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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노동, 소외, 자유
    생각의 흐름1. 내가 이해한 노동2. 내가 이해한 소외3. 내가 이해한 자유4. 노동과 소외, 자유의 연관성5. 참고문헌* 내가 이해한 이라는 구절을 붙인 이유는 나름대로 공부하고 책을 읽으면서 제 방식대로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서술하는 데 이 과제의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즉, 저 나름대로 각 주제를 정의내린다고 하지만 결코 완전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나 라는 주관적 존재를의식하고 그 구절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참고한 이론과 저의 생각의 혼합을 적은 것으로서 이러한 저의 의도를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1. 내가 이해한 노동노동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반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가깝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근거는 노동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각자 맡은 바 일을 하고 그에 따르는 산출물을 교환함으로써 각자에게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 등을 얻어낸다. 그리고 그 산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따라서 인간은 삶에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노동은 매우 큰 공헌을 현실사회에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노동은 모든 인간존재의 중요한 기본조건이다.이러한 가장 우리 생활에 근접해 있는 이론 이외에도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의견을 빌리면 노동은 인간자체를 창조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에 의해, 보다 새로운 동작의 채택에 의해, 근육과 인대의 특수한 발전, 보다 오랜 기간에 걸친 뼈의 특수한 발전의 유전에 의해 손은 보다 다양하고 섬세한 움직임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손은 노동의 기관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손의 발전은 그것이 기여한 신체 전체도 발달시켰고, 그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어 단지 신체적인 인간의 발달뿐만이 아닌 인간 사회, 문화 등을 창조해내기에 이르렀다.Marx는 노동에 관한 이론을 펼칠 때, Hegel의 이론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대신 Hegel의 이론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노동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행위, 즉 대상화 활동으로서의 행위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그의 활동 역시 매우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간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자유롭게 실현시키는 것이 노동의 본질인데, 사적소유는 양도된 노동의, 노동자가 자연과 자신과 맺는 외부적 관계의 산물, 결과이며 또한 필요한 결론이다"(경제학 철학 수고)라는 책의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사적 소유라는 것의 존재로 인해 노동은 양도의 형태로 전락하게 되고 그 결과로 임금 과 이자, 이윤, 지대 라는 것이 나타나게 된다. 앞으로 계속 전개할 내용은 이러한 현상의 발생을 전제로 한다.2. 내가 이해한 소외소외 라는 단어는 매우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막상 배경의미 없이 이 단어를 접했을 경우에는 그 단어가 정확히 지시하고 있는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소외에 대해 서술하게 되면, 이 소외는 노동 의 개념을 수반한 채 정의 내려야 가장 올바를 것이다. 노동, 소외의 개념은 모두 Hegel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 모두 Marx라는 인물을 거치게 되면서 보다 구체화되고 다른 의미를 갖고 사용된다. Hegel의 소외는 정신의 단계적 발전 과정 속에서 의식이 자기 자신을 대상화 즉 소외시킨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발전의 추동력이 되는 긍정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Marx의 경우에 소외는, 인간이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대상에 자기의 본질을 대상화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노동의 생산물이 노동자와 무관한 낯선 존재로 전화되어 노동자와 마주하면서 독자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부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즉 소외에 대한 개념은 Hegel과 Marx의 두 인물 가운데서 각각 긍정적, 부정적인 의미로 다르게 정의된다. 여기서는 Marx의 의미에 중점을 두어 설명하고자 한다.노동자의 소외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생산물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이는 그의 노동이 객체 즉 외부적 현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객체가 노동자의 외부에서 노동자와는 무관하게, 노동자에게 낯설게 존재하고 노동자와 마주하면서 그 나름의 어떤 독자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Marx에게 노동은 인간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에 부여하는 활동이었다. 그러므로 생산물로서의 대상은 인간성이 객관적으로 표현된 인간적 대상이 되며 그 결과로 인간은 생산물과 내적 연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Marx가 생각했던 노동의 본래적인 모습과는 달리 역전된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게 되면서 소외된 노동 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서 소외 란 생산물로서의 대상이 인간 본질에서 단절되어 그 나름의 어떤 독자적인 힘을 갖는 낯선 존재로 전화되기 때문에 인간은 대상을 상실하고 오히려 그 대상에 예속된다는 의미를 갖는다.3. 내가 이해한 자유위에서 서술한 소외 와 마찬가지로 자유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해석하기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자유의 개념이 매우 넓고 모호한 만큼 판단하는 기준이 있어 그 기준에 따라 자유의 이해방식은 달라지게 된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개념이다.자유에 대한 소극적 이론은 자유를 타인으로부터 개인의 독립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정의하고자 한다. 즉, 소극적인 자유론은 당사자인 개인이 외부로부터 간섭을 받고 있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반면, 적극적 이론은 자유를 집단적인 자율이나 혹은 자치라는 측면에서 규정하고자 시도한다. 즉, 누가 혹은 어떤 사물이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 두 가지를 찰스 테일러의 소극적 자유의 취약점 이라는 논문에 나타난 듯이 약간 다른 방법으로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소극적 자유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느냐 하는 데 역점을 두는 기회에 대한 개념 을 나타내고 있다. 반대로 적극적 자유론은 자유를 실질적으로 행사했느냐 하는 문제에 주목하는 실질적 행사에 관한 개념 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소극적)자유의 개념이 위에서 제시한 개념에 종속되어 버린다고 단언하기보다는 될 수 있다 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기 실현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찰스 테일러는 그의 논문에서 소극적 자유의 취약성을 지적한다. 자유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려는 시도에서 소극적 자유론은 매우 극단적 입장을 취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소극적 자유를 주장한 홉스 의 개념을 옹호하여 최후의 한계선을 견지하려고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자아 실현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자유주의의 가장 이상영역을 포기하는 행위가 될 것이며, 그 논리 자체가 성립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써 홉스의 자유개념으로부터 적극적인 자유의 개념으로, 개인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자유의 개념으로, 목표들이 더욱 더 의미가 있다면 자유가 더욱 더 커지게 되는 자유의 개념으로 이행하고자 한다.Marx의 이론에 등장하는 자유의 개념은 소극적 자유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에 대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자유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들은 모두 이러한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4. 노동과 소외, 자유의 연관성위에 제시한 1, 2, 3 의 내용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설명할 이 레포트의 주제를 내가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전제적인 설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문/어학| 2005.06.26| 6페이지| 1,500원| 조회(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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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상입문] 논어와 선
    생각의 흐름 (목차)1. 논어와 禪 (도언)(1) 이 책에 나타난 논어를 이해할 방향(2) 일반적으로 禪이란 무엇인가?(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살 펴본 선의 의미)2. 이 책에서 새롭게 부여한 논어와 禪에 관한 의미 (요약)3. 이 책과 저자의 입장에 대한 나의 생각 (논평)4. 이 책을 읽고 나서 남는 문제, 더 알고 싶은 사항5. 참고문헌* 레포트는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체적인 목차를 작성할 때 제가 몰랐던 사실과 새롭게 깨달은 사실들을 중점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1. 논어와 禪 (도언)(1) 이 책에 나타난 논어를 이해할 방향논어는 사서 중의 하나로 공자의 어록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공자가 유학의 성인이기 때문에 논어는 유학사상을 대표하는 책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 때문에 그 책이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많이 읽혀진다. 그러나 논어를 읽을 때, 우리가 갖는 생각과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논어를 대할 때, 우선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고리타분함, 딱딱함, 봉건적 등등...... 이러한 논어에 대한 느낌은 우리가 논어에 흥미를 갖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준다. 그러나 만약 논어에 관한 인식을 바꾸면 어떠할까? 논어를 이해하는 생각의 틀 자체를 바꾸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물음처럼 우리가 지향해야 할 태도는 논어가 어렵다 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논어가 지극히 추상적이고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과감히 던져버릴 때, 비로소 논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이다. 또한 논어를 이해할 때, 논어 를 논어 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즉, 논어가 어려운 진리를 담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론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일상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논어와 선의 관계를 기본 주제로 삼고 있지만 이러한 우리의 논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관점 - 지극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생각 - 으로 논어를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돕는 역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유학과 같은 사상을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책 속에서 세 성인의 씨름 이란 것을 살펴본다면 몇 가지 부수적인 사실들을 알 수 있는데 우선 유교와 노장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한가지의 표리라고 할 수 있다. 유교에서도 노장사상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가가 대표하는 선사상(불교의 사상)은 유교적인 면과 노장적인 면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승부에서는 석가는 승부라는 것을 문제삼지 않고 그저 순순히 결과가 나오는 대로만 따를 뿐이다. 그 이유로 노자는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석가에게 우승을 준다. 따라서 흔히들 유불교를 성격이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구분하지만 이 세 가지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논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서양풍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개념화하지 않는다는 말은 안다거나 모른다거나 하는 그러한 차원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논어의 공자의 말씀에서 살펴보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줄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안다는 것이다. 이라고 나와있다. 즉, 알 때는 안다고 하는 작용을 의식하지 않고 모를 때는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 또는 앎에 있어서 앎을 탈락하고 모름에 있어서 모름을 탈락한다는 것이다. 앎이라는 것을 선의 방식으로 본다면 도는 알고 모른다고 하는 단순한 지식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지라고 말하는 것은 망상이고 부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무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진실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도에 이른다면 허공과 같이 맑게 트인 것이다. 즉, 단순히 알고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모르는 것에는 상관하지 않는 그 자체인 것이다. 모른다 는 불식을 살펴본다면, 책 속에서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선의 어록에적인 인도불교가 중국에서는 선이라는 모습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선은 이처럼 유교가 인도불교와 접촉함으로써 생긴 것이다.공자의 계통을 살펴본다면 그의 사상의 배경에는 유목민의 천숭배 사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천이라는 것도 농경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유(儒)는 남자 무당이 비를 비는 것처럼 가장 중대한 일인 삶의 지혜를 준다는 가르침이다. 공자의 배경을 살펴볼 때, 무 계통의 사람, 하급무사의 자식, 농장 밑바닥 노역꾼 자식 이렇게 3가지 쯤으로 살펴보는 의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공자가 어떤 계층 출신인가 하는 것과는 별도로 가정의 교양, 정신적 분위기 같은 것이 제의나 전통을 중시했다는 것은 확신지을 수 있다. 공자는 당시의 장례중이어서 장례를 치르고 의식을 집행하였는데 비는 행위나 장례식 같은 제의도 예악이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모두 공통점이 있다. 유교의 본류를 살펴보자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예악으로 통일시키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도 예악으로 하는 것이 유교의 본류이다. 예악은 하늘의 뜻을 본받고 선왕의 예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선왕은 하늘의 뜻을 전하기 때문에 천자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천이란 무엇일까?천(天)은 인간보다 하나 위이며 인간 위에 있으므로 인간에 즉하여 있고 언제나 접할 수 있다.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이다. 거기에는 천과 인간과 자연의 세가지가 연속해 있다고 하는 연속적 세계관이 표현되어 있다. 네모토쓰메이 선생은 얻어들을 수가 없다 는 것을 전혀 들을 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뜻을 두고 마음을 오로지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공자의 성과 천도에 관한 말은 단순한 지해분별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사십이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다 라는 말이 있듯이, 공자는 마흔 살에는 단순한 지의 입장에서 체득이라는 입장으로 크게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흔부터 진정으로 미혹라는 말을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 중국이란 나라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밑바닥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유교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표현은 유교와 대립된다고 하지만 실은 유교의 연장이다. 미추나 선악이라고 하는 상대적인 차별은 인간 이외의 혹은 인간을 초월한 무한한 자연의 입장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노장사상에 대해서 좀 살펴보자면 차별을 세운 것은 인간의 판단으로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인위를 없애는 것이 무위인데, 그러한 무위의 입장으로부터 본 있는 그대로의 세계 그것이 무위자연이다. 신선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 신선술이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이유는 죽음에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인생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신선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인간세계에서 살고 있는 신선이 가장 고급이다. 죽음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른바 하늘과 땅이 단절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과 지, 천과 인간을 연속한 자연으로 본다는 사상이 유교뿐만이 아니라 노장이나 도교에 공통된 중국인 고유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다. 이처럼 유교와 노장이 하나의 양면이 되고 그 양면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유교도 노장도 아닌 입장, 즉 입장 없는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입장 없는 입장이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공 이란 텅 비었다는 것이 아니라 텅 비게 될 만큼 가득 차게 된다고 하는 그러한 텅 빔이다. 공은 탈락하거나 혹은 사물이 되어서 보고 사물이 되어서 듣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선이기 때문에 유교도 노장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극기복례라고 하는 것도 유위, 무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극기함으로써 자기를 없애고 그로부터 예로 나오는 것이므로 예라고 하는 유위의 기초에 무위라는 것이 있으며, 더욱이 그것을 공으로 씻어내면 무아가 되는 것이다.노장사상 자체에 대해 분석해보면 무위는 인위나 작위를 없앤다는 뜻이고, 무위자연은 인위를 버리고 자연을 본받는다는 양지 라고 부른다. 만물일체의 사상은 노장, 송학, 양명학에 있어서 각각 이야기되지만 그들 사이에는 똑같이 만물일체라고 해도 다른 점이 있다. 노장(장자)의 경우에는 만물일체가 아니고 만물제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만물을 제동하는 것은 무이지만 이 무의 작용이 무위자연이다. 무는 단순한 허무가 아니고 무엇이라고 한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절대유라고도 한다. 논어의 인에서도 도를 확실히 정의하지 않거나 혹은 정의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이 송학에 와서는 만물일체의 인이라고 하듯이 형이상학적으로 명확해지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그 형이상학에 근거하여 새롭게 인간 윤리의 기초를 마련하고있는 측면도 있다. 노장은 만물일체가 무위나 무위자연과 한가지로 되어서 그로부터 인간을 명상이나 체념으로 물러나게 하는 경향이 나온다고 흔히 지적되고 있다. 이에 반해 신유학은 만물일체의 인으로서 그로부터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이나 행동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신유학에서는 유무를 막론하고 엄격한 점이 나타난다. 주자학에 넘어가기 전에 정이천에 대해서 보자면 정이천은 성즉리(性卽理라)는 말을 한다. 성은 인간의 천성이나 본성, 리는 천리라고 하는 것이다. 천리가 인간의 본성 가운데에 작용하고 있는 그것이 인간의 이성이다.이기이원론이란 것은 주자에 이르러 완성된다. 인간의 본성은 리이지만, 그것이 작용하는 데는 신체라고 하는 기를 통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기의 음양이나 청탁에 응하여 그 작용 방향이 달라진다. 거기에서 애증이나 희로의 감정이 생기고 선악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인 리가 가능한 한 순수하게 발로하는 것이 선이다. 여기에는 수양이 요구되며 정이천은 이를 위해 정좌를 권한다. 주일무적 을 이천은 경(敬) 이라든지 지경(持敬)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격물치지(格物致知) 라고 말하고 있다. 장횡거는 유물론의 개조라고 일컬어진다. 만물의 근원을 기라고 하는 물질로 생각하는데 이기오행(二氣五行)이라고 말하 한다.
    인문/어학| 2005.06.26| 18페이지| 1,500원| 조회(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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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상입문] 동양철학, 서양철학과 어떻게 다른가 평가A+최고예요
    생각의 흐름1. 동양 철학, 서양 철학에 대한 일반적 인식 (도언)2. 동양 철학의 서양 철학과의 차이점과 앞으로 동양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책의 1부와 4부 요약)3.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 (논평)1. 동양 철학, 서양 철학에 대한 일반적 인식 (도언)일반적으로 동양, 서양이라고 하면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기 쉽다. 우리가 동양인인만큼, 우리는 동양을 평가할 때 정신적인 문화 라고 표현하고, 서양을 물질적인 문화 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만약 서양인들이 이처럼 평가를 내릴 입장이 된다면, 그들은 반대로 그들이 정신적인 문화 라고 말하고, 동양을 물질적인 문화 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즉, 동서양 모두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왜곡된 인식에 젖어, 철학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관점을 적용한다. 즉, 동서 철학의 차이를 본질적 원인을 통해 탐구해보지 않고, 단순한 자기중심적 논리에 젖어 잘못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동서양 철학의 이해를 위해서는 동서양의 철학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역사적 연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단순한 철학의 이해에 그치지 말고, 우리의 동양 철학이 현대 사회 내에서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성찰도 해야할 것이다.2. 동양 철학의 서양 철학과의 차이점과 앞으로 동양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책의 1부와 4부 요약)(1) 동양 철학, 서양 철학과 어떻게 다른가(1부)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기준은 자연에 대한 관점이다. 동양철학은 자연에 대한 순응주의적 태도 를 갖고 있는 반면, 서양철학은 자연에 도전하는 프로메테우스적 태도 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세계 역사에서 전개된 모습을 보면 불간섭주의적 태도 에서 간섭주의적 태도 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인간이란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을 파괴할 때 인간 스스로도 죽게 된다 는 자기성찰의 의견이 제기되었고 그 이론의 도 가 실천의 도 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서양의 근대 철학자들이 중국을 바라볼 때, 미개한 문화로 판단하기 일쑤였고,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가톨릭과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나마 중국에 관한 연구에 진전을 가져오기도 했으나, 중국의 고유한 사상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삽입시키는 한계가 있었다.반면 동양의 중국학자들은 이들과는 다른 매우 다양한 시각으로 중국문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동양 중심적 사고, 논리적인 근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이들의 시각 또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위 동서양 학자들의 견해에 결함이 있는 것은 이질성의 역사적 원인 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소한 문화 구조를 서로 비교할 때에는, 그 이질성을 분명하게 부각시켜서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역사적 원인 을 설명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이 다르면 그에 따른 철학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국과 그리스의 철학이 다른 것도 서로 다른 정치적 조건 속에 있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철학 방법이 다른 특성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인간은 일반적으로 유사한 인식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역사적 발전 방향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자연 조건에 의해 근본적으로 다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즉, 서양과 동양의 철학이 다른 것은 자연 조건의 상이성에 의해 달라진 역사적 전개 속에서 철학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철학을 연구할 때, 논리적 방법이 발전하였는데, 그리스에서는 문제의 원인에 관한 연구, 중국에서는 역사적 실증 사례를 통한 철학이 행해졌다. 위처럼 균등한 속도로 상보해온 동서양의 위치가 급격히 달라진 이유를 들자면, 서양은 중국의 역사 비판 이론을 통해 급속히 현대 국가로 발전한 반면에 중국은 서구의 장점을 받아들여 그들의 변혁에 적용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까지 위의 내용을 언급한 것은 서양은 물질문명, 동양은 정신문화 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고 스스로 반성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즉, 편견이나 선입관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근원 측면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양 철학을 좀더 발전시키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그것은 바로 과학화 이다. 철학사 연구 중 가장 중요한 점은 정치, 사회의 발전적 관점과 변증법적 방법을 철저히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화가 진행될 때, 동서양의 철학의 상이성도 극복할 수 있고 보다 나은 동양 철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2) 동양 철학의 현대적 수용(4부)철학이란, 그 당시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 동양 철학을 급변한 현대 사회에서 사용하고자 하면 빚어지는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동양 철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유교 사상을 통해 현대 사회와 전통 철학의 관계, 올바른 조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유교 사상은 옛날에는 가장 사회에 적합한 이론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민주주의 사상에 맞지 않거나 강력한 인간 중심·현세 중심의 가치관, 혹은 현재의 경제 사정과 맞지 않는 전제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그 사상이 현재 쓰일 수 있느냐의 문제에 의문을 제기한다.유학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침잠 에 의한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사유에서 광희 에 의한 전투적이고 능동적인 사유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국면을 맞아 현대에서의 유교의 이용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아야 하는데, 그 과제의 실천 방법은 시중지도 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실 사회에 맞는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과 같은 이치로 윤리는 생활(경제)양식의 변화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는 저자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겠다.이러한 생활 양식의 변화에 따른 교육 철학의 변화의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사회주의화에 따른 교육철학의 변화이다. 중국에서는 1960년대에 교육혁명 을 행하는데 그 목적은 기존의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는 전통교육을 없애고 사회주의 사상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을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교육 제도가 변화하고 교육 본질의 혁명 이 실현되었다. 이 변화의 주도자는 모택동이었는데, 그의 사상은 하나의 주의(유교) 를 완전히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회주의는 유학사상과는 상반되는 교육 제도를 펼쳤고, 이것이 동양철학이 중국에서 수용되는 현대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문/어학| 2005.06.26| 4페이지| 2,000원| 조회(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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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 공자, 인간과 신화
    생각의 흐름1. 역사적 평가에서 공자는 얼마나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도언)2. 이 책에서 서술되는 공자 (내용요약)3. 저자의 관점에 관한 나의 의견 (논평)1. 역사적 평가에서 공자는 얼마나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도언)우리 한국사회는 유교사회이다. 그런만큼 유학사상을 대표하는 공자는 우리 한국인들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자에 대해 얼마나 올바로 알고 있는가를 따져본다면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대표하는 유학에 대해, 공자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공자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추구한 개혁가라고 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세습적 귀족정치를 추구한 반동가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성장배경과 관련하여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귀한 가문의 출신이라는 평가도 존재하고 있고, 정치에 거의 참여를 못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대의 위대한 정치가였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는 그에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공자라는 인물을 선입관이나 편견의 개입없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통해 유학이라는 사상적인 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이 저술목적이자 특징이다.2. 이 책에서 서술되는 공자 (내용요약)공자는 기원전 약 500년경에 중국의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일부자료에서 그가 매우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나 고생없이 성장한 것처럼 묘사가 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귀족집안이긴 했으나 서자로서 그리 생각처럼 편안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살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로서, 끊임없는 전쟁과 무리한 과세로 서민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었고, 공자는 이러한 백성들을 위해 세습 귀족을 타파하여 유능하고 백성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이를 빈천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관리로 임명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정치로 실현시켜줄 군주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결국엔 찾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청년들을 교육하는데 여생을 보낸다. 그의 사상은 제자들을 통해 퍼져나갔고, 그 사상은 인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인 이념으로서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전제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적 세력과 공자의 추종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표현된다. 이것이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제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노나라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태어났는데 그 시기는 제후들의 권력이 막대해진 시기였고 그러한 영향력 속에서 그들의 자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서자의 수를 국가에서는 감당해내기 어려웠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귀족의 피를 받되 서민 수준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서자들은 일반민중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였다. 공자도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줄 수 있는 단일된 국가를 지향했고, 신분 귀족제의 폐지와 실력과 인격에 기초한 관리 선발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자 또한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인은 위대한 인간 이기 이전에 보편적인 인간 인 것이다. 공자를 이해하려면 그가 일생동안 펼쳤던 교육사업과 더불어 그의 제자들을 이해하는 절차가 꼭 필요한데 그의 제자들의 성향은 공자의 사상실현을 위한 군주 찾는 여행 을 기준으로 다르게 파악된다. 전기의 제자들은 관직을 얻어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고, 후기의 제자들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교육과 의례 등의 나름대로의 학문적 세계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공자의 여행 전, 후기의 가치관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공자는 그 당시의 환경과는 달리 신분이나 집안배경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서민의 자녀들도 제자로 받아들여 교육을 제공하였으며, 그가 가르치고자 한 것은 위대한 정치가가 되는 것이 아닌,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편하게 대해주는 선생님이었지만, 반면 그의 학생들에 대한 기대를 토대로 엄격한 지도를 하였다.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그는 예(禮)와 음악을 중시하였지만, 무엇보다 중시한 것은 성실이었으며 성실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많은 양의 독서를 하였으나 직접 저술한 책이 있는지의 여부는 밝힐 수 없다. 사회의 혼란 속에서 공자는 사회규범의 근본사상으로 천(天)을 택한다. 그의 이러한 개념은 비윤리적인 인격의 섭리가 담겨 있다. 또한 철인으로서 운명론에 입각한 사고도 보인다. 공자는 종교적 신앙을 갖고 있었지만 그곳에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붓지는 않았다. 종교는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부분을 다루는 분야인 반면, 공자는 인간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의 문제를 고려한 것이다. 공자는 덕과 예를 중시했기에 그의 이상향은 백성을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세상이었다. 사해동포로 대표되는 이 생각은 민주주의적 사상과도 매우 관련되는 것이었다. 공자는 백성들을 매우 신뢰했고, 그 때문에 교육의 기회균등을 통해 백성에서도 군주가 나올 수 있기를 바랐다. 즉, 백성 전체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누구에게나 정부의 운영에 참여할 기회를 주되, 능력이 입증된 사람에게만 자격을 줄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바란 것은 세습적 귀족정치가 아닌, 덕망과 능력이 입증된 귀족정치였다. 그러나 그는 만용을 즐기는 귀족을 경멸했고, 유(儒)라는 집단에 희망을 걸었다. 유교는 기원전 2세기경, 각국의 군주들이 통일 국가를 위한 투쟁에 절치부심할 때, 고도의 정치술을 제공하는 이유로 크게 대우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교의 본질은 퇴색되기 시작하였다. 일단 공자의 가르침보다 돈에 관심을 갖는 속유(俗儒)들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공자의 사상 중 약간의 실책들이 점점 더 왜곡된 방향으로 벗어나 본질적인 유교 사상을 크게 위협하였다. 그 실책은 두 가지 방향으로 볼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제자를 받음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이었고, 또다른 한 가지는 교육을 할 때 지나친 형식과 예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또한 공자는 사유에 대한 원칙은 강조하였으나 진리의 고정된 척도는 밝히지 않고 개개인에게 그 진리를 찾을 권리와 책임을 맡겼다. 이러한 교육방침으로 많은 유가들은 자신의 절대적인 지적 권위를 찾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공자상이 왜곡되는 동안에, 많은 유가들은 여러 탄압과 회유를 가하는 황제들을 거쳤고, 그러한 가운데 유교의 본질적인 진리는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유교의 기본원리는 서양에 전해져 서양의 계몽주의의 근본이 되었고, 그 외에도 중상주의 사상,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 미국의 초기 교육제도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중화민국과는 유학사상은 부정적인 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손문과 같은 이는 유학사상을 국가의 기본 사상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하였다. 이처럼 유학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며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의 주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학사상을 대표하는 공자가 위대한 사상가이자 성인이기 이전에 백성들의 근본적인 안정과 행복을 꿈꾸었던 인간 이었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문/어학| 2005.06.26| 4페이지| 1,500원| 조회(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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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개설] 중세유럽에서의 봉건제와 기독교의 역할 평가A좋아요
    생각의 흐름(목차)1. 본격적인 서술을 하기에 앞서(이 주제를 선택하게 된 계기)2. 중세유럽의 봉건제도와 그 역할3. 중세유럽의 기독교와 그 역할4. 역사적으로 중세유럽의 봉건제도와 기독교가 갖는 의미6. 참고문헌1. 본격적인 서술을 하기에 앞서(이 주제를 선택하게 된 계기)중고등학교 시절 서양사에 대해 배우면 제일 비중있게 배우는 부분이 중세유럽이었다. 그리고 중세유럽에 대해 수업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배우는 부분이 봉건제도와 기독교였다. 역사선생님은 늘 봉건제와 기독교를 강조하셨고, 그 때마다 나는 그것이 왜 그렇고,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모른채, 단지 효율적인 입시 대처에 젖어 노트에 중세유럽 - 봉건제도, 기독교 라고 기록하곤 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 서양사개설 수업 시간에 서평을 쓰기 위해 거울에 비친 유럽 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이 책에 드러난 중세유럽의 여러 모습 중에 기독교와 봉건제도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서 내가 중고등학교 때 얼마나 편협한 공부를 하였나를 알게 되었다. 단순히 그 두 가지가 중세유럽인들에게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그것이 어떻게 그러한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그것의 가려진 부정적인 측면은 없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새로운 내용들을 접하면서 흥미를 느꼈고 중고등학교 때 알지 못했던 그 사실들을 좀더 자세히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번 레포트 주제를 중세유럽에서의 봉건제와 기독교의 역할 이라고 정하게 되었다.2. 중세유럽의 봉건제도와 그 역할유럽의 봉건제도 형성 배경을 살펴보면, 내적으로의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외적으로 노르만족과 마자르족, 이슬람의 침입으로 혼란한 무정부 상태였고,지방 내지 작은 영역 단위의 방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사회 경제적으로 이슬람의 팽창에 따른 유럽의 지중해 상실은 사회의 전반적인 농촌화와 자연경제로의 후퇴 즉, 상공업의 쇠퇴, 도시의 쇠퇴를 가져왔고 토지가 유일한 재산이 되었다. 그 때문에 유럽사회에서는 토지가 생계에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이는 그들 삶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봉건제도라는 것은 이러한 기반을 통해 태어날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 즉, 토지가 유럽인들의 삶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면 봉건제도라는 것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봉건제도는 지배적 성격을 갖게 된다. 그 하나는 토지에 대한 지배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지배이다. 토지에 대한 지배와 인간에 대한 지배는 상호 중첩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영주없이 토지없다 는 격언에서 보이듯 봉건제도 편성원리의 기본은 인신적 의존, 즉 인간에 대한 통제에 있었다. 봉건제도를 간단히 정의내리자면 주종제도와 장원제도로 구성된 중세유럽의 정치·경제·사회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주종제도와 장원제도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우선, 주종제도는 직업적 전사층(기사)들로 형성된 지배계급 상호간의 쌍무관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장원제도는 영주와 피지배계급인 농민사이에 형성된 지배, 예속관계이다. 즉 전자는 영주와 지배계급 사이의 관계, 후자는 영주와 피지배계급 사이의 관계라고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종제도와 장원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아야 총괄적으로 봉건제도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주종제도는 주군과 봉신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데 주군은 신하(봉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그에게 봉토를 수여하고 이를 통해 쌍무적 계약 관계를 성립시킨다. 주군이 이렇듯 봉신을 보호하는 것에 상응하여 봉신은 주군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군사적 봉사와 조력을 제공한다. 즉, 이러한 제도를 통해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계서 조직이 형성된다. 주종제도는 로마의 은대지 제도와 게르만족의 종사 제도에서 기원하며불입권 - 주군이 봉토 내에서, 국왕으로부터 재판·조세에 관한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 - 을 갖는다. 이러한 성격의 권리를 갖는 주종제도는 지방분권체제성장의 기초를 이룬다. 장원제도에서의 장원은 제후와 기사가 영주로서 농민을 지배하는 단위이며 농촌사회의 경제적 기본단위로서 자급자족적 경제체제를 뜻한다. 이 제도에 소속된 농민의 지위는 로마 말기의 콜로누수 후손들이거나 몰락한 게르만의 자유민들로서 농경지·가옥 등 약간의 재산 소유하고 있었으며 가족권 향유했는데 고대의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여러 가지 세금을 부담해야 했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이러한 경제내적 강제 외에도 영주는 행정, 경찰, 재판권 등을 행사하여 경제외적 강제를 가했다. 봉건제란 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근본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정치적인 것으로서 주권의 해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토적인 것으로서 모든 토지와 이러한 토지를 통해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까지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족속의 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측면부터 설명하자면, 기사는 군사적 능력에 의해 그의 지위가 보장된다. 그러나 성채의 급증으로 그들의 군사적 중요성이 크게 감소되었고 개인화기의 보급은 기사들을 거의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기사들은 자신의 몰락이 시작되자 그들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군사적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기능을 내세웠다. 그리하여 기사도 신화라는 것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귀족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를 뒤섞어 놓은 것이었다. 그후 유럽사회는 기사도 신화가 소수 상층 계급이 어떻게 대중 을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그것을 고수해 나간다. 두 번째 것을 설명해보자면 오래전에는 자유 사유지 형태로 토지를 보유한 자유 농민들이 존재했다. 그 중 한 가문이 부를 축적하게 되고 이 가문은 수도원을 세운 다음 가문의 일부 권리를 양도하며, 이 수도원은 다시 기증이나 영주들의 자의적 과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농민들로부터의 매입을 통해 점차 토지 재산을 키워나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형태의 예속을 만들어낸 사적 영주 관계 형태가 생겨나고 이와 함께 거대 권력에서 멀리 떨어진 한 시골에서도 농민의 자유가 사라지고 현실은 힘있고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나가게 되었다.3. 중세유럽의 기독교와 그 역할로마 교회가 만들어지고 발전하던 중 동서교회로 나뉘어지게 된다.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교황권은 강화되었고 베네틱트 교단이 북유럽과 영국에 전파되면서 청빈, 정결, 복종의 계율, 기도 노동을 강조하였다. 또한 10C초에 있었던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처럼 여러 수도원의 개혁들이 행해졌다. 교황권이 강화되며 교황과 황제의 대립이 일어난다. 이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다. 이는 주교 서임권 문제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와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팽팽한 대립 후 13C경에는 교황권의 전성기가 이루어진다. 이 때는 교황인 이노센트 3세가 정치에 개입하기에 이른다. 기독교가 정치에도 영향력을 끼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닌, 당시 중세유럽 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위치에 오기까지 기독교는길고도 복잡한 발전 과정을 거친다. 먼저, 기독교는 기원후 초기 시대의 팔레스타인을 뒤흔든 종교 쇄신운동들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당시의 신전 종교지도자들이나 제국의 행정가들의 집권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것은 본질적으로 도시 에 반대한 농촌의 운동이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기독교는 아람어를 포기하고 그리스어로 표현되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으로부터 헬레니즘 도시국가들로 확산된다. 이 때 기독교의 추종자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서 바울로의 추종자들과 결합한 유복한 시민들로 바뀌고 여자들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독교 발전의 초기 단계의 복합적 성격은 신자들의 출신이 아주 다양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 시기에는 이교도들도 있었으며 매우 다양한 목소리와 매우 폭넓은 관점들을 포함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여러 파 들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제국과 연계시키고 공인된 진리들 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중앙집권적 권위를 소유한 교회를 만들어낼 때까지는 큰 갈등없이 공존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제국의 정치 권력과의 결탁의 역사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기독교는 세속 정부와 함께하는 교회 정부 가 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기독교의 다원적이고 공동체적 성격은 사라지게 되었다. 기독교 신앙 이 기독교 로 바뀌어 공인된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을 안에 포괄하고 모든 행동을 통제하려고 하는 일원적이고 계서화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간다. 기독교는 대규모 종교 중에서 계서적으로 조직된 사제단의 통제에 의해 구속되는 유일한 종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가 기독교의 부정적이고도 감춰진 측면이 제일 두드러지는 시기인데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공인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는 산토 마자리노의 의견에 따르면 이것은 황제의 혁명적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한 본질적 부분으로서 국가에 의해 공인된 유일하고 보편적인 하나의 기독교가 만들어진 것이며 이러한 기독교 공동체들은 오히려 그리스 로마 세계의 도시민의 대표적 집단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유복한 계층 출신의 지도자들을 갖고 있었다.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인정되어 새로운 상황이 나타나게 되면서 기독교의 다양한 경향들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초기 기독교의 모든 특징들을 하나로 묶어 그 외 다른 경향은 개인적인 것이라 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만들고 이제 추방되어야 할 것으로서 새로 의미가 주어진 이단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특징은 더욱 두드러져 강제로 종교의 통일을 확립하려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수많은 박해와 군사작전이 행해졌다. 이러한 콘스탄티누스의 혁명(기독교 공인) 은 교리 문제에서 절충적이고 관용적이던 구체제의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고 이제는 의식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동과 신조의 영역에까지 종교적 중앙집권화가 확대되는 길이 열리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기독교는 위협받고 있는 사회 질서를 고수하기 위해 제국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인문/어학| 2005.06.26| 7페이지| 2,000원| 조회(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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