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시가 교육론】“시조에 대한 해석과 학교에서의 시조 수업”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何如歌)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이존오(李存吾)의 우국가이색(李穡)의 시조에 관하여...지리교육과2003190305 김 현진목차I. 서론Ⅱ. 본론1.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何如歌)① 시조 자체로의 하여가(何如歌)② ‘이방원의 삶’등의 배경을 통해 본 하여가(何如歌)③ 나의 느낌2.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① 시조 자체로의 단심가(丹心歌)② ‘이방원의 삶’등의 배경을 통해 본 단심가(丹心歌)③ 나의 느낌3.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① 시조 자체로의 다정가② ‘이조년의 삶’등의 배경을 통해 본 다정가③ 나의 느낌4. 이존오(李存吾)의 우국가① 시조 자체로의 우국가② ‘이존오의 삶’등의 배경을 통해 본 우국가③ 나의 느낌5. 이색(李穡)의 시조① 시조 자체② ‘이색의 삶’ 등의 배경을 통해 본 시조③ 나의 느낌6. 학교에서의 시조 가르치기① 단원의 적절성② 시조 가르치기(1) 시조에 대한 흥미 유발(2) 시조 해석③ 학습 방향 및 유의 사항Ⅲ. 결론『 근대 시가 교육론 』지리교육과2003190305 김 현진I. 서론내가 맡은 부분은 시기적으로 고려 말에 해당하는 시조 5편이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고려 말, 조선 초에 해당하는 교체기의 시조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발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평소에 시조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을 배제하고 실제 학교에서 이 시조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시조에 대한 어구 풀이 등의 해석은 발표문에서 했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나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해당하는 책을 참고한 해석 등 좀 더 포괄적으로 시조에 접근하고자 한다.또한 이 시조들을 실제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기에 적합한 수준인지, 그리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何如歌)이방원(李芳遠)은 사실 학생들에게 그 자신의 이름으인 그의 형제 만해도 3명이고 2대 왕인 형 정종까지 위협해서 얻은 왕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제끼리도 서로 죽이고 죽일 만큼 혼란한 시대에 자신의 세력권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지은 시조가 바로 ‘하여가(何如歌)’이다. 이방원이란 인물이 아버지인 이성계보다도 뛰어난 정치인이자 책략가라는 의견이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살벌한 시대에 자신의 속마음을 숨겨 만수산의 드렁칡에 비유해서 자신의 세력에 힘이 되지 않겠냐고 슬며시 떠 본 시조만 보더라도 그가 타고난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이런 배경을 갖고 그의 시조를 해석한다면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관한 해석은 수업시간에 발표를 했기에 이 정도로만 정리하고자 한다.이렇게 산들 어떠하며 저렇게 산들 어떠하리오.만수산의 칡덩굴이 서로 얽혀진 것처럼 살아간들 그것이 어떠하리오.우리도 이와 같이 얽혀져 한평생을 누리리라.③ 나의 느낌사람들이 이방원의 시조를 통해 본 그의 성격이 호방하다고 하지만 조사를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더 외롭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형제를 죽이고 또 자신의 뜻에 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는 이 시대에 시조에서 드러나듯 겉으로 보이는 것은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가장해야 하는 현실에 사는 그야말로 정말 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호방하다’는 말 자체가 이미 ‘정치인 그리고 책략가’로서의 이방원만을 보고 평가한 말일 것이란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시조에 보면 개성 서쪽에 있는 만수산이나 그 당시에 만수산에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칡덩굴이 등장하는데 시조에 등장하는 단어나 소재를 통해 그 시대의 모습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게 한 다는 것에서 고시조의 바른 해석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2.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내가 어렵지 않게 외우는 시조가 5편 정도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처음에 외운 시조가 ‘하여가’와 ‘단심가’이다. 특히 단심가(丹心歌)를 배우면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읽을 때면 나 스스로가 애국지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들바른 것이었나란 의문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가 있고 자신은 절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도 고려의 국운이 다했음을 짐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시대에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절개는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③ 나의 느낌조사를 하면서 포은 즉 정몽주에 대한 많은 일화를 읽으면서 정몽주의 어머니가 그의 출중한 재주와 성품을 걱정하여 지은 시조를 발견하고 안타까웠다.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우나니창파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이 시조야말로 훗날에 처한 정몽주의 처지를 예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의 행동이 옳냐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그가 성리학자로서의 역할만을 충실히 하고 정치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시대를 떠나 그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 시대의 정치인과 학자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사를 하면서 본 그의 시조들이 하나같이 뛰어났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다.또한 예전에 ‘친일’에 대해 공부할 때 생긴 의문 중에 답하지 못한 곤란한 것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그 질문이 생각났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친일을 안했을까란 의문이었다. 자신의 생각, 지조를 갖고 살자는 교훈도 얻었고 더불어 고시조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시조이다.3.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개인적으로 내가 맡은 5편의 시조 중에 이 시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제목도 제목이거니와 너무 탁월하게 모든 시어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제목을 춘심(春心)이라고 하는 책도 있어서 정확한 제목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다정가가 더 많은 듯 하여 다정가라고 썼다. 애절한 시조하면 서경덕의 시조가 생각이 나는데 이 시조도 그 못지않게 애절하고 또 가장 아름다운 시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조년의 다정가에 대해 살펴보자.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일지춘심(一과 이조년, 시대 배경과 더불어 생각해볼 때 이 시에서 흰 색이 쓰여진 것은 그의 성품을 대변해 주기도 하는 것이며 또한 ‘흰 색’의 애상적인 이미지 때문에 더욱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이 두드러지는 효과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은 비록 관직에 몸담고 있지 않지만 계속해서 마음이 쓰이는 다정이 병인 듯 하다는 말을 통해 벼슬을 그만두고서도 나라 걱정을 하는 자신을 약간 질책하는 듯 하면서도 그래도 걱정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말함으로 인해 그의 고민과 심정을 더욱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③ 나의 느낌책을 보니 여러 책에서 모두 이 작품을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물론 시어가 아름다운 것과 흰 색의 이미지 등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자규’라는 탁월한 시어의 선택에서도 잘 쓰인 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촉나라의 망제(望帝)가 망해 버린 나라를 못 잊어서 새로 환생한 것이 ‘자규’라고 전해지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지금 상황과 심정을 너무 잘 묘사하고 있다. 시조나 시를 쓸 때 하나의 단어를 통해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해주는 시조이다. 또한 정치인들이 이조년의 성품을 교훈 삼아 직언도 하고 바른 말도 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봤다.4. 이존오(李存吾)의 우국가우국가 등의 시조 제목은 작가가 지은 것이 아니라 전해지면서 지어진 것이다. 이 시조의 제목을 너무 운치없게 지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주제를 제목에서 나타냈기 때문이다.구름이 무심(無心)탄 말이 아마도 허랑(虛浪)하다중천(中天)에 떠 이셔 임의(任意)로 다니면서구태여 광명(光明)한 날빛을 따라가며 덥나니① 시조 자체로의 우국가이 시조는 배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시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앞에 시조들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진짜 속 뜻을 잘 찾아내기가 어려운 반면에 시대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지식이 없는 학생들 또한 이 시조를 접하고 단어 뜻을 안다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읽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② ‘이존오의 삶’ 등의 배경을 통을 넣지 말까라고도 생각을 했다. 이존오의 시조나 이색의 시조의 경우 시조 자체의 의미와 배경을 안 후의 의미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색의 시조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조의 경우 배경이 없이 본다면 해석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만일 매화를 찾아서 겨울에 어서 매화가 피는 날씨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면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모를 리가 없는데 이런 것으로도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시조에서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② ‘이색의 삶’ 등의 배경을 통해 본 시조흔히 천재 혹은 수재라고 하는 인물이 있다. 이색은 당시 그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의 학문에 대한 소질은 어렸을 때부터 자자했다. 정몽주, 길재와 더불어 고려의 삼은 중 한 사람인데 14세에 성균시에 합격하고 16세에 시 짓기 대회에서 20회에 걸쳐 1등을 하는 듯 그의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출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그에 대한 평가에서도 이색이라는 인물을 잘 알 수 있다. 홍여하라는 사람은 글에 ‘우리나라 문장은 최치원이 그 근원을 열고, 이규보가 이를 고이 다듬어서 윤을 내고, 이제현이 절도에 맞도록 그를 잘 고르고, 이색이 그것을 집대성 시켜 후세에 길이 떨치게 하였다.’라고도 이색을 평하였는데 이에서 알 수 있듯이 학문에 있어서의 그의 역할과 업적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먼저 배경을 바탕으로 한 시조의 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흰 눈이 녹아 없어진 골짜기에 구름이 험하구나반겨줄 매화는 어느 곳에 피어있는가?날이 저물어 가는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을 모르겠구나먼저 이 시조의 상황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혼란한 시기임을 알고 흰 눈은 고려 유신, 골짜기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 구름은 간신배와 신흥세력임을 안다면 시조의 해석은 어렵지 않다. 여기서 ‘매화’는 고시조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지조나 충성, 절개의 상징으로 쓰였다. 이를 알고 본다면 종장의 작가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유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