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문학(漢代文學)-초사(楚辭), 한부(漢賦) ,한대산문(散文)-차례-한대문학(漢代文學)1. 초사(楚辭)(1) 초사의 의미(2) 초사의 배경(3) 초사의 구성(4)초사의 내용과 형식(5)초사의 문학적 성격(6)초사가 후대에 미친 영향2. 한부(漢賦)(1) 부의 발생(2) 부의 명칭(3) 서한부(4) 동한부(5) 부의 체제(6) 부의 특징(7) 부의 영향3. 한대산문(漢代散文)(1) 한대 산문의 발전(2) 서한산문-사마천의 사기(史記)(3) 동한산문-반고의 한서(漢書)楚 辭1.초사의 의미『초사』는 『시경(詩經)』과 함께 중국문학의 양대 기둥이다.『시경』이 무명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당시 사회의 여러 제재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초사』는 특정한 개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일관성 있는 세련된 창작인 것이며, 담긴 내용이 굴원(屈原)이라는 한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굴원 자신이 쓰고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도 추도의 작품으로 모아진 일종의 모음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초사』는 초나라 사람이 초나라의 방언으로 초나라의 풍속과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서, 초나라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민속을 굴원이라는 한 애국충신이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노래하고, 그 후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추도하여서 하나 된 마음으로 써놓은 고도의 낭만주의 문학작품집이다.『초사』가 ‘초사’라는 명칭으로 등장한 시기는 대개 한문제(漢文帝;기원전 179-157)때로 보며, 무제(武帝;기원전 140-74)나 선제(宣帝;기원전 73-49)때에는 이미 초사의 문학적 가치가 중시되게 되었다. 이것은‘초사’라는 명칭으로 왕일(王逸)이 후한(後漢)시기에 『초사장구(楚辭章句)』에 자신의 를 넣어 17권으로 재편집 할 때까지 읽혀지던 유향(劉向;기원전 77-6)이 편찬한 책, 바로 그 초사가 유행하였음을 긍정적으로 동감하게 한다. 왕일의 책은 곧 유향의『초사」에 근거하여 작품이 첨가되어 주석이 붙여졌던 것이다. 따라서 『초사』에 대한 이해는 시대와 지역의 제한성을 갖는다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초사』는 대략 세 가「소사명(少司命)」등으로 모두 한가닥의 귀신에 제사 드리는 의식(儀式)을 노래하였다. 문자의 미려함이나 음조의 조화, 색채의 신비성, 상상의 풍부 등이 낭만적인 남방문학의 특성을 대표하고 있다.③ 천문(天問) : 형식이 독특하여 문답체(問答體)의 구성법을 쓰고 있다. 전문이 172개의 문(問)항을 구성하여 천문(天問)과 인사(人事), 지리(地理)를 내용으로 자연계의 모든 문제들을 거론하였다. 문체는 민간체제에서 나온 것 같으며, 문답형식은「개천벽지가(開天闢地歌)」와 유사하다.④ 구장(九章) : 9편의 장(章)으로 된 데서 붙인 이름으로 굴원이 유배지에서 쓴 절절한 양수가 배인 작품이다. 작품으로는「석송(惜誦)」,「섭강(涉江)」등이 있다.⑤ 원유(遠遊) : 왕일(王逸)은 굴원의 작품이라 하였지만 근래의 학자들은 타인의 작품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도가의 탈속적인 신선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⑥ 복거(卜居) : 역시 굴원의 작이라고 하기에 회의가 가는 부분이 있다. 산문부에 가깝 다.⑦ 어부(漁父) : 역시 굴원의 작이라 하기에는 모순점이 있다. 이 글은 장자의 우언(寓言)을 담고 있다.⑧ 구변(九辯) : 전체가 비애에 차 있으며, 한 인간이 폐쇄된 세계에 추방당했을 대의 심경과 번민을 형식에 구애 없이 산문적으로 서술해 나갔다.⑨ 초혼(招魂) : 초혼이란 본래 초땅의 민간풍속의 하나이다. 흩어진 영혼을 고향으로 불러서 안위한다. 생동하는 표현법으로 초나라의 화려한 궁정생활을 묘사하기도 했다.⑩ 대초(大初) : 굴원 이니 경차니, 작자에 대한 설이 많다. 왕일도 이 두 작가를 ‘혹(或)’이란 글자로 병기(倂記)하고 있다. 결구가 과 비슷하지만 문장의 기상이 전혀 다르다. 곧 기상이 포용적이며 장면이 광대한 것이 과 다른 점이다.⑪ 석서(惜誓) : 희왕이 굴원과 신의를 지키지 않은 것을 애석히 여긴다는 뜻이다. 원망과 비애, 그리고 자기 체념이 깃들어 있다.⑫ 초은사(招隱士) : 회남소산(淮南小山)의 작인데, 은거자가 거처하고 있는 곳의 정경을 묘사하고)와 칠언시(七言詩)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 미침.『초사』가 전중국(全中國)에 유행하게 되었던 것은 한대(漢代) 초기의 문인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문인들은 사실상 한부(漢賦)라는 문학체제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한편으로 굴원(屈原)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초사』에 기타 요소를 가미(加味)시켜 부(賦)라는 문학형식을 창작해 냈던 것이다.매 구절의 허사(虛飼)인 '혜(兮)'자를 다른 실사(實詞)로 넣기만 하면 바로 칠언시(七言詩)가 되어 버린다. 사언(四言) 위주의 『시경』과 비교해서 칠언시(七言詩)의 형성에는 초사의 영향이 압도적이라 말할 수 있다.(3) 기교적인 면 :『초사』의 「구가(九歌)」에는 인신연애(人神戀愛/신과 인간의 사랑)에 관한 묘사가 대단히 많이 등장한다. 굴원(屈原)이 「이소(離騷)」를 지을 적에도 바로 이「구가(九歌)」의 영향을 받아 군신관계(君臣關係)를 남녀관계(男女關係)로 비유하고 있다.후세의 시인들은 굴원(屈原)의 이러한 기교를 상용하고 있는 바, 표면적으로는 애정을 묘사하면서도 사실은 일종의 개인적인 정치적 처지를 기탁하고 있다. 이러한 탁유(託喩)기법은 후세 학자들의 작품해석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명백한 애정시(愛情詩)인데도 정치시(政治詩)라고 주장하며 작품 중의 남녀관계는 단지 일종의 비유(比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따위가 그러하다.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는 일단 접어두고 어쨌든 이러한 현상도 거의 대부분 초사의 독특한 문학적 기교 때문인 것이다.漢 賦1. 부(賦)의 발생부(賦)라는 명칭은 이미 한(漢)이전에『서경(詩經)』의 육의(六義)를 비롯하여 순자(荀字)『부편(賦篇)』에 보여 이를 부의 원조(遠祖)라 보여지지만, 한부의 직접적인 계승구도는『초사(楚辭)』이다. 초사 계열의 새로운 운문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노래의 가사라는 성격보다 읽는 운문이라는 성격이 강해지면서 한나라에 들어와 “兮”자에서 벗어나 3자 6자구를 섞어 쓰고, 반복적인 리듬이 정리되는 등 점차 산 매승의 작품을 극도로 발전시켜 열거와 모방이라는 부작(賦作)의 풍조를 유포시켰다.③양웅(揚雄): 사마상여의 화려한 부를 모방화려한 문사를 늘어놓아 모의의 풍이 더욱 노골화된 작품으로 「하동부(河東賦)」「교렵부(校獵賦)」「장양부(長楊賦)」등이 있으며, 설리적인 「해조(解嘲)」, 안빈의 뜻을 읊은 「축빈부(逐貧賦)」등에서는 새로운 개성의 싹과 함께 문인으로서의 반성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 한 문사를 늘어놓은 점에서 사마상여의 부와 다를 바가 없었으며 나아가 매승, 사마상여 등 전 시대 부작가들의 부를 노골적으로 본떠 지음으로써 모방의 풍조가 형성되는데 큰 작용을 하기도 했다.4. 동한부서한부는 내용면에서 보면 장편 부는 공덕을 노래하는 것이 그 주요 특징이다. 동한 중엽 이후에 정치가 부패하고 환관외척들이 정쟁을 벌이면서 한 왕조는 점차 쇠약해졌고, 사회현실에서 노래할만한 공덕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공덕을 노래하는 것이 주요특징이었던 장편 부는 그 실효성이 이미 상실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한부는 수적인 면에서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제재나 풍격면 에서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장편 부가 점차 쇠퇴하고 소부(小賦)가 흥기하게 된 것이다.(1)작가와 작품①반고(班固): 서도와 동도의 모습을 읆은 「양도부(兩都賦)」가 대표작이며, 이는 사마상여의 「상림부)」에서 구성을, 양웅의 「촉도부(蜀都賦)」의 수법을 모방한 것이다. 비록 모방을 하였으나 문장을 대구로 엮어 정련된 풍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죽선부(竹扇賦)」는 전편이 7언 11구로 되어있어 7언고시의 발생연원을 논함에 주목되는 작품이다②장형(張衡): 부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본격적인 문학작품의 시원을 연작가라 평해지기도 한다. 반고의 「양도부」를 모방한 「이경부(二京賦)」는 풍경묘사에서 청려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며, 특히 「귀전(歸田)」, 「촉루(??)」등은 개성적인 표현이 풍부한 짧은 산문체의 글로 부로서 이후의 새로운 소부(小賦)창작의 계기가 된 작품이다.5. 부의체제①소체부(騷體賦)작하였다. 『한서(漢書)』의 「예문지」에서 「제자략(諸子略)」 이외에도 「시부략(詩賦略)」을 둔 것으로 보아, 이른바 유술(儒術)과 경학(經學) 이외에 '문장'의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漢代 散文1.한대산문의 발전한대의 산문은 형태적으로 전시기에 비해 세련되고 양적으로도 풍부해졌다.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성숙했던 산문은 한대로 이어져 계속 발전하여 풍부한 결실을 맺었다. 『서경』과『춘추』,『춘추좌전』과『국어』,『전국책』과『여씨춘추』를 거쳐 발전해 온 역사서 계열의 산문은 한대에 들어와 한층 더 고도화되어 『사기』와 『한서』라는 불후의 명작을 이루었다. 사기는 태고로부터 한대 초기까지의 역사를 일관성 있게 서술한 역사서이며, 한서는 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엄밀하고 체계적인 시각으로 서술한 저작이다. 사기와 한서가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한대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적인 저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두 저작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사적 묘사와 인물에 대한 개성적인 묘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두 저작은 문학성이 매우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고대의 경전과 제자백가서를 거쳐 발전해 온 사상서 계열의 산문은 정치적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피력한 수많은 산문으로 확대되고 한제국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독특하게 발전하였다.2. 서한산문중국의 의론문(議論文)은 전국말에서 진나라에 이르는 시기에, 특히 상소문을 중심으로 완성된다. 이사가 진왕(秦王)에게 올린 『간축객서(諫逐客書)』 등이 그 대표적인 글이다.한대로 들어와서는 산문이 상소문을 중심으로 한 정론문(政論文)과 전국시대의 역사적 산문을 계승한 사전문(史傳文)의 두 갈래로 크게 발달한다. 한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奏)·소(疏)·표(表)·책(策) 같은 글이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 조착(조錯)의 『논귀속소(論貴粟疏』등이 한초의 빼어난 정론문이라 할 것이다.(1) 정론문(政論文)『과진론(過秦論)』은 진나라 멸망의 원인이 외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