의 완강한 억압에 억눌려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야 하는 소외된 인물의 표상이다. 이들은 자신의 터전이었던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한치의 저항이나 분노도 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나약한 소시민인 것이다.난장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책을 읽고 교육을 받으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대물림하는 것을 피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난장이와 천민의 아들로서의 선천적인 지위 때문에 얻어 주운 책을 읽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대응 밖에 할 수 없었던 난장이의 아들 딸은 그 어떤 진취적인 행동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회 속의 있는 그대로의 ‘난장이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난장이의 세 남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은강 공장의 노동자로 있으면서 처지의 부당함을 느끼게 되고 그에 대한 자발적인 개혁 의지를 보이게 된다. 이들의 개혁적 성향으로의 변모로 말미암아 소설은 큰 아들 영수의 행위 처사를 주도 면밀히 따라 나서게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뛰어드는 영수의 노동운동은 결국 그 현실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독자적인 마을을 열망한 난장이들의 작은 힘들이 모여서 난장이 마을을 세웠듯 영수는 자 난 ° 쏘 ° 공신이 은강의 노동자들과 스스로 독자적인 조합을 세워 정당한 권리를 보장 받고자 했다. 그 러나 현실은 냉철했으며 은강은 난장이 마을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영수가 원한 그러한 희망찬 미래는 가망성이 보이지 않았다. 평생을 멸시를 받으며 경제적 고문을 받아야 했던 난장이 아버지는 자신이 살고 싶어 했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자식들에게 지웠다. 사장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만 두 아들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버지였지만 그에 따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었다. 힘을 합치려는 가난한 사람들의 노력을 상부는 짓밟아 버리기 일쑤였고 그러한 정당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항상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마르크스의 사회 유물론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할수록 노동자들은 적절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주의로 귀환하게 된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대중문화는 노동자들에게 획일적인 허위의식을 주입하여 그들이 계급의식을 지니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혁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에 의해 이용당하게 된다는 프랑크 푸르트 학파의 이론이 있다. 이는 마치 공원들이 후에 누릴 수 있는 부와 행복에 대해 역설하면서 노동자들의 허위의식을 더욱 조장하여 어떠한 계급적인 행동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조종과 통치에 종속되게 하는 것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허위의식에 고취되어 장밋빛 미래의 꿈을 꾸는 노동자는 곧 허위의식은 허위의식일 뿐 한치의 실현 가능성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잘 살 수 있다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먼 미래의 기대보다 지금 당장의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를 더 원한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허망한 꿈은 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의 한자락으로도 자리하지 않는다. 현실의 압박과 피폐한 삶의 고통은 더욱 그들을 옥죄어왔기 때문이다.이 소설의 저변에 깔려있는이분법적인 논리는 선과 악, 상류층-하류층, 지배층-노동자의 계급분류나 정상적인 사람-선천적 불구인 난장이의 대비적인 형태로 직시된다. 보통사람들의 ‘정상’적인 모습과는 상이한 지섭이나 아버지의 ‘비정상’적인 행동 양상은 뭇사람들 뿐 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한없이 허무맹랑하고 어리석은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아버지와 지섭은 현실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의 내면에는 부정한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어려운 극도의 억압 상태에서 현실 개혁의지가 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가의 의문에 대한 답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이분화 되어 있고 양립화된 현실에서 언제나 항상 약자와 피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난장이는 어느정도 개혁의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주어진 현실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따라서 이분법적인 모순에 의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역시 이분법적으로 정상에 비해 상대적으 난 ° 쏘 ° 공
    인문/어학| 2005.05.23| 3페이지| 3,000원| 조회(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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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태
    李相의 倦怠이상의 소설에는 한가지로 난해함이 고개를 쳐든다. 일상적인 삶을 서술하면서도 그 언어 표현의 난해와 허무는 때때로 그의 자아의식의 이상 징후를 의심케 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 또는 주변의 인물들에게서 보이는 일상의 권태는 소설로 하여금 이를 표출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던 것 같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권태’의 의미는 가히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상황에서나 어울릴 법한 단어이다. 각박한 현대를 사는 도시인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을 법한 권태를 그는 한 한적한 벽촌의 지리한 여름을 대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그의 저작 뒷면에 놓여있는 배경을 알아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상은 1936년 서울을 떠나 동경으로 간다. 그는 기대했던 일본의 근대적 문명에 심한 실망을 느끼고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간과할 수 없어 이 글을 남긴다. 그가 느낀 근대적 도시 동경은 그가 기대한 그 어떠한 절대적인 것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반해 한적하고 인간적인 조선의 成川이라는 도시를 동경하고 그리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때문에 이상은 그러한 일제에 대한 강력한 회의와 더불어 식민지 조선의 처참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렇듯 ‘권태’의 의미를 붙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소설에서 권태는 항상 방심상태에 놓여있는 최서방의 조카처럼 권태=바보의 의미로 제시된다. 이러한 등식화는 권태를 느끼는 자는 무식한 -지식인에 대비되는 거대한 하급동물이라는 듯한- 무리라고 무시해 버리게 한다. 그러나 또한 반면에 권태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인간의 치사스러운 이욕에 집착하는 자신을 질책하는 이중적인 의식 구조를 보이기도 한다.무심한 권태를 느끼면서도 그는 탈출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듯이 괴로워한다. 허나 이 권태란 것도 한낮 인간의 욕심에서 파생된 것으로 끊임없이 사색하려 하는 자신을 떨쳐보고자 하는 욕구, 혹은 자유로운 의지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일종의 또 다른 자아로 보여진다.그가 서술하는 세계는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초록의 세계를 권태로워 하면서도 그 초록을 마치 전지전능한 우주인 냥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농민들에 대해 그는 강력한 조소를 띄운다. 그들은 단조로운 초록이 이내 계절이 바뀌면 추악한 색채로 변하는 벌판만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의 일생 또한 권태의 극치이면서도 불쌍하고 천치스럽다고 말한다. 문명의 혜택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며, 본능적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고 여긴다. 이러한 물질론의 계급주의적 논리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의 이러한 서슴없는 주장은 어떠한 설득력을 갖는 하위문장도 내뱉지 못한다. 권태속의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바보 천치처럼 살아간다고 여기는 농민들에 비해 자신은 최소한의 권태적 삶을 자각하고 있다는 면에서 한 없이 우월한 존재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주인공의 논리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는 그의 자아세계는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다 결국에는 좌절한 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그 나마의 자각을 하는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조차 온당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이 소설에 계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더위’는 그가 계속 언급하며 강조하는 ‘권태’ 만큼이나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을 지시한다. 더위는 지루하나 떨쳐버릴 수 없는 무엇인가로 존재한다. 지겹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탈출해야할 현실적인 상황으로 제시되고 있는 더위는 얼핏 식민 소설이라는 명목을 가진 이 소설의 겉포장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실어줄 수 있는 단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이 사회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는 터, 당시 식민지의 구조적인 모순이 이러한 더위의 갑갑하고 막연한 허망으로 제시되지 않았을까 하고 미약한 유추를 해보기도 한다.이러한 지리한 벽촌의 여름이 어서 빨리 지나버리기를 바라는 그는 현재의 권태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보인다. 극복하기 힘든 일상의 현실에서 그는 여러 가지 돌파구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썩은 물 속에서 송사리 떼를 발견하고 흥분한 것이나 되새김질하는 소의 곁에 누워 봄도 모두 남에게는 마찬가지인 소일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는 권태를 권태로 여기고 싶지 아니한 그의 욕구에서 비롯된, 아니 어쩌면 과감하게 권태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 그의 노력의 산물로 볼 수 있다.“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 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조차가 귀찮다.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뜬 채 졸기로 하자."그에게 있어 ‘죽음’은 기어코 바라마지않던 궁극적인 권태로부터의 탈출이고 해방이었을 것이다. 이상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죽음’은 하나의 모티프로 등장한다. 대부분 자살의 형태를 띠고 있는 죽음은 잔혹한 현실의 영원한 도피처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은 어느 것도 현실화 되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죽음의 충동에 현혹되면서도 죽고자 하지 않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권태’에서도 죽음은 현실화 되지 않는다. 이를 ‘귀찮다’고 포기함으로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 뜬 채 졸기로 한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잠에 빠져들게 함으로서 오히려 실재의 현실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을 꿈 속 에서나마 초월해 보고자 하는 욕망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5.05.23| 3페이지| 2,500원| 조회(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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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운몽의 실존적 상관물과의 연관성
    서포西捕 김만중金萬重 이 지은『구운몽九蕓夢』은 그가 평안북도 선천宣川 에 귀양갔을 때 대부인의 근심을 풀어드리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집필적 배경은 작가론적 측면에서 사상적 바탕을 가늠하게 할 뿐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배경론의 사상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나름대로의 특이한 배경론적 접근을 시도해 구운몽의 이야기 자체가 주도하는 상황적 배경을 고려하고 그 배경을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적, 현실적 상관물과 연계시켜 살펴보기로 한다.다시 말해 이것은 작가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 당시의 시대적 현실보다는 작가가 이야기 속에 허구적으로 꾸며놓은 등장인물과 사물, 공간적 배경이 실존하는 그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비교 분석을 통해 살펴보고, 종래의 그것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변용되어 등장하고, 또 그것이 주는 의도함직한 효과와 궁극적인 목적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구운몽의 이야기적 배경은 중국 당나라 때로 남악 형산의 연화봉과 그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소설 초입에 장황하게 묘사되는 형산은 중국에서 가장 넓고 수려한 천하 명산 가운데 하나이다. 형산은 실제로 중국에 존재하는 오악 중의 하나인 남악이며 ‘헝상산’이라고도 불리운다. 남 ·동 ·북쪽을 소상강이 둘러싸듯이 흐르는데 실제로 양자강 한가운데 동정호라는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옛 신앙에 등장하는 산악신앙이 오행사상의 영향을 받아 오악의 관념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소설 속에서 이의 차용은 가장 웅대하다는 형산의 72봉우리의 장엄함과 그 배경이 압도하는 심리적 효과를 이용하여 소설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구운몽에 등장하는 다수의 실제적 지명이나 산명 등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소설에 실제적 현실감을 부여하여 이야기 전개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그 뿐만이 아니라 등장하는 허구적인 인물에서도 그 실존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진晋 시절에 도를 이뤄 하늘 벼슬을 얻어 연화봉에 자리 잡은 한 부인이 ‘남악 위부인南岳魏夫人’ 이다. 실제로 남악 위부인은 중국의 신화적인 인물로 진나라 때 도를 깨쳐 하늘로부터 하강하여 여러 선동과 옥녀를 데리고 이 남악 형산을 지켜 왔다고 한다.또한 당唐 시절에 서역으로부터 한 중이 중국에 들어와 형산의 수려함을 사랑하여 연화봉에 암자를 짓고 확론하는 것이 생불 같다 표현하니 이가 바로 성진의 스승 육관대사六觀大師 다. 그는 소설 전반에서 후반에 이르기까지 천지를 아우르는 신과 같이 신격화된 이인의 면모를 강하게 풍긴다. 육관대사는 그 이인적인 면모를 바탕으로 성진을 깨우치고 팔선녀를 불교로 귀의하게 한다. 육관대사는 실제로 그 명칭을 갖고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법명 ‘六觀’은 금강경의 지혜를 대표하는 주제어이다. 이로써 그는 소설의 주체 인물로 자리하며 금강경이 영향을 주는 이 소설의 주제를 형성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소설이 육관대사를 허구적 인물로 설정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혀 어떠한 현실적 연계성을 상실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육관대사는 소설이 만들어낸 허구적 인물이지만 이 인물을 통해 연상되는 역사적인 인물은 존재한다. 육관대사가 당 시절에 서역에서 들어와서 중국에 자리 잡아 강론을 베풀었다는 것을 보면 실제로 인도에서 선종을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와 불법을 전한 달마대사와 밀접한 연계성을 띤 것으로 사료된다. 달마대사는 실제로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였는데 520년경에 중국에 들어와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 하고 불법에 통달하여 그제자 혜가慧可 에게 불법을 전수하였다. 혜가는 달마대사의 교리에 영향을 받아 금강경을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중국의 선맥禪脈 이 구운몽에서 발현되는 금강경의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실제로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전법한 역사는 소설에서 성진의 깨달음을 위해 불법을 전수하는 육관대사의 모습과 흡사해 육관대사는 달마대사를 모티프로 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 강력한 인과를 제공한다.이와 같이 구운몽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존하는 인물도 있고 허구적이지만 실존 인물의 그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이 소설의 배경이 실제적인 사적과 관련된 역사적인 공간임을 제시하는가 하면, 신화적 인물인 위부인의 등장과 같이 소설 전개에 있어 천상의 신선계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입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구운몽은 중국 중심의 서술 전개로 다분히 중화사상적인 면모를 띄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만중은 그러한 종속적 세계관에 머물지 않고 동양 사상의 유?불?선을 조화시키고, 여기에 인도에서 불경을 가지고 와서 유가 중심의 중국에 전법하는 인도인 승려이야기를 첨가하여 다양한 동양 사상의 접목을 꾀하려 하였다. 중국의 대표적인 세계적 명승지로 손꼽히는 남악 형산과 그 주변의 광활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것도 일정한 국가관에 편협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려는 그의 의도에서였을 것이다.양소유는 인간 세상에서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양소유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탐색담이나 경쟁담이라기 보다는 그의 비범함을 드러내고 그것을 더 확실히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차례 그 현실적 증거를 장치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양소유가 진어사의 여식 진채봉을 만나 연을 나눈 후에 신책장군神策將軍 구사량仇士良이 난을 일으켜 헤어지게 된다. 이 구사량(仇士良, 781~843)은 당나라 때의 실존하는 대간으로 당시 환관 집단 내부의 권력 쟁탈전으로 인해 금군을 장악하고 패권을 잡은 인물이다. 그 후 조정은 그를 우두머리로 하는 환관 집단에 의해 장악되어, 후 20여 년 동안 포악하게 국권을 휘둘러 국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또한 가춘운이 귀신 장녀랑으로 둔갑하여 양소유를 희롱한 후에는 서북의 삼진三鎭 이 반란하여 천지를 어지럽게 하였다. 이때 양소유가 진국에 나아가 대적하니 진왕이 일시에 항복하였다. 유추해 보건대 이것은 다음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을 듯 하다.당대 현종이 말년에 정사를 소홀히 하자 지방 군벌 안록산安祿山 이 반란을 일으켜 서북의 삼진을 함락시키고 낙양에서 새 나라를 열었다. 그 후 일어난 사사명의 난을 합쳐 안사의 난이라 부르는데 755년부터 763년 까지 계속된 이 안사의 난을 평정하느라 당의 국력이 점점 쇠퇴하여 갔다는 증거가 있다.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이 중대한 사건을 단순히 양소유가 적을 일망타진하고 적경홍을 만나게 하는 수단으로 장치시킨다. 이 역사적 사건은 그 중대함으로 말미암아 단지 양소유의 뛰어남을 부각시키기 위한 아주 간략한 에피소드 정도로만 사용되는 것이다.그 이후에도 토번吐蕃 이 강성하여 위교渭橋 에 까지 침범해 오자 양소유는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병마대원수兵馬大元帥 로 출전한다. 양소유와의 대적에서 토번이 여러 번 패하고 토번의 여무사인 심요연도 그에게 항복하는 이야기 전개는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양소유의 비범함을 부각시키고 소설적 맥락에서 당나라의 우월함을 강조하여 소설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수단이 되게 하는 것이다.이처럼 진국, 토번과 수국에서 남해를 일망타진 한 사건의 삽입은 그들과의 대결을 통해 그의 비범함을 여실하게 드러내주는 소재로서 충분히 기능한다. 특별하게 뛰어난 행동이나 능력이 거론되지 않아도 양소유라는 비범한 인물의 그 우월적 능력에 입각하여 모든 적을 한번에 전멸시키고 귀환하는 구성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운몽에서의 실제적, 역사적인 사건의 제시와 실존적 상관물과의 연관성은 이러한 양소유의 비범한 면모를 극대화 시키는 지대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5.05.23| 3페이지| 3,000원| 조회(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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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성애 강의 후기
    중학교 때 구성애 강사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창 TV에 나오시고 유명하신 분이어서 강제 반 호기심 반으로 강연을 듣게 되었었지만 참으로 뜻밖의 경험이었다.우리나라의 교육제도 속의 성교육을 받아 왔고, 그런 폐쇄적인 주입을 받던 나에게는 그 때의 적나라한 강의는 산뜻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지금, 대학생이 된 나에게 아직도 性에 대한 관념은 그다지도 변한 것이 없어서 강의를 듣는 내내 놀람과 충격에 휩싸일 따름이었다.‘보고서’라는 명목을 안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강의에서 느낀 감정과 그로 인한 사고의 확장은 이 글로 완벽히 전하기에는 매우 모자를 것이다.구성애, 그녀의 삶은 정말 그 짧은 시간 내에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굴곡이 많고 여간해서 보통사람이 겪어 낼 그런 것이 아니었다. 10살 때의 성폭행, 그것은 그녀의 삶을 모조리 바꿔놓았고 지금의 일을 갖게 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녀가 사회의 여러 계층이 함께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2기 아우성’, 그것의 모토는 바로 15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고 스스로 돕고 해결하는 솔직한 性의 푸른 아우성이다. 솔직하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성의 바람직한 확립은 기성세대들이 아니라 청소년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푸른 아우성이다. 그녀가 말하듯이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은 앞에서는 깨끗한 척, 도덕적인 척 꾸미고 있지만 위선과 가식이 팽배한 이중적인 성 관념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청소년들은 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드러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고 어두운 곳에 쳐 박혀 있는 아름다운 성을 밝은 곳으로 끄집어 낼 수 있고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러한 청소년들이 음란한 성, 부정적인 성 만을 다룬다면 우리의 성 문화는 은 마치 숨기고 싶은 흉터라도 되는 냥 점점 더 어두워지고 은폐되는 모습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다.性은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있게 했고 사랑의 좀더 구체적인 표현이며,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이러한 만인의 성을 아름답고 올바르게 가꿔나가지 않는다면 아우성의 미래는 가히 희망적이지 않다.하지만 우리의 성 문화가 지극히 위선적이고 폐단이 많은 것만은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임신이 아닌데도 의사로부터 낙태 권유를 받은 한 여학생의 사례를 듣고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돈 몇 십 만원 벌자고 겁에 벌벌 떠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학생을 등쳐먹고, 의지할 곳 없는 한 인간의 몸도 망치고 마음도 망치는데 기꺼이 거짓말을 바치는 대한민국의 ‘의사’라는 직업,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가 기꺼이 한몫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그런 행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데 어디 더한 놈은 없으랴...매일의 뉴스에서 빈번히 보도되고 있는 성 폭행범들의 극악무도한 행위, 그로 인한 충격으로 정신 질환을 앓다 몸과 마음을 다 버려 자살을 기도한 여학생, 강사님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듯 ‘네 잘못이 아닌..’ 일로 무수히 버려지고 있는 생명들... 매일 같이 듣는 이 뻔한 일들은 이제 더 이상 충격 그 이상의 것으로 와 닿지 않는다. 쯧쯧 못된 놈, 또 한 인간을 망쳐놨구만.. 하는 식으로 혀나 차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프랑스에서는요, 미혼모라도 만인의 축복 속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산모가 학생이면 아이 업고 학교가고, 수업 받는 동안 학교에 마련되어 있는 탁아소에 아이를 맡길 수 있습니다. 공부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죠.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그들을 받아줍니까?"우리나라의 성은 성의 3요소 -생명, 사랑, 쾌락- 를 모두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은 생명을 거의 파괴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고, 사랑에 대한 동경, 이상을 짓밟아 상호적인 동의가 전제되는 사랑을 무시하고 있다. 성의 가장 entertainment적인 요소인 쾌락을 단순히 sex의 상징으로만 보고 있으며 이는 은폐되고 가리워지는 성의 가장 부정적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性은 사랑의 몸에 대한 communication이다. 사랑의 극적인 결합이 sex이며 서로의 애정과 동의, 책임이 뒤따를 때만이 가장 아름다운 성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 어울리고, 몸의 7가지 차크라가 다 열리는 것이 쾌락의 절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음부 차크라만을 이용해서 쾌락을 즐기고 진정한 성의 쾌락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그녀의 성 교육은 결코 sex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쾌락을 권장하는, 진정한 쾌락을 즐길 줄 알고 이로 인하여 삶이 풍부해 지며 나아가 사회에 아름다운 성을 사랑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에게서 아름다운 성을 느끼고 자라야 할 청소년이지만 부모의 사랑과 생명의 성은 기어이 인정하면서 쾌락의 성은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쾌락의 성은 마치 음란물과 같이 동급으로 취급되어 남에게 들키면 안되고 결코 입 밖에 내어서는 사람대접을 못 받는 ‘사회적 금기‘ 로 고착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5.05.23| 2페이지| 2,000원| 조회(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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