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공동체의 발전I. 서론/2II. 가정교회 공동체의 성경적 고찰/21.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정교회/22. 신약성경에 나타난 가정교회/31) 복음서에 나타난 가정교회/32) 사도행전에 나타난 가정교회/43) 바울서신에 나타난 가정교회/4III. 가정교회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델/51. 초대교회의 가정교회/52. 서울휴스턴교회의 가정교회/71) 휴스턴서울교회 가정교회의 구조/82) 가정교회의 다기능적 소그룹/93) 최영기 목사의 가정교회에 대한 평가/93. 짐 존의 가정교회/111) 가정교회 원리/122) 가정교회 생활방식/123) 짐 존의 가정교회에 대한 평가/154. 바람직한 가정교회 공동체의 모델/16IV. 가정교회 공동체 발전의 원인과 전망/171. 가정교회 공동체 발전의 원인/172. 가정교회 공동체 발전의 전망/181) 셀교회 대안으로서의 가정교회 공동체/182) 현대의 가정교회의 실례: 중국의 가정교회/21V. 결론/21*참고문헌/24가정교회 공동체의발전김만형I. 서론오늘날 가정교회가 바람직한 교회의 모델로서 교회들마다 소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 유행하는 가정교회는 이름은 가정교회이지만 여러 가지 유형을 합친 것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한때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신총회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로 하여금 총회에 질의된 가정교회에 대해 연구 보고하도록 한 적이 있다. 그 총회에 질의를 을린 노회가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노회이다. 그런고로 어떤 문제보다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가정교회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주제하에 학술대회를 통해 교수회에서는 가정교회 출현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을 하는 입장이었으나 단지, 가정교회 형태를 수정보완 하자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발표자 중에서는 가정교회라기 보다는 ‘가정교회공동체’, 혹은 ‘교회가정공동체’를 사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가정교회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수적 성장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여 교회의 수적리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주일에 의례적으로 일어나는 일에서 생각을 돌이켜,1세기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음에 그려보는 데는 상당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교회의 크고 작은 모임들은 일반적으로 특별한 건물보다는 집이나 방에서 이루어졌다(롬16:5,고천16:19,골4: 15). 이러한 모임들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l세기 가옥들(당시 그런 집들을 소유한 사람들은 전 인구의 20퍼센트 미만이었다)의 평균 크기를 고려해 본다면,아마도 ‘집에 있는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12-15명 정도였고,‘전체교회’는 60-80명 정도 되었을 것이다. 모임들은 비공식적이고 기쁨이넘 쳤으며 사교적이었다.바울의 서신서에 있는 문안인사 구절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롬16:3, 5)",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몬1, 2)",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게 문안하느니라(골4:15)"들은 우리들에게 조기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의 집에서였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한 집으로부터 초창기의 직분자들과 구조들이 활성화되었고 그것은 수세기를 걸쳐 교회의 모습을 갖추었을 것이다.)성경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 드리는 찬양과 예배 그리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같이 모였음을 보여준다(고전16:19,롬16:5,골4:15, 5:42).바울이 유럽에서 전도하여 최초로 세운 빌립보 교회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가정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며(행16:11-40),에베소 교회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에서 시작되었다(고전16:19,롬16:3-5). 이처럼 초대교회는 집이라는 환경에서 소그룹으로 밀졉한 관계를 가지며 가정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교제하며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총체적인 교회의 기관이 아니다. 가정교회는 그 자체가 곧 지역교회의 역할을 다하는 교회이다.) 이는 곧 지역교회가 노회와 갖는 관계처럼 가정교회가 모여 곧 연합교회가 된다. 달리말하면 휴스턴서울교회는 곧 가정교희들의 연합이라고 할 수 았다. 그런 까닭에 가정교회는 친교나 성경공부,혹은 전도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예배,교육,친교,전도,선교 등 교회가 하는 모든 사역을 다하는 하나의 독립된 교회가가 된다.유기체적 연합 중심에 있는 교회는 가정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것(예를 들어,전제가 모이는 공예배,세례와 성찬,깊은 성경강해와 찬양을 통한 예배,주일학교 교육,리더 훈런,제자 훈런 중 일부,여러 가지 네트워크가 필요한사역 등)을 하여서 각 가정교회들이 성장할 수 았도록 도와준다. 원심력(각 가정교회)과 구심력(중심의 교회)이 건강한 균형을 이룬 교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가정교회는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진정한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모델을 재시할 뿐 아니라 교회의 회복 가능성을 주는 보여주는 샘플이 된다.2) 가정교회의 다기능적 소그룹가정교회가 기존의 다른 소그룹과 목회적 차원에서 다른 점은 ’다기능’에 있다. 기존의 소그룹은 친교(구역모임),제자훈련(다락빙,전도(셀 모임)등을 주목적으로 삼아 한두 가지의 기능 중심의 소그룹이였다면,가정교회에서의’ 목장’은 교회가 하는 대부분의 기능들을 모두 수행하면서 교회의 공동체로서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래서 김순성은 가정교회를,한 교회의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다기능적 소그룹 운동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가정교회 소그룹 공동체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교회의 본절적 공동체성을 경험하게 하는 장이요,둘째는 평신도 중심의 사역의 장이요,셋째는 목양기능을 지닌 사역의 장이요,넷째는 삶의 나눔을 통한 친교와 치유사역의 장이요,다섯째는 영혼구원 중심의 전도와 선교사역의 장이요,여섯째는 성경적인 제자훈련의 장이다. 즉 예배,친교,교육,봉사,천도와 선교 등 교회가 하는 주요 사역을회가 다시금 교회가 되고 그 사도적, 선지자적 성격을 회복할 때 이웃과 민족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제자로 삼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개교회는 전세계 파트너십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불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더욱 밝고 힘있게 타오르게 만들고 세상으로 하여금 그들이 너무 오랫동안 무시했던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일에 쓰임받을수 있다.)1) 가정교회 원리짐존은 교회의 성육신은 적어도 신약시대에는 가정교회 운동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그리고 이 가정교회 운동은 2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밀가루 반죽안에 넣은 누룩처럼 혹은 아무도 막을수 없는 바이러스 처럼 예루살렘 도시 전역을 휩쓸었다.짐존은 교회를 생명체적, 유기체임을 이해한다면,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연적, 유기체적 원리들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것들은 저절로 이루어 진다고 본다. 생명제 원리들온 교회가 조립 라인 위의 기계처럼 제조되기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나님의 창조 패턴을 띠라 재창조될 수 있게 한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이 만든 패턴이나 공식만을 따른다면 설령 그것들이 바람직하고 소중한 전통으로 우리에게 전수되었다 해도 헛된 것이되고 만다. 이것은 곧 생명체 원리인데 세가지로 살펴 볼수 있다.첫째는 상호 의존의 원리이다. 유기체의 부분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방식은 각부분들 자체보다 더 중요하며 모든 유기적 세포들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무질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재되어 있는 창조적 패턴을 따라스스로를 조직한다 각각의 세포나 유기체는 이 패턴에 따라 다른 유기제들이나 세포들과 연관이 된다. 이것은 교화 배가와 관련하여 어떠한 논제나 주제 혹은 어떤 측면도 다른 부분들과 분리해서 보거나 다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둘째는 배가의 원리이다. 무제한적인 성장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배가는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사괴나무의 열매는 사콰가 아니라 또 다른 사과나무다. 교회의 열매는 한 시람의 회심자가 아니라 다른 교회를 개척하는 또 하나의 교회룹은 가정교회가 아니다. 전통적인 가정 그룹(home group)이나 성경 공부 그룹,기도 그룹 혹은 심지어 청년 그룹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가정교회의 가장 강력한 경영자라고 할수 있다. 언듯보기에 이 그룹들은그 개념에 있어 가정교화와 별 자이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가정 그룹과 가정교회는 다른 가치와 교회에 대한 다른 이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 그룹은 커다란 질제 교회의 하나의 작은부분,곧 교회의 ‘축소판(mini -version)인 반면,가정교회는 그 자체가 온전한 의미에서의 교회다. 그러면 누가 가정교회를 지도하는가?가정교회에는 전문적인 의미에서의 지도자가 없고 대신 장로가 있다. 장로는 가정교회 안에서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경이 요구하는 장로의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딤전3장). 이 지역 장로들은 사도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받고 싱담을 받는데,이들은 보퉁 개별적인 가정교회의 경계를 초월하여 사역하며,교회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때로는 다른 장로들과 협력하여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행15 : 2, 4, 22, 23).짐존은 가정교회가 단지 큰 교회에 속한 부속물이 아니라 진짜 교회라고 말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가정교회와 셀 교회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르다. 가치관과 교회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모이는 셀 그룹을 규모가 큰 ‘진짜’ 교회의 일부로서 교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면 짐 존이 말하는 가정교회는 그 자체가 완전한 교회다. 셀 교회와 달리 가정교회는 하나의 완전한 교회를 의미한다. 셀 리더와 보조 리더들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교회의 장로직을 맡은 영적 아버지, 어머니가 교회를 이끌어간다. 이들은 가정 모임을 인도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가정에서 모이는 각 가정교회가 그 자체로 교회의 기능을 충분히 하기 때문에 굳이 교회 건물이 필요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 것이다.
아서 글라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임윤택 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2008)1부 선교하시는 하나님1. 성경은 전체가 선교적인 책이다.신구약 성경은 전체가 선교적인 책이다. 즉 인간 역사 가운데 펼쳐지는 하나님의 선교활동과 목적을 계시하는 책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와 영광스런 목적을 계시한다. 신약과 구약은 상호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활동하신다. 우리는 구약의 중심 주제가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을 통해 구속하는 하나님의 활동을 계시하는 것 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저자는 신약과 구약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있다고 보았다. 연속성으로는 교회를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았다. 불연속성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이스라엘 국가와 구별되는 불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구약 성경을 이야기 하면서 온 세상 만물과 세상의 모든 민족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리를 명료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경은 전체가 선교적 책이다. 모든 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 선교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선교적인 책이다. 구약은 그리스도 강림 이전의 신앙 전통을 위한 배경막이며,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관련을 가지셨던 것에 대한 기록이다. 구약에서 우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왕의 통치를 발견한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특별한 언약을 맺으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이다. 저자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를 밝혀 주는 일곱가지 원리들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를 밝혀 주는 기본 원리들이다.1)하나님은 왕권으로 다스리신다. 2)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개인적 헌신을 요구한다.3) 하나님의 백성들은 "종"의 공동체를 형성해야만 한다. 4)구약에 나오는 왕의 공동체가 신약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삶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간섭하신 일들이었음을 알수 있다. 여기서 초점이 중요한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가 초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 초점이다. 창세기 12-50장의 초점은 주로 아브라함에게 맞춰져 있고 그 후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맞춰져 있다. 우리가 족장들의 생애를 정리하고 이해하는 데 히브리서 기자가 도움을 준다. 히브리서는 족장들이 믿음의 본을 보여 주었다고 설명한다(히11:8-22).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지켜 나갔으며 자손들에게 이 언약 관계를 전수하였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겼으며 가나안 신들에게 경배하기를 거부했다. 요셉은 애굽에 매장되는 것을 거부했다. 이것은 그가 가졌던 족장의 신앙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그들의 최종 목적지가 애굽이 아니라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물리적으로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히11:22). 수백 년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을 떠날 때 그들은 요셉의 관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출13:19; 수24:32). 오직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2부 이스라엘을 통한 선교5. 애굽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창세기는 끝났다. 소수의 히브리인들이 애굽 땅에 남겨졌다. 그들은 이제 애굽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애굽은 그들이 영원히 살 땅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두가지 가시적 증거가 있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다는 약속이 있었다(창15:13-14; 46:3-4). 매장 되지 않은 요셉의 관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50:26). 둘재, 애굽 사람들은 목자들을 혐오했다이렇게 하여 그들은 계시된 율법의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는 사역이 시작되었다(출19:8; 렘7:25; 갈3:24). 다섯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의 당이 주어졌다. 땅은 국자적인 재산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 땅은 이스라엘이 취득한 것이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여호와의 군대의 힘으로 취득한 것이었다. 여호와의 군대가 용감하고 필사적인 가나안 군대의 계속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결국 승리한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윗 왕조 하에서 왕국을 건설했다. 하나님은 다윗 가계에 영원한 보좌를 약속하셨다(삼하7장). 다윗의 보좌는 열방을 축복하는 이스라엘의 초점이 될 것이다(사11:10; 슥8:23). 일곱째, 하나님의 백성은 갈멜산에서 시험을 치렀다. 언약과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충성이 진실한 것인지 확인받았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배하면서 다른 신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의식 속에 각인시켰다(왕상17-18장). 여덟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여호와께 죽임을 당했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심판의 도구였다. 심판을 받은 자들은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들은 이방 땅에서 음부에까지 내려갔다(렘8:19-22; 애1:12-13; 2:3). 아홉째, 하나님의 백성들을 여호와께서 부활시키셨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나라를 세우고, 이스라엘 사회제도를 부활시키고, 신앙과 종교생활을 다시 시작하도록 허락하였다(스1:1-4). 이 사건들 너머에 주의 날이라 부르는 "종말적 순간"이 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세가지 중요한 직분을 감당한다. 그는 다윗의 자손, 사람의 아들, 그리고 고난받은 종이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다시 오실 것이다. 그들과 다시 결혼하기 위하여, 황폐한 땅을 회복시키고 저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지만물과 하나님의 온전한 화해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사62::6).예수님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그곳이 가까이 임했다고 선언하신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인류 역사속 으로 힘차게 들어와 사람들에게 “침노”를 당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분이 의도하신 것은 “악이 없고 약속이 성취된 상태, 실제적 구속함이 허락되고 수용된 선한 나라”였다.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선교가 상호관계를 갖기 때문에 비유에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다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비유들은 큰 선교적 주제 아래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 성장, 가치에 대한 말씀이 된다. 어떤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가 역사하는 영역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치러야할 대가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씨뿌리는 비유(마4)나님 나라의 확실한 성장(보는 관점에서 느릴 수 있지만)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성령은 복음에 반응한 사람들의 마음과 성장과정에서 역사하신다.가라지 비유(마13)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영적인 갈등과 대가들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통하여 역사 안에서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확장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예수님은 “한알의 밀알” 되어서 그분을 섬기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 생명구원의 길로 가게 하신다. 잔치의 비유도 역시 선교적 종말론적인 언급이 나온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1-12). 성경에서 종말론적 잔치는 자주 언급된다. 어린양의 혼인잔치,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 등은 미래에 있을 잔치의 축제적 기쁨을 오늘 누릴 수 있으며 이것이 교회와 선교가 연관되어있다는 점이다. 누가복음 14장의 큰 잔치에서는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14:23)고 선교적 강권을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장치에 참들은 전하는 것으로서의 선교는 그 자체로 속죄나 부활처럼 놀라운 일이다. 선교가 없다면 하나님이 행하신 다른 모든 일들도 결코 알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마가복음16:15-20 : 신적 권위마가복음의 마지막 결론부는 그 진위여부를 놓고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다. 실제 몇몇 사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논란이 많은 긴 본문에도 대사명이 수행되고 있음을 발견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이며 모든 원수들을 이기기도 남을 주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처럼 뱀을 잡으려 귀신을 굴복하고 병을 낫게 한다. 이들은 보내신 자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마태복음 28:16-20 : 구체적 과업이 본문의 문법구조에서 명령형은 “제자삼으라”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 명령형은 세 가지 분사 “가면서”,“세례주고”,“가르치라”이며 이 세 분사는 독자적으로 떼어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이다. 원어에 가장 충실하게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너희가 가면서 세례를 주는 것과 가르치는 것으로 제자를 삼으라”.그리고 제자삼는 일은 제자삼는 것과 복음전도 뿐 아니라 세례를 통해 교회 생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 하나님 나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교육하는 것을 포함한다.제자라는 용어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부의 특정한 부류들에게 특정한 사명을 요구할 때도 사용되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과의 도제관계는 한 성도가 성숙한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적 의미로 사용되어도 좋을 것이다.제자삼는 일은 또한 세례와 세례가 포함하는 모든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몇 가지 회심사건은 모두 세례를 포함하고 있다(행8:36;9:18,10:47-48;16:33). 세례에는 종말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다는 하나님 나라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제자를 만드는데 가르침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상명령의 초점은 대대적인 종교적 의식을 나누어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