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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징적상호작용론
    1_1) 하버트 블루머의 상징적 상호작용론 이론의 주장은 무엇인가 정리해보고,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구체적 상황을 설정하여 설명하여보고 그 적합성을 논의해 보자.유럽서 최초의 사회학 이론가들(기능론, 갈등론)은 주로 거시수준의 현상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과 미국의 이론가들은 미시수준의 과정분석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들은 사회구조란 어떤 궁극적 의미에서는 개인의 행위와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되고 유지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점차적으로 그들은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을 탐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창조적 활동은 광범위한 미시적인 수준의 이론인 ‘상호작용론’을 창출하였다. 그 후 조지 허버트 미드의 종합으로부터 출현하여 비교적 발전된 이론적 관점 중 최초의 것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이었다. ‘상징적 상호작용론’ 이란 허버트 블루머가 만든 용어다. 블루머는 미드의 사후 미드의 사회심리학 과목을 담당하여 약 50년 동안 특별한 해석을 해온 선두주자였다.상징적 상호작용론자들은, 그 이름이 지시하는 것처럼, 상징을 창조하고 사용하는 인간의 능력을 매우 강조한다. 상징능력이 제한되어 있거나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과는 대조적으로, 바로 그러한 인간의 본질과 그들이 창조하는 세계는 서로를 또 대상, 관념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상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에서 생긴다. 상징을 창조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이 없다면 사회조직 유형이 창출, 유지, 변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프로그래밍으로부터 매우 자유롭다. 그 결과 세계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상징을 사용하는 힘에 의존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상징을 사용한다. 음성적이고 신체적인 제스처의 의미에 대해 합의를 볼 수 있는 능력에 의하여 인간은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 물론 상징적 의사소통이란 매우 복잡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말, 즉 언어상징 이상의 것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통의 의미나 이해를 지니는 표정, 음조, 신체적 태도, 그리고 기타 상징적 제스처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제스처를 판독하고 해석함으로써 인간은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상호적으로 판독하고 각자의 반응을 기대하며 서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상호작용론자들은 여전히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기본적 메커니즘으로서 역할취득(다른 사람의 태도와 행위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과정을 강조한다. 블루머는 인간이 자신을 대상으로서 파악하고 상호작용 상황에 대상을 개입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인간 행위자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강제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은 자신들이 반응하는 세계의 적극적인 창조자이다. 상호작용과 이에 의해 출현한 사회조직 유형에 대한 이해는 오로지 개인이 반응하는 대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창출하는 인간의 이러한 능역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가능하다. 인간행위의 자발성과 비결정성은 항상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 대상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정의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자아는 단지 상황 가운데서 파악되는 많은 대상들 중의 하나이다. 과거, 현재, 혹은 예상되는 미래로부터 다른 대상 또한 가져올 수 있으며 이것은 행위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블루머는 역할 취득의 과정을 강조한다. 역할취득에 의해 인간은 상호적으로 각자의 제스처를 보내고 이를 해석한다. 제스처의 해석을 통해 획득된 정보로부터 행위자는 다양한 활동 지침을 암묵적으로 시연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협동과 조직된 활동을 유도하는 행동이 가능하다. 상호작용이 적극적으로 구성되는 정도=1.상호작용 상황에서 행위자는 서로를 대상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부연적 대상을 상징적으로 선택하고 지시한다. 2.행위자는 상호작용 상황에서의 대상들로 인하여 다양한 행위경향을 가진다. 그리하여 집단행위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지시하는 대상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3.사람들이 암시하는 대상과 행위경향의 특정 집단으로 인하여 각 행위자는 상황정의에 도달한다. 그와 같은 정의는 특정한 수행지침의 결과가 평가되는 일반적 준거틀로 봉사한다. 4.특정한 행동지침의 선택은 복합적인 상징 과정을 포함한다. 최소한 행위자는 전형적으로 다음의 사행에 대해 평가한다.[직접 대면하는 타자의 요구/상호작용 상황에 있는 타자뿐만 아니라 실제로 여기에 없는 타자의 역할획득으로부터 도출한 자아 이미지/ 상호작용 상황 내에 존재한다고 지각하는 규범적 기대/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상호작용 내로 끌어들이는 부가적 대상에 대한 행위경향] 5.상황의 재정의와 행위의 재계획화는 행동이 이루어진 후 타자의 반응이 해석되고 새로운 대상이 상호작용 안으로 들어오며 기존대상이 상호작용으로부터 방출될 때 이루어진다. 이러한 요점을 강조함으로써 블루머는 상호작용의 창조적, 구성적, 그리고 변화 가능한 성격을 주장했다. 상호작용의 상징적 성격은, 기존의 심리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구조가 비탄력적으로 형태지은 행위의 수단을 구성하기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구조가 상황정의와 행동의 변화를 통해 변경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한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상호작용의 마지막 결과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인간은 이 과정에 의해서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더욱이 다른 상호작용론자들뿐만 아니라 블루머 역시 소집단 맥락 내 개인들 간의 미시과정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블루머는 시종일관 사회조직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시적인 것으로 바라보았다. 사회조직을 행위자가 자신의 상황정의에 사용하는 많은 대상들 중의 하나로 보았다.
    사회과학| 2006.12.15| 2페이지| 1,000원| 조회(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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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디외
    2-1)후기구조주의의 특징을 알아보고 부르디외의 계급 재생산이론의 주장을 논의해 보자.)초기 구조주의가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는데 비해 후기 구조주의는 정신분석 이론과 쾌락 등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전까지 인식되어 온 언어나 지식에 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며, 의미의 생산과 규제에 있어서 즐거움의 역할을 탐구하게 된다. 그로 인해 후기 구조주의에서는 사회적 과정과 계급, 성차, 민족적 분할, 역사적 변화와 같은 의미를 생산하도록 만드는 외적 구조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1960년 이후 등장하게 된 사회비판이론가의 한명이었던 부르디외. 그의 이론은 ‘후기 구조주의’에 속하는 ‘발생론적인 구조주의’ 방법론에 의해 구축되었다. 이 방법론의 목적은 개인과 사회구조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 어느 한쪽을 강조하다가 빠지기 쉬운 환원론, 결정론 등 방법론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행위와 구조가 발생되는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데에 있다. 부르디외는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중첩적인 관계망을 행위와 구조의 통합방식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부르디외의 관심은 사회제도, 구조와 지배 권력과의 관계에 있다. 즉 사회제도 및 구조가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문화의 재생산 과정을 통하여 지배계급의 권력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어가는 지를 [학교]라는 교육체계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학교’라는 제도는 불평등하게 문화 자본을 소유한 학생들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기존의 불평등한 질서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학교는 일련의 선별과정을 통하여 상속된 문화자본의 소유자들과 문화자본의 비소유자들을 구별한다. 합격한 자와 낙제한 자를 구분하고, 학위와 자격증을 수여함으로써 학생들을 등급화하고 구분한다. 그리하여 프티 부르주아 출신의 일반 대학생들은 일반 서민들과 구별되고, 엘리트 양성으로 위세가 높은 그랑제골이란 특수대학의 학생들은 일반대학의 학생들과 구별되면서, 대귀족과 중소귀족 혹은 프티 부르주아의 사회적 구분이 이루어지게 된다. 불평등한 문화자본의 분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판단과 취향 및 행위의 체계인 아비투스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획득되어진 성향,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의 체계. 계급 위치들이 구별되고 동시에 위치들이 구별하는 원리.]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킴으로써 가능하다. 학교는 학교마다 등급화 되고 구별되는 교육체계로 서로 다른 아비투스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학교는 문화자본의 불평등적 분배와 교육체계의 서열화를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적 차이, 사회적 위치의 위계화를 사회구성원들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게 하는 제도이다. 학교시스템은 기회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분배와 배제를 고착화, 정당화함으로써 위계화된 기존 사회질서를 자연스러운 것, 정당화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부르디외는 학교가 중립적이고 객관적 지식의 전달이란 교육기능보다 지배계급이 승인한 하나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교습하는 폭력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분석한다. 이 폭력은 가시적, 직접적 폭력이 아닌 점에서 ‘상징적 폭력’ 이다. 이러한 상징적 폭력은 기존 사회의 힘의 관계, 질서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부르디외는 국가론에도 상징폭력과 아비투스 개념을 적용시킨다. 국가는 일정한 영토 내에 있는 국민들에게 물리적, 상징적 폭력을 정당하게 행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한 기구이다. 국가는 모든 종류의 자본축적 과정의 최종 단계이므로 모든 종류의 자본과 장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는 모든 법률, 언어, 커뮤니케이션 형태 등을 통일시키면서 문화시장을 통합한다. 국가는 법, 교육 제도, 사회의례 등을 통하여 사고방식과 정신구조를 정향시키면서 이른바 국가정체성을 형성한다. 국가는 이 세계가 자연스러운 사회처럼 받아들여지도록, 국민의 논리적, 도덕적 순응을 위한 사회구성원의 인식구조를 형성시키는 보편적 교육을 강요한다. 그리하여 기존 질서에 즉각적인 복종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복종은 기계적인 복종이나 계산에 의한 의식적 복종이 아닌 일종의 신체성향(disposition corporelles)에서 나오는 것이다. 계산이나 의식의 층을 거치지 않고 신체 깊숙이 내재해 있는 성향을 일깨워 나오는 복종이다. 국가의 지배계급의 정당성 인정도 명징한 의식의 자유스런 행위가 아니라 신체화되고 무의식화된 정신구조와 사회 객관적 구조의 즉각적 일치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결국 지배계급의 시각을 보편적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가의 성립과 국가정체성의 확립은 결국 보편적 국민 교육체계의 확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징적 폭력은 가족 내에서 먼저 발견된다. 가족과 학교는 특정한 아비투스를 강제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사회생활의 적응을 위한 이른바 ‘사회화’ 기능을 하는데, 바로 이러한 사회화 과정이 정당화된 하나의 문화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폭력의 행태들을 구분해내면서, 이것이 어떠한 요인과 과정을 통하여 구성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사회과학| 2006.12.15| 2페이지| 1,000원| 조회(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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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뮬라시옹
    3_2)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과 소비사회의 특징을 포스트모던니티 입장에서 알아보고 그 적합성을 논의해 보자.모던니즘에 입각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이성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팽창, 진보, 식민화를 가치로 여겼다. 포스트 모던니즘은 모던니즘 이후에 발생한, 모던니즘에 대해 회의적이고 저항적인 성격을 지닌 경향이다. 이는 모든 예술과 문학,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기존의 모던니즘 사회에서 재화와 사물을 소비한다고 생각하였지만 포스트 모던니즘의 보드리야르는 물건이 아닌 그 물건이 지니고 있는 기호와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시뮬라시옹의 시대로 도래한 것이다. 시뮬라시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뮬라크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가장 쉽게는 우리가 시뮬라크르를 생각할 때, 현대의 전쟁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미사일 발사는 화면이라는 컴퓨터로 보면서 하지 실제 미사일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보면서 하지 않는다. 이때 시뮬라크르인 화면상의 미사일 궤도는 실제 탄의 궤도일 것이며, 더 나아가 실제 탄이 목표에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는 이제는 중요하치도 않게 되어버렸다. 결국 시뮬라크르는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다. 이 시뮬라크르는 아울러 어떤 실제 존재하고 있는 것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독자적인 하나의 현실이라 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까지 실제라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바로 이 비현실이라고 혀였던 시뮬라크르로부터 나오게 된다. 상황이 완전히 전도되었다. 흉내를 내거나 모방할 때는 이미지란 실제 대상을 복사하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실제 대상이 가장된 이미지를 따라야 한다.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로 이다.이 시뮬라시옹의 작용은 핵분열적이고 발생론적이지(하나의 세포로부터 그와 똑같은 다른 세포가 증식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증식정보가 각 세포 속에 코드로 입력되어 있어서, 이 코드로부터 동일한 세포가 무한히 복제되어야 한다), 전혀 사변적이거나 담론적이지 않다. 사라져버리는 것은 모든 형이상학이다. 더 이상 존재화 그 외양을 나누던, 실재와 그 개념을 나누던 거울이 없다. 더 이상 상상적인 공통분모가 없다. 시뮬라시옹은 발생론적인축소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실재는 이제 축소된 세포들, 모태들과 기억들, 지휘 모델들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이로부터 실재는 무한정 재생산될 수 있다. 실재는 이제 합리적일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실재란 더 이상 이상적이거나 부정적인 어떤 사례에 빗대어 측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재는 이제는 조작적일 뿐이다. 사실 이것은 더 이상 실재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상상 세계도 더 이상 실재를 포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재는 대기도 없는 파생공간 속에서 조합적인 모델들로부터 발산되어 나온 합성물인 파생실재이다. [실재: 현실 혹은 사실/ 파생실재(hyperreel):시뮬라시옹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실재로서 전통적인 실재와는 다름. 가장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실재가 가지고 있는 사실성에 의해서 규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파생실재는 예전의 실재 이상으로 우리의 곁에 있으며 과거 실재가 담당하였던 역할을 하므로 실재로서, 실재가 아닌 다른 실재로서 취급하여야 한다. 어떤 현실을 극도의 현실로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실재하는 현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전혀 다른 현실.]미국의 디즈니랜드는 모든 종류의 얽히고 설킨 시뮬라크르들의 완벽한 모델이다. 환산과 공상의 공간. 사람들은 이 상상 세계가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군중들을 끄는 것은 틀림없이 상상보다는 훨씬 더 이곳이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미국사회가 가하는 통제 그리고 그 사회가 제공하는 기쁨을 축소시켜 경험하는 데에서 오는 근엄한 즐거움이다. 사람들은 밖에다는 주차를 한 다음 안에서는 줄을 서며, 출고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이 상상 세계에서 유일한 환상은 군중에 본래적인 열정이며 다양함에 대한 욕구를 유지하는데 적합한 충분하고 과도한 양의 잡동사니들이다. 주차장의 절대적인 고독과 이 세계와의 대비는 완벽하다. 디즈니랜드 곳곳에는 개인들과 군중의 얼굴 형태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객관적인 프로필이 그려진다. 여기서는 모든 가치들이 축소된 세밀한 삽화와 만화에 의해 높이 치켜세워진다. 이 가치들은 방부 처리되고 은밀히 숨어있다. 디즈니랜드는 미국 생활 방식의 개요, 모순적인 현실의 이상화를 옮겨 놓은 곳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뮬라시옹에 대한 은폐물로 사용되는 다른 이념적인 것을 숨기고 있다.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존재한다. 디즈니랜드는 다른 세상을 사실이라고 믿게 하기 위하여 상상적 세계로 제시된다. 그런데 사실은 그를 감싸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더 이상 실재가 아니고 파생실재와 시뮬라시옹 질서에 속한다. 더 이상 사실성의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실재가 더 이상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고, 따라서 사실성의 원칙을 구하기 위한 문제이다. 디즈니랜드의 상상 세계는 참도 아니고, 실재의 허구를 미리 역으로 재생하기 위하여 설치된 제지 기계이다. 이 디즈니랜드의 세계가 어린애 티를 내려 하는 이유는, 어른들이란 다른 곳, 즉 실제의 세상에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하여, 어른들의 유치함 그 자체가 그들의 실제 유치함을 환상으로 돌리기 위하여 어린애 흉내를 낸다. 상상을 재생하는 공간인데 여기조차도 쓰레기 처리장이다. 어디서나 오늘날은 쓰레기와 꿈, 환상을 재생하여야한다. 어린이들과 성인들의 동화적, 전설적 상상 세계는 쓰레기, 즉 파생 실재적 문명의 가장 일차적인 커다란 독소적 배설물이다. 주위의 성적, 심리적, 신체적인 모든 설비들도 이와 똑같은 계열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 마주보지 않지만 그를 위한 설비가 있다. 그들은 서로 몸을 닿지 않지만 그를 위한 것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걷지 않지만 조깅을 하기도 한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상실한 기능들 또는 잃어버린 신체, 잃어버린 사회성, 잃어버린 취향을 재교육한다. 사람들은 궁핍, 금욕, 사라져버린 원시적 자연성을 재개발한다.(자연식, 건강식, 요가 등..) 이것을 퍼뜨리는 것은 결코 자연이 아니라 시장경제이다. 바로 여기에 첨단의 시장 경제에서 기호, 시뮬라크르가 다시 고안된다.
    사회과학| 2006.12.15| 3페이지| 1,000원| 조회(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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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케시마,독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다케시마 VS 독도학과: 정보사회학과학번: 2001048078이름: 김 미 연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역사적인 관점?일본 측이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내세우는 근거는 독도는 적어도 일본의 에도시대 초기에 알려졌고, 17세기 초기인 1618년부터 약 70여 년간 독도와 울릉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경영했다는 것이다. 米子의 상인인 대곡. 촌천 양가가 막부의 도해면허장을 받아 울릉도에 건너가 전복, 강치 등의 어업과 목죽의 벌채 등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울릉도에 건너는 도중의 기항지로서 그리고 어업지로서 독도(다케시마)를 이용하였다. 그 후, 에도 막부는 조선과의 분쟁으로 조선은 겐로쿠 9년에 울릉도에서의 도항을 금지하고 이 섬을 보호하였지만 독도에 대해서는 일본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다. ⇒한국 측, 그들이 주장하는 증거들은 오히려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그들이 막부로부터 허가 받은 도해면허장이라는 것은 외국에 월경하여 들어가는 데에 대한 일본 정부의 허가장이다.(도해라는 문어 자체가 국외로의 도항을 의미) 만일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면, 그러한 중앙정부의 도해면허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또한 당시 임진왜란의 영향으로 조선과 일본은 아직 우호관계를 회복하지 못하였고 조선은 보호정책으로 울릉도에 대한 조선인의 거주를 금하였다. 그러나 돌만이 가득한 독도에는 그러한 보호정책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들의 실효적인 경영면에서 일본 고유의 영토론을 주장하려면 독도보다는 울릉도이여야 할 것이다. 이 양가가 그 당시에 교환한 서신에도 독도를 小島라 하여 조선 울릉도의 부속되어 있는 작은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안용복 사건 (竹島 일건)일본 측,1618년 양가는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경영권을 받아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었다. 1696년까지 80년간 조선 측으로부터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평화적이고 지속적인으로 실질적인 경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선의 어부 인 안용복이 1696년 일본의 영토인 울릉도에 대해서 무례한 주장을 함으로써 80여년 간의 평화를 깨고 양국간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안용복 어부 일행의 침략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한국 측, 당시 조선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세부, 통제 등의 어려움이 있었고 침략자에 대한 보호 정책으로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공도정책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본래 그 섬 연해가 풍족한 어장이므로 조선의 동해와 남해의 어민들은 조선영토인 울릉도, 독도 근해로 들어가 고기잡이를 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안용복 일행도 이들 중의 한 무리였던 것이고, 안용복 일행이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일본의 어부들과 충돌을 하게 된 것.(자세한 내용은 생략) 이 당시 안용복은 비록 정식 외교사절의 자격을 지니지는 않았으나 도일하여 직접 도주들과 담판하면서 당시의 죽도 즉 지금의 울릉도와 송도 즉 지금의 독도의 조선 영유를 확인하였고, 이 활동으로 말미암은 서계의 왕래는 독도의 그 이전부터의 한국 영유를 일본 측이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 국제법에 관한 관점?일본 측,현재의 국제법 관행으로는 영토의 기초의 일부가 되는 역사적 사실은 일반적으로 말해여 어느 쪽이 먼저 알고 있었는가(인지의 사실)와 어느 쪽이 그 곳을 계속적으로 이용해 왔는가(실효적 경영의 사실)의 두 가지 점에 있다. 우선 독도의 존재를 인지한 것에 대해서는 조선은 전설 등을 통해 상상할 수 있으나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다. 신라 신대 우산국에 울릉도가 문헌에 나타난 것이 최초의 일이다. 울릉도에 관한, 조선 인민을 살게 하는 정치적 지배의 시도가 반복된 증거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단지 울릉도에만 해당하는 증거들이다. 그 자료들이 독도를 당연히 울릉도의 속도로 보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으며, 于山島라는 명칭이 나오는 한국 측의 고서로는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동국문헌비고]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죽도, 즉 독도가 于山島 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은 [동국문헌비고] 하나뿐이다. 그러므로 사실, 우산도와 죽도가 동일한 섬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 증거가 너무 희박하다. 그러나 일본은 오래 전부터 독도를(당시 마츠시마) 인식하고 있었다. 경위선 투영의 간행 일본도로서 가장 대표적인 나가쿠보 세키스이의 「개정 일본여지 노정 전도」(1779년) 에서는 현재의 타케시마(독도)의 위치 관계를 올바르게 기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메이지에 이를 때까지 다수의 자료 있다.?일본 측, 실효적인 경영의 사실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독도는 無主地라는 것. 1905년의 일본 정부의 독도의 일본영도 편입이 국제법상으로 정당한 것이었으므로 독도는 일본영토라 할 수 있다. (일본은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 결정에 의해 독도를 침탈할 때, 독도는 “無主地로써 他國이 이를 점유했다고 인정할 形迹이 없다” 고 하여 ‘無主地를 선점’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가 1905년 1월 28일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직후 한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 각의 결정 및 시마네현 고시에 의한 타케시마의 시마네현에의 편입 조치는 일본 정부가 근대국가로서 타케시마를 영유 하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또한 이는 당시 신문에도 기재되어 비밀리에 행해진 것이 아니며 영토 편입을 국제 정부에 통고해야할 의무는 없다.⇒한국 측, 1905년 1월 이전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는 자료는 매우 많다. 한국 측 사료들뿐 아니라 일본 정부 공문서들까지에도 증명하고 있으므로 이는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일본 정부가 독도 편입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어떠한 항의를 한 적이 없다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원래 ‘무주지’를 영토에 편입하는 경우에는 이웃나라에 사전에 이의 여부를 묻는 것인데, 일본 정부는 1905년 독도를 일본에 ‘영토 편입’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한 적이 없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이를 사보나 중앙신문들에 보도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의 비밀사항으로 처리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은 자기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 정부가 무주지라고 주장하면서 영토를 편입하기로 한 내각회의의 결정을 꿈에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간접적 방법으로 독도의 ‘영토 편입’ 사실을 한국 지방관에게 알게 한 것은 1906년 3월 28일 이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일제가 이미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강요에 의해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대한제국의 외부를 폐지한 후였기 때문에 한국은 항의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한 후였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영토 편입 1년 후인 1906 뒤늦게 한국 정부는 일제의 결정에 항의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문서를 남겨 놓았다. (원본은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음)?일본 측, 패전 이 후 일본은 1910년 8월 당시 무력적 야욕으로 점령한 영토만 한국에 반환한 것이지 그 이전인 1905년에 일본영토에 편입한 독도는 반환된 것이 아니며 연합국의 대일본강화조약 초안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1949년 11월 14일 시볼드의 미국무부에 독도에 대한 의견서와 SCAPIN 제 677호에서 실재 일본이 한국에 대하여 지배를 포기해야하는 도서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일본 정부가 1951년 연합국의 [대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를 한국영토에서 제외하여 일본영토로 인정받았으며 연합국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정한 것이고 독도는 여전히 일본의 땅이다.
    인문/어학| 2006.12.15| 4페이지| 1,0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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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바마스 평가A+최고예요
    3-1) 하버마스가 사회통합과 사회체계를 바라보는 입장이 파슨스의 사회체계와 사회통합과 어떻게 연계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가 주장하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the colonization of the life world)가 무엇인지 예를 들어 알아보자.: 파슨스는 사회의 구조와 기능을 강조하며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는 여러 과정을 거쳐 적응되고 가장 안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회의 변동과 그 과정을 유기체의 진화론적으로 바라보며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갈등을 배제하고 있다. 또한 그는 사회가 발전될수록 세분화된 분화가 발생하게 되고 그 분화된 하위 체계들은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하버마스는 그가 비판론자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의 갈등을 철저하게 배제시키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발달될 구성원들은 사회를 이분화 시키고 그 차이에서 긴장이 발생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합리적인 비판과 이성을 통하여 긴장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험이나 이론이 아닌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분화된 체계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하여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근대화 과정이 갖는 양면성을 파악함으로써 근거 없는 낙관, 비관적 시대인식을 비판하고 이를 통하여 비판적 사회이론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론’의 이념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버마스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 사이의 모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관심에 기초하여 그는 공론의 구조와 기능, 발생과 전환을 설명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우선 공론을 “여론과 같은 것이 형성되는 사회적 삶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발생은 중세의 대의적 공론에서 찾을 수 있다. 대의적 공론 기능을 한 봉건적 권력들(교회, 영주, 귀족신분) 은 오랜 양극화의 과정을 거쳐 18세기 말에는 사적 요소와 공적 요소로 나뉘어 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부르주아 공론이 형성되었다. 이는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정치적 문제를 집회와 결사의 자유 및 표현과 출판의 자유를 통해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논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공론에서는 공적 문제에 대한 결정이 단순히 전통적 권위에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이성의 기분에 접근하는 합리적 토론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마버스는 정치생활에서 비판적 이성의 기준에 맞추어 공개적 토론이 가능했던 공론이 18세기 처음 출현한 이후 비판적, 해방적 성격을 갖는 부르주아적 공론이 시민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통로로서 민주적 정치제도에 불가결한 조건으로 발전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점차 축소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확대, 국가의 개입 등으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상호 침투가 발생하였다. 사적 개인들의 입장에서의 합리적, 비판적 공론 영역 없이 상호 침투가 확대, 강화되며 공론 영역 자체가 이해관계 충돌의 장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상호침투로 공론영역은 사적 이익을 위한 투쟁의 장이 되어버렸고 보편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부르주아적 법은 더 이상 공적 토론에 참여한 사적 개인들 간의 합의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게 되었다. 하버마스는 체계와 생활 세계에 대한 논의를 통해 공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한다. 근대화 결과로 경제와 정치체계는 화폐와 권력이라는 조정매체의 제도화를 통하여 생활체계로부터 분리되었다. 특히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의 결과로 경제체계는 생활세계와 정치체계에 대하여 진화론적 우위를 지니게 되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질적 재생산의 장애는 체계위기 특히 자본 축적의 위기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체계위기 갈등과 반항을 불러일으킬 때 생활세계의 상징적 재생산을 침해한다. 즉, 자본주의적 근대화라는 체계요구의 ‘선택적’ 압력 속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와 근대적 관리국가의 확장은 사실상 일면적이고 왜곡된 그리고 위기를 내포한 사회적 합리화인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가져왔다. 이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한편에서는 체계가 생활세계의 일상실천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형태를 취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지식생산의 제도화가 낳은 전문가 문화가 생활세계의 문화적 빈곤을 초래한다. 체계에 의한 생활 세계의 이러한 강제적인 병합현상, 즉 목적합리성의 과도한 발달로 인해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압도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생활의 식민화는 정치적 수준에서 공론의 비판적 잠재력이 약화되고 소멸되는 것을 의미한다.이에 대한 예로 최근 대만 정부가 언론을 탄압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대만 집권 민진당의 정경유착 비리를 잇따라 폭로해 온 유선 TVBS방송국이 100% 외국자본 방송국이라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 받고 면허 정지 위기에 처하게 된 것. 대만 정부의 TVBS 처벌 방침이 전해지자 야당은 ‘대만 정부가 신문국을 통해 언론사를 통제하고 언론 자유를 탄압한다’면서 12개 국제 언론 기구에 편지를 보내 언론 자유 탄압 실상을 알리기로 했다. 대만 정부는 지난 8월 위성 방송국들의 면허를 심사하고 당시 TVBS의 지분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에도 불구, 통과시켰으나 최근 TVBS가 민진당 정부의 정경유착 비리를 폭로하자 새삼 지분 구조 문제를 들고 나섰다.< 2005. 11. 05. 연합뉴스 >공론이란 여러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마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통제하에 탄압을 받게 된다면 합리적인 의사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될 것이다.현대 사회에서의 미디어는 사회 구성의 핵심적인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공론장이 ‘미디어 공론장’ 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저널리즘은 사회가 풀어야 할 주요 문제들에 대한 공론의 마당을 마련해 주기 보다는 거꾸로 공론화 과정을 왜곡시키고 있다. 공론을 형성하는 것은 세계의 저널리즘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오랜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PAGE PAGE 2
    사회과학| 2006.12.15| 2페이지| 1,000원| 조회(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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