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문을 두드리면서 전도사가 된 나는 교회에서 공적으로 드리는 기도를 자연스레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 중에 ‘예배당’이란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기도가 끝나자 대뜸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전도사님, 촌스럽게 ‘예배당’이 뭐예요. ‘교회’라고 해야죠.”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함께 드리는 기도는 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중간에 딴 생각하면 안되겠지?” 하고 그냥 넘어갔지만, 내심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주일학교 때만 하더라도 ‘예배당’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그게 구식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두 단어가 각각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몰랐기 때문이었다.비단, 위의 예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예배 때의 단어 사용이나, 예배의 신학적, 전통적, 정통적 의미들을 그동안 몰라도 너무 몰랐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 내가 너무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이제 ‘그것이 이것입니다’라는 책을 통해 나와 같이 그러한 의미들을 무비판적, 무시각적, 무의미적으로 대해왔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 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단어와 의식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 개혁할 것은 개혁해야 할 것이다.이 책은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는 ‘참된 예배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과 두 번째로 성찬?성례전에 대해, 세 번째로 ‘설교?기도의 주의점’에 대해, 네 번째로 ‘교회력의 중요성’에 대해, 다섯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의 상식’에 대해, 여섯 번째로 ‘목회자들의 바른말, 좋은 말 사용’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바른말, 좋은 말’에 대한 것이다.첫째 장은 주일 예배 시 보통 행해지는 각 순서가 가진 의미와 관행들에 대해 다루었다. 성단의 촛불이나 등불의 사용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고유의 미신풍습에 촛불의식이 많이 사용되어져서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촛불 사용은 초대교회부터 부활의 주님을 찬미하고, 그 능력을 감상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졌음으로, 타종교를 생각하면서 우리 기독교의 고유한 것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예배시작 전에 종을 치는 관행은 이 땅에 미국 선교사들이 첫 발을 디디고 예배를 드릴 때, 당시 교육수준이 낮았던 회중들의 주의를 집중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으로, 미국의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사용했던 관행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한국의 관행으로 고착되었던 것이다. 이제 조국 교회는 100년 전 미국 교회 주일학생과 같은 의식수준을 벗어 난지 오래 되었음으로 중단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묵상기도도 그와 비슷하다. 회중의 잡담을 중지 시키고 예배의 엄숙성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묵상기도는 이제 더 이상 그만하고, 개혁자들의 예배 현장 연구를 통해 경축적인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예배자인 우리들이 앉아서 찬송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초기 한국 교회에서 의자가 없어 앉고 일어섬이 매우 번거러웠던 점에 비하면 지금은 그 불편함을 찾아 볼 수 없으므로, 응당 세계의 개혁교회와 마찬가지로 찬송은 일어서서 경건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 목사들은 대체로 찬양대를 응시하거나, 감상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그 시간은 다음에 이어질 설교를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마지막 기도의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송 전,후에 성도들을 향해 절을 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그것은 일반 합창회나 독창 발표회에서 하던 것을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다. 오직 영광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예물을 드린 봉헌자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과 그 사연을 읽는 것은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과는 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이 땅의 재래종교의 시주행위에서 그 유사성을 발견함으로, 앞으로는 지양하고 오직 하나님과 바치는 자만이 아는 예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배중에 그 자리에 함께 한 유명 인사를 소개하는 행위는 지극히 몰지각한 것이다. 그것은 개혁교회의 예배 의미에 저촉되는 것으로 예배의 순서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광고에도 그럴 수는 없다. 오히려 광고라는 순서는 예배 순서에서 빠져야 하며 예배 시작 전이나 후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둘째 장은 성찬,성례전에 대해 다루었다. 100년 전에는 이 땅에 성례를 집례 해야 할 목사가 없었다. 고작 선교사들이 일 년에 봄, 가을로 순회를 하면서 세례와 성만찬을 집례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칼빈의 사상을 가장 잘 따른다는 장로교가 오히려 칼빈의 사상을 따르지 않고 있다. 칼빈은 일 년에 한두 번하는 성만찬은 악마의 농간이라고 하며 오히려 매주 한번은 성도가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옷깃을 여미고 성만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례를 주는 의식에 대해서 여러 교파가 분분하나 어느 것이 높은 우위에 있고, 어느 것이 낮은 부분에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오히려 흐르는 생수에서 세례를 준 것만 나타나 있고, 오히려 사도적 전승이 나타난 디다케 문서에서는 흐르는 물에서 하지 못할 경우 받아 놓은 물에서 주고 성삼위의 이름으로 줄 것을 말하고 있다. 성례전의 관심은 그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진지한 준비와 과정을 거쳐 신앙고백을 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자녀로 인침을 받는 것인가에 그 초점과 관심이 있는 것이다. 성찬때 사용하고 남은 성물의 처리는 경건하고, 신중히 해야 한다. 남은 것을 땅에 묻거나 버리는 것은 문제가 되어 왔으므로 금하고, 예배 후에 목회자와 교회 직분자들이 예식의 연장으로 함께 나누어 먹거나, 소량일 경우 목회자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처리해야 할 것이다.셋째 장은, 설교와 기도의 주의점에 대해 다룬다. 목사들의 설교 가운데 행해지는 많은 말들 가운데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이다. 이것은 성삼위 하나님이 주체 되심이 아니라, 언어 구조상 설교자 자신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순수한 기원의 문장인 이것은 이제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주일 예배시 공적으로 회중들 앞에서 드려지는 기도는 많은 문제점에 노출되어 있다. 중언부언이나 빈말이 될 때도 있다. 사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참뜻은 기록된 기도문보다 즉흥적인 기도가 더 영감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중세교회의 성자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기도문을 거부한 것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준비하여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 기도는 언제나 환영하였고 그 기도에 함께 동참하였다. 이제 공적인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마음을 준비하고 자신의 정성을 모은 언어로 기도를 미리 기록하여 드릴 것을 권장한다. 이에 더하여, 기도 가운데 목사님들이나 교회의 중직자들을 위한 기도를 할 때 ‘님’자를 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정서상 ‘님’자를 제외한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함이 없지 않다. 따라서 목사님은 ‘목회자’, ‘목자’, ‘교역자’ 등으로 바꾸고, 장로나 제직들은 ‘중직자들’ 또는 ‘봉사자들’, ‘제직들’등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넷째 장은, 교회력의 중요성에 대해서이다. 어느 교회는 부활절과 성탄절만 지내는 곳도 있으나, 장로교의 원조인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1940년 예배 모범에 여섯 절기를 담고 있다.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이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 성장에 걸맞는 성숙이 필요할 때이며, 세계의 개혁교회와 호흡을 함께 하는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다섯째 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상식에 대해 다룬다. 성직자 셔츠는 천주교 신부들의 전용물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바, 독신의 표시는 더욱 아니다. 이것은 ‘노예의 상징’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의 수행과 자신의 언행심사를 항상시키는 도움을 주는 예복이다. 요즈음 한국교회에는 인간을 향한 각종 예배가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예배의 근본 의미를 흔드는 것으로서 아무리 적절한 해석을 한다 해도 그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라기보다 그 날의 주역들인 인간을 찬미하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배라는 이름이 너무 남발되는 것이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회’또는 ‘예식’의 이름이 합당할 것이다. 유대교는 아직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지만 우리는 안식일을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일, 곧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 비록 그 명칭이 바뀌었다 할지라도 주님의 날에 지켜야 할 규범과 내용은 변한 것이 없다. 장로교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내용처럼 이 날은 거룩하게 지켜져야 하며 세상의 일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예배와 필요한 의무나 자비를 베푸는 데에 써야 할 것이다. ‘축복’이라는 단어가 교회현장에서 너무 남발되어지고 있다. 축복이라는 단어가 나쁜 것은 아니나 잘못 사용되어지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가 된다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축복은 복을 빌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는 맞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으로서 복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보나벤투라Bonaventura를 통해 본 영성영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중세의 인물들 가운데 어떤 이를 다루어야 하나 고민하던 가운데 익히 그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내용은 잘 알지 못했던 ‘보나벤투라’가 눈에 띄게 되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곳에 그에 대한 자료가 극히 제한돼 있었고, 그나마 영문으로 된 책을 단시간에 읽고 번역할 능력도 구비하지 못하여 그에 대한 2차 자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스콜라 신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면서 동시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영성을 해석해 주고 확립했던 보나벤투라(1221-1274))는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보았다. 이제 그의 글을 통해서 그에게 있어서의 영성의 의미와 영적 성장의 패턴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1. 보나벤투라의 작품의 성향보나벤투라의 작품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그가 파리 대학 교수시절에 쓴 것으로서 주로 스콜라주의적 작품들이다.) 두 번째 시기는 그가 프란치스코회 수도회의 원장으로 부름 받은 기점인 1257년부터 1267년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에 쓰여진 것들은『하나님께 이르는 여정(The Soul's Journey into God)』,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 『영성의 3가지 길(The Triple Way)』, 『네 가지의 영성훈련에 대한 독백(Soliloquy on the four Spiritual Exercises)』등이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이 두 번째 기간에는 영적인 삶의 경험과 이론에 관련된 것들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기간은 스콜라주의적이고 사변적인 논쟁점들인 첫 번째의 시기와 프란치스코 영성을 정립한 두 번째 시기가 통합되는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 보나벤투라에게서 『십계명에 대하여(On the Ten Commandments)』,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에 관하여(On the Seven Gifts of the Holy Spirit)』, 『창조의 여섯 날들(The Six Days of Creation)』이라는 작품이 나왔다. 이상과 같이 시기적으로 본 그의 작품의 양상을 볼 때 그의 영성을 살펴보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두 번째 시기이다. 그중에서 특별히 영성학의 대전이라고 불려지는 『하나님께 이르는 여정』은 보나벤투라의 영성과 그가 해석한 프란치스코회의 영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2.『하나님께 이르는 영혼의 여정』에서의 보나벤투라의 영성보나벤투라는 인간이 비참한 죄로 말미암아 “광야의 가난한 자”가 되었다고 보았다. 원죄가 생기기 전 무죄한 상태에서의 인간은 조용한 관조를 통해 하나님과 합일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르는 과정들을 분별할 수 있는 빛을 받는다. 피조물의 입장에 있는 우리는 우주 그 자체가 하나님께로 이르는 사다리이다. 어떤 피조물은 하나님의 흔적을 나타내고, 어떤 피조물은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것은 물질적이요, 어떤 것은 영적이다. 어떤 것은 한시적이요, 어떤 것은 영원하다. 어떤 것은 우리 자신 밖에 있고, 어떤 것은 우리 자신 안에 있다. 가장 영적이고, 영원하고 우리 위에 있는 제일원칙을 관상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이고 한시적이고 우리 자신 밖에 있는 하나님의 흔적에 불과한 것들을 뛰어 넘어야한다…우리는 영원하고 영적이요 우리 안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영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제일원칙을 관조함으로서 영원하고 가장 영적이고 우리 영혼 위에 있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식을 즐기는 것이요, 그의 위엄에 대한 경외감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다…이러한 구분은 존재에 대한 삼중적인 실존을 반영한 것이다. 즉 물질적이 실존, 영혼의 실존, 영원한 실존을 의미 한다…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삼중적인 실체를 반영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신적으로 우리의 사다리이다.)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보나벤투라의 영성학의 근간은 기독론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나벤투라는 인생의 여정을 하나님에게서 나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세상에 살면서 부단히 하나님을 닮는 과정을 계속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이 인생의 과정이요. 길이다. 바로 이것을 그의 영성생활이라 할 수 있겠다.보나벤투라는 이런 인생의 여정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이 결정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생의 길을 회복시키시고, 치유시키고, 복구시키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목표이시다. 인간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인간은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을 끊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나벤투라에 의하면 “자신을 끊는다”는 것은 포기, 가난, 겸양을 뜻한다. 그런 다음에야 인간은 빈 마음과 자유와 해방을 얻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보나벤투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목표를 상승에 두고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정화, 조명, 일치이다. 정화는 상승의 첫 번째 과정으로서 이기적 자아포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뜻한다. 극기의 훈련이 필요하며 쉼 없이 이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다. 조명은 상승의 두 번째 과정으로서 정화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빛이시다. 이 빛으로 인해 인간은 어둠 속에 헤매지 않고 밝은 데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신적인 빛이 두루 인간 내부를 비출 때 인간은 죄인으로서의 처지를 절감하고 어떤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조명 사상은 보나벤투라로 하여금 빛-형이상학과 조명-인식론을 지지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빛으로 인해 인간은 깨달음을 얻게 되고 구원의 시작에 들어서게 된다. 일치는 상승의 마지막 단계이다. 하나님과 일치하게 될 때 인간은 탈혼과 영적 붙잡힘 속에서 지복을 맛보게 된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을 열망하게 되고, 그분과 하나 되는 원의만을 가지게 된다. 이 단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단계이다. 이러한 일련의 단계들은 시간적인 연속성으로 체험되는 것이 아니다. 보나벤투라의 견해는 이런 것들이 영혼의 상승 여정 안에서 만나게 되는 단계들임을 지적할 뿐이다.)좀 더 간단히 말하면, 정화는 악으로부터 떠난 것을 의미하고, 조명은 선을 상징하며, 일치는 높은 영혼의 상승을 의미한다. 첫 번 두 방법에서는 영혼의 활동이 강세를 보이고 세 번째의 일치적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활동에 일치되는 수동성을 지닌다. 온전한 사랑의 상태인 신비적(영적)평화는 정화적 삶과 양심의 평화를 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래서 모든 영혼은 영적 삶의 실천, 깊은 겸손과 덕의 실행, 그리고 정화적 삶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삶은 묵상, 기도, 관조의 실행을 통해 향상된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은 이 세 가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지금까지 극히 일부이긴 하나 보나벤투라의『하나님께 이르는 영혼의 여정』을 통해 그가 관심을 가지고 평생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실행에 옮겼던 신앙과 신학으로서의 영성을 살펴보았다. 보나벤투라의 이러한 사상은 어거스틴의 신학적 전통 하에서 신플라톤주의를 도구로 삼아 발전된 것이었다. 보나벤투라에게 있어 이것은 버나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론만이 아니라 그의 영적인 삶 속에서 감성적인 경험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다.) 보나벤투라에게 있어 이러한 감성적인 경험은 그가 추구했던 하나님을 향한 상승운동이었던 것이다.
박윤선 목사의 신앙과 인격1988년 6월 30일 오전 6시 03분. 한국 교회의 스승이며 말씀과 기도의 종 박윤선 목사님께서 8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학자로서 유감없이, 대학자로 사셨지만 “박윤선 박사”라는 칭호보다는 “박윤선 목사”라는 칭호가 그에게 더 맞는지 모른다. 그것은 그가 일생 동안 목사답게 살다가 가셨기 때문이다.그는 진실하고 사욕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살았고, 기도하고 설교하기를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그 말씀을 풀이하는데 온갖 힘을 바쳤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기를 힘쓰셨다. 한국 교회는 거목을 잃었을지 모르나 그의 신앙과 인격과 학문은 계속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에 우리는 인간 박윤선의 삶과 목회자 박윤선의 모습을 통하여 그의 신앙과 인격을 들여다보고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이며,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1. 출생과 소년 시절박윤선 목사가 태어난 시기는 국가적으로 매우 어두운 때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의 한국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기독교인들의 항일운동이 본격적으로 일고 있던 시기였다. 한편 한국 교회는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회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말하자면 노회와 총회가 조직되는 역사적 의의를 가졌던 때이기도 하다.9살 난 박윤선은 아버지 박근수씨의 배움에 대한 한으로 인하여 비록 가난하지만 서당에 보내지어 한학을 배우게 된다. 윤선은 날이 갈수록 학문에 대한 성장을 놀랍도록 보여주었는데, 사서삼경을 모두 암송하였으며 그 본문만이 아니라 주해까지도 암송을 하였다.이렇듯 동양사상을 깊게 섭취한 박윤선은 후에 깨달은 일이지만 동양사상과 기독교 사상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나, 동양 사상을 이해함으로 그와 대조되는 기독교 사상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양 사상이 인본주의라고 한다면 기독교는 신본주의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2. 학창시절1922년 18세 되던 해 박윤선은 대동학교를 통하여 신학라는 동문이 있었는데 그는 천도교인으로 박윤선과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박윤선 목사의 자서전에서 이 분이 언급되는 걸 보면 아마도 박윤선 목사는 기독교인외의 인물들과도 아무 거리낌 없이 인간관계를 맺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이는 지금도 종종 문제시 되고 있는 불제자들과 신부, 또는 타 종교지도자들과의 만남 자체를 매우 안 좋게 보는 목사들과 그렇지 않은 목사들과의 논쟁을 다시금 생각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이후 정주 오산중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에 이르러 박윤선은 비로소 하나님과 만나게 된다. 학교 가까이 있는 시내가로 걸어가면서 하나님께 대한 의심이 생기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즉시로 마음 깊이에서 솟아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이 계신 증거”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다. 그때 박윤선은 놀랄 정도로 하나님을 확신하게 되었고 의심은 살아졌으며, 성경을 견고히 붙잡고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한 박윤선은 기도의 동지들과 함께 신앙운동에 열중하게 된다. “숭실 전문학교 시절 나는 신앙운동에 열중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기도운동에 몇몇 동지(이유택, 송영길, 김철훈, 박기화, 방지일, 김진홍)들과 함께 모란봉 뒤 숲속에서 기도하곤 하였다. 우리가 너무 일찍 일어나 모란봉으로 갔기 때문에 학생들은 우리를 가리켜 ‘조기부대’라고 별명을 부쳤다. 그때 나 개인으로 말하면 기도에 극히 열중했기 때문에 기도에 열중하면 병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말이 끊임없이 나왔으며 또 그 말이 매우 힘이 있었다.” 방지일 목사는 그 당시 박윤선 목사의 기도생활을 이렇게 기록했다. “숭실대학 시절에는 새벽마다 교실에 가서 엎드려 살았다. 특별한 기간에는 유단 한 조각을 준비했고 또 미숫가루도 병에 담아 가지고 산으로 간다. 평양 모란봉 위 가재란 곳이 잇다. 주님은 그 곳에 엎드린 박윤선을 보셨을 것이다.”박윤선은 평양 장로회 신학교 시절에도 선 목사는 이때의 일로 인해 회개의 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 자서전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 때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설교하는 나 자신부터 내 죄를 회개하면서 증거하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즉, 나도 단 한번이지만 신사참배를 한 범과가 있으므로 나는 언제나 그 일로 인하여 원통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 때에 그 죄를 회중 앞에서 고백하였던 것이다.” 믿는자는 자칫 개인기도와 경건 생활을 이유로 국가와 사회에 대해 무관심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때 단편적이나마 박윤선의 당시 모습은 우리에게 개인의 신앙생활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또한 외부적 고난이 엄습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신앙을 지켜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유학시절 박윤선은 메이첸(Machen) 박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는 메이첸 교수를 “참으로 위대한 신학자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신앙인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불철주야 하나님 말씀 연구에 집중하였으며, 모든 신학생을 자기 아들처럼 여기고, 신앙적으로 지도 하였으며, 언제나 확신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회고 하였다. 메이첸 교수에 대한 이런 글이 마치 박윤선 목사의 제자들이 그를 회고 하면서 쓴 글과 매우 비슷함을 볼 때, 박윤선 목사가 메이첸 교수를 얼마나 존경하고 따랐으며 그의 삶 가운데 모본이 되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3. 신학교 교수 시절신학교 교수 시절의 박윤선 목사의 신앙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고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초창기 고려신학교 경건의 시간으로 시작된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고신측 교단 안에는 예배당 건물쟁탈 싸움이 일어나고 이것이 불신 법정 소송까지 이르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윤선 목사는 이 사건에 대하여「파수꾼」지 (1957년 3월, 61호)에서 “성경의 말씀을 어기고 불신 법정에서 소송하는 것이 이기나 지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고 밝히고, 즉각 예배당 쟁탈전을 멈추라고 호소하였다. 회개운동에 앞장서야 할자가 아닙니다. 내가 왜 일선에 서서 이렇게 말을 하게 되는지...... 이것은 나 자신도 피하여 보려고 하여도 피해지지 않는 일입니다. 좀 외람된지 모르나, 옳은 말은 해야지 하는 사명감의 포로가 되는 것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바 신앙 양심의 결단을 따랐던 것이다.하지만 이 일이 비록 고려파 총회 다수측에 의하여 박윤선 목사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함 이었다는 것은 잘 알지만 한국 교회의 지도자인 그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음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과연 이 문제가 한 개인의 신앙양심을 따라 주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공론화 할 것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4. 기도의 삶을 통해 본 박윤선의 신앙과 인격박윤선 목사는 하나님을 믿은 이후 평생을 기도로 일관하며 살았다. 그렇게 기도를 철저하게 실천하며 산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무엇이 박윤선 목사로 하여금 평생을 기도로 일관하며 살게 만들었는가?첫째 박윤선 목사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믿되, 보통 사람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때로는 미련하게 보일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믿었다. 그 분은 어린아이처럼 믿기도 했고 때로는 곰처럼 믿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도무지 모를 정도로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었다.둘째 박윤선 목사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머리와 가슴으로 믿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의지와 행동으로 그대로 순종했다. 박윤선 목사는 의지의 사람이었고 순종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말씀이 명하면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했다. 성경이 기도하라고 명하므로 박윤선 목사는 그저 그대로 기도했다. 그러므로 때로는 힘이 들지만 실로 힘들게 기도했고 애쓰며 기도했다.셋째 박윤선 목사는 사랑의 사람이었다. 박윤선 목사는 억지로 힘들게 기도하는 데 그치지는 않았다. 박윤선 목사는 스스로 증언한 대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박윤선 목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는 신학 연구는동시에 경건의 능력을 소유한다.” 이렇듯 박윤선 목사는 기도로 그의 생을 일관하시며 주위의 모든 사람을 경건의 생활로 견인하셨다.5. 설교를 통해 본 박윤선의 신앙과 인격누구나 글을 쓸 때에는 자신의 평소 생활습관, 언어습관, 생각등이 어우러져 글을 이루게 된다고 할 때, 박윤선 목사의 설교는 곧 그 자신의 신앙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 박윤선 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하나님 중심 사상박윤선 목사는 칼빈주의에 기초한 철저한 신전의식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설교에서 어떤 제목을 뽑든지, 어떤 본문을 택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영광만을 중요시하는 설교이다. 그의 신학은 신학을 위한 신학이 아니고 언제나 목회자와 성도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신학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을 뿐 아니라 그의 설교한 대로 그대로 살았다.“여호와 밖에 다른 신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은 구원의 길이다. 여호와 하나님밖에는 참 하나님이 없는 줄 안다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삶을 걸 것이다. 이럴 때 우리의 믿음이 옳게 되고 바로 걷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시며 그분 한 분만이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세계의 주재요 역사의 주인공이신 여호와이시다.”라고 말했다. 이 메시지 가운데 박윤선 목사의 하나님 중심 사상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박윤선 목사의 설교에 나타나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또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는 그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설교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2) 박윤선 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오직 성경 사상“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늘 궁핍함이 없이 말씀을 풀어내려면 하나님과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만한 자리에서 살아야 우리의 설교가 참되게 이루어지고, 우리의 설교가 다함이 없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귀한 백성에게 양식을 계속적으로 공급해 줄 수가 있습니다.”그는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멸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서 론한국교회는 바야흐로 전환기에 서있다.새천년기의 문턱에 서있는 한국교회는 지금 안팎으로 근본적인 변화와 지속적인 갱신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교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된다”(Ecclesia semper reformands)는 종교개혁 운동의 정신을 다시금 기억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그동안 교회가 시름시름 앓고 있었던 병적 현상들이 이제는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으며 그 현상들이 조금씩 추하고 일그러진 몰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이러한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라 자처하는 목회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죄와 욕심, 무지와 탐욕이 오늘의 상황을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서나 교인들 눈에 보기에 목회자답지 못함으로써 한국교회는 각종 병리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를테면, 교파주의와 교권주의, 교권에 대한 탐욕, 학벌 지향적 목회자, 타락한 교계선거, 교회의 계급주의적 제도, 목회세습, 대형교회 지향적 목회관, 교회의 자기과시와 허세, 교회 지도자의 부도덕성, 목회자의 개인 경건과 영성의 황폐화등이 바로 그것이다.)이는 한마디로 교회의 각종 부조리와 문제들에 맞서 싸워야 할 목회자들이 그러한 문제들의 해결 자가 아니라 그 같은 문제들을 구성하는 '문제자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같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에 이제 학부생으로써 앞으로 목회의 길을 나서고자 함에,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내 자신의 준비상태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돌출되고 있고, 목회자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에 싸여 있던 내게 있어 수업 중 접하게 된 초대교부들 중의 한사람인 요한 크리소스톰의 『성직론』은 나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이『성 기독교를 로마 제국내의 종교로 공인하면서 무섭고 가혹한 박해를 받았던 종교가 황제의 비호하에 교회가 양성화되어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급증하였으나,문제는 황제가 교회 안에 실력을 행사함은 물론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에도 강력한 압력을 가하여 교회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었다. 이를 소위“가이사의 교회지배”(Caesarp-opism)라고 한다. 따라서 교회는 황제의 세력의 간섭이 너무 많아서 국가교회 혹은 신정제도라고 볼 수 있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는 니케아회의 시대로 접어든다. 국가적으로 로마제국이 콘스탄틴 황제의 사후부터 계속되는 왕위계승 싸움으로 국력이 크게 소모되어 쇠퇴하여 갔고 이민족의 계속된 침략속에 마침내 서로마 제국이 북방의 게르만 민족에게 멸망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크리소스톰은 r회를 이끌어 간 교부이다.)2. 신학적 배경안디옥에서 출생한 크리소스톰은 반드시 안디옥이 아닐지라도 수리아어 사용권에서 발달된 신학전통인 안디옥 신학에 속해 있었다. 이 신학은 수리아어 사용권에서 수리아어로만 발전된 것이 아니라 헬라의 여러도시에서 헬라어로 발달되어 왔기 때문에 같은 헬라어를 사용하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병행하여 발달되어 둘 사이의 분간이 확실치 않을 때가 적지 않으나 안디옥 학파는 그 신학 사상에 있어서 대체로 히브리적 특색을 가진다. 안디옥 신학의 역사는 다른 학파들의 경우와 달리 어떤 위대한 창조적 사상가를 처음에 가지고 그 신학 사상을 신학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창조적 고백을 보태기 보다는 히브리 고유의 혹은 구약적인 신앙에 입각한 학파인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이들 중에 속한다.)Ⅱ. 요한 크리소스톰의『성직론』A. 제 1권 크리소스톰의 속임크리소스톰과 바실은 374년에 그들이 감독에 임명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게 된다. 만약 사제단이나 백성들에 의해서 성직에 피택 되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로라도 성직을 받아야만 했던 것이적인 인간과 비이성적인 피조물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난 것이다.』이 말은 어찌보면 목회자와 평신도를 계급 내지 신분적으로 구분을 짓는 것처럼 들릴수도 잇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오히려 그만큼 목회자에게는 그에게 맡겨진 양들을 그리스도께 올바르게 인도해야할 막중한 책임감이 요구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양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크리소스톰은“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고전 2:11) 라는 성경을 인용하며 방황하는 자들의 구원에 대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랄 것과 그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더 많은 노력과 인내와 기다림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강압적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요 오직 설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을 악에서 돌이키게 하실 때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선택하여 돌이키게 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바“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자가 되려 함이니…”(고후 1:24)처럼 목회자는 사려깊은 분별력과 거룩한 심령을 가지고 오직 돕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크리소스톰은 이러한 목회자의 위엄과 중요성을 인식하여 자신이 그 귀한 직분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내가 염려하는 것은 내가 만약 살찌고 튼튼한 양들을 맡아서 나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해를 입힌다면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구원과 구속을 위해 나신을 내어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오늘날 소명감없이 목회자가 되거나 직분의 남용 및 그 자질의 검토 없이) - 물론 목회자의 자질을 사람이 판단 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 무분별하게 주어지는 안타까움을 볼 때 크리소스톰의‘목회자 상’에 대한 마음을 우리는 다시한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C. 제 3권 성직과 성직자제 3권에서 크리소스톰은 자신이 교만하고 세상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성직을 거절했다고 의심하는 니라 자기 양들의 권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일하는 자가 그 직분의 위엄 때문에 항상 두려워 한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크리소스톰은 바울의 이 위대한 목회자 모습이야말로 바로 정직자가 가져야 할 모습이라고 역설한다.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나의 형제를 위해서 철저히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해야만 한다는) 자기 희생의 사랑이야 말로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상(像)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그러나 이러한 영광된 직분과 자기 헌신의 직분이 중요한 만큼 그 어려움 또한 크기에 크리소스톰은 성직에로의 부름을 가능한 대로 파해야 함을 언급한다. 이것은 그 직분의 중대성을 깊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내적, 외적 소명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보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그들은 경험부족으로 눈뜬 장님이 되어버리고, 그들을 세워 주었던 수많은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부과시키게 되는 것이다』라는 크리소스톰의 염려를 그대로 나타내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특히 성직자는 명예를 향한 인간적 야심을 버려야 하며,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하며 노하기를 더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성직자의 무절제한 분노는 목회자 자신의 영혼을 학대하고 건강한 상태를 완전히 전복시킬 뿐만 아니라 더 무서운 것은 직분자에게 맡겨진 수많은 사람들을 실족시키는데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들은 지금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사역현장에 있는가? 스스로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D. 제 4권 성직자와 설교제 4권은 성직에 자격이 없고 능력 - 특히 설교 능력 - 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강요된 성직을 받는 자들의 괴로운 운명을 말하고 있다. 좋은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시의 헬라인들과 유대인들, 그리고 이교도들, 특히 마니교도들과 발렌티누스의 추종자들, 말시온, 사벨리우스와 아리우스, 이모든 자들의 공격에 대비해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경우 그는 이적의 능력뿐 아니라 말씀의 능력도 대단 했게 되는데 가르치는 자는 재치를 가지고 말씀의 능력으로 능히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할 수 있는대로 최선을 다하여 이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크리소스톰은 그러한 예로 바울을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물론 놀라운 이적도 행하였지만 그보다 말씀을 더욱 중시 하였다는 것이다. 바울은 사역한 교회들에 보낸 서신들을 통해, 거짓교리를 반박하고, 진리를 세우게 하는데 유익할 뿐 아니라 선한 삶을 위해서도 많은 유익을 주며 교회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며 영적인 아름다움을 갖도록 인도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이 서신들은 성도들의 유익을 도모해 줄 것이다. 이로 볼 때 사도바울이 얼마나 말씀의 사역을 위해서 힘썼는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고 크리소스톰은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목회자는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중 하나가 이단 사설에 현혹되어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면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의 경건 생활이라 하더라고 그 지도자는 그의 머리에 끔찍한 저주가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E. 제 5권 참된 설교자제 5권은 소위“설교자 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크리소스톰은 여기서 설교자가 얼마나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지를 역설하고 있으며 그에 따르는 위험들을 지적하고 있다. 훌륭한 설교자는 설사 성공했다 할지라도 교만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칭찬을 받는다고 질투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설교자의 첫째가는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귀에 거슬리는 비판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크리소스톰은 설교자는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성도들에 의해 말씀이 삶 가운데 수행 되어질 때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설교자에게 두 가지가 요청되는데 그것은 칭찬에 무관심 하는 것이요, 말씀을 잘 증거 하는 것이다. 만약 목회자에게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가 부족하다면않는다.
서론다니엘은 히브리 정경에서 선지서로 포함되어 있지 않고 성문서로 되어있다. 선지서의 특징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히브리인들은 선지서로 포함하지 않았을까? 이에 성문서와 선지서의 특징을 알아보고 포로기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서 다니엘이 성문서 혹은 선지서 중 어느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한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본론먼저, 선지서를 이룬 선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통해 그 특징을 살펴보겠다.Ⅰ. 선지서이스라엘 역사의 상당기간에 걸쳐 선지자들이 존재했다. 이사야로부터 말라기에 이르는 기록된 메시지는 구약 시대의 예언적 메시지들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발람처럼 이스라엘계가 아닌 선지자들도 있고(민 22-24), 나단(삼하 12:1-14), 엘리야(왕상 17장-왕하2장), 엘리사(왕하2-8장)처럼 이스라엘계 선지들도 있었다. 비록 그들이 전한 메시지가 성경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대표적인 선지자들이다.성경에는 이 독특한 사람들을 몇 개의 단어를 사용해서 묘사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선지자(나비, nabi)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권위를 가진 대변인을 말한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 약 300번 가량 나타난다. 이 단어의 초기 사용은 선지자의 필수적인 6가지 요소를 말해준다.히브리 단어 로에(roeh)와 호제(hozeh)는 모두 ‘선견자’라고 번역되었다. 이 두 동의는 ‘보다, 바라보다, 조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로에는 선지자를 언급하는 용어로 12번 사용되었고, 호제는 적어도 16번은 사용되었다. 두 단어 모두 선지자가 메시지를 받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선견자’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볼’(꿈이나 환상을 통해)수 있는 사람들이었다.선지자의 선지서에 대한 소개 자격 요건? 선지자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할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된 사람이다(출 6:28-30)? 선지자는 메시지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는다.(민 12:1-2, 6)? 선지자의 메시지는 진실성이 입증될 수 있으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전령들이다. 그들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전한 메시지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지금, 여기서’ 갖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기록된 대부분의 선지서 메시지에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그들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소식을 전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백성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분이 이루실 궁극적인 회복을 발표했다. 이 메시지들은 모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레 26장, 신 28장)과 포로 생활로부터의 궁극적인 회복(신 30)을 보여주는 모세 언약과 일치한다.그러면 이제 성문서에 대해 살펴보자.Ⅱ. 성문서유대교 정경의 세 번째 부분은 성문서이다. 하기오그라파(hagiorapha), 즉 “성문서”란 헬라어 단어는 구약성경의 이 부분을 지칭하기 위해 교회 교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성문서가 완성된 연대에 대해서는 주후 100년경 이전의 상황을 확실하게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정경의 이 세 번째 부분에 대한 풍부한 증거는 주전 180년경의 이른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시기에 벤 시락(Ben Sirach)의 손자는 집회서 서문에서 그의 저명한 할아버지가 “율법, 선지서, 그리고 조상들의 다른 책들을 열심히 연구했다”(NEB),고 언급했다. 예수님의 말씀도 이러한 세 부분 구분법을 지지해 준다.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여기에서 물론 “시편”은 성문서 전체를 간단히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제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책이었고, 성문서 모음집의 맨 앞에 놓여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기독교 시대 이전에 성문서에 정확히 어떤 내용들이 들어 있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정경이 전적으로 유동적인 상태에 있었다고 생다른 책들(에스라서, 느헤미야서, 역대기, 에스더서, 솔로몬의 아가, 전도서)이 최소한 최종적인 현태의 경우에는 최후의 선지서인 말라기서 이후에 쓰여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집 과정의 여러 가지 요인들 때문에 결국은 이 책들과 함께 성문서를 이루게 되었다. 이 책들의 독특한 성격은 그 저작 및 수집 연대만큼이나 그 수성 요소들과도 관계가 있다.성문서의 일부 책들은 대중 예배에 사용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예를 들어, 시편과 다섯 두루마리들). 일부 책들이 함께 묶여진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길에 대해서 실천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이다(욥기, 잠언, 전도서), 성문서의 책들의 또 하나님의 목적은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한 이후의 한 세기 혹은 그 이상의 언약의 역사를 현대화 하고자 하는 것이다.(에스더서, 느헤미야서, 에스라서). 역대기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이 책은 과거의 교훈들이 포로기 이후 시대 유대인 공동체의 필요에 직접 와 닿도록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다니엘서의 목적 및 왜 이 책이 영어 번역본들의 경우와 달리 선지서에 포함되지 않고 성문서에 포함되었느냐 하는 문제는 뒤에 밝힐 것이다. 이 책은 선지서의 수집이 끝난 이후에 정경에 포함된 것이 틀림없다. 다행히도 신앙 공동체는 이 책의 신앙과 용기의 표본 및 희망과 승리에 대한 환상 속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본질적으로 성문서의 전체의 목적은 그 목적, 성격, 연대상 율법과 선지서로부터 제외된 책들을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비록 성문서는 율법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들, 혹은 선지서 등과 같은 문자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고양을 위해서 필요하다. 이것은 기도와 찬양의 필수불가결한 전형들을 제공해 주며, 역사속에서의 하나님의 활동하심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창조와 인간의 사회 환경에서 얻은 교훈들에 독자들의 주의력을 환기시키고, 하나님 길의 기이함에 대해서 신앙 공동체의 우려되는, 렘성과 사건을 통해 그 저주가 다 그대로 이루어졌음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의미를 잃었다. 나단신탁을 통하여 영원한 왕조를 약속했던 다윗과의 계약 역시 이제는 그 의미를 찾기 힘들어졌다. 그 자손과 땅을 축복하며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 역시 이제 약속의 땅을 빼앗긴 지금 성전은 완전히 약탈당하고 초토화 되었으며, 이것은 유다의 다른 도시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포로사건은 독립국가로서의 자치적인 주권을 상실하는 일이었으며,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온 땅을 빼앗기고, 아울러 종교적인 의식과 관습들마저도 그 명맥이 끊어지게 된 실로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이런 상황속에서 이스라엘은 신학적으로 큰 혼란에 빠졌을 것임에 분명하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맺은 계약은 포로기에 와서 하나님이 그 땅의 소유주이며, 그 백성에게 땅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자신께서 약속하신 땅을 지키기에는 너무도 연약한 분이셨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들을 파기시키실 만큼 자기 백성들에게 화가 나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그러나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 국가체제의 이스라엘은 비록 거기서 멈추어졌을 지라도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지속되어왔다고 말한다. 고대 근동역사에서 보기드문 이 같은 특이한 현상은 바벨론에 대거 유입된 이스라엘 포로민들이 그 가운데서도 집단을 이루어 나가면서 조상의 전통들을 그들의 유일신 신앙과 결부시켜서 유지시켜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점에서 볼 때 주전 6세기는 역사적으로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기이지만,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 출발을 다짐할 수 있는 빛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당면한 신학적인 위기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갔기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시대의 이스라엘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큰 시련을 겪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아주 풍성한 생산적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위기를 맞아 그들이 더욱 더 확고한 신학적 기반 위에 가장 위대한 메시지들 중의 하나를 담고 있다. 다른 선지서들은 이러한 장래에 대해서 희미한 시각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니엘서에서는 책 전반을 통하여 여러 가지 이상들 중에 이러한 메시지가 보존되어 있고, 계시되어 있다. 이러한 장대한 책이 사소하게 취급되고, 우습거나 광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심각하게 취급되지 않거나, 마지막 시대의 사건들과 연대 추정 등의 공상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은 애석한 일이다.다니엘서가 비록 묵시 문헌적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역사로 다루기를 고집한다. 일부 학자들(예를 들어 E. J. Young, R. K. Harrison)은 이 책의 역사성을 주장하였고, 또 어떤 학자들(예를 들어 H. H. Rowly, J. A. Montgomery)은 이 책이 6세기의 역사라는 것을 반박하고, 이 책 속에는 2세기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계시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마 다니엘서의 경우도 “느부갓네살”, “발사살”, “베대 사람 다리오” 등을 언급할 때 정확한 역사가 이 책의 중요 목적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표현된 계시가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다니엘은 히브리 정경에서 선지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이 책의 저작 연대가 늦은 관계로 정경의 선지서 부분이 이미 닫혀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책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지서가 아니라 다른 양식의 책으로서, 죄악 된 행동을 비난하지도 않고, 높은 윤리체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이 책의 목적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이 책의 근본적인 목적 중의 한 가지는 언약의 하나님이 미래를 여실 때 일어날 사건들을 계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으며, 또 다니엘이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셨다(단 1:17).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도록 부름을 바당ㅆ을 때 그는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