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전야 미국 지역연구와 미래-서론-전지구적 변화와 미국의 지역연구로 부터 시작하여 미국 지역연구의 기원을 되집어보고 미국 지역연구의 분석 틀에 대한 언급과 그 틀이 지역연구에 남긴 의미를 비판적 어조로 분석하고 전자구화에 따른 미국 지역연구의 운명과 전망을 언급을 통하여 앞으로의 지역연구에 대한 검토를 해본다.-본론-1980년대부터 시작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인한 기존의 지역연구의 무용론의 등장, 전지구화에 따라 지역연구를 대체하기 시작한 ‘전지구연구(학)’과 ‘국제연구(학)’의 등장에 따른 미국학계의 비판적 급진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하였다. 전지구주의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이 미국 지역연구에서도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지식을 ‘해방적’으로 대체하기 보다는 세계를 다시 지배하려는 새로운 자본주위 세계체제의 요청에 입각하여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계기가 되어왔다.미국 지역연구는 ‘동양’에 대한 지배 방식인 오리엔탈리즘에 뿌리는 두고 오리엔탈리스트의 “동양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결국 ‘아시아’라는 개념 또한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지배목적을 위해 고안되었고 아시아인들은 구미극복을 위한 인식으로 민족주의와 아시아주의를 받아들였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공산국가에 대한 봉쇄정책을 위해 발전한 것이 미국의 지역연구였고 ‘통일된 지식’ 이라는 명목하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다른 문화를 임의적으로 묶어내고 민족 기존의 사회구조를 허물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미국중앙정보부의 지원하에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권력’을 목적으로 ‘권력과 지식’, 그리고 ‘권력과 학문’의 관계로 성장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임의적으로 세계를 구분하고 국가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행해진 지역연구는 전지구화의 흐름아래 더 이상 세계를 ‘지역’이나 ‘국경’을 기반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 지식이 왜 필요한지 또 누구에게 적절하고 타당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남아있다.미국 지역연구의 기본적인 분석틀은 ‘근대화론’으로 유럽의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따른 근대화를 중심으로 문명화 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연구하고 유럽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아시아의 근대화를 ‘충격-반응론’으로 접근하거나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을 ‘전체주의 모델’이나 ‘권위주의 모델’로 적용하려고 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아시아에서는 ‘유교자본주의 모델’’중국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대응하려 하였으나 이것 또한 기본 분석틀 안에서의 새롭게 확대 재생산 한 것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1980년대부터 전지구화의 움직임은 학문에도 새로운 경향으로 지역연구에서도 후식민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를 가져왔고 유럽중심주의의 거부를 통해 문화다원주의가 형성되었다. 이에 미국의 지역연구도 비교론적 접근이 아닌 연결론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고 보다 전지구화한 접근방식으로 교과 과정을 개편하는 등 이에 대응하려 하였다.21세기 전야의 미국연구를 되짚어보며 목적론과 경혐론적 접근은 그 목적과 경험에 타당하지 않으면 경시될 가능성이 높고 현재 일어나는 세계질서의 변화에 편승하여 또 다른 목적론에 빠져 버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목적론적 인식, 오리엔탈리즘, 유럽중시주의에서 벗어난 연구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지역을 지역자체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에 부르스커밍스는 현 미국의 지역연구를 국가와 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롭게 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애리프 덜릭은 ‘지점’에 대해 강조하며 ‘지점’간의 차이성을 강조하는 대안을 제시하였다.이에 덧붙여 한국의 신지식인운동과 관련하여 각 대학의 지역학과 설립에 대한 필자의 의견으로 학문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학문과 사회의 민주와 자유라는 큰 틀 속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세웠다.-결론-미국의 지역연구는 근대화론의 틀을 가지고서 많은 연구를 하였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과 함께 탈근대화 현상으로 인하여 기존의 틀에 비판과 함께 새로운 틀에 대한 대응을 도전 받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대응 역시 기존의 근대화론의 재해석에 불과했던 지역연구의 과거를 되짚어보며 미국의 지역연구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현재 정보화 사회와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정보의 수직적인 이동보다는 수평적인 이동의 속도가 빨라지고 세계간 교류가 늘어나면서 단지 국가적 필요성 뿐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역연구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는 현실 세계 속에서의 과연 보편 타당한 지역연구의 틀은 무엇일까? 가속화 되어가는 사회 발전 속에서 연구에 대한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보편 타당한 틀을 제공하여 대응해나가지 않고서는 과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고서도 미국의 근대화론의 틀에서 머물 수 밖에 없었던 과거 아시아국가들의 지역연구처럼 새로운 시대의 지역연구 또한 이와 같은 잘못을 번복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또한 이것은 비단 미국의 지역연구가 직면한 현실뿐 아니라 전지구적인 지역연구가들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다.한가지 더 짚어보자면 권력과 학계 간의 논의뿐 아니라 경제발전의 핵심 축에서 세계화의 흐름 안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부상과 함께 해외시장개척과 관련된 지역학 연구에 관한 측면과 가까워진 세계 속에서 늘어가는 수직적인 지역관계 뿐 아니라 수평적인 민간교류 속에서 올바른 세계 인식의 틀을 제공해야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일본 패션엔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서론>> 일본은 패션 강국!!패션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 중에 하나이다. 특히 요즘처럼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에서는 자신을 남에게 어필하는 방법의 하나로 패션이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역시 삶의 질이 향상되고 점차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패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패션은 정해진 공식이 없기 때문에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어떠한 사회 분위기냐에 따라 그것이 개성으로 평가되기도 또는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개인적인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그것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나 그러한 패션들이 자유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 사회 환경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그 사회 전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우리나라도 토요타에 대등할 만한 현대 자동차가 있고 소니보다 앞서나가는 삼성도 있을 정도로 이제 우리도 일본에 경제적으로 그리 뒤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패션 쪽에서는 일본에 비해 걸음마 단계에 있다. 오늘날 일본의 패션은 아시아의 패션을 주도할 만큼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패션을 봐도 일본 스타일을 패션계에 많이 접목하여 유행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본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인 컬렉션에서 인정받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인 컬렉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디자이너도 적고 해외 패션계의주목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래서 같은 동양의 국가로서 비슷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보다 패션에서 앞서가는 이유에 대해 일본의 문화적인 요인과 전략적 요인을 새롭게 분석해보고 한국패션의 현주소를 고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보겠다.본론>>1.패션 강국이 된 일본의 문화적 요인일본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개성은 개인의 개별성을존중하는 일본 문화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럼 이러한 개별성을 대륙과 떨어진 섬이라는 지리적 특징으로 문화적 외곽지역에 놓여져 있었다. 이것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불리한 지리적 요인으로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기에 유리한 요인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간적 위치에 존재한 지역은 많은 양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반대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고유한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의 지리적 특성은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소화된 문화들이 다양하고 두텁게 형성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하고 생각한다.이러한 특성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을 통해 섬이라는 지리적인 요소가 극복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나타난다. 경제 후발 국가들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문화 영향을 강하게 받은 주변국가가 되어가는 반면, 일본은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일변도의 흐름 속에서도 독립성을 유지해올 수 있었으며 유럽의 다양한 선진 문화까지도 폭넓게 자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이러한 과거와 현재 보이는 특성을 이해한다면 일본 패션의 특성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인들이 해외의 패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것을 빨리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의 독특함을 가미시켜 새로운 패션으로 재창조하는 특징과 여러 패션들이 동시에 유행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좀더 자세히 들어가 보면 일본의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서 생긴 독특한 문화가 있다. 바로 우리에겐 생소한 ‘와(和)’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정신에 뿌리가 되는 와 사상이 패션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와(和)섬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화(와)이다. 이 와는 일본을 풀이하는 가장 큰 열쇠이다. (화(和)=밥을 사이좋게 나눠먹는다는 말, 결국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말함) 왜 섬나라에서 와가 중요할까? 섬나라 사람들은 사방이 바다로 가로막혀 무슨 일이 생겨도 사이가 안 좋다면 끊임없이 싸움이 벌어질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폐허가 될 것이다.그래서 “와를 존중하라”는 사상은 1천400년 간 일본역사를 통틀어 일본을 지배한 이념이고 이는 일본인 사고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여 안정된 사회를 이루려면 각자에게 자신이 자리 잡을 위치를 분명히 정해줘야 하고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 정확하게 자리 잡음으로써 사회가 유지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각자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 그 자리를 벗어날 생각을 안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분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곧 자기에게 허용된 영역을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수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곧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이므로 일본사회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금기시 되어있다. 그래서 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고 다양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개성적이고 개별적인 문화가 발달했다.예)먼저 일본의 연예 대중문화적인 측면에서 찾아보면 일본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중심이 아니라 1회 1회마다 따로 개별적인 주제를 가지면서 주인공들이 내용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 마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 중 한명을 선정해서 그 사람의 문제를 주인공이 같이 해결해 주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일본 가수들은 자신의 앨범을 낼 때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가장 대표할 수 있는 한곡만 뽑아서 싱글 앨범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점은 일본 사람들은 전체 앨범만이 아니라 개별적인 곡들 자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한때 한국에서도 그런 식으로 앨범을 발매 하려던 가수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실패했던 것은 일본과 한국의 국민성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두번째로 일본의 역사적인 의상에서 찾아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옷에다가 자기 가문의 문장을 새겼던 사무라이 복식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파리 콜렉션에 처음 진출했을 때 일본 문화의로 반영한 옷을 만들었던 것도 일본 문화의 특성에서 오는 자신의 문화를 존중하여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세 번째로 일본은 지리적으로 섬나라이지만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남쪽의 따뜻한 지방 문화와 북쪽의 추운 지방문화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방마다의 특색을 그대로 살려 현재까지도 각 지방마다 마쯔리를 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화로 인해서 일본의 동경의 거리를 보면 거리마다의 특색을 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예로 하라쥬크는 10대들의 코스프레로 유명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네 번째로 일본의 가옥을 보면 일본의 주택은 각각의 다른 모양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너무 다양해서 정신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집집 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가옥의 내부를 보면 공간은 좁지만 좁은 공간을 세분화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특이한 점은 화장실과 욕실이 구분이 되어있다는 것인데 이점도 화장실과 목욕을 하는 것의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구분을 해 놓은것 같습니다.마지막으로 일본의 기업구조를 보면 일본은 한국과 같은 재벌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기업은 토요타면 자동차 소니는 전자제품 등 큰 기업만이 아니라 푸딩이면 어디 푸딩 라면이면 어느 브랜드의 라면 이라고 할 정도로 분야마다의 전문성을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하는 장인정신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며 일본의 가업을 잇는 문화도 이러한 기업구조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일본의 개별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았을때 일본 문화는 개별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2.일본의 전략적 요인일본은 패션 강국이다. 유수의 패션 브랜드들은 일본을 아시아의 한 부분으로 보지 않고 독립된 시장으로 구분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일본 소비자들의 큰 씀씀이와 더불어 해외에서 성공적으만, 기업까지도 돈으로 사버리는 그들의 엄청난 '쇼핑력' 또한 세계 패션계가 무시 못 하는 일본을 만든 원동력이다. 굳이 일본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아도 패션 산업의 '보이지 않는 손' 을 누가 무시할 수 있겠는가.버버리. 닥스. 아쿠아스큐텀은 영국의 3대 트래디셔널 브랜드로 불린다. 세 브랜드 모두 ‘타탄'이라 불리는 격자무늬 원단을 위주로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얼마 전 그 중 하나인 닥스가 서울 명동에 대규모 단독 매장을 열었을 때 아시아 최대 규모이니 만큼 주한 영국 대사를 비롯해 영국 닥스 본사 최고경영자까지 참석해 그야말로 격조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사장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닥스의 CEO 옆을 떠나지 않는 동양계 여성이었다. 그녀의 공식 직함은 닥스 극동 아시아 총괄 디렉터로 일본인이었다. 이는 우리가 당연히 영국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닥스가 일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영국적인 브랜드인 닥스는 1992년부터 일본 회사인 산쿄 세이코에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다. 그렇지만 소유권이 넘어 간 뒤에도 닥스의 본사는 여전히 영국 런던에 있다. 닥스와 상표 도입 계약을 맺고 있는 LG패션 관계자도 업무의 중심은 역시 런던이라고 한다. 이는 아쿠아스큐텀도 마찬가지다. 80년대 후반 일본 레나운사는 아쿠아스큐텀을 인수했다. 그렇지만 레나운 역시 산쿄 세이코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색을 강요하기보다는 영국 브랜드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3. 우리나라의 현실그동안 우리나라의 패션은 주변나라의 영향으로 인해 모방의 형태로 나타났다. 복식의 근대화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우리만의 현대 패션이 자리 잡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하기’라는 한국적 패션산업의 형태야말로 세계속의 한국패션의 입지를 굳히지 못하게 한 장본인이다. 모방이 ‘제2의 창조’가 되지 못한다면 모방이 주는 폐단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패션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모방의 수준도 매우 낮아 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그동안 달아 있다.
-들어가는 말-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복을 입은 여성을 보면 다소곳하고 얌전한 여인상을 생각하게 되지만 다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똑같이 느낄까요..? 중국의 전통혼례식을 보면 여성은 빨간색 전통의복을 입고 결혼한다고 합니다. 결혼식에서 주는 빨간색의 의미가 우리가 느끼는 것과 중국인이 느끼는 것이 같을까요? 이렇듯 자신이 속한 문화에 따라서 세계를 보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또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요?현재 사회는 세계가 점점 글로벌화 됨에 따라서 경제나 정치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화 현상 또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우리나라의 문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은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으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 문화 개방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문화를 비교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따라서 저희는 일본 문화를 통해서 그들과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지를 의상사회 심리학을 통한 내용과 외모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어서 발표하겠습니다.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옛말에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일본에 대한 편협하고 일그러진 선입견에서 출발한 탓에 일본을 바르게 보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시대가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 감정적 편견에 치우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을 비난하는 한국이 어느새 일본 문화를 너무나 모방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왠지 일본에 대해서만은 다 알고 있는 듯 말합니다. 그것은 동아시아라는 같은 울타리에 공존하기에 비슷한 점이 많으리라는 막연한 믿음, 별 볼일 없는 민족이라는 인식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러한 편협한 생각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본 문화개방에 사람들의 올바른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어느 문화가 침투해 와도 물리칠 수 있는 독특한 창의력도 개발해 내야 할 것입니다. 일본문화가 개방되면 우리만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도 상당수 우리문화를 많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문화를 많이 일본에 수출해 경쟁력을 만들 수 도 있고 일본에 뒤진다면 우리는 모두 더욱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먼 훗날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의 중심점에서 과거를 더듬어 보았을 때 일본문화를 개방하는 이 시기가 성숙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1.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 비교하기.먼저 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 동영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연애를 통해서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인과 한국인이 같은 일에서도 다르게 반응 하는 것을 보면서 문화에 따라서 사고방식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고는 인간의 행동을 경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죠.일본과 한국이 다른 사고방식을 살펴보면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양 문화권에 속해있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어릴 때부터 연애가 엄청 자유롭고 활발하고 상대를 바꿔가며 교제할 수 있는 폭넓은 선택의 사회입니다. 연예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사고방식에서 뿐 아니라 일본에는 한국보다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고 사고에 관해서도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서도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을 다양하게 표출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해 보일지 모르는 것들도 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들을 보아도 특이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따라서 의복에 있어서도 다양한 개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이에 비해 한국 사회를 보면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에 속해서 어느 향을 가집니다. 남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의 브랜드나 즐겨 입는 옷의 브랜드는 상당히 획일적인 경향을 띱니다. 이는 외면의 아름다움 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히 남성들 같은 경우에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보다도 내면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정보도 낮아서 동조성을 띠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또한 한국 사회는 유교문화의 영향에 따라 의복에 있어서의 노출도 일본에 비해 많은 제약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에도 유교문화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만큼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신을 믿는 토속신앙이 발달하여 하나의 통일된 믿음을 가지기 보다는 각자가 믿는 것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또한 일본의 다양한 개성 발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일본을 가게 되면 한국학생들은 대부분 의아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일본 여학생 교복은 왜 짧을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여학생들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지만 이것도 두 나라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일찍부터 목욕 문화의 발달에 따라 신체의 노출에 대해서 일본 젊은이들은 거부감이 많이 없는 듯 합니다. 따라서 교복의 치마 길이도 보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목욕 문화를 보면 이는 일본 여자아이들이 성장하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 속에서 그러한 노출은 노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또한 남자들의 옷을 보아도 한국 남자들에 비해 노출이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슴이 파인 티셔츠나 나시 티, 다리에 꼭 맞는 바지 등등 한국 남자들에 비해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이는 옷을 입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그럼 일본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 볼까요2.일본과 한국 연예인들 비교하기연예인은 그 문화 속에서 미의 기준이 되어주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있는 이유는 긴 생머리에 차분하고 조신한 한국의 소녀 같은 모습에서 도발적이고 섹시한 이미지 까지. 전지현은 모두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지현을 보면 동양적인 이미지와 서양적인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송혜교나 심은하도 많이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통해서 순수한 동양적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하지만 일본 여자 연예인의 경우에는 하세가와 쿄코가 가장 인기 있었는데 그녀를 보면 전지현 보다는 굉장히 서양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다른 여자 연예인인 이토미사키를 보아도 동양적인 얼굴이라고 하기 보다는 서양인의 얼굴에 가깝습니다.남자 연예인 또한 여자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짙은 쌍껍풀에 높은 코를 가진 키무라 타쿠야가 가장 인기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우성과는 대비됩니다. 정우성은 키무라 타쿠야에 비하면 동양적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이렇듯 일본 연예인들과 한국 연예인과는 미의 기준이 사뭇 달랐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서구적인 이미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근대화되었고 다른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에 덜 보수적인 일본이 더 서구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왜 그 연예인들이 좋다고 생각했는지에 관한 이유도 똑같이 예쁘고 멋있어서가 가장 많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예쁘다의 미의 기준과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다르다는 것을 연예인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이 설문 조사를 통해서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일본 연예인들보다 중국 문화에서 더 각광을 받는 것 또한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일본보다 더 동양적인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3.외모에 대한 시각 차이이 부분에서 생각해 보고 싶었던 것은 그렇다면 위에서 본 연예인들의 예쁘다는 기준이 달랐던 것이 왜 그럴까에 대하여 즉, 다시 말해서 외모에 대하여 시각 차이가 발생 하였을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이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의 외모와 한국인의 외모에서가 작은 일본인들은 가장 컴플렉스인 키를 커버해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패션의 키워드 아니었을까요..저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즐겨 입는 세미힙합 스타일이 일본에서는 유행하지 않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몸무게에서도 차이가 나듯이 일본의 소식 문화의 발달로 인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조금 더 키가 커 보이기 위해서 마른 몸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 보다 더 매력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남자들의 다이어트도 한국 보다는 일반적이었으며 다이어트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한국 남자들은 거의 없었지만 일본 남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한번쯤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또한 이러한 신체적인 것의 차이로 여자들의 패션에 있어서도 한국에서와 차이를 보였습니다. 키에 대하여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높은 구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서 미니스커트 또한 한국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여성에게서 부추는 겨울에 다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지만 일본 여성에게는 미니스커트에 어울리는 하나의 신발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본 여성들은 사계절에 상관없이 부추를 신는다고 합니다.또한 일본 여성들은 한국 여성에 비해서 화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일본에 갔을 때도 화장을 하지 않은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화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이러한 외모에 대한 시각 차이에 대하여 성균관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일본인 대학생을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1)한국 연예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입니까?=>이효리예요2)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몸매가 좋아서요3)그러면 한국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인 전지현은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꺼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전지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먼저 그녀는 몸매가 좋아서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얼굴은 보통 한국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구요.4)그럼 전지현이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예쁘다기 보다는 보통 한국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전쟁 후의 자유 무역 체제1929년의 세계 공황 후,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선진 자본주의 제국은, 블록경제 체제를 만들어, 공황으로부터의 회복을 목표로 했다. 그 결과, 세계 무역이 축소해 식민지를 가지지 않았던 일본이나 독일을 경제적으로 추적하고 전쟁하러 달리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반성으로부터, 1944년 국제 무역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프레튼웃즈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 프레튼웃즈 체제에 의해 IMF(국제통화 기금)와 IBRD(국제 부흥 개발 은행=세계 은행)가, 늦어 1947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가 만들어져 국제 무역의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미국 주도의 IMF=GATT 체제가 확립하게 된다.1.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1) GATT의 성립배경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는 관세나 무역 장벽을 경감해 자유·무차별의 국제 무역의 추진하기 위해 1947에 설립되었다. ITO(국제 무역 기관) 설립의 구상이 좌절되고 그 대체 기관으로서 설립된 경위로부터 GATT는 정식적 국제기관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통상과 무역에 관한 자발적인 국제 규약에 지나지 않는 GATT에서는 각 라운드마다 교섭이 진행되어 갔다.(2) GATT의 기본원칙GATT는 1947년 10월 23일 23개국이 서명하였고, 이듬해인 1948년 1.1.발효되었으며 한국 은 1967년 3월15일 가입하였다.GATT의 기본목적은 각국의 생활수준의 향상, 완전고용, 세계자원의 완전한 이용, 상품생 산 및 교역확대를 달성하고자 하는데 있다. GATT는 2차세계대전의 한 원인이었던 보호주 의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였고 따라서 자유무역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이러한 목적에 따라서 GATT는 첫째, 상호적, 호혜적으로 관세 및 기타 무역장애를 실질적 으로 완화하여 무역의 균형을 이루는데 있으며, 둘째, 무역면에서 차별적인 취급을 폐지 하고, 국제경제의 bloc화 및 지역분할화의 방지를 위해서 보호주의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 으로서는 관세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세도 체약국간의 상호교섭에 의해서 완화하 도록 하고 있다. 관세인하방식은 이국간의 교섭, 다국간의 교섭 방식이 있다. GATT에서는 다수의 체약국이 이국간의 협상을 벌이고 여기에서 얻어진 결과는 이국간에 한정하는 것 이 아니라 다른 체약국에게까지 확대하는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체약국 사이에서 무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4) 다자간 무역협상GATT에서는 8차례의 관세인하 협상을 타결하였다. 제1차에서 제6차 협상까지는 주로 관세 인하에 중점을 두었고, 제7차와 8차에서 관세인하 외에도 비관세장벽을 철폐내지 완화시 키기 위해서 협상이 이루어졌다. GATT에 의해 이루어진 다자간 무역협상은 8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교섭명시기참가국수향허품목기타1차 제네바 라운드1947년4월-10월2345,000GATT를 발족시키기 위한 가맹국간에 행해진 최초의 관세인한협상. 국별, 품목별 협상. GATT성립의 기초가 됨.2차 앙시 라운드1949년4월-10월325,000국별, 품목별 협상방식기존회원국 및 11개 신규가입국간의 교섭3차 토케이 라운드1950년9월-1951년4월348,700국별, 품목별 협상방식기존회원국 및 기존 신규가입국간 교섭기간이 만료된 관세인하 재교섭4차 제네바 라운드1956년 6월(5개월)223,000국별, 품목별 협상방식5차 딜론 라운드1961년- 62년(15개월)234,400EEC 6개국이 처음으로 공동관세에 따른 관세양허교섭. 하나의 공동체로 참가하여 대외 공통관세 양허인정, 평균관세인하율 7%.국별, 품목별 협상방식의 한계가 드러남6차 케네디 라운드1964년5월-1967년5월4633,0005차까지 이국간 품목별 교섭방식, KR은 관세의 일괄인하 방식채택, 종래의 광공업품목에서 1차산품 관세인하,비관세 장벽완화 광범위한 무역문제취급7차 도쿄 라운드1973년9월- 1979년 4월9928,000평균관세인하율 33.9% 6차까지 관세율인하,한 조치를 이행하고 다자간 무역협정의 모든 사항을 결정한다. 일반이사회는 각료회의가 열리지 않는 동안에 개최되며 각료회의의 기능을 수행한다. 일반이사회는 분쟁해결기구, 무역정책검토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상품무역이사회, 서비스 무역이사회, 무역관 련지적재산권 이사회는 일반이사회의 지도에 따라 필요할 때 개최된다.(2) WTO 체제의 특징WTO는 강력한 집행력을 갖는 기구이다. GATT체제에서 쌍무협정방식이 일반화되었지만 WTO 에서는 정식으로 제소하여 해결할 수 있다. 협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도 분쟁해결절차 를 통해 강력한 제제를 가할 수 있게되었다.WTO는 GATT체제 밖에 있었던 서비스무역, 지적재산권 분야, 섬유분야, 농업 등을 WTO에 편입시켜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 협상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가마다 경제발전 단계의 차이점을 고려하여 국가별 개방속도를 조절하여 단계별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였 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 개도국, 선진국 등 모든 국가가 다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3) WTO의 기능WTO의 기능(제3조)은 이 협정 및 다자간무역협정의 이행, 관리 및 운영을 촉진하고 그 목 적을 증진하며 또한 복수국간 무역협정의 이행, 관리 및 운영을 위한 틀을 제공하며, 이 협정의 부속서에 포함된 협정에서 다루어지는 사안과 관련된 회원국간의 다자간 무역관계 에 관하여 그들간의 협상을 위한 장을 제공하며, 또한 각료회의에 의하여 결정되는 바에 따라 회원국간의 다자간 무역관계에 관한 추가적인 협상을 위한 토론의 장 및 이러한 협 상결과의 이행을 위한 틀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WTO는 이 협정 부속서 2의 분쟁해결 규칙 및 절차에 관한 양해(분쟁해결양해)를 시행하 며, 이 협정 부속서 3에 규정된 무역정책검토제도(Trade Policy Review Mechanism)를 시 행한다. 또한 WTO는 세계경제 정책결정에 있어서의 일관성 제고를 위하여 적절히 국제통 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및 관련 산하기구들과 , 기아에 허덕이는 사헬 이남의 아프리카 제국, 자연재해에도 습격 당하고 정체로부터 탈각할 수 없는 남부아시아 등의 제국에서는, 경제성장이 인구증가를 웃돌 수 없었다. 제2차 대전 후에 세계가 직면 한 2대문제 중, 동서 냉전은 종결했지만, 남북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이다.「북쪽」 「남쪽」은 지리적인 분류는 아니고, 사회의 경제적인 성숙도에 의한 「선진국」과「발전도상국」을 의미하지만, 이 구별의 가치 기준이나 특정의 발전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국가와 민족의 지배·피지배 관계와 그 추이, 그 상호의 규정적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즉 북쪽의 번영은 남쪽의 희생 위에 성립되어, 남쪽의 빈곤·저개발은 북쪽의 수탈에 의하는 곳이 크다. 무엇보다 북쪽으로 부랑자 등 저소득 계층이 있어, 남쪽에도 해외에 부정 축재를 쌓아올리고 사치 삼미선을 하고 있는 부유 계층이 존재하는 것은 잊을 수 안 된다.남북 문제의 기원은 실은 낡다. 지리상의 발견에 의해 유럽이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 진출해, 재래 사회를 파괴해 생산물, 자원, 그리고 노동력까지도 약탈한 것에 시작한다. 이윽고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남쪽의 자율적인 사회경제 구성은 파괴되어 북쪽으로 싶은 하는 식량·원료 공급지 즉 주변으로서의 편성 바꾸고 가 완성되었다. 20 세기에 있어서의 2번의 세계대전의 원인의 하나는, 식민지·종속국의 재분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쟁탈전에서 만났다.역사에 남쪽이 주체로서 등장하는 것은, 20 세기가 되어 간신히 민족 해방 운동이 조직 되고 나서이다. 제2차 대전 후 많은 도상국이 정치적 독립을 거두었지만, 경제 건설에는 곤란이 대기 짓고 있었다. 장기에 걸치는 식민지 지배의 수탈에 의해, 인적·물적·금융적·기술적 자원은 고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사·경제 원조나 경제 개발에의 협력을 통과시켜, 선진국에 의한 남쪽의 제국의 세계 질서에의 평가해 수선이 진행되었다. 이것은, 신식민지주의라고도 불린다.유아 사망률, 초 중학교 취학률등으로 3. 아시아적 가치남쪽의 분극화·다양화이러한 전개 중에 남쪽의 나라의 분극화·다양화가 진행되었다. 성장률을 높인 아시아 NIEs와 일부의 석유 수출국이 정체로부터 빠져나갔지만, 많은 도상국은 채무 위기나 식량 위기로 괴로워하게 되었다.아시아 NIEs는, 수입 대체 공업화에 바뀌어, 환율이나 무역 정책의 개혁 등에 의한 수출 지향 공업화 전략의 성공 모델로 된다. 미일부터의 자본·기술의 도입, 기계·중간 제품의 대일 수입이 가능하고, 미국 시장이 가공된 제품의 수출에 개방되어 있었다는 국제적 조건도 크다. 게다가 특히 한국, 대만의 경우, 정부·관료의 강력한 리더쉽(개발 독재), 높은 수준의 교육으로 저임금 노동력의 존재, 일본 점령하에 있어서의 공업화의 개시, 토지 개혁에 의한 소득 격차의 시정, 미국의 군사 원조 등, 개발을 진행시키는데 있어서의 초기조건, 정치적 사회적 환경이 꽤 갖추어지고 있던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수출 지향 공업화 전략을 채용하면, 도상국의 경제 발전이 약속되는 것은 아니다.석유 수출국은, OPEC라고 하는 자원 주권에 의거하는 국가간 카르텔에 의해 원유 가격의 대폭 인상을 실현했다. 그러나 선진 소비국의 절전, 멕시코나 북해유전 등 비OPEC 석유의 개발, OPEC 내부의 이해 대립에 따르는 카르텔의 약체화에 의해, 80 년대 중반에는 석유는 과잉이 되어 가격 폭락이 생겼다. 인구가 적고 석유 수입이 국내 지출을 웃도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 수장국 연방의 로·업저버 제국과 그것과는 역의 하이·업저버의 사이의 소득 격차의 확대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시작하는 걸프전쟁의 배경이기도 하다.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 퇴진에 대해서, 동남아시아가 있는 나라의 정치가가 원인은 순경제적인 것이다 라는 발언을 행하고 있었다. 즉, 동대통령의 사임은 일련의 경제위기에 의한 국민의 불만이 격화해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소리의 극도로 높아진 결과여, 일족의 독직이나 이권 독점이라고 하는 정치체제의 탓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한국의 경제는, 1960 년대 중반 이래 경제 발전의 궤도에 올라,「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수록의 고도 경제성장을 계속해 온. 1962년부터 2000년까지의 사이, 한국의 총GNP는 23억 달러에서 4,574억 달러에, 국민 한사람 정답의 GNP는 87 달러에서 8,581 달러로 확대한 그렇지만, 천연자원의 부족에 의해 대외 무역의존도의 높은 한국 경제에 두어, 고도의 경제성장을 계속하면서「고비용·저효율」의 구조가 깊어져, 1990 년대 중반 이래, 경상 적자의 증가나 기업 채산성의 악화 등에 의한 경제 침체를 맞이해 타이 바트의 폭락을 받은 동아시아 위기의 와중에 경기 순환상의「후퇴기」에 들어간 한국 경제는, 대기업의 경영 파탄을 기회로 경제위기에 빠져, 1997년 12월에는 IMF로부터 구제 금융의 지원을 받는에 이른 경제위기 한중간의 1998년 2월에 발족한 김대중 정권은, 경제의 조기 회복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해 채택하고, 그 실현을 위한 발본적인 경제 구조개혁에 적극적으로 임한 결과, 1999년에는 외화 유동성의 위기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 이것들을 배경으로, 실체 경제도 예상보다 빠른 페이스로 회복해, 98년의? 6.7%로부터, 99년 10.9%, 2000년 9.3%과 고성장을 계속해 01년 3.0%, 02년 6.2%(예측), 03년 5%대의 전망(중은은 작년 12월에 5.7%를 예측, 바로 옆에 이라크전쟁의 영향으로 4.1%에 하부 수정)이 되고 있다. 실업률도 98년 피크시의 7.9%에서 3%안밖의 저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과 확대를 지탱해 온 엔진이 개인 소비와 IT산업이었다고 말해지고 있다.한국 IT산업 발전의 궤적한국의 IT산업이, 관업민 도대체로 걷기 시작한 것은, 1999년 3월 김대중 전대통령이, 「사이버 코리아 21」을 발표하고 나서라고 말해도 좋다. 그것까지는, 「정보화 추진 기본법」등으로 나라로서의 정보화 추진에는 힘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나라가 진행되어야 할 방향, 정부·업계의 역할, 경제·생활의 인프라로서의 자리되어 있다.브로드 밴드 보급의 굉장함은, 잠시 후에 접하지만, 이 보급이 디지털·컨텐츠에 관한 서비스의 다양성과 그 질량을 지탱하고 있는 결과가 도표 3이다. 행정이나 교육 분야의 컨텐츠도 충실하지만, 무엇보다도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매력적인 컨텐츠가 많은 것이 이용 촉진의 큰 배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PC밴(한국형태 인터넷 카페)이나 쇼핑·몰의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이 열중하고 있는 풍경에 몇번인가 만나게 했지만, 수천인을 동시에 참가할 수 있는 네트워크 게임이나, 친구와 채팅을 즐기면서 드라마를 볼 수가 있는 사이트 등, 커뮤니케이션과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겸비하는 서비스 등에 인기가 집중하는 등, 호소력 있는 컨텐츠·비지니스가 완수하고 있다는 생각되었다.지속적으로 강력한 한국 정부의 IT산업 지원과 육성책한국 IT산업 발전의 기본 방향을 나타내는 2개의 역사적 문서가 있다. 하나는, 먼저도 접한 「사이버 코리아 21」으로, 취임 얼마 되지 않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연초 연설을 골격에 제정되었다. 이 「사이버 코리아 21」은, 매우 도전적인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치에 뒷받침된 전략 설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대 전략은, 「지식 기반 국가의 건설」이고, 그 때문의 목표는, 「창조적 지식 국가의 창설」 「세계 10위 이내의 정보화 선진국에의 약진」 「지적 기반 산업의 대GDP 시장점유율을 OECD 레벨에 상승 시킨다」의 3점으로써, 목표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구체적인 수치 목표를 나타낸 각 항눈보다 되어 있다. 그 수치 목표의 최대의 것이 「전가정내에 광섬유 부설을 완료」하는 시기를 지금까지의 2015년부터, 2008년에 앞당김(게다가 2000년 4월에 2005년에 앞당김 된), 정보 통신 분야에서의 30만명을 포함한 100만명의 고용을 「신규 분야 창출」에 의해 실현, 통신 속도나 인터넷 유저수, PC의 대수나 전자 상거래의 시장 규모까지를 나타낸 내용이었다.게다가 2002년 4월, 한국 정권은, 「e-korea vision2006」 블로우 밴드 시장2002년, 한국의 브로드 밴드 가입 세대수는 그 보급이 시작되어 3년째에 1,000 반세이띠를 넘었다고 보여지고 있다. 인터넷 유저 전체에서는, 2002년 6월 시점에 있어 2,565만으로, 그 후도 급속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96 연비로 35배를 넘어 총인구비로 50%를 넘어 60%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된다.한층 더 굉장한 것은, 휴대전화의 보급과 휴대 인터넷 가입자의 증가 모습으로, 2002년 10월말 현재의 MIC의 발표에서는, 한국 휴대 인터넷 가입자수는 총계 2,881만명으로 휴대전화 이용자(3,227만명) 대비 약 89.3%의 보급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 휴대 인터넷 전용의 브라우저또는 플랫폼을 탑재한 단말기를 보유하고 있는 가입자가 2,540만명으로 약 88%를 차지해 ISMS 방식의 가입자는 340만명에 지나지 않다. 시간이 경과하는 것에 따라, ISMS 방식의 가입자는 감소하는 반면, 브라우저 방식의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다. 사업자 다른 통계에서는, 2002년 10월말 현재, SK텔레콤의 휴대 인터넷 가입자가 1,435만명으로 전체의 49.8%를 차지해 탑·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다음에 KTF가 1,038만명으로 1 천만을 넘어 LG텔레콤은 407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해, 각각 36.0%과 14.1%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휴대전화 가입자 속에서 휴대 인터넷 에 가입하고 있는 비율을 사업자 별로 조사하면(자), 2002년 10월말 현재 KTF의 가입자 중 약 99.0%가 휴대 인터넷 에 가입하고 있어 LG텔레콤과 SK텔레콤은 각각 89.1%과 83.9%를 기록하고 있다.휴대 인터넷·서비스 관련의 월간 매상은 휴대 인터넷 통신 요금이 508억원, 정보 이용료가 244억원, 총계 752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2002년 10월의 음성 통화 관련의 매상액수 10,061억원에 대해 7.5%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성장률의 면에서는 휴대 인터넷이 훨씬 웃돌고 있다. 휴대 인터넷 통신료는 2001년 10계열의 SI기업에 의한 시장의 독점」이 산업 전체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염려, 또, 「외자계 하드웨어·벤더에 대해서 시스템 종속성」이 염려 되는 것, 세계적인 경기의 침체에 의한 「투자의 감퇴」, 특히, 일부의 기업에서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서비스」에 대해서 투자를 축소할 방침이 전면에 나와 있는 것, 또, 원래 「측정이 어려운 IT서비스의 성과와 효과」에 대해서, 산업계의 모티베이션을 유지 할 수 있을지 어떨지라고 하는 염려등으로(이며) 있다.한국 IT서비스 시장의 분야별의 구성에서는, SI가 차지하는 비율(2002년 45%)이 가장 많이, 아웃 소스와 컨설팅 영역이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IT서비스 기업에서도, 오로지 관심은 「SI」부문의 견실을 얼마나 유지해 발전 시켜 갈까에 있다고 보여져 콘페치타인 일본 기업에 대해서 비비드한 관심을 안고 있어 방문한 기업으로부터도, 「일본의 SI의 주무 관청은 어딘가」 「SI부문의 경기의 상황은 제발(아무쪼록)」 「SI부문이 활력을 가져 발전 해 나가기 위해서(때문에) 일본의 정부의 정책은 부디 업계·기업의 구체적인 수단으로서 어떤 (일)것이 특징적인가」라고 한 질문을 퍼부을 수 있었다.아시아 No. 1의 전자 상거래OECD 및 한국 통계청에서는 「전자 상거래」를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이용한 상거래로서 정의 해, 아래와 같은 같게 수발주를 기준에 도표 8에 나타내는 11 단계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망라 한 거래의 전체를 「넓은 의미에서의 전자 상거래」라고 불러, 5. 가격 및 조건의 교섭으로부터 8. 수발주, 계약 전표의 처리까지의 단계의 (일)것을 나타내는 「좁은 의미에서의 전자 상거래」라고 구별하고 있다.한국 전자 상거래의 실태는, MIC에 의하면(자), 2003년 1월 현재, 1,591사(대기업 272사, 중소기업 1,321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의 결과, 넓은 의미에서의 전자 상거래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은, 대기업이 43.4%, 중소기업이 26.3%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전자 아시아 1위가 되었다, 라고 발표하고 있다.로무현 지탱하는 IT세대2월 25일 정오 근처, 나는 서울이 있는 호텔에서, 로무현신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텔레비젼으로 보고 있었다. 그 중에,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로무현씨의 당선의 원동력이 되어, 앞으로의 로무현씨의 정권을 지탱하는 것은, 「386 세대」라고 거기에 계속되는 인터넷 세대이다 라는 해설을 (들)물어, 어떤 종류의 감동을 기억해 관심을 가졌다.「386 세대」라고 하는 것은, 넷의 기입등에서 추측하면(자), 「1960년경 태어나 80년대에 민주화 투쟁을 체험해, 90 년대 중반에 30세대를 맞이했다」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한편, 컴퓨터 용어의 「i386」(Intel사의 최초의 32 비트 MPU)이 걸고도 있는 것 같다. 요점은, 구체제에 반발해, 최첨단의 기술 정보를 몸에 익혀 새로운 세대에도 눈이 향하고 있어 한국의 전통 문화에 흥미를 가져, 한국 문화의 좋은 곳을 몸에 익히고 있는 세대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세대가 IMF 관리 후의 한국 재생을 담당해, 기존 기업의 세대 교대, 벤쳐 기업의 창출의 중심적인 역할을 완수했다. 민족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세대에, 인터넷에 위화감을 가지지 않는 최초의 세대이기도 했다. 로무현대통령 당선의 원동력은, 이 「386 세대」라고 거기에 계속되는 2030 세대였다고 말해지고 있다.2002년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는, 오전중까지는, 출구 조사의 결과에서도, 대립하는 이회창 후보가 우세했다. 이것에 대해서, 주경에 있는 사이트에, 「로무현이 이회창에 1%지고 있다」라고 하는 기입이 있어, 이것을 기회로로무현지지의 넷 시민들이 넷에 기입해, 휴대전화와 휴대 메일을 구사해, 「투표하러 가자」 「친구에게 연락하자」 「로무현에 넣자」라는 움직임을 강한, 역전까지를 이끌었다, 라고 말해지고 있다. 요전, 기존의 미디어는, 정세를 읽지 못하고, 예측 할 수 없고, 대응 할 수 없고, 의 상황에 시종 했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 근처의 사정은, 넷상에 많은 기입이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