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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인플루엔자 예방 및 대처법
    머리글현재 시종 플루는 지난달 27일 현재 각국 보건당국을 통해 확인된 감염자 와 사망자수 현황 을 발표 하였습니다.감염자수는 343.298 명이며 사망자는 41.08명 이라고 밝혔습니다.지역별로 감염자와 사망자는미주 지역이 가장 많은 감염자 137.147 명,사망자 3.020 으로 나타났으며동남아시아 감염자 33594 사망자 413 명 으로 뒤를 각나라에서 감염 사례에 대한 집계를 중단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 수는 공식 통계 보다 휠씬 많을것 이라고 밝혔습니다.우리나라도 감염자가 3000여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도 20명 (2009.10.20 기준)에 이르러 대유행 수준의 심각한 질병이다.그래서 나는 신종플루란 무엇이면 이질병의 구별법 및 예방과 대처법을 알아보고자 한다1. 신종플루란신종 플루는 독감의 한 형태로 인플루엔자 WHO(세계보건기구)는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변이를 일으키는 종을 말한다2. 신종 플루와 일반감기 구별신 종 플 루일 반 감 기3~6시간에 걸쳐 급속한 고열, 몸살과 같은 급속한증상이 발생함.며칠간발열, 몸살이 일어남약 80% 이상이 심한 두통 수반가벼운 두통콧물 없는 기침콧물을 동반한 기침재채기는 거의 없음재채기 있음37.8°c 이상의 고열이 3~4일간 지속고열은 드물게 일어남심한 몸살이 지속가벼운 몸살상당수가 오한이 발생(열로 인한 증상임)오한은 드물게 발생심한 피로감이 오래 지속가벼운 피로감편도선은 거의 붓지 않음편도선이 자주 부음흉부에 심한 압박감 있음흉부 압박감은 거의 없음3. 예 방주변인이나 가족이 신종플루에 노출되었다면 보건소 등에서 확인을 받고 타미플루라는 치료약을 처방 받는다. 예방 목적으로도 처방이 가능한 약물이다. 또한 손씻기, 마스크 착용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한다.환자가 있을 경우 2m내로 접근하게 되면 감염이 잘 되니 보다 주의한다.고위험군인 65세 이상, 5세 미만의 사람은 환자와 가급적 접촉을 피한다.합병증의 대표적인 것은 폐렴이다. 초기 사망자들은 대부분 신종플루 자체에 의한 폐렴이나 2차적 폐렴으로 사망했다. 2차적 폐렴은 폐렴구균에 의한 것으로 병원에서 쉽게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예방이 가능하나 신종플루 자체로 생기는 폐렴은 타미플루 외에는 방법이 없다.감염경로는 말할 때나 기침, 재채기 등을 할 때 바이러스의 전파 그리고 공기 중에떠다니는 비말이 주변 환경에 묻어 있다가 전파되므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손을 잘 씻도록 한다. 가능하면 눈, 코, 입은 만지지 않도록 유의한다.독감은 보통 가을, 겨울이나 계절이 변할 때 잘 생기는데 현재는 신종플루에 대한면역력이 없는 상태이므로 접촉 되는대로 모두 발병하는 것으로 보인다.가을, 겨울이 되면 더 심해질 수 있고 더 빨리 전파될 우려가 있겠다.일반적 기본 위생 관리는 물론 면역력 증강을 위해 균형있는 영양 섭취를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해주는 것이 중요 하겠다.그러나 이전의 인플루엔자 유행처럼 처음 접했던 바이러스도 시간이 지나면 정착이되고 국지적, 계절적 인플루엔자로 바뀌게 된다.예방 백신이 곧 나올 예정으로 그 이후 양상은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4. 증상이 있을 때지역사회에 유행 하고 있으니 자신의 몸 상태에각별한 주의를 기울고유사증상으로 아프다면 집에서 쉬면서 다른 이와의 접촉을 피하고 의료기관의 진료를 받는 것이가장 중요 하겠다.
    생활/환경| 2009.10.21| 2페이지| 1,000원| 조회(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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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폐암
    폐암 [ 肺癌, lung cancer ]◆정의◆폐암이란 폐에 생긴 악성종양을 말하며, 크게 원발성 폐암과 전이성폐암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원발성 폐암이란 기관지, 세기관지, 폐포 등의 폐조직에서 발생한 암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폐암이라 하면 원발성 폐암을 말합니다. 전이성폐암이란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 발생하여 암이 진행되어 폐로 전이되어 생긴 악성종양을 말합니다.?폐암은 암세포의 형태에 따라 비소세포암과 소세포암으로 구분됩니다.비소세포암은 폐암환자의 약 80~85%에서 발생하며, 다시 편평상피암, 선암, 대세포암으로 나누어 집니다. 편평상피암은 주로 폐 중심부에서 발견되며, 남자에서 흔하고, 흡연과 관련이 많습니다. 이와 달리 선암은 폐말초 부위에서 잘 발생하고, 여성이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서도 발생하며, 크기가 작아도 전이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세포암은 폐암의 4~10%에서 발생하며, 빠르게 증식·전이되는 경향이 있어 다른 비소세포암에 비하여 예후가 나쁜 편에 속합니다.?소세포암은 폐암환자의 약 15~25%에서 발생하며, 전반적으로 악성도가 강하여 림프절이나 혈액순환을 통하여 조기에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폐암도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림프절이나 혈액순환을 통하여 전이되며, 잘 전이되는 장기로는 뇌, 간, 전신 뼈, 같은 쪽 폐, 또는 다른 쪽 폐, 부신, 신장등의 순입니다.◆위험요인◆담배흡연은 폐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발병요인이며, 담배에서 발견되는 유해물질은 약 4,000종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것은 60종 이상입니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에 걸릴 위험이 15~80배까지 증가합니다. 한국남자의 높은 흡연율과 증가 추세에 있는 여성흡연율 그리고 청소년흡연까지 고려해 볼 때, 이것은 세계적으로 흡연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며, 폐암사망률이 감소하는 시기가 국가적 금연운동을 시작한 후 30년 정도 걸린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간접흡직업적으로 노출되어 폐암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방사선모든 종류의 방사성동위원소는 발암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라늄은 폐암중 소세포암의 발생과 밀접한?연관을 보이는데, 흡연자에서 발생빈도가 현저히 증가합니다. 라돈의 경우 지표면을 통하여 건물내부로 들어가며, 환기시키지 않을 경우 농도가 높아지게 되는데, 흡연 다음 가는 폐암의 발생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건물내부의 라돈가스의 농도가 높지 않아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엑스선 검사(X-ray)나 전산화단층촬영(CT)등의 방사선학적검사에 쓰이는 방사선량은 극히 미미하므로 폐암의 발생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공해?공기 중의 발암물질에는 벤즈피린, 방사선물질, 비산화물질, 크롬및 니켈혼합물, 비연소성 지방족 탄화수소등이 있으며, 이들 물질은 도시의 공기 속에 포함되어 폐암을 발생시키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특히 흡연과 환경오염원은 폐암발생에 있어 상승작용이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유전적 요인?폐암은 가족력이 있는 경우, 가족력이 없는 일반사람들보다 2~3배정도 발병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예방법◆폐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연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약 90%의 폐암이 금연을 함으로써 예방이 가능하며, 특히 청소년 시기에 흡연을 시작하지 않도록 계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흡연은 다른 발암물질의 노출과 상승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 외에 환경적 요인(공해, 간접흡연등), 직업적 요인(비소, 석면, 크롬등), 방사성동위원소(라돈 등), 가족력등의 유전적 요인들을 고려하여 위험요인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위험요인에 노출된 경우 정기적으로 검진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일반적 증상◆폐암의 초기에는 전혀 증상이 없으며, 일반감기와 비슷한 기침, 객담등이 나타나 조기진단이 매우 어렵고, 암 발생위치에 따라 증상도 다르게 나타납니다.기관지 혹은 폐와 연관된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기침?폐암의 초기 증상중 가장 흔하며 많게는 폐암환자의 75%가 잦은 기침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흉막과 흉벽을 침범하여 생기는 통증은 가끔씩 생기며 날카로운 경향이 있고, 폐암이 더 진행하면 둔중한 통증이 지속되기도 합니다. 폐암이 직접 흉벽을 침범하지 않더라도 갈비뼈로 전이되어 통증이 생기기도 하며, 흉막으로 암이 전이되어 악성흉막 삼출증을 만들어 지속적인 통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쉰 목소리목소리를 만드는 성대를 조절하는 성대신경은 폐와 기관 사이의 공간을 지나가는데 폐암이 이 신경 주위의 림프절을 침범하면 성대의 마비가 오고, 그로 인해 목소리가 쉬기도 합니다.?상대정맥 증후군?폐암이 상대정맥 주위에서 생겨 상대정맥을 압박하면 혈액순환장애가 생겨 목, 안면, 팔이 붓막히게 되면 머리와 상지가 심하게 부을 수 있고 호흡곤란이 생기며, 가슴에 정맥이 돌출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숙이거나 누우면 증상이 악화됩니다. 이런 증상을 상대정맥 증후군이라고 합니다.?뼈의 통증과 골절폐암이 뼈로 전이되면 심한 뼈의 통증이 유발될 수 있고 별다른 외상없이도 골절이 생기기도 합니다.?두통, 오심, 구토?뇌 역시 폐암이 잘 전이되는 곳으로 이 경우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기도 하며 드물게는 간질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 전신 증상으로 체중감소 및 식욕부진, 오심, 구토, 악액질 등의 증상이 있습니다.◆진단방법◆폐암 진단방법에는 여러 가지 검사가 있는데, 폐암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을 경우 흉부X-선촬영, 흉부CT촬영,객담검사, 기관지 내시경검사, 경피적 세침 생검술등을 통해 폐암인지 여부를 가려내며, 그 진행정도 등을 판단합니다. 최종진단은 객담, 기관지 내시경검사, 경피적 미세침흡인세포검사에 의해 얻어진 조직또는 세포를 현미경적 검사로 확인합니다.폐암의 진단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흉부 X-선검사?흉부 X-선촬영으로 간단하게 폐에 혹이 생겼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치 및 진행정도를 정확히 판단하려면 전산화단층촬영(CT촬영)을 해야 합니다.?흉부 전산화단층촬영(CT촬영)?보다 정교한 검사법으로 단층의 컴퓨터 영상을 보여줍니다. 폐나 림프절그리고?병기 판정을 위한 추가 검사?폐암으로 확진된 환자에서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병기 판정을 위하여 추가로 시행하는 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신 골스캔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전신의 뼈에 암이 전이되어 있는지의 여부를 검사합니다.○ 흉부자기공명영상(MRI)특히 수술대상이 되는 환자에서 폐암이 흉벽이나 횡경막, 척추등의 주변 장기에 침범이 의심될 때 침윤부위를 좀 더 정밀하게 검사합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폐암의 뇌 전이여부를 검사합니다.○ 전신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암조직이 대사가 항진되어 있어 포도당을 많이 이용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포도당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부착시켜 전신의 암전이 병소를 검사합니다. 원발병소와 전신의 전이병소를 한번에 검사(Onestep)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최근 유용성이 점차 증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종격동내시경종격동 림프절에 암세포의 전이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법으로 전신마취후에 종격동내시경을 통하여 기관지주위의 림프절을 떼어내어 생검을 통하여 암종의 진행병기를 구분할 수 있어 차후 치료계획수립에 도움을 주는 검사입니다.◆치료방법◆폐암은 병기에 따라 각각 그 치료방법이 다르며, 치료받는 환자의 전신상태와 개개인의 치료선호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폐암의 치료에는 수술, 항암화학적요법, 방사선치료등이 있습니다.이러한 폐암의 치료들에서 비소세포폐암과 소세포폐암으로 나누어진 폐암의 단계별 치료법을 보게 되면 다음과같습니다.?폐암의 치료원칙?○ 비소세포폐암비교적 서서히 진행하므로 조기 발견시 수술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1, 2, 3A기 일부 : 근치적절제술- 3A기 일부 : 수술전 항암화학요법후 수술, 혹은 항암.방사선 병용요법- 3B기 : 항암.방사선 병용요법- 3B, 4기 : 항암화학요법-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에서 방사선치료혹은 방사선ㆍ항암 동시요법○ 소세포폐암소세포폐암은 매우 빨리 자라고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암으로 대개의 경우 수술이 불가능하며, 항암화학요법및 방사선치료에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제한성 병기:좋아지고, 수술후 후유증도 줄일 수 있습니다.수술의 종류○ 전폐절제술폐암이 한 쪽 폐 전체로 퍼져있다고 생각되면, 한쪽 폐 전부를 절제해 내는 전폐절제술을 시행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쪽 폐 전부를 절제하면 숨을 쉬기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남은 한 쪽 폐만으로도 충분히 호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폐절제술을 시행하기 전에 호흡에 관련된 모든 검사를 시행하므로, 환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엽절제술엽절제술이란, 폐의 한 엽을 제거하는 수술방법입니다. 이 수술은 암종이 폐의 한 엽에 국한되어 있을 때 시행할 수 있는 수술방법입니다.○ 양엽절제술양엽절제술이란, 엽절제술의 일종이며,? 폐의 두 엽을 한 번에 제거하는 수술로 우측 폐에서만 가능합니다. ?이 수술은 암종이 폐의 두 엽에 걸쳐 있거나, 양엽으로 통하는 기관지에 암이 있을 때 시행할 수 있는 수술방법입니다.○ 쐐기절제술 및 분절절제술쐐기절제술은 양이 매우 작은 부분에 있고 폐기능이 좋지 않을 때 암종을 제거하는 수술법입니다. 이러한 수술은 폐암이 아주 초기인 경우이거나, 아주 적은 부분에만 암이 있을 때 시행합니다.항암화학요법소세포폐암의 경우는 항암화학요법이 주된 치료원칙이며 제한성 병기에서는 방사선치료를 병용합니다.비소세포 폐암의 경우는 3기 이후에 항암화학요법을 1, 2기 폐암환자에서 수술후 재발방지를 위해 보조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하기도 하지만, 아직 표준요법으로 확립되지는 않았습니다. 항암화학요법은 생명을 연장하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응이 좋은 일부 환자에서는 상당기간 동안 병이 안정되어 일상생활을 큰 문제없이 할 수도 있으며 그 중 일부에서 장기생존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항암화학요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암세포에 내성이 생겨 나중에는 잘 듣지 않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로 이럴 때는 다른 약제로 바꾸어 투여하게 됩니다.?항암화학요법의 주기항암화학요법을 받으면 암세포도 죽지만 몸 속의 정상세포도 손상을 받아 세포수가 감소하게됩니다. 이로 포
    의/약학| 2005.12.06| 8페이지| 1,000원| 조회(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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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무신정변의 난에 관한 고찰
    { 무인난의 요인 }무인 정변의 진행과정1170년 4월 의종 24년 왕이 화평재라는 별궁에 행차해 문신들과 술과 시를 주고 받으며 돌아갈줄을 모르자 경호하는 장군들과 군인들은 배고픔에 시달려야했고 이때 정중부가 호위 총책임자로 있었는데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을 때 산원(대위급)인 이의방과 이고가 쫑아와 문신은 마음껏 취하고 배불리 먹으며 놀아대는데 우리 무신들은 이렇게 주리고피곤하니 어찌 참아낼수 있겠습니까? (고려사:열전 정중부) 라고 정중부에게 하소연 하였고 이때 65세였던 정중부 역시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자신의 수염을 태운적이 있어 문신에 대해 불만을 품고있던 차였다. 그들은 서로 동조하여 정변을 일으키기로 모의하였다. 이로보면 정면의 주도자는 하위장교에 불과한 이의방과 이고였으며, 고위장성인 정중부는 정변의 상징적인 얼굴로 추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해 1170년 8월 의종이 흥왕사에 들렀을 때 정중부는 이의방과 이고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이제 우리가 거사할만하다. 왕이 여기서 바로 환궁한다면 참고기다릴것이요, 만약 또 보현원을 간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말아야한다 불행히도 국왕은 다음날 보현원으로 향했고 목적지에 도달하기전 오문(성문)앞에 이르러 술자리를벌이고만다. 술이 거나해진 왕은 주위를 둘러보며 훌륭하도다. 이곳이야 말로 병사를 훈련시킬 만하구나. 라고말하며 무신들에게 오병 수박희(주로 손을써서 상대를 공격하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예)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돌발사건이 일어났는데 대장군 이소응이 어느젊은 군사와 맞잡고 경기를하다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자 문신인 한뢰가 갑자기 쫑아와 이소응의 뺨을 때린 것이다. 임금과 여러문신들은 이모습을 보며 웃었고, 여러 신료들고 이소응을 꾸짖고 욕하였다. 정중부가 나서며 소응이 비록 무신이지만 벼슬이 3품인데 어찌 이다지 심하게 욕을 하느냐 라고 외쳤고 당황한 국왕은 정중부의 손을 잡고 화해 시켰다. 이날 저녁에 이고와 이의방이 보현원에 먼저 가서 임금의 명령이라 속이고 순검군(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나 밖에 멈부를 때 호위하며 안전을 담당하는 특수 군사로 일종의 경호원이다)을 집합시켰다. 왕의 일행이 보현원으로 들어오자 문신들과 환관들을 보이는 대로 살해하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김돈중을 놓쳐서 불안한 점이 있었지만 나중에 정중부가 찾아내어 죽엿다.정변에 성공한 무신들은 의종을 폐위하여 거제도로 유배보내고 대신 그의 동생인 명종을 옹립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정중부, 이의방. 이고 3인이 주도한 거사는 이렇게 3일만에 새로운 왕을 즉위시킴으로서 일단 성공하였다.에는 이 거사를 경인년에 일어났다 하여 경인의난 혹은 정중부의 난 이라 기록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보통 무신정변 혹은 무신란 이라고 부른다. 고려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이 무신란은 그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그후 의종은 장수 김보당이 다시옹립시키기위해 경주로 옮겨졌다가 경주 출신 이의민에의해 김보당은 한달이 안되어 잡혀 죽었고 의종도 척추가 분질러져 살해당하였다. 무신정변이 성공하자 이를 주도한 이의방과 이고가 권력을 쥐었다. 이고가 이의방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여 죽음을 당하자 이의방 정권이 탄생하였다. 그후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이의방을 따라다니는 승려 종참을 이용하여 이의방을 암살하면서 정중부 정권이 성립하였다. 다음에는 26세의 청년장군 경대승이 정중부를 습격하여 살해하고 권력을 잡는다.경대승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었고 그 다음에 권력을 잡은 자는 노비 출신 이의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최충헌,최충수 형제가 이의민을 습격하여 살해하하는데 성공하였지만 형제끼리 대립하여 갈등하다가 결국 최충헌이 시가전을 벌인 끝에 동생을 죽이고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리하여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로 연결되는 4대 62년동안의 최씨 무신정권이 전개되었다. 그후 12년동안은 임연등 최씨 잔당들이 권력을 잡았다.무신정변은 왜 일어났나?여러 책자들을 검토하여 몇가지로 정리하자면, 첫째 문반과 무반의 차별대우와 그로인한 양자간의 반목,대립, 둘째 말단 군인들의 사회,경제적 불만, 셋째 의종의 향락생활과 실정, 넷째 의종 대의 특수한 정치상황으로 집약 된다.문반과 무반의 갈등이제까지 대체로 무신정변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어 오고있는 사항이다. 고려의 관직 체계는 크게 문반과 무반의 양대체계로 짜여져 있었다. 무반은 정3품의 상장군을 최고로 더 이상 승진할 수가 없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군인이 별 넷을 달고 나면 더 이상 승진할 길이 없는 것이다. 반면 2품이상의 관직은 문반에서 독점하였다. 국가간의 전쟁이나 내란과 같은 유사시에도 문반에서 맡아서 일을 처리하였다. 거란족의 침입시 상원수로 총사령관을 맡은 강감찬 장군도 과거에 장원급제한 대표적인 문신이었으며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지방에 9성을 쌓은 윤관 역시 문신이었다. 또한 문신이었던 김부식은 묘청의 난이 일어났을 때 토벌군 총 사령관이었다. 이러한 고려사회의 문무반 차별에 대하여 왕도정치나 덕치주의 중심의 유교사상의 영향과 무신이 미천한 출신 신분이 많기 때문에 차별대우를 받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고려의 건국 과정에서나 후삼국의 통일 과정에서 보면 문관 보다는 무관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태조왕건 역시 호족출신으로서 무관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런 고려왕조의 문무 차별이 나타나게된 가장 큰 이유는 광종 대에 도입된 과거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호족 중심의 무사적 사회질서를 개편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광종의 과거제 도입이었다. 그런데 이때의 과거제도는 무과는 설치하지 않고 문과만을 두었다. 무신위주의 통치 질서를 문신 위주의 통치 질서로 전환 시키려는 의도였다. 고려가 망할 때까지 과거제에 무과를 두지 않음으로써 고려왕조는 문무의 차별을 공식화한 셈이다. 성종 대 최승로에 의한 유교정치사상의 확립은 광종 대의 그러한 시도가 일단 성공하였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무무 차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말단 군인들의 사회,경제적 불만의종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일반군인들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고려시대 군인층의 불만은 군이전이 정상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군인전은 군인들에게 군역의 반대급부일 뿐만 아니라 생계수단이기도 한데, 이것이 정상대로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의종 대는 군인들이 각종 노역에 동원대고 있었다. 개경 근교의 경치 좋은 곳에 30개가 넘는 정자나 별궁 등의 유흥 장소를 만들었는데 이때 군인들을 동원하여 사역시켰는데 여기에 동원된 군인들의 생활은 그당시 기록에 잘 나와 있다. 경제적인 처우 면에서도 열악하였고 특히 의종 대에 각종 잡역에 까지 동원된 군인들이 현실에 불만을 품었을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그런데 문무의 차별이나 군인들의 불만이 의종 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인데 왜 하필 의종 대에 일어났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의종의 실정과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의종의 향락생활과 실정의종의 향락생활과 실정은 무신정변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가장많이 거론되고 있다. 의종은 재위 24년동안 개경근교의 경치 좋은 곳에 수십개의 정자나 별장을 짓고 순회하며 술판을 벌였다. 나 에는 의종의 향략생활이 일일이 거론할수 없을 정도이다. 보현원과 연복정은 그 대표적인 곳이었다. 연회가 열릴 때마다 친위군의 무장들은 주변의 경계나 서고, 군졸들은 그 준비나 뒤치다꺼리로 불만이 쌓여갔던 것이다. 이런 향락생활이 무신정변과 무관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의종의 실정 관계기사를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 하는데 있다. 비상수단에 의해 앞선 정권을 타도한 다음 정권의 집권세력이 앞선 정권담당자의 행적을 개관적으로 서술하고 평가한 예는 어느 역사에도 없었다. 무신정변으로 집권한 세력들의 시각에서 의종의 실정 논의에 과연 객관성이 있을까? 그리고 한편으로 의종이 왜 이렇게 재위 동안 줄곧 밖으로만 도는 향락생활을 그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의종 초기의 정치는 잘한 면도 있었다는 평가도 있고 보면, 그의 향락생활을 단순한 개인의 성벽이나 취향으로만 설명한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여기에 그 당시 의종 대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작용하였다고 볼수 있다.
    사회과학| 2004.01.12| 3페이지| 1,000원| 조회(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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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사]거시중국사를 읽고 평가A좋아요
    서안은 중국 역사상 11개 왕조의 서울이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곳이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이곳이 누리고 있는 명성은 그 어떤 정치적인 중심지보다도 월등히 높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고대의 건축물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 폐허 속에 옛날의 웅장한 기상만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역사서의 기록에 의한 최초의 왕조인 하왕조의 존재에 대하여 전설은 많으나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실증이 없어 그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 왕조가 만약 확실히 존재하였다면 적어도 발굴된 유물에서 문자가 나타났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하왕조가 실재로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중국의 문자가 기원전 2000년경에 처음으로 생겼지만, 최초의 문자는 죽간이나 비단 천 따위에 쓰였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마멸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지만 여전히 정설이 될 수는 없다.현재로서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중국역사의 시작은 기원전 약 1600년경의 은왕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왕조의 두 서울과 10여 곳의 왕릉이 이미 발굴되어 문자가 확실히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짐승의 뼈에 새겨져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서 출토된 갑골문의 조각들은 그 수가 10만을 헤아린다. 당초 갑골은 굿이나 점복에 사용했던 것으로 현존하는 갑골은 은왕조의 사관이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갑골의 대량 출토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에서 처음으로 국가 규모를 갖춘 은왕조가 장차 사람들을 탄복시킬 수 있는 일련의 고급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은왕조의 유적지는 역사적으로 `관동`이라고 일컬어지는 하남성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안 일대의 황토고원과 동서로 연결되어 그 서쪽 축을 이루고 있다.맹자는 전통적인 정치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공자를 뛰어넘는다고 볼 수 있으나 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제자에게서 배웠다고 전해지고 있어 중국의 황제와 문인들로부터 공자 다음으로 두 사사로운 이익을 견지하기보다는 다수의 소인에 대해서 측은지심을 품을 것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철학은 자비로운 마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같이 만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간의 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기원전 1027년 또는 1122년 서백의 아들 무왕이 은왕조를 이반한 많은 부락국가들을 규합하여 동정을 개시하고 마침내 주나라가 은나라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문가들마다의 서로 다른 고증의 증거로 서로 다른 연대가 제기되고 있다. 주왕조의 청동기 제작기술은 은왕조의 멸망과 함께 그 기술이 실전되어 제작기법이나 양식은 전보다 훨씬 못하다. 그러나 많은 수준 높은 문학작품이 생겨나게 되어 그 중 일부분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관심 있게 읽혀지고 있다. 두 민족 또는 왕조간에 종교사의 차이도 대단히 현저했는데 은왕조는 귀신을 숭배하여 모든 일의 성패는 모두 귀신이 주관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애니미즘 즉 정령신앙은 주왕조가 시작되면서 사라지고 그 대신 주왕조는 조상을 숭배했다. 또한 주왕조는 봉건제도를 실시하여 세습 귀족이 모두 지방정부를 장악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왕조는 이민족 견웅의 침입으로 현재의 서안 가까이에 있었던 서울 호경이 파괴되고 왕은 피살되고 말았다. 왕이 동쪽으로 피신하여 왕위에 오르니 이때부터 주왕조는 동주로 일컬어지고 명목상 주왕조에 복속되어 있었던 진나라에 의해서 그 영토를 모두 빼앗기고 만다.청동기시대의 종결과 함께 중국 전역에서는 즉시 정치적인 통일운동이 전개되어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원대한 안목으로 계획을 세우고 절묘한 수단으로 계획을 완성하여 전국의 통일을 이루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원대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심지어 엄청난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그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에 굴하지 않았다. 흙 알갱이가 가늘고 부드러워 경작하기 쉬운 황토와 풍부한 강우를 동반해오는 계절풍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대지를 윤택하게 해주지만 이따금씩 있었던 중요한 작용을 하였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중국이 농업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를 체택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진시황이 죽음으로써 진왕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그가 중국을 통일한 공적은 왕조의 멸망과 함께 소실되지 않고 그가 죽은 지 10년도 되지 않아서 한왕조가 뒤를 이어 일어나 4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한제국은 제국의 영토가 지나치게 넓어 그 전부를 중앙정부에서 완전히 통제할 수 없어 몇몇 지역은 진나라 시절 설치되었던 군현제를 그대로 존속시키고, 다른 지역들은 새로 임명된 왕과 제후를 파견하여 세습제로 다스리도록 하였다. 한 제국의 왕망이라는 인물은 황태후의 친정 조카이자 자신의 딸을 다음 황제에게 시집보냄으로써 황후의 아버지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왕조의 기반은 광대한 농지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이와 같은 사회구조에 맞추어 농민대중을 근본으로 하는 정신으로써 시정방침을 삼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토지세는 모두 무 단위로 징수되고 인두세도 사람 수에 따라 거두어지므로 세금 총액에는 변화가 없어야 하나 농촌의 토지대장이 아주 오랜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라 그 뒤의 현실적인 변화에 따라 반드시 정기적으로 개정될 수만은 없었다. 이렇게 호구를 단위로 했기 때문에 매번 인구의 이동이나 재산의 소유권 이전으로 인해 세금의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이 전개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두어들여야 할 세액을 다른 호구로 편입시켜 액수를 채우게 하다보니 도망자만 늘어나 결손액이 더욱 커지는 결과가 초래되고 악영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국 왕망의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경제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켜 한왕조의 창업자 유방의 9대손인 유수를 지도자로 떠받들었다. 이로써 한나라가 중흥하게 되었다. 유수는 낙양을 서울로 정하고 모든 깃발을 붉은색으로 하여 `전한`의 노란색과 구별했다. 이렇게 하여 전한은 서한. 후한은 동한으로 불리게 되었다. 무력충돌이 그치고 평화가 정착되었을 때 문화적, 물질적 생활의 발전을 대단히 괄목할 만한 것든 모형들은 문자 기록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었다.각 분야의 이해와 충돌을 조화시키고 피차간에 서로 화합하여 병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음양의 교체가 사람의 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자연 현상에서도 나타난다고 믿는 천인합일이나 자연동화 등의 관념을 적극적으로 고취시켜 행동면에서 자유를 얻음으로써 일정한 주장이나 정책에 구애되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유학을 장려하여 관료조직을 사상적으로 일치시켰다. 그러나 지방 호족의 겸병은 결국 이데올로기만으로는 해소시킬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마침내 당고의 화가 일어난 후 서로 쟁패를 벌이던 많은 세력들이 한제국을 멸망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한왕조가 멸망하고 수왕조가 성립되기까지 약 350여 년 동안을 장기적인 혼란과 절망의 시대였다.기원 후 3세기 초에는 위, 촉, 오 세 나라의 장기적인 3국 성립의 국면이 형성되었다. 그 중에서 위나라는 기병이 강하여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조조가 오와 촉을 정벌하려다 실패한 지 반 세기가 지나 위나라의 장수 사마소가 이 대치상황을 깨뜨렸다. 그러나 사마소가 죽고 그의 아들 사마염이 그의 뒤를 이었다. 그는 265년에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협박하여 제위를 선양받아 진(晋)나라를 세웠다. 진나라가 오나라를 정복하는 데에는 장기적인 계획이 수행되어 결국 280년에 남경에서 오나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진나라는 3세기 반에 걸친 혼란기 가운데에서 유일한 통일왕조였으나 10년만에 북방정권의 분열로 깨지고 말았다.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얼마 동안의 곡절을 겪어야 했지만 결국 불교가 여러 계층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많은 반대파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불교사상이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계몽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불교는 어느 한 분야에도 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았다.선비족의 한 부족으로 중국의 재통일 과정에 중요한 공헌을 한 척발씨는 제국건설 초기에 소수민족으로서 유구한 문화전통이 없어 주로 전쟁에서 얻은 조정은 밖으로는 유연족과 같은 기타 유목민족의 침범에 방어할 능력이 있었고 안으로는 재난과 흉년에 대비할 수 있는 자원이 갖추어져 그 자체의 위세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농업 노동력을 이용하여 병참기지를 건설하려고 균전법을 채택한 최초의 정책결정은 왕조흥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북위는 다시 균전령을 반포하여 모든 토지를 황제의 소유로 하고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칙명에 의해서 사용권만을 보유하게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각 시대마다 숫자상의 변화만 있었을 뿐 그 원칙은 당나라 중기인 8세기 말까지 약300년 동안 시행되었다.당나라는 초기에 균전제와 조용조 등의 제도로써 나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또한 이민족의 문화까지 포용하여 마침내 다채롭고도 찬란한 대당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결국 지도자집단의 교만과 나태 그리고 무책임으로 점점 불안해져 갔다. 지방세력 또한 스스로 자치력을 모색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제어력이 점차 약해져 갔다. 이러한 때에 안녹산이 무리를 거느리고 오늘의 북경 부근에서 서안을 공격하여 정세의 악화를 더욱 가속화시켜 당왕조는 전성기에서 쇠퇴기로 넘어가고 통일상태에서 분열 국면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황소가 무리를 모아 제국의 내부에서 10여 년이나 횡행한 끝에 결국 당왕조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960년 송왕조가 일어나자 중국은 근대로 접어든 것처럼 물질문명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화폐가 널리 보급되고 화약의 발명을 비롯해 화염기, 나침반으로 항해의 방위를 결정하고 천문시계가 개봉에 설치되었다, 고풍로 수력방직기 그리고 선박에서의 방수벽 등이 모두 송대에 출현하였다. 그리고 활자인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기록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또한 중국 대도시의 생활수준은 당시 세계의 어떤 수준 높은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운용할 적당한 서비스 사업이 결핍되어 있었으므로 경제적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군사적인 면에도 영향을 미쳐 북송시대와 마찬가지로 약
    사회과학| 2004.01.12| 6페이지| 1,000원| 조회(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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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폭력 평가A좋아요
    가정폭력■ 들어가는 글예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가정폭력이 ’97년 IMF 이후 그 추이가 더욱 증가하여 이제는 어떠한 해결책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지금은 많은 사회단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98년 7월 가정폭력 방지법의 시행을 통해 지금까지 개인의 사적인 문제로만 이해되어왔던 가정폭력이 더 이상 개인문제가 아닌 국가가 개입하는 중요한 사회문제라는데 대한 국민의 인식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가정폭력의 원인과 유형, 빈도 그리고 가정폭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가정폭력의 원인1. 개인적 병리 현상 : 발달과정상의 장애, 정신지체, 정신질환, 약물남용 등의 영향으로 적절한 상황판단 능력, 공격성향의 통제능력이 약화되어 가정폭력이 발생한다.2. 사회화 현상 : 가정폭력을 보며 자랐거나 경험하며 자란 아동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폭력을 되풀이한다.3. 스트레스 이론 : 막중한 부담이 어떤 개인에게 장기적으로 가해질 때 개인이 경험하는 상태를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개인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좌절 상태에서 행하는 가정폭력이라 할 수 있겠다.4. 사회적 고립 :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주위의 도움이 차단되거나 제한되어 있어 사회적, 개인적 스트레스를 혼자 감당해내야만 할 때 가정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중재 역할을 담당할 사람이 없어 가정폭력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5. 사회문화적 구조 : 가부장적 사회구조하에서 가정폭력이 많이 발생하며, 배우자로부터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고 본다. 남편이 우월한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가족에서 폭력이 보다 팽배한 것으로 드러난다.바로 이러한 요인들이 지난 97년 IMF사태 하에서 한국 가정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들 중 몇가지 현상으로써, 경제적 갈등의 증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장의 권위와 자원 상실로 인한 무기력감과 열등감의 증가, 개인 및 사회적 분노의 증가 등이다. 이 모든 것들이 상호작용하여 심리적 좌절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가정폭력 현상이 증가했다고 판단된다.3 - 2■ 가정폭력의 유형과 빈도(추이)가정폭력의 최근 3년간 추이를 살펴보면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체적 폭력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1998년에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이고 있다. 즉, IMF이후 가정폭력이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는 예상했던대로 아내에 대한 폭력이 가장 많았고, 다음이 아동 순이었다.구 분가정폭력 유형별 평균건수(N=25)피해자별 평균건수(N=26)신체적폭 력성 적폭 력언 어폭 력방 임/유 기기 타아 내남 편아 동노 인1997년133.213.637.72.48.6152.51.518.30.21998년146.120.734.21.812.6165.93.323.00.11999년137.321.634.62.211.3152.52.225.30.2[표] 가정폭력 유형별 3년간 추이■ 소 결 론가정폭력은 그동안 우리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졌다. 자료를 정리해보면 아내에 의한 남편의 구타보다 남편에 의한 아내의 구타가 월등히 많았고 아동에 대한 구타도 무시못할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글에서는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사한 바로는 1)남편에 의한 의사결정이 많아질수록, 즉 남성우위형 권력구조일수록 남편은 더 폭력적이고, 2)갈등수준이 높은 부부일수록 남편이 더 폭력적이다. 3)같은 갈등수준을 경험하더라도 남성우위형 권력구조의 남편이 다른 권력유형의 남편보다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할 확률이 더 높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나라 사회가 예로부터 뿌리깊게 내려온 전통적 가부장적 사회임을 볼 때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다음 결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가정폭력에 대한 대응과 과제가정폭력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법에 의한 해결방법과 대화에 의한 해결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1. 법에 의한 해결(보호처분) : 보호처분이라 함은 법원이 가정보호 사건에 대하여 심리를 거쳐 가정폭력 행위자에게 과하는 특례법 규정에 의한 처분이다. 보호처분은 그 내용과 등급에 따라 7가지로 분류되는데, 보호처분의 결정을 위하여서는 범행사실 인정이 전제되어야 하고, 나아가 범행 반복의 가능성 및 교정 가능성 등 보호의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보호처분은 판사가 가정폭력범죄를 전제로 하여 가해자인 가정폭력 행위자에 대하여 하는 것으로서 사법적 작용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 단체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에 대하여 하는 행정작용인 보호시설 인도, 치료보호 등의 보호조치와 구분된다. 다른 한편으로 보호처분은 환경의 조정과 성행의 조정을 하는 것이지만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복지적행정적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범죄에 대한 응보 또는 일반예방, 특별예방을 통한 사회방위의 기능을 하는 형벌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다만 이러한 처우선택은 원칙적으로 보호 필요성의 정도에 상응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하여 가정폭력 행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육성한다는 특례법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 적절한 보호처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 2003.11.11| 3페이지| 1,000원| 조회(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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