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비지문
    1. 서론비지류는 죽은 자의 공덕을 기원하기 위하여 돌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비문으로 비지류의 기원을 비롯한 종류의 개괄과 그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묘지문과 묘지명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알아 보도록 한다.2. 비지류 개괄(1) 비지체 산문의 기원비는 궁실의 비와 종묘의 비가 기능이 다름. 궁실의 비는 해그림자를 표지하여 시각을알리는 것이고 종묘의 비는 제사 때 희생을 묶어두기 위한 것 이었다.유협의 『문심조룡』에서는 주목왕(周穆王)때 공덕을 기록하는 기능으로 발전하였고 고대의 제왕이 공덕을 기록할 때는 주로 기명위에 명문을 새겼으나 후대에 석비로 청동기로대체하여 불후하게 영원히 남기도록 하였다.① 진나라 시대 - 진시황은 각지를 순행하여 바위에 공덕을 새겨 남김.『태산각석문』,『낭야대각석문』,『공관각석문』,『갈석각석문』,『회계각석문』이 유명한데 이사(李斯)가 지었다고 전해지며 내용은 전반부에 진시황의 공덕을 칭송한 뒤 후반부에 각석의 이유를 새기고 각석을 의논한 대신들도 명단에 새김.② 한나라 시대 - 비문에 보통 서(序)를 두었다. 서에는 산문도 있고 운문도 있으며 산문과 운문을 병용한 것도 있음.③ 당송이후 - 고인의 악을 감추고 선을 추켜드는 유묘(諛墓)의 글 유행.(2) 비지체 산문의 종류고대의 비지체 산문은 종류가 아주 많다. 비를 세우는 장소와 기능에 따라 몇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① 기공비(記功碑)ㄱ. 공덕을 기록, 칭송 - 운문으로 지어 송덕을 노래하는 명문과 유사ㄴ. 한나라 이후 서(序)를 둠. 앞에 서(序) 뒤에 명(銘). 서를 위주로 하며 명은 뒷면에점철에 불과ㄷ. 대표작 - 한유의 평회서비, 원결의 대당중흥비, 유종원의 기비자 등.② 궁실신묘비ㄱ. 궁실신묘를 건축하는 연유·과정·규모·주관자등을 기록 한다. 그 밖에 도로를 만들고하천 준설 산길을 만들고 연못을 축조때도 비를 세워 사실을 기록해 기념하였다.ㄴ. 왕후장상을 찬미하는데 치중하여 아첨이 많아 감흥이 없으나 한유·소식의 글은 매우청신함. 당·송이 후 좋은 작품은 없으나 청나라때 공자진의 『해문선색진군사당비문』을 좋은 작품이라 봄.ㄷ. 대표작한유의 『유주나지묘비(柳州羅池墓碑)』 - 묘비 형식을 빌어 친구 유종원의 정치적업적을 칭송하면서 그가 등용되지 못한 불펺한 심기 표현소동파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 - 나지묘비와 곡조는 다르나 기법 동일- 1단은 총설이고 3단은 한유가 문과 도에서 이룩한 성취에 대해 논술③ 묘비문과 묘지명(3) 비지의 문체"비지에는 대체로 정격(正格)과 변조(變調)가 있다. 정격의 경우에는 공의 본명은 아무이고 부르는 이름은 아무라는 식의 정통적인 방식에 따라 서술해 나간다. 만약 비지(碑誌)의 주인공에게 이렇다 할만 한 없적이 없을 경우에는 부득이 변조(變調)로 서술할 수 밖에 없다." 라고 함.碑誌本 - 어휘가 순실하고 고고해야 하며 음향의 결합이 굳세고 튀어올라야 하며 색조가 고아하고 소박해야 함- 긴 어구를 늘어놓아야 할 경우에는 짧은 어구로 끊고 허자(虛字)를 덜 사용하면 응축적이고 묵증한 느낌을 줌3. 묘비문(墓碑文)과 묘지명(墓地銘)묘비문(墓碑文): 죽은 이의 생전의 사적을 기록하는 글1) 종류: 지상에 세우는 것으로 신도비(神道碑), 묘갈(墓碣), 신도표(神道表)등① 신도비(神道碑) - 고대의 고관대작의 묘비는 묘 앞 도로 위에 세웠는데 묘 앞 도로를신도라 하므로 그래서 '신도비(神道碑)'라 칭함② 비(碑)와 갈(碣) - 둘의 차이는 제도 형식이 다름. 석각(石刻)의 형상과 높이의 제한비(碑) - 뿔없는 용을 머리로 하고 거북모양의 빗돌받침을 하며 빗돌받침의 위로 높이9척을 넘기지 않는다.갈(碣) - 규홀의 머리에 사각 빗돌받침으로 하며 빗돌받침의 위로 높이 4척을 안넘음③ 묘표와 신도표: 신도비와 같은 것임묘지명(墓地銘): 묘비 가운데 지하에 묻는 것으로 지(誌)와 명(銘)의 두 부분으로 되어있음.죽은 이를 찬양, 애도, 위안하는 글이다. 보통 두 개의 네모돌로 이루어져서 바닥으로 하고하나는 덮개로 하여 바닥에 지(誌)와 명(銘)을 새기고 덮개에 새겨 안장할 때 묘광속에 묻음. 장지(葬誌), 매명(埋名), 광지(壙誌) 등 묘지명에는 이칭이 많음1) 묘지명의 작법: 지(誌)가 있고 명(銘)이 있으며 지는 산문이고 명은 운문이라는 것이 묘 지명의 통상적인 작법. 명이 있되 지는 없거나 지는 있되 명이 없는 것도 있음.(1) 지(誌): 주로 산문을 사용하여 죽은 이의 성씨 본관 일생 등을 기록(2) 명(銘): 운문을 이용하여 글 전체를 개괄한다.2) 묘지명의 시작: 묘지명이 어느 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대략 양한 이후의 묘지명이 간혹 있었으나 결코 성행하지 않았음. 공덕을 칭송하고사적을 기록하는데 비를 사용한 것은 대체로 동한 이후로 비를 세울 뿐 아니라 묘지명을 짓는 일이 이때에 비로소 점차 성행하기 시작하였고 당나라 때에 이르러 묘지명을 짓는 일이 일반 풍조로 되었음.▶ 묘지명 풍조의 부패-"당송 이후로 무릇 문인이라 칭해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모를 전업으로 하였다.도를 밝힌다고 자임하였단 한퇴지로도 그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그밖의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꼽을 수 있겠는가?"-"오늘날 사람들이 비지를 지음에 있어서 대개 판에 박은 듯 상투적이어서 한편의글을 모든 사람에게 옮겨 쓸 수 없으니 그 사람만의 정신적인 모습을 어디서생각해 보겠는가?" - 박지원)- 그러나 적지 않은 문사들이 엄숙하고도 진지한 태도로 진정실감을 품고 묘지명을작성하였으므로 그 속에는 자연히 적지 않은 가작들이 있음.3) 묘지명의 문체: 비지류의 문체와 같음- 사무적이라 할 만큼 지극히 지시적인 언어로 간략히 서술- 묘지명의 주인공의 행적을 찬양 일변도로 기술함.4. 한국의 비지류의 변천사삼국시대:『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우리나라 비지류의 작품으로는 가장 이르다고생각되어지나 문학의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하였고 최치원의『사산비명(四山碑銘)』이 문학 작품으로 거론되는 최초의 비지류 작품임.고려·조선시대: 수많은 비지류 작품들이 생산되었지만 도식적이고 참신하지 못함조선중기 이후: 서술 방식의 변화와 서술 대상의 확대 추구1) 비지류에 대한 인식과 전통적 서술 방식① 최치원의 『낭혜화상비문(郎慧和尙碑文)』: 비지류의 창작은 문학적 역량을 필요로
    인문/어학| 2009.04.06| 4페이지| 1,000원| 조회(269)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8:14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