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약물의 정의세계보건기구(WHO)의 정의에 따르면-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자꾸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의존성)- 사용할 때마다 양을 늘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으며(내성)- 사용을 중지하면 온 몸에 견디기 힘든 이상을 일으키며(금단증상)- 개인에게 한정되지 않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물질을 말한다.2. 약물중독의 개념 및 정의중독이란 약물이 신체 내에 과도하게 존재하여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나타내는 상태로 가벼운 오심이나 구토, 두통, 복통에서부터 들뜬 기분, 혼동, 착각, 환각 등의 정신병적 상태를 나타내거나 혼수상태와 사망에까지 이르는 상태를 말한다.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사용하는 약물에 따라 다르나 대개는 다음과 같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짐- 걱정이 없어짐-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해 짐- 소리나, 보이는 것에 민감해지고, 환각상태도 나타남- 행동방법이 변함-멍청하고, 잠에 취한 듯 하거나 광폭해짐- 사용을 중지하면 기분이 나쁘고, 고통스러운 증상이 나타남비슷한 말로 혼용하기 쉬운 용어로 오용, 남용, 의존, 중독이 있다. 그 단어들의 뜻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용 - 의학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나 의사의 처방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사용· 남용 - 의도적으로 약물을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의존 - 마약류 및 약물을 지속적, 주기적으로 사용한 결과, 사용자에게 정신 적 신체적 변화를 일으켜 사용자가 마약류 및 약물 사용을 중단하거 나 조절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상태· 중독 - 약물 사용에 대한 강박적 집착, 일단 사용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야마는 조절 불능, 해로운 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강박적 으로 사용하는 상태를 말하며 심한 심리적 육체적 의존상태라 말할 수 있다.3. 약물중독의 증상(1) 신체적 증상1충혈 된 눈 2흐릿해 보이는 눈 3눈꼽이 낀 눈 4 졸음 5건망증 6콧물이 흐른 코 7 팔의 주사자극 8체중감소 9 경련 ⑩영양부족(실조)(2) 정신 및 행동 증상1환각 2피해망상 3헛소리 4과도한 흥분 5취한 다) 6 새로운 다른 친구들 7가족활동에의 불참석(4) 기타 증상1약물보관함에서 약물이 사라짐 2와인이나 술이 없어짐 3 무단 결석 4교통사고(음주운전) 5안약의 사용 6 옷이나 소지품의 분실 7낯선 전화(5) 약물남용으로 인한 합병증* 의학적 합병증(Medical Complication)가. 면역기능의 저하나. 약물의 투여방법에 따른 합병증첫째, 호흡기를 통해 약물(본드, 부탄가스, 대마초)을 사용 - 축농증, 코뼈의 뚫어짐, 만성 기관지염, 만성패쇄성 호흡기 질환, 폐염, 폐결핵 .둘째, 근육주사나 혈관 주사 - 주사기를 여러 사람이 공유함- 전염성 질환(간염 및 후천성면역결핍증)셋째, 약물을 주사기로 투입 (위생 수칙을 잘 지키지 못해) - 폐염, 심장내막염, 혈전증, 피부염넷째, 약물사용에 따른 기타 의학적 합병증은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간 경화, 췌장염, 당뇨병, 고혈압, 중풍, 암, 성불구, 수태능력장애, 기형아 출산 등* 정신과적 합병증(Psychological and Mental Complication)가. 우울증 및 자살 나. 불안발작(급성 공황 발작)다. 약물로 인한 정신병 -의심증, 피해망상 등의 정신분열증상4.약물중독의 종류1)아편류마약성 진통제에는 아편계 약물과 합성진통제들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강력한 신체적 의존과 중단했을 때 심각한 금단증상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몰핀은 아편에서 정제된 산물이며 헤로인과 코데인은 몰핀에서 반합성 된 것이다. 헤로인은 아마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강력한 약물로 주로 정맥주사 형태로 투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러미나라는 감기약에 들어있는 덱스트로메토판 (dextromethorphan) 이 아편류로써 이 약의 남용문제가 특히 청소년들 간에 심각하다. 투여 초기에는 다행감과 더불어 따뜻한 느낌, 사지가 무거운 느낌과 구갈, 홍조, 가려운 느낌이 오고 이어 졸음이 온다. 처음 사용하는 경우에 불쾌감, 오심, 구토 등 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용량이 증가하면 주의력과 기억의 장애, 언어장애, 판단장애,며 용량 이 증가되면 경련, 혼수상태에 빠진다. 금단증상은 투여 중단 6-8시간 후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36-72시간에 최고조에 달한다. 금단 증상으로는 아편류 약물을 찾는 행동과 더불어 온 몸의 통증, 복통, 오심, 구토, 설사, 발열, 불안, 맥박과 혈상 상승, 불면 등이 나타나고 경련도 일어난다. 치료는 중독상태에 대한 아편 길항제 투여와 금단을 위한 메타돈 methadone유지 요법이 사 용된다.2)중추신경자극제암페타민과 히로뽕 등이 속하는데 잠을 쫓아주기 때문에 높은 각성상태를 요하는 직업의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체중조절 목적으로 사용하다가 남용되기도 한다. 이런 약물은 쾌감을 주고 음악이나 색깔 등 웬만한 것도 상당히 자극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사실이다. 피곤하지도 않고 용기를 주며 힘을 솟게 한다. 일시적으로 뇌를 자극하기 때 문이다. 그러나 이런 약물은 또한 신경 흥분상태를 야기시켜 약효가 떨어지면 굉장히 피곤해지고 잠 이 쏟아진다. 그래서 또 약물을 찾게 되는데 다음에는 양이 늘어나 많이 먹지 않으면 그전 과 같은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약물은 쾌감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불쾌감도 자극해서 과다 복용하면 흥분, 불 안 공포, 착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 장기 복용하면 정신분열증과 유사한 정신병적 상태를 유발해 망상, 과격함, 폭력행동, 과대망상, 모욕적 내용의 환청, 환시, 과잉 성적 행동, 착란 등 이 일어난다. 치료는 항정신병 약물을 사용하며 환자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극을 줄이고 조용한 방에 둔다.3)코카인중독증상은 암페타민과 유사하고 자신감, 능률 상승의 기분, 생각이 빨리 돌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예민해지고 긴장, 불안, 분노 공격성이 증가한다. 약물에서 깨어날 때 심한 불쾌감을 경험하므로 이것을 못 견디고 다시 복용하게 되 는 것이 다. 암페타민처럼 피해망상, 성욕 증가, 환청, 괴상한 행동, 폭력 등을 보이는 정신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살인도 불사한다. 치료는 암페타민과 유사하다.4깔이나 촉감이 풍부하게 느껴지고 미각, 청 각, 후각 등이 예민해진다. 음악소리가 색깔로 보이는 등 감각의 변형도 일어나지만 환각 작 용이 끝나면 불안, 공포, 무서운 환각으로 인해 자살이나 살인 등도 일어날 수 있다. 장기 복용자들은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잠깐 동안씩 강한 환시와 같은 중독 때 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 이를 '지속적 환각제 지각장애flash-back'이라 한다. 심한 정신병적 상태에서는 역시 항정신병 약물을 투여한다.5)휘발성 용매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본드나 부탄가스 등의 휘발성 용매 남용이 문제가 된다. 싸 고 합법 적으로 구할 수 있으므로 가난한 청소년들이 많이 남용한다. 플라스틱 또는 종이 봉지나 깡통을 통해 또는 헝겊에 무쳐 코로 흡입하는데 중추신경계를 억제한다. 이 약물은 빠르게 흡수되어 5분 만에 뇌에 도달해서 30분 내지 수 시간 지속된다. 1/5가 폐로 배설되지만 나머지는 간에서 대사 된다. 중독 증상으론 붕 뜨는 느낌, 또는 공포감, 착각, 환각, 신체 크기의 왜곡, 흥 분, 피해망상, 충동성, 난폭성, 기억상실 등이 일어난다. 장기 사용하면 치매와 대뇌 위축이 오고 백혈병, 신장 및 간 기능장애, 호흡마비나 신장마비 로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다. 치료는 흡입중단과 의학적 합병증 치료를 병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청소년 교육 을 통한 예방이 중요하다.6)카페인하루 500mg 의 카페인을 먹어야 한다면 이는 카페인 중독이다. 카페인 500mg이 라면 커피 4잔, 홍차 8잔, 콜라 12잔에 해당한다, 카페인은 각성제이므로 뇌를 자극해서 잠을 쫓고 피로를 모르게 하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 며 소변을 마렵게 한다. 각성 효과 때문에 머리가 맑아지고 움직임이 민첩해진다. 그러나 이 는 기분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자극에 민감하게 하고 불면증과 긴장성 두통을 일으키게 한 다. 한꺼번에 커피 75-100잔 (카페인으로는 8-10g)을 섭취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일단 커피에 중독이 되었다면 끊기가 어렵다. 끊으면 여러 가지 금단 증상이가능성이 높다. 기분이 늘 우울하므로 뭔가 산뜻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카페인이 든 음료수나 음식물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악 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위궤양이나 심장부정맥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악화시킬 수 있다.7) 니코틴담배의존을 하나의 정신과적 병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일단 한 개비를 피우면 85%가 계속 피우게 된다고 한다. 담배 한 개비에 0.5mg의 니코틴이 들어있으며 니코틴은 흡입 후 15초 이내에 뇌 에 도달한 다. 단기적으로 니코틴은 뇌를 자극하지만 장기 사용할 때에는 뇌혈류 양을 감소시키며 말초근육을 이완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내성이 빨리 나타나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담배 개수가 점차 늘어난다. 독성이 있어 다량에 호흡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다. 60mg이면 담배 120개피에 해당하는데 신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단 증상은 담배 끊은지 90-120분 후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24-48시간에 최고조에 달하며 수주내지 수개월간 지속된다. 금단증상으로는 담배에 대한 갈망, 긴장, 불안정성, 주의집중장애, 두통, 졸음, 수면장애, 소 화기장애, 쉽게 화를 냄, 맥박과 혈압 강하, 입맛이 좋아지고 체중이 느는 증상들이 나타난 다. 치료는 혐오요법 ,집단치료, 니코틴패취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전반적 성공률은 대개 20% 정도이다. 일년 지나도록 금연하면 성공률이 높아진다. 니코틴 패취와 담배피지 않고 식사하기, 운전하기, 사회생활하기 등을 학습하면 성공률을 60%까지 올릴 수 있다. 가족이나 전 흡연자들의 지지가 효과적이다.5. 치료 방법급성 중독의 치료는 해독 및 생명 보존 치료이고 만성 중독의 치료는 신체적 의존과 심리적 의존의 치료 두 가지로 나뉜다. 신체적 의존이 없는 경우에는 심리적 의존에 대한 치료가 시행되며 이는 정신치료이다. 신체적 의존이 심한 경우 개인의 의지로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강제 입원 혹은 자의 입원한 상태에서 약물 치료 등으로 치료해야 한다. 신체적 의존 상태가 해결되면( 즉 금단 증상 된다.
1. 관례(계례)의 유래언제부터 관례의식이 행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주자가례에 관례 조항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 이미 주자가례와 비슷한 관례의식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주자가례가 전래된 것이 고려 말엽이라, 사대부 양반 사회에 널리 행하여지기는 조선 초엽이 아닌가 한다.「고려사」 광종 16년 (서기 966년) 기록에 "왕자에게 원복을 입혀 태자로 삼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의종 「상정례」에 "왕자에게 원복의 의를 행하다." 하는, 기록이 있어 이를 관례로 보는 일설이 있으나, 원나라의 영향을 크게 받던 시대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원나라의 의복을 입혔다는 기록일 것이며, 그 이상의 의의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것은 신라의 화랑제도이다. 이 제도는 15세가 되어 화랑이 되면, 5가지 계율을 지켜야 하였다. 주자가례를 쓴 것이 명나라 초엽인 서기 1380년대인데, 화랑제도는 신라 24대 진흥왕 때인 서기 550년경이었다.관례를 치르는 연령은 15세 이상이 되어서 이루어지다가, 조선 중엽 이후 왜란과 호란을 겪고 조혼의 풍습이 생기면서부터 관례를 치르는 연령이 낮아져 10세 전후에 관례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10세 전후가 되면 관례의식을 치르지 않고도 그냥 초립이나 복건을 씌우는 풍습이 생겼다.이러한 관례의식이 오랜동안 전해 오는 동안 지역과 가문에 따라 조금씩 변모되었다. 그래서 조선 숙종때 이재가 편찬한 「사례편람」에 적힌 그대로를 따르기 힘들어 갑오경장을 전후하여 개화사상이 퍼지면서 그 의의를 잃어가다가 고종 32년인 서기 1895년에 단발령이 내린 후로는 우리나라에서 관례의식이 사라졌다. 관례가 사라지게 된 원인은 이러한 冠禮가 사대부 집안을 중심으로 한 의례였으므로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후기에 와서 관례가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혼례 전에 바로 상투를 틀거나 쪽을 찌는 등 혼례에 포함된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원그때부터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우하였다. 한편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 주는 의식으로서 계례를 행하였다.계례와 관례는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묻는 예이다. 아들로서, 아우로서, 또 젊은이로서 책임 있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니 그 예(禮)가 실로 중대한 것이다."고 하였다.이와 같은 관례의식은 고려시대에도 기록이 있으나, 주자가례의 유입과 더불어 조선시대에 정착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관례의 연령이 가례의 규정대로 지켜진 것은 아니다.관례와 계례를 하면 이제 어린이가 아니고 어른이기 때문에 대접이 달라진다.말씨 : 전에는 낮춤말 '해라'를 쓰던 것을 보통말 '하게' 로 높여서 말한다.이름 : 이름이 없거나 함부로 쓰던 것을 관례와 계례 때 지은 자(字)나 당호(堂號)로 부르게 된다.절 : 전에는 어른에게 절하면 어른이 앉아서 받았지만 답례(答禮)를 하게 된다.3. 관례(계례)의 복식관례자(남자)의 복식은 초가례에는 바지, 저고리, 조끼, 전복 또는 사규삼을 입고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나온다. 재가례에는 혁대를 두르고 가죽신을 신고 나온다. 삼가례에는 관복을 입고 사모관대를 쓴다.계례자(여자)의 복식은 초가례에 홍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는다. 재가례에 두루마기를 입고 아얌을 쓴다. 삼가례에 원삼, 족두리를 착용한다.4. 관례(계례)의 절차1) 관례(冠禮)젊은이는 관례(冠禮)를 행하여 성인이 되면 자기를 길러 주신 부모님과 자기를 교육시켜 주신 스승님,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더욱 깊은 은혜를 깨닫고,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관례(冠禮)는 매우 뜻 깊은 행사이며, 중요한 사례(四禮)의 한 절차이다.◈ 관례(冠禮)의 진행(1) 시기결정우선 관례(冠禮)를 올릴 시기를 결정한다. 《사례편람(四禮便覽) 에 의하면, 남자는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관례를 행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15세 이상이 되어야 예(禮)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조건은 당사자의 부모가 기년(朞年: 1년 동안 입는 상복. 즉 조관례일 하루 전에는 대청의 동북쪽에 휘장을 쳐서 관례를 올릴 장소를 마련한다. 그리고 관례일이 되면 식장에는 병풍을 치고 돗자리를 깔며 탁자를 준비하고, 정갈한 주안상을 마련하여 진설(陳設)을 하며, 아침 일찍 관복(官服)을 꺼내어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한다.모든 준비가 다 되면, 주인 이하 차례대로 서서 빈객을 기다린다. 빈객이 찬자(贊者:홀기(笏記)를 맡아 보는 사람.)와 함께 도착하면, 주인은 그를 맞이하여 방으로 안내한다.(5) 초가례(初加禮)처음 행하는 예를 초가례(初加禮)라고 한다. 초가례는 빈객이 관례자에게 읍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관례자는 쌍계(雙 : 쌍상투)를 하고 예복인 사규삼(四揆衫: 예로부터 관례 때 입던 예복.)에 늑백(勒帛: 허리띠.)이라는 띠를 두르고, 채리(彩履: 무늬 있는 신.)를 신고 자리에 나와 꿇어앉는다. 옆에 시중을 드는 찬자가 관례자의 머리를 빗겨 상투를 틀고 망건을 씌우면 주례가 치관(緇冠: 유관)을 들고 나와 관례자 앞에서 축사를 읽은 뒤, 치관과 계( )를 꽂고 건(巾)을 씌운다. 그리고 축사를 한다.이어 찬자가 관례자에게 띠를 둘러 주면 관례자는 방으로 들어가 사규삼(四揆衫)을 벗고 심의(深衣: 옛날 높은 선비가 입던 옷.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 모양의 옷이며, 검은 비단으로 가장자리를 둘렀음.)를 입으며, 큰 띠를 두른 다음 그 위에 수(修: 무늬 있는 신.)를 더하고 검은 신(履)을 신고 방에서 나와 남쪽을 보고 앉는다.(6) 재가례(再加禮)관례자가 정해진 장소에 앉아 있으면 빈객(賓客)이 관례자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다. 이어 찬자는 건을 벗기고 빈객이 초립(草笠: 관례를 하는 어린 사람이 쓰는 갓,. 누런 빛깔의 풀로 만든다.)을 씌운다. 관례자는 방으로 들어가 심의(深衣)를 벗고 조삼과 혁대를 두르고 혜(鞋)를 신고 나온다.(7)삼가례(三加禮)관례자가 정해진 자리에 꿇어앉아 있으면, 빈객(賓客)이 나아가 축사를 하고 찬자(贊者)가 초립을 벗기면 빈객(賓客)이 복두(사모관대 비슷한 관인데, 턱이 지지나와 선생과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절을 한다.2) 계례({禮)관례가 남자의 머리를 빗어 올려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쓰는 의식임에 대하여 계레는 여자의 의례이며, 여자가 성인이 되었음을 뜻하는 의례이다. 《사례편람(四禮便覽) 에는 여자가 혼인을 정하면 계례를 행한다 하였고, 혼인을 정하지 않았어도 여자가 15세가 되면 계례를 행한다고 하였다.계례에는 어머니가 중심이 되고, 친척 중에서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 부인을 주례(主禮)로 삼아 실시하는데, 계례({禮) 사흘 전에 주례(主禮)를 청한다. 계례({禮) 당일이 되면 날이 밝는 대로 의복을 준비하고 차례대로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례가 도착하면 주부가 나아가 맞아들인다. 주례가 계례자에게 비녀를 꽂아 주면 방으로 가서 배자(褙子: 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매와 단추가 없는 짧은 조끼 모양의 덧옷.)를 입는다.이어 간단한 예를 올리고, 주례가 계례자에게 자(字)를 지어준다. 주인은 계례자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조상에 고한 다음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를 베푼다 그러나 《예서(禮書) 에 있는 이와 같은 계례가 실제로는 남자의 관례만큼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았으며, 관례와는 달리 계례는 혼례 속에 흡수되어 실행되고 있었다.혼례에서 가장 중요한 대례가 신부집에서 행하여지며, 신랑이 신부집 앞마당에 들어서는 것을 목격한 다음에야 신부가 머리를 빗기 시작하며, 쪽을 틀고 비녀를 꽂는다. 보통 머리를 빗어 올리고 쪽을 트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신랑이 전안지례(奠雁之禮)를 행하고 대례상 앞에 서서 반 시간가량을 기다린다.대례가 끝난 뒤에도 신부는 족두리와 댕기, 그리고 원삼을 그대로 입고 있다가 신방(新房)에서 신랑이 벗겨 주어야 한다. 즉, 계례({禮)로서 처음 머리를 올리며 신랑을 만나게 되고, 신랑이 그것을 풀어 주는 것이 전통사회에서의 습관이고 계례( {禮)의 연장인 것이다.◈ 계례({禮)의 진행계례는 관례와 함께 전통의 성년식으로 여자에게 머리를 올리고 쪽을 지고 비녀를 꽂아 주는 의식이다. 계례는 관례행되고 있는 성년의 날이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성년주간 제정 과정{시행 시기시행 내용1973년 4월 20일성년의 날 제정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1974년 4월 20일성년의 해로 지정1975년부터 5월 6일성년의 날 (5월-청소년의 달)1985년부터 5월 셋째주 월요일성년의 날1997년부터 5월 셋째주성년주간2) 시기우리나라는 민법에서 남녀 모두 만 20세가 되면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어있으므로 만 20세가 되는 생일이나 그 해의 5월 셋째 월요일인 성년의 날에 행하게 된다.3) 방법의식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직장에서 이날을 기해 20세가 된 사원을 격려하는 모임을 가지거나, 성년이 된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자축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남녀 모두 성년이 되는 나이가 되면 본 받고 존경할 만한 학문과 덕망을 갖춘 어른을 모시고 그이 집례(執禮)하에 성년의식을 거해함으로써 성년이 되는 남녀에게 성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하고 어른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느끼게 해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참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4) 실태연구대상자들이 알고 있고, 현재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성년식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경우와 친구 또는 선배들과 함께 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나뉜다.(1) 가족과 함께 하는 경우가족끼리 선물을 주고, 간단히 케이크나 다과를 곁들인 행사를 한다.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축하의 덕담을 듣고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각성을 한다.아버지로부터 술자리 예절을 배운다.주위사람들이 선물로 축하하며, 좋은 말씀과 충고를 한다.반지나 정장(正裝) 등을 선물을 받는다.(2) 친구 또는 선배들과 함께 하는 경우함께 만나 식사 후 술집으로 간다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신다. (폭탄주 또는 소주 20잔 마시기)나이트클럽, 성인전용극장, 성인유흥주점에 가 본다.친구들끼리 꽃 20송이 (장미가 가장 많음), 향수, 화장품, 케이크 등 선물을 주고받는다.이성친구와 오감(五感)에 맞는 선물을 한다(장미, 향수, 사랑한다는 말, 쵸컬릿, 키스)남성의 없다.
문학기행... 교수님이 문학기행이라는 과제를 내주셨을 때 조금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문학기행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였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고 교수님이 문학기행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 조원을 통해 문학기행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난 고민에 빠졌었다. 무작정 유명한 곳과 멀리 가기 보다는 나의 주변에 있는 가까운 곳부터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문학기행을 갈만한 곳을 찾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생가와 신석정 선생님의 생가 였다.결국 내가 결정한곳은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즉, 국문학자 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작품도 알고 있고 생가가 익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가볼 기회가 없어 항상 무심히 잊고 살았던 곳에 가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막연히 익산이라는 것만 알았기에 찾아보니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버스도 근처까지 자주 다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혼자서 다녀올 생각도 했으나 아무래도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주말을 이용하여 아빠와 함께 나섰다. 아빠와 함께 출발 후 나는 길을 몰랐기에 불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아빠가 아신다고 해서 마음 이 놓였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이 무척이나 신이 났다. 과제가 있어 한편으로 무겁기도 했지만 나들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까지 좋아지는 듯한 화창한 날씨가 날 더욱 들뜨게 하였다. 마을 입구에 표지판이 있고 좁은 길이 나있어서 생가의 입구까지 차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생가 앞에는 차량 2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드디어 도착을 하고 차에서 내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를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어렴풋한 생각으로 집 한 채 만이 덩그러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집도 컸으며 기념물로 지정된 명성에 맞게 잘 꾸며져 있었 부엌은 안방의 일부와 이어 달려 있다. 안방 석축에는 칸을 막아서 찬방을 차리었으며 건넌방의 측면과 전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수우제 진수당 등의 현판이 걸려 있는 4칸의 사랑채는 서로부터 2칸이 사랑방, 한 칸의 부엌, 그리고 한 칸의 서재로 구성되었으며, 정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3칸의 고방채는 광, 헛간, 안 변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채의 뒤에는 장독대가 있다. 지붕은 원래 초가였었는데 새마을 운동 때에 기와로 개량하였다가 다시 초가로 환원하였다고 한다.양반의 위엄, 허세와는 거리가 멀고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정갈하면서도 고고한 멋을 풍겼다. 생가 입구에는 대문 대신 정자 하나가 운치 있게 서 있으며 그 앞에 작은 연못이 파여 있다. 연못은 안쪽을 자연석을 이용하여 가지런히 석축을 쌓아 올렸다. 연못을 둘러싼 묵은 산수유와 배롱나무가 더욱 선비의 운치를 자아낸다. 집안 마당에는 장독대, 맷돌, 절구통 등이 고풍스럽게 놓여있었다. 스스로 술복, 제자복, 화초복의 세 복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처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집답게 넓지 않은 집안임에도 사철 돌아가며 꽃과 잎을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잘 자리 잡고 있다. 허세나 야단스러움이 없는 적적한 갖춤 때문인지, 국가나 지방 기념물로 지정된 집들에서 흔히 느껴지는 썰렁한 분위기가 아니라 그 좁다란 무루에 걸터앉아 햇볕이라도 쬐고 싶은 친밀감을 주는 집으로, 우리말과 글을 가다듬는 데 일생을 바친 선생의 채취를 느끼게 한다.가람 이병기 선생은 1891년 이 집에서 태어나 1968년 77세를 일기로 역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1891년 3월 5일 태어난 가람 이병기 선생은 가정에서 한문을 공부하던 중 16 세에 결혼했다. 어느 날, 가람 이병기 선생은 청나라의 사상가 량치챠오의 '음빙실문집'을 읽었다. 그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던 이 책의 내용 가운데 '20세기는 서양ㆍ동양 문화의 결혼 시대이다.'라는 내용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이후 가람은 '개화사상'을 받아들이고, '신학문'의 길로 나가야겠학문을 하려면, 한문에서 벗어나 우리의 말ㆍ글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강습원에 입학한 가람은 중등ㆍ고등과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어서 한글 운동에 뛰어들어 주시경 선생을 도왔다. 한성사범학교를 마친 다음, 전주의 남양보통학교 '훈도'(교원)로 발령을 받는다.1919년 3월 '조선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지자, 훈도를 그만 두고 서울로 올라갔다.28 세 때의 일이다. 미국이나 중국으로 망명길을 찾으려던 중에 일본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나흘 만에 풀려난다.그 후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게 된다. 이 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 다시 1949년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까지 국어 연구의 대표적 학회로 자리를 지켜 온다. 1922년부터 보성고보ㆍ휘문고보 등에서 조선어ㆍ한문 교사로 학생을 가르쳤다. 이 무렵 가람은 본격적으로 시조를 창작하며, 아울러 고전 연구에도 힘을 쏟는다.그의 첫 시조집 '가람 시조집'(1939년)은 오늘날 시조의 고전이 되어 있다. 자연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이 작품들을 시인 정지용은 일찍이 이렇게 평가했다. "시조 창작의 양과 질로 가람의 오른편에 앉을 이가 아직 없다. 송강 이후 으뜸인 그가 근대적 시 정신으로써 시조를 재건한 데 감격하여 진심으로 존경한다."가람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1 년 가까이 옥살이를 겪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 해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고향에서 8·15광복을 맞이한다. 가람은 일제의 협박에도 성과 이름을 바꾸지 않고 '이병기'를 지켰다. 특히 일제 시대 문인ㆍ학자들의 행적을 들추어 '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은 가람을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남긴 일이 없는 영광된 작가'라고 하였다.그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ㆍ전북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하면서 시조와 고전을 연구해 큰 공적을 남겼다. 1968년 77 세로 세상을 떠났다.가람선생은 시조작가요, 국문학자로 학계에 크게 공헌하였다. 고전자료를 많이 수집한 공로도 대단히 옥고를 치러야 했고, 이른바 '창씨개명'에도 응하지 않았다. 증조는 이선인데 문필로 천명되었다. 조부 이조흥은 호를 동우라 하였는데 진사동(수우제가 있는 마을)으로 이사하여 수우제를 일으키고, 청렴한 생활을 하고 효행으로 도천된 분이었다. 청렴하면서도 풍요로운 동우선생의 행덕은 손자 가람에게 지대한 연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그의 묘소는 전북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 뒷산 선영에 있으며, 봉분이 따로 없고 묘비만 서 있고 그 밑에 잠들어 있다. 생가의 뜰악 어디엔가 시조시비가 서 있을 것 같아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그의 시비는 전주시 다가공원과 선생이 일직이 교편을 잡으셨던 여산남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다. 생가로부터 멀지 않은 여산남초등학교 교정에는 가람의 조각상과 함께 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그리고 전주 다가공원에는 가람 서거 1주기인 1969. 11. 30에 호국영령탑을 마주한 곳에 시비를 세워 두었는데, 일제 암흑기에 쓰여진 시조 을 서예가 강암 송성용의 글씨로 새겨 두었다고 한다. 여산 남초등학교의 시비에 새겨진 별이란 시조는 난 노래로 먼저 살고 있던 연시조 이다. 하지만 전주 다가 공원의 시비에 새겨있는 시름이라는 시조는 첨 듣는 듯했다. 여기서 두 시비에 새겨져 있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별 시름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그대로 괴로운 숨 지고 이어 가랴하니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좁은 가슴 안에 나날이 돋는 시름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회도는 실꾸리같이 감기기만 하여라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아아 슬프단 말 차라리 말을 마라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게요 물도 아니고 돌도 또한 아닌 몸이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웃음을 잊어버리고 눈물마저 모르겠다쌀쌀한 되바람이 이따끔 불어온다.실낱만치도 볕은 아니 비쳐든다친구들 외로이 앉아 못내 초조하노라가람 이병기 선생은 살아계실 때 두 번의 상을 받으셨다. 1960년 7월 17일, 학술원공로상을 받으셨전자료들은 거의 전시돼 있지 않아 나를 비롯하여 이곳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의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는 듯싶었다.내가 출발을 늦게 해서 일까 아님 가을해가 짧아져서 일까... 금방 해가져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에게 물어봐 여산남초등학교에 들러 세워져 있는 시비를 보았다. 조각상이 많이 낡아 있었지만 그대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들렀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전주 다가공원에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시비를 벌써 노을이 물들어 차마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역시도 이곳에 한번쯤 와야 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주말에 피곤해 잊고 지내셨었다면서 나의 과제 때문에 조은 구경한다며 말씀을 하셨다.처음엔 막막함으로 이 문학기행이라는 과제를 받아들이고 많은 고민과 걱정의 나날을 보낸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주위의 기념물을 와서 직접보고 간다는 사실에 이 과제를 내주신 교수님께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이 장소를 추천해주고 싶다.교통익산역, 버스터미널에서 222번(좌석버스), 61번(시내버스) 이용, 심막(50분 정도 소요)에서 하차 후 걸어서 20분 거리.자가로 오는 경우 금마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논산쪽으로 7km 가량가면 천호주유소가 보이는데 바로 옆 마을이 여산면 원수리 이다. 주유소 왼쪽 부근에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있다.주변 볼거리-미륵산미륵산은 높이 430m로 아담하지만, 산 전체가 대부분 암벽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등산의 묘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미륵사지사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유물전시관과 미륵사지석탑(서탑), 동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물전시관에는 발굴 당시 출토품 352점을 4개 전시실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익산쌍릉익산시 석왕동 위치하며 금마에서 720번 지방도로를 타고 익산시내로 2.5km 정도 들어가면 나온다.-왕궁리 5층석탑익산에서 전주, 삼례 방향으로 1번국도를 타고 1.5km 정도 들어가면 왼편 낮은 구릉 위에 왕궁리5층석탑이 서 있다. 보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