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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김영하-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서론평소 작품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김영하의 초기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올해 초에 영화화되기도 하며, 90년대 중반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이 작품은 1996년에 출간 되었다. 요즘같이 소설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시대에 벌써 열 살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을 다시금 재조명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본론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하 [파괴])는 인간의 최고의 권리로 자기 자신을 파괴할 권리, 그러니까 자살할 권리를 설정한다. 즉, 인간 각자는 모두 스스로 파괴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그 권리를 행사하는 자만이 진정한 인간이라는 것이다.이 작품에서 유디트 혹은 홍세연이라 불리는 여자와 유미미라는 여자는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나’의 의뢰인 들이다.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자살을 도와준다는 설정부터 화자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셈인데 거기서 더 나아가 화자는 자신을 신이라고 간주한다.‘나’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내 취향을 은폐한다. 하기사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신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 수는 없는 법이다.그들은 자신들이 상정한 인간 유형에서 자꾸만 벗어나는 나를 보고 당혹해 할 따름이다. 결국, [파괴] 는 유미미와 유디트를 자살로 내 몬 요인으로 타자의 실재를 보지 않으려는 자기 중심적인 시선과 시민적 냉정함을 들 수 있을 것이다.‘나’는 고객과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쓰곤 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가지길이 있을 뿐이다.“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작가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살보조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으로 간주한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절절할 수 있었던 것이 유태인 대학살이라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이제 죽음은 TV로 생중계되는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가 되어 있다. 과거엔 풍문으로 전해지던 학살이 이제는 상세하고 신속하게 위성을 통해 중계된다.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감동할 사람은 없다.작가의 이런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글을 읽는 내내 자살이라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일상적인 사건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화자는 자신의 일을 끝내고 나서 그 일을 소설로 각색하는 일을 하는데, 그 소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작품 속의 줄거리이다.1-1> 작품구성김영하의 소설은 우리에게 도마뱀을 던져준다. 그는 끊임없이 자르고 돋아나는 행위를 반복하는 도발적인 인물들을 제시하며 작품 속으로 독자를 흡입한다.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곧 그의 게임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김영하 소설의 특성으로 흔히 나르시시즘, 죽음, 섹스, 배신 등을 꼽는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단절이다. 단절인 동시에 구속이다.소설의 구성 또한 단절감을 강조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전체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3,5 장은 ‘나’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대한 서술로 1장의 그림 설명은 프롤로그의 성격을, 5장의 그림 설명은 에필로그의 성격을 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여기서 흥미있는 부분은 2장과 4장이다. 이 부분은 '나'의 개입이 없이 K와 C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이 두 인물의 성격이 한 여자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므로 2장과 4장은 ‘내’가 쓴 소설의 일부분임 셈이다.비디오 아트를 하는 C는 세연이란 여자를 유디트라고 부른다. C에게 그녀는 클림트의 그림 을 연상시키는 존재로 실존적인 인물이라기 보다는 이미지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즉, C는 그녀를 유디트의 이미지로써 받아들이는 것이다.총알택시를 운전하는 동생 K는 처음부터 그녀의 이름을 묻고 부른다. 반면 동생 K에게 그녀는 홍세연 이라는 실존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그녀의 사라짐, 다섯 달 뒤에 접하게 된 그녀의 자살 소식에 마음 아파하는 인물은 동생 K이다.C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그녀는 유디트로 지칭되고, K가 화자인 부분에서 그녀는 세연이라고 명명된다.이미지로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과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 두 남자의 차이는 그것이며 그 둘 사이의 간극은 번갈아 서술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2장과 4장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가 하는 것은 판단할 수 없다. 결국은 두 가지 모두 하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또, 작가는 다비드의 , 들라크루아의 , 클림트의 , 이 세 작품을 유효한 부분에서 적절하게 설명하고 작중인물들과 제대로 조화시키는 솜씨를 보여준다. 특히 화자인 '나'의 의뢰인으로 등장하는 유디트라는 별명의 세연이라는 여인과 행위예술을 하는 미미라는 여자는 둘 다 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2> 섹스일반적으로 섹스는 교류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김영하의 작품속의 섹스는 허무를 확인하는 무의미한 행위일 뿐이다. 이렇듯 그의 작품속의 섹스라는 행위는 두 가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섹스는 권태롭고 짜릿한 도발성 마저 띠고 있다. 반면에 허무를 확인하는 무의미한 행위의 측면에서 볼때는 눈이 오는 날 차안에서 C와 유디트의 섹스를 들 수 있다. C는 유디트와 섹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나'라는 자살안내자는 때로 마지막 순간에 섹스를 요구하는 의뢰인도 있으나 대체로 거부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의뢰인들은 왜 죽음의 순간에 섹스를 원하는가? 그것은 철저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테두리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외벽에 있다.그들을 김영하만의 인물이라고 하기엔 단절과 균열은 이미 너무 식상해진 설명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그의 소설 속에서 더욱 강렬한 인물의 이미지를 받게 되는 것은 그들은 단절 속에서 재생과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능동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작품속의 인물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고집스럽고, 자신만의 틀이 있으며, 그 틀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제목 그대로 나는 나이므로 파괴할 권리마저 가지고 있는 것이다.2-1> C-유디트의 섹스C는 유디트와의 섹스에서 공포감을 느낀다. 그녀가 물고 있는 츄파춥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적도 있다고 말한다. 섹스, 라는 소통의 행위를 하고 있는 중에도 그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다. 유디트와 C의 섹스를 짧게 묘사한 부분에서 독자는 상반된 모습을 발견한다. 섹스하는 동안 유디트는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다. C는 공포감을 느낀다. 유디트는 섹스보다 자위행위를 할 때 오히려 감정의 진폭이 더 크다. 자위행위라는 것은 유디트를 논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C는 그녀의 섹스 후에 모차르트를 듣고 싶어한다. 격렬한 음악을 들은 후엔 모차르트로 귀를 중화시키라는 말이 있다. 그는 유디트를 버거워한다.C 에 의해 유디트라 불리는 홍세연은 북극에 가고 싶어하고 츄파춥스를 즐겨먹는 여성으로 술집에서 일을 하고 이 일 때문에 심신이 상당히 지쳐있다. 그녀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고 자살안내자인 ‘나’를 찾는다.유디트는 총알택시 기사인 K와 술집에서 처음 만난다. 입안에는 언제나 츄파츕스를 물고 있다. 심지어 섹스를 할 때 조차도. 유디트와 떠난 주문진 여행에서 K는 C의 스킨냄새를 맡지만, 이를 묵인하고C와 유디트를 암묵적으로 공유한다.클림트의 유디트에게서 영웅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거세시키고 세기말적 관능을 남겼다면, [파괴]는 유디트에게서 이데올로기는 물론 정신이나 영혼까지 거세시키고 그 자리를 텅 빈 공백으로 만들어 버린다.이런 의미에서 츄파츕스는 C에게 있어서는 유디트의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뜻한다. 유디트는 입안에는 츄파츕스를, 그리고 자신의 질 속에는 눈뭉치를 밀어 넣음으로서 채워지지 않는 텅 빈 공백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K에게 있어서 홍세연의 츄파츕스는 홍세연과 소통을 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K는 스스로를 ‘세 끗 인생’ 이라 칭하며 일종의 자신의 인생과 C에게 패배 의식이 있는 인물로, 유디트의 츄파츄스를 자신과의 소통의 통로로 보고 있다.(K가 유디트에게 자신의 눈이 사시라는 것을 일러주는 대목) 그래서 유디트가 C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는 ‘입속에 남아 있던 츄파츕스를 빼내어 공중전화 부스 밖으로 던져 버린다.’2-2> 사르나다팔, 혹은 C그녀는 C에게서 구원받기를 원하나 결국은 C의 무관심에 의하여 죽음을 선택한다.이 작품에서 C는 유디트와 미미의 죽음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인물이나, 작가는 의도적으로 C를 지나치게 관조적인 입장에서 그려낸다.이것은 5장 ‘사르나다팔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사르나다팔은 자신의 성이 함락되자 자신의 애첩들과 애마(백마)를 자신의 기사들을 시켜 죽인다. 그러나 정작 그림안에서는 매우 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렇 듯 사르나다팔의 모습과 C의 모습은 닮아있다.2-2> 미미-C의 섹스앞서 말한 C의 두려움은 미미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미미는 유명한 행위예술가로, 진정한 것은 오직 실재하는 것뿐이라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예술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지 못하게 한다.하지만 자기 자신의 예술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지 못했던 미미는 비디오 아트를 하는 C에게 자기 자신이 하는 예술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내게 한다. 그녀는 예술행위 중에 C를 정면으로 직시한다. 그러한 그녀의 눈빛에서 C는 현기증을 느낀다. 미미는 나중에 차라리 자신과 섹스를 하지 그랬냐고 말한다. C는 미미의 실체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이미지에 압도되어 있으며 그의 감정곡선은 그녀의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미미가 자살을 결심한 것을 알고 있으면 서도 C는 그녀의 영상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계속 재생해서 볼 뿐이다. 자기 자신의 벌거벗은 예술 행위를 보고 미미는 목욕탕의 뜨거운 물 속에서 동맥을 끊는다.결국 그녀는 자신의 예술이 한계에 달했다고 깨달은 순간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고, 자살이야말고 ‘삶이란 예술’ 의 완벽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인문/어학| 2005.12.11| 5페이지| 1,000원| 조회(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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