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 작품 분석? 목 차 ?Ⅰ. 작가 분석 및 배경ⅰ) 작가ⅱ) 역사적 배경ⅲ) 사회적 배경2. 작품 분석ⅰ) 개요ⅱ) 줄거리ⅲ) 구성ⅳ) 인물구성ⅴ) 공간3. 주요 쟁점 사항ⅰ) 시간을 통한 인식ⅱ) 공간을 통한 인식ⅲ) Godot와의 관계를 통한 인식ⅳ) 절망감을 통한 인식ⅴ) 언어의 한계를 통한 인식4. 부조리극의 사상적 배경과 특징ⅰ) 배경ⅱ) 특징ⅱ) 부조리극의 예 (국내/국외)Ⅰ. 작가 분석 및 배경)ⅰ) 작가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3년 Trinity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1928년 파리로 건너가 영어교사로서 2년 간 근무하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와 집필에 몰두한다. 베케트는 마지막 파리에 정착할 때까지 아일랜드, 런던, 파리를 오가며 떠돌이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2차대전의 종전후 1946년과 48년 사이에 가장 왕성한 집필활동을 보였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 이다. 1953년 바빌론극장에서 상영된 이 작품은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작가는 이 작품의 놀라운 성공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지만 이 성공은 작가의 나머지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4년 후 또 다른 희곡 승부의 종말은 그의 명성을 재확인시켜 주었으며, 1956년엔 영국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나날들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을 출간한다. 1969년 베케트는 노벨 문학상을 수여 받고 1989년에 숨을 거두었다.ⅱ) 역사적 배경고도를 기다리며가 탄생할 시점에 유럽은 조금씩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 미래를 낙관하고 미국을 모델 삼아 소비사회로 접어들고 있었다. 유럽 사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 발전해 갈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정적 기운이 가득하다. 이 작품에서 역사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궁극적으로 현대 문명과 그 산업화다. 남아 있는 두 사람에게 사내아이가 와서, 고도는 오늘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⑵ 제2막앞과 같은 무대이지만, 나무에 잎이 돋아 있다. 지난밤에 헤어진 에스트라공이 구두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또 고도를 기다리며 전날과 같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럭키의 모자를 주워서 두 사람이 세 개의 모자를 재빠르게 쓰고 돌리다가 포조와 럭키의 흉내를 낸다. 그런데 갑자기 에스트라공이 막 달려가더니 잠시후 다시 와서 누가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 둘은 계속 고도를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까 궁리한다. 이 때 포조와 럭키가 지나가다가 넘어져 굴러 떨어진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그들을 구해준다. 그런데 포조와 럭키는 그들을 알지 못하고, 게다가 전날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또 포조는 자신은 장님이고 럭키는 벙어리라고 말한다. 포초와 럭키가 퇴장하자, 그 사내아이가 나와 고도는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망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목을 매달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두 사람은 '가자'고 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들은 기다릴 뿐... 그렇게 막이 내린다.ⅲ) 구성대화의 붕괴는 언어 그 자체의 붕괴이다. 베케트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 확실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명확한 의미도 없다. 따라서 언어는 확실한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 개념적 사상의 표현으로서의 언어는 절망에 가깝도록 무력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경우가 특히 럭키의 무의미한 대사이다. 베케트는 고전적 희곡 전통에 반역하기 위해 극문학의 구성요소인 성격과 언어를 파괴했던 것이다.등장인물의 성격이 불확실하고 언어가 붕괴된 탓으로 플롯이 변질되고 있다. 전통적인 희곡작품에서는 명확한 성격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맺는 인간관계를 통해 극적 액션이생기고 갈등과 충돌이 생김으로써 사건이 전개된다. 플롯은 이 같은 사건을 일정날엔가 우리(럭키와 포조)는 귀머거리가 될거요.' 벙어리→장님→귀머거리 이런 육체적인 불구의 점층적인 구도를 보면 '신의 몰락'의 구체적인 기상도가 그려진다. 또한 이러한 뉘앙스는 포조가 럭키의 근래에 추는 유일한 춤의 이름-'전구제조인의 죽음', '늙은이의 암', '그물 춤'-속에 내재되어 있다. , 은 포조가 자빠져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일어나지 못하는 상(image)을 보면서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선 블라디미르는 이런 포조의 곤궁을 보며, 이것을 온 인류의 딜레마(Dilemma)로 끌어 올린다. '우리가 방금 들은 구원 요청은 차라리 인류 전체에게 보내어진거야' 또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온 인류를 상징하는 이름인 '아벨', '카인'을 뽀조를 부를 때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으로부터의 소외-소외.2가 되겠다-를 체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신의 몰락, 그 자체가 바로 유한한 인간에겐 또 하나의 소외현상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ⅴ) 공간)⑴ Godot의 공간베케트의 극작품이 비록 무대에 대한 지시를 간략히 하였다고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통해 무대공간이 어느 정도 드러나므로 연출가가 무대를 임의로 구성할 수만은 없다. 무대를 구성하는 것은 한 마디로 길의 양상, 나무의 위치와 형태, 돌의 위치와 형태들인데 이들을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위치시켜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 및 주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무대 구성에 있어서 매우 주의를 요한다.그렇다면 시골길은 어떤 길인가? 이 길은 아름다운 들꽃이 피어 있고 곤충들이 날아다니며 향기를 피워내는, 상쾌하고 정겨운 시골길이 아니다.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에서 드러나는 공간에 대한 정보를 통해 볼 때, 이는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시골길이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마치 고독하고 메마른 사막처럼, 생명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방이 툭 터진 광야의 어느 길인 것이다. Merdecluse(p.86)인데, 이 단어는 Merde와 cluse의 합성어이다. 너절하고 , 시 조차도 도망게 하고, 다른 것을 같게 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달라진 것은 나무이다. 1막에서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는 2막에서 나뭇잎이 돋는다. 하루 사이에 나뭇잎이 피어난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주목하는 부분이지만 여기에서 그에 대한 설명은 유보하기로 하자.새싹이 피어난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다. 예컨대, 가능한 시간의 경과일 수도 있고, 새로와지고 되돌아오는 계절의 퐁요로움의 상징일 수도 있으며, 새로운 생명의 싹틈, 모르는 사이 고도가 지나갔음의 증거일 수도 있다. 다만 일상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은 무대가 비논리적인 공간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④ 이 공간은(실상 공간은 뚫려 있지만 의미상으로는)닫혀 있는 공간이다.Huis Clos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블리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닫혀 있는 길 이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 한 개가 놓여 있어 우연히 주저 앉은 에스트라공과 또한 나무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 장소에 머문 블라디미르에게 있어서, 그 길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없는 길이므로 그들은 닫힌 공간에 묶여 있는 셈이다. 길은 어디론칠 수가 없다. 포조와 럭키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혹은 2막에서 밤이 채 되기 전에 에스트라공은 이곳을 떠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를 하고 만다.(p.103) 그는 두려움이 밀려오면, 블라디미르에게 안기거나, 구석에 가서 몸을 낯추던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 뒤에 숨으려고 시도하는 것이 고작이다. 블라디미르도 이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친구보다 좀 더 합리적인 그는 이 공간을 벗어나는 길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이 오거나, 또는 죽거나 아니면 고도가 오면 가능할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다 지친 블라디미르는 밤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왜 이렇게 밤이 안오지? La nuit ne viendra-t-elle donc jamais?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년을 만나고 나서 고도가 오지 않는다무가 있기 때문이다. 자리를 바꾸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는 나무는 그곳이 어제와 같은 장소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다만 어느 누구도 그 나무가 그 나무를 지칭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셋째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특히 블라디미르는 나무를 닮았다. 이들이 닫힌 공간에서 결코 떠날 수 없음은 나무의 부동성을 연상시킨다. 항상 떠나자고 말하지만 그럴 수 없음이 금방 드러나는 그들의 처지가 그렇고, 그리하여 마치 손과 발이 묶여 있다 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들은 급기야 나무의 자세를 취한다. 이처럼 나무와 인물들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특히 블리디미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나무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나무 주위를 맴도는 주된 인물이 바로 블라디미르인 것이다. 예컨대, 2막에서 나뭇잎이 새로 난 것을 발견하는 것도 블라디미르이다.② 돌극작품의 지문에서 돌이 놓여 있는 위치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한 나무에 대해서는 관심은 보이는 등장인물들도 돌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따라서 돌의 형태와 크기, 무대에서의 위치를 파악하기는 무척 어렵다. 다만 첫 장면에서 블라디미르가 등장하면서 돌 위에 앉아 있는 에스트라공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블라디미르가 등장하는 반대쪽 편에 돌이 치우쳐 있는 것이 확실하며, 걸터 앉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가 블리디미르와 관계가 있다면 돌은 에스트라공과 관계가 있다. 넘어졌을 때를 제외하고 항상 서 있는 블라디미르에 비해, 에스트라공은 수시로 돌 위에 앉는다. 한 마디로 서 있는 나무의 공간이 블라디미르의 공간이라면, 앉아있는 돌의 공간은 에스트라공의 공간인 것이다. 그가 돌 위에서 하는 행위는 첫째 신발을 벗는 행위이다. 막이 열리면, 에스트라공은 돌 위에 앉아 신발을 벗으려 애쓰고 있다. 신발을 벗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맨발로 십자가를 짋어짐으로써 구원을 받은 예수를 닮고 싶은 것일까? 구원은 아니더라도 맨발이다.
桓檀古記 檀君記錄에 나오는加臨土 38字는 實在的인 것인가-훈민정음의 여러 기원설과 관련하여1. 序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불상유통)故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고우민 유소욕언 이종부득신기정자다의)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여위차민연 신제이십팔자 욕사인인이습 편어일용이)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한글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한국의 세계 기록 유산으로서, 그 뿌리로는 세종 25년(1443년) 계해 12월에 창제된 훈민정음이라 알려져 있다.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다.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우리나라다. 한자나 영어 알파벳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한글이 편리하고 쉬운 문자라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에는 한글 자판이 있다, 양손으로 자음과 모음을 오가며 아주 빠른 속도로 타자 할 수 있다. 알파벳이나 일본어, 한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서 한글은 더욱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휴대폰을 사용할 때도 매우 편리하다. 훈민정음의 천지인( · - | ) 세 개의 버튼을 사용하면 쉽게 모음을 입력할 수 있다. 세계 어떤 문자도 이것을 흉내낼 수 없다. 최근 한글의 체계를 컴퓨터에 도입하는 한국어공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디지털세계의 총아로서 한글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음소문자이면서 음절문자인 한글은 단순한 음소문자인 알파벳이나 한자에 비해 검색이 훨씬 용이하다고 한다. 이 점을 고려하여 한글을 다국어 번역 시스템에서 '중간언어'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며 학계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처럼 놀라운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우수한 문자가 나오려야유유뷸편이연여)亦嘗聞南海島郎河里之溪谷及鏡珀湖先春嶺與夫烏蘇里以外岩石之間時或有發見彫刻非梵非篆(역상문남해도낭하리지계곡급경박호선춘령여부오소리이외암석지간시혹유발견조각비범비전)人寞能曉此非神誌氏之所作古字(인막능효차비신지씨지소작고자)歟於是而更恨吾國之未振吾族之不强也(여어시이경한오국지미진오족지불강야)한웅천왕은 다시 신지 혁덕에게 명령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였다. 대개 신지 씨는 대대로 법과 명령을 주관하는 직책을 맡고, 물건의 출납과 임금을 보좌하는 임무를 전담하고 있었으나, 다만 목소리에 의존했을 뿐, 일찍이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법은 없었다. 신지 씨는 어느 날 무리와 더불어 사냥을 나갔는데, 갑자기 튀어 나오는 한 마리의 암사슴을 보고 활을 당기려 했으나, 그 순간 암사슴을 놓쳐 버렸다.이에 사방을 수색하면서 산과 들을 지나 평평한 모래땅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사슴 발자국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것을 보고, 사슴이 도망간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신지는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어, “기록하는 방법은 오직 이 같은 방법뿐이구나,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은 다만 이것뿐이로구나” 하면서, 그날의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 되풀이하여 다시 깊이 생각하고, 만물의 모양을 널리 살핀 끝에,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음을 얻어,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아주 오랜 옛날 문자의 시초였다. 그러나 후세로 오면서 연대가 아득하고 멀어져서, 태고의 문자는 다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그것은 아마도 만들어 놓은 문자가 아직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찍이 남해도 낭하리의 계곡 및 경박호의 선춘령과 저 오소리, 그 외의 암석사이에서 때때로 조각, 즉 범자도 아니고, 전자도 아닌 것이 발견되었는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이것이 신지 씨가 만든 옛 문자가 아니라고 하였다.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미진함과 우리 민족의식이 강하지 못함을 새삼 한탄한다.'신지'란 '신시'라고도 표기하였는데 원래 '큰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처음에는 '왕'져 있다. 이 비석에는 처음 보는 신지 글자가 10개나 더 있었다.여러 경로로 우리 앞에 나타난 신지 전자는 모두 31자나 된다. 이렇게 가림토 이전의 문자의 문자에 대해 알아보았다.2.1.2 녹도문과 가림토의 연결고리 『천부경』녹도문과 가림토의 실재에 대하여 논할 때에 빼놓아선 안 될 자료가 바로 『천부경』이다. 때문에 『천부경』에 대해선 자세히 알아보고, 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천부경』은 환인천제가 다스리던 환국으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말이다. 이를 환웅이 신지혁덕에게 녹도문을 창안케 하여 문자화한 것이다.사료 기록을 찾아보면, 묘향산에 운유(雲遊)차 갔다가 돌아오던 최치원이 평양 대동강 법수교가에 쓰러져 있는 고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고비석이 환웅시대의 신지전고비(神誌篆古碑)였다. 최치원은 이를 다시 맞추어 열여섯 자로 된 녹도문의 천부경 원문을 탁본했으며 이를 다시 현재 상용의 한문으로 갱부작첩(更復作帖)하여, 묘향산 중 암벽에 음각해 두었다.천부경의 전승 판본은 세 갈래의 경로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첫 번째는 최치원이 묘향산 석벽에 새겨둔 것을 계연수가 발견하여 탁본해서 전한 것이다. 둘째는 조선중엽의 성리학자 노사 기정진 선생 가분에서 전수되어 오던 판본으로 이른바 노사의 전비문본이다. 셋째는 태소암본으로 고려조 중엽의 행촌 이암이 묘향산 태소암에 운유차 갔다가 어느 날 밤 몽계를 얻고 찾아낸 판본을 말한다.최치원은 변려문체에 능통하였으며 녹도문에 의한 전고비의 천부경을 변려문체로서 숫자 31자와 한자 50자의 81자로 갱부작첩하였다.원래의 천부경인 녹도문의 전고비는 4×4=16의 사사행간인데, 최치원의 조판은 구구행간으로 되어 있다.천부경 원문(9×9=81)中 本 衍 運 三 三 一 盡 一天 本 萬 三 大 天 三 本 始地 心 往 四 三 二 一 天 無一 本 萬 成 合 三 積 一 始一 太 來 環 六 地 十 一 一終 陽 用 五 生 二 鉅 地 析無 昻 變 七 七 三 無 一 三終 明 不 一 八 人 ? 二 極一 人 動 ,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칭한 단군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대 단군 왕검부터 47대 단군 고열가까지 2096년에 걸친 단군 조선의 시기별 역사를 편년체로 싣고 있다.〈북부여기〉는 고려 말의 학자 휴애거사(休崖居士) 범장(范樟)이 전한 것으로, 상·하·가섭원부여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조 해모수에서부터 6세 고무서까지의 204년과 가섭원부여 108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데〈단군세기〉의 속편이다.〈태백일사〉는 이암의 현손이자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맥(李陌)이 편찬했는데, 한국(桓國)·신시시대·고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삼신오제(三神五帝)를 중심으로 한 천지만물의 생성으로부터 단군과 광명숭배, 3조선, 단군 경전, 민족을 드높인 고구려·발해·고려의 대외 관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단군 이래의 기층문화에 뿌리를 둔 고유 신앙을 정신적 기반으로 민족의 자주성과 위대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서술되었다. 또한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실려 있다.『한단고기』의 명칭에 대해선 ‘桓’의 독음에 대해 환단고기 인가 한단고기 인가 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이는 단순히 명칭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에 담겨진 민족 얼의 의미까지 되새겨 보아야 할 문제이다. ‘桓’의 원래 명칭은 한으로 이는 하늘을 뜻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의 역사와 정기를 말살하고자 桓을 한이라고 읽던 것을 환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고어에 하늘을 桓이라 한다(天曰桓)고 했고 『조대기』에 이르기를 "옛적에 桓因이 계셨나니 하늘에서 내려오시사 천산에 사시면서......" 라 했으니 우리 민족은 고대로 하늘을 숭배해오며 하늘에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민족사의 출발점을 하느님 나라로 인식하는 민족적 긍지가 듬뿍 깃든 깊은 의미는 모두 버리고 자음만을 고집해서 "환"으로만 읽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2.1.4 『한단고기』의 진위논쟁『한단고기』가 공개된 지 20년이 넘도록 대다수 학자들은 사료적 신뢰성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단고기』를 상고사연구의 기본사료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청동무기인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기로, 당시 지배층의 독점물로써 중앙에서 만들어 지방에 공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같은 청동기가 사용된 지역은 한 통치 집단에 의해서 지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 비파형 동검이 지금의 북경지역, 만주, 한반도 전 지역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고조선의 영토는 북경지역, 만주, 한반도 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한단고기』에서 이야기하는 고조선의 영토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다.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 '수서령'이란 부분이다. 수서령은 조선시대 세조와 예종, 성종 때 팔도 관찰사에게 명령해서 옛부터 전해져온 희귀서적을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일이다. 지금은 전하지 않으나, 이 수서령이 내려진 책 중에서 『한단고기』에 실려 있는 책과 제목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다. 수서령의 대상이 되었던 책이 『한단고기』의 제목으로 나타나는 것은 계연수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책들을 참고하였다는 근거를 낳게 된다.마지막으로, 천문학을 통해 『한단고기』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천문학 교수인 박창범, 라대일은 와 『단기고사』의 천문기록에 주목하였다. 두 문헌에는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등 육안으로 보이는 다섯 별이 한자리에 모인 '오행성 결집현상'이 기록되어 있고 일식 현상이 10건, 큰 썰물이 1건 기록되어 있다.【한단고기와 단기고사에 기록된 고조선시대의 천문기록】시 기 기록내용B.C.2183년 2세 단군 부루 58년 日蝕B.C.1733년 13세 단군 흘달 50년 五星聚婁B.C.1533년 17세 단군 여을 20년 여름 日蝕B.C.935년 29세 단군 마휴 9년 南海潮水退三倜B.C.918년 6세 기자 2년 7월 七月 日蝕B.C.837년 32세 단군 추밀 13년 3월 三月 日蝕B.C.765년 35세 단군 사벌 8년 4월 四月 日蝕B.C.579년 19세 기자 1년 봄 日蝕B.C.423년 44세 단군 구물 3년 2월 二月 日蝕B.C.258년 47세 단군 고열가 48년 10월 十月 보겠다.
마하스웨타 『드라우파디』, 『젖어미』- 제 3세계를 바라보는 제 1세계의 시선1. 序거대담론이 지배하던 7,80년대가 지나가고 90년대 이후 사람들은 그전까지 변두리에 위치해있던 ‘타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여성’에 관한 논의는 오늘날까지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해체주의, 정신분석, 신역사주의 등 다양한 비평학파에 속한 학자들에 의해서 이야기되어왔다.타자에 관한 논의 중 Subaltern의 개념은 그람시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구하를 비롯한 인도의 서발턴 스쿨에 의해 보편화되었다. 국내에는 주로 스피박의 저작을 번역 소개하면서 ‘하위 주체’라는 용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번역은 오히려 개념에 적합한 이해에 혼란만을 줄 뿐이다.스피박이 주장한 ‘하위주체’란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계급 등으로 타자를 분화하고 규정짓는 것에 반대한다. Sub란 Under와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substance의 경우 ‘본질을 담고 있는’ 실체라는 의미의, Subsequent는 ‘이후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란 뜻의 단어이다. 즉, Sub란 분절된 하위가 아닌 상위의 존재가 가능하게끔 본질적이고 기저적인 성격을 가진 의미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펴 볼 하위주체란 주체 밖에 따로 위치해있는 타자와 달리 주체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앞으로 우리는 스피박이 번역해 제 1세계에 소개한 제 3세계의 소설, 마하스웨타 데비의 「드라우파디」와 「젖어미」를 통해 하위주체에 대하여, 더욱 정확히는 제 1세계에서 바라보고 규정하는 하위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2. 『드라우파디』2.1 역사적 배경1947년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할 당시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인도대륙에는 힌두교도의 인도, 이슬람교도의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이 존재하게 되었다. 동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으로부터 약 160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파키스탄은 원래 영국의 통치시 행정구역상 동벵갈지역으로서, 서벵갈이 인도에 편입됨에따라 이중적(동/서 파키스탄 및 동/서 벵갈) 분리를 맞게 되었다.동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과 같은 종교적 유대를 갖고 있었으나, 언어와 문화가 상이하였고, 경제적으로도 보다 낙후된 지역이었다. 더욱이 동파키스탄의 수출 수익금과 외국의 원조가 대부분 서파키스탄에 유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파키스탄의 고위관리는 대부분 서파키스탄의 파견원들이 독차지하여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같은 상황의 지속으로 인해 동파키스탄에는 1965년 국가 비상령이 선포되었고, 1970년 11월 대홍수로 인해 20만이 사망하는 참사 후 서파키스탄의 지원이 지연된 것을 계기로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후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과 서파키스탄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였는데, 그 안에서 인도의 주요 사회 운동인 낙살라이트 운동이 일어났다.낙살라이트 운동이란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서 벵골의 북부지역의 낙살바리지역에서 시작되어 인도 전역으로 확산된 마오주의적 무장운동이었다. 처음에는 토지를 잃은 노동자들과 지역민들이 지주와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맞서 일어난 운동이었지만 점차로 무장운동으로 전환됐다.2.2 그녀의 이름드라우파디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녀는 두 제복 사이에서, 또 돕디와 드라우파디라는 그녀 이름의 두 판본 사이에서 독자에게 소개된다. 한 사람의 부족민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산스크리트 이름(드라우파디)를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부족화된 형대인 돕디는 고대 드라우파디의 고유한 이름이다. 그녀는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부족 여자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열거하는 목록에는 나오지 않는다.)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도구이자, 자신을 규정하는 억압이다. 그녀의 ‘드라우파디’란 이름은 수르자 사후(주인집) 부인이 붙여준 것이며 명단에 적혀있는 이름이다. 즉, 제 1세계에서 바라본 그녀는 ‘드라우파디 메즈헨’으로 왜곡되어있으며 그들은 명단에도 없는 ‘돕디’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2.3 알 수 없는 토착어토착인들은 ‘산탈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거친 가사’를 부른다. 군인들은 이것이 아르잔 싱 대장의 당뇨병이 도진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드라우파디의 남편인 둘나가 죽을 때 외친 “마-호”라는 말 역시도 그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토착어 연구자들이 여럿 투입된다. 그것은 그들(세나나약과 군인으로 대표되는 제 1세계)의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질서와 통제에서 벗어난, 파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그것을 정복하고자 한다.2.4 나를 카운터해봐스피박은 심문자와 피심문자의 언어가 뒤바뀐 드라우파디의 질문이 지배 엘리트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드라우파디가 세나나약에게 던진, 나를 카운터해보라는 말은 심문하는 능동적 주체와 고문당하는 수동적 객체의 안정된 대립을 더욱 훼손한다.) 스피박의 설명에 따르면 드라우파디가 사용한 카운터라는 단어는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죽임을 당함의 줄임말로서 경찰의 고문에 의한 죽음을 뜻하는 암호이다. 그래서 드라우파디가 엔카운터 대신 카운터라는 동사를 사용한 것은 적절한 영어사용에 더욱 근접하게 된다. 영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스피박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왜나면 드라우파디는 오직 구어체 벵골어만 아는 시골 부족민으로 영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우파디는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공식과 단어는 이해한다. 다시 말해, 드라우파디가 카운터라는 영어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영어 의미론을 가르쳐주는 특권화된 교육이 아닌 부족 서발턴 여성의 견지에서 본 국가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정치적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피박은 이러한 이유로 드라우파디가 나를 카운터하라 는 명령법을 사용한 것은 강력한 해체론적 언어 사용 행위이자 정치적 치환을 통해 언어를 정확히 사용하거나, 아니면 다른 쪽 언어를 작동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마하스웨타 데비의 소설에 대한 스피박의 번역과 논평은 부족출신 서발턴 여성들의 역사를 발언하는데 많이 기여했다. 스피박은 서양독자들을 상대로 데비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이 안고 있는 정치적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스피박의 번역이 안고 있는 위험들 가운데 하나는 데비의 이야기들이 포스트식민 희생자의 비극적 전형을 재현하는 본래의 문맥에서 뚝 떨어져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박은 해체론의 비평적 도구들을 사용하며 마하스웨타 데비의 글에 등장하는 가공의 서발턴 인물들을 서구의 훈련된 지식인들의 지식의 투명한 대상으로 재현하려는 유혹에 저항한다. 스피박은 대신 데비의 텍스트들에 나타난 언어적 수사학적 미묘함을 추적한다. 그리하여 서구의 지식과 재현의 지배적인 용어로는 설명될 수 없는 드라우파디같은 부족 출신 서발턴 여성들의 구체화된 지식을 발언한다.3. 『젖어미』3.1 자쇼다의 육체의 경제적 가치스피박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비평용어를 사용해 이 텍스트에서 자쇼다의 재생산적 몸이 어떻게 경제적 착취의 현장이 되는지를 논증한다. 서발턴 계층인 주인공 자쇼다는 남편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어느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에게 걸려 불구가 되는 바람에 그 집안의 유모가 된다. 자쇼다는 임신과 수유를 반복하며 남편과 가족을 부양한다. 가치 생산의 논리에 따르면 임신과 수유 모두 생산수단이다.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의 주제들을 언급하며 스피박은 자쇼다의 상황이 노동자계급 주체를 규정한 유럽의 고전적 마르크스 주의의 남성중심적 정의를 문제 삼는다고 주장한다. 곧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노동이론에서는 생산적 노동과 재생산적 노동 사이에 성적인 분배가 존재하며 이는 본질주의적 성차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성적 분배 측면에서 출산과 양육을 포함하여 여성이 종사하는 가사노동은 교환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말로 돈을 직접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관습적으로 평가 절하되고 무시돼왔다. 그러나 젖어미에서 주인공 자쇼다는 서발턴 여성의 재생산적 몸이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데 이용될 수 있음을 예증한다. 스피박이 주장하듯 자쇼다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모성적 몸을 부유한 가정에 파는 것은 전통적으로 존재해온 성적인 노동 분배를 사실상 뒤집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쇼다가 가정에서 유일하게 밥벌이를 한다는 이유로 권력을 손에 쥔다거나, 혹은 데비의 이야기가 30년 넘게 서구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곤혹스럽게 했던 몇몇 이론적 모순들을 시적으로 해결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스피박은 자쇼다가 직업적인 어머니로 고용되었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젠더화 된 서발턴의 특이성을 환기한다고 보았다.)3.2 복합적인 억압서구 페미니즘은 전지구화된 경제적, 정치적 틀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정하고 스스로의 역할을 검토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제3세계 여성에 관한 서구 페미니즘 저술은 정보와 사상의 생산·출판·분배·소비라는 서구 학문의 전지구적 헤게모니라는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페미니즘이 주변화 되어있던 그렇지 않건 간에, 서구 페미니즘의 주류적 ‘재현’의 중요한 효과 중 하나는 제3세계 여성을 특수한 시선에서 바라본, 페미니즘과 제국주의의 결합이다. 제3세계 여성에 대한 서구 페미니즘의 재현과 서구 페미니즘의 자기재현을 구분 짓는 것은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가정을 지키는 주부의 역할과 임노동자의 생산적 역할에 대한 차이를 구분하는 방식, 혹은 발전주의자들이 원자재 생산에 종사하는 제3세계의 노동과 진정한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제1세계의 노동을 대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구분은 특정집단을 기준이나 준거로 특권화하는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때때로 제3세계 여성들은 “발가벗겨진 우리들”로 조망하는 것은 이 같은 이항대립적 분석에서 자신들을 규범적 준거로서 내세우는 것이다.)
1. 들어가며 우리는 기독교 신자 1000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서울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포함하여 세계 10대 대형교회 명단에 우리나라의 교회가 다섯 개나 들어 있다. 서울은 ‘교회당들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전체 인구의 25% 이상을 신자로 거느린 기독교는 이제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종교공동체로 성장한 것이다. 혹자는 한국 기독교의 이러한 성장이 한 세기만에 이루어진 것에 ‘기적’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지만 과연 이러한 현상이 축복이며 자랑일 수 있는가? 이러한 양적 성장의 다른 쪽에서는 서로가 교권 싸움을 하며 상대방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갈라져 반목하고 있는 것을 꼬집기도 하고, 교회 이기주의, 교단 이기주의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직자들의 윤리적 타락과 권위적 삶을 비판하기도 한다. 대형교회들은 세상 기업처럼 운영되고 세상 기업처럼 대를 이어 자식에게 넘겨진다. 아니, 세상 기업은 세상의 법에 따라 정부와 여러 기관의 간섭과 감시를 받는다. 그러나 교회는 그러한 간섭과 감시로부터도 자유롭다. 교인들은 좋은 대학에 자녀가 입학하도록 지도하고 헌금하고 입학되면 감사헌금을 한다. 마치 나무 아래 물 떠다 놓고 아들 딸 좋은 대학 입학하도록 기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도 정치인과 그냥 정치인은 다른가? 기독교도 교수와 그냥 교수는 다른가? 그들의 행적에서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그 어떤 기독교도로서의 차별성을 찾을 수 있는가? 과연 한국 기독교가 오늘날의 모습을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본 발표는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어느 분야에서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이미 특권화된 기독교 사회의 울타리가 그만큼 견고하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특성을 이야기하려면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정현종 시의 생명의식 연구정현종 시론 연구목차Ⅰ. 서론Ⅱ. 생명의 상상력1. 이미지와 상상2. 말의 살3. 역동적 고요Ⅲ. 생명의식의 모색1. 생태적 사유의 기저2. 디지털 신화와 생태학적 신화Ⅳ. 결론Ⅰ. 서론정현종(1939~ )은 1964년 ≪현대문학≫에 「和音」, 「주검에게」와 1965년 3월 「獨舞」, 같은 해8월에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추천을 완료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등단 이후 지속적이며 독자적인 시세계를 전개해 온 정현종은 그의 시력이나 시사적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다양한관점에서 연구가 기대되는 시인이다. 그러나 생존 작가라 문학 활동이 지속되고 있어서 현재까지의 연구는 단순한 평론의 형태에 국한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게다가 대부분의 논의가 첫 시집인 『사물의 꿈』에 한정된 문학사적 평가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물의 꿈』에 대한 논의는 그의 독특한 시적 방법과 이미지에 천착이 주를 이룰 뿐, 시세계의 전모와 시적 성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작품 분석의 부족으로 피상적인 관찰에 그치고 있다. 정현종의 문학 세계를 물질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분석하거나 물질적 상상력의 이론에 기대어 설명하려 했던 시도들이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따라서, 본고에서는 1980년대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이 기능하지 못하고, 인문학을 필두로 한 문학의 위기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안이 나타나지 않은 채 포스트모더니즘의 열기가 식어버린 마당에 대두된 문학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냉철하고 깊이 있는 반성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등장한 생명의식이 본격화된 정현종의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자연의 황폐화와 문명의 광기, 문학의 위기를 인식하고 문학가 특유의 직관과 철학적 깊이로 현실을 바라보고 창작에 몰두한 정현종 시의 생명에 관한 상상력을 논의하고자 한다.Ⅱ. 생명의 상상력1. 이미지와 상상1960년대에 등단한 시인들은 대개 ‘시적 이미지’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자랑한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시작된, 현대시를 향한 치열한 열망이 이미지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죽”이 아니라 “그 속의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원한다.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의 뒷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인의 거점이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이때 시인이 바라보는 “진실”을 일러 정현종은 “리얼리티”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리얼리티를 상상에 대립시키는 통상의 정의와는 달리 정현종의 리얼리티는 상상의 세계를 통해서 바라본 현실의 뒷면을 가리킨다. 이때 주목할 것은 상상의 세계를 통해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바라보는 일은 그것 자체로서 완전한 행동이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 속에서 바라보는 일은 가장 아름다운 일 중의 하나이다. 바라보는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우리가 만일 빈 재떨이를 바라보는 법을 알고 있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되고 재떨이를 꽁초로 메우지 않아도 될는지 모른다. 빈 재떨이를 바라보고, 보면서 거기 몰입할 수 있다면 그 빈 재떨이는 바라보는 자에게 거의 모든 것을 알려 줄는지도 모른다. 그건 가능한 일이다.)그러나 사람들은 “바라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상상의 세계에서 바라본다는 것, 그것을 정현종은 “마음의 평정 속에서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는 바라봄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기만 하는 세계”에 해당된다. 그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정현종은 “절대적 봄absolute seeing”이라는 명상용어를 도입하고 있다.) 그와 같은 바라봄은 눈앞의 현실적인 대상을 바라보는 ‘상대적인 봄’을 능가하기 때문에 바라보는 자에게 사물은 “거의 모든 것을 알려 줄는지” 모른다. 대상에 매여 있는 상대적인 봄 앞에서는 은폐되어 있는 사물의 어떤 측면이 대상에 매이지 않는 절대적 봄을 통해서 모두 개방된다는 뜻이다. 사물의 모든 비밀이 개방되는 이와 같은 절대적 봄의 거점이 정현종에게는 “상상적 세계”이다.정현종에게는 이와 같이 사물의 비밀, 사물의 리얼리티를 개방시키는 눈이 있다.육체의 눈이 안쪽으로 향하면서, 그리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명상의 있는지도 모른다. “말의 살”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몸을 통해 말이 살아간 흔적이다. 그렇다면 “말이 우리 속에 살고 있는 동시에 우리는 말 속에 살고 있”)다는 정현종의 통찰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말로 된 육체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의 살”의 침묵을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말로 불러낼 수는 없다. 그 침묵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은 그 “침묵에 가까운 말”, 즉 “말의 살”을 통해서 말해야 하는 사람이다.그렇다면 시인이 “말의 살”을 통해서 말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예컨대 우선 우리의 인식의 틀로, 인식의 문들(감각 기관)이 모두 육체에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를 통해서 우리가 뭐를 안다고 할 때 나는 그걸 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사변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만져 보는 것과 다름없는 구체적 인식이지요. 이걸 심지어는 육체적 인식이라고 해도 좋을 거예요.)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안다고 하자. 그것은 우리가 그 대상을 가리키는 말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말의 살”을 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말로 품고 지내온 육체인 것이다. 우리의 몸에 그 대상을 품고 있는 “말의 살”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대상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물론 말을 통해서 눈앞에 있는 대상을 가리킬 수 있다. 하지만 대상을 가리킨다는 것만으로는 “말의 살”이 생기지 않는다. “말의 살”은 대상을 가리키는 그 말이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 살아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앞서 우리는 정현종 시인의 궁극적 소망이 자신이 노래하는 바로 그 사물 자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물이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했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으로 가장 사물에 근접한 상태를 경험할 것인가?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다. 그들의 눈은 “내적 공간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으며, 사물들을 그들의 내적 거울의 심연에 비추어보지 않는다.”)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현실의 결핍에 몸부림치며 그것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 현실과 내가 하나로 될 수 있는 상태에 돌입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시인과 시를 통해 현실이 지금 당장 자신의 결핍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어야만 한다. 그때의 시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며, 현실 또한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 상태로 변화한다. 시인은 현실을 바깥에서부터 모방하는 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이 시인과 깊은 심연에서 한 몸이 되어 그 깊은 내부에서부터 현실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밖으로 표출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시인은 현실을 모방하기보다는 현실의 고통과 현실의 결핍을 감수하는 내면의 울림에 더욱 귀기울여야 한다. 꿈이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3. 역동적 고요대체로 직관과 상상력을 강조하는 그의 시가 동시대의 〈현대시〉 동인들의 그것과 다른 점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온건한 실험정신 혹은 명상적 태도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에게는 대표적인 시론으로 〈역동적 고요의 공간〉(1978), 〈시의 자기동일성〉(1982) 등이 있으며, 이 자리에서는 전자를 중심으로 시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간추리고 문제점을 살피기로 한다. 이 글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시가 태어나는 공간, 시의 모태, 그런 모태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 시인과 작품의 관계 등 크게 네 가지이다.첫째로 그는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내면공간 감각기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내면공간이란 상상력?의식?지성?감정 혹은 정서?무의식?몽상 등으로 불리우는 여러 힘들의 운동과 상호작용을 뜻한다. 이런 힘들의 상호작용은 또한 눈?코?입?귀?피부 등의 감각기관들이 안을 향해 열려 있는 상태를 요구한다. 쉽게 말해서 그는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공간을 외계상이 아니라 파괴와 부정을 통한 유토피아를 갈망했다. 그들이 지향한 세계는 역동적 고요의 공간이 아니라 역동적 소음의 공간이었고, 마음과 육체가 분리되어 마음이 우선권을 차지한다는 부르주아의 초월적 절대적 자아가 부정되는 경지이다. 그들은 따뜻한 몽상이 아니라 섬뜩한 악몽을 노래했다.끝으로 정현종은 자기가 쓴 작품들을 다 잊어야 모든 시인은 제대로 창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사실을 잊어버림으로써 기억한다 는 말로 요약한다. 그것은 또한 실존적 과거에 대한 초월성 , 자기의 현재를 끊임없이 미래화하는 일 이라는 말로도 대치된다. 이런 말들을 통해 내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미래지향적 시인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때의 미래란 어디까지나 상상공간과 관계된다. 한 편의 시를 쓸 때 시인들은 과연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일까. 상상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의 말처럼, 이미지의 창조성과 개방성 및 실존적 과거에 대한 초월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상상의 공간은, 그러니까 상상력의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로부터 다른 세계로 떠나는 행위이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미래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때의 미래라는 것은 과거와 결합된 미래이며, 이런 과거-미래의 시간은 현재로 인식된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미래화를 상상력의 특성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모더니스트의 미학을 암시한다.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이 노린 것은 과거와 미래가 복합된 풍요한 한 점으로서의 시간이다. 그것을 우리는 시적 이미지나 순수지속이라는 개념 속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현종은 모더니즘의 시간관을 보여준다. 다만 자신의 옛 작품을 망각하는 일과 창조과정을 시간과 연결시키는 문제는 별도의 고찰을 요구한다. 결국 정현종은 이 시론에서 부르주아 미학을 동양적 불교사상과 결합시키며, 자유주의적 휴머니스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Ⅲ. 생명의식의 모색1. 생태적 사유의 기저환경시 혹은 생태시 문학생태학 이란 용어는 1774년 미국의 문학이론가 조셉 미커(Joseph W.Meeker)의 저서 The 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