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 자유롭고 거침없는 인생어릴 적 꿈꾸었던 ‘걸어서 세계 일주’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7년간 세계 곳곳의 오지를 누빈 사람, 그리하여 ‘바람(Wind)의 딸’이라는 상쾌한 별명을 얻고 각종 행사의 초대 손님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마흔세 살의 나이에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1년간 베이징에 둥지를 틀었던 사람, 그리고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 ‘긴급구호 요원’이라는 생소한 직함을 들고 다시 새로운 세상에 뛰어든 사람.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고,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는 ‘어리버리 생초자’ 긴급구호 요원에서 ‘중닭’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또 한 번 새로운 ‘미션’을 완수해, 새장 밖의 삶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새장 밖의 삶을 꿈꿀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줄 것이다.* 新국제화 시대의 진정한 세계화7년간의 세계 일주 덕분에 오지 여행가로 더 널리 알려진 한비야가 이 책《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동안 그를 ‘바람(Wind)의 딸’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이야기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곳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피하고만 싶어하는 세계 곳곳의 긴급구호 현장들이다. 고통받고 외면당하고 끝없이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곳. 그러나 한비야 특유의 따뜻함과 적극적인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세상은 더이상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보다는 우리 서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책 소개◎ 작품 내용 파악하기 (꼼꼼하게 읽고, 기억하세요~!^^)* 한비야, 신고합니다. -아프가니스탄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운다- 긴급 구호 단체 ‘월드비전’의 긴급 구호 요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다. 한국 직원이 재난 도움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숙소 근처에는 천막학교가 있다. 탈레반의 여성 교육 금지로 얼씬도 못했던 학교를 다니게 되어 무척 기뻐한다.지뢰를 없애려면 천 년이 걸린다고?- 국제 단체간 회의에서 만난 덴마크인 지뢰 피해 전문 의사 데니스가 낸 1) 세상에서 지뢰가 제일 많이 묻혀 있는 나라는? 아프가니스탄, 2) 아프가니스탄에 묻힌 지뢰의 수는? 1천만 개 이상, 3) 오늘부터 지뢰를 묻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현재 묻혀 있는 지뢰를 모두 없애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천 년, 4) 지뢰 한 발 값과 그 한 발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돈은? 지뢰를 묻는 데는 5달러, 제거 비용은 천 달러. 그리고 한국은 비무장지대에 묻혀 있는 지뢰 매설 밀도가 세계최고라는 것.24시간 감시대상, 한비야- 이곳에서 사귄 친구 ‘쉐킬라’의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다녀왔다. 화이트보드에 행선지와 출발 시간을 적어놓고, 무전기로 30분마다 교신을 했는데, 안전 담당 얼굴이 굳어있었다. 헤라트 정부 외국인 담당관이 와서 비밀경찰이 우리 직원들을 감시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곳은 아직도 탈레반 세력이 있는 곳이니 누가 어느 편의 첩자인지 알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옥상에서 운동도 할 수 없다. 현지인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 한단다. 핑계를 대고 쉐킬라의 초대를 거푸 거절하려니 속이 쓰리다. 바드기스로 떠나기 전 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쿠차마을보다 더 깊은 시골로 들어가니 영양실조에 폐결핵까지 상황은 더욱 나빴다. 네 살짜리 사이드와 생후 팔 개월 된 압둘을 치료급식소로 데려왔다. 이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 아이들에게 치료 영양죽을 먹인지 2주일이 지난 어느날 사이드가 나를 보고 웃는다. 살아난 것이다. ‘고맙다, 살아줘서 고마워.’ 그러나 압둘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드기스를 떠나는 날, 압둘은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손가락을 꽉 깨문다. 기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말라아달라는 듯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조PD가 말한다. 다큐멘터리 잘 만들어서 저 아이들을 살려주겠다고.* 당신에게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 이라크긴급구호 요원의 몸값- 이 곳은 안전 상황은 ‘코드 레드’ 어디를 가든 방탄조끼를 입어야 하며, 무전기를 항상 켜 놓아야 하며, 여권과 개인 철수 자금 1천달러는 몸에 지녀야 하며, 월드비전 조끼나 모자 등을 착용하지 말아야 한다. 긴급구호 요원이 인질로 잡히면 몸값은 0원이다. 우리 단체는 납치범들과 몸값 협상을 하지 않는다. 후원금으로 거액의 몸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이다.한비야식 물귀신 작전, 국제 본부를 움직이다- 나는 종전 선언후 바로 이라크로 가 현장 조사 팀에 합류하여 식수 사업을 하기로 했고, 한국에서는 활발한 모금이 시작되었다. 모금액 14억원에 어린이 재킷 14만벌. 이라크 현장은 코드 레드라서 국제 직원의 수가 12명으로 제한되어 있고 세계 각국의 사무실마다 자기 직원을 보내고 싶어 경쟁이 치열했다. 거기다 나의 업무 수행 능력은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이라크 구호를 위한 국제 본부 지도부 회의에서 나는 한국인이 모술에 식수 책임자로 가야하는 이유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는 월드비전 한국 53년 역사상 처음으로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 모술에 온 것이다.내 별명은 마이꼬리- 모술에서 나는 한국, 미국, 호주가 지원하는 식수 사업 총괄 책임을 맡았다. 적어도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학교를 통한 식수 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총 예산은 70억원. 내가 해야 할 일은 1단계가 현지 직원 고용 및 학교 선정, 1단계는 공사업자 선정과 공사 일정의 관리 감독, 3단계는 공사 후 각 학교 교장선생님께 시설을 인수하고 학생 및 주민 반응을 조사하는 것이다. 현지 직원을 고용한다는 공고를 써붙였고, 모술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아모르가 첫 번째 현지 직원이 되었다. 필요한 인원 95명을 모두 고용했다. 식수 사정이 열악한 학교의 명단한 12명의 가족은 나의 영원한 응원군이다.나의 딸 젠네부, 아도리, 엔크흐진- 나에게는 딸이 셋 있다. 큰딸은 이티오피아, 작은딸은 방글라데시, 셋째는 몽골에 살고 있다. 큰딸 제네부는 열한 살이다. 그 날 아침 나를 만나러 네 식구 모두가 와서는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겨우 한 달에 2만원을 보냈을 뿐인데. 젠네부의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수입이 없었는데 태어난 갓난아이는 낳자마자 설사를 멈추지 않았단다. 내가 처음 보낸 2만원으로 갓난아이를 살렸단다. 그리고 내가 보낸 후원금으로 젠네부가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떨어져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방글라데시에 있는 둘째 딸, 열한 살 아도리의 사연은 더 극적이다. 아도리의 아버지는 릭샤꾼(일종의 인력거)으로 무척 가난했다. 고리대금업자는 이자 대신 아이를 데려가 부려먹는다. 아도리도 담보노동 어린이였다. 2만원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면 학비는 물로 어미 염소, 릭샤 구입 시 대여금 등이 해결될 수 있다. 2만원이 이렇게 큰 돈인 줄 정말 몰랐다.셋째 딸 엔크흐진은 몽골에 식량 배분하러 갔을 때 맺어졌다. 추워서 나가 놀지 못하니 엔크흐진도 구루병을 알고 있었다. 내가 보낸 후원금으로 셋째 딸은 구루병 치료를 시작했단다. 이 6만원이 내가 매달 지출하는 돈 중에서 가장 멋지게 쓰는 돈, 가장 힘센 돈임에 틀림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치일 것이다.여러분은 요술 지갑 있으세요?- 세계적인 구호단체 월드비전의 발생지는 다름아닌 한국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 고아와 미망인을 돕는 일로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후부터 1990년까지 우리 나라에 들어온 해외 원조 총액이 무려 25조원이다. 91년부터는 완전히 해외 원조를 끊고 오히려 우리 돈을 모아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다. 월드비전 내에서도 수혜국에서 완전한 지원국이 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우리’의 범위를 조금만 넓힌다면- “국제 원조의 최대 수혜국이었던 한국이 살 만해진 지금 다른 나라를 돕는 데는 어쩌면 그렇게 인색한가요?”라는 질문을 내전으로 30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1백만 명은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다고 하다. 한국도 내전을 겪었다는 말에 대니엘의 말투가 달라진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라이베리아식 인사법을 가르쳐줬다. “상대방과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한후 미끄러지듯 서서히 풀면서 엄지와 검지로 딱 소리를 낸 다음 주먹을 쥐고 왼쪽 가슴을 두 번 치세요. 이건 ‘너는 내 친구, 너를 내 마음에 두겠다’라는 뜻이죠.”누구에게나 패자부활전은 있다- 무장 해제 캠프 안에서 진행되는 무장해제 절차는 간단했다. 무기를 회수하고 건강 체크를 한 다음, 캠프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받는다. 3주일~3개월 간의 사회 적응 훈련을 받은 후 300달러의 사회 복귀 지원금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심리치료를 받고 생계에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소년병들을 사람을 죽인 죄책감과 누군가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므로 심리 치료와 사회 복귀 재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너희들은 가해자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반군이 되었던 피해자이고 그저 평범한 아이일 뿐이다.”라고.* 평화로워 더 안타까운 산들의 고향 - 네팔네팔도 지난 10년,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으로 국민들이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긴급 구호 식량을 배분하기 위해 파견나온 곳은 네팔에서도 가장 열악한 중부 산악 지역이다.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대표 선수- 10년 전 내 세계 일주의 첫 번째 나라가 다름 아닌 네팔이었다. 히말리야 산을 트래킹하던 중 고산증이 났다. 그 때 네팔인 안내 겸 포터는 주머니에서 마늘을 꺼내 찧어서 입에 물게 했다. 그러고는 나를 둘러업고는 백미터쯤 가서를 나를 내려놓고 다시 돌아가 배낭을 가져오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며 하산했다. 감사의 표시로 등산화를 선물하고 근사한 저녁을 사겠다고 하자, 그는 저녁은 자기네 집에 가서 먹자고 했다. 포터의 가족들은 나를 환대해주었던 고마운 분들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만난 네팔인 노동자들을 만나 집에 데리고 가서 저녁을 대접했다다.
황석영 < 모랫말 아이들 >◎ 작품의 내용 파악하기낡고 쓸쓸한 느낌이지만 어딘지 추억을 한껏 빨아들인 듯한 삽화를 곁들인, 작가 황석영의 어른을 위한 동화. 6.25 전쟁 직후 모랫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저자의 자전적 유년시절 회고담이다. 사회는 어수선하고, 물질은 늘 부족했지만 철없는 아이들의 생활은 즐겁고, 때로는 자라나는 아픔을 겪기도 한,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이라면 공감할 만한 옛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모랫말 아이들』은 전체가 10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서울 한강변의 '모랫말'. 아직 전쟁의 상흔이 짙게 남은 그곳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소년 수남이가 화자가 되어, '모랫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먼 데서 혼자 흘러들어와 모랫말에 꼼배 다리를 만들어놓고 홀연히 사라진 '땅그지 춘근이'. 아이들은 그를 꼼배라 불렀다. 마을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아내와 핏덩이 갓난애를 잃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그가 남긴 건, 원한이 아니라 근사한 돌다리, 꼼배 다리였다.엄마의 친구가 양공주로 떠나면서 맡기고 간 혼혈아 '귀남이'. 유리 구슬 같은 초록 눈빛에 구불구불한 곱슬머리, 오똑한 코의 예쁜 소녀는 어린 수남이의 가슴에 설렘과 슬픔을 동시에 안긴다. 귀남이 마을의 신부님에게로 가게 되었을 때, 수남이의 손에 쥐어준 금색 멕기의 낡은 쇠단추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따뜻했다.전쟁 때 중부전선에서 파편을 맞고 바보가 된 인정 많은 상이군인. 전쟁의 화염 속에서 수많은 시체를 불태운 화장터의 화부 아저씨, 낯선 이국땅에서 늙은 고양이를 벗삼아 외로움을 달래는 화교 친이 할머니, 상둣도가 노인의 재취댁과 애틋한 연정을 나누던 삼봉이 아저씨, 기지촌에서 양공주들과 함께 생활하는 수남이의 마음속 애인 영화, 검둥이 병사를 상대로 벌거숭이가 되어 돈벌이를 하는 영화의 엄마, 늘 배고파하며 떠돌아다니는 곡마단의 수줍은 어린 남매, 그리고 수남이를 돌봐주던 태금이 누나(전쟁통에 미친 여자가 되어 모랫말로 다시 돌아와 영혼이 절제된 서정 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동화의 전범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 내용 파악하기* 꼼배다리춘근이는 먼데서 흘러들어온 거지였는데 어른들은 그를 땅꾼, 각설이라 불렀고 흔히 땅그지 춘근이로 통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의 오른팔 팔목이 호미처럼 구부러졌기 때문에 꼼배라고 불렀다. 일 년 전의 봄 그는 마누라(피난민 촌에 살던 함경도 여자)를 얻었다. 채소시장 어귀에서 꼼배는 돈을 걷고 뚱뚱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녀가 꼼배의 아내이다. 그들은 꼭 같이 밥을 구걸하러 다녔는데 어느 날엔가 혼자 찾아왔다. 꼼배는 밥 한술만 줍쇼오 하는 게 아니라 그 집 어린아이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왜 혼자 왔냐는 물음에 꼼배는 아내가 만삭이라고 말한다.날씨가 풀린 어느 오후, 밤섬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시내를 건너다 얼음이 깨져서 빠졌다. 한 아이가 꼼배네 움박으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으나 만삭이 된 그의 처만 집에 있었으므로 도울 수 없었다. 물에 빠진 아이가 죽자 사람들은 꼼배네를 비난했다. 그리고 꼼배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이 들렸다.나(수남이)는 친구들과 들쥐사냥을 하였는데, 불길이 번져 위쪽 갈대밭으로 옮겨붙었다. 훨씬 먼 곳에 있는 꼼배 처가 뛰어나와 “우리 애기”를 외치며 미친사람처럼 갈대위로 뒹굴기 시작했다. 이틀 뒤 그녀는 병원까지 실려가서 죽어버렸다. 꼼배는 오랫동안 바깥 출입을 않더니 어는 밤에는 그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갓난 아이도 없었다. (꼼배 처가 화재로 아이를 잃고 나서 충격을 받았는데, 불을 보자 그만 환장해서 뛰어들었던 것이다.)그즈음부터 시냇가에 돌과 흙으로 쌓은 축대 비슷한 것이 늘어갔고, 봄이 오기전에는 근사한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꼼배는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은 이를 ‘꼼배다리’라 불렀다.* 금단추비가 내리던 가을저녁. 어머니는 기지촌 동네 양색시들의 옷을 만들고 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어릴적 친구(은진)가 계집아이(귀남이)와 함께 찾아왔다. 눈두덩이 깊숙한몰려들었다. 국원이가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어떤 애가 지붕에 얹힌 공을 꺼내러 올라갔다가 굵은 전깃줄에 붙어버렸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꽉 막혀 있어 방앗간 옥상이 보이지 않자, 나는 친구들과 쌍성루 옥상으로 올라갔다. 중부전선에서 파편을 맞고 제대를 했다는 상이군인이 앉아있었는데, 그는 혀 짧은 말씨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리는 데도 노인 하나가 올라가 아이를 구하려 했으나 전깃줄이 노인의 몸에 엉키기 시작했다.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났고 노인은 비명을 질렀으나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쥐죽은 듯 했다. 보다못한 고문관(상이군인) 아저씨는 지붕위로 올라가 노인과 아이의 몸에 감긴 전선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인과 아이를 구하고 나자마자 전선이 그의 몸을 휘감아버렸다. 전기회사 전공 두 사람이 왔고, 지붕 끝에 걸려있던 고문관은 전선을 매단 채로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고문관을 떠메어가려고 겨드랑이를 잡았을 때 그는 벌떡 일어나서는 피붙은 팔뚝을 쳐들며 흔들어보였다. 며칠이 지나서 그가 나타났을 때, 어른들은 아무도 그를 바보라고 여기는 것 같진 않았다. 나와 국원이는 붕대투성이의 고문관에게 경례를 하였다.* 도깨비 사냥나와 정삼이, 국원이, 광국이(가출하고 떠돌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아이로 나의 존경의 대상), 영달이 이렇게 다섯 명은 도깨비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모랫말 동네 동쪽 둑을 지나 들판 끝에 있는 건물은 시체의 화장터로 쓰인다. 거기서 도깨비불을 보았다는 소문도 있고 귀신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고도 했다. 담요, 플래시, 대영빵, 몽둥이, 담배 등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화장장의 굴뚝을 보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정삼이의 뒤를 따라 컴컴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 기침소리가 들리자 우리는 가마 앞의 받침대 뒤로 숨었다. 그러나 영달이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화부에게 들켰다. 화부는 “여긴 아이들이 올 데가 아니다. 귀신이 정말로 나온다. 매일밤 귀신을 본다.”며, 어른이 돼서 죄를 많이 지으면 귀신이 보인다. “고양이도 되게 늙었나봐. 늙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희한해지는 모양이다.” 친이할머니가 오래 모살 것 같다던 국원이 할아버지 말처럼 친이네 할머니는 봄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삼봉이 아저씨한쪽 눈이 없는 삼봉이 아저씨는 상여를 꾸미는 사람으로 뭐든지 깎아낼 수 있는 손재주를 지녔다. ‘도둑놈 잡기’놀이를 하던 나는 상둣도가의 꽃가마 안에 숨었다가 아저씨를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나를 가마에서 나오게 하시고는 우는 나에게 뭐든지 만들어주겠다면 달래셨다. 그 후로 나는 아저씨랑 친해졌으며, 아저씨의 작업장을 찾아가 물건을 깎는 과정을 구경했다. 내가 아저씨에게 사람이 죽어 땅에 파묻으면 아주 없어지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몸은 없어져도 혼이 남는다. 네 할아버지의 혼이 네 아버지에게 남았다가, 네 아버지의 혼이 너한테 옮겨지고 그렇게 쭉 계속된다.”당분간 나는 어머니의 꾸중이 두려워 상둣도가로 놀러가지 못했다. 도가 주인인 유 노인을 칠십 고령에 스물두 살짜리 시골 작부를 재취로 데려와 살고 있었다. 여자의 배가 불러오자 사람들은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고들 얘기했다. 어느 날 나는 아저씨의 토방에 갔다가 아저씨가 유노인의 재취댁과 다투는 것을 보았고, 재취댁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저씨가 준 술찌기를 얻어먹고 취해서 한나절이나 잠들었다. 아저씨는 자신이 깎은 물건들을 내게 주며 다시 절로 들어간다고 말했고, 그 날 밤 아저씨는 몰래 떠나갔다.어느 아침, 아이를 낳던 재취댁이 죽고 그 시신이 묘지로 떠나는 것을 보았다. 유 노인은 중년의 행상 여자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죽은 재취댁이 낳은 아기는 태영(삼봉이 아저씨의 아이로 추측할 수 있음)이라 불렀는데, 건강하게 자랐다. 나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기가 할아버지 또 아버지의 혼으로 남겨진다는 삼봉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내 애인어느 날 나는 공터 천막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보았다. 삼십환을 내면 사람도 아니고 뱀도 아닌 괴물을 구 내밀었다. 요요를 돌려보는 중에 만취한 영화 엄마와 검둥이 병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복도로 나온 나와 영화는 복도 맨 끝의 문으로 나가 계단에 걸터않아 오렌지를 먹었다. 영화는 시장에 구경가지 말라며, 진짜 괴물이 있는 게 아니라 뱀 껍질을 감고 상자속에 들어가있는 거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낯선 사람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어머니를 기다릴겸 나는 말님이네 가게로 가서 붕어빵을 먹고 있었다. 그 때 이상한 남자가 들어왔다. 화상을 입어 얼굴이 쭈글쭈글한 그는 비빔국수를 시키고는 자신이 석방 포로라는 말과 함께 국원이네 집을 물었다. 국원이네 큰누나가 지난 겨울에 쌍둥이를 낳았다는 말을 해주자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국원이 큰누나와 동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꽃집이 없냐고 물었다. 그러나 전쟁 통에 꽃집이 있을리 없었다. 그 사내와 함께 국원이네 집쪽으로 가는 길에 국원이 큰 누나가 쟁반을 머리에 이고 나타났다. 그 때 그 사내는 흠칫 놀라더니 자기 얘길 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나는 국원이 누나에게 인사를 했고, 그녀가 지나갈 때까지 사내는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우연이었는지 그네가 얼마쯤 가서 걸음을 멈추고 잠깐 뒤돌아보더니 이내 다시 멀어져갔다.(국원이네 큰누나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사내가 사랑했던 여인임을 추측할 수 있음)* 남매우리 동네에 곡마단이 왔다. 말집 텃밭에 가설공연장을 짓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손님 모으러 다니는 행진을 보려는 내게 정삼이는 극단에 가서 일을 시켜달라고 하고 공짜표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정삼이는 큰북을 메고 행진에 나서기로 했고, 나는 곡마단 아이와 포스터를 붙이러 나가기로 했다. 그 아이가 무거운 풀통을 나만 들게 하자, 기분이 나빠진 나는 풀통을 그 녀석에게 넘겨주었다. 풀통 드는 것을 힘겨워하는 그 애에게 기운이 왜 그렇게 없냐며 핀잔을 주자 배가 고파서 기운이 없다고 말했다있었다.
안도현 < 짜장면 >저자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 해보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아쉬움을 한 권의 책에 동화처럼 써내려간 자전적 소설이다. 인생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은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쯤에 발생한다. 시, 어른을 위한 동화, 산문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인 안도현의『짜장면』은 순수한 서정과 상상력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기 위해 기획된 열림원 '어른이 읽는 동화' 시리즈의 작품이다.시인 안도현은 『짜장면』에서 생의 결절을 만들어낸 한 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이중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반발하여 집을 나간 열일곱 살 난 사내아이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수평선을 보며 학교로 걸어갔다가 다시 수평선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평생 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열일곱 살의 '나'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내아이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나'는 사고를 당한다. 화가 날 대로 난 아버지는 어머니를 탓하며 손찌검을 가한다. 그 광경을 보고 분노와 충격에 빠진 '나'는 집을 떠난다. 낯선 도시에서 짜장면 냄새에 끌려 '만리장성'으로 들어선 후부터 그에게는 철가방을 들고 125cc 오토바이를 타고 '날아다니는' 나날이 전개된다. 사람들과의 만남, 오토바이 폭주, 그리고 짧았던 첫사랑. 그렇게 열여덟이 된 '나'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향하던 중 사고를 당하고 오토바이는 바닷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이 세상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많은 과정들을 무사히 통과했다. 몇 번의 연애에 실패하기도 했다. 또한 '나'는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가출을 하지도 않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날아다니는 꿈 같은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으며, 아예 오토바이 핸들조차 잡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렇게대해 설명하자면, 나는 그 때 짜장면 냄새가 나는 중국집 ‘만리장성’을 앞을 지나고 있었다. 만리장성 앞에는 출고한 지 얼마 안되는 최신형 오토바이(125cc)가 서 있었다. 나는 순발력과 힘이 좋기로 유명한 이 오토바이를 타고 날아다니고 싶었다. 나는 만리장성에 들어가서 주인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배달일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 때 내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그 곳에서 먹고 자고 봉급 50만원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6개월에 10만원씩 올려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사장님은 20대 후반의 젊은 주방장을 소개시켜 주었다.* 파란색으로 염색한 앞머리 = 아버지에 대한 불만의 표시나는 불과 며칠 만에 만리장성 주변의 상가 사람들을 거의 다 알아버렸다. 만리장성 바로 옆에는 ‘2002 이발관’이 있다. 매일 술을 마시는 이발사 아저씨에게 나는 매일 우동 한 그릇을 배달했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은 나를 잘 모르고 있었고,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방장은 나에게 일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그에게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릇 씻는 법, 주방 바닥을 청소하는 법, 파를 다듬는 법. 주문 받는 법 등등.양파를 까고 있던 때였다. 나를 지켜보던 주방장은 엉뚱하게도 파란색으로 염색한 내 앞머리를 가리키며 핀잔을 주었다. 물론 나는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주방장은 아버지처럼 훈시하듯 당장 머리를 자르라고 했고, 나는 양파를 까던 손을 눈에 갖다대고 마구 비볐다. 그래야만 열일곱 살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물이 찔끔찔금 흘러내렸다.* 나는 모범생중국집 배달원들은 문제아라는 편견이 많지만, 나는 성적표가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모범적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등을 놓쳐본 적이 었었다. 아니 딱 한 번 놓친 적이 있기는 하다. 중학교 갓 입학했을 때 바다를 소재로 풍경화를 그리는 숙제가 있었다. 바다를 끊임없이 바라보던 나는 바와서 미술 선생님께 머리를 조아렸고 나는 반성문을 쓰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내가 가출하게 된 이유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자랐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의 우상이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 타는 법을 손수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는 이렇게 자상하고 너그러웠고 나는 아버지께서 애지중지하는 외동아들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파출부처럼 바보같이 일만하는 사람이었다. 자상한 아버지도 엄마를 함부로 대했다.아버지는 애향심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우리 동네 입구에 자연부락 고유의 이름을 돌에 새겨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 군청이며 교육청으로 표창을 받으러 다녔고, 그 해 쓴 논문이 교육부장관상을 받게 되어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 날은 ‘해변미인선발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폭주족 흉내를 내보기로했다. 아버지의 잘 정비된 125cc 마그마를 타고 100킬로미터로 달렸다.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놓인 요철에 앞바퀴가 닿는 순간 오토바이는 중심을 잃고 나는 혼자 날아갔다. 다행히 진흙위로 떨어져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다시 쓸 수 없을만큼 망가졌다. 서울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애가 죽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냐며 어머니를 때렸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잘못은 엄마가 저지른 게 아니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맞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서 알게된 동네 사람들집을 나온 지 한 달만에 집으로 전화한 나는 엄마에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엄마는 울면서 당신이 잘못햇다고 말했다.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상가 사람들하고도 제법 관계가 친해졌다. 상가 중에서 ‘순화 미장원’이 장사가 가장 안되었다. 순화 아줌마는 말이 많고 일은 느렸다. 어느날 나는 그 미장원에서 노란 머리로 염색을 하기도 했다. 그날 나는 뜻하지 않게 주방장의 코가 왜 납작하게 주저앉았는지 알게 되었다. 주방장은 순화 아줌마를 누님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는데는 것이다.나는 코끼리 편의점에 배달 가는 것을 좋아했다. 노부부는 짬뽕 한 그릇을 시켜서 나눠먹곤 하셨는데 늘 한 그릇만 시켜 미안하다고 하셨다. 인생이란 짬뽕 국물을 숟가락으로 함께 떠먹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편의점의 노부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2002이발관 주인아저씨였다. 편의점 앞부터 그 근방 100미터 정도를 아침마다 깨끗이 청소하시는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존경하게 되었다.코끼리 편의점으로 짬뽕을 배달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기 직전 나는 철가방을 놓치고 말았다. 금방 편의점에서 나온 아이가 나온 아이가 몰던 파란색 오토바이가 철가방을 슬쩍 들이받고 간 것이었다. 그 아이는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나를 조롱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삐삐 헤어숍 여자아이와의 만남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어느 눈오는 날 저녁, 엄청난 양의 음식 주문이 들어왔고 ‘삐삐헤어숍’으로 배달을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젊은 주인와 계집아이 두 사람밖에 없었다. 장난전화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주방장과 나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으나, 속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주방장은 삐삐헤어숍이 생긴 후로 손님을 빼앗긴 순화미장원 아줌마가 최진실을 골탕먹이려고 주문을 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삐삐헤어숍에 새로 온 여자아이가 장난 전화를 한게 아닐까하고 말하려다 참았다.나는 오토바이를 하루 종일 타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처음 본 여자아이는 한번만 태워달라며 겁도 없이 내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 아이는 건너편 삐삐헤어숍에 새로 온 그 여자아이였다. 우리는 연인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전화벨 잠에서 깼다. 꿈이었던 것이다.나는 꿈 속에서 본 그 여자아이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삐삐헤어숍을 힐끔거렸지만, 신은 그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었다. 그난 나는 한 아파트로 배달을 갔고 거기서 여자아이를 만났다. 거기에는 오토바이로 내 철가 그 때 삐삐 헤어숍의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빨간 미니스커트에 야한 화장을 한 아이는 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호출기 번호를 쓴 쪽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 아이와의 데이트그 애의 호출기 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면서도 그 애에게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보았던 그 애의 행동과 차림새 때문에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사장과 주방장이 퇴근한 뒤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여자아이가 공단 쪽으로 난 도로 가에 부서진 폐차 옆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끌고 가게를 나섰다. 그 애는 왜 연락이 없었냐며 내 가슴을 톡 때렸다. 그 때 나는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고 그 아이의 손이 남자의 손등 위로 겹쳐졌다. 나는 거기서 그 아이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 애를 태우고 노래방에 도착할 때까지 내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애는 삐삐헤어숍의 주인이 이모인데 거기서 일을 배우는 중이며, 크리스마스 이브 때 만난 사내아이들은 친구사이라고 말했다. 폭주족인 그 아이들은 나와 폭주를 뛰고 싶어한다고 전해주었다. 그 아이는 “내가 필요하다면 너한테 나를 잠깐 빌려주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사흘 뒤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노래방으로 갔다. 그날 그 애는 가짜 주문 사건은 그 애가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는 같이 웃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그 애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밤 만났다. 그 애는 외로운 아이였다. 사람들은 그 애의 말을 믿지 않았고, 재미있고 정겨운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때로 나는 내가 떠나온 바닷가 마을과 거기 사는 사람들 이야기도 했다. 그 애는 “나도 바닷가에 살고 싶어. 하루 종일 수평선을 보면서 말이야.”* 오토바이 대폭주 사건3월이 되자 나는 그 애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몇 번 폭주에 참가했다. 내 오토바이는 폭주 뛰기에는 꽝인 오토바이였다. 하지만 내가 오토바이 때문에 주눅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 나는 ‘.
미치 앨봄 * 작품 개관『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의 베스트셀러 소설『에디의 천국』개정판. 삶과 죽음을 끌어안는 따뜻한 휴머니스트 작가라는 명망을 더욱 뚜렷이 한 작품으로, 팔십 평생을 놀이공원의 정비공으로 살아온 주인공이 어느 날 사고로 죽음을 당한다. 젊을 때는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었고, 50대에는 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온 독신노인. 태어나서 한 번도 놀이공원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온 주인공 에디는 어릴 때 가졌던 작은 꿈조차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삶을 늘 무가치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이 작품은 주인공 에디가 어느 날 사고로 죽음을 당한 뒤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차례로 만난다는 이야기이다.주인공 에디는 다섯 사람을 만난 뒤에야 자기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타인과 자신의 삶을 용서하고 이해하자마자, 그리고 이 모든 인연을 깨닫자마자, 그의 인생은 영원한 의미를 얻는다. ‘천국’이란 이렇게 부정하고만 싶었던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곳, 그리하여 영원한 평안을 얻는 곳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이 사랑받는 것은 두 가지 메시지 때문이다. 하나는 “타인이란 아직 만나지 못한 당신의 가족입니다”(본문 66쪽)라고 하는 인연의 사상, 다른 하나는 “당신은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었어요”(본문 238쪽)라고 하는 자기 화해의 사상이다. 사실 타인이 나의 존재를 지탱해주고, 내가 타인의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은 굳이 불교의 인연 사상을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갖곤 하는 생각이다. 작가는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뻔하고’ 평범할 수도 있는 우리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내 삶에 남겨진 타인의 흔적들, 그리고 타인의 삶에 기쁨 혹은 상처로 남은 나의 흔적들, 그것의 숙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늘 후회하고 부정해온 나의 삶도 온전히 껴안을 수 있다는 자기 용서의 사상이다.◎ 줄거리 파악하기* 에디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① 첫번째로 만난 파란 몸뚱이의 사내(인연)“우연이란 없어. 우리 분노를 상처를 준 사람들을 공격할 무기라고 생각하지만, 증오는 양날을 가진 칼날과 같아서 휘두르면 자신도 다쳐요. 용서하도록 해요. 놓아버려요.”④ 네번째로 만난 에디의 아내 마거릿(사랑)“잃어버린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에요. 다른 형태를 취할 뿐이죠. 가버린 사람의 미소를 볼 수 없고, 그 사람에게 음식을 갖다줄 수도 없고, 머리를 만질 수 없지요. 하지만 그런 감각이 약해지면 다른 게 환해지죠. 추억이 동반자가 돼요. 당신은 그걸 키우고 가꾸고 품어주고 그것과 춤을 춰줘요. 그래서 생명은 끝나지만 사랑은 끝이 없는 거예요.”⑤ 다섯번째로 만난 에디가 전쟁 당시 불 붙은 집에서 구하려고 했던 필리핀 소녀 탈라(다른 시작)“아저씨는 루비 피어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었어요. 아저씨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주니까. 그리고 나한테도 잘해주니까. 거기가 바로 아저씨가 있어야 될 곳이었어요.”1. 주인공 ‘에디’에 관하여주인공 ‘에디’는 팔십 평생을 ‘루비 가든’ 이라는 놀이공원의 정비공으로 살아왔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 에디 메인트넌스(Maintenance)씨?’ 라고 농담을 걸었지만, 그는 썩 재미가 없었다. 농담을 받아줄 만한 마음의 여유와 인생의 즐거움이 그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어 평생 동안 절름발이로 살았으며, 50대 때는 평생 사랑하던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온 독신 노인이다. 전쟁에 참전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놀이공원을 떠나본 적이 없는 ‘에디’는 어릴 적 가졌던 기계공학도의 작은 꿈조차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삶을 늘 무가치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 공원에 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소녀를 구하고자 달려간 ‘에디’. 그리고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2. 첫 번째 만남 - 인연회전 찻잔 속에서 잠이 깬 ‘에디.’ 그러나 평소처럼 몸이 아프지 않았고,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였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신이 늘상 생활하던 루비 가든에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루비 가든과는 사뭇 다다. 어린 ‘에디’는 공을 쫓아 길가로 뛰어들었고, 하마터면 그는 자동차에 치일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자동차가 소년을 피해갔고, ‘에디’는 다시 놀이에 푹 빠지게 된다.그러나 주인공을 ‘에디’가 아닌 ‘운전자’로 바꿔보면 어떨까. 그는 운전 연습을 하기 위해 친구의 차를 빌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한 꼬마가 길가로 뛰어 들어왔고, 그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가까스로 꼬마를 피할 수 있었다. 너무 놀랐던 탓인지 온 몸의 기운이 쭉 파져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였는데, 그 바람에 반대편 차와 부딪힐 뻔 했다. 운전대를 꺾어 방향을 틀다가 그는 주차된 차를 들이박고 말았다. 운전대에 심하게 부딪힌 그는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다. 그가 바로 ‘파란 사내’이다.‘에디’는 그 사실에 매우 놀라고 만다. 죗값을 치루겠다는 그의 말에 ‘파란 사내’는 ‘에디’에게 당신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라 일러준다. 그는 우연한 행위란 없다는 것과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또한 모든 것은 균형을 이루고자 하며, 태어나고 죽는 것은 전체의 일부분일 뿐임을 알려주며 그는 사라진다.나는 많은 타인과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른 타인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살면서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타인에 대해 말하기를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이라 표현했다. 바보같이 외롭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필요 없다. 내 주변에는 나와 가족이 될 타인이 많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행동을 해선 안 된다. 내 행동으로 인해 다른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은 외롭지 않은 삶이며, 헛된 행동을 해서도 안 되는 삶이다. - 책 본문 중에서3. 두 번째 만남 - 희생‘에디’는 회색빛 하늘과 쓰러진 나무, 시커먼 돌 더미가 무성한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참전했던 장소와 닮아있었다. 거기서 그는 같은 부대 소속이었고 직속상관이었던 ‘대위’를 만나게 된다.필고 있었다! ‘에디’는 미친 사람처럼 불길로 뛰어들려 했고,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무릎을 맞고 심한 화상을 입은 채로 동료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는 살았지만, 다리에 맞은 총알 때문에 평생을 절뚝이게 되어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그러나 그의 한쪽 다리를 평생 절게 만든 장본인은 결코 어떤 일이 있어도 부대원을 남겨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대위가 쏜 총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에디’는 분노에 차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대위는 그대로 ‘에디’의 분노를 받아준다. ‘에디’를 향해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죽음이 뻔한 불 속으로 들어가는 ‘에디’를 잡기 위해 그의 한쪽 다리를 희생시켜서라도 그의 생명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위’는 ‘에디’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려준다. 그는 부하들이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도록 먼저 나섰다가 발아래에서 지뢰가 폭발해 사망하였다.‘대위’는 ‘에디’에게 희생에 대해 가르쳐준다. 희생은 삶의 일부이고 그렇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 또한 희생은 후회할 것이 아니라 열망을 가질 만한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희생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가까운 곳, 나의 부모님은 나를 키우기 위해 젊은 시절의 청춘과 육체의 고단함을 희생하셨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후 숭고하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도 있다. 희생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왜 나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희생한 만큼 언젠가는 자신에게 기쁨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4. 세 번째 만남- 용서어느 눈이 많이 쌓인 산속으로 오게 된 ‘에디’. 한 식당 안에서 그는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자신에게 상처만을 준 사람, 아버지. ‘에디’의 아버지는 그에게 무관심과 폭력, 침묵의 상처를 남겼고, 그렇게 두 사람은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는 아무리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또다시 원망하게 되었다.이 때 한 여인 술에 취해 어머니를 범하려 했고, 이 광경을 목격한 아버지는 망치로 그를 죽이려 했다. 도망치다가 바다에 빠져버린 ‘미키’. 아버지는 이 친구를 용서하고 그를 구해준다. ‘미키’와의 오랜 우정과 그의 단점과 해고를 당해 매우 슬퍼했다는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그 때문에 병에 걸렸고, 병원에서 죽음의 날만 하루하루 기다리게 된다. 혼수상태였던 아버지는 가끔 밤에 깨어나 창문에 매달려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아들들의 이름을 부르고, 친구의 이름을 부르다 세상을 떠났다.‘루비’는 ‘에디’에게 용서에 대해 가르쳐준다. 분노란 것은 품고 있으면 독이 되고, 안에서 그를 잡아먹기 마련이다. 증오는 굽은 칼날과 같아서 그것을 휘두르게 되면 결국 나 자신이 다치게 된다. ‘에디’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알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았다. 비록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었고 그를 미워했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다.마음에 미움을 갖고 살아가는 것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다. 미움이란 그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잔인한 사람이 되게끔 한다. 조금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왜 그 사람이 나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나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용서하면, 나를 망치지 않게 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용서라는 것은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나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용서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표현인 것이다.5. 네 번째 만남- 사랑눈을 감았다 뜨자 ‘에디’는 작고 둥근 작은 방에 서 있었다. 그는 여러 문을 열 때마다 결혼식 피로연의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피로연장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몸 때문이리라. 이 곳 저 곳의 피로연을 보던 그는 보라색 롱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을 보고 멈칫하게 된다. 그녀는 바로 가장 사랑했던 여인, ‘마거릿’이었다. 결혼할 당시처럼 젊고 아름다운 그녀가 바로 자신의 곁에 있었다. 그는 었다.
-부제: 한니발 전쟁♧ 책 전체 미리보기-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간략하게 요약했어요~1. 제1차 포에니 전쟁 : 한니발 전쟁의 원인a. 카르타고 번성 - 현재 북아프리카 튀니지 일대로 지금은 사막이지만, 2100년 전에는 비 옥한 농지로 생산성이 뛰어나 용병을 고용해 나라를 지킬 정도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b. 시칠리아로 세력 확장 - 당시 로마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여러 독립국가로 이루어진 시 칠리아에서 로마에 구원 요청한다.c. 로마와의 대립 -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를 선두로 로마와의 전쟁이 시작된다.d. 로마의 승리 - 전쟁에서 진 장수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지 않고, 후에 재신임하여 전장 에 내보냈다.e. 에스파냐로 이주 - 전쟁에 패한 하밀카르는 한니발을 데리고 로마에 복수를 다짐하며 에스파냐로 이주한다.2. 제2차 포에니 전쟁 : 한니발 전쟁a. 전쟁의 시작 - 오랫동안 복수를 준비하여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침공한다. 갈리아인(프랑스인) 등 여러 부족의 방해를 물리치고 로마 깊 숙한 곳까지 침투한다.b. 로마의 연패 - 한니발은 갈리아인과 연합하여, 로마 주변부는 물론 로마 중심지까지 공 격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로마의 여러 집정관들과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 을 잃는다.c. 장기전 양상- 로마의 연패가 로마속주들의 배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한니발의 판단이 어긋나고, 로마는 싸우지 않고 지키는 전략으로 맞선다."뛰어난 지도자(한니발)란 단지 뛰어난 재능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인간이 아니다. 그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인간관계는 반드시 상호관계다. 일방적 관계에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바랄 수 없다."d. 스키피오의 등장 - 어린 나이에 집정관이 되어 에스파냐에 파견되어 카르타고 세력을 몰아낸다.e. 카르타고 침공 -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로마의 '장화 발부리'에 남겨놓은채 카르타고를 침공한다. 마시니사인과 연합하여 카르타고의 항복을 받아내어 한니 포에니 전쟁 첫해의 집정관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로마와 메시나가 동맹 협정을 맺자, 위협을 느낀 시라쿠사와 카르타고가 동맹을 맺음. 로마군이 시라쿠사군과 카르타고군을 격파. 시라쿠사의 참주 히에론이 로마에 강화를 요청. 15년을 기한으로 동맹관계를 맺음. 그 후 50년 동안 시라쿠사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됨.시칠리아에 대한 기득권을 뺏길 우려가 생긴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에서 로마와 본격적으로 맞붙을 것을 결의. 로마는 카르타고의 세력권이었던 아그리젠토를 함락하는 것을 시작으로 카르타고 세력하의 시칠리아 도시들을 차례로 공격함. 로마는 노획한 카르타고의 5단층 갤리선을 복제하여 배를 제작하고 노를 젓는 훈련을 시키는 등 로마 최초의 해군을 탄생시킴. 최고의 해운국인 카르타고를 해전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로마의 집정관 두일리우스는 신무기 ‘까마귀’를 고안하여, 이를 이용해 해상 전투를 육상 전투로 바꾸려함. 밀라초 앞바다에서의 최초의 본격적인 해전에서 ‘까마귀’를 이용하여 승리함. 이제 시칠리아섬 전체는 시라쿠사와 로마, 카르타고의 세 세력으로 삼분되었다. 기원전 257년 로마가 해전에서 두 번째 승리를 거두었고 그 후, 로마는 전쟁터를 시칠리아 섬에서 카르타고 본국으로 옮기기로 결정. 230척의 군선을 새로 만들고, 원뿔 모양의 진형을 편성하여 세 번째 해전에서도 로마는 승리함. 이 해 로마군은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게 됨. 로마가 수도 바로 옆에 숙영지를 설치하자, 카르타고 정부는 로마 집정관 레굴루스에게 강화 사절을 보내자,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에 시칠리아 섬에서 철수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으나, 카르타고는 이를 거부. 카르타고는 스파르타 출신의 용병대장 크산티포스를 고용.크산티포스는 카르타고군을 훈련시키고 코끼리 100마리를 전투에 이용하기로 결심. 수적으로도 열세하고, 기병도 적었던 로마군은 이때 처음으로 카르타고군에 패배. 그러나 이어진 네 번째 해전에서 로마군이 승리했으나 태풍을 만나 6만명의 병력을 잃음.카르타고 정부는 포로로 잡은 집정관 열중하고 그리스어를 습득. 라틴 희극 상연. 그리스어권인 시칠리아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열풍은 좋은 영향을 줌. 피정복민을 가정교사로 초빙하거나 ,자제를 시칠리아로 유학 보냄. 로마인의 개방성을 알 수 있음.‘로마 연합’의 가맹국은 네 부류로 나뉨. 연합의 맹주인 로마(시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 가짐, 병역의무), 무니키피아(선거권 없는 시민권 가짐), 콜로니아(식민지, 전략상 중요한 지역에 이주), 소키(동맹국, 완전한 자치권 인정, 이중국적 인정). 아피아 가도를 연장함. 시칠리아를 프로빈키아, 즉 속주로 삼음. 속주민은 로마에서 파견된 법무관이 통치. 토지는 몰수, 주민들이 땅을 빌려 경작, 세금은 수확의 10퍼센트(십일조)를 냈으나, 병역의무는 없음. 시라쿠사는 동맹관계이지 속주는 아님. 제1차 포에니 전쟁의 발단이 된 메시나는 동맹국이 됨. 로마는 세력하의 나라들을 방어할 의무를 지는 동시에 이들을 지킬 의무도 가짐.일리리아 해적을 퇴치함. 이탈리아 북쪽의 갈리아인은 농경법을 몰라 먹고 살기 어렵게 되자 남쪽으로 이동. 로마는 집정관을 파견하여 전투에서 승리함. 칼리아 부족장이 로마 집정관 마르켈루스에게 일 대 일 대결을 제의했으나 결국 로마 집정관이 승리.* 선거제 및 군제 개혁-왕정시대에는 제1계급이 가진 표만으로 민회에서 충분히 과반수를 획득할 수 있었으나,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제 3계급까지 동원하지 않으면 과반수가 성립하지 않게 됨. 로마 시민권 소유자는 17세부터 60세까지 남자는 무산자를 제외하고 모두 병역 해당자. 2명의 집정관이 각 2개 군단 이끔. 장교 24명. 로마의 현역병 수는 20만명. 동맹국의 현역병은 60만명. 로마군단의 총지휘권은 로마인이 장악. 로마군의 주력은 상류층과 중류층으로 이루어진 중무장 보병. 하급 지휘관인 백인 대장. 투창과 장검 사용. 그러나 기병을 제대로 활용 못함.로마인은 생선을 좋아했지만, 고기에는 집착하지 않음. 밀가루가 주식이어서 체구가 크지 않음. 병역에 종군할 때는 일당을 지불하기정관을 포위했으나, 집정관의 아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아버지를 구출한다. 이때 잡힌 포로들은 한니발에게 귀중한 정보원이 되었다.* 트레비아-제2회전(한니발의 승리)한니발은 로마군의 군량 저장소인 가스테조 마을을 습격. 티치노에서의 승리의 영향으로 갈리아인의 참전 신청은 증가. 로마의 집정관 셈프로니우스는 이대로 겨울을 나자고 한 반면, 강경파인 셈프로니우스는 승부를 빨리 내기를 주장함. 셈프로니우스가 교대로 지휘를 맡는 날, 한니발은 군대를 전진시켜 약탈을 계속했고, 동생에게 보병 1천과 기병 1천을 데리고 관목숲에 숨어있으라 명함.한니발의 적군 기병이 습격하자, 셈프로니우스도 기병에게 출격 명령을 함. 가르타고 기병의 주력인 누미디아 기벼여이 퇴각하자, 로마군 기병은 적을 쫓아 강을 건넘. 그러나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카르타고군 전체 병력. 한니발의 군대가 추위와 비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갖춘데 반하여, 로마 군사들은 공복과 추위에 노출됨. 보병 전력은 막상막하이나, 기병의 전력은 한니발의 군대가 엄청남. 로마군이 중무장 보병을 중앙에 배치한데 반해 한니발은 중앙에 갈리아 보병대를 배치하고 양쪽 날래고 갈수록 전투력이 강해지도록 포위전을 노림. 로마군의 기병이 격퇴당하고, 로마군 양쪽 날개에 한니발의 보병이 들어옴. 그리고 숲속에 숨어있던 한니발의 동생 마고의 2천 병력이 배후에 나타나 포위하고 로마군은 완전 패배함. 힘겹게 적의 중앙을 돌파하여 피아첸차까지 도망칠 수 있었던 병력은 1만에 불과함. 트레비아 전투의 결과는 포강 주변의 갈리아인들에게 알려져 한니발 군대는 5만 명으로 늘어남.한니발은 포로 전원을 로마 시민과 동맹국 시민으로 나누어 차별대우함. 로마 포로만 가혹하게 죽이고 동맹국 병사들에게는 자유를 줌. 한니발의 목적은 ‘로마 연합’을 해체시키는 것이었기 때문.* 트라시메노-제 3회전(한니발의 승리)한니발 전쟁 2년째에 집정관으로 귀족 세르빌리우스와 평민 플라미니우스 선출됨.한니발 군은 두 집정관의 예상과는 달리 볼로냐에서 아니발의 정예부대가 로마군 중무장 보병의 맹공을 견뎌내고 있는 동안, 전선을 이탈했던 갈리아 병사들과 경무장 보병들이 되돌아와 로마군을 포위함. 집정관 바로와 19세가 된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를 비롯한 일부만 도망쳤고, 로마군의 대다수인 7만 명이 전사했다. 승리한 한니발 쪽의 전사자는 불과 5천 500명에 불과했음. 한니발의 동생 마고는 한니발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죽은 병사들의 손가락에서 빼낸 금반지를 본국 요인들의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아올렸다고 함.갈리아 땅에서 2개 군단의 궤멸했다는 소식. 군대 전체가 숲속에 들어가자 갈리아 인은 미리 밑동을 잘라놓은 나무를 비탈에 굴렸고 병사들은 전사함.승리에 찬 한비발의 장교들은 곹장 로마를 공략하자고 했지만, 한니발은 로마의 붕괴는 ‘로마 연합’의 붕괴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대답함. 한니발은 포로들을 로마 시민병과 동맹국 병사로 양분하여 동맹국 병사들을 돌려보냄. 그리고는 군대를 남쪽으로 보내어 이탈리아 남부 도시를 공력하여 ‘로마 연합’에서의 이탈을 강요하고자 함동맹국 카푸아가 칸나이에서 패배한 로마를 버리고 한니발과 강화를 맺음. 이어 근처 4개 도시가 로마에 등을 돌려 ‘로마 연합’이 허물어지기 시작함.*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한니발2천 300년 전 인물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업적을 알 수 있는 것은 플루타르코스의 밖에는 없음. 알렉산드로스는 훗날 한니발이 가장 뛰어난 장군으로 생각한 인물. 알렉산드로스는 22세의 나이에 3만 6천의 병력으로 페르시아 제국으로 쳐들어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와의 싸움에서 두 번이나 승리한 인물. 그는 기병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인물. ‘적의 측면에서, 배후에서’ 공격하는 등의 전술을 구사. 또한 현지 주민들을 병사로 담하여 병력을 늘림. 이러한 전략 전술은 모두 한니발에게 이어짐. 특히 마지막 항목은 더더욱.그러나 한니발과 달리 스는 적의 허를 찌르거나 책략을 꾸민 적은 없었음.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사랑한 영웅은 용감한 아킬레우스인 반면, 한니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