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신체97 이지호, 02 이현정 신젤라철학사 속에서 몸(육체, 신체, 살)은 영혼(정신, 이성)이 가는데 따라다니는, 존재론적 기준에서 절대적 열위에 놓여있었다. 신체는 접촉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정신과 대립되었다. 인간에게 있어 정신은 인간 본질의 전부이며, 정신의 능력인 지성이 중요하게 생각되어왔다. 지성 혹은 이성만이 참된 이론과 정당한 실천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력이라 간주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학문적 영역에서는 타당할지 모르지만 현실적 인간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사건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높일 수 있는 기계는 오직 정신만이 아니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고 그 몸을 통해서 세계와 접촉하고 인식한다. 세계는 인간 신체가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할 때에 의미들로부터 쌓여서 형성되며, 신체의 삶은 감각세계에 대한 지시 없이는 기술될 수 없는 것처럼 신체의 삶과 관계없이는 세계를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신체가 세계의 축이며 세계의 힘이라고 말한 메를로 뽕띠의 입장을 예로 들어 신체화의 세계 속에서 철학의 참된 근원을 찾아야 함을 밝혀보고자 한다.[메를로 뽕띠]과학적 인식과 이론 작업이 그 활동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것들의 기원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것들의 기원은 신체의 실재이며 이는 감각의 지시 없이는 기술될 수 없다. 신체의 활동은 신체 자체로 무엇을 형성하는 것이며 (나타내는 것) 이는 곧 의미를 나타냄이다. 그러므로 신체 활동은 이미 원초적 표현활동이다. 원초적 표현활동은 기초지우는 일을 형성하는 것이다. 즉 나의 신체를 통해서 세계를 지각할 수 있음, 즉 신체를 통하고 않고서는 내가 나의 바깥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고로 ‘나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는 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삶을 보증하는 유일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에서 현존하고 있고 생각하며 투사들을 실재화 할,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가능성을 가리킨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신체는 우리가 감각들을 느끼고 몸짓들을 수행하며 대상들에 대한 촉각적 혹은 시각적인 체험 양상들의 지각과 그 대상들에 대한 파악을 통해 우리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형성하는 경험의 기능에서 기술될 수 있다. 신체의 체험에 있어서, 환경의 자극에 대한 반사 작용은 단순한 자극-반응의 방식으로 자극의 기계적 결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신체적 운동은 분명 자극-반응의 방식을 띠지만, 그 운동은 모자이크식의 운동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속에서 우리의 신체적 운동은 자극과 반응의 방식을 넘어선 세계적 상황의 의미를 요구한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의 신체적 운동은 세계적 상황이라는 자극들에 적합한 반응을 할 뿐 아니라, 그 자극들의 총괄적 형태에서 의미를 발생시킨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체로서의 신체’와 ‘대상으로서의 신체, 유기체로서의 신체’를 구별해야 하는데, 신체의 유기적 삶은 우리의 신체의 주관적 경험에 연합되므로 신체에 대한 실제적 분리로 말해서는 안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기체의 의미인 신체의 작용은 단지 물리적 인과성에 종속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지향하는 환경 상황에서 나타나는 대상의 상태에 의해서 신체 - 주체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의 신체가 세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세계의 중심에 놓여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신체는 세계 안에 있다기보다는 세계에 있다. 나의 신체는 물질적인 유기적 신체임과 동시에 주체로서 아직 기능적인 의미의 세계에 신체 자신을 투사하면서 그 대상들을 취한다. 신체는 ’세계를 산다‘. 신체의 진정한 실존은 객관적인 실존이 아니라 그것은 신체 자체, 즉 내가 ’가진‘ 신체가 아니라 내가 곧 그것 ’인‘ 신체이다. 즉 체현된 신체로서의 세계 내 존재인 나의 존재를 특징지어주는 분리할 수 없는 총체성이다. 신체는 주체인 것이다.메를로 뽕띠가 중요하게 다루고자 한 점은 신체가 그 자신에 어떻게 관계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신체를 가지고서 환경 세계 속의 대상들을 관찰하고 물론 내 신체 부분들을 관찰할 수 있지만, 나는 나의 신체 자체를 관찰하지 못한다. 내가 나의 신체 자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나의 신체 자체를 관찰하는 ‘새로운 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고찰해야할 상황에서 다루고자 하는 점은 신체의 이중감각들의 현상문제와 이 현상에 대한 신체 자신의 관한 문제이다. 이중감각의 현상이란 신체 자신의 부분들 간의 직접적 접촉에 의한 그 부분들의 상호적 감각 현상이다. 여기서 메를로 뽕띠의 주장은 ‘나의 두 손은 동시적으로 능동성과 수동성을 함께 내포하는 것이 되고, 이와 더불어 실체-주체인 나는 나의 두손이 서로 촉감자임과 동시에 촉감되는 것임을 알며, 나의 두 손은 나의 신체를 촉감한다’는 것이다. 이런 촉감함과 촉감됨은 ‘신체화 함과 신체화 됨’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고 이 모든 활동 자체가 ’나화‘이다.메를로 뽕띠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촉감 대상으로서 손이 동시에 촉감 주체로서 손이 되고, 거꾸로 촉감 주체로서 손이 동시에 촉감 대상으로서 손이 된다는 측면은 그가 신체의 의미에 대한 풍부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보는 자와 가시적인 것은 분리되지 않으며 상호 침투적 이행 속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가시적인 영역이 촉감할 수 있는 영역과 결부되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촉감은 신체와 세계 사이에 가장 근원적인 근접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촉감 하는 기능과 촉감 되는 기능 사이에는 감각 형태 아래에서 가역성이 있음을 말할 수 있다.이 가역성은 신체의 자기에 대한 관계에 의해서만 체험될 수 있는 가역성이다.메를로 뽕띠는 ‘신체는 어떤 세계의 힘’이라고 말하였다. 그에 의하면, 신체를 가진다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에 있어서 환경과 결합되고, 계속적으로 그 환경에 참여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합리주의자들의 주장하였던 ‘신체는 연장 속에서 펼쳐진 대상’이라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즉, 신체가 세계와 관계하면서 어떤 목표를 가리키고 세계를 나타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신체는 세계에서 사물로 있지 않고 목표의 원천이며, 자신의 역동성과 일치하면서 그 역동성에 의해 세계와 결합한다. 그래서 주체로서의 신체는 항상 세계 속에 있으면서 항상 세계로 지향하는 존재로서 그 신체는 의미를 발생시킴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개별적 신체와 세계와의 관계 사이에서 지각의 본질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지각은 사물들의 성질과 나의 신체 감각적 기능들이 서로 침투하는 연결이다. 신체의 유기체적 삶에 대하여 메를로 뽕띠는 감각작용과 지각작용이 일어나는 가운데 열려지는 신체적 의식을 강조하는데, 그는 감각적 의식과 지성적 의식을 구별하여 이를 돕고 있다. 그는 ‘내가 지각적 경험을 정확하게 해석하고자 한다면, 그(on)가 나에 있어서 지각한다는 것을 말하게 될 것이지 내가 지각한다는 것을 말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그’는 신체를 말하며 결국 우리는 지각활동에 있어서 나인 신체가 항상 세계에 대한 지각적 경험을 향한다고 말해 본다. 더불어 의식에 대한 결정에 의존하는 작용들이나 방향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세계의 양상들을 나타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의 신체는 세계의 축이다”는 것이 드러난다.
형이상학이라 불려질 수 있는 인식의 종류칸트에 의하면 모든 판단은 주어개념과 술어개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용상으로 분석판단이거나 종합판단으로 구별된다. 그 판단이 어떠한 근원을 가지고 있던지 혹은 어떠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구별은 칸트에 의해서 처음 시도된 것이지만 로크, 라이프니쯔, 흄 등의 선행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로크의 ‘무가치한 명제’와 ‘교훈적인 명제’의 구별, 라이프니쯔에 의한 ‘이성의 진리’와 ‘사실의 진리’의 진리의 구별, 흄의 ‘관념들의 관계’와 ‘사실의 내용’으로 나누어지는 인간 이성 또는 탐구의 모든 대상의 구별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칸트에 따르면 모든 판단은 후천적(a posteriori)이거나 선험적(a priori)이다. 따라서 그의 판단의 형식에 따라 모든 가능한 판단의 종류를 나열해 보면 선험적 분석판단, 경험적 분석판단, 선험적 종합판단, 경험적 종합판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그러나 칸트의 논법에 따르면 후천적 분석판단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분석판단은 모두 선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가능한 판단의 종류는 세 가지가 남게 된다. 이러한 판단의 세 가지 구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험적, 경험적, 분석적, 종합적 판단 각각의 개념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선험적 개념‘선험적’ 개념은 의식 안에서의 순수 오성 개념에 의한 다양의 결합이며 어떤 것이 선험적 이라는 것은 그것이 (소극적 의미에선) 어떤 경험이나 감각들에도 의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즉 경험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선) 엄밀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의 모든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식이 반드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선천성은 시간적인 선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인식이란 결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천적인 인식은 경험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으나 경험적인 요소를 전혀 포함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선천성을 시간적 선행성이 아니라 논리적 선행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칸트에 있어서 선천적인 것은 논리적으로 즉 객관적으로 선행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은 모든 변화에 객관적으로, 즉 모든 변화 가능성의 형식적 조건으로서 선행한다. 그리하여 선천성의 징표는 필연성과 보편타당성으로 나타난다. 어떤 종류의 선천적 인식이든지 그 인식은 필연성과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선천적 직관이다. 우리들은 모든 경험에 앞서서 시간, 공간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또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험적’ 이라는 것은 보통은 ‘순수하다’(rein) 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때 선험적인 것은 논리적으로(시간적이 아니라) 경험에 선행하면서, 즉 논리적으로 경험과 상관없으면서 동시에 이 경험을 필연적으로 가능케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경험적 개념‘경험적’ 개념은 어떤 것이 후천적인 경험으로부터, 즉 이 경험의 내용을 구성하는 감각들로부터 도출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경험적’ 판단은 후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경험적 대상들의 개념은 대상들에 대한 공통의 징표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경험적 대상들의 모든 성질이 통찰된다고 할 수는 없으며 새로운 성질이 발견될 수도 있다. 칸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의한다는 것은 이 말 자체가 표현하듯이 원래 한 사물의 면밀한 개념을 그것의 한계 내에서 근원적으로 명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따르면 경험적 개념은 결코 정의될 수 없고 해명될 수만 있다. 우리는 경험적 개념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감성의 대상들의 몇 징표들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대상을 표현하는 말에 있어서 우리가 어떤 때에 비교적 많은 징표들을 생각하고, 또 어떤 때에 비교적 적은 징표들을 생각하는가는 확실하지 않다. 가령 어떤 사람은 황금의 개념에 있어서 무게·빛·강성 외에 녹슬지 않음의 성질을 생각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아마도 이런 성질들을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특징들을 이것들이 어떤 것들을 구별시키는 데 충분한 동안에만 사용한다. 이에 대해 새로운 관찰은 어떤 징표들은 버리도록 하고 다른 약간의 징표들은 부가시킨다. 따라서 개념이란 일정한 한계 내에 있지 않다.”분석적 판단과 종합적 판단의 구분분석적 판단은 술어가 주어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것도 주어에 첨가시키지 않기 때문에 ‘설명판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종합적 판단은 주어와 술어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새로운 그 무엇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확장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칸트에 의하면 모순율은 모든 분석적 판단의 보편적이고도 완전히 충분한 원리로서 승인되어야 한다. 예컨대 어떤 명제가 그것을 부인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지는 그런 판단이라면 그 판단은 분석적이다. 또한 그 명제의 부정이 자기모순이 아니라면 그 명제는 종합적이다. 그런데 칸트에 의한 판단에 대한 이분법적 분류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종합적인 것으로 생각한 판단이 분석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물체가 무겁다.’는 판단을 오로지 경험에 의해서만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판단은 경험적 종합판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험적 대상들의 과학적 인식의 증대로 인해 언제나 되풀이 되는 물체의 무게를 경험할 수 있다면, 물체의 개념에서 무게의 징표를 생각하고 따라서 그 판단을 분석판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특정한 대상의 개념만으로는 어떤 명제를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낳는다. 즉 종합적 판단과 분석적 판단의 구분은 역사적인 인식상황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개념 속에 속한 대상들의 공통의 징표들 중 몇 징표들만을 안다면, 이 대상들에 대해 참된 분석판단들은 몇 안 될 것이다. 대상들의 우리 인식이 증가하는 정도만큼 마찬가지로 분석판단들의 수도 증가한다. 우리 경험적 인식의 발전이 전제되므로 인식 성장의 과정에서 종합판단은 분석판단으로 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또한 분석판단도 종합판단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어떤 종류의 대상들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 어떤 징표는 실제로는 이제까지 고려된 대상들에만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분석적 판단분석적 판단이란, 우리가 대상들을 지시하는 어떤 주어진 개념(주어개념)을 단순히 모순율에 위배됨이 없이 경험과 상관없이(선험적으로) 분석하고 이 주어개념에서 술어개념을 도출하며, 그러고 나서 이 두 개념을 결합할 때 생기는 판단이다. 따라서 분석적 판단의 진리는 이 판단에서 사용된 주어개념의 의미론적 분석에 의해 통찰될 수 있다.) 또한 분석적 판단은 단지 해명적이어서 인식의 내용에 아무것도 추가되지 않는다. 분석적 판단이 술어에 있어서 표현하는 것은 주어의 개념에 의해 이미 사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물체는 연장적이다.’는 판단은 분석적 판단이다. 왜냐하면 연장되어 있지 않은 물체는 없으므로 물체에 대한 개념 속에 연장적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도출된 술어가 주어를 부정한다면, 이 판단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분석판단은 이미 주어진 것으로, 확실히 정의된 것으로서 가정된 주어개념이 경험적이든 선험적이든 원칙적으로 선험적 판단이다. 왜냐하면 분석적 판단의 형성은 결코 경험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은 노랗다.’와 같은 판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어개념이 경험적 개념, 즉 경험에서 도출된 개념이라면, 이 경험이 다른 이들에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분석판단은 비교적 선험적인 것이지, 완전히 선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칸트가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는 주어개념은 ‘삼각형은 세 각으로 이루어진 형상이다.’는 판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어진 개념이 개인들의 우연적 대상 경험에서 발견하는 징표들을 포함하는 게 아니라 대상 자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징표들을 포함하는 개념, 따라서 그 자체가 선험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분석적 판단의 예1. 모든 아버지는 남자다. 2. 인간은 인간이다 3. 비 오는 날은 습기 찬 날이다. 4. 모든 아이들은 어리다. 5. 모든 총각은 부인이 없다. 6. 눈은 하얗다. 7. 모든 거짓말은 참이 아니다. 8. 흐르는 물은 액체이다. 9. 모든 비행기는 날 수 있다. 10. 모든 축구공은 둥글다.종합적 판단종합적 판단이란 주어와 술어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더라도 술어가 주어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나의 개념에 어떤 것을 추가함으로써 나의 인식을 확장하는 판단이다. 따라서 분석적 판단과는 달리 종합적 판단은 모순의 위험 없이 부정될 수 있다. 종합판단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종합판단이 주어와 술어를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주어 속에 술어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판단이라면, 주어와 술어를 매개시켜주는 그 무엇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매개하는 그 무엇이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 판단은 경험적 종합판단일 것이요, 매개적인 그 무엇이 순수직관에 의한 것이라면 선험적 종합판단이 될 것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비교-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이재경의 굿모닝서울의 비교학과: 철학과학번: 199702492이름: 이지호라디오 프로그램 중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TBS 이재경의 굿모닝서울의 프로그램 편성과 차이점을 비교해보았다. 같은 시간에 시작된다는 것과 둘 다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두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되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시 5분부터 8시까지 진행되며 이재경의 굿모닝서울은 6시부터 7시 50분까지 진행된다.두 라디오 방송의 프로그램 편성을 비교해보도록 하자.우선 MBC 라디오의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방송의 프로그램 편성은 다음과 같다.MBC 손석희의 시선집중1부-현장속으로-시/선/집/중 헤드라인 뉴스-3분 경제 브리핑-이 시각 해외언론2부-NEWS IN NEWS(뉴스 속의 뉴스)-60초 풍경-김종배의 조간 브리핑3부-모닝포커스4부-긴급점검-시/선/집/중 미니인터뷰-참 좋은 생각(토요일 1,2부)‘현장속으로’ 코너는 사건의 이야기를 현장으로 가서 취재하는 기자를 통해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코너이다. 예를 들면 200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던 날 시험장의 분위기나 이라크 현지의 현재 모습을 현지에 나가있는 기자를 통해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코너이다.‘시/선/집/중 헤드라인 뉴스’ 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고 있는 밤사이에 일어난 뉴스를 간추려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전해주는 코너이다.‘3분 경제 브리핑’ 은 매일 매일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중요해 보이는 사항들만 뽑아서 청취자에게 전달해주는 시간이다. 월요일에는 동원증권 리서치 센터의 배현기 박사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한경와우의 임종윤 기자가 출연한다.‘이 시각 해외언론’은 제목 그대로 해외언론들의 보도를 우리의 시각에서 분석해보는 코너이다. 이 코너가 1부의 마지막이다.‘NEWS IN NEWS(뉴스 속의 뉴스)’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한 가지 분야씩 사회, 경제, 정치, 국제, 문화, 스포츠 등 각 분야의 전문 패널들이 일반 뉴스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사건의 핵심이슈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보는 시간이다. 예를 들어 2003년 11월 10일 월요일엔 사회분야인 ‘불법 대선자금 대기업 수사 본격 착수’란 주제로 방송을 했으며 같은 달 8일 토요일엔 스포츠분야인 ‘아시아 야구의 현주소’, 또 7일 금요일 문화분야엔 ‘블로그 열풍’을 주제로 방송되었다.‘60초 풍경’ 코너에 대한 소개글은 세상 풍경을 60초로 압축해드리는 라디오판 '생활의 발견') 이라고 되어있는데 한마디로 쉬어가는 코너라고 할 수도 있겠다. 2003년 11월 10일 방송엔 영화 ‘매트릭스’나 네티즌들의 기묘한 행동을 나타내는 플래시몹)등을 다루었다.‘김종배의 조간 브리핑’의 테마는 8가지 신문을 8분 안에 읽는 법이다. 미디어 비평가 김종배씨가 8가지 조간신문들의 기사를 8분 동안 요약 정리해보는 시간이다. 최고 인기 코너이기도 하다.‘모닝포커스’와 ‘긴급점검’ 코너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사건들을 다루는 코너이다. 2003년 11월 10일엔 민주당 설훈 의원이 출연해 신문과 뉴스에 연일 톱기사나 톱뉴스로 등장하는 "국회, '盧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 표결"에 관해서 다루었다.‘시/선/집/중 미니인터뷰’에서는 그다지 유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철도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고 자신의 다리를 절단하게 된 철도원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참 좋은 생각’ 코너는 청취자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건의사항이나 생활 속 아이디어 등 다양한 주제로 올린 글을 선별해 토요일에 방송하는 코너이다.이번엔 TBS 이재경의 굿모닝서울의 프로그램 구성을 살펴보도록 하자.TBS 이재경의 굿모닝서울-해외통신-통신원 리포트-경제안테나-굿모닝포커스-미니인터뷰-굿모닝인터뷰-업그레이드 마이셀프-긴급진단-쟁점 투데이‘해외통신’과 ‘통신원 리포트’는 국제문제에 관한 것이나 세계 각국의 언론들의 뉴스 중에서 화제가 될 만한 것을 골라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경제안테나’ 코너는 MBN의 라호일 기자가 전해주는 경제소식이다.‘굿모닝포커스’는 현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들을 다루는 코너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어 2003년 11월 10일 방송에는 이라크 추가파병문제에 관하여 다루었으며 8일 토요일엔 르몽드가 보도한 조선일보 오역에 관해서 방송했었다.‘미니인터뷰’ 코너는 우리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을 취재해서 보도한다.‘굿모닝인터뷰’는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태들에 관해 그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터뷰하는방식으로 청취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코너이다. 11월 10일엔 부안사태에 관해, 7일엔 민주노총 파업에 관해서 다루었다.‘업그레이드 마이셀프’는 보통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 마련된 코너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건강관리법이나 재테크 요령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방송한다.이재경의 굿모닝 서울은 ‘라디오로 보는 신문’을 지향하는 교통방송 최초의 정통 시사프로그램
배경러셀은 자신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의미’에 관한 문제를 언어의 역할에 집중시켰으며 존재론과 의미론적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기술구 이론을 제시한다. 러셀은 한정 기술구는 그것들이 지칭하는 바를 지칭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는 “생화학자로 살고 있는 여성”과 같은 한정 기술구를 포함하는 문장은 단지 피상적으로만 주-술 형태를 갖고, 논리적으로는 일반화를 위한 3가지 항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3개의 항은 “생화학자로 살고 있는 적어도 한 명의 여성이 있다, 그리고 생화학자로 살고 있는 많아야 한 명의 여성이 있다, 그리고 생화학자로 살고 있는 누구든 있다”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러셀은 이러한 분석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논증하며, 그와 동시에 4가지 논리적 퍼즐들 존재하지 않는 것, 부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관한 외형상의 지시의 문제들과 동일성와 치환성(대체성)에 관한 프레게의 퍼즐 각각에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식으로 논증한다.기술구 이론(Description Theory)러셀의 On Denoting 이라는 논문에서 발표된 한정 기술구 이론에 따르면 우리들이 지식을 얻는 과정은 Acquaintance(직접지)와 Description(기술에 의한 지식)의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한다. 직접지는 우리가 직접 대면하고 있을 때, 우리의 감관을 통해 직접적(immediately)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하며 기술에 의한 지식은 기술된 언어를 통해 얻는 것으로 책이나 글, 다른 사람의 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는 것이다. 직접지는 우리에게 보다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으나 개인의 인식적 한계 때문에 우리의 주요한 지식의 습득방법은 기술에 의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직접 대면에 의한 인식은 감각 자료들을 즉각적으로 의식하는 것이다. 기억에 의한 직접 대면은 과거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 근원이 된다. 내성에 의한 직접 대면은 정신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의식, 정신적인 사물에 관한 우리들의 모든 지식 근원이 된다 직접 대면에 의해 인식하는 약간의 대상들이 존재하지만, 이와 다르게 또한 기술구에 의해 우리들이 인식하게 되는 다양한 대상들이 존재한다.“기술구에 의한 인식”이라는 표현에는 두가지 유형의 구(句)들이 있다. 애매한(혹은 미한정, indefinite) 기술구와 한정기술구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애매한 기술구는 “그렇고 그런 어떤 것”(a so-and-so)이며 한정 기술구는 “그렇고 그런 바로 그것”(the so-and-so)이다. 러셀은 한정기술구는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 오직 하나의 대상만이 존재한다.”를 함축하며 “그리고 그 낱말은 우리들이 똑같은 대상을 직접 대면에 의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반적으로 의미할 것이다.”라고 했다.)A라는 것이 나타날 때에 그것은 A가 지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고 "A"가 나타날 때는 그것이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고 A와 “A"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할 점은 의미와 지시의 관계는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는 지시구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A의 의미"는 지시의 의미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애국가가사의 첫 구절의 의미"는 "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의미하는 바" 와 같고 " '애국가 가사의 첫 구절'이 의미하는 바" 와 다르다. 따라서 A="애국가 가사의 첫 구절" 이고 A의 지시=‘동해물과 백두산’이 되는 것이다. 러셀은 A와 "A"에 대한 논의 끝에 의미와 지시라는 프레게의 구분이 잘못 이해되었다고 판단하며 지시(denoting)를 언어의 의미로 설명한다. 러셀에 의하면 A와 "A"의 차이는 의미(meaning)의 차이인 것이다. 그런데 "애국가 가사의 첫 구절의 의미"라는 예를 통해 그 의미의 차이는 지시의 차이임을 알 수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의미의 차이란 단지 따옴표의 차이이다. 여기서 프레게의 동일성이론에서 a=a와 a=b의 차이가 보여주는 인식적 가치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러셀의 일차적 발이차적 발생은 A로서 문장 안에서 의미를 가질 때 그 의미의 발생을 말한다. 일차적 발생을 통해 우리가 명제를 해석할 때 여러 가지의 문제를 갖게 된다. 그러나 한정 기술구(the phrase)의 이차적 발생을 명제함수를 이용하여 분석을 해보면 한정 기술구들은 하나의 문장 구성물로서 하나의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a=a는 a=b와는 다른 것이 된다.러셀의 퍼즐러셀이 ‘지시함에 관하여’에서 풀려고 한 퍼즐은 다음과 같다.1.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외형상의 지시 문제‘현재의 프랑스 왕은 대머리이다.’(x)를 생각해보자. 아래 진술들은 모순된다. 즉 논리적 모순을 피하지 않고 그 문장들은 모두 참일 수 없다.k1 : x는 의미가 있다.k2 : x는 주어-술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다.k3 : 의미있는 주-술 문장은 어떤 개별적 사물을 식별하고(pick out), 그 사물에 어떤 속성을 부여함으로써(만) 의미가 있다.k4 : x의 주부는 존재하는 어떤 것을 식별하거나 지칭하는데 실패했다.k5 : x가 어떤 사물을 식별하고, 그 사물에 속성을 부여함으로써만 의미가 있다면,(k1, k2, k3) 그리고 x의 주부가 존재하는 어떤 것을 식별하는데 실패한다면,(k4) x는 결국 의미가 없는 문장이거나(이는 k1과 모순됨), 그렇지 않다면 존재하지 않는 어떤 사물을 분간해 낸 것이다. 그러나k6 :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그런 사물은 (어디에도) 없다.2. 부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문제‘현재 프랑스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y)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y문장은 참인 진술처럼 보이며, 현재의 프랑스 왕에 관한 진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y가 참이라면, y는 현재의 프랑스 왕에 대한 진술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y가 현재의 프랑스 왕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그 왕은 어떤 점에서는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레게는, 이른바 “의미senses”라는 추상적 실체들을 가정함으로써, k3을 거부했었다. 메이농은 대담하게도 k6을 부정한다. 그는 안젤무스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유가 가능한 어떤 대상은 (비록 그것이 모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일종의 존재를 갖는다는 것이다. 비록 단지 소수의 것들만이 실재 속에서 존재할 정도로 운 좋게 그렇게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3. 프레게의 동일성에 관한 퍼즐‘엘리자베쓰 윈저=현재의 영국여왕’(a)과 같은 동일성-진술은 (진술이 참이라면) 동일한 사람 혹은 사물을 분별하거나 지칭하는 두 개의 단칭사를 포함한다. 이것은 2가지 점에서 특이성을 갖는 진술이 된다. 첫째, 어떤 이가 a를 읽고 새로운 어떤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a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연적이다. 그래서 a에서 단칭사 중 적어도 한 가지는 그것이 지시하는 것에 더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프레게는 두 개의 단칭사가 서로 다른 “의미senses”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a가 정보를 제공하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a의 우연성을 설명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4. 치환성(대체성)의 문제단칭사의 기능은 개별 사물을 분간하고 그 사물들을 담론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동일한 사물을 지시하는 두 개의 단칭사가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의 문장을 생각해보라. ‘알버트는 존재와 무의 저자가 심오한 사상가라고 믿는다’(b) 알버트는 존재와 무의 저자가 싸구려 외설책을 썼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b의 진리-값을 바꾸지 않고는 ‘얼큰해진 수의사의 저자’를 ‘존재와 무의 저자’라는 용어로 대체할 수는 없다. 만일 대체한다면 거짓된 문장을 낳을 것이다. 알버트는 ‘얼큰해진 수의사의 저자’가 얼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콰인에게서, b에서 한정 기술구로 사용된 문장의 입장은 무엇을 지시하는지 불투명하다. 불투명을 야기하는 것은 그 구조를 “믿는 것”인데, ‘존재와 무의 저자는 심오한 사상가이다’라는 문장이 그 독자적으로는 투명하기 때문이러셀과 프레게의 차이점러셀은 뜻과 지시체에 관한 프레게의 구별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프레게와 달리 러셀은 개별 용어들의 ‘의미’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뜻과 지시체에 관한 프레게의 구별을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프레게와 달리 러셀은 이름의 ‘의미’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개념만을 사용하였다. 즉, 그는 이름의 외연(denotation)-이름이 적용되는 대상이나 사람을 그 이름의 의미로 간주하였다.러셀은 그의 존재론에서 대상들이나 실재들의 수를 줄이면서, 어떤 표현들을 개별 용어들의 범주로부터 모두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그의 기술구 이론을 기술하면서 가지게 되었던 중요한 동기들 중의 하나이다.러셀은 프레게와 다르게 한정 기술구들로부터 고요 명사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러셀에 따르면 고유 명사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대상을 지시해야 하지만, 한정 기술구들 중에는 어떠한 외연(지시체)도 가지고 있지 않는 몇몇 한정 기술구들이 존재하고 있다. 한정 기술구는 하나의 문장에서 담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역할과 분리하여 어떤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반론다양한 반대의견들이 러셀에게 제기되었다. 스트라우슨은 러셀의 이론이 우리의 일상 언어 습관과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비록 “현재의 프랑스 왕”을 포함하는 문장이 그러한 주어가 적어도 한 명의 프랑스 왕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왕이 없다는 것을 거짓되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어떠한 고유한 진술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진리-값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러셀의 이론은 대부분의 기술구들이 문맥에 묶여있으며, 경계에 정해진 공간상의 설정 내에서만 독특하게 지칭한다(예컨대 “탁자위에 있는 책을 내게 가져다 줘”)는 사실을 무시한다. 스트라우슨은 보다 일반적으로는, 러셀이 문장들과 그것의 논리적 속성들을 너무 추상적이고 현실과는 유리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러셀은 문장들과 그것의 논리적 속성들이 어떻
세계 4대 통신사와 국제정보 흐름의 문제각 언론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직접 수집 처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뉴스 수집과 배금을 영리적 비영리적 목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기관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통신사이다. 다시 말해 통신사란 신문사나 방송국을 대신해서 뉴스나 기사자료(사진, 피처, 논평, 시사, 만화 등)를 수집해서 신문사나 방송국에 배포해 주는 조직을 의미한다.미국의 AP나 영국의 로이터통신, 우리나라의 연합뉴스와 같은 통신사가 없다면 우리나라 신문이나 방송은 포괄적인 세계 소식을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신속하게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물론 신문사나 방송국은 특파원을 이용해 뉴스자료를 직접 수집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문사나 방송국이 독자적으로 전세계의 뉴스를 모으기에는 막대한 경비와 시간과 인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신문사난 방송국은 취재비용의 절약을 위하여 경비를 공동분담하는 영식으로 통신사를 조직하여 뉴스를 취재해서 배부받기도 하고, 뉴스의 도매상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된 통신사와 계약해서 계약료를 내고 뉴스를 제공받기도 한다. 따라서 통신사와 언론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통신사들이 있으나 대표적으로 큰 국제 통신사로는 현재 AP, UPI, Reuters, AFP가 있다. 유네스코는 사용언어, 통신기술, 통신사 규모, 뉴스수집, 배포조직 등을 고려하여 세계 4대 국제 통신사로 위의 통신사들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들 4개 통신사의 공통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첫째, 4대 통신사는 모두 선진공업국인 서방 강대국에 속해 있다. 즉, AP와 UPI는 미국, Reuters는 영국, AFP는 프랑스의 통신사다.둘째, 이들은 전세계에 걸쳐 지국과 지사를 두고 대규모로 뉴스를 수집하여, 전세계의 국내 통신사나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와 계약을 맺고 뉴스를 공급한다. 따라서 정보의 선별과정에서 자국의 입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셋째, 이들은 뉴스를 평가하는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어서 비슷한 뉴스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4대 통신사는 전세계의 언론사와 계약하여 국제뉴스 흐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한편 4대 통신사의 역할은 국가간 정보교환 통로를 장악함으로써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 중에 몇 가지만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국가간에 교환되는 정보는 국제매스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선진국에 관한 것이며 또 그들에게 유리하게 꾸며진다. 따라서 사건의 객관적 사실보다는 강대국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집된다.둘째, 교환되는 뉴스의 대부분이 제목뉴스 또는 객과적 사실보도로 단순하게 취급됨으로써 그 사건과는 별 관계가 없거난 정치 사회적 배경이 다른 국가에서는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셋째, 개발도상국에 관한 보도내용은 대부분 갈등지향적이며, 흥미중심적이다. 즉, 전쟁, 천재지변, 괴기사고, 투쟁, 범죄같은 뉴스가 대부분이면, 그 나라에서 중심되는 문제나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는 별도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보도를 통해 국제사회의 문제접을 이해시키기보다는 단순한 흥밋거리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보도내용은 국가간의 올바른 이해와 이미지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넷째, 국가간의 시사정보는 수요하는 나라의 정치체제를 위협하거나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수용된다. 먼저 통신사나 다른 매체에 의해 수집된 시사정보는 보내는 나라의 입장에서 여과된 상태로 세계 각처로 전달되고, 수용국의 상황에 따라 다시 한 번 선별과정을 거쳐 기사화된다. 일번적으로 폐쇄적이고 전체주의적 국가일수록 선별과정이 엄격하다. 결국 최종 수용자인 국민은 국제정보원과 자신의 정보원에 의해 이중으로 여과된 정보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