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1. 삼국유사의 의의(1) 삼국유사의 편성내용삼국유사의 편성내용을 고간본 정덕본에 의하여 살펴보면 총 5권 2책으로 이뤄져 있으며, 「왕력王曆」,「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등의 9편목으로 나누고 있다. 왕력편은 3국과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의 간략한 연표를 실었고, 기이편은 고조선에서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실었으며, 흥업편에서는 순도가 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사적을 비롯하여 신라를 중심으로한 이름난 불상과 불탑 37편을 수록하였다. 의해편은 신라의 저명한 승려들의 전기 14편이 수록되었고, 신주편에는 밀교 승려들의 사적 3편, 피은편에는 고승들의 사적 10편, 효은편에는 불교계와 속계의 효행과 파모에 관한 미담 5편이 실려 있다.(2) 고려사회와 일연의 역사관삼국유사에는 다른 역사책에서 볼 수 없는 민중들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게 실려 있다.일연이 생존했던 고려 사회는 최씨집정기에서 대몽항쟁기를 거쳐 몽고지배 초기로서, 국내·외적으로 다사다난했던 시기로 온 국민과 함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던 시련기였으며, 일연이 삼국유사를 써서 펴냈던 때는 그의 나이가 여든살이나 되었었다. 그 일연을 우리는 그 당시 고려 불교의 최고 높은 스님으로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이들어서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쓴 책 삼국유사(원래는 다섯권에 책 셋으로 묶여 있었다.)의 저자로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이 편찬한 역사책이기 때문에 체제와 양식이 자유롭다고 평가 받아 왔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일연이 혼자서 집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가 김부식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듯이 삼국유사 역시 일연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고,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자료수집, 필사, 판각등을 함께한 공동작업의 결과였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삼국유사원본』즉 정본은 그 모습이 극히 초라하고 내용 역시 잘 단장되어 있지 않다.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와 위대한 업적들은 실상 떠들석하지기 같은 허망한 이적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면 써서 괴이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유사편찬의 방향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삼국유사의 사료적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만든 원천이 된 것이다.ㄴ. 삼국시대의 유사들을 수록삼국사기 이래로 우리나라의 고전을 지은 사람들이 한문지상주의 입장에서 어느것이나 한문으로 전해진 자료가 아닌 이상 "사료 부재"라고 평가 절하한 채 취급대상으로 삼지않은 반면, 일연은 삼국시대의 유사들을 되도록 빠뜨리지 않고 수록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편찬한 것이다. 특히 일연의 사상과 관련된 불교관계의 설화가 많다는 인연도 작용하여「사설이 비속」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수록했던 것이 오늘날에 와선 한국 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작품으로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이 외에도 우리나라의 옛 지명들과 함께 그 지명의 유래들을 밝히는 부분이 많이 있어 우리나라의 언어사와 고대 지리학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문헌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일연은 이 책에서 종래의 불교 관계, 서적에서 잘못 전달된 부분을 시정하겠다는 목적으로 전편의 절반이나 되는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ㄷ. 살아있는 전통의식삼국유사는 통사를 의식한 역사 서적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일연이 고조선으로부터 시작, 삼국시대 이전까지의 문헌적 공적을 책의 머리부분에서 주의깊게 보충함으로서, 삼국의 역사적 전통을 뚜렷이 밝혔고, 특히 그 시대의 역사적 첫 기록을 한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남겼다는 그 자체의 의미만도 대단히 지대하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삼국유사가 조금 앞선 시대의 삼국사기와 엄격히 구별되는 점이다.고조선을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민족국가로 인식하면서 고조선과 공존했던 나라들의 건국설화를 통하여 단일 민족국가로 우리 민족을 규정한 일연의 역사의식이 결코 일연의 독창적 견해이거나 구상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ㄹ. 당시의 고전문헌을 인용삼국유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연의 기억이나 지식으로 소화된 자료들을 주관적으로 엮어 서술한 것이 아니라한 상태를 지켜보면서 애끓이는 이는 시적화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어가는 누이의 임종 순간 및 장소( 이에 )에서 혈육으로서의 애끓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시적 화자의 인간적인 고뇌가 좀 더 즉물적으로 감지되게 한다.죽음에 임박한 누이가 마지막 작별의 말을 띄엄띄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적화자는 이러한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생사의 길로 나뉠수 있느냐면서 애통해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애끓이거늘 에서 잘 알 수 있고, 누이의 임종을 지켜보는 오빠로서 시적화자가 지닌, 말로는 다할수 없는 슬픔을 포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6, 7, 8행은 하나의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잎사귀들이 바람이 불어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떨어지는 심상을 인간의 죽음에 견준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누이와 시적화자가 죽은 다음에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져갈 것이라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여유를 두고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더라도 생전에 누이가 쌓은 덕업에 비추어, 그리고 앞으로 닦아나갈 시적 화자의 덕업을 토대로 미타찰에서 서로 만날 것을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2) 제망매가의 주제와 특징제망매가의 주제는 시의 첫머리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생사길 이것이다. 인간은 항상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중간적 존재이기에 불안하고 유동적이다. 삶은 하나의 부동적 근원에서 비롯되어 언젠가 다시 이러한 근원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다. 이는 인간의 영원에 참획하려는 의지이며, 그것은 인간과 그리고 지상적인 것이 지닌 허무와 일회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인간 존재가 갖는 근원적인 비극성은 바로 이러한 생의 이로니 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갈등은 유동적인것과 부동적인 것의 대립에서 비롯된다.제망매가의 특징은 숙명적인 인간의 유한성과 영생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기원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적으로 해소할 수 없는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노래 불리어진 것이다.2. 제망매가의 문학적 의의(1) 대상을 뛰어넘는 사랑과 선조들의 의식(로미오다.제망매가에서 드러난 남여간의 사랑은 불교적 색채가 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불교적인 것이 아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순수 불교적인 것이라면 미타찰에서 만날날을 도닦으면서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그 이유는 순수한 의미의 불교라면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죽음이 없는데 미타찰이 있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닦으며 기다려야 하는 공적(空的)인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색적(色的)인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교 자체가 그런 쪽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공과 색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완전하게 조화된 남녀간의 영혼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망매가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그 끝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능가하고 있다. 자랑스런 선조들의 유산인 것이다.(2) 설화를 가지고 있음.(설화의 배경)이 작품은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노래로 현존하는 향가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배경 설화는 다음과 같다.월명사가 일찍 죽은 누이를 위하여 재(齋)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월명사가 향가를 부르자문득 광풍(狂風)이 불어 지전(紙錢-종이로 만든 저승의 여비 돈)을 서쪽으로 날려 없어지게 하였다.월명사는 항상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살았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달 밝은 밤에 피리를 불며 문 앞 큰 길을 지나니 달이 가기를 멈추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 곳을 월명리(月明里)라 하였고, 법사도 또한 이름을 떨치었다.2. 민속학적 측면에서의 처용가1. 처용가의 해석과 특징(1) 처용가의 해석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 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마는/빼앗아간 것을 어찌하리오(2)처용가의 주제와 특징처용가의 주제는 역신의 추출과 처용의 축신이다. 그리고 '처용가'는 고려 가요에도 동일한 제목의 노래가 있어 향이름은 처용(處容)이라 하였다.임금이 미녀로써 아내를 삼게 하여 그를 머물게 하고 또 급간(級干)의 벼슬을 주었다. 그의 아내가 몹시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몰래 동침하였다. 처용이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처용은 이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춤을 추니 물러 나갔다. 처용가(處容歌)를 들은 역신은 제 모습은 나타내고 처용 앞에 끓어앉아, "내가 공의 아내를 흠모하여 지금 잘못을 범하였는데, 노하지 않으시니 감격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이후로는 맹세코 공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후로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慶事)를맞아 들였다. 왕이 그 후 돌아와 영취산(靈鷲山: 지금의 울산(蔚山)에 있는 산 이름) 동쪽 기슭의 경치 좋은 곳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망해사(望海寺) 또는 신방사(新房寺)라고 하였으니 용을 위하여 세운 것이다. 자신의 아내를 범한 역신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그러한 관대함에 감복하는 역신의 이야기를 현대인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여튼 이 노래의 절정은 마지막 7-8행이다. 이것은 체념적인 면으로 보이기도 하나, 오히려 처용의 관대함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축사(逐邪)나 벽사 진경(酸邪進慶)의 노래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역신이 처용의 태도에 감복하여 자신의 본체를 밝히고 물러나는 내용과 관련하여 무속에서는 아무리 악한 신(神)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낸다는 풍속과 우리 조상의 여유 있는 예지(叡智)를 발견할 수 있다.2. 처용가와 민속학적 특징(1) 그 시대의 민속으로 역신을 쫓아냄단순히 설화 감상보다는 설화와 관련하여 노래까지 포괄하는 감상을 해보도록한다. 이 작품은 종교적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당시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속 신앙적인 관점에서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