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뢰아의 마귀론-귀신의 정체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차 례 -Ⅰ. 들어가는 말Ⅱ. 베뢰아에 대한 개괄적 이해Ⅲ. 귀신의 정체에 대한 연구 - 불신자 사후 존재설Ⅳ. 맺음말Ⅰ. 들어가는 말1. ?베뢰아?는 사도행전 17장 11절 곧 베뢰아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에 나오는 지명이다. 이번에 ?목회와 신학?으로부터 필자는 ?베뢰아의 마귀론?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이는 한국교회에서 이미 ?베뢰아?가 단순히 지명을 뜻하고 있지 않음을 말해 준다.2.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이 ?베뢰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 같다. 그러면 ?베뢰아?가 무엇인가? 성락침례교회를 담임하는 김기동목사는 1973년 초부터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가르치다가 1976년 5월부터 그 모임을 ?베뢰아?라 불렀다. 1978년 10월에는 ?베뢰아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그러니까 초기에 ?베뢰아?라는 이름은 김기동목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모임을 뜻한 셈이다.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권위를 존중한 베뢰아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것이다. 곧 성경을 대할 때에 신학적인 선입관이나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데서 명명된 것이다. 그러니까 김기동 목사가 평신도 시절에 성경을 75독 한 후 성경의 사건들을 하나로 터득한 것이 오늘날 ?베뢰아?가 있게 된 하나의 계기이다.3. 1970년대 말부터 베뢰아아카데미를 통해서 김기동목사의 신앙과 신학은 공개적으로 개진되었고, 1980년대 들어서서는 그 신앙과 신학이 도서출판 베뢰아를 통하여 다수의 책들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직?간접으로 김기동목사로부터 배운 이들의 활동이, 신학적 입장에 따라 긍정적으로 보든지 부정적으로 보든지 한국교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김기동목사와는 교단이 다르기도 하고 신학이나 목회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고 ?베뢰아?가 아닌 이 최초로 창조하신 것들이 천사들이다. 천사는 사람보다 훨씬 이전에 창조된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천사들의 하늘을 지으셨고, 이 하늘을 우리는 ?하나님의 하늘? 또는 ?신들의 하늘?이라고 다른 하늘들과 구별하여 부를 수 있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길 피조된 영들인지라 그들의 처소가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그들이 거할 하늘을 지으셨다.모든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원히 사시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도 영원히 사는 은택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영존하시지만(출 3:14), 천사들은 스스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으로 영생할 수 있는 자들이다.그런데 어느 때 하나님을 순종하던 한 천사에게 갑자기 하나님을 거부하는 의지가 나타나서 마음 속에 하나님께 반역할 마음이 생겨 났다. 이 천사 곧 사단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자기 지위를 떠났다. 그래서 하나님께 반역하고 도전한 자를 진멸하는 일이 하나님의 아들께 맡겨진 것이다.이처럼 사단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가두기 위하여 우주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그를 원래의 하늘에서 내어쫓아 가두셨다.그리고 사단이 반역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멸하실 계획 속에 인간 창조가 이미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사들이 반역했을 때 하나님은 천지와 인간을 만드셔서 반역한 사단과 그 사자들을 멸하실 계획을 세우셨던 것이다.하나님은 천지와 인간을 지으셨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셨으며,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여 성령을 보내셨으며, 장차 다시 오셔서 성도들을 부르시고, 천년왕국 이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지옥에 보내시고 영원한 나라로 성도들을 인도하실 것이다.3. 다시 말해, 성경은 모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말씀한다(골 1:16). 예수 그리스도는되어 있지 않는 생명 있는 주장이요 능력이 따르는 이론이라는 점이다. 베뢰아는 권능의 신학이다.세째, 영적 특성이다. 이는 성경이 세 영적 존재들 - 하나님, 천사, 인간 - 을 다루고 있음에 주목하여 이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늘들의 위치를 공간적으로 이해시켜 성서적 우주관을 갖게 하며 이 하늘들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존재들의 유기적 활동을 규명한다. 하나님, 성령, 천사, 귀신에 대하여 정확히 알게 하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게 한다.그리고 원리 면에서 베뢰아신학을 조명하면 세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첫째, 절대실존주의. 베뢰아는 세가지 영적 존재들인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의 실존을 믿으며, 세 존재의 유기적인 관계를 다룬다. 성경에는 세 하늘이 나오는데, 베뢰아는 이 하늘들에서 세 존재들이 협력하고 반목하는 것들을 다룬다.둘째, 절대보편주의. 베뢰아는 소수의 특정인들만이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누구든지 믿는 자는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세째, 절대경험주의. 베뢰아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체험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역사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Ⅲ. 귀신의 정체에 대한 연구 -불신자의 사후 존재설베뢰아는 귀신은 ?불신자의 영적인 사후 존재?라고 주장한다. 베뢰아의 이 주장이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비판의 표적이 되어 왔다. 이는 김기동목사가 지난 60년대부터 주장해 온 것으로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자가 귀신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그러므로 필자는 베뢰아 마귀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이 주장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구를 요약 제시하고자 한다.1. 어떤 사람들은 마귀론이 베뢰아신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마귀론 또는 귀신론은 베뢰아 신학체계의 일부일 뿐이다. 마귀론은 하나의 지식의 영역이지 신앙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에게만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능력이 제한되고 있음을 인은 완쾌되었다.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의 신유와 거룩한 이적 , 서울:도서출판 베뢰아, 1989, pp. 47-50.)김기동 목사의 이 최초의 축사(逐邪) 사례는 베뢰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사례를 통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교훈을 받는 점이 있다.우리들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특별한 영역에서는 후진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런데 귀신을 쫓는 일에 관해서는 김기동목사가 누구보다도 더 많고 실제적인 경험을 하였기에 그의 귀신론이 어떠한지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기의 종래 입장과는 다르다 하여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귀기울여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배운 잊지 못할 교훈은 귀신을 예수 이름의 권위로 객관적으로 꾸짖는 것이다. 귀신아, 예수께서 너를 저주하셨다. 나가라!3. 사단과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 귀신이라는 학설은 복음적인 보수신학자들의 전통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이유를 살펴보자.첫째, 마귀와 귀신의 이름이 유사성이 있다. 마귀는 바알세불 (마12:26) 곧 ?귀신의 왕?이라고 불리운다. 이밖에도 마태복음 25장 41절의 마귀와 그 사자들 등의 표현은 귀신을 타락한 천사로 보는 듯하다.그러나 이는 마귀의 나라에서 실제로 마귀가 지배자이며 귀신은 그 수하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것 자체로는 귀신이 타락한 천사라는 분명한 증거가 되지는 못함을 알 것이다.둘째,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의 활동이 유사성이 있다. 악한 천사들이 하나님과 사람을 대적하여 싸우듯이(계 9:13-15), 귀신들도 사람 속에 들어가 지배하려 한다(마 17:14-18).귀신은 마귀의 특성을 갖는다. 즉, 이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1) 병을 주며 (마 9:32; 12:22; 눅 4:40), 2) 죽이려 하고(막 9:22), 3) 자신들은 무저갱에 가며(눅 8:31 cf.계 20:1-3), 4) 하나님의 능력 앞에 두려워 떤다(약 2:19).이것도 귀신이 악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마귀의 수하에 있으들어온다(마 12:43-45).5. 어떤 이들은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라는 주장은 성경의 진리가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여러 나라의 민속적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베뢰아는 한국의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혼합이라고 비난한다.그러나 불신자의 사후 영혼설은 고대 희랍을 포함하여 동서고금에 있어 광범위한 영향을 끼쳐 왔다. 초대교회 당시 요세푸스나 필로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초기 기독교 저자들이 이 설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중세의 교리시대를 거치면서 어느새 이는 타락한 천사설로 대치되어 버렸다.물론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 전래의 귀신관이 대부분 미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상 문화사적으로 세계각국에 ?불신자의 사후 영혼설?이 퍼져 있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그러기에 우리는 번역자들 역시 성서적 귀신관이 샤머니즘의 귀신관과 오해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번역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귀신?이라는 기존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단지 귀신의 정체에 관하여 개역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귀신?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쓸 뿐 성경의 가르침대로 가장 강력한 축사활동을 하고 있는 베뢰아를 가리켜 샤머니즘 운운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6. 어떤 이들은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 귀신이 될 수 없다는 분명한 이유는 불신자의 사후 영혼이 귀신이 된다는 내용이 성경 말씀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불신자가 죽으면 음부에 가서 고통 중에 있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고(눅 16:23), 음부에 간 영혼이 이 세상의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눅 16:28). 또 귀신이 어떤 질병에 영향을 끼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질병을 한 가지 공식으로 모두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이며, 그 결과 문제가 발생하며, 김기동목사의 목회에 있어 훌륭한 점이 많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지만 건전한 복음적 신앙생활의 일면에 혼란을 초래케 될 우려가하였다.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에 관한 연구목 차1. 서 론2. 인간의 구조와 귀신의 존재1) 인간의 구조2) 귀신의 존재가. 악한 영들의 조직 구조나. 악한 영들의 움직임다. 악한 영들의 활동범위3.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구별1) 공통점2) 차이점5. 귀신들림에 대한 성경적 교훈6. 목회현장에서의 올바른 대책참고문헌1. 서 론상담사역을 하는 저로서는 종종 만나는 것이 귀신들린자(또는 정신질환)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상담가로서 나는 어떤 판단과 행동을 취할 것인가? 가장 먼저 그리고 당연히 나오는 행동은 기도(또는 안수)이다. 그리고 귀신축출(또는 신유)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무감각, 더욱 악해짐을 경험을 한다.과연 ‘어떤 상태가 귀신들림이고 어떤 상태가 정신질환인가’는 목회 현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판단을 잘할수록 당사자와 상담자 모두가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예고 없이 병자를 데려옴 또는 갑작스런 발작) 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그러므로 이 연구를 통하여 제 자신이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에 대하여 개념과 대처 방법을 정립하고자 한다.2. 인간의 구조와 귀신의 존재1) 인간의 구조귀신들림이나, 정신질환은 모두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먼저 인간의 존재와 구조를 살펴봄으로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인간의 구조에 대하여 이분설(二分設)과 삼분설(三分設)로 주장을 하지만 본인은 이분설을 지지하고 있기에 진행을 빨리 하기 위하여 이분설의 근거만을 제시하고자 한다.이 이분설은 간단히 말해서 인간을 물질적인 요소와 영적인 요소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로서 성경의 근거로서는 구약에서 창2:1,7에 사람의 구성분(構成分)은 신체(흙)와 영(생기)의 두 부분으로 말하고 이 두 요소가 합하여 통일성을 구성했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도 마10:28에서 보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라고 하고 있다.또 고전5:3에서도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관심을 갖고자 하는 분석적 사고(分析的 思考)내지 구별적 입장 또는 양적이며 숫자적인 구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육체와 영혼이라는 두 요소가 유기적 관련성 안에서 하나의 온전한 통일체를 이룰 때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이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는 인간에게 귀신들림이나, 정신질환은 어느 영역에 존재하는가는 귀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다루는 것이 보다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2) 귀신의 존재가. 악한 영들의 조직 구조사단의 명칭과 그 그룹을 먼저 살펴보면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 보면 “큰용이 내어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라고 하면서 큰용, 옛뱀, 마귀, 사단을 동일시하고 있고 또 ‘그의 사자들도’란 표현으로 볼 때 악의 세력은 우두머리격인 존재와 추종자로 나눌 수 있다. 이 사단을 살펴보면 영적인 존재(엡2:2)로서 인격을 지니고 있고, 인간보다 뛰어난 영적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피조된 존재(골1:16)로서 제한적일 뿐이다.)하지만 이 악한 영들은 거짓말쟁이(요8:44)로서 진리가 그 속에 없고 온 천하를 꾀는 자(계12:9)로서 성경에서 나타난 특성을 보면 간교하다(창3;1), 헐뜬는다(욥1:9), 사납다(눅8:29), 권세를 지녔다(엡2:2), 교만하다(딤전3:6), 비겁하다(약4:7), 악하다(요일2:13), 궤계에 능한(엡6:11)) 존재인 것을 알 수 있다.나. 악한 영들의 움직임마귀는 세상 사람(불신자)을 그의 간교함으로 진리를 거부하게 하여(눅8:12) 복음에 대해 무지하도록(고후4:3-4) 만들어서 거짓 종교(이단, 사술, 강심술, 마술등등)를 믿게 하여 세상의 여러 가지 풍속을 좇게(요일4:1-4)한다. 또한 성도를 향한 방법으로는 참소와 비방(계12:10)을 하고 특히 하나님에 대한 불신(사47:10-11)과 통하여 영적고통, 육체적인 고통, 시기, 미움, 다툼, 거짓등을 가져온다.다. 악한 영들의 활동범위그러나 귀신은 하나님의 자녀(성령을 지닌 자)에게는 속임수를 사용할 수는 있어도 점령은 하지 못한다. 본 과목의 교재인 Warner선교사님도 “하나님과 사단(성령과 악령)은 같은 몸에 같은 시간에 거할 수 없다. 혹은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어떤 마귀도 그리스도인의 몸에 거할 수 없다.”) 즉 그리스도인에 대하여서는 인간의 의지, 이성, 감정에는 들어올 수 있지만 영에는 악한 영이 들어올 수가 없다. 그러나 불신자에게는 거할 수가 있다.)3.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구별귀신들림과 정신질환에 대하여 구별하는 것에 대하여 간단할 수도 있고, 아주 복잡할 수도 있다.정신의학의 전통은 영적 현상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귀신들림’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불신앙을 가진 의사는 귀신들림에 대하여 완전히 무시하고 정신질환(병명;정신분열증, 급성반응성 정신병, 해리장애등등)으로 진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의학적인 개념을 무시하는 종교인은 정신질환에 대하여 귀신들림으로 판단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늘 접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에 대하여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정신과 의사인 이만홍교수)는 “정신질환과 귀신들림의 현상은 그 현상학적인 증상들이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증상의 모습만을 보아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판단의 조심성을 말해 주고 있다.그러나 또 다른 정신과 의사인 이무석교수)는 거라사 귀신들린자를 근거로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자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고) 있어서 우리의 개념정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1) 공통점①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고립된다. 정신질환자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좌절과 절망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 한다.② 제 몸을 상하게 한다. 정신질환자는 자신이 미워서 자해행위를 한다.③ 옷을 벗고, 소리를 지르며, 혼자 얘기하고 인이 있는 것이고 귀신들린자도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귀신의 영향력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런 형상만 가지고 판단하면 오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계속하여 이무석교수의 글을 살펴보자.2) 차이점)① 귀신들린자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다.(예수님을 알아봄, 쇠사슬과 쇠고랑을 깼다, 돼지 2,000마리를 죽임)② 귀신들린자는 분리된 개성, 즉 자아정체를 갖고 있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정신질환자는 대부분 현실적인 대화가 곤란하고 예수님을 혐오하지 않는다.③ 귀신들린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기도와 금식)으로 급속한 치료가 가능하다.④ 정신질환자는 외골수적 혹은 고독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어린시절 사랑의 결핍이 있었고, 성장과정이 불행하다. 환경적인 어려움이 발병 당시에 존재하고 있다.즉 정신질환자는 인간의 힘(육체적, 영적) 이상을 지니지 못하다는 점과 정신분열로 오는 혼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생의 시점과 원인을 추적하면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은 구별이 가능한 것이다.그렇다면 이제 정신질환을 구별하므로서 하나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정신질환은 전문가(정신과 의사)에게 인도해야 하고 기도로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들린자라면 정신과 의사의 몫이 아니다. 그들 역시 인간의 힘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이 부분은 당연히 영적문제를 다루고 있는 목회자의 몫일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전문가(정신과, 심리학,교육학)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들림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즉 서로가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기에 각자의 영역안에 있는 환자를 돕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자 위치일 것이다.5. 귀신들림에 대한 성경적 교훈인간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될 때 영적 죽음을 가져온다. 영적인 죽음을 당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악의 세력이다. 즉 거듭나지 않은 자의 영은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직접적이든지 간접적이든지 영향을 받고 있다.그런받았던 다른 부분들이 치유된다.) 귀신들림은 질병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모든 병이 귀신에 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병중에는 귀신에 의한 것도 있다.귀신들린 자는 이중적 의지를 가지며, 자신의 인격이 소멸되거나 압도당하여, 이성이나 선택의 능력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빼앗긴다. 하지만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하고 성령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자에게는 침범하거나, 점령할 수는 없다. 다만 영적인 혼란을 가져오도록 속임수는 쓰고 있고 특히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지 않아서 영적인 죽음 상태에 있는 자에게 있어서는 활동할 수 있다.성경에서 귀신들림을 보여주는 부분은 수없이 많이 있다.)귀신의 존재와 활동은 사실이며 명백한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부정될 수 없다. 그러나 귀신은 무속신앙(巫俗信仰)에서 처럼 인간의 운명과 우주를 지배하고 우위(優位)에 있는 존재로 달래고 비위 맞춰 줌으로써 달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신자의 신분으로 쫓아내고 명령할 대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여하신 능력이 우리들에게 있기에 그 분이 이룩하신 승리를 이어서 성취하여야 한다.그러나 이런 귀신추방은 Catholic의 구마식이나, 비성경적인 Exorcism처럼 반복적 주문과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귀신들이 싫어한다는 소리, 색깔, 식품등도 모두 근거가 없다. 성경은 오직 예수 이름과 권능으로 귀신이 쫓겨난다는 것을 확언하고 있으며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모신 신자들에게 더 강한 확신이 온다.6. 목회현장에서의 올바른 대책간혹 신문지상이나 TV를 통하여 우리는 끔직한 사고와 장면을 본다. 작년에도 기도원에서 귀신들린 자를 치료한다고 발목에 작고를 채워서 수용된 사람들을 보았고, 심지어는 기도원에서 안찰을 한다고 하여 사람을 죽게 한 사건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기도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고, 목회 현장에 있는 저로서도 간혹 귀신축출과 신유의 능력을 위하여 기도를 한다. 분명히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시다.
디지털미디어와 기독교목 차Ⅰ. 서론 : 디지털 시대의 전개Ⅱ. 본론 : 디지털시대의 변화들1. 기술적 변화⑴ 초고속 정보고속도로⑵ 인터넷⑶ 위성방송⑷ 멀티미디어2. 사회적 변화⑴ 전자 민주주의의 실현⑵ 생활 양식의 변화⑶ 생산양식의 변화⑷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변화⑸ 가상 공동체의 등장Ⅲ. 디지털 사회에 대한 평가1. 디지털 사회에 대한 일반적 평가2. 기독교적 윤리적 평가Ⅳ. 디지털 사회에서의 교회Ⅴ. 결론Ⅰ. 서론 : 디지털 시대의 전개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신문을 펴도 ‘디지털‘. ‘비트‘ , ‘인터넷‘ 등 생소한 개념들이 가득하고 지하철을 타도 광고의 대부분이 인터넷에 관해 말하고 있다. 21세기는 디지털 사회라고 했던가. 빌 게이츠의 예언처럼 인류는 여태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의 장정을 시작한 것 같다.새로운 미답자로서의 미래사회에 대한 논의는 기술, 윤리, 사회, 문화 등의 갖가지 차원에서 다양하게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미래사회를 이끌게 될 중심에 디지털이 있다는 것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제 3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기술은 모든 데이터를 0과1 이라는 단순 숫자로 바꾸어 처리한다는 점에서 그 효율성과 경제성이 탁월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인간의 삶과 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측면에서 비인간 문화의 등장이라는 감상적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미 깊숙하고도 다양한 모습으로 침투해 있다. 컴퓨터를 통한 이 메일의 일상화, 기업 간 전자상거래, 디지털 기술의 일상화는 인터넷이 보급률이 우리나라 전체 1300만 가구 중 300만 가구를 넘어서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미 구체적이고도 보편적 현실로 다가와 있다.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 기술변화를 넘어서 궁극적인 사회변화를 이끌게 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21세기 인류 사회의 의식, 문화, 생활방식은 물론 국가 운영으로 한 기술 습득의 차원에서 대응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교회가 하나님을 알게 하고 사람 사이의 사랑을 가르치는 데 보다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고 할 때 디지털 사회가 어떻게 그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것은 교계의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도 심도 있게 논의가 될 필요가 있다.이 강의안은 디지털 사회라는 변혁과 혼돈의 시기에서 기독교는 목회적 차원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살펴 볼 목적으로 쓰여졌다. 글의 진행 순서는 우선 디지털 사회란 무엇이고 그 내용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이러한 디지털화시대에 기독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로 전개하였다. 미래에 대한 준비차원에서의 개인적인 견해의 피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논의의 줄기는 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언론학적 입장에서 전개되었으며 ,기독교의 역할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디지털 사회가 어떤 것인가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었다.Ⅱ. 본론 : 디지털시대의 변화들1. 기술적 변화디지털 시대 변화의 중심 축은 컴퓨터를 매개로 한 디지털 기술이다. 컴퓨터와 통신기술 그리고 영상이 결합된 멀티미디어 기술의 발전이 디지털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이때 ,디지털 사회의 기본 인프라인 정보통신기술은 국가 경쟁력과 국민생활의 질을 판가름 짓는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몇 년 전부터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자연스러운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통신사업자와 방송사업자 간의 벽을 허물고 효과적인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우리도 이제 정보고속도로 시대에 살고 있다. 통신과 컴퓨터의 결합을 바탕으로 하여 방송과 CATV, 근거리 통신망(LAN), 전화선 등을 모두 단일화해서 다양한 정보를 보다 빠르게 교환 할 수 있는 기반이 날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통신과 컴퓨터 기술의 결합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되고 있자만 앞으로는 더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컴퓨터, 통신송이나 팩시밀리 방송, 데이터 방송 등 다양한 방송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1984년 일본이 최초의 방송위성인 BS-2a를 발사한 이래, 현재 세계 각국이 위성방송을 보유, 설치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위성방송에 결집되어 있는 전자 통신기술, 관련산업의 파급 효과, 문화적 침략에 대한 대비 등이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효과가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직접 위성방송은 정보산어과 전자산업 뿐만 아니라 케이블 TV, 컴퓨터와 연결되어 다른 산업의 활성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올려져 있는 무궁화 위성 1, 2호는 24개의 방송채널을 확보하고 있으며 현재 방송위원회의 사업자 선정이 이루어지면 국제 위성을 포함 향후 몇 년 내에 우리나라에서 시청 가능한 방송 체널의 수는 200개를 넘으리라는 것이 공통된 전망이다. 지금의 4개 방송사를 통한 프로그램이 우리사회의 문화와 청소년들의 교육에 미치고 있는 악영향에 고심하고 있는 각 가정은 그 때쯤에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벌써부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텔레비전 채널의 증가는 송신자아 수신자의 커뮤니케이션이 물리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이동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⑷ 멀티미디어멀티미디어란 컴퓨터, 통신, 방송이 결국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매체로 등장하게 됨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텔레비전의 컴퓨터화 또는 컴퓨터의 텔레비전화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각기 속성이 다른 다양한 미디어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말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체시장이 단일화된다는 점에서 혁명적 시장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선 멀티미디어는 각종 매체가 지니고 있는 장점과 편의성을 고루 갖출 수 있다. 과거 대중매체가 지니고 있던 일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극복하게 될 것이며 컴퓨터가 한계로 갖고 있던 콘텐트의 질적 양적 한계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신문이나 적 시각의 핵심이다.⑶ 생산양식의 변화디지털 사회에서의 기술 혁명의 정점은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이다. 가상 공동체(virtual community), 사이버스페이스 등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의사소통 공간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수많은 정보와 아이디어, 지식이 유통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의사소통의 전 지구화(globalization), 병렬적 커뮤니케이션(parallel communication), 수용자의 위상 강화 등 커뮤니케이션 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고 이는 사회전반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변화는 과거 생산-소비 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의사소통구조와 정보양시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통양식으로서의 컴퓨터 네트워크가 몰고 오는 혁명적인 변화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와 유통 방면에서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유통이 이루어지면 이는 중단 유통업자의 몰락 및 택배산업의 발전이라는 형태로 유통체제의 재편을 가져오게 된다. 더구나 통신망을 통해 곧 바로 전달 될 수 있는 문화 상품과 ‘비트(bit)' 상품은 물리적 공간이동에 필요한 교통수단의 도움 없이 , 네트워크를 통해 곧 바로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전달되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한편 이러한 네트워크의 혁명은 생산부문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정보사회의 정보생산도구는 컴퓨터와 이를 유통할 수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종 정보를 얻고, 결합하여 정보와 지식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료타르(Lyotard)는 탈산업자본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의미와 그의 위상 변화를 검토하고 지식과 정보의 급격한 상품화 과정에서 지식이 갖는 새로운 위상을 추적한 바 있다. 그는 디지털화와 네트워크를 통한 각종 정보의 신속한 전파는 학습 방식, 분류방식, 활용하는 방식, 전유방식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권력관계에 따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비개척지도 식민화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에 기존 현실세계의 권력관계가 그대로 재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도 사이버스페이스는 대화와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양방향적 소통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이 기존의 매스미디어나 일방적인 의사소통구조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강압적 물리력보다는 여론의 영향력과 동의에 근거한 헤게모니가 성립하는 자유로운 여론 형성의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Ⅲ. 디지털 사회에 대한 평가1. 디지털 사회에 대한 일반적 평가디지털 사회에 대한 평가의 핵심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이 가져올 변화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에 모아져 있다.하멜링크 Hamelink 에 의하면 디지털 사회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관점은 경제적으로 그 동안 집중화와 팽창, 표준화, 획일화, 착취 등과 같은 내재적 결함을 가지고 있던 자본주의적 산업생산구조가 종말을 가져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보다 참여적인 정치무대와 분권화된 의사결정, 정보접근 기회 등을 통해 지배 엘리트로부터 비엘리트로의 권력이 이동되는 실질적인 민주화가 이루진다고 한다. 또한 문화적인 면에서는 전자시스템에 의해 인간이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고 늘어난 여가시간을 통해 스스로 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문화를 향유하게 되리라는 것이다.이에 비해 비관론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영속화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기술은 비용 효과적인 분업과 생산과정의 파편화, 제 생산 산 국면의 통합적 통제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그러한 기술을 통해 미증유의 집화된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향수보다는 전지구적인 문화적 획일화를 초래할 것이며 이러한 문화시장의 확대는 그것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독과점 체제를 구축,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환경에 대처하는 자기 메커니즘을 상실케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 한다.어느 관점
예수님의 치유목회 이해와 한국교회 치유사역의 문제점과 갱신에 대한 방향을 제시서 문1. 연구의 목적2. 연구 범위3. 연구 방법제1장 치유(신유)의 이해1. 정의1) 좁은 의미의 신유2) 넓은 의미의 신유(치유)(1) 생리 작용을 통한 신유(2) 자연 법칙을 통한 신유(3) 합리적인 이성 작용을 통한 신유3) 학자들의 신유에 대한 견해(1) 버나드 마틴 (BERNARD MARTIN)(2) 제임스 반 버스커크(JAMES D. VAN BUSKIRK)(3) 데이비 (T. F. DAVEY)(4) 에벨린 언더힐(EVELYN UNDERHILL)(5) 몰튼 켈시 (MORTON T. KELSEY)(6) 레슬리 웨더해드 (LESLIE D. WEATHERHEAD)2. 치유의 성경적 배경1)구약에 나타난 치유(1)모세 오경에 나타난 치유A. 창세기에 나타난 치유B. 출애굽기에 나타난 치유C. 민수기에 나타난 치유D. 신명기에 나타난 치유(2) 역사서에 나타난 치유A 사무엘서에 나타난 치유B. 열왕기서에 나타난 치유(3) 선지서에 나타난 치유A. 이사야서에 나타난 치유2) 신약성경에 나타난 치유(1) 4복음서에 치유 사역A. 예수님의 치유 사역B 예수님이 치유의 능력을 주심(2) 역사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치유A. 베드로가 병을 치료함B. 바울이 병을 치료함3. 치유의 역사적 배경1) 교부시대(1) 저스틴(JUSTIN)(2) 이네니우스 (IRENAEUS)(3) 터틀리안 (TERTULLIAN)(4) 아우구스틴 (AUGUSTINE)(5) 데오필루스 (THEOPHILUS)2) 중세시대(1) 기름 바르기 (Anointion : 도유)(2) 성인과 유품들 (Saint and Relics)(3) 성인들의 피 유물(4) 은사 받은 치유자 (Charismatic Healer)(5) 귀신 추방3) 종교 개혁시대(1) 마틴 루터 (MARTIN LUTHER)(2) 요한 칼빈 (JOHN CALVIN)5) 근 현대시대4) 종교개혁 이후 시대(1) 요한 웨슬리 (John Weseley)(2) 요나단 에드워즈을 몇 사람 소개하고자 한다(1) 저스틴(JUSTIN)제 2세기 중엽에 기독교 신앙을 위한 변증론을 썼다. 그 저서에서 그는 무당이나 약, 마술이 아무런 차도를 보이지 못한 귀신들린 자를 그리스도인들이 수없이 치유하였다고 말했다.(2) 이네니우스 (IRENAEUS)저스틴 보다 조금 늦게 변증론을 썼던 이레니우스는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자들이 여전히 기적을 행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전하면서 ‘어떤 사람들이 실제로 마귀들을 내 쫓았고, 악한 영들로부터 해방된 그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나왔다. 또 다른 사람들은 병자들 위에 손을 얹어 치유했고, 그들은 그것으로 깨끗함을 받았다.그리고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죽은 사람조차도 살아나 수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기도 했다고 말했다.(3) 터틀리안 (TERTULLIAN)3세기 중엽에 변증론을 썼던 터틀리안은 로마황제 세베루스(Severus)가 한 그리스도인의 안수를 받고 병에서 치유되었다고 전했다. 그 후 세베루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우호적이었고 자기를 치료하여 로 준 프로큘러스를 보답하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궁전에서 살게 하였다고 말했다.(4) 아우구스틴 (AUGUSTINE)아우구스틴은 5세기 중엽에도 아직도 기적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5) 데오필루스 (THEOPHILUS)활발한 박해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저술 활동을 했던 안디옥의 데오필루스는 오늘날까지도 귀신들린 자들이 살아 있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쫓김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2) 중세시대중세교회의 초기 신학자들 사이에서 치유에 관한 다소간의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치유를 직접, 간접적으로 경험을 했고, 또한 그들의 신학 속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인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흐름은 중세 중반에 접어들면서 점차로 신학적 틀 속에서 ‘치유가 배격되는 경향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현대 교회의 치유에 대한 관습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본다중세교회의 전통 안에서는 병자의 치유를 위해 많은 증거와 함께 여러 사역들을 남겼는데 그로부터 사람들이 치유사역을 배우고 성장하였다.H. 죤 레이크 (JOHN G. LAKE)레이크는 1870년 경에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1886년에 그의 부모님과 함께 미시간으로 이주했다. 그는 1891년에 감리교회 사역자로 임직을 받았으나 곧 사임하고 대신에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다그는 그의 가정과 부모님에게 위기가 닥쳐올 때에야 치유사역자가 되었다. 16명의 자녀들 중에서 8명이 질병으로 죽고 반면에 레이크의 아내를 포함한 네명의 다른 자녀들은 심각한 병에 걸렸다. 이렇게 결정적 순간에(1898) 알렉산더 도위는 레이크의 아내와 그의 4명의 가족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는 성회를 개최했다. 레이크는 병이 악령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을 알고는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했고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었다.1908년에 그는 아프리카에 가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고 거기에서 많은 기적과 치유를 일으켰다. 남아프리카에서의 5년간의 사역은 125명의 백인과 500명의 흑인들을 인도하게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오순절 교파의 이 교회는‘사도적인 믿음의 선교‘라는 이름을 붙였다.미국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스포카네에서 교회를 세우고 치유 방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치유되었다고 기록되기도 하였다.I. 데이비드 넌 (DAVID NUNN)데이비드 넌은 오순절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못이 그의 발에 박혔을 때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은 주님을 대항해서 그의 마음을 굳게 하고 22살의 나이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는 2차 대전 직후에 주님께서 다시 돌아왔고, 알코올 중독의 속박으로부터 구원받았다. 그는 1948년에 텍사스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의 교회에서 목회 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그는 많은 치유 전도자들의 집회를 후원했고 그들에 의해서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들의 치유사역을 본 것이 그를 치유사역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역동적인 치유사역과 설교의 효과적인 결과로 (BLUMHARDT)부룸하츠 목사는 독일의 모트링겐(Mottligen) 에 있는 루터교회에서 수년 동안 목회 해 왔다. 그는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목사로서 상당한 평판을 얻어 왔으나 결코 그 자신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사역은 하지 않았다. 그는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두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GORDON 1802)그는 많은 치유자들과 달리 그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써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사역을 효과적이게 한 이유이다.다른 사역자들처럼 부룸하츠에게도 치유사역은 그를 사로잡았다. 그의 양떼들이 받는 고통은 그로 하여금 치유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이 사역을 수행 했다. 그는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했고 이 기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때문에 사방으로부터 환자들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의 집과 이웃은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병약한 사람들이 도움을 바라고 찾아오는 병원처럼 되었다.부룸하츠의 집에 많은 환자들이 밤낮으로 들끓었다. 이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위한 믿을 만한 증거를 상당히 많이 남기면서 수년 동안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효과적으로 치유 사역을 하였다.(5)인도 (INDIA)수바 라오 (Suba Rao)는 국립학교 교장이었다. 중간계급의 일원으로 부유한 편이었다. 그는 세례를 우습게 여겼고 선교사들을 미워했다. 그는 교회를 낮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생각했다.그런데 그의 가까운 이웃이며 절친한 친구의 한사람이 병이 들었다. 2년 간 그의 병은 치유되지 않았으며 그는 점차 쇠약해져만 갔다. 많은 의원들을 찾아가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밤 수바 라오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주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 ‘네가 만일 가서 네 친구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그를 치료해 주마‘하고 말하였다.그는 잠에서 깨었다. 그는 이때 억지로 다시 잠을 자러 가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간증과 함께 감사 편지를 올립니다. 경산에 다시 오시면 꼭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겠나이까? 안녕 하소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d) 반신불수병을 치유함경북 고령군 다신면 호촌동에 사는 장의고 여인은 반신불수로 온 몸이 부자유한 상태였는데 대구 남성정교회의 김익두 목사 부흥 집회 소식을 듣고 마차에 실려 왔다. 그러나 그녀가 집회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김익두 목사는 대구를 떠나 버린 뒤였다. 이미 집회가 끝나 김익두 목사는 다음 장소인 밀양읍으로 출발했다. 그녀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밀양까지 김익두 목사를 찾아가 그의 안수기도를 받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쇠사슬이 내려오더니 두 다리를 꽁꽁 묶어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손발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반신불수의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어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e) 앉은뱅이를 치유함1921년 5월 17일 부산진교회 부흥 집회에서 나타난 이적이었다. 부산 진구 좌천동 446번지에 사는 김낙언씨의 아들 두수는 생후 8개월만에 소아마비 증상을 앓다가 끝내 걷지를 못하고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 그의 부모는 유명한 병원과 소문난 약방을 두루 찾아다니며 치료를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두수가 8세였을 때 그의 부모가 이웃의 권유를 받고 부산진교회의 부흥회에 두수를 업고 참석하게 되었다.김익두 목사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그의 부모는 염치를 무릅쓰고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맨 앞자리로 나아가 앉았다. 설교를 마친 김익두 목사가 하단하여 지나가다가 두수를 목격했다. ‘저 아이는 어쩌다가 저리되었습니까?‘‘예, 팔 년 전에 소아마비를 앓다가 그리되었습니다.‘김익두 목사는 어린아이가 앉은뱅이가 된 것을 측은히 생각하고 두수 곁으로 다가가 두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병 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놀랍게도 김익두 목사의 기도가 끝나자.
21세기 노인복지 정책 진단목차Ⅰ. 서론Ⅱ. 본론1. 노인문화2. 실버산업Ⅲ. 결론Ⅰ. 서론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계속되면서 노인들의 한숨이 날로 깊어만 가고 있다. 경제상황의 악화로 실직자문제나 아이들문제가 워낙 심각하다보니 '생산성 없는' 노인들 문제는 아무래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리사회에서도 '노인문제'가 핵심어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노인보건복지분야는 아직 장기적 전망을 바탕으로 일관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우선 정부의 관심부터 왜소해지고있다. 당초에는 지난 7월부터 전체 노인의 30%인 90여만 명에게 주어지리라던 경로연금지급 대상이 62만여명으로 크게 줄어들었고 그나마 노인 1인당 2만원정도 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에서는 2001년부터 당초 목표였던 92만 4천명에게 혜택을 주도록 할 계획이고 2003년까지는 지원규모도 5만원 정도로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지만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의 민간복지단체의 활동도 위축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노인복지시설 자체가 태부족이다.현재 전국에 걸쳐 재가노인복지시설이 98개에 불과한 실정이고 특히 시-도 중에서 시설이 10개가 넘는 곳은 서울, 부산, 경기도 등 3개 지역에 불과하다. 일반 시민들의 지원도 줄어 저소득층 밀집지역인 서울북부종합사회복지관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자원봉사자가 4백 명이 넘었으나 올해는 재등록자가 반으로 줄어든 데다 신규등록자도 50명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고 이러한 추세는 전국적인 현상이다.Ⅱ. 본론가장 큰 문제는 노인들이 자기 힘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 노인들이 일하고 싶어도 젊고 값싼 노동력의 구직자들이 흔한 상황에서 노인들은 외면 당하기 일쑤이고 금전적인 어려움에서도 빠져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1. 노인문화요즘 도시나 시골의 노인정에 가보면 노인들이 없다. 모두들 '공연장'에 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공연장'은 순수한 노인공경의 마음으로 위로잔치를 하는 곳이 아니라 상술로 노인들에게 건강보조식품 등을 판매하는 자리에 불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젊은 판매원들의 구성진 노래와 춤은 물건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 버렸다. 아직 우리 나라의 노인문화는 이런 류의 판촉공연이 쉽게 뿌리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척박하기 만하다. 특별히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사회활동이 왕성한 일부를 제외한 보통의 노인들에게는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다. 단지 경로당에 나가 TV를 보거나 장기, 바둑, 화투 등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하릴없이 하루종일 공원에 앉아있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다. 이에 반해 노인문화를 만들어보려는 정부대책은 전무하다. 지금의 빈곤, 질병 등의 대책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문화대책마련을 정부에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인생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들의 노년기'는 날로 황폐해져만 가고 있다.노인문화의 핵심은 어떤 곳에서 시간을 보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느냐에 관건이 있다. 지금 경로당의 수가 전국에 걸쳐 3만4천8백 개에 달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장소'에 지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의 투자 역시 그 자체로도 부족하지만 그 마저도 단순히 경로당 수 늘리기의 일률적 문제에만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처럼 프로그램의 내실화에 주안점을 두고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하겠다.2. 실버산업노인 층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실버산업'이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지난 1980년대 중반이지만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분야가 주거 관련산업이다. 지난 1988년 수원의 '유당 마을'이 최초의 유료양로원으로 개원한 이래 꾸준한 증가세로 현재 전국적으로 17곳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설들은 대부분 입주보증금이 6천 만원 이상이고 월 평균 60만원 이상의 생활비를 받고 있는 등 중산층 이상을 겨냥한 것으로서 저소득층 노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버용품시장은 주거산업에 비해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다.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백화점마다 실버용품 매장 설치 붐이 일었으나 몇 년만에 실버코너를 저마다 슬그머니 없애 버렸다. 그 결과 현재는 실버용품을 사고 싶어도 파는 곳을 몰라 구입하지 못하는 것이 실정이다. 노인복지의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노령인구가 11-18%에 이르는데다가 실버산업에 대한 금융, 세제상의 혜택 등 정부차원의 지원이 제도화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각종 연금제도의 정착으로 노령 층의 구매력이 높아진 것이 실버산업을 발전시키는 요인이 되어 있다. 우리 나라도 노인문제를 개인의 효심에만 기대기에는 국민의식과 사회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 노인복지 산업은 정부와 민간부분이 역할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먼저 국가가 나서고 국가가 메우지 못한 공백은 민간업자가 나서 해결하게끔 총체적인 배려를 서둘러야할 시점이다. 민간기업은 민간기업대로 공익사업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정부는 이들의 노력을 최대한 뒷받침하는데서 노인복지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