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햄버거에 대한 명상과 목 :교 수 :학 과 :학 번 :이 름 :1. 들어가는 말『햄버거에 대한 명상』에는 유독 햄버거, 브라운소스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1960년산 젊은 세대의 외설, 혹은 불경스런 시적 징후'라는 평론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그의 시 속에선 고유의 정체성(Identity)과 아메리칸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동경이 마음속 깊이 충돌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의 시에서처럼 햄버거는 우리에게 그런 이중성을 띤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햄버거의 위력은 언어가 다른 나라로의 해외여행 시 실감난다. 음식의 내용이나 맛, 가격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문과 거의 동시에 입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탁월한 편의성과 함께 인위적으로 만든 보편적인 맛 때문에 햄버거를 즐겨 찾는 이가 많다.그러나 최근, 육식의 과잉 섭취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분위기가 급전하고 있다. '육식의 종말' 이나, '패스트푸드의 제국' 등과 같은 책을 통해 식품으로서 햄버거 자체의 안전성뿐 아니라, 고기를 얻기 위한 목축이나 도축 과정에서 야기되는 환경오염은 물론, 저임금 구조를 고수해 온 맥도날드의 열악한 고용실태가 전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또 미국인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비만이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기까지 햄버거가 가장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비만이 심각한 성인병을 유발하고, 생명을 단축시키는 현대 질병의 하나임은 주지의 사실이다.아메리칸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60년산 장정일에게 자기 시집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햄버거가 이제는 의식없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Junk Foods 신세로 몰락해가는 현실은 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2. 장정일,『햄버거에 대한 명상』이 시집은 80년대 우리 문단의 새로운 시 기법을 선보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7회 김수영 문학상에 걸맞는 도시적 풍모가 단연 압도적이다. 이것은 80년대 우리 시단의 모습을 두 가지 방향 축으로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우리 문단에 제기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문학의 대립에 값하는 두가지 의미망이다. 적어도 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는 후기 산업사회의 해체적 기법을 보이는 것이고, 리얼리즘의 의미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비판의 형상화라는 점이다. 이 시집에서는 이 두가지 의미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특히, 도시시 계열의 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옹호하는 논자들에 의해 그 해체적 의미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을 '포스트적' 기준으로 재단하는데 따른 몇 가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먼저 이 시집의 문학 형식이 갖는 위상 문제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이미 서구 산업사회의 구체적 대응 작업임을 전제할 때, 장정일의 시의 형식 파괴는 후기 산업사회의 징후를 드러낸다기보다는 오히려 김수영의 도시시 계열의 연장선이 아닐까?다음은 시의 주제 문제이다.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현실 비판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 구체적 대응 방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리얼리즘 시로서의 참된 가치를 획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 시집은 단순히 도시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머무르고 있다. 이 시집은 이 두 가지 문제 상황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는 8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존재의 불안에 값하는 한계점이다. 이것의 구체적 한계점과 성과는 80년대의 해체적 시 읽기를 위한 선행 작업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장정일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재기 발랄하고 기발한 착상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집의 전체를 관류하는 것은 현대 산업사회의 도시적 일상의 패러디와 해체의 시화이다. 사실 이 시작 태도는 50년대 전후 문학에서 잃어버린 실존을 찾으려는 단말마적인 구호가 지배적 심상인 '후반기 동인'과 60년대의 소시민적 일상을 극복하려는 김수영의 도시적 감수성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러한 기본적 작법을 계승하고 있는 시집은 크게 두 가지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무절제한 서구 지향적인 성향에 대한 비판적 풍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향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이다. 시 은 비판적 풍자의 대표적 작품이다.낙인티브이를 켜니 서부극인 모양이다.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카우보이가밧줄 올가미를 휘휘 휘둘러마구 뛰어달리던 야생마를 낚아뜨린다.그런 다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뜨거운 부젖가락을버둥대는 말엉덩이에 사정없이 눌러찌른다.양키들은 잔인하구나!채널을 다른 방송으로 돌리자 광고가 흐르는데말같이 튀어나온 한국 아가씨의 엉덩이에리바이스 청바지 상표가 빨갛게 눌러찍힌다.우리 신세대들이 미국식 사고와 미국 사회의 동경에 빠지고 있는 풍조를 꼬집고 있다. 미국식 합리주의와 미국 상표에 은연중 빠져 있는 우리는 미국의 정신적, 물질적 식민주의이다. 이 시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신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풍자이다. 서부 개척시대, 자신의 힘과 소유의 상징인 말발굽이 우리 사회의 식민지적 상황을 반어적으로 풍미하고 있다. 화자는 단순한 문명비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도 우리 사회의 허위를 꼬집고 있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을 예리한 화자의 눈을 통해서 비판되고 있다. '양키들의 잔인한' 폭력성이 우리의 소비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낙인'이 우리 사회의 부분을 갉아먹고 있다.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채,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우리 산업사회가 치달리고 있는 소비만연의 향락 풍조와 무비판적인 외국 상표의 사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화이다. 이것은 반대로 점차 도외시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의 앤솔로지는 '새로운 리얼리즘'을 모더니즘의 기법으로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자칫 잃어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세계관을 제시해 준다. 비판적 현실 인식이 전제된 화자의 세계관은 새로움을 향한 동경이다. 이것은 모더니즘의 전통성을 긍정적으로 계승하고 있으며, 세계에 대한 보다 확고한 비판으로 확대되고 있고 현실비판 의식을 통한 새로운 이상향의 세계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시집은 전통적 모더니즘의 긍정적인 계승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현실과 이상 사이를 방황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현실의 혼돈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자아 찾기의 과정이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갈등구조이다. 박인환과 초기의 김수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갈등 구조이다. 문명의 반향, '도망하려는' 화자의 심리가 새로움을 향한 자아 찾기이다. 잠겨진 '물'의 세계, '깊은 바다'의 세계가 화자가 지향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새로움의 세계는 화자의 적극적 의지가 개입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공간이다. 이는 모더니즘 시인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절망적 세계인식이다.지하인간내이름은 스물두 살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무덤이 둥근 것은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말없는 찬사이므로.『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모더니즘의 문명 비판적 자세를 긍정적으로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에 대한 적극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절망하고 만다. 이는 골드만의 '비극적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황지우가 에서 '모두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마는 절망에 다름 아니다. 80년대 모더니즘 시들은 현실의 위기의식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방황하는 실존이 안주할 수 있는 구체적 세계를 제시되어야 한다. 그것은 절망의 세계가 아닌 비상의 세계여야 하며, 비극적 세계가 아닌 저항의 세계여야 할 것이다.
고전문학사 REPORT1. 머리말2. 백제가요의 현황과 전승양상1) 백제가요(百濟歌謠)2) 백제가요의 현황(1) 제목과 내용만 전하는 노래-무등산, 지리산, 방등산, 선운산(2) 한역되어 전하는 노래-산유화가(3) 가사가 전하는 노래-서동요, 정읍사3) 백제가요의 전승양상(1) 제목과 내용만 전하는 노래(2) 한역되어 전하는 노래(3) 가사가 전하는 노래3. 맺음말4. 참고문헌· 사이트1. 머리말백제는 예로부터 비옥한 농토와 온화한 기후로 화려하고 풍요로운 문학을 향유했을 것이라 추측되어 진다. 특히 농사를 주 생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노동요나 농사 후 휴식이나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가 다양하게 발달했을 것이다.하지만 백제어와 마찬가지로 백제문학도 남겨진 것이 별로 없어 고증이 힘들다. 이는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 이므로 패망한 백제는 더 이상 주체세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삼국을 통일하면서 신라는 자신들의 문화를 꽃피워 나갔고, 또 이를 중심으로 기록했을 것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와 만난다. 패자인 백제는 패망과 동시에 자신들이 설 자리를 잃었으며 언어와 함께 문화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유실되고, 잊혀 졌을 것이다.단지 현재 남아있는 단편적인 자료로 백제가요를 유추해 보자면, 백제에서 악 또는 예악이 이루어진 과정이나 그 모습은 고구려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추정된다. 자료의 부족으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문화의 교류에서 백제가 고구려만큼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백제 음악 또한 중국에 소개되었고, 일본에 전해지기도 했다. 특히 일본과의 교류는 더욱 구체적인 형체를 띈다. 554년에 일본에 가서 음악을 가르치던 백제인 악사들 선.후임자가 교대를 했다는 기사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인다. 백제사람 미마지(味摩之)가 남중국 오나라에서 배운 기악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도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하다.백제가요가 중국, 일본에 소개되면서 교류되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백 여기에 가사가 붙여진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옛날에는 가사와 곡이 동일 작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요는 시가의 한 형태로 생각됨과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시가의 원천으로서, 부르는 노래로서의 가요에서 읽는 노래로서의 시가를 분기(分岐)시켜 온 것이라 본다.또 가요는 민요와 예술적 가요로 크게 나뉘며, 민요는 작사자나 작곡자를 밝혀내기 어려운 민족적 또는 집단적 소산임을 그 특징으로 하며, 민중 일반에게 불리는 까닭에 가사나 곡조가 단순하다. 반대로 예술적 가요는 개인적인 예술적 창작이므로 그 작사·작곡자가 알려져 있음은 물론, 곡의 구성이 복잡 ·고급 또는 장대(長大)하여 대개 전문적인 가수에 의하여 가창된다.그러나 민요는 예술적 가요의 원천이 되기도 하며, 예술적 가요가 민중의 생활 속에 흘러들어가 민요와 같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요를 내용면에서 보면 세속적인 가요와 종교적인 가요로 나눌 수 있으며, 세속적 가요에는 연가(戀歌)·노동요·경축가·권주가·자장가·동요·군가·행진가 등이 있고, 종교적인 가요는 제사나 예배, 또는 주술용으로 만들어지는데, 서양에서는 신에 대한 찬미가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백제가요(百濟歌謠)란 백제시대의 가요로서 현재 가사가 전하는 것은 〈서동요〉와〈정읍사〉는 둘뿐인데 〈서동요〉는 실제로 백제의 가요인지 의심스러운 데가 많으며, 〈정읍사〉도 후기 작품으로 추측된다.〈무등산가〉,〈방등산곡〉,〈선운산가〉,〈지리산가〉등은 곡명과 그 유래만 《고려사악지(高麗史樂志)》에 전한다.)2) 백제가요의 현황백제가요에는 제목과 간략한 내용만 전하는 노래와 한역되어 전하는 노래, 가사가 전하는 노래 세 부류가 있다. 이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1) 제목과 내용만 전하는 노래)악지 ‘삼국속악조’에 백제노래가 소개되어 있는데 제목과 대략의 내용이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백제가요는 , , , 네 편이다. 고구려의 경우처럼 지명을 노래이름으로 했다. 모두 산 이름을 제목으로 삼고 있어서,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로 전해졌지만규탄한 노래인 것인데, 이러한 노래가 어떤 연유로 궁중의 악곡으로 채택해 관련사연과 함께 기록에 올라 후대까지 전했는지 궁금하다. 이 경우, 주제의 변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민간전승에서는 폭정을 문제 삼았지만, 궁중악은 정절을 내세웠다고 생각된다. 바른 행실을 가르쳐 백성을 교화한다고 표방하기 위해서 여인의 정절을 기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부녀의 도리를 다했다는 데서는 유학에 의한 윤리관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따르는 사연은 도미(都彌)라는 사람의 아내가 개루왕의 겁탈에 항거하다 가까스로 살아났다는 이야기와 유사하여, 같은 사실에 대한 두 가지 전승이라는 견해도 있다.③ 방등산方登山 在羅州屬縣 長城之境 新羅末 盜賊大起 據此山 良家子女多被擄掠長日縣之女 亦在基中作此歌以諷其夫不卽來救也(高麗史 卷71張46志第25樂2)은 신라 말에 있었다는 사건에서 유래한 노래이다. 그때 도적이 크게 일어나 장성지방의 방등산에 근거를 두고 양가 여자들을 많이 잡아갔다고 하면서, 잡혀간 여자 가운데 하나가 자기 남편이 와서 구해 주지 않는 것을 풍자하느라고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했다. 풍자는 원망이라고 하는 편이 적합하다. 이 노래는 후백제시대의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도적이라고 일컬은 무리는 후백제의 군사일 수 있다. 고려의 입장에서 후백제 정권이야말로 도적 같은 짓이나 해서 이런 노래가 생겼다고 하면 명분이 선다. 그래도, 잡혀간 여자가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풍자했다는 것은 무언가 말이 되질 않는다. 도적떼가 성한 판에 남편인들 어쩔 도리가 없다. 오히려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하면 더 어울린다. 백성의 민요를 채택하면서 사연이나 사설을 바꾸어놓을 때 다소 무리가 생겼을 수 있다.④ 선운산)長沙人 征役 過期不至基妻思之登禪雲山望而歌之(高麗史 卷71張45-46志第25樂2)은 지금은 고창군에 편입된 고을 사람이 부역을 나갔다가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아내가 산에 올라가 기다리며 부른 노래라고 했다. 이런 사연은 민요가 충분히 생겨 백제가요로 보고자 한다.다음 의 경우 백제의 노래가 아닌 고려의 노래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도 불려지고 조선 초기까지 입으로 불려 전해지던 것을 '훈민정음' 창제 후에 훈민정음으로 기록을 한 것이고 고려속요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읍사'에서 '정읍'지방이 지금의 전라도 지방에 있기 때문에, 그 곳은 옛날의 백제 땅으로 백제 때부터 불려진 것으로 추정하여 '백제가요'라고 본다.)① 서동요백제의 서동(薯童: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민요 형식의 노래이다. 이두(吏讀)로 표기된 원문과 함께 그 설화(說話)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무왕조(武王條)에 실려 전한다. 즉, 무왕이 어릴 때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사모하던 끝에 머리를 깎고 중처럼 차려 신라 서울에 와서 마[薯]를 가지고 성 안의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며 이 노래를 지어 그들에게 부르도록 하였다.내용은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는데, 이 노래가 대궐 안에까지 퍼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 보내게 되었다. 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그러나 당시 신라·백제 두 나라의 관계로 보아 이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부정하는 설이 있다. 가장 타당한 설은 익산(益山) 미륵사(彌勒寺)의 연기(緣起) 설화로서, 백제의 멸망 후 미륵사 승려들이 절을 구하고자 신라와 미륵사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지어낸 설화라는 것이다.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卯乙抱遺去如선화 공주님은남 몰래 시집가 놓고서동을밤에 몰래 안고 간다.)② 정읍사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구백제(舊百濟) 지방의 노래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내용은 정읍현(井邑縣)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밤길에 위하지만 정식 문헌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 없이 단지, 서해안 일대에 촌로들의 구전이나 농요로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즉, 는 충청도 일부지방에 전승되는 민요의 하나로 농부들이 김을 매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른 노동요로서 불리운다. 민요적 성격 때문에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 있다.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민요로는 세 계열이 있다. 하나는 논매는 소리, 나무하는 소리 등으로 불리는 이고, 다른 하나는 모심는 소리 등으로 불리는 이며, 마지막 하나는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또는 이다. 계열의 노래는 실제 민요 전승자들이 이를 또는 라고 부르고 있어 의 맥락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는 서민들의 생각과 애환을 담고 있는 노동요로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부여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박홍남씨 외에 2명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민요 가운데 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은 충청·경상지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그 가사내용의 대부분이 백제고도 부여의 지명이나 백제고사와 연결되어 있어 이 노래가 백제가요가 민간에 구전되면서 취향에 따라 그 가사 내용도 변천되었음을 알 수 있다.궁야평 너른 들에/ 논두 많구 밭두 많다/ 씨뿌리고 모 욍겨서/ 충실허니 가꾸어서/ 성실하게 맺어 보세//산유화야 산유화야/ 오초(吳楚) 동남(東南) 가는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북얼 둥둥 울리면서/ 어기여차 저어가지/ 원포귀범(遠浦歸帆)이 이 아니냐//산유화야 산유화야/ 이런 말이 웬말이냐/ 용머리를 생각허면/ 구룡포(九龍浦)에 버렸으니/ 슬프구나 어와 벗님/ 구국충성 다 못했네//산유화야 산유화야/ 입포에 남당산은/ 어이그리 유정턴고/ 매년 팔월 십륙일은/ 왼 아낙네 다 모인다/ 무슨 모의 있다던고//산유화야 산유화야/ 사비강 맑은 물에 / 고기 잡는 어옹덜아/ 온갖 고기 다 잡어두/ 경치 일랑은 낚지 마소/ 강산 풍경 좋을시고//에-헤-에헤야-헤헤/석된다.
현대소설론report1. 들어가면서2.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1) 구성(plot)(2) 시점(3) 보르헤스의 영향3. 나가면서4. 참고1. 들어가면서“소설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당신은 무엇이라고 답을 하겠는가.소설이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며 쓴 것이다. 인간사 구석구석에서 벌어졌음직한 일을 끄집어내어 갈등으로 점철된 삶의 단면을 부각시켜 흥미롭게 각색해 글로 전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도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없고, 어떤 소설도 그 시대와 사회의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것들이 그런 것처럼 소설 역시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소설을 씀으로써 작가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그 안에 담는다. 물론 과거의 역사를 소재로 씌어진 소설도 있고, 미래의 특정한 시간을 배경으로 하여 씌어진 소설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에 그려진 과거와 미래 역시,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시간과 공간 즉, 작가의 현재의 세계관이 투사된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소설이 현실의 반영이라는 말 속에는 그런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소설 속에 현실을 담는다.그렇다면 현실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 것일까. 소설 속에 나타나는 현실은 반드시 참인가.우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옮겨 적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실을 찾고 옮겨 적는 작업을 하는 역사가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지나간 시간의 ‘현실’을 모두 적는 시도를 한다면 그 분량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할 것이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지쳐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가든지 요약이나 생략 등의 기법들이 쓰이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가공이라 이야기가 어떤 구성을 갖는지 누구의 시선으로 보는지에 따라 같은 소재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독자는 같지 않게 느끼게 된다.또 소설의 정의에서 보이듯 소설은 100%의 사실이 아두갈래로 갈라지는 길』(1) 구성(plot)앞서서 의도적인 방식으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이 허구라 하였다. 그렇다면 구성이란 무엇인가부터 알아보자.구성 즉, 플롯(plot)이란 키어런 이갠은 하나의 결정적인 감각적 반응을 일으키도록 사건들을 한정하고 연속화하는 법칙의 집합이라 하였다. 즉 스토리가 시간 순서로 배열된 사건들의 서술이라고 하면, 플롯은 인과성을 강조한 사건들의 서술로 “왜”에 초점을 둔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생각,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으로, 이때 플롯은 필연성을 가져야 하며 주제를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에서 플롯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먼저 이 소설은 시작하는 장마다 일정한 내용을 서두에 반복해서 적는다.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왜냐하면 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광화문 한복판에 땅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지난 8월 25일 밤에 김소령이라는 위인으로부터 들었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라는 찻집에서였다. 그 찻집에 간 것은 세 번째였고,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이 부분은 어찌 보면 사건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은 플롯에 대해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물론 이 대목이 사건의 흐름을 끊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단절이 구성상 결함을 낳는 요인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단조로운 이야기 흐름을 조절함으로써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반복적인 쓰임으로 작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사실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최면적 역할을 한다. 또 다룰 사건을 미리 예견하면서 소설의 이야기를 조리있게 펼쳐 나가는데 중요한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렇게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그 수상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것은 소설의 반 이상을 읽어 갈 무렵이다. 지금 세태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암시만 해 줄 뿐, 정작 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한참 뒤의 일인 것이다. 그따라 그 의미와 뜻이 정의된다 한다.가령 ‘입’은 강의실, 마이크와 배치될 때 ‘말하는 기계’가 되고, 식당, 음식과 배치될 때 ‘먹는 기계’가 된다. 우리가 선택한 재료를 무엇과 연결하고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사뭇 달라지고 그것에 대한 반응도 달라지게 된다.(2) 시점앞서 말했듯 소설은 이야기이고, 그러나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 대한 작가의 입장, 즉 세계관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 속에 적절하게, 마치 추어탕 속의 미꾸라지가 그렇듯 이야기에 완전히 녹아들어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가 보이지 않아야 하고, 독자는 다만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전달받아야 한다.그렇다면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여기에 방이 있고 문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 방 안쪽에서 방 바깥쪽으로 움직인다. 그럴 때 그는 방에서 밖으로 걸어나오는가, 걸어나가는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신(화자)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이 방 안에 있다면 ‘그가 걸어나간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방 밖에 있다면 ‘그가 걸어나온다’고 말할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언제나 기준이다.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그 사실을 전해 주는 사람(화자)의 입을 통해서이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그가 움직이는 걸 본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인물)가 어떻게 움직였는지(사건)를 직접 본 것이 아니고, 그걸 직접 보고 전해 주는 사람(화자)의 말을 통해 알게 된다. 말하자면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를 통해 말해진 이야기이다.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허구의 이야기는 누군가를 통해 서술된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실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역사는 그것을 기술하는 자의 역사이다. 사건의 본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해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떤 사건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건과 함께 그 사건을 옮기는 사람의 욕망과어색하다.먼저 청자가 바로 옆에 있는 듯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하다.무엇보다 먼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하자면, 그녀는 매우 특별한 여자다. 뭐가 특별하냐고? 그렇게 묻는 것은 좀 도발적이지 않는가. 아니면 눈치가 없거나.)또 중간중간 화자는 ‘나’의 시점이 아니라 사건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 전지전능성을 부여받는다.상대의 신분에 관심 갖지 말라고 충고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는 순간 이 세계가 준비하고 있는 순진한 즐거움은 사라진다는 것이 그 친구의 가르침이었다. 그곳의 공기가 그곳에 들어온 사람의 폐 속으로만 들어가는 것처럼, 그곳의 사람들 역시 그곳에 있는 동안만 만난다. 벽이 둘러쳐진 곳은 어디나 독립된 하나의 세계다. 독립된 하나의 세계는 독립적인 하나의 규범과 관습을 갖는다. 우리나 우리의 삶이 세계나 세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나 세계의 삶이 우리나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화자의 시선이 1인칭인가 3인칭인가가 아니라 화자의 시각에 나타난 사실과 허구의 관계이다.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김소령의 의식을 대변해서 말하고 있다.“좀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제외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알게 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가 알게 한 것들만 아는 겁니다. 당연히 불완전하지요. 당신네들을 위한 방 이야기를 괜히 꺼낸 게 아닙니다.”)그리고 우리가 허구가 사실로부터 기원됨을 ‘나’의 의식에서 말하고 있다.이미지야말로 가장 강렬하고 단호한 것이다. 어떤 논리적 설명이나 경험의 축적도 순간의 이미지를 이기지 못한다. 사람을 홀리는 것의 9할은 이미지이다. 이미지가 실체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나는 분명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이미지가 실체를 배반하거나 과장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미지가 실체로부터 유출되 과정에는 잘라내기와 붙여쓰기, 축소와 과장과 오려붙이기가 포함되어 있다. 김소령의 말처럼 치명적인 기억은 과장되어 있을 수도 있고 잘라내졌을 수도 있다. 때로는 드러내기가 두려울 수도 있다. 사실이 허구일 수도 있고 허구가 사실일 수도 있다. 예를들어『나, 황진이』처럼 수많은 주석으로 사실성을 부여해도 그것은 작가의 의도가 부여된 하나의 허구일 뿐이다.(3) 보르헤스의 영향이 소설은 보르헤스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나는 소설이다.김소령의 땅굴 이야기를 짧은 가쉽기사 몇 줄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고 취화당이라는 명칭은 ‘365norae’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의 블로그 내용에서 실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준다. 또 묘선이 지은 고문서 『취화당 일기』가 땅굴이라는 비현실 공간을 만든 이가 누구임을 짐작케 해준다. 또한 묘선의 텍스트는 조선조 아현 세자의 부인인 허란궁 서씨의 『비록』에 의해 기록의 진실성을 담보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 속에서 아현 세자도, 허란궁 서씨도 발견할 수 없으며, 그녀의 텍스트인 『비록』은 더더군다나 찾을 수 없다. 다만 “아버지의 미움을 받아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세자”라는 표현을 통해 아현 세자가 사도 세자를 암시하며, 허란궁 서씨는 혜경궁 홍씨를, 그리고 『비록』은 『한중록』의 패러디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이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빈번히 발견된다는 점에서 이승우가 보르헤스를 모방하고 있음은 자명해 보인다.이승우의 소설은 이러한 기법뿐만 아니라, 아예 이라는 찻집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보르헤스의 영향성을 밝히고, 이것도 모자라 아예 그 이름을 “를 인용해서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찻집은 땅굴의 입구를 밝혀줄 단서로 사용되는 곳으로서, 두 연인이 김 소령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이렇듯 이 소설은 문자화된 텍스트를 통해 끊임없이 독자에게 그 진실성을 회의하게 만든다. A가 B를 증명하고 B는 또 C가 증명하면서 진실성을 부여한다. 또 여기에 기존에 알고 있었던 텍스트를 의도적으로 패러디하여 사실의 근거로 쓰면서.
Ⅰ. 서론“金 劈海 香象渡河 ”「글을 씀에, 그 기상은 금시조(金 鳥)가 푸른 바다를 쪼개고 용을 잡아올리듯 하고, 그 투철함은 향상(香象)이 바닥으로부터 냇물을 가르고 내를 건너듯 하라...」‘예술이란 무엇이고 진정한 예술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에서도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스승과 제자의 대립구조를 통해 제기되는데 위의 여덞 글자로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다. 위 구절은 에서 석담 선생이 고죽에게 내린 서도의 가르침으로 이 소설의 제목인 ‘금시조’의 근원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설 전체의 갈등 즉, ‘도(道)와 예(藝)’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는 근대 사회의 도래로 인한 사회 환경의 변화를 배경으로 ‘문학은 도를 싣는 그릇이다’라는 조선 시대의 성리학적 문예관과 예술 자체의 존재가치를 강조하는 근대의 자율적인 예술관의 충돌 즉 글씨를 쓰는 것이 예인가 도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 그리고 애증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간적 갈등이 작가의 유려한 문체에 의해 긴밀하게 구성되어 있다.이 소설을 통해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소설이 영화로 표현되었을 때 변화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작가)이문열(李文烈 1948- ) 서울 출생. 고향 영양과 서울, 밀양 등지를 전전하며 유년기를 보냄. 고시에 뜻을 두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 방황의 시기에 , , 등을 썼다. 그 이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77년 에 가 입선되었고, 1979년 에 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그럴 때마다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킬 만큼 역량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경향은 매우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폭과 깊이에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중국 고전을 평석한 , 를 비롯하여 와 같은 고전 제재의 작품을 쓰기도 했으며, , , 와 같은 대중 취향의 소설에서애증으로 일관한다.㉡ 석담구한말 서예가. '예(藝)'보다 '도(道)'를 더 우선시 하는 인물. 제자인 고죽을 사랑함② 핵심 정리- 198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주제 : 한 예술가의 자기 부정의 예술혼③ 와 예술가 소설)를 예술가 소설로 보는 이유는 고죽과 석담의 예술관의 갈등과 그 속에서 한 위대한 예술가가 걸어 온 파란만장한 인생의 도정을 그리고 있다는 표면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술의 궁극적인 가치를 무엇으로 보는가에서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의 예술관을 찾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참다운 아름다움이 그 무엇보다 우위에 놓인다고 보는 고죽의 예술관이 곧 작가 자신의 예술관과 통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이 소설에서 고죽은 스승과의 암묵적인 대립 속에서 일생에 걸친 집요한 노력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서화관으로부터 일단 이론상으로 탈출하였으나 그것을 예술로 실현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는 운명하기 직전 평생 제작한 작품 이백여 편을 불태우는 불길 속에서 금시조의 찬란한 비상을 목격함으로써, 동양적 이념미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독자적인 미적 성취 또는 예술적 완성을 이룩하게 된다.이렇게 는 이념성과 일상성의 초극을 거의 동시에 성취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서화를 모두 불태우는 고죽의 행위 속에서 환각적인 차원으로 실현된다는 한계를 가진다.이문열은 예술지상주의를 통해 자신의 문학이 정치, 사회, 종교 등의 현실적 가치에 억압되는 것을 부정하고, 좌절된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 것이다. 즉 권력의 획득에는 실패하였으나, 명문의 후손이라는 선민적 자부심을 예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이문열에 있어 예술은 어떤 행위보다도 숭고하고 찬란한 광휘를 뿜는 것이어야 했던 것이다.④ 두 예술관의 대립)석담은 퇴계와 추사의 학통을 이은 명유(名儒)의 후예로, 웅혼한 필재와 유려한 문인화로 한말 삼대가의 일인으로 칭송되던 인물이다.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된 한말은 중세적 예술관과 근대적인 예술관이 만나고 동양적 예술관과 서양의 예술관이 만나면서 혼란과 나타나는 것이 매죽(梅竹)논쟁이다. 대나무와 매화를 즐겨 그리는 석담이 만년에 이르러 잎과 꽃이 무성하고 그 줄기 힘차게 뻗던 대나무와 매화가 빈약해지자 고죽은 그에 불만을 품고는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대나무의 잎을 따고 매화의 꽃을 훑어버리십니까? 하고 묻는다. 이 질문에 석담은 망국의 대나무가 무슨 흥으로 그 잎이 무성하며 부끄럽게 살아남은 유신(遺臣)의 붓에서 무슨 힘이 남아 매화를 피우겠느냐? 하고 대답한다. 또 서화는 심화니라. 물(物)을 빌려 내 마음을 그리는 것인즉 반드시 물의 실상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너는 그림이며 글씨 그 자체에 어떤 귀함을 주려고 하지만 만일 드높은 정신이 곁들여 있지 않으면 다만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고죽은 우리나라가 서양의 예술을 받아들이는 즉 동양의 예술관과 서양의 예술관이 만난 예술적 과도기에 활동을 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사회로 이행해 가면서 사회는 고죽의 편이었던 것이다. 석담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예술관은 고죽에게는 '학문과 예술의 혼동'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은 것이다. 즉 두 사람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두고 달렸음을 알 수 있다.⑤ 다양한 서술방법과 시제㉠ 내적독백.1인칭시점그렇다면 내가 진정으로 열렬하게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인생을 골몰하여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장면제시그 사이 하나 둘 빠져 나가고 초헌한 목상처럼 앉아 있는 병실을 힘없이 둘러 본 고죽은 다시 짙은 비애와도 흡사한 회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반영자서술.3인칭시점고죽은 다시 자조적은 기분이 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제전체적으로 과거시제가 많이 쓰여지고 있다. 그것은 과거회상과 연결되어 단순히 먼저 일어난 사건을 다시 이야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아는 서술자가 외부시점과 내부시점을 넘나들면서 이야기해 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표현방법이다.3. 한계1980년대)는 80년 5월에 있었던 광주 민중 항쟁을 빼놓을 수 없는데 70년대가 유신이라는 폭압과 독재 속두운 갈등의 시대였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 및 돌파구로 진보적인 역사관이 강한 목청을 돋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는 80년대를 휩쓴 진보(進步)의 열기에서 비켜선, 시대상황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어 현실의식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시대와의 불화인 셈이다.4. 소설 vs 영화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첫째, 소설은 독자를 능동적으로 참여 시킨다. 단지 글로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글을 근거로 해서 스스로 아예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독자는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즉 주체적으로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에 반해 영화는 한 사람의 독자에 의한 공간을 보여 준다. 각본, 각색한 사람이나 감독 등의 일정한 한 사람의 수용으로 창조된 공간이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즉 수용자에게 능동적인 참여를 배제 시키는 시청자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한다는 말이다.둘째, 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수용자(독자, 시청자)와 시간의 제한성에 있다.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문장의 표현과 영상의 표현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설처럼 설명 할 수 없다. 표현의 재료가 되는 것은 배경과 인물밖에 없다. 소설은 길게도 짧게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먼저 길이가 정해진 다음 극복 쓰기에 들어간다. 이때 길이가 길어도 곤란하고 짧아도 곤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색을 하게 되는 데 시간적인 규모가 비슷한 경우나 드라마적인 극적 구조로 되어 있는 소설의 경우는 원작을 크게 손대지 않고 각색하여 원작을 충실하게 드러낼 수 있다.이문열의 ‘금시조’와 같은 경우 더하거나 보태는 일 없이 원작의 스토리 라인을 단지 드라마적 기승전결로 재구성 하는 각색방법을 택해 원작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적으로 기승전결을 재구성 하였다는 것은 원작의 내용을 심하게 왜곡을 하였다기 보다는 같은 내용이되, 시간적인 순서가 다르게 구성을 하였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영화와 소설의 은 여든까지 사실 겁니다.”암에 걸린 고죽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는 『TV문학관』‘금시조’의 퍼스트 신이다.대체적으로 캐릭터플레이 방식을 취하고 있는 연속극 스타일이나 홈드라마 형식 등이 이런 인물소개로부터 시작한다.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 에서는 첫 번째 장면 즉 퍼스트신의 중요성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퍼스트신은 독자에게 첫 인상으로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이런 퍼스트 신의 여러 가지 모양을 분류하면 크게 1.환경묘사로부터 2.상황설명에서부터 3.사건부터 4.인물로부터로 나눌 수 있다. 금시조는 4가지 방식중에서 인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주인공들의 정보를 미리 제공해 관객들의 이해를 돕게 하기 위해서 이다.새롭게 삽입된 부분을 하나 더 소개 하자면 고죽이 절에 잠시 머무르는 장면에서의 주지스님과의 대화 장면 이다. 여기서 주지스님은 고죽의 글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새롭게 삽입 되어 고죽의 혼란과 고통에 대해 일깨워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고죽의 예술관과 석담의 예술관의 차이를 주지스님이 제 3자로써 우리에게 설명을 해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바르다는 것(객관적)과 아름다운 것(주관적)은 바르다는 것은 기품이요 아름다운 것은 미(美)이다.’사람의 글씨에 그 사람의 품성이 들어가는 것인지 단지 그림으로써 글씨를 쓰는 것인지에 대해 주지스님은 선택적인 관계로 그 어느 것도 본질 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것이 석담과 고죽의 예술관의 차이에 대한 감독의 의견이 들어간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② 변형고죽과 관련된 두 여인의 성격을 살펴보면, 우선 추수의 어머니 이면서 기생인 매향은 소설에서는 그저 한때를 고죽과 보내고 헤어진 여인에 불과 하다. 어떻게 보면 별로 비중이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매향은 소설에서 보여진 매향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비춰 진다. 고죽을 사모했고 고죽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사진이 생계를 책임지면서 까지 고죽이 시화를 계된다.
1. 1960년대의 시대적 배경(1) 4.19와 5.16 군사 쿠테타1960년대는 4.19혁명과 함께 시작된다.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1950년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1960년대 한국 사회의 과제에 대한 민중적 저항이었다. 그것은 자유의 쟁취와 수호라는 점에서 시민적 민주주의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을 향한 낭만적 열정 위에서 민족주의를 지향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4.19 혁명의 이념적 핵심은 민족 ?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하지만 4.19로 인해 강렬하게 인식되었던 자유의 문제는 5.16군사 쿠데타에 의해 다시 멀어지게 되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가 독점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되었고, 강력한 군부 독재에 의해 획일화된 군사문화가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을 계기로 민중의 의식이 성장했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와 통일을 향한 민족적 각성은 참된 의미에서 근대성을 획득하려는 방향에서 민족?민주운동의 주된 내용을 형성하게 된다.(2)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산업화60년대는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산업화가 추진되던 때이다.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구호 아래 강력하게 추진된 이 정책은 궁핍의 청산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 독재정치를 합리화해 나간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열악한 자본과 부족한 부존자원은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해 가는데 걸림돌이었다. 이에 군사정권은 외자 도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1965년 베트남전 파병을 실시한다. 이 전쟁을 통해 얻게 된 경제적 이익은 군사정권의 취약한 물적 기반을 강화해주었다. 또한 이러한 경제성장의 또 다른 물적 기반은 과밀한 인구가 제공하는 풍부한 노동력이었다.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의 공급은 농촌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정부의 수출제일주의 정책은 수출업체에 대한 재정 금융 조세 특혜와 저곡가 - 저임금구조, 노동운동 탄압 등을 통해 기업을 단기간에 독점재벌로 키운 반면, 농촌 자유롭게 소설의 미학적 골격을 개편할 수 있었다.이렇게 소설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전개했지만, 내용적인 측면의 4.19와 5.16로 이어지는 정치적인 대변혁과 보수적인 것으로의 강압적 회귀는 60년대 소설의 내용에 여러 가지 굴곡을 초래시켰다. 4.19로 상징되는 자유의 방출로 오랜만에 표현의 포만감을 느낀 것도 잠깐, 군사 쿠데타의 돌발로 인해서 그 포만감이 순식간에 배고픔으로 전변하는 불행을 맞게 된 것이다. 5.16이 있음으로 해서 4.19를 겪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여겨지는 현실 때문에 60년대 소설은 그러한 불행을 형상화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60년대 소설의 문학사적 의미는 본격적인 현대 소설의 전개를 준비하고, 그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현대 소설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50년대의 한국 소설이 전쟁이라는 한국적 특수 상황에 대한 응전의 특별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60년대의 소설은 전후 소설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소설의 문법을 마련하는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소설의 작가들이 전쟁에 대한 피해의식에 매달려 있느라 소설의 미학적 측면을 고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50년대의 전후 소설 작가까지 포함하여 60년대에 들어선 신진작가들은 보다 자유롭게 소설의 미학적 골격을 개편할 수 있었다.이렇게 소설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전개했지만, 내용적인 측면의 4.19와 5.16로 이어지는 정치적인 대변혁과 보수적인 것으로의 강압적 회귀는 60년대 소설의 내용에 여러 가지 굴곡을 초래시켰다. 4.19로 상징되는 자유의 방출로 오랜만에 표현의 포만감을 느낀 것도 잠깐, 군사 쿠데타의 돌발로 인해서 그 포만감이 순식간에 배고픔으로 전변하는 불행을 맞게 된 것이다. 5.16이 있음으로 해서 4.19를 겪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여겨지는 현실 때문에 60년대 소설은 그러한 불행을 형상화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시민적 리얼리즘정치적 모순 비판사실주의현실주의현실비판의식도시소시민의 삶의 반영농도로 조명한 소설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최인훈의 「광장」과 이호철의「판문점」, 박경수의 「애국자」와 선우휘의「아버지」가 있다.▶ 최인훈 : 「광장」인간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비전을 제시하여 그 자신의 소외를 보편화시킨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불리는 최인훈은 분단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가장 탁월한 언어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그의 위치가 우리 문학사에서 분단 문학을 최초로 시도한 작가이기 때문만에 주목하는 것은 아니며, 그의 문학이 탈냉전 시대,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 우리가 논의해야만 하·····는 가장 적합한 담론의 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이호철 : 「판문점」)1961년 『현대문학』에 이호철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찾으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 이호철은 이 작품으로 분단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문점」은 남북 이데올로기의 이질성과 여기서 비롯된 분단의 역사를 ‘판문점’이라는 하나의 공간으로 압축해 보여준 작품으로 주인공 진수가 북측 여기자와 자신의 형을 묘사하면서 분단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상황을 허물어 버리고 화해의 상황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식의 세계를 깊이 있게 드러낸 작품이다. ‘판문점’의 ‘문’은 ‘벽’과 달리 열림을 전제로 하기에 희망적이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분단으로 말미암은 절망과 비극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ⅱ) 현실비판의식4?19혁명)과 5?16군사 쿠데타를 통해 드러난 사회 모순과 부조리한 현실, 서민층의 비참한 삶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고발한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 시대 작가들은 전후 상황의 극복가능성의 노력을 보여주며, 민족분단사를 구체적으로 해부하여 4?19의 의미를 헛되이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박태순 : 그는 대표적인 6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대표적인 4.19세대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도시 생활을 무대로 한 풍속과 사유를 주된 제재로 삼았으며, 그 대표작으로는, 로정현은 풍자와 우화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 비판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반미소설의 선구로 일컬어지는 「분지」가 대표적이다.(ⅲ) 도시소시민의 삶의 반영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접근에서 도시소시민의 삶과의 관련성은 60년대 거의 모든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으로 지적된다.▶ 이호철 : 이호철의 작품 세계는 인간의 삶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러한 그의 인식은, 이기적인 낭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겪는 순간순간의 '사람다움의 체험'을 의미하고 있다. 「소시민」이 대표적이다.▶ 전광용 : 시류에 밀려 패배하거나 좌절하는 인간형을 주로 그리던 전광용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문제의식을 사회차원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의지적 인물도 내세우게 된다. 그의 작품「충매화」는 사생아이자 소아마비를 앓아 불구가 된 산부인과 의사의 열등의식과 자폐증을 통해 개인을 억누르는 사회적 편견과 인습을 포착한 작품이다.)(ⅳ) 농민들의 세계 반영)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면서 농민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게 되었고, 산업화로 인한 인간성 말살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농민들의 세계가 관심을 끌게 되었다. 농민들의 세계를 반영한 소설들로는 방영웅의 「분례기」, 박경리의 「토지」가 있다.▶ 방영웅 : 방영웅은 1967년「분례기」로 등단하여, 사회 부조리를 다루면서도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고 율동감 있게 묘사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분례기」와「사무장과 배달원」,「달」이 있으며, 농민들의 세계를 반영한 소설로써는 「분례기」를 들 수 있다.(ⅴ)『창작과 비평』) - 리얼리즘경향의 개간지1966년 백낙청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창작과 비평』은 “문학은 현실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야 하며 현실 구성원이 처한 위기를 반영해야 하고 나아가 그 구성원 대다수의 복지를 위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맹목적인 순수문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의 기교▶ 김승옥: 「무진기행」,「생명연습」,「서울, 1964년 겨울」신세대의 선두주자로 칭해지는 김승옥은 그의 작품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대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감성의 반응과 이국적이며 애상적인 문체가 돋보인다. 「무진기행」「생명연습」「서울, 1964년 겨울」에서 작가는 새로운 세대의 감성을 유감없이 토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의 인물들은 불안하고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도 무책임하고 다른 한편으로 비굴한 행동을 제멋대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정신적 상황을 드러내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ⅱ) 지식인의 치열한 고뇌▶ 이청준: 「퇴원」「병신과 머저리」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세계에 맞서 그 정체를 드러내고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그 같은 폭력과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이청준 문학의 동력은 자유의 정신이다. 폭력과 억압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이청준 문학을 관류하고 있지만. 그 욕망은 무조건적인 부정과 벗어남의 낭만적 초월이 아니라 집요하고도 꼼꼼한 탐구로 나타난다. 이 같은 탐구를 통해 이 세계의 모습이 드러나고, 이에 따라 탐구하는 주체의 정신을 변화한다. 이청준은 자기 자신까지도 탐구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더욱 철저하게 자유정신을 추구한다.(ⅲ) 세련된 언어와 심리묘사▶ 서정인: 「후송」「강」「원무」60년대 작가 중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서정인이다. 서정인의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기본 시각은 어떤 절대적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이다. 어떤 대상이든지 한쪽 면만을 점검하지 않으며 어떤 인물이든지 발언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관념들의 실제와의 괴리를, 실제의 왜곡을 폭로한다. 이 같은 상대주의를 뒷받침하는 반성적 성찰은 독특한 문체를 낳으니 대화체와 같은 말엔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말꼬리 잇기와 뒤집기를 통해 성립하는 독특한 반어체 문장으로 이어진다. 서정인 소설의 이와 같은 특성은 60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