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 : 개념의 역사1. 창조성을 제외하고 본 예술‘창조하다’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 로마, 중세에 이르기까지 존재하지 않았으며,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등장했다.1) 창조성 인정 이전① 그리스 : ‘창조하다’와 ‘창조자라는 말에 해당할만한 용어들이 없었다. 예술가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의미있는 사물들을 모방하는 데 불과했다.->예술가는 창조자와 다르다 : 창조자는 행위의 자유가 있지만, 예술가는 법칙과 규칙에 종속된다. 규칙을 알고, 이용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예술가인 것이다. 즉, 예술가는 발견자이자 발명가는 아니다. (☆ 하나의 예외는 시였다. 시인은 무엇을 하든 자유롭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시인을 창조하는 자로 이해했다.)② 로마 : 시와 예술 간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으며 공통적으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③ 기독교 시대 : ‘창조’는 무로부터 창조하는 신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미의 원형을 숙고해야 하며, 미를 창안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시기에는 시도 창조가 아니라 기술이었다.2) 창조성 인정 이후① 르네상스 시대 :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독립심과 자유, 창조성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창조성’이라는 표현에는 미치지 못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생각해낸다’, ‘예술가는 자신의 관념에 따라 회화작품의 모양을 짓는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예술가는 자연을 모방하기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을 실현시킨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창조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못했다.② 17세기 : 사르비에브스키(폴란드인, 시인이자 시이론가)는 최초로 시인은 “새롭게 창조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창조성을 시만이 가진 절대적 특권으로 간주했다. 17세기 말 펠리비엥이 화가도 ‘소위 창조자’라고 언급했다.③ 18세기 : 창조성의 개념이 상상력의 개념과 연결됐다. 상상력은 “그 안에 창조와 비슷한 것을 자고 있다”(에디슨), “진정한 시인은 창조적이다”(볼테르)와 같은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상상력은 한갓 형식과 내용의 기억일 뿐이며, 엄격히 말해 인간은 창조할 수 없다는 반박도 있었다.④ 19세기 : 예술이 창조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오로지 예술만이 창조로 여겨지게끔 됐다.⑤ 20세기 : 예술에 고유한 개념들이 학문 및 자연으로 전이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술과 시는 두 가지 기본 가치들을 가지고 있으며, 두 가지 모두 목표가 되어왔다. 예술과 시는 두 가지 슬로건을 갖는다. 〓≫ 법칙/규칙/숙련 vs 창조성/자유/상상력우리 시대의 시에서는 두 가지 경향 모두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어떤 예술가와 시인들은 개개의 자유와 창조성을 추구하는가 하면, 어떤 예술가와 시인들은 시와 예술을 지배하는 보편적 법칙을 찾고 그 법칙에 종속되기를 원한다.2. 창조성 : 용어의 역사1. 근 일천 년 동안 창조성이라는 용어는 철학, 신학, 또는 유럽의 예술에 존재하지 않았다.2. 그 후 일천년 동안에는 이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전적으로 신학에서만 쓰였다.(창조자 = 신)3. 19세기가 되어서야 이 용어가 예술의 언어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때에는 예술만이 가지는 속성이었다. 즉 창조자 = 예술가4. 20세기에는 ‘창조자’라는 표현이 인간문화 전체에 적용되기 시작했다.(여러 학문들에 있어서의 창조성, 창조적 정치가들, 새로운 기술문명의 창조자 등등)3. 창조성 : 개념의 역사가. 고대에는 예술에 있어서 창조성에 대한 어떤 논의도 없었다. 조물주는 세계의 창조자가 아니라 세계의 건축가로 이해된다. 시인은 조물주처럼 창조자와 비슷했는데, 시인이 자유로이 행위하는 반면 조물주는 원리나 형상에 따라 행위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건축가 vs 시인나. 중세인들은 ‘창조’는 신의 절대적 속성이라고 확신했다. 신만이 창조자인 것이며, 창조성은 존재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다. 근대 후기에 와서야 창조성의 개념은 변형되었다. 17세기에 창조성은 예술가만의 전적인 속성이라는 이론이 채택되었고, 19세기에는 예술가만이 창조자라는 이론이 전형적인 견해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창조자’와 ‘예술가’는 예전에 ‘창조자’와 ‘신’이 동의어였던 것처럼 서로 동의어가 되었다.라. 20세기에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문화의 다른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창조적일 수 있다는 관념이 생겨났다. 창조성은 생산물의 진기함으로 인식되었고 진기함이란 예술작품뿐 아니라 학문 및 기술 작업에서도 일어났기 때문이다.4. 무로부터의 창조① 창조 개념의 도입 : ‘창조’의 개념은 신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통해 유럽문화 속으로 들어왔다. 즉, 창조는 신이 사물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행위와 동일한 의미이며 ‘무로부터의’ 창조인 것이다.※ 세계의 기원에 대한 세 가지 견해1. 이원론 : 신이 있고 영원한 물질이 있어서 이 물질로부터 신이 세계를 건설한다.(플라톤, 바빌로니아 신화)2. 유출론 : 절대자가 존재하고 그로부터 세계가 나온다.(신플라톤주의자)3. 창조주적 입장 : 신만이 존재할 뿐이며 신이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한다.(기독교 : 창세기)-> 창조라는 사건 그 자체는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철학적 명제이지만, 창조가 때맞추어 수행되었다는 명제는 신앙의 문제이다.② ‘무로부터’라는 구절의 이해만약 시간이 세계와 더불어 창조되었다면 창조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창조 이전에는 시간도 없었다는 것인가중세 : 창조된 세계는 때를 맞춘 시작을 갖고 있지 않지만, 시작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세계가 줄곧 존재해왔다고 하더라도(아퀴나스에 따르면) 세계는 창조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창조 행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만약 신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그만둔다면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존재의 유지 역시 창조라는 것이다.근대 : 창조성은 무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고,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신앙의 문제도 아니다. 남아있는 것은 ‘능력의 개념’일 것이다. 시인은 신과 같이 창조한다는 것이다.5. 창조성의 현대적 개념 : 색다름과 정신적 에너지1) 색다름① 색다름의 정의 : 창조적 행위와 비창조적 행위를 구별짓는 특징문학, 회화, 기술 분야,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창조성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색다름이다. 모든 창조성에는 색다름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색다름의 개념은 애매하다. 인간의 작업은 보는 관점에 따라 색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새롭지 않은 나무에서, 새롭지 않은 방식으로, 매년 봄 새순이 돋아나는 것일 수 있다.)② 색다름은 크든 적든 점진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색다름을 측정할 장치는 없다.③ 인간의 창조성에는 질적으로 다양한 류의 색다름들이 있는데 새로운 형체, 새로운 모델, 새로운 제작방법(자동차의 경우 새 몸체, 신형의 차체, 새 모터 등)이 그것이다. 색다름은 보통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성질이 있는데서 존재하는데, 양적인 증가나 낯선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작품일 경우도 있다.④ 창조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룩된 색다름은 그 기원이 다양하다. 그것은 의도적/비의도적/충동적/유도된 것/자발적/ 연구와 숙고 등에 의해 이뤄진다. 이는 창조적인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증명해주는 것이며 서로 다른 정신력, 능력, 재주 등의 표현이다.2) 정신적 에너지① 색다름과 창조성은 맥을 같이 하지만, 색다름과 창조성이 반드시 일치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창조성의 규준이 색다름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보다 높은 단계의 행위, 보다 큰 노력, 보다 큰 효력 등 다른 것일 수도 있다.② 창조적 인간 : 새로운 뿐만 아니라 특별한 능력, 긴장, 정신적 에너지, 재능, 천재 등이 표현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뜻한다. 새로운 것을 제작하는 데 쓰인 정신적 에너지는 순전한 색다름과 다름없는 창조성의 척도이다. (창조성 = 색다름 + 정신적 에너지)3> 창조성은 왜 중요한가창조성은 새로운 것을 제작함으로써 우리 삶의 틀을 확장시킨다. 창조성은 능력의 표현이고 인간정신의 독립성이며 개별성과 독창성의 표현이다. 창조성은 그것으로 인해 이로워지는 사람들과 창조자 모두를 축복한다. 반 고흐는 “나는 내 인생과 그림에서 나 자신보다 더 위대한 나의 생명력 즉 창조능력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창조성에 대한 예찬은 능력에 대한 예찬이다. 이와 같은 예찬은 지나치게 많은 예술품들 선별하는 하나의 규준 구실을 한다. 우리는 예술작품이라면 충분히 가지고 있다. 문제는 예술가들, 즉 상상력과 자유의 구체화인 예술가들을 갖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의 창조적 기능이지 우리에게 과포화 상태를 안겨준 예술적 산물이 아니다. 문제는 예술이 아니라 창조성이다.
강경애의 「인간문제」1. 강경애의 생애 (1906.4.20~1943.4.26)강경애는 황해도 장연 출생. 아버지를 일찍 여윈 뒤 힘들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1921년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다니다 기독교적 보수주의 교육체제의 지나친 통제와 간섭에 반발해 동맹 휴학을 이끌다 퇴학을 당했다. 이 무렵, 장연 태생의 동경 유학생 양주동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면서 서울 동덕여고에 편입하기도 했으나 그와 헤어지고 난 뒤 장연으로 돌아왔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문학공부를 시작하며 시를 발표했고 직접 ‘흥풍야학교’를 세워 무산계급의 아동들을 지도하기도 하고 1929년 당시 여성운동단체 였던 ‘근우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진취적인 여성운동을 펼쳐나갔다. 1931년 잡지 ‘혜성’에 장편소설「어머니와 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으며, 1932년 간도로 이주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해 단편소설「부자」「채전」「소금」등을 발표했다. 1943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인간문제」를 연재, 근대소설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경애의 대표작이 되었다. 1935년 이후 「해고」「어둠」등 사회의식을 강조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1939년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신병이 약화되어 고향 장연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944년 4월에 지병의 악화로 결국 사망했다.? 근우회-3.1운동 이후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립, 병존하던 여성단체는 1927년에 여성해방운동과 항일운동의 일원화라는 목표아래, 한국 여성의 대동단결을 꾀하고 모든 운동을 효율화하여 새로운 여성운동을 전개하려는 취지로 근우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하였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 각지와 일본 및 만주에 지부를 두었다. 본부에는 재무부, 서무부, 선전조직부, 교양부, 정치연구부, 조사부를 두었다. 회원은 만 18세 이상의 여성으로, 2명 이상의 회원의 추천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었으며, 회비를 내어야 했다.주요 활동은 여성문제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야학 실시, 문맹 퇴치, 여공파업의 진상 조사, 광주학생운동 및 각종 항일학생운동 지도와 지원 등이다. 그리고 근우회는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을 도모함, 교육에서의 성적 차별 철폐, 여성에 대한 사회적· 법률적· 정치적 차별 철폐, 조혼 폐지 및 결혼 이혼의 자유, 인신매매 및 공창 폐지, 농민 부인의 경제적 이익 옹호, 부인 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 및 산전 산후 휴가와 임금 지불, 부인과 소년 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 및 야업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운동자들이 점차 그들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함으로써 민족주의 계열의 여성운동자들과 사상적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1931년 해산되었다.2. 카프문학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에스페란토식 표기의 머리글자를 따서 '카프(KAPF)'로 약칭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정책이 문화정치로 전환하고,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단체이자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문학예술가 조직이다.1930년대를 전후하여 일제의 독점자본은 만주와 중궁 본토까지 지배할 야욕으로 함경도와 평안도 북부 지방에 대륙 지출을 위한 대공업을 발달시켰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이 새로 형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농민운동과 함께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때마침 소련이 성립되면서 사회주의 사상이 급속히 유포되었다. 이러한 형상은 문학에도 영향을 미쳐서 사회주의 사상을 작픔을 통해 구현하려는 많은 작가들을 배출시켰다. 이들이 표방한 문학이 프로문학(프롤레타리아 문학)이었으며, 그들의 조직이 카프였다. 프로문학의 작가들은 기아와 공포가 지배하는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이 현실을 뒤엎을 주체로서 무산자 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을 부각시켰다. 작가들은 문학을 계급투쟁의 무기로 파악, 계급투쟁의 고취에 문학이 봉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강조했다. 하지만 카프문학들은 과도한 목적의식으로 인해서 추상적인 관념이 앞서고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강경애의 인간문제는 일종의 카프문학이라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완전히 카프문학이라 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우선 작가 강경애 자신의 이념이 사회주의 사상을 담고 있고(계급해방, 노동 운동 간도와 만주에 가서 살았던 생애와 연관), 작품 속에서도 끊임없이 그러한 문제들이 제기되어 나옴, 그리고 당시 식민지 시대를 비판하려 했다는 점에서 카프문학과 연관성이 있지만 피지배층인 민중들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봤다는 점에서는 주로 지식인들의 모습을 담았던 카프문학과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카프문학은 지식인들의 도모로 노동자들이 함께 부흥하자(?) 권리를 가지자라는 주장을 펼친다면 강경애는 지식인들의 도모가 아닌 노동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권리를 되찾자라는 이야기를 한다)3. [인간문제] 속 정치적 이데올로기강경애의 인간문제는 정치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따라서 1930년대 우리나라의 식민지 배경과 정치적 사상들을 알아야 이 작품 속 인물 간의 갈등과 작품 후반부에 인물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대이다. 이 당시, 세계대공황과 일본에서의 농업 호황으로 산미증식계획이 포기 되었고 이후 농공병진 정책이 추진되었다. 즉, 이 때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적인 의미인 공업화(소설 속에선 대표적으로 방적공장)가 추진 된 시기다.4. 작품에 대한 감상강경애는 읽기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이 작품이 당시 동아일보에 신문연재된 작품이었다는 사실(작품은 연재 한 회 분량으로 1, 2, 3, 4... 장이 나뉘어져 있다)을 미루어 볼 때, 작가가 대중적 이해를 염두에 두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이 작품은 용연동네를 중심으로 한 전반부와 서울/인천을 중심으로 전개된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작품 전반부는 1930년대 소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세련된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선비의 아버지 민수가 덕호에게 산판으로 맞은 것을 계기로 죽게 되는 장면이나, 아버지로 믿고 따르고자 했던 덕호에게 선비가 겁탈당하는 장면은 소설적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덕호로 대변되는 지배계급의 횡포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 후반부의 경우 직접적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서, 등장인물들이 ‘사상’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은 작위적이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예술가의 신화와 재현주의의 폐기1. 예술가의 신화는 어떻게 폐기 되는가근대 이후 예술관에 의하면, 위대한 예술작품은 예술가가 장시간의 노력을 기울여 천재성을 발휘한 것이었다. 근대 이론가들은 창조물 내부에는 고정된 의미가 존재하며, 이러한 의미를 파악해 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 여겼다. 작품에 담겨 있는 의미는 예술가의 내부적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가 내면세계를 고찰하는 것은 작품 이해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즉, 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술가 개인의 자질이었으며, 예술가가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외부의 평가 역시 큰 몫을 했다.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예술의 의미는 예술가의 내면으로부터 형성된다는 것에 대한 반박이 제기됐다. 그것은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롤랑 바르트는 현대에 있어서는 더 이상 대단한 의미를 가진 예술작품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텍스트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구조주의자였던 롤랑 바르트는 존재의 의미는 내부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맥락에 의해 산출되는 것으로 봤다. 우리가 보는 예술작품은 수많은 텍스트들이 교차하는 장소이며, 그것 또한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대문자 텍스트인 성서의 의미를 파악하므로써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던 해석학과는 대치되는 입장이다.텍스트는 고정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발생하지 않은 사건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은 읽을 수도 있고, 베개가 될 수도 있고,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 책 그 자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 롤랑 바르트는 수행성의 개념을 제시했다. 텍스트는 읽혀져야 하는 것이며, 읽음이라는 수행성이 있을 때 의미가 발생한다. 만약 읽혀지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용자가 있어야 의미가 발생한다. 물론 이 때의 의미는 고정된 진리로서의 의미가 아니다. 예술작품은 창조자가 의미를 담아내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각각의 의미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또한 롤랑 바르트는 예술작품을 예술자의 창조물로 여겼던 근대이론가들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예술품은 창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작가는 베끼는 자일 뿐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저자는 죽었다’고 보았다. 이 때 죽음은 존재 자체의 소멸이 아니라, 위대한 예술품을 생산해내는 예술가의 개념이 상실된 것으로, 저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베끼는 자로서 존재할 뿐이다.이렇듯 예술품을 만드는 것은 자기를 통과하는 텍스트와 자기 외부의 기호를 베끼는 행위다. 다만 배열의 차이가 예술품 간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동시대를 가로 지르는 정보는 비슷하기 때문에, 예술품의 차이는 극명하지 않다. 어떤 예술품이 위대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외부적 요소에 의한 발탁이다. 예를 들어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 작가 자신의 위대한 때문이 아니라, 경제시스템에 의해 발탁되는 것일 뿐이다. 언제든 다른 인물로 대체가능하다는 점에서 예술가의 위치는 절대적이지 않다.하이데거 역시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 예술가를 통과한 것으로 보았다.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체를 구분했는데, 존재는 존재자체를 있게 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떻게 있는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진정한 있음이다. 반면 존재자체는 개별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현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다.하이데거는 은폐된 존재가 개방되는 순간 진리가 발현된다고 보았는데, 예술가는 이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리가 예술가를 통해 말하게끔 하면 예술가는 그것을 담아내는 것으로, 예술가를 통해 진리와 세계의 본질이 드러난다. 예술가의 내면은 중요하지 않다.예를 들어 고흐의 신발 그림은, 신발이라는 존재자가 열리면서 드러난 현존하는 존재를 담은 것이다. 이 때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은 고흐의 내적 능력이 아니라, 고흐가 세계의 것을 담은 것일 뿐이다. 즉, 여기서 이 그림을 고흐가 그렸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나 개성과는 상관없이 존재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도록 변환시키는 메신저와 같다. 따라서 예술가가 자신의 창조성에 의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물론 이러한 하이데거의 주장은 예술작품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개인의 가치를 몰살시켜 전체주의의 단초를 마련한다는 한계를 지적받고 있다.데리다는 롤랑바르트와 하이데거의 주장에 대해 ‘둘 다 신화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두 사람은 본질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데리다는 고정된 의미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예술작품 이전에 진리가 존재한다고 보는 하이데거의 입장을 반대한다. 또한 수행되는 순간 의미가 발생한다는 보는 점에서 바르트의 입장과 유사하지만, 데리다는 그것을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의미를 잡으려는 순간 그것이 미끄러진다는 것이다.한 순간이 다른 순간으로 넘어가면 전제하는 무엇은 밀려난다. A를 표현하고 싶지만, A'를 표현하게 되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A''가 나올 뿐이다. 텍스트는 그것과 일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웃거리지만 결국 의미는 잡히지도 않고 또다른 기표만 가리킨 뿐이다. 이와 같이 데리다는 존재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세웠다.롤랑바르트와 하이데거, 데리다는 공통적으로 ‘예술가는 고정된 의미를 표현하는 창조적 재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의 재능이 높이 평가받은 것과는 달리 현대에 있어 예술가는 베끼는 행위를 하는 자, 진리를 담는 매개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진리의 흔적을 좇아가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을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주장들을 마주하면서, 과연 예술가는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2. 재현주의는 어떻게 폐기되는가인간에게는 이 순간을 보존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변하는 것을 불변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러한 재현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은 문자를 발명했다. 문자를 통한 기록으로 현재를 전승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대한 유사하게 표현하기 위해 인간은 발전된 도구를 발명해냈다. 단순한 그림에 원근법과 색을 가미했고, 사진을, 영화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순간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듯 문명의 역사는 재현의 역사로 볼 수 있다.어떤 것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규정이 필수적이다. 규정은 어떤 대상을 쉽게 판단하기 위한 행위다. 문명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자연이 이론과 일치하지 않아도 이론에 맞추었다. 하지만 대상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며, 이론에 의해 규정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예를 들어 사과는 자신이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아는 만큼 사과를 규정한다. 문자와, 그림, 사진을 통해 ‘사과는 어떤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런 개념을 통해 모든 사과를 하나로 파악한다. 하지만 개별적 사과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것일 수 없다. 또한 사람들은 상대를 쉽게 파악하기 위해 ‘혈액형’이라는 기호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한다. 실제 상대는 혈액형에 맞지 않은 부분이 더 많지만, 그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상대방을 파악하고, 끼워 맞춘다. 그렇게 해야 쉽게 파악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인간은 자신이 누군지, 세계는 무엇인지, 진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진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데, 이는 곧 그 시대의 가치관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은 합리적 이성에 따라 세계를 이분화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명확한 진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는 과정에서 다른 것은 알 수 없지만 ‘의심하는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즉, 사유의 주체로서의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제 1명제가 나오게 된다.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은 신으로부터, 인간의 신체는 자연으로부터 왔으며 이 둘이 결합한 것이 인간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이성은 모든 것의 중심이다. 이 때의 이성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이성이다. 이성은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중심부에 위치한다. 그 외의 것은 타자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이다.이제 모든 것은 둘로 나뉜다. 정신, 문명, 남자는 중심이다. 물체/자연, 여자, 욕망, 감정은 외부에 존재한다. 중심은 외부를 끌어당기고 통제한다. 이전의 진리는 모두 부정되고 오직 합리적 이성만이 기세를 떨친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유하고 있는 내 자신이다. 나는 타인의 이성에 대해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모더니즘 시대에서는 소통의 가능성이 빈약하다.이러한 합리적 이성에 의한 인식은 서구의 개인주의적 사회의 밑바탕이 된다. 사회는 이성적 나로 구성된 집단이다. 이성을 가진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이룩한 것이 서구시민사회인 것이다. 모든 것은 계약에 의해 진행된다. 계약을 움직이는 것은 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지의 땅에 가서 계약서를 작정하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도저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합리성의 탈을 쓴 비이성이고 약탈인 것이다.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적 사고를 해체한다.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다. 일원론적 사고가 다원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섞일 수 없는 것을 여겨졌던 것이 섞이고 뒤엉킨다. 위계질서는 붕괴되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변화, 무한한 재미를 지향한다. 정돈된 것은 흐트러지고 혼란이 온다.모더니즘에서 완전히 다른 것, 단절된 것이었던 정신과 물질, 영혼과 자연, 우주와 인간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포함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세계가 물, 불, 흙, 공기,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 네 가지 원소가 모이고 흩어져서 인간과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 의해 단절되었던 세계와 인간은 바슐라르에 의해 다시 교환되고 포함되는 관계로 돌아간다. 주체와 객체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변화가능한 것이다. 즉, 주체였던 것이 것이 객체로, 객체였던 것이 주체로 자리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또한 과학적 진보에 대해서도 반박이 제기된다. 바슐라르는 각각의 이론들 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하나의 이론이 다른 이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과는 달리, 하나의 이론이 생겨난 뒤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전의 이론이 도입되는 것이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낱낱의 것으로 존재할 뿐이다.진리에 대해서도 고정된 진리를 거부하는 입장이 등장한다. 미쉘 푸코는 모든 시대를 가로지르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통용되는 진리가 변화한다고 보았다. 진리는 정치적, 경제적 힘의 작용에 따른 시대의 선택인 것이다.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모든 것이 변화/교환가능하기에 이제 소통의 가능성은 풍부해진다. 세계는 끊임없이 진동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세계를 고정적으로 인식하기보다 순환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는 발 디딜 곳이 없어진다.물론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하나의 절대적 진리일 수 없다. 이것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하나의 이론이며, 하나의 경향이다. 포스트모던한 사회에 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고정된 실체로 보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모순이다. 모든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변화한다.현대 문학작품 속 포스트모던적 요소기존의 문학 작품, 특히 소설에서는 고정된 형식과 스토리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것들은 파괴되고 있다. 최근 한국소설을 보면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 이기호를 들 수 있다.