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패 그 원인1. 체제 전환기전 현상{) 국유기업의 딜레마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가 시장경제 체제로 변하면서 가장 큰 곤란을 겪고 있는 곳이 국유기업 이다. 이윤확대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던 국유기업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변할 리 없다. 게다가 사기업과의 현격한 임금 차이는 기업 간부들을 뇌물 유혹으로 빠져들게 하는 첩경이 되고 있 다.정부는 최근 급증하는 국유기업 간부들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정치·직업도덕 교육을 하면서 부패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업 내 감독체계를 강화해 부정행각이 발 각될 경우 파면·탄핵 등 극단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각 부서 간의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당내 감독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국정부 공직자들은 정부에서 주는 대로 받아먹다가 급진적인 개혁개방 정책으로 이제 붙어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야하는 상황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심리적인 공황과 더부러서 경제적인 개혁으로 인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여건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1978년 등소평의 경제적 개혁과 개방으로 정부에서 주는 일만 하고 살아왔던 중국 공직자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습니다.중국정부의 전 국가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었고, 남은 공직자들 또한 갈 길이 막막했지 때문에 손쉽게 돈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2. 권력형 부패{) 중국에선 국유기업 간부로 재직할 때 기업경영의 전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경영실적이나 이윤 확대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아 퇴직을 앞둔 기업간부들의 공금횡령 사건이 비일비 재하다.민족음료 기업으로 중국 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지엔리바오 이사장 리징웨이, 선전시 전력공사 이사장 라오더롱, 화천기업의 양롱 등은 과거 업적으로 보면 국유자산을 증대시킨 일등공신들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들이 막판에 직위를 이용해 내부자금에 손대면서 비극적 운 명을 맞이하고 권력으로 이어지는 길을 봉쇄당했다. 중국 언론은 퇴직을 앞둔 기업간부들의 잇단 부패사건을 두고 ‘59살 현상’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 현상을 두고 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중심 저우치런 교수는 “중국의 국유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값싼 기업가를 두고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유기업 간부들의 낮은 임금과 기업 내 분배제도, 감독체계 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중국사회의 전반적인 것들이 공유제에서 사유제로 탈바꿈하여 많은 개인들이 이익을 챙기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는 더욱 쉽게 어두운 돈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더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더 쉽게 부패에 빠져갔으며 사람들 또한 높은 위치에 있는 권력자에게 돈을 의면 있을수록 많이 가져다가 바치는 형태입니다.더욱이 국유기업들의 고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내부자금을 환금하는 등의 일을 벌임으로서 중국언론기관에서는 ‘59살 신현상’이라는 조어가 생길 정도입니다. 민족음료 기업으로 중국 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지엔리바오 이사장 리징웨이, 선전시 전력공사 이사장 라오더롱, 화천기업의 양롱 등은 과거 업적으로 보면 국유자산을 증대시킨 일등공신들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들이 막판에 직위를 이용해 내부자금에 손대면서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고 권력으로 이어지는 길을 봉쇄 당했다. 중국 언론은 퇴직을 앞둔 기업간부들의 잇단 부패사건을 두고 ‘59살 현상’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 현상을 두고 베이징 대 중국경제연구중심 저우치런 교수는 “중국의 국유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값싼 기업가를 두고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유기업 간부들의 낮은 임금과 기업 내 분배제도, 감독체계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3.꽉시중국인들만의 인간관계입니다. 꽉시는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꽉시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기본이고 문제를 풀어주는 만능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은 친구를 중시 여깁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그 사람의 친구 혹은 인맥이 얼마나 많은가가 중요합니다.중국인의 이러한 인맥에 대한 중시하는 문화가 중국이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있는 것 같습니다.4. 젊은 층의 호화로운 생활{) 39살 현상’이나 ‘26살 현상’은 화려한 생활에 대한 유혹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일반적 시 각이다. 해외 외유나 유흥업소 출입, 과소비 등은 이미 국유기업 간부들의 일반적 행태가 된 지 오래다. 부동산을 사들이고 첩을 두고 자녀를 귀족학교에 보내거나 해외유학 시키는 등의 사치생활을 누리기 위해 부정을 저지른다는 분석이다.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검찰당국이 최근 3년간 직무범죄 상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고학력 자, 호황업종, 거액사건’이 가장 많은 것으로 밝혀져 일명 ‘삼다 현상’으로 일컬어지고 있 다. 공식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하얼빈시에서 직무유기죄를 저지른 79명의 공무원 중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이 2000년 59%, 2001년 70%, 2002년에는 77%를 차지했다. 연령층도 49살 이하의 청년간부가 68명으로 전체의 86%를 차지해 ‘59살 현상’은 빛을 바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호황업종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 범죄를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드러 났다. 금융·전력·물자·사법·토지관리·도로건설 분야의 공무원이 61명으로 전체의 71%다. 갈수록 뇌물 규모도 커진다. 지난해 하얼빈시가 조사한 직무범죄 27건 가운데 15만위안 이상 의 거액사건이 14건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50만위안 이상의 거액사건도 9건으로 전체 의 33%를 차지했다.개혁개방이후 일부 소수의 기업가, 가본 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고급 일류 식당에서 먹는 한끼는 서민 800명이 한끼를 먹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또한 이들은 가르치는 자녀 교육비 및 생활비 또한 일반 서민들은 상상 할수 조차없는 엄청난 금액입니다.이러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젊은 계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패에 빠져들고있습니다. 59살 현상은 퇴직을 앞둔 간부들이 퇴직 이후의 생활을 위한 적립금 마련 차원에서 저지른 범죄로 분석된다. 정치생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막판에 한껀 건져보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39살 현상’이나 ‘26살 현상’은 화려한 생활에 대한 유혹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해외 외유나 유흥업소 출입, 과소비 등은 이미 국유기업 간부들의 일반적 형태가 된 지 오래다. 부동산을 사들이고 첩을 두고 자녀를 귀족학교에 보내거나 해외유학 시키는 등의 사치생활을 누리기 위해 부정을 저지른다는 분석이다.유가 재평가중국의 유가사상은 군주론 이고 군자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군주든 관리든 최선의 통치 방법은 몸소 실천해서 본을 보이는 라는 것입니다. 제도보다 사람교육 중시하고 법이나 권력의 행사보다는 도덕적 감동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정통적인 사상입니다.강택민은 간부들에게 전문성보다는 덕을 중시했습니다. 간부들이 먼저 덕을 쌓고 남에서 배품으로써 일반 국민을 이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도덕성이 마비된 관료들의 부패는 법가적인 방법인 범죄와의 전쟁이나 반부패 청렴 운동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REPORT목차들어가는 말이라크전에 나타는 쿠르드족쿠르드족은 왜 분노하는가?쿠르드족의 독립의 꿈쿠르드족 이번에는 독립할수있을까?나가는 말들어가는 말모두들 이라크전에 대해서 알고 계실겁니다. 요즘에는 TV만 틀면 이라크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여러분도 봤다시피 이라크전을 보면 이라크전에는 연합군이 어디를 공격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서 간간히 쿠르드 민병대 혹은 쿠르드군이 어디를 공격하고 있다고 아나운서가 해설하는 것 간간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쿠르드족이 누구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 알지못합니다.이러한 쿠르드족은 누구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쿠르드족은 누구인가?쿠르드족은 사담 후세인의 걸프전때 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타서 관심을 끌었지만 아직도 그들의 존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쿠르드족은 중동과 구소련지역에서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5-6개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민족입니다. 현재 이들의 총인구는 약 2,500만에서 3,000만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서도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입니다.이들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전체적으로 쿠르디스탄이라고 부르며 이곳을 통합해서 독립국가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쿠르디스탄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5-6개의 나라에 흡수되어 있는 것이지요. 주로 사담 후세인과 관련해 매스컴을 타는 바람에 쿠르드족은 이라크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터키와 이란, 시리아 등에서도 자치 내지 독립운동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터키에 사는 쿠르드인들이 거의 내전에 가까울 정도의 무장 독립운동을 벌여오고 있지요.실제로 터키에는 약 1,500만명의 쿠르드인이 살고 있으며, 터키 전체 인구의 1/4 정도가 쿠르드족입니다. 그밖에도 이란에 700만명, 이라크에 500만명, 시리아에 150-200만명, 구소련 지역에 50-100만명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이들은 아주 오랜 역2세기에 십자군을 몰아낸 살라딘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 사람을 잘 모르지만 이집트의 지배자로서 십자군의 침략으로부터 아랍세계를 지켜낸 살라딘은 중동 각국에서 전설적인 영웅으로 추앙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바로 쿠르드족 출신이었지요. 오늘날 이 쿠르드족은 자신들이 사는 나라에서 심한 탄압을 받으며 자치 운동 또는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4천년이 넘는 동안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자신들의 정부를 갖지 못해 불행을 겪고 있는 이 민족입니다.쿠르드족, 그들은 왜 분노하는가1999년 2월 16일. 한 민족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나라도 없는 민족 쿠르드족이 그 주인공이다. 쿠르드족은 이 날 런던과 빈, 헤이그 등지에서 현지 그리스 공관을 점 거,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극을 벌였다. 특히 빈에서는 35 명의 쿠르드족이 그리스 대사 부부를 포함해 5명의 공관 직원들을 인 질로 붙잡았다.헤이그에서도 이들은 경찰 저지망을 뚫고 그리스 대사 관저에 난입, 대사 부인과 아들을 인질로 잡았다. 이들의 시위는 이 날로 끝나지 않았으며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 4명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17일 오후에는 베를린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관을 점거하려다 이스라엘 경비병들의 발포로 3 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했다. 이들의 시위는 자신들의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터키의 비밀작 전으로 케냐에서 체포돼 터키로 압송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작됐 다. 오잘란의 체포 과정에 그리스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관련 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들은 쿠르드족의 공격 목표가 됐다.이들의 시위는 쿠르드족과 관련 있는 나라들에 한바탕 소용돌이를 불 러일으켰다. 그리스에서는 테오도로스 팡갈로스 외무장관과 알레코스 파파도풀로스 내무장관, 필리포스 페트살니코스 사회질서장관이 코스 타스 시미티스 총리의 요청에 따라 오잘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2백10만 명의 터키인이 거주하며 이 가운데 50만 명이 쿠르드족인 독 일은 독일 전체가 제 것이다.약 2천5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쿠르드족은 고대 페르시아의 메디아인들 이 조상이다. 이들은 한때 황제와 국왕에 예속된 군주가 치하는 공 국(公國)들을 만들어 살기도 했으나 19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과 페르 시아의 침략으로 다시 흩어졌다. 현재 터키에 절반인 1천2백만 명 정 도가 살고 있으며 이라크에 4백만 명, 이란에 5백50만 명, 시리아에 1 백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독일과 옛 소련 카프카스 지방에도 50 만 명씩이 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1차대전이 끝나고 오스만제국이 무너지면서 독립국가를 건 설할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연합국측에 독립국가 건설을 강력히 요구 했으며 오스만제국 분할을 위한 1920년의 세브르조약은 이들의 독립을 명시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의 뒤를 이은 터키 정부는 세브르조약의 비준을 거 부했다. 3년 뒤 로잔조약이 체결되면서 쿠르드 독립국가 조항은 삭제 됐다. 영국의 음흉한 속셈 때문이다. 쿠르드족의 거주 지역 중에는 석유가 많이 나는 이라크 북부의 모술 지역이 있다. 당시 이라크를 위임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이 지역을 탐 냈다. 풍부한 지하자원 때문에 쿠르드족은 결정적인 독립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래도 영국이 이라크를 통치할 때는 쿠르드족이 비교적 안전했다.1932년 이라크가 소수민족 보호에 관한 헌법적 보장도 없이 독립하자 이라크 쿠르드족의 억압받는 역사가 시작됐다. 이들의 고난은 사담 후 세인 대통령이 88년 4월 이라크 북부 지역에 독가스를 살포해 수천 명 을 살해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곳은 91년 걸프전 이후 비행금지구역이 되면서 사실상 쿠르드 국가 가 됐다. 그러나 이번엔 지도자들이 배신했다. 앙숙관계인 쿠르드애국 연맹(PUK)과 쿠르드민주당(KDP)이 각각 이란, 이라크와 손을 잡고 내전을 벌이면서 독립국가 건설의 꿈은 다시 무산됐다.쿠르드족은 오랜 기간 여러 나라에 갈라져 살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왔다. 정치단체들도 마르크스주의, 이슬람, 종족 단체들로 갈라졌다. 이들은 공통의 적과 싸우기보다는 서로 싸우는 아시리아계, 유태인 등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이들은정식 소수민 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터키의 마지막 군사정권은 쿠르드어의 비 공식 사용마저 금지했으나 이는 91년 해제됐다.그러나 방송, 교육, 정치 등 공식적인 경우에는 여전히 불법으로 규정 하고 있다.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주요 행정도시나 그 주변에서 고유의상을 입는 것도 금지했다. 터키의 디야르바키르. 이 마을의 한 카페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고향 을 잃고 이곳으로 온 쿠르드족들이 모인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하며 고향에 돌아갈 꿈을 나눈다.또 동부지역에서 일어난 쿠르드족의 정치운동을 탄압하고 서부 도시 지역으로의 이주를 조장해 고지대에 사는 쿠르드족을 분산시켰다. 터 키의 주요 친쿠르드 정당을 불법화시키기 위해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터키 정부는 투르구트 오잘 전 대통령이나 히크메트 체틴 의회 의장 등 성공한 쿠르드인의 예를 들면서 터키인과 쿠르드인이 동 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물론 쿠르드족들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있다. 그들의 고향 마을은 약 6년 전 터키 군대에 의해 불탔고 그들은 고향 을 떠나야만 했다. 쿠르드 반군과 터키군의 전투가 한창 치열했을 때 다. 디야르바키르로 온 쿠르드족은 근처 마을에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쫓 겨온 동족을 수십만 명이나 만나야 했다. 터키군이 수만 명의 병력으 로 이 지역을 집중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중 일부는 자신의 마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정부가 관리하는 마을 방위 조직에 참여할 것을 약속한 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곳 쿠르드족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이들에게 PKK는 아직도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다. 이 들은 PKK의 무장투쟁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PKK 말고 이 들에게 자신감을 느끼게 해준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었다. 이들은 대 안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터키에서 쿠르드족으로 사는 것이 자신들을 이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터키의 쿠르드족에게는 아직도 유일한 희망인 PKK는 78년 창설됐다. 무장는 민족의 영웅으 로 추앙받고 있지만 터키 당국이나 많은 유럽 나라로부터는 테러리스 트로 간주돼 왔다. 오잘란은 한때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보호 아래 다마스커스 에 작전본부와 군사훈련소를 세워 활발하게 게릴라 활동을 펼쳤다.그러나 시리아가 지난해 이 문제를 놓고 터키와 무장충돌 직전까지가면 서 PKK에 대한 지원을 포기한 뒤 결국 오잘란의 체포로까지 이어졌다.이제 쿠르드족에게는 자신들을 이끌어줄 영웅이 없다. 오잘란의 오른 팔이었던 셈딘 사키크도 이미 지난해 터키 비밀경찰에 체포됐다. 게다 가 터키 정부는 오잘란 체포 이후 반군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어 독립의 꿈은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전문가들은 쿠르드 반군이 기존 무장투쟁파와 정치적 해결을 중시하는 온건파로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일부 전문가는 숫자가 적 어진 무장투쟁파가 터키와 갈등을 빚는 나라들에 이용당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한다.쿠르드족 문제는 제2의 팔레스타인 문제로 불리지만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쿠르드족 역시 다른 아랍국가들처럼 이슬람을 신봉하지만, 민족적 이질감이라는 굴레 때문에 중동 어느 나라도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쿠르드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으로 살도록 강요당하는 이들은, 결코 각국에 동화되기를 원하지 않고 분리 독립을 원한다. 그러한 목표를 위해 무장 폭동과 테러를 일삼고 있어, 해당 국가들의 탄압과 학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쿠르드족 문제는 외국에 지원 세력과 거점을 두고 있어 국제화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안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쿠르드인들을 교묘하게 이용만 할 뿐, 독립 국가건설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 '쿠르드'라는 용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지 여부는 국제사회의 관심에 달려 있다. 아직도 세계는 2000만 쿠르드족의 실상에 대해 무지하다. 독립국가 창설을 내걸고 일어선 중동의 소수민족들-유대인, 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인 그리고 쿠르드인. 유대인은 성서의 연고를 내세우며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팔레스타인도 아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